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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주부의 미국 여행과 생활 V2 | 2019년 11월 23일 |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해발 3,400 미터에 위치한 관광도시 쿠스코(Cusco)의 중심인 아르마스 광장](https://img.zoomtrend.com/2019/11/23/99BF8F355DD882D720)
미국 애틀랜타를 일요일 저녁에 출발한 비행기가 적도를 지나, 페루의 수도인 리마(Lima)에 도착한 시간은 월요일 새벽이었다. 문제는 리마에서 쿠스코로 가는 비행기가 점심때라서, 거의 12시간을 공항에서 노숙 비스무리하게 시간을 보내야 했다는 것이다.마침내 긴 기다림이 끝나고, 우리를 쿠스코로 태워줄 스카이 항공(SKY Airlines)의 비행기가 게이트로 들어오고 있다.리마에서 쿠스코까지 비행기로는 1시간 20분이지만, 버스는 20시간 이상이 걸리므로 그냥 고민 없이 비행기를 타면 된다. (노란 별표가 있는 곳이 마추픽추 위치) 위성사진 아래쪽에 하얗게 보이는 것이 이웃나라 볼리비아의 우유니(Uyuni) 소금사막인데, 쿠스코에서 라파즈(La Paz)까지 비행기(또는 밤버스) 그리고 우유니까지 또 밤버스로, 전체 이동에만 이틀이 걸리는 거리라서, 이번에 안 가기를 잘 한 것 같지만 그래도 다음을 기약하기 위해 블로그에 남겨둔다. 이 지도에서 볼리비아(Bolivia) 국경 위쪽은 브라질, 서쪽 해안가는 칠레이다.해안가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비행고도를 별로 낮출 필요도 없이 해발 약 3,400 미터의 쿠스코 공항에 착륙했다. 택시를 타고 구시가에 예약한 호텔로 가서 체크인을 하고, 다시 호텔문을 나서면 바로 이렇게 아르마스 광장(Plaza de Armas)이 나온다, (구글맵으로 지도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사진 왼쪽 건물은 광장 북동쪽의 쿠스코 대성당이고, 오른쪽은 남동쪽의 다른 예배당 건물이다. 하지만, 이 사진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저 높이 걸려있는 커다란 '무지개깃발(rainbow flag)'이다! 잠시 후 군인들이 엄숙히 하강식도 진행했던 저 깃발은, 여기 미국과 전세계에서 일반적으로 성소수자 LGBT를 상징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여기 페루 쿠스코는 잉카제국의 수도가 아니라, 전세계 게이들의 수도였단 말인가?오해하지 마시라~^^ LGBT 깃발은 '빨주노초파보'의 6색인 반면에, 쿠스코 시의 깃발은 '빨주노초파남보'의 7색 무지개깃발이다. (정확히는 '파란색-남색-보라색'이라기 보다 '하늘색-파란색-보라색'임) 쿠스코 시의 7색 무지개깃발은 1978년부터 공식적으로 사용되었는데, 안데스산맥 잉카문명 인디오들이 사용하는 천연색 격자무늬인 위팔라(Wiphala)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참고로 6색의 LGBT 깃발이 Pride Parade에 처음 등장한 것은 다음해인 1979년이라고 함)1669년에 완성된 쿠스코 대성당(Cathedral del Cuzco)의 겉모습은 모든 페루 여행기에 빠짐없이 등장하지만, 내부를 소개한 글은 비교적 많지 않다. 이유는 앞으로 소개할 쿠스코 지역 문화재와 유적들의 통합입장권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아서 별도로 10달러 가까운 입장료를 내야하기 때문인 것 같은데, 그래서 우리도 쿠스코에 일주일을 살면서도 안에 들어가보지는 않았다.광장 중앙의 분수대 위에 세워진 잉카 왕의 황금색 동상보다도 더 눈에 띄는 것은, 저 언덕을 따라 끊임없이 위로 올라가면서 지어진 빨간색 지붕의 건물들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이 돌을 깔아서 만든 좁은 골목길들은 2년여 전의 우리가족의 스페인 여행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명색이 결혼 20주년 기념여행이니까, 잘 나온 사진은 없지만 셀카봉 커플사진 한 장만 올려본다~사진 가운데 까만 옷의 경찰들과 멀리 연두색 야광옷을 입은 교통경찰이 보이는데 (사진에는 없지만 중무장한 경찰들도 대기하고 있음), 쿠스코의 아르마스 광장 주변은 매우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광장에 있는 사람들의 1/3은 전세계에서 온 여행객들, 다른 1/3은 그 여행객들로 먹고사는 호객꾼들과 상인들, 그리고 나머지 1/3은 그냥 현지인들이었던 것 같다. 첫번째 1/3에 속한 우리 부부는 두번째 1/3의 숱한 접근을 뿌리치며, 저녁을 먹을 곳을 찾는다는 핑계로 정처없이 걸었다.그러다가 문이 열려있어서 그냥 들어와본 예배당에서, 여기 쿠스코까지 무사히 오게 해주신 것과, 또 앞으로의 여행일정이 모두 순조롭게 진행되기를 잠깐 기도했다. (시장으로 가는 길에 있는 Basilica Menor de la Merced)나와서 시장쪽으로 계속 걷다가 다시 발길을 돌려, 자동차가 다니는 대로인 Av El Sol을 따라 내려가다가 또 다시 턴을 해서, 결국은 아르마스 광장으로 돌아왔다.그래서 호객이 없는 좋아보이는 식당을 골라 2층으로 올라와서 보니, 식당 이름이 투누파(Tunupa)... 바로 그 곳이었다~ 그래서 사진 가운데에 보이는 노란색 잉카콜라(Inca Kola)를 시키는 것을 잊지 않았다.^^저녁 식사를 마치고 깜깜해진 아르마스 광장으로 나오니, 우기에 접어드는 시기라서 약간씩 부슬비가 내렸다. 보통 비구름은 낮게 떠있다고 하는데, 해발 3,400 미터에 비를 뿌리는 구름의 정체는 뭘까? 콜라 색깔부터 숨쉬는 공기까지 모든게 색다르고 신기했던 '쿠스코 한 주 살기'의 첫날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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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쿠나마타타 | 2019년 4월 5일 |
에콰도르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다윈에게 진화론의 영감을 줬던 단연 갈라파고스 섬이다. 그렇지만 갈라파고스는 늘 예산 압박에 시달리는 장기 여행자에게는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여행지다. 무조건 비행기를 타야 했고, 들어가자마자 내야 하는 입도비, 비싼 물가는 '나중에'라는 말로 접어야 했다. 콜롬비아로 가는 길목에 있었기에 빠르게 지나는 편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
에콰도르의 첫 번째 도시는 쿠엔카(Cuenca)였다. 이른 아침에 도착하자마자 숙소에서 체크인을 한 뒤 야간 이동의 피로를 풀기 위해 잠시 쉬었다. 에콰도르는 짐바브웨 이후 오랜만에 달러를 쓰는 나라였다. ATM에서 돈을 인출하자 미국 달러가 나왔다.
점심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적당히 저렴한 식당이 있는지 찾으며 걸었는데 그리 어렵지 않게 '메뉴델디아(Menu del Dia)'라고 쓰여있는 식당을 발견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오늘의 메뉴라고 해야 할까? 남미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메뉴로 수프, 메인, 음료 등이 나오면서 저렴함이 특징이다. 이날도 에콰도르에서 처음 먹은 메뉴델디아 메뉴는 3달러였다.
스페인 식민시대의 오래된 건물이 많긴 했지만 동네는 깔끔한 편이었다. 역사적으로도 가치가 있는지 쿠엔카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처음 도착한 도시에서 적응하는 방법은 무작정 걷는 것이다.
조금 걷다 보니 강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한 작은 개울이 나왔다. 이 개울을 사이에 두고 도시가 남북으로 나뉘어져 있다.
맑은 날씨에 걸으니 기분이 무척 좋았다. 알록달록한 벽화를 구경하고, 길거리에서 파는 불량식품 같은 아이스크림을 사서 먹었다.
누군가는 에콰도르에서 쿠엔카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고 하는데 기대할 만큼 특별하진 않았다. 지나고 생각해 보면 매연 가득한 키토나 범죄율이 높다고 알려진 과야킬에 비하면 쿠엔카는 훨씬 괜찮은 동네임에 틀림없다.
쿠엔카에서는 손으로 직접 만드는 파나마 모자가 유명하다고 한다. 에콰도르에서 만든 모자인데 중미에 있는 나라 이름이 붙은 이유는 파나마를 통해 여러 나라로 수출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모자도 관심이 없었고, 모자를 사더라도 들고 다닐 자신도 없었다. 아무튼 목적지 없이 걷다 보니 어느새 도시를 한 바퀴 돌게 되었다.
어느 건물 안에는 재래시장이 있었다. 페루, 볼리비아와는 조금 다른 인디오들의 외모와 옷차림이 눈에 띄었다. 과거 잉카제국의 영향에 있었던 이곳은 스페인 식민시대를 거치면서 거의 다 사라진 상태지만, 인디오들은 여전히 남아있다.
광장을 지나면 쿠엔카를 대표하는 새로운 성당이 모습을 드러낸다. 멀리서 봐도 푸른색의 돔이 인상적이다.
성당 주변에는 꽃을 파는 노점이 여럿 있었다. 확인해 보진 않았지만 아마 여기서 성당 안 여러 성인 앞에는 여기서 산 꽃이 놓여 있을 것이다.
쿠엔카의 밤은 꽤나 조용했다.
아무리 작은 도시라도 보통 이틀 이상 머무는 편인데 북쪽으로 빠르게 올라가기로 했다 보니, 바로 다음날 아침에 바뇨스(Baños)로 이동했다. 바뇨스로 가는 버스는 아침에 한 대 뿐이었지만 사실 매 시간 있었던 암바토(Ambato)로 가는 버스를 탄 후 바뇨스로 가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바뇨스로 가는 여정은 굉장히 지루했다. 좁은 버스는 그렇다 쳐도 중간에 사람을 태우기 위해 수시로 정차했고, 무엇보다 오랜만에 낮에 타는 장거리 버스라서 그런 듯하다.
거의 9시간 만에 바뇨스에 도착했다. 바뇨스는 작은 동네지만 여행자로 항상 북적이는 곳이다.
미리 만나기로 했던 사람들과 얘약했던 숙소를 찾아가 체크인하고, 허기를 달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잠깐 걸었을 뿐인데 한국 사람들이 눈에 띄게 많았다. 사실 남미에서 한국인 여행자를 만나기란 그리 어렵지 않지만 에콰도르, 그것도 바뇨스에 이렇게 한국 사람이 많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하루 종일 이동하느라 제대로 먹은 게 없었다. 숙소를 찾아 걷다 우연히 발견했던 허름한 식당이 생각나 무작정 찾아갔다. 연기로 가득했던 허름한 식당에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곱창을 팔고 있었다. 페루에서 만났던 어느 한국인 여행자가 바뇨스에서 먹었던 곱창이 그렇게 맛있다고 칭찬을 했었는데 첫날에 우연히 찾아온 것이다. 때마침 곱창을 먹으려고 기다리던 한국인 여행자 4명과 합석하게 되었다. 우리는 통성명도 하지 않은 채 수다를 떨고, 맥주와 곱창을 해치웠다.
바뇨스에서는 칠레에서 밤새도록 술을 마셨던 동빈이와 다시 만났다. 동빈이와 날짜를 맞춘 것도 있지만 바뇨스에 한국 사람이 많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공기 좋은 곳에 위치한 이 작은 마을은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액티비티가 매력적이다.
동빈이와 함께 만나게 된 한국인들과 다음날 곧장 래프팅을 하러 갔다. 확실히 18달러면 괜찮은 가격인 것 같다. 물론 여럿이라 약간 할인이 되긴 했지만.
래프팅에 앞서 구명조끼를 입고 노를 챙긴 뒤 간단한 교육을 받았다.
물을 무서워하지만 일단 신난다.
래프팅을 처음 하는 것은 아니지만 바뇨스에 도착하기 전에 이곳 물살이 험하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날씨도 흐려서 살짝 걱정이 됐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거칠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만 더 빨랐으면 더 재미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있다.
물살이 약한 곳에서는 가이드의 의도 혹은 자신의 의지로 한 번씩 물에 빠진다.
두 팀으로 나뉘어서 탔기 때문에 경쟁하면서 노를 젓거나 물싸움을 하는 건 기본이었다.
간혹 무자비한 사람들로 인해 강제로 물에 빠지기도 한다. 구명조끼를 입었지만 물살이 빠른 지점 전에 보트로 돌아와야 한다.
보통 노를 천천히 젓다가 물살이 세지는 지점에서 노를 힘껏 저으며 빠져나간다. 바위가 있는 지역은 특히 위험할 수 있다.
조금 더 스릴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우린 충분히 즐거웠다.
계속해서 물싸움을 하면서 내려오다 보니 어느덧 하류에 다다랐다. 이제는 물에 빠져도 허리까지 밖에 오지 않는다.
오랜만에 계곡에서 래프팅을 하니 정말 재미있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한국 여행자를 한 번에 많이 만났던 적은 손에 꼽는데 유독 남미만큼은 달랐다. 그렇다고 남미 여행지마다 한국 사람을 만났던 것도 아니었다. 관광지나 큰 도시에서만 한국인을 만나기 쉬웠다고 해야 할까. 바뇨스라는 작은 동네에 이렇게 많은 한국 사람이 있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며칠 뒤 더 많은 한국 사람이 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동빈이를 제외하고 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지만 같이 술을 마시며 어울렸다.
남미에서 거기에 한국 사람들끼리 어울린다는 이유로 술자리가 금방 끝날 리 없었다. 처음에는 맥주를 마시다 금방 병을 비우자 보드카로 종목을 바꿔 마시기 시작했다. 한참을 마시다 보니 하나 둘 숙소로 들어갔고, 뭔가 아쉬웠던 나를 포함한 네 명은 다른 장소로 옮기기로 했다.
알록달록한 조명 아래 시끄러운 음악이 흘러나오는 거리를 걷다 보면 확실히 세련된 맛은 아니었다. 촌스러움을 가득했던 만코라와 비슷했다. 아무래도 바뇨스는 작은 동네였으니까. 아무튼 '프리드링크'를 준다는 클럽에 들어갔다가 무지하게 쓴 술을 마시고는 바로 나왔다. 너무 시끄러웠다. 맞은편에 있는 다른 술집에서도 프리드링크를 주길래 들어갔는데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프리드링크로 준 술은 빨강색, 노란색, 초록색이 층을 이룬 예쁜 칵테일이었는데 재미있게도 잔에 불이 붙어서 나왔다.
이번에도 프리드링크만 마시고 나갈 수는 없어 남미에서 자주 마셨던 브라질 칵테일 카이피리니야를 달라고 했다. 밖은 여전히 시끌벅적하고, 자정을 넘어서까지 술을 마시던 우리는 끝내 취하지 않았다.
어쩌면 사진으로 더 유명한 장소가 바뇨스에 있다.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면 까사델아르볼(La Casa del Arbol)에 갈 수 있다. 스페인어로 까사는 집이고 아르볼은 나무이니까 번역을 하자면 '나무집'정도 되겠다.
나무집이 유명한 이유는 바로 그네 때문이다. 언덕 위에 있는 그네를 타고 뒤에서 사진을 찍으면 마치 공중에서 묘기를 부리는 것처럼 아찔한 장면이 담겨 나온다.
그네를 탈 수 있는 곳은 두 군데가 있다.
둘 다 그네를 타면서 사진 찍기 좋지만 역시 나무집 아래 있는 그네가 더 잘 나온다. 양 옆 기둥이 없는 데다가 절벽에 가까이 있어 사진으로는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놀이'로 보인다.
실제로는 약간 경사진 언덕이라 무섭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로우앵글로 찍으면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그네처럼 보인다. 덕분에 '세상 끝의 그네'라는 별명도 있다.
넓은 공터에는 아담한 규모의 짚라인도 있다.
다만 짚라인을 타게 되면 중간 지점에서 멈추게 된다.
대부분 그네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지만 주변 경치도 제법 괜찮다.
사실 기대했던 것보단 별 게 없지만 단 돈 1달러에 오랫동안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나름 괜찮았다고 볼 수 있다.
그네 사진만 보고 바뇨스를 찾아오는 사람도 있을 정도니까.
사진을 충분히 찍었다고 생각했을 때 내려왔다. 돌아가는 버스가 1시간마다 있었기에 시간을 잘 맞춰야 했다.
디마티아스 호스텔로 숙소를 옮겼다. 여전히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남미에서는 꼭 한국인 여행자들이 몰리는 숙소가 정해져 있다. 바뇨스에서도 그랬는데 다른 숙소는 텅 빈 곳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여기만 한국인들로 북적였다. 우리가 묵고 있던 숙소는 더블룸이었음에도 도미토리인 이 숙소로 전부 옮겨가기로 해서 나도 오게 되었다. 비슷한 가격인데도 말이다. 물론 이곳 주방에는 조리도구가 많아 요리를 하고 함께 먹고 즐기기는 더 좋았다.
바뇨스에서는 액티비티를 하지 않으면 할 게 그리 많지 않다. 래프팅을 비롯해 캐녀닝, 캐노피, 번지점프 등 여러 액티비티를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하긴 했으나 여행 막바지라 생각했던 나는 절약 모드에 들어갔다. 나보다 어린 여자아이들이 여기 번지점프는 엉성한 줄만 묶고 바로 앞에 있는 다리에서 뛰어내리기 때문에 더 스릴 있다는 말에 쫄았던 것도 있다.
시장은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거나 음료를 마시기 좋다.
페루에서만 '꾸이'를 먹는 줄 알았는데 에콰도르에서도 즐겨 먹나 보다. 통구이 된 기니피그를 보면 있던 식욕이 사라지게 된다. 흥미롭긴 하지만 굳이 먹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경험 삼아 먹어봤으면 어땠을까 싶다. 아마 옆에서 가이 먹어보자고 꼬셨으면 먹었을 텐데 혼자라서 구경만 한 것 같다.
관광지답게 어딜 가도 숙소와 기념품 가게를 찾을 수 있다.
한 바뀌 돌아보면 소박한 동네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돼지껍데기에 흥미를 느껴 먹어봤는데 그냥 고무를 씹는 느낌이었다.
저녁에는 폭포 바로 아래 있는 야외 온천에 갔다. 입장료는 3달러였는데 동네 온천이니 특별할 건 없었고, 냉탕과 온탕 그리고 수영장이 있었다. 저녁에는 다 여기로 오는 것인지 꽤 많은 사람들이 온천을 즐기고 있었다. 시설이 좋다거나 온천에 대한 기대는 애초에 하지도 않았고 따뜻한 물에 오랫동안 몸을 담그고 오는 것으로 만족했다.
여행 811일 차, 노트북과 휴대폰이 박살 났다. 이를 어쩐담.
숙소에는 지난번 곱창 먹을 때 만났던 한국인 여행자들도 있었다. 몇 번 지나치며 인사를 했던 게 전부였는데 이날은 앉아서 계속 수다를 떨게 되었다. 나보다 형이었던 찬열이형은 대전에 연고가 있었고, 잠시 뒤에 합류했던 유경누나는 내가 2년 동안 군생활을 했던 강원도 원통 출신이라고 했다. 그 때문인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수다가 이어지게 되었다.
아마도 1년 이상 여행한 장기 여행자, 그리고 비슷한 나이 또래라서 말이 잘 통했나 보다. 우리의 수다는 아침부터 밤까지 지칠 줄 몰랐다.
이제는 익숙해진 바뇨스 밤거리를 걷다 술자리를 이어갔다. 여행하면서 12시간 동안 쉬지 않고 수다가 이어진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수다가 즐거운 사람들을 만났는데 아쉽게도 바뇨스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아침에 배웅 나온 유경누나가 하루만 더 있으라고 했는데 키토에서 만날 친구가 있어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한국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한 뒤 거리로 나섰다. 헤어짐은 일상이지만 또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여행의 매력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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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쿠나마타타 | 2019년 4월 5일 |
에콰도르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다윈에게 진화론의 영감을 줬던 단연 갈라파고스 섬이다. 그렇지만 갈라파고스는 늘 예산 압박에 시달리는 장기 여행자에게는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여행지다. 무조건 비행기를 타야 했고, 들어가자마자 내야 하는 입도비, 비싼 물가는 '나중에'라는 말로 접어야 했다. 콜롬비아로 가는 길목에 있었기에 빠르게 지나는 편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
에콰도르의 첫 번째 도시는 쿠엔카(Cuenca)였다. 이른 아침에 도착하자마자 숙소에서 체크인을 한 뒤 야간 이동의 피로를 풀기 위해 잠시 쉬었다. 에콰도르는 짐바브웨 이후 오랜만에 달러를 쓰는 나라였다. ATM에서 돈을 인출하자 미국 달러가 나왔다.
점심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적당히 저렴한 식당이 있는지 찾으며 걸었는데 그리 어렵지 않게 '메뉴델디아(Menu del Dia)'라고 쓰여있는 식당을 발견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오늘의 메뉴라고 해야 할까? 남미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메뉴로 수프, 메인, 음료 등이 나오면서 저렴함이 특징이다. 이날도 에콰도르에서 처음 먹은 메뉴델디아 메뉴는 3달러였다.
스페인 식민시대의 오래된 건물이 많긴 했지만 동네는 깔끔한 편이었다. 역사적으로도 가치가 있는지 쿠엔카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처음 도착한 도시에서 적응하는 방법은 무작정 걷는 것이다.
조금 걷다 보니 강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한 작은 개울이 나왔다. 이 개울을 사이에 두고 도시가 남북으로 나뉘어져 있다.
맑은 날씨에 걸으니 기분이 무척 좋았다. 알록달록한 벽화를 구경하고, 길거리에서 파는 불량식품 같은 아이스크림을 사서 먹었다.
누군가는 에콰도르에서 쿠엔카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고 하는데 기대할 만큼 특별하진 않았다. 지나고 생각해 보면 매연 가득한 키토나 범죄율이 높다고 알려진 과야킬에 비하면 쿠엔카는 훨씬 괜찮은 동네임에 틀림없다.
쿠엔카에서는 손으로 직접 만드는 파나마 모자가 유명하다고 한다. 에콰도르에서 만든 모자인데 중미에 있는 나라 이름이 붙은 이유는 파나마를 통해 여러 나라로 수출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모자도 관심이 없었고, 모자를 사더라도 들고 다닐 자신도 없었다. 아무튼 목적지 없이 걷다 보니 어느새 도시를 한 바퀴 돌게 되었다.
어느 건물 안에는 재래시장이 있었다. 페루, 볼리비아와는 조금 다른 인디오들의 외모와 옷차림이 눈에 띄었다. 과거 잉카제국의 영향에 있었던 이곳은 스페인 식민시대를 거치면서 거의 다 사라진 상태지만, 인디오들은 여전히 남아있다.
광장을 지나면 쿠엔카를 대표하는 새로운 성당이 모습을 드러낸다. 멀리서 봐도 푸른색의 돔이 인상적이다.
성당 주변에는 꽃을 파는 노점이 여럿 있었다. 확인해 보진 않았지만 아마 여기서 성당 안 여러 성인 앞에는 여기서 산 꽃이 놓여 있을 것이다.
쿠엔카의 밤은 꽤나 조용했다.
아무리 작은 도시라도 보통 이틀 이상 머무는 편인데 북쪽으로 빠르게 올라가기로 했다 보니, 바로 다음날 아침에 바뇨스(Baños)로 이동했다. 바뇨스로 가는 버스는 아침에 한 대 뿐이었지만 사실 매 시간 있었던 암바토(Ambato)로 가는 버스를 탄 후 바뇨스로 가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바뇨스로 가는 여정은 굉장히 지루했다. 좁은 버스는 그렇다 쳐도 중간에 사람을 태우기 위해 수시로 정차했고, 무엇보다 오랜만에 낮에 타는 장거리 버스라서 그런 듯하다.
거의 9시간 만에 바뇨스에 도착했다. 바뇨스는 작은 동네지만 여행자로 항상 북적이는 곳이다.
미리 만나기로 했던 사람들과 얘약했던 숙소를 찾아가 체크인하고, 허기를 달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잠깐 걸었을 뿐인데 한국 사람들이 눈에 띄게 많았다. 사실 남미에서 한국인 여행자를 만나기란 그리 어렵지 않지만 에콰도르, 그것도 바뇨스에 이렇게 한국 사람이 많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하루 종일 이동하느라 제대로 먹은 게 없었다. 숙소를 찾아 걷다 우연히 발견했던 허름한 식당이 생각나 무작정 찾아갔다. 연기로 가득했던 허름한 식당에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곱창을 팔고 있었다. 페루에서 만났던 어느 한국인 여행자가 바뇨스에서 먹었던 곱창이 그렇게 맛있다고 칭찬을 했었는데 첫날에 우연히 찾아온 것이다. 때마침 곱창을 먹으려고 기다리던 한국인 여행자 4명과 합석하게 되었다. 우리는 통성명도 하지 않은 채 수다를 떨고, 맥주와 곱창을 해치웠다.
바뇨스에서는 칠레에서 밤새도록 술을 마셨던 동빈이와 다시 만났다. 동빈이와 날짜를 맞춘 것도 있지만 바뇨스에 한국 사람이 많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공기 좋은 곳에 위치한 이 작은 마을은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액티비티가 매력적이다.
동빈이와 함께 만나게 된 한국인들과 다음날 곧장 래프팅을 하러 갔다. 확실히 18달러면 괜찮은 가격인 것 같다. 물론 여럿이라 약간 할인이 되긴 했지만.
래프팅에 앞서 구명조끼를 입고 노를 챙긴 뒤 간단한 교육을 받았다.
물을 무서워하지만 일단 신난다.
래프팅을 처음 하는 것은 아니지만 바뇨스에 도착하기 전에 이곳 물살이 험하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날씨도 흐려서 살짝 걱정이 됐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거칠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만 더 빨랐으면 더 재미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있다.
물살이 약한 곳에서는 가이드의 의도 혹은 자신의 의지로 한 번씩 물에 빠진다.
두 팀으로 나뉘어서 탔기 때문에 경쟁하면서 노를 젓거나 물싸움을 하는 건 기본이었다.
간혹 무자비한 사람들로 인해 강제로 물에 빠지기도 한다. 구명조끼를 입었지만 물살이 빠른 지점 전에 보트로 돌아와야 한다.
보통 노를 천천히 젓다가 물살이 세지는 지점에서 노를 힘껏 저으며 빠져나간다. 바위가 있는 지역은 특히 위험할 수 있다.
조금 더 스릴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우린 충분히 즐거웠다.
계속해서 물싸움을 하면서 내려오다 보니 어느덧 하류에 다다랐다. 이제는 물에 빠져도 허리까지 밖에 오지 않는다.
오랜만에 계곡에서 래프팅을 하니 정말 재미있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한국 여행자를 한 번에 많이 만났던 적은 손에 꼽는데 유독 남미만큼은 달랐다. 그렇다고 남미 여행지마다 한국 사람을 만났던 것도 아니었다. 관광지나 큰 도시에서만 한국인을 만나기 쉬웠다고 해야 할까. 바뇨스라는 작은 동네에 이렇게 많은 한국 사람이 있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며칠 뒤 더 많은 한국 사람이 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동빈이를 제외하고 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지만 같이 술을 마시며 어울렸다.
남미에서 거기에 한국 사람들끼리 어울린다는 이유로 술자리가 금방 끝날 리 없었다. 처음에는 맥주를 마시다 금방 병을 비우자 보드카로 종목을 바꿔 마시기 시작했다. 한참을 마시다 보니 하나 둘 숙소로 들어갔고, 뭔가 아쉬웠던 나를 포함한 네 명은 다른 장소로 옮기기로 했다.
알록달록한 조명 아래 시끄러운 음악이 흘러나오는 거리를 걷다 보면 확실히 세련된 맛은 아니었다. 촌스러움을 가득했던 만코라와 비슷했다. 아무래도 바뇨스는 작은 동네였으니까. 아무튼 '프리드링크'를 준다는 클럽에 들어갔다가 무지하게 쓴 술을 마시고는 바로 나왔다. 너무 시끄러웠다. 맞은편에 있는 다른 술집에서도 프리드링크를 주길래 들어갔는데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프리드링크로 준 술은 빨강색, 노란색, 초록색이 층을 이룬 예쁜 칵테일이었는데 재미있게도 잔에 불이 붙어서 나왔다.
이번에도 프리드링크만 마시고 나갈 수는 없어 남미에서 자주 마셨던 브라질 칵테일 카이피리니야를 달라고 했다. 밖은 여전히 시끌벅적하고, 자정을 넘어서까지 술을 마시던 우리는 끝내 취하지 않았다.
어쩌면 사진으로 더 유명한 장소가 바뇨스에 있다.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면 까사델아르볼(La Casa del Arbol)에 갈 수 있다. 스페인어로 까사는 집이고 아르볼은 나무이니까 번역을 하자면 '나무집'정도 되겠다.
나무집이 유명한 이유는 바로 그네 때문이다. 언덕 위에 있는 그네를 타고 뒤에서 사진을 찍으면 마치 공중에서 묘기를 부리는 것처럼 아찔한 장면이 담겨 나온다.
그네를 탈 수 있는 곳은 두 군데가 있다.
둘 다 그네를 타면서 사진 찍기 좋지만 역시 나무집 아래 있는 그네가 더 잘 나온다. 양 옆 기둥이 없는 데다가 절벽에 가까이 있어 사진으로는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놀이'로 보인다.
실제로는 약간 경사진 언덕이라 무섭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로우앵글로 찍으면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그네처럼 보인다. 덕분에 '세상 끝의 그네'라는 별명도 있다.
넓은 공터에는 아담한 규모의 짚라인도 있다.
다만 짚라인을 타게 되면 중간 지점에서 멈추게 된다.
대부분 그네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지만 주변 경치도 제법 괜찮다.
사실 기대했던 것보단 별 게 없지만 단 돈 1달러에 오랫동안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나름 괜찮았다고 볼 수 있다.
그네 사진만 보고 바뇨스를 찾아오는 사람도 있을 정도니까.
사진을 충분히 찍었다고 생각했을 때 내려왔다. 돌아가는 버스가 1시간마다 있었기에 시간을 잘 맞춰야 했다.
디마티아스 호스텔로 숙소를 옮겼다. 여전히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남미에서는 꼭 한국인 여행자들이 몰리는 숙소가 정해져 있다. 바뇨스에서도 그랬는데 다른 숙소는 텅 빈 곳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여기만 한국인들로 북적였다. 우리가 묵고 있던 숙소는 더블룸이었음에도 도미토리인 이 숙소로 전부 옮겨가기로 해서 나도 오게 되었다. 비슷한 가격인데도 말이다. 물론 이곳 주방에는 조리도구가 많아 요리를 하고 함께 먹고 즐기기는 더 좋았다.
바뇨스에서는 액티비티를 하지 않으면 할 게 그리 많지 않다. 래프팅을 비롯해 캐녀닝, 캐노피, 번지점프 등 여러 액티비티를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하긴 했으나 여행 막바지라 생각했던 나는 절약 모드에 들어갔다. 나보다 어린 여자아이들이 여기 번지점프는 엉성한 줄만 묶고 바로 앞에 있는 다리에서 뛰어내리기 때문에 더 스릴 있다는 말에 쫄았던 것도 있다.
시장은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거나 음료를 마시기 좋다.
페루에서만 '꾸이'를 먹는 줄 알았는데 에콰도르에서도 즐겨 먹나 보다. 통구이 된 기니피그를 보면 있던 식욕이 사라지게 된다. 흥미롭긴 하지만 굳이 먹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경험 삼아 먹어봤으면 어땠을까 싶다. 아마 옆에서 가이 먹어보자고 꼬셨으면 먹었을 텐데 혼자라서 구경만 한 것 같다.
관광지답게 어딜 가도 숙소와 기념품 가게를 찾을 수 있다.
한 바뀌 돌아보면 소박한 동네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돼지껍데기에 흥미를 느껴 먹어봤는데 그냥 고무를 씹는 느낌이었다.
저녁에는 폭포 바로 아래 있는 야외 온천에 갔다. 입장료는 3달러였는데 동네 온천이니 특별할 건 없었고, 냉탕과 온탕 그리고 수영장이 있었다. 저녁에는 다 여기로 오는 것인지 꽤 많은 사람들이 온천을 즐기고 있었다. 시설이 좋다거나 온천에 대한 기대는 애초에 하지도 않았고 따뜻한 물에 오랫동안 몸을 담그고 오는 것으로 만족했다.
여행 811일 차, 노트북과 휴대폰이 박살 났다. 이를 어쩐담.
숙소에는 지난번 곱창 먹을 때 만났던 한국인 여행자들도 있었다. 몇 번 지나치며 인사를 했던 게 전부였는데 이날은 앉아서 계속 수다를 떨게 되었다. 나보다 형이었던 찬열이형은 대전에 연고가 있었고, 잠시 뒤에 합류했던 유경누나는 내가 2년 동안 군생활을 했던 강원도 원통 출신이라고 했다. 그 때문인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수다가 이어지게 되었다.
아마도 1년 이상 여행한 장기 여행자, 그리고 비슷한 나이 또래라서 말이 잘 통했나 보다. 우리의 수다는 아침부터 밤까지 지칠 줄 몰랐다.
이제는 익숙해진 바뇨스 밤거리를 걷다 술자리를 이어갔다. 여행하면서 12시간 동안 쉬지 않고 수다가 이어진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수다가 즐거운 사람들을 만났는데 아쉽게도 바뇨스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아침에 배웅 나온 유경누나가 하루만 더 있으라고 했는데 키토에서 만날 친구가 있어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한국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한 뒤 거리로 나섰다. 헤어짐은 일상이지만 또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여행의 매력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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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쿠나마타타 | 2019년 2월 9일 |
버스 창밖으로 계속해서 이어지던 사막이 저녁이 되자 갑자기 거대한 도시로 바뀌었다. 페루의 수도 리마에 대해 아는 것은 하나도 없었으나 확실히 기존에 지나온 곳과 확연히 다른 대도시라고 생각했다. 버스터미널에 내린 후 택시를 타고 한인민박으로 향했다. 보통 한인이 운영하는 숙소를 가지 않지만 어쩌면 택배를 받아야 할 수도 있기에 조금 편한 곳으로 선택했다. 숙소는 리마의 신도시라 할 수 있는 미라플로레스(Miraflores)에 있었다.리마가 대도시이고 처음 도착한 낯선 곳이라 걱정을 했는데 미라플로레스는 깨끗하고 넓어 서울의 어느 대로를 걷는 줄 알았다. 심지어 늦은 밤이었는데도 말이다. 볼리비아와 페루를 지나면서 무너질 것만 같은 집만 보다 멀쩡한 건물을 보니 완전히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았다.리마에서 오래 지낼지도 모른다는 생각하니 첫날부터 늘어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숙소에서 여러 여행자를 만나 같이 돌아다닐 기회가 저절로 생겼다. 미라플로레스에서 걷기도 하고, 오랜만에 한식당에 가서 김치찌개도 먹었다.하루는 숙소에서 만난 한별이형과 동갑내기 미진이랑 구 시가지(Centro Histórico)를 같이 가기로 했다. 내가 지나온 작은 도시들은 대게 중심부에 아르마스광장(Plaza de Armas)이라고 하는 큰 광장이 있고, 여행자들이 머무는 거리 근처에 있었다. 그에 반해 리마는 워낙 큰 도시라 올드타운, 그러니까 구 시가지가 우리가 있던 미라플로레스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었다. 메트로폴리타노라는 BRT를 타고 무려 1시간이나 걸렸다.리마도 역시 끔찍한 교통난을 겪고 있는지 콩나물시루처럼 빼곡한 사람들 틈에 끼어서 갔다. 1시간 동안 매달려 메트로폴리타노를 타는 것으로도 피로감이 느껴졌다. 구 시가지에 도착한 후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을 때 가장 반가웠던 건 상쾌한 공기였다.구 시가지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아르마스 광장(마요르 광장으로도 불린다)으로 향했다.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아르마스 광장에는 중요한 건물이나 큰 교회가 자리 잡고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역시 리마 대성당이다. 성당으로 가는 계단 위에서 사진을 찍고 있을 때 어느 아저씨는 우리를 보더니 웃으며 반갑다고 인사를 건넸다. 성당 내부를 들어가는 건 입장료가 있어 당연하게도 지나쳤다.넓은 광장 중앙에는 원래 스페인의 침략자 피사로의 동상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허물고 잉카를 상징하는 콘도르나 퓨마가 물을 뿜고 있는 작은 분수가 있다. 광장의 정면에는 대통령궁이 있다. 시간을 잘 맞춰 가면 대통령궁 경비원들의 교대식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사실 경비원들의 교대식이 있는 줄도 몰랐지만 만약 알았더라도 딱히 시간에 맞춰 올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 같다.구 시가지는 스페인 식민시대의 건물이 다수 남아있다. 원래 리마는 잉카의 해안 마을에 불과했다. 잉카를 침략하고 정복한 피사로가 본국인 스페인과 연락 및 무역을 위해 세운 도시가 바로 리마다. 잉카제국의 도시는 대부분 안데스 산맥에 위치하고 있어 더 발전하기 어려운 반면, 리마는 해안이라는 이점을 바탕으로 페루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로 더 발전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인구 800만 명이 넘는 남미에서 손꼽히는 대도시다. 구 시가지의 문에는 하얀 점선으로 표시를 했는데 이는 이곳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자료라고 한다. 오래된 집이니 계속해서 덧칠을 하고, 또 덧칠을 해서 여러 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구 시가지 주변을 이곳저곳 둘러봤다. 차가 다니지 않는 널찍한 골목길을 걷어보고 어느 이름 모를 작은 도서관에 들어가기도 했다. 음침하고 복잡하기만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여행자를 반기는 구 시가지의 매력이다. 우연히 볼리비아 데스로드 투어를 같이 했던 네덜란드 커플을 만났다. 비슷한 루트로 여행하다 보면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길에서 우연히 만나면 반가울 수밖에 없다. 얼떨결에 안부 인사를 하고 헤어졌는데 생각해 보니 그들의 이름도 몰랐다. 잠깐의 휴식은 달콤하다. 카페 야외 테이블에 걸터앉아 카푸치노를 한 모금 마시고, 주변을 살폈다. 세련된 카페에 외국인 손님이 앉아 있는 모습은 이곳에서 그리 눈에 띄는 풍경은 아니었다.리마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분수공원(Parque de la Reserva)이 있다. 구 시가지에서 조금 떨어져 있긴 하지만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다.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분수공원 근처는 굉장히 어두컴컴했다. 근처에 축구 경기장이 있는데도 조명은 별로 없고, 입구는 잘 보이지 않았다. 분위기를 대변하듯 마침 지나가던 사람은 우리에게 조심하라는 말을 전했다. 실제로 많은 여행자들이 이곳을 찾을 때는 택시를 추천한다. 잠깐 더 걸으니 알록달록한 화단과 조명이 반전을 만들어냈다. 분수공원 근처는 이렇게나 화려하고 밝았다. 입장료는 고작 4솔로 약 1,200원 정도였다.분수공원을 들어가자마자 거대한 물기둥이 우리를 반겼다. 물론 저녁에도 시원한 분수를 볼 수 있지만, 아무래도 조명과 함께 어우러지는 분수쇼는 밤에만 가능하기 때문에 어두워진 뒤에 오는 편이 좋다.막상 들어와 보니 공원의 규모에 놀랐다. 총 13개의 분수가 각기 다른 모양의 물줄기를 뿜어내고 있는데 실제로 리마의 분수공원은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커서 기네스북에도 등재되었다고 한다.가족 단위로 나온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며 구경하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색깔의 물줄기가 여기저기서 뿜어져 나온다. 큰 기대를 했던 곳은 아닌데 생각했던 것보다 볼거리가 정말 많았다.입구 근처에 있는 이 분수가 가장 높이 올라가는 듯 하다. 언뜻 봐도 10m 이상 올라가는 것 같다.우리는 중앙에 있는 분수대 앞에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 미리 중앙에 있는 분수대에서는 저녁 7시 15분, 8시 15분, 9시 30분에 분수쇼를 한다고 들었다. 알록달록 분수가 올랐다가 시간이 되자 분수의 물줄기를 스크린으로 삼아 영상과 레이저를 쏘기 시작했다. 번쩍이며 순식간에 지나가지만 주로 페루의 역사나 문화를 아름답고 입체감 있게 보여줬다. 화려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정도였다.분수쇼를 보고 난 후 다시 다른 분수대를 향해 이동했다. 여러 개의 층을 이루며 솟아 오르는 분수가 인상적이었다.분수공원은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다리 아래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가면 작은 또 하나의 공원이 나오는데 여기에도 여러 모양의 분수가 있다.가장 인기가 많았던 분수. 사람들은 분수 아래에서 걷고, 사진을 찍고 즐거워했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촬영하는 커플도 보였다.입장료가 4솔이 아니라 20솔이었어도 전혀 아깝지 않았을 공원이었다. 다양한 종류의 분수가 있어 볼거리도 풍부했다.며칠 뒤 한별이형과 다시 구 시가지로 나왔다. 남미를 여행하다 보면 도시 전체를 내려다 보는 전망대를 쉽게 찾을 수 있는데 대부분 '산크리스토발'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리마도 마찬가지다. 다만 리마의 산크리스토발은 걸어서는 가기 어렵고 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버스표는 아르마스 광장에서 안내판을 들고 있던 아주머니로부터 구입했다.산크리스토발로 가는 버스는 다른 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티투어버스와 비슷했다. 2층으로 올라가면 주변 경치를 감상하거나 사진 찍기 좋다.구 시가지에서도 저 멀리 산크리스토발이 보인다.산크리스토발에에 올라 가는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2층 버스 위에서 보는 구 시가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우리를 태운 버스는 구 시가지를 여러 번 돌더니 이제 도심 밖으로 달리기 시작했다.구 시가지를 벗어났을 뿐인데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얼기설기 대충 지어진 집들이 빼곡했다. 벽돌과 슬레이트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한눈에 봐도 빈민촌임을 느낄 수 있었다. 남미 대부분의 나라가 마찬가지지만 리마 역시 극심한 빈부격차가 존재한다. 돈을 벌기 위해 리마로 몰려든 사람들은 점점 불어나 800만(통계에 따라 1,000만이 넘기도 한다)이 넘는 대도시가 되었으니 잘 사는 지역과 못 사는 지역이 극명하게 나뉘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그런데 시에서는 빈민촌의 사람들과 섞이는 것이 싫었는지 아예 구역을 나누는 벽을 세웠다. 때문에 같은 리마에 살고 있는 사람도 벽 너머로 가라면 한참 돌아 가야 한다. 누구는 돈이 있고 없음으로 사람을 갈라 놓은 이 벽을 가리켜 '수치의 벽'이라고 부른다.여기선 오토바이를 개조해서 만든 뚝뚝이 일반적인 대중교통인가 보다.본격적으로 좁은 도로를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산크리스토발 아래 어지럽게 늘어선 전선과 벽돌 사이로 관광객을 태운 버스가 지난다. 구불구불 이어진 좁은 도로를 달리는 버스는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는 듯 했다. 2층 버스 위에 있으니 더 아찔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산크리스토발 정상이 보였다. 다른 도시의 산크리스토발에는 보통 예수상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는 커다란 십자가가 있었다. 정상에 도착한 후에는 버스에 내려 잠깐의 시간을 준다. 볼거리가 많지는 않지만 리마를 내려다 볼 수 있다.안타깝게도 리마의 하늘은 회색빛이었다. 날씨가 안 좋아서인지 아니면 스모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빌딩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뿌연 전경이었다. 반대쪽도 볼 수 있는데 이쪽 방향은 하늘이 깨끗했다. 산크리스토발에 올라 리마 시내를 여유롭게 구경하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만 그보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현직 대통령 탄핵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었다. 비록 세계일주를 하고 있는 중이었지만 가만히 변화를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어 페루에서 이렇게 참여를 했다. 나 역시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었다. 결국 리마에서 택배를 받지 못하고 어영부영 시간만 보내게 됐다. 장기 여행을 하다 보면 이렇게 허무하게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할지, 여행은 어떻게 해야 할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때였다. 하루는 한별이형과 리마 외곽에 있는 파차카막 발물관(Museo de Pachacamac)을 가보기로 했다. 사실 난 아예 모르고 있었는데 한별이형이 리마에서 가볼 만한 박물관이라고 꼬셔서 얼떨결에 따라가게 되었다. 파차카막 박물관은 리마에서 약 30km 떨어진 곳에 있기 때문에 대중교통으로 가려면 여러 번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완전한 사막이었다. 리마 시내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문명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황량함이 가득하다. 하지만 이곳에는 과거 문명이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파차카막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당시에 사용했던 유물을 관람할 수 있다. 전시관은 그리 크지 않다.우스꽝스러운 가면이 있다.전시관을 나서면 복원된 것으로 보이는 유적지가 보인다.흔히 페루하면 잉카의 유적지만 떠올리는데 당연히 여러 문명이 존재했다. 파차카막 역시 잉카와는 별개의 문명으로 1,300년간 존재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잉카인들은 이곳을 신성한 곳이라 여겨 태양신을 섬기는 피마미드를 세웠다.유적지는 굉장히 넓다. 하지만 유적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어 어떤 곳인지 알 수 없다.거대한 피라미드를 향해 올라갔다. 이렇게 건조한 땅 위에 1,300년 동안 문명이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아쉽게도 내부로 출입은 금지되어 있다. 주변을 크게 한 바퀴 돌아볼 수만 있다.태평양으로 향하는 바다가 보인다. 바다가 이렇게 가깝다.작은 길을 따라 걷기만 하면 되는데 표지판도 없고, 날씨는 더워 지친다. 따가운 햇빛을 가려줄 어떤 공간도 없다. 내가 피스코에서 봤던 탐보콜로라도와 비슷한 형식인지 피라미드는 흙벽돌로 만들어졌다. 허물어진 벽면이 세월의 흔적을 대신 말해준다. 피라미드 정상에서는 황량한 사막과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유적지는 굉장히 거대하지만 역사적으로 어떤 가치가 있는지 정확히 모른다. 복구가 많이 필요해 보인다. 진흙을 구워 만든 벽돌을 촘촘히 쌓아 올려 만들었다. 파차카막에서는 이런 흙벽돌이 5천만 개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멀리서 보였던 마을은 경계선이 분명했다. 보통 마을은 어느 지점이 끝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계속 이어지곤 하는데 여기는 케이크를 자른 단면처럼 너무 정확하게 경계선이 있었다. 사실 난 뙤약볕에서 봤던 서로 비슷했던 파차카막 유적보다 나가기 직전에 본 야마에 더 관심이 갔는지도 모르겠다.리마에서 머무는 동안 놀라운 일이 있었다.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을 보고 자신도 지금 리마에 있다고 당장 만나자는 친구가 있었으니 캐나다인 마이키였다. 마이키는 여행 8개월 차에 코소보에서 아주 잠깐, 정말 딱 하루 만나고 헤어졌던 여행자였다. 나는 중동과 아프리카, 마이키는 유럽과 북미를 여행하다 남미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었다. 서로 연락도 없이 여행하다 우연히 같은 나라, 같은 도시에서 만나게 될 확률이 얼마나 될까?밖으로 나가 마이키와 맥주라도 한 잔 할까 생각했는데 숙소에서 초대해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해서 불렀다. 다시 만난 마이키는 나를 보자 정말 반가워했다. 코소보에서 몇 날 며칠을 여행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여행은 인연을 더욱 끈끈하게 만들어준다. 마이키는 캐나다인이었지만 어머니가 한국 사람이라 매콤한 부대찌개도 잘 먹었다. 우리는 맥주를 계속해서 마시며 쉴 새 없는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리마 구 시가지와 완전히 다른 분위기인 미라플로레스는 걷기 무척 좋은 지역이다. 해안을 따라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고, 깨끗한 데다가 공원도 몇 개 있다. 뭔가 어울리지 않지만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사람이 정말 많다.세련된 고층 빌딩과 쇼핑몰, 절벽 아래는 도로가 길게 이어져 있다. 걷다가 바다를 내려다 봤을 때 새까만 무언가 둥둥 떠다니길래 처음에는 물개인 줄 알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전부 서핑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었다.해안을 따라 계속 걷다 보면 사랑의공원이 나온다. 이름만이 아닌 듯 유난히 이곳에는 커플이 많았다.사진을 찍으며 공원을 둘러보고 있을 때 마침 사랑 고백하는 이벤트가 바로 앞에서 벌어졌다. 분위기로는 청혼인 것 같았다.여행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일몰을 봤는지 모르겠지만 해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모습은 언제 봐도 신비롭다. 감상에 빠지기 딱 좋은 시간이다.숙소에서 키우고 있던 작은 고양이의 이름은 '꾸이'였다. 꾸이는 페루에서 즐겨 먹는 기니피그 요리인데 귀여운 고양이에게 붙이면 이상할 법한 이름이지만 이상하게 잘 어울렸다.여행은 800일이 넘어가고 있었다.숙소에서 만났던 다른 한국인 여행자 충희, 그리고 이제 막 도착해 정신이 없었던 혜영, 혜민이와 함께 마이키를 만나러 바랑코(Barranco)에 갔다. 바랑코는 미라플로에서의 남쪽에 위치한 지역으로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저렴한 숙소가 꽤 있어 이곳 역시 배낭여행자가 찾아 온다. 미라플로레스에서 그리 멀지 않다고 생각돼 걸어갔다. 우리는 페루식 염통꼬치인 안티쿠쵸를 먹어보기로 했다. 일단 어두워지기 전 바랑코를 한 바퀴 돌아봤다. 확실히 깨끗하고 현대적이었던 미라플로레스와 비교해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오래된 건물이 많이 보이고, 벽면에는 흥미로운 벽화가 가득했다.오늘도 일몰을 보기 위해 바다로 나갔다. 육교를 건넌 후 모래사장에서 해가 떨어지기를 기다렸다.다시 지평선을 붉게 물들였다. 어제보다 더 아름다운 일몰이었다.드디어 안티쿠쵸 만났다. 안티쿠쵸는 소의 염통(심장)으로 만드는데 흔하게 볼 수 있는 요리라고 한다. 그런데 페루를 여행하는 동안 세비체나 치파(페루식 중국 요리)는 무수히 많이 먹었어도 안티쿠쵸를 먹을 기회는 없었다. 마침 바랑코에 안티쿠쵸를 파는 전문 식당이 몇 군데 있다고 들어 같이 가보게 된 것이다. 맛은 기대했던 정도는 아닌 것 같다. 갑자기 만나게 된 여러 사람들과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이렇게 여러 사람들과 어울린 것도 쿠스코 이후 오랜만인 것 같다. zoomtr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