판타지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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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posts사랑의 블랙홀 Groundhog Day (1993)
겨울 날씨 된 기념 재감상 영원히 반복되는 하루. 이제는 너무나 유명한,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가 되어버린 설정. 이게 어릴 때 보는 거랑 어느 정도 인생을 알겠다 싶을 때 보는 거랑, 이제는 진짜 인생 뭔지 모르겠다 생각되는 순간에 보는 거랑 번번이 느낌이 다르다. 어릴 때는 그냥 존나 재미난 판타지 로맨스지. 성장기에는, 뉘우치니까 타임루프에서 빠져나갔다는 결말이 지루한 설교요, 뻔한 헐리웃 크리스마스 영화의 단골 테마처럼 느껴져서 우습다. 철없던 청춘에는 "오빠가 뭘 잘못했는지 몰라?"라는 질문에 적절한 답을 찾아낼 때 까지 고통 받아야 하는 연애지옥처럼 느껴져서 영화의 장르가 호러로 바뀐다. 필이 영문도 모른 채 타임루프에 빠진 것은 매사에 시큰둥하고 투덜대던 남자에게 내려진

셰이프 오브 워터 The Shape of Water (2017)
사랑이라는 것은 물로 시작해서 물로 끝난다. 적어도 육체적 사랑은 그러하며, 물이라는 관념은 에로스적 사랑을 논함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무언가다. [마그마처럼]의 주인공 아츠코가 각인된 첫 오르가즘의 감각에 사로잡혀 온탕 안에서의 섹스를 원했듯, 이 영화의 주인공 일라이자가 물에 탐닉하는 것은 물가에 버려진 고아였던 과거와 상징적으로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욕조의 따뜻한 물에서 자위하던 그녀는, 끓는 물에 삶은 달걀로 양서인(兩棲人)을 유혹한다. 그리고 그 양서인과의 사랑을 끝내기로 계획한 날은 온 세상이 물로 뒤덮이는 날이다. 제목은 "사랑의 형태"가 아닌, "물의 형태"를 논하고 있다. 사랑과 물, 정서와 물질이라는 두 개념을 무정형(無定形)의 공통점 아래 동일시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겠

쥬만지 새로운 세계 Jumanji: Welcome to the Jungle (2017)
전작 [쥬만지]는 당시의 흥행 부진, 저평가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그 나름의 존재 가치를 지닌다. 90년대 아역 배우들의 연기 방식과 로빈 윌리엄스로 대변되는 당대의 가족 코미디 양식 등이 기록되었음은 물론, CG와 애니매트로닉스, 스톱 모션 등의 테크닉이 총 동원된 영화사(史)의 지표로서 기능한다 감히 말 하겠다. 세상에 "필요해" 만들어지는 영화라는 건 없다. 때문에 본작에 어울리는 질문은, "어째서 후속작인가"가 아닌, "후속작으로서 타당한가"여야 한다. 전작이 품었던 크리처 어드벤처 장르로서의 가능성, 고유의 상상력과 미학 등이 그 후속작에도 최소한 비슷한 수준으로 시도되고 있는지를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다"고 나는 답한다. 어째서 보드 게임이 아닌, 가상현실 비디오 게임인가. 손 쉬

빅 피쉬 Big Fish (2003)
말년의 아버지에게서 과거사를 듣고 그에 관한 애증을 털어놓는 액자 구성의 이야기. 한국에서는 90년대 말 권장 도서로 유명했던 아트 슈피겔만의 [쥐]와 이야기 구조가 매우 흡사하다는 점이 흥미롭다. 화자(아들)의 아내가 프랑스인이라는 점마저 같은 것은 우연일까. 물론, 끔찍하게 사실적인 홀로코스트의 기억 대신 속아도 행복한 허풍이 이야기의 골자라는 것에서 전혀 달라지지만. 상기했다시피 액자 구성도 있지만, 로드무비 플롯을 취한다는 점에서 역시 기존 팀 버튼 영화들과 크게 다르다. 버튼 영화의 주인공들은 대개 어딘가에 갇혀있거나 갇혀있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만 본작에서는 주인공이 "더 큰 세상"을 외친다. 게다가 현재 파트는 완전히 다른 작품과 릴이 섞인 듯 장르 자체가 다르고, 버튼 특유의 미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