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 11일에 자살테러범들에게 납치된 미국 여객기는 모두 4대로, 뉴욕시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에 2대 및 워싱턴DC 인근 미국방부 청사 펜타곤에 1대가 각각 충돌했고, 나머지 1대는 승객들의 영웅적인 저항으로 펜실베이니아 주의 외딴 섕크스빌 벌판에 추락했다. 그 중에 이미 잠깐 보여드린 적이 있는 뉴욕 9/11 Memorial & Museum은 맨하탄 다운타운 관광지에 있어서 대부분 아시고 방문한 사람들도 많지만, 이제 소개하는 펜타곤 메모리얼(Pentagon Memorial)은 관광객들이 일부러 찾아갈 이유는 별로 없는 곳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 '별볼일 없는' 곳들 시리즈로 위기주부가 한 번 찾아가보기로 했다~ 정면의 '육군해군 도로(Army Navy Dr)' 표지판 아래 보이는 벽같은 것은 버지니아와 DC의 남쪽을 연결하는 395번 고속도로로 진출입로를 모두 포함하면 왕복 20차선쯤 된다. 횡단보도를 따라가서 그 아래를 보행자 터널로 지나가게 되는데, 그 길이가 무려 550피트(약 170m)나 된다.
터널을 빠져나온 위치의 구글 스트리트뷰로 펜타곤 메모리얼로 가는 방향 표지판 아래에 사진촬영 금지와 드론 금지 표시가 보인다. 아무래도 저 정면에 보이는 펜타곤 청사의 오각형 모습과 메모리얼의 위치 등을 위성사진으로 보여드리는게 좋을 듯 해서 아래 사진을 가져왔다.
파란선으로 표시된 Pentagon Memorial 바닥의 흰색 사선 방향으로, 인근 덜레스 공항을 출발해 LA로 향하던 아메리칸 항공 77편이 U턴을 해와서 건물 서쪽면에 충돌했던 것이다. 찾아가는 가장 편리한 방법은 건물 동쪽의 지하철 Pentagon Metro 역에서 내리는 것이고, 위기주부처럼 차를 가지고 왔다면, 고속도로 남쪽의 펜타곤 시티에 주차하면 되는데, 패션센터(Fashion Centre)의 주차타워는 무조건 요금을 받기 때문에, 그 서쪽의 Pentagon Row 쇼핑몰의 1시간 무료주차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방향 안내판을 따라 많은 순찰차들을 지나서 펜타곤 메모리얼(Pentagon Memorial)에 도착을 했는데, 여기는 주변 주차장과 지하철 역까지 포함한 넒은 펜타곤 영내에서 유일하게 사진촬영이 가능한 곳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테러범 5명을 제외한 희생자 184명의 이름이 알파벳 순서로 적혀 있는데, AA 77편 탑승객이 59명이고 펜타곤 건물에 있던 사람이 125명이다. 그 앞에는 추모를 의미하는 흑백의 성조기 3개가 꽂혀 있는데, 각각 가운데의 빨간선은 소방대원, 녹색선은 연방 공무원 또는 군인, 그리고 파란선은 경찰관을 상징한다.
건물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추모 정원이 시작되는 경계에 "SEPTEMBER 11, 2001 9:37 AM"로 비행기가 충돌한 일시가 바닥에 새겨져 있고, 그 안쪽으로 184명의 희생자를 기리는 184개의 벤치가 출생연도 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땅과 부드럽게 연결되어 있는 벤치의 끝에는 사망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아래 작은 연못은 계속 물결이 일면서 조금씩 흐르도록 만들어졌단다. 이 벤치 위에는 작은 레고와 장난감이 놓여져 있는데, 비행기에 탑승했던 어린이의 추모비이기 때문이다...
벤치의 끝이 건물쪽을 향하는 것은 비행기 탑승객, 반대쪽을 향하는 것은 펜타곤 상주자의 추모비에 해당한다.
겨울이라 나뭇잎도 다 떨어지고, 다른 방문객도 없어서 추모 공간이 더욱 적막했었다. 그러다 갑자기 헬기 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들어보니,
여기가 국방부 청사 아니랄까봐, 좌우로 로켓 발사기를 단 공격용 헬리콥터 한 대가 저공비행으로 북쪽으로 날아갔다.
정원을 거의 한바퀴 돌아서 다시 출생연도 줄들의 가운데로 왔는데, 여기쯤에서 비행기가 전속력으로 정면에 보이는 펜타곤 건물의 1층과 2층 사이에 충돌을 했었다고 한다.
사진에 보이는 부분이 1년만에 재건설된 충돌지점으로 매년 9/11 전후로는 대형 성조기가 드리워지고, 좌우로는 푸른색 조명이 건물 서쪽면을 비춘다. 큰 의미는 없지만 특이한 사실로는 펜타곤이 공식적으로 착공식이 열렸던 날짜가 1941년 9월 11일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현재로는 184개의 벤치가 전부인 곳이라서, 이것으로 펜타곤 메모리얼 둘러보기는 끝이다. 참고로 벤치 아래 각각의 연못에 조명이 설치되어 있어서 밤에 찍은 사진들을 보면 훨씬 멋있다. 물론 추모 공간의 사진을 멋있다고 하는게, 좀 실례가 되는 것 같기는 하지만 말이다...
추모 재단 홈페이지에 따르면 철조망 너머의 Washington Blvd 건너편에 비지터센터를 건설해 여기와 연결시키는 것이 추진되고 있단다. 뉴욕 맨하탄 사고 장소는 2014년부터 박물관이 운영되고 있고, 영화 <플라이트 93>으로도 제작된 유나이티드 93편의 펜실베니아 주 추락 지점은 이듬해 Flight 93 National Memorial로 지정되어 2011년에 비지터센터가 만들어져서, 3곳 중에 펜타곤만 기념관이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 보너스로 사진의 교통표지판 뒤로 날카로운 3개의 구조물이 솟아있는 것에 대해 설명드리고 끝낸다.
비교적 최근인 2006년에 만들어진 미공군 기념물(United States Air Force Memorial)은 최고 높이 82 m의 3개의 스테인레스 첨탑으로 세워졌는데, 곡예비행팀 썬더버드(Thunderbirds) 전투기 3대가 "bomb burst" 모드로 비행하는 것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이 날의 원래 계획은 여기도 직접 방문하려고 했었지만, 이 직전에 방문했던 국립사적지에서 1시간 동안이나 황제투어를 하는 바람에 시간이 없어 건너뛰었기 때문에 위키에서 가져온 사진 1장으로 대신한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미국의 제34대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기념해서 약 2년전인 2020년 9월 17일에 개관한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메모리얼(Dwight D. Eisenhower Memorial)은 워싱턴DC의 내셔널몰 지역에 만들어진 가장 최신의 국가기념물(National Memorial)이다. LA의 유명한 디즈니홀(Disney Hall) 등을 설계한 세계적 건축가인 프랭크 게리(Frank Gehry가 디자인을 했지만, 기념관 건물이라기 보다는 현대적 조형물이 있는 도심공원에 가까운 모습이다.
DC의 국립항공우주박물관이 외부공사를 하는 모습인데, 2018년부터 무려 10억불을 들여서 모든 전시와 건물을 리모델링하는 것을 마치고, 올가을에 마침내 재개장을 한단다. 옛날 모습에서 어떻게 바뀌었는지 몇 달 후에 방문해보기로 하고, 이제부터 간단히 소개할 아이젠하워 기념관은 이 건물에서 Independence Ave를 건넌 남쪽에 자리잡고 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여기가 미국 대통령 기념관 맞아?" 공원간판도 없는 입구에서는 커다란 대리석 기둥과 함께, 등을 돌리고 쭈그려 앉아있는 소년의 동상만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캔사스 주의 애빌린(Abilene)이라는 시골 마을에서 목장일을 도우며 자란 소년이, 차례로 미국의 오성장군과 대통령이 된 미래의 자신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뒤로 아이스크림을 파는 푸드트럭이 보이는데, 이 날은 7월4일 독립기념일 불꽃놀이가 있어서 내셔널몰 교통이 모두 통제되었기 때문에, 여기 지하철역 부근에서 장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 서쪽 기둥에는 오성장군의 표식과 함께 그가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연합군 최고사령관이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기념관 중앙의 넓은 대리석 바닥에는 좌우로 두 개의 인물 조각들이 만들어져 있는 것이 전부인 단순한 구조이다.
뒷 배경이 되는 반투명 철판의 아래에서 겨우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라고 커다랗게 조각된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리 부부 빼고는 지금 그늘에서 쉬고있는 가족이 유일한 방문객이었고, 국립공원청 직원도 퇴근을 했는지 보이지가 않았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일인 1944년 6월 6일 아침에, 곧 낙하산을 타고 독일군이 점령한 땅에 뛰어내려야 하는 미군 101공수사단의 병사들에게 작전을 지시하는 모습이라고 한다. 전쟁이 끝난 후에 차례로 육군참모총장, 컬럼비아대학교 총장, NATO군 최고사령관을 거쳐서, 1952년말에 공화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된다.
두번째 인물 조각은 미국의 제34대 대통령으로 1953~1961년 연임한 것을 나타낸다. 사모님이 조각의 기단에 앉아서 잠시 포즈를 취해 주기는 했지만, 7월의 햇살에 달궈진 대리석 바닥에 오래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동쪽 입구에는 대통령 재임기간을 표시한 다른 기둥이 하나 더 서있고, 사진 오른쪽의 나무 뒤로 작은 비지터센터가 만들어져 있지만 너무 더워서 저기까지 가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중에 기둥 뒤로 보이는 스미소니언 인디언박물관과 그 너머 국립식물원 등을 구경할 때, 비지터센터는 들러보기로 하고 그냥 돌아섰다.
아이젠하워 기념관의 가장 큰 특징은 배경을 이루고 있는 이 금속으로 만든 '걸개그림' 태피스트리(Tapestry)이다. 전체 길이가 동서로 136미터에 높이가 6미터나 되는 스테인레스 철망에 철사로 수를 놓아서 그린 그림은 노르망디 해안의 평화로운 모습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한다. 제작 당시에 바로 뒤에 보이는 미국 교육부 건물에서 잠시 항의를 받기도 했으며, 밤에 조명이 들어왔을 때 보면 아주 멋지다고 한다. 하지만 이 날은 햇살이 너무 뜨겁고 눈부셔서 자세히 구경을 할 수가 없었는데다, 갑자기 도로쪽에서 큰 소음이 들려왔다.
독립기념일에 인디펜던스 길로 오토바이와 사륜차를 탄 사람들이 엔진소리를 내며 단체로 지나가는 것이었다. 옛날에 삼일절이나 광복절에 폭주족들이 떼로 몰려다니던 것이 떠올랐는데, 한국이나 미국이나 사람들 생각이나 행동은 다 거기서 거긴가 보다~
그래도 이렇게 앞바퀴를 들고 지나가는 것을 보니, 시끄럽기는 했지만 잠시 구경거리는 되었다.^^ 여기가 내셔널몰 남쪽 경계라서 좀 외진 곳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경비가 삼엄한 동네에서 저러고 다녀도 괜찮을까? 뭐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집에서 지하철을 타고 와서 3곳이나 잠깐씩 구경을 모두 마쳤다. 이제 다시 '국립잔디밭'으로 돌아가서 저녁 도시락을 먹은 후에 DC의 불꽃놀이를 구경했던 것도 이미 소개해드렸고, 이것으로 지난 7월의 이야기는 모두 끝났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워싱턴DC의 유명한 봄행사인 벚꽃축제 기간을 위해서 아껴두었던 내셔널몰 남쪽의 인공호수인 타이들 베이슨(Tidal Basin)에 있는 3개의 국가기념물(National Memorial)들을 둘러본 두번째 이야기이다. 1부에서는 벚꽃축제에 대한 안내와 함께 제퍼슨 기념관을 보여드렸었고 (포스팅을 보시려면 클릭), 2부에서는 남은 2개의 기념물들을 묶어서 소개해드린다. 이렇게 3개의 내셔널메모리얼이 위기주부의 방문리스트에 추가되면서, 현재 423개인 국립공원청이 관리하는 NPS Official Units 중에서 대략 100곳 이상을 방문한 것이 되었다.
벚꽃향을 맡으며 타이달베이슨 호수를 시계방향으로 절반을 넘게 돌았을 때 프랭클린 델라노 루스벨트 메모리얼(Franklin Delano Roosevelt Memorial) 안내판이 나왔다. 흔히 줄여서 'FDR'이라 많이 부르는 제32대 루스벨트 대통령을 국가적으로 기념하는 장소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그 전에 오른편 끝에 살짝 보이는 석탑에 대해 먼저 알아보면,
내셔널몰의 벚나무는 1912년에 일본 도쿄 시장이 워싱턴 시에 기증한 것에서 시작되었는데, 그 후로 1930년대까지 일본이 지속적으로 묘목을 공급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41년 진주만 폭격에 화난 사람들이 벚나무 몇 그루를 베어버리기도 했지만, 전후에도 다시 일본이 적극적으로 이 곳의 벚나무와 벚꽃축제에 지원을 하게 되는데, 이 석탑도 요코하마 시장이 1958년에 워싱턴 시에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루스벨트 기념관의 출구에 해당하는 석벽의 제일 아래에 '1933-1945'라고 씌여있는데, 그는 4번이나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어서 12년 이상을 재임한 전무후무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초대 워싱턴 이후로 대통령은 2번을 당선된 이후에는 다시 출마하지 않는 불문율이 있었지만, 루스벨트는 이를 무시하고 4선까지 한 것이다. 그의 사후에 대통령의 3회 이상 중임을 제한하는 수정헌법 22조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사실상 그의 재임기록은 앞으로도 깨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기념관이라고 해서 링컨이나 제퍼슨 메모리얼처럼 거대한 기둥의 건물이 있는 것이 아니라, 넓은 면적에 벚나무와 어우러지도록 자연석과 조각상들로 멋진 산책로를 만들어 놓은 느낌이었다. 기념관은 그의 4번의 임기를 상징하는 4개의 공간이 차례로 만들어져 있는데, 우리가 출구쪽에서 들어온 바람에 그냥 역순으로 소개를 한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사진에 인력거와 유모차가 보이는 것에 알 수 있듯이 모든 경로가 평지에 만들어져 있는데, 루스벨트가 39세의 나이에 소아마비에 걸려서 휠체어에 의지하는 장애인으로 대통령이 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설계를 했다고 한다.
무려 4선을 했음에도 재임기간이 16년이 아닌 이유는 1945년 3월에 4번째 취임을 하고 1달여만에 뇌출혈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오른편에 아내가 보고있는 부조는 국장행렬을 나타낸 것이고, 왼편의 동상은 아내인 엘리너 루스벨트(Eleanor Roosevelt)로 남편 사후에도 유엔 인권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세계인권선언>을 기초하고 채택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회운동가로 미국 역사상 최고의 영부인으로 평가를 받는단다.
2차 세계대전과 정확히 겹치는 1941~1945년의 재임 3기 전시장에, 이 메모리얼을 대표하는 망토를 걸치고 앉아있는 그의 동상이 있는데, 그의 애완견 팔라(Fala)가 함께 만들어져 있다. 공식행사에도 항상 데리고 다녔다는 팔라는 미국의 약 30개의 국가기념물에 있는 유일한 개의 동상이며, 나중에 12살의 나이로 죽어서도 루스벨트 부부의 묘지 옆에 묻혔다고 한다.
전쟁과 대공황이라는 큰 국가적 어려움이 있는 시기였다고는 해도, 전례없던 3선 또 4선 출마는 정말로 '구국의 일념'이고 개인적인 욕심은 없었을까? 만약 63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뇌출혈로 사망하지 않고 4번째 임기를 다 채웠다면 또 어떻게 되었을까? 반짝반짝하는 그의 검지 손가락을 잡고 사진을 찍으면서 그런 생각들이 들었었다~
루스벨트는 1930년대에 대공황 극복을 위한 뉴딜(New Deal) 정책을 추진한 것으로 유명한데, 그 중에는 미국 전역의 국립공원들을 돌아다니면 항상 그 흔적을 만날 수 있는 CCC(Civilian Conservation Corps)를 만든 사람이라는 것이 위기주부에게는 직접적으로 와닿는다.
1929년에 시작된 대공황의 침체기에 그의 첫번째 1933~1937년의 임기가 시작되었는데, 빵을 받기 위해 배급소에 줄을 선 사람들의 동상 등이 만들어져 있었다. 취임 후에 그는 국민들을 상대로 '노변정담(爐邊情談, Fireside chat)'이라 불린 친근한 라디오 연설로 뉴딜정책에 동의를 구했는데, 그래서 라디오를 듣고 있는 가족의 동상도 옆에 만들어져 있다.
갑자기 그 많던 상춘객들은 다 어디가고,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아낙네가 나타났다가 벽 뒤로 사라졌다...
다행히 헛것을 본 게 아니고, 벚꽃과 기념물을 배경으로 웨딩촬영을 하는 커플이었다~^^ 그 뒤쪽 벽에는 루스벨트가 첫번째 취임사에서 했다는 말인 "우리가 유일하게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두려움 그 자체(The only thing we have to fear is fear itself)"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
입구에는 루스벨트가 휠체어에 앉아있는 동상이 따로 만들어져 있는데, 1997년에 이 기념관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없던 동상이다. 장애인 단체 등에서 그가 실제로 휠체어 생활을 했다는 사실을 그대로 알릴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받아들여서 2001년에 추가로 설치된 것이라 한다. 마지막으로 이 기념물에는 원래 벽쪽으로 작은 폭포같은 물이 흐르도록 설계가 되었지만, 쌀쌀한 날씨 때문인지 물은 모두 잠궈놓은 상태였다. 언제 여름철에 다시 방문하게 되면 비지터센터에 들러서 브로셔도 얻고, 그 폭포들에 담긴 의미도 다시 알려드려야 겠다.
큰 길로 나오니까 국립공원청이 주관하는 국립벚꽃축제(National Cherry Blossom Festival)의 무대가 일본 항공사의 후원으로 만들어져 있고, 도로에는 여러 부스들이 만들어져 있었지만 평일 저녁에는 장사를 안 하는지 모두 문을 닫은 상태였다.
작년에 대륙횡단 자동차여행을 하면서 테네시 주의 멤피스(Memphis)에서 마틴루터킹이 암살당한 장소를 방문했었는데 (여행기를 보시려면 클릭), 흑인 민권운동가인 그를 국가적으로 추모하는 마틴 루터 킹 메모리얼(Martin Luther King, Jr. Memorial)이 마지막 방문지였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벚꽃에 둘러싸인 광장에 MLK의 석상이 미완의 모습으로 세워져 있는데, 그 옆면에 이 사진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Out of the Mountain of Despair, a Stone of Hope"라고 새겨져 있다. 이 말은 그가 1963년에 여기서 조금 북쪽에 있는 링컨 기념관의 계단에서 했던 유명한 <I Have a Dream> 연설의 말미에 나왔던 문구로,
기념물을 정면에서 보면 이렇게 뒤쪽의 '절망의 산(Mountain of Despair)'에서, 마틴루터킹의 석상으로 상징되는 '희망의 돌(Stone of Hope)'이 잘려져 나온 것을 알 수 있다. 또 석상이 완전히 다 깍여져 나온 완성된 모습이 아닌 것은, 아마도 그의 민권운동이 아직도 미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않나 생각된다.
이 동상은 2011년에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가 참석한 가운데 제막되었는데, 제작 당시에 흑인을 하얀 대리석으로 조각하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완성된 후에는 팔짱을 끼고 있는 그의 모습과 얼굴 표정이 너무 완고한 이미지를 풍긴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어찌되었건 워싱턴 내셔널몰(National Mall)에 세워진 최초의 흑인 동상이며, 대통령이 아니었던 사람으로는 4번째 기념물이라 한다.
이렇게 타이들 베이슨(Tidal Basin) 주변의 국가기념물 3곳의 구경을 마치고는, 다시 호숫가로 나와서 벚꽃구경을 했다.
아내가 찍은 짧은 동영상을 클릭해서 보시면, 멀리 호수 건너편의 토마스제퍼슨 메모리얼을 중심으로 걸어왔던 호숫가 풍경과 함께, 포토맥 강가의 레이건 국제공항으로 착륙하는 비행기도 보실 수 있다.
물가쪽으로 축축 늘어진 나뭇가지에도 하얀 벚꽃들이 가득해서, 이렇게 화면에 벚꽃을 꽉꽉 채워서 셀카를 찍을 수가 있는데,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빈 틈을 잘 노려야 했다.
이 근처에 1912년에 최초로 심은 벚나무도 있고, 또 일본에서 기증한 석등도 세워져 있는데다, 잔디밭도 비교적 넓게 만들어져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아예 자리를 깔고 앉아 있는 모습도 많이 보였다.
내셔널몰 남쪽의 Independence Ave가 지나는 Kutz Memorial Bridge를 걸어서 건너 워싱턴 기념탑쪽으로 돌아갈 때는 저녁 7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이었는데도 이제 벚꽃을 구경하러 걸어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서쪽으로 석양을 돌아보면서 해가 지고 저 가로등에 불이 들어올 때까지 있다가 갈까라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주중이고 내일 또 출근하셔야 해서 그만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주차한 곳으로 걸어가면서 내년에는 꼭 DSLR 카메라를 챙겨서 도시락과 돗자리도 들고, 지하철을 타고 다시 와서 반시계 방향으로 돌와봐야 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부산에서 20년 가까이 또 서울과 수도권에서 15년을 넘게 살았으면서, 진해 군항제니 여의도 윤중로니 하는 벚꽃축제 구경을 하러 한 번도 못 가봤던 위기주부... 그런데, 생애 첫 벚꽃구경 나들이를 미국의 수도 워싱턴DC에서 하게 될 줄을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지난 주에 봄방학을 맞아서 집에 왔던 딸과 함께 갔을 때만 해도 거의 피지 않아 오는 주말에나 구경을 가려고 했었는데, 월요일 저녁 뉴스에서 벚꽃이 지금 절정인데 주중에 비가 오고 주말에는 기온이 다시 내려간다고 해서, 바로 다음날 김밥을 사들고는 퇴근하는 아내를 픽업해서 차를 몰고 내셔널몰로 향했다.
차창 밖 워싱턴 기념탑 오른편에 만개한 벚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내셔널몰 북쪽의 큰 도로인 Independence Ave가 왠일로 공간이 많이 비어서 주차를 하려다 보니, 주말과는 달리 평일 출퇴근 시간은 주정차가 금지였다. 오후 4시가 막 지났는데 단속요원이 나와서 아직 빼지 않은 차들에 줄줄이 딱지를 떼고 있었으니까, 혹시 평일에 차를 몰고 내셔널몰에 가시는 분들은 출퇴근시간 주차금지 구역은 아닌지 꼭 확인하시기 바란다.
워싱턴 벚꽃축제의 공식명칭인 내셔널 체리블라섬 페스티벌(National Cherry Blossom Festival)을 주관하고 공식적인 개화시기도 알려주는 국립공원청에서 만든 내셔널몰 부근의 '벚꽃지도'에서 중요한 부분만 잘라왔다. 우리는 평일에도 상시 주차가 가능한 지도 오른편의 Jefferson Drive에 차를 대고는, 포토맥 강물을 끌어들여서 만든 인공호수인 타이들 베이슨(Tidal Basin)을 시계방향으로 한바퀴 돌면서 벚꽃구경을 했다. 그 호수 주변으로는 NPS Official Units에 독립적으로 포함되는 국가기념물(National Memorial)만 3곳이나 있는데, 이 날을 위해서 지난 겨울동안 일부러 가지 않고 아껴둔 곳들이다.^^
워싱턴 기념탑의 남쪽 사거리에서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면서 돌아보고 찍었는데, 여기도 많은 사람들이 이미 자리를 깔고 있었다. 이 때만 해도 이 정도 벚꽃도 참 많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이 날 꽃구경의 아주 미약한 시작에 불과했다~
호수로 가는 길을 찾을 필요도 없이 인파를 따라서 걸어가는 도로변에도 이렇게 벚꽃이 터널을 이루고 있는데, 노란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교통정리를 하고 있었다. 원래 타이달베이슨 호수를 순환하는 도로인 Ohio Dr는 양방향 2차선이지만, 이 날은 시계방향으로만 일방통행을 시키고 있었음에도, 내셔널몰 남쪽 도로들은 차와 사람들이 붐벼서 꽉 막힌 상태였다.
그 도로변에 있던 조폐국(Bureau of Engraving and Printing) 건물의 입구 위에도 벚꽃축제에 어울리는 배너를 걸어놓았다. 미국달러는 물론이고 여권 및 각종 신분증과 증명서들을 인쇄하고 제작하는 곳으로 투어로 관람이 가능하다고 하니까, 언제 방문해서 넷플릭스 시리즈 <종이의 집>의 미국판 한 번 찍어볼까?
타이들 베이슨 호수에 도착하니 토머스제퍼슨 기념관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안내기둥의 아래에 보면 앞서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은 다른 기념물이 하나 더 있는데, 마지막에 추가로 소개해드릴 예정이다.
호숫가를 따라서 걷는 길은 '인산인해'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가장 많은 인파속을 걷는 경험을 하게 했다.
만개한 벚꽃들 사이로 보이는 제퍼슨 기념관의 사진을, 비록 핸드폰 카메라지만 마침내 직접 찍을 수 있었다.
짧은 동영상을 찍어 보았으므로, 클릭하시면 색소폰 생음악과 함께 인파 속을 같이 걸어보실 수 있다.
여기서는 오후에 역광이라서 만족스러운 사진이 나오지가 않았다. 물 위에 떠있는 것은 페달보트(pedal boat)로 1시간에 $32로 4명까지 탑승 가능하다고 하니, 언제 가족 3명이 함께 '캐나다 레이크루이스의 추억'을 떠올리며 한 번 타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돌아보니 지나 온 호숫가 벚꽃들 위로 다시 워싱턴 기념탑이 모습을 드러냈다.
넓게 광각으로 타이달베이슨(Tidal Basin) 호수를 찍어봤다. 왼편으로 저 멀리 보이는 물체들을 디지털줌으로 당겨보면,
포토맥 강 건너 버지니아 알링턴(Arlington) 다운타운의 현대적 고층건물들이 생소하게 보인다.
워싱턴DC의 벚꽃 아래에서 중년의 커플셀카 또 한 장...^^
그렇게 걷다 보니까 첫번째 목적지인 토머스제퍼슨 메모리얼(Thomas Jefferson Memorial) 앞에 도착을 했는데, 그 규모가 링컨 기념관 못지 않게 거대해서 놀랐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1939년에 공사가 시작되어 1943년에 완성된 이 기념관은 로마의 판테온(Pantheon)을 본따서 만들어졌는데, 원형 홀의 지름이 약 50 m나 된다고 한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벚꽃명소인 타이들베이슨의 상징과도 같은 건축물이지만, 이 기념관을 짓기 위해서 당시에 벚나무를 1,000그루나 잘라야 했었다고 한다.
계단을 다 올라가면 홀 중앙에 서있는 미국의 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의 입상을 만나게 된다. 제퍼슨은 유명한 마운트러시모어(Mount Rushmore)에 조각된 4명의 미국 대통령들 중의 한 명이고, 모르시는 분들이 많지만 미국 2달러 지폐의 모델로 앞뒷면에 동시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청동으로 만든 동상은 1947년에야 완성되어 설치되었는데, 높이 약 6 m에 무게는 1만파운드, 그러니까 4,500 kg이나 된다고 한다. 원형 홀의 사방에는 제퍼슨이 쓴 4개의 글이 발췌되어 각각 새겨져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왼손에 돌돌 말아서 들고 있는 1776년 미국의 독립선언문(Declaration of Independence)이다.
기념관을 나와서 잠시 대리석 계단에 앉아서 '풍멍'을 했다~ 앞사람들의 뒷통수와 보수공사를 위한 가림막이 쳐져있어서 사진이 깔끔하지는 않지만, 멋진 풍경을 보며 멍때리기를 한 기록으로 올려본다.
워싱턴 기념탑의 왼편에 빼곡한 높은 나무들 사이로 백악관의 정면 모습도 살짝 보이는 것이 신기하다.
계속해서 호숫가를 돌아가니까 제퍼슨 기념관이 멋지게 보이는 위치에 많은 방송 카메라들이 나와있었다. 저녁 6시 뉴스 생방송까지 기다려서 방송출연 좀 해볼까 하다가 둘러볼 곳이 많이 있어서 참기로 했다.
앞서 안내기둥 아래쪽에 소개되어 있던 조지메이슨 메모리얼(George Mason Memorial)을 잠시 들렀는데, 이 기념물은 독립적인 유닛은 아니고 내셔널몰에 그냥 포함되어 있다. 조지 메이슨(George Mason)은 버지니아 페어팩스(Fairfax) 출신으로 일찌기 1770년에 버지니아 헌법의 권리장전을 집필했는데, 이것은 제퍼슨이 미국독립선언을 쓸 때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1787년 필라델피아 제헌회의에 버지니아 대표로 참석했지만, 헌법에 권리장전이 빠진 이유로 비준에 반대표를 던졌기 때문에 안내판의 제목처럼 오랫동안 잊혀진 정치사상가로 여겨졌단다. (클릭해서 확대해 읽으실 수 있음)
갑자기 너무 어려운 역사공부에 당황하신 분들을 위해서 노란 개나리 사진으로 숨 좀 돌리고 계속하면... 그가 헌법에 꼭 포함시키고자 주장했던 개인의 권리들은 나중에 4대 대통령이 되는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on)의 주도로 1791년에 권리장전(Bill of Rights)이라는 이름의 10개 조항이 헌법에 추가되게 된다. 즉, 제헌회의에서 반대표를 던진 것 때문에 그 동안 왕따를 당해왔지만, 사실상 미국의 독립선언과 권리장전을 만드는데 기본이 되는 사상을 제공한 사람으로 최근에 재평가가 이루어지면서 2002년에야 여기에 기념물이 만들어진 것이다.
바로 이 분이 조지 메이슨 되시겠다~ 의외로 이 이름을 들어본 분들이 많이 계실텐데, 한국 인천의 송도에도 국제캠퍼스가 있는 조지메이슨 대학교(George Mason University), 줄여서 GMU가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본교가 있는 페어팩스 외에도 북부 버지니아 여러 곳에 캠퍼스가 있어서 학생수가 4만명 가까이 되는 큰 대학교로 2009년에는 '미국에서 가장 떠오르는 대학'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단다.
산책로의 반환점이라고 할 수 있는, 타이들베이슨 호수가 포토맥 강과 연결되는 곳에 걸쳐진 인렛브리지(Inlet Bridge) 위에서 워싱턴 기념탑과 제퍼슨 기념관을 함께 바라본다.
워싱턴 지역으로 이사왔을 때 어떤 분이 그러셨다. "여기는 한국하고 날씨가 똑같아요~ 여기 눈 오면 한국도 눈 오고, 여기 꽃 피면 한국도 꽃 펴요" 아마 한국도 진해며 여의도며 여기저기 벚꽃축제가 시작될텐데, 이렇게 멀리서 미국 워싱턴의 벚꽃 소식을 먼저 1부만 급하게 전해 드렸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