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초의 동력비행이 성공한 장소인 라이트형제 국가기념물(Wright Brothers National Memorial)
가끔 줄여서 '노바(NoVA)'라고 부르는 워싱턴DC 인근의 북부 버지니아(Northern Virginia)로 작년에 이사를 와서는, 계속 뉴욕과 보스턴이 있는 북쪽으로만 차를 몰고 올라갔었기 때문에, 그래서 9월에는 하루 휴가를 내서 처음으로 집에서 남쪽으로 자동차여행을 가보기로 여름부터 마음을 먹고 있었다. 최초 계획은 집에서 약 500마일 남쪽에 있는 미지의 국립공원과 그 아래 미국남부의 문화를 대표하는 도시인 사우스캐롤라이나(South Carolina) 주의 찰스턴(Charleston)을 2박3일로 여행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제대로 구경을 하기에는 일정이 너무 빠듯한 것 같아서, 그냥 남부 버지니아의 역사 유적지들과 그 아래 노스캐롤라이나의 유명한 바닷가를 1박2일에 둘러보는 것으로 계획이 축소되었다.
이번 여행의 주요 방문지와 경로, 그리고 숙박을 한 도시인 버지니아비치(Virginia Beach)를 모두 지도에 표시해봤는데, 버지니아와 노스캐롤라이나의 주경계가 가로 점선으로 표시가 되어 있다. 제일 아래 등대까지 도로가 이어지는 노스캐롤라이나 바닷가의 가느다란 섬들이 넷플릭스 드라마의 제목이자 배경이기도 했던 '아우터뱅크스(Outer Banks)'이다. 이제 소개하는 여행지는 그 '바깥 제방'에 있는 라이트브라더스 국가기념물(Wright Brothers National Memorial)인데, 집에서 5시간이나 걸리는 곳이 첫번째 방문지가 된 이유는... 새벽 4시에 집에서 출발을 하는 바람에, 가는 중간의 장소들은 문을 안 열었기 때문이다. "요즘 밤잠이 없어서~"
비지터센터로 들어가기 전에, 여기 마을의 이름이 '키티호크(Kitty Hawk)'라는 것부터 알려드린다. 인류 최초의 동력비행이 성공한 여기 지명을 따서 미군이 항공모함 USS Kitty Hawk 등 여러 항공기와 함선을 명명했다고 하는데, 원주민들이 "거위를 사냥하는 장소"라는 뜻의 Chickahawk라 부른 것이 서양인들에게 '고양이+매' 즉 Kittyhawk로 와전된 것이라 한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누구나 어릴 때 한 번쯤은 들어봤을 "최초로 비행기를 발명한 롸이트 형제"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오하이오 주의 데이턴(Dayton)이 고향인 형 윌버 라이트(Wilbur Wright)와 동생 오빌 라이트(Orville Wright)의 사진들인데, 가운데 보이는 흰색 종이는 둘의 고등학교 성적표였다.^^ 둘은 자전거 공장을 만들어서 사업에 성공한 후에, 신문 등을 통해서 사람이 타고 하늘을 나는 글라이더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함께 만들어 보기로 했단다.
그들은 1900년에 당시 오하이오에서 기차로 7일이나 걸리는 여기 노스캐롤라이나 시골에 와서는 그들의 글라이더를 처음으로 테스트하게 된다. 연고도 없는 멀리 대서양 바닷가까지 온 이유는 미국 기상청에서 바람이 강하면서 인적이 없는 넓은 모래사장이 있는 장소로 소개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음 해에도 방문해 임시 판자집을 지어 생활하면서, 저 큰 글라이더를 끌고 모래언덕을 올라간 후에, 사람이 타고 내려오는 것을 수백번 반복하며 기본적인 비행의 원리와 조종법을 연구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마침내 1903년 겨울에 소형엔진과 두 개의 프로펠러를 달고 평지에서 이륙할 수 있는 '동력 비행기'인 라이트플라이어(Wright Flyer)를 테스트하게 된다. 제비뽑기로 형인 윌버가 먼저 올라서 12월 14일에 비행을 시도했지만, 제대로 뜨지도 못하고 고꾸라지는 바람에 앞쪽을 수리해야 했다고 한다. 여기서 일단 실내 전시실의 이야기는 끝내고, 이 후의 스토리는 비지터센터 밖에서 계속 이어지는데, 나가기 전에 옆방으로 가보면...
세계최초 동력 비행기의 실물모형이 그 발전과정과 함께 전시되어 있는데, 클릭해서 동영상으로 전시내용과 함께 간단히 보실 수 있다. (다음 해 1904년부터는 고향인 오하이오에서 비행기 테스트를 계속했다고 하며, 연구실로 사용한 자전거 공장과 비행연습을 한 들판 등이 역시 국립공원청이 직접 관리하는 역사공원인 Dayton Aviation Heritage National Historical Park로 지정되어 있음)
밖으로 나오면 멀리 글라이더 연습을 위해 올랐던 모래언덕인 킬데블힐(Kill Devil Hill)에 기념비가 세워진 것과 오른편에 숙소로 사용했던 판자집이 보인다. 형제의 얼굴이 새겨진 동판의 제일 위에는 아래와 같은 문구가 씌여있다.
" THEY TAUGHT US TO FLY "
이 두 건물은 옛모습으로 복원을 한 것인데, 왼편의 텅 빈 건물은 비행기를 보관하는 격납고로 사용했단다. 오른편은 라이트 형제의 숙소였다고 하는데, 잠긴 문의 유리를 통해서 내부를 찍어보니까,
이렇게 여러 소품들을 이용해서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을 해놓았다. 고향에서 편하게 살 수도 있었는데, 이렇게 일부러 바람부는 바닷가의 판자집에서 지내며 고생을 한 것을 보면, 정말 하늘을 날고 싶은 마음이 진심이었다는 것이 느껴진다~
형이 땅에 처박은 것을 수리해서 3일 후인 17일에, 이번에는 동생 오빌이 올라타서 비행을 시도하게 된다. 처음 3회는 10여초 동안 7~8미터를 나는데 그쳤지만, 4회째 시도에서 약 1분 동안 260미터를 날아서 인류 최초의 동력비행에 성공을 한 것이다! (안내판의 내용들은 모두 원본을 확대해서 직접 읽으실 수 있음) 들판에 세워놓은 앞쪽 3개의 표석과 멀리 보이는 1개가 이 4회의 비행에서 날았던 거리를 각각 표시해놓은 것이다.
라이트플라이어가 이륙했던 지점에 미국 항공협회에서 25주년이 되던 1928년에 만든 이정표를 아내가 읽어보고 있다. 그 아래에 놓여진 기다란 레일은 모래사장에서 이륙을 위해 라이트 형제가 고안했던 것으로 세계최초의 활주로라 할 수 있겠다. 멀리 마지막 착륙지점까지 가보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지만, 우리는 그냥 뒤돌아서 기념비가 있는 언덕으로 향했다.
높이 90피트로 부근에서 가장 높은 모래언덕이었던 저 Big Kill Devil Hill에 글라이더를 들고 올라가는 모습의 사진이 안내판에 보이는데, 바닷가 인명구조대 등 동네사람들이 많이 도와주었다고 한다. 1929년부터 모래에 잔디와 식물을 심어서 언덕을 안정화시키며 꼭대기에 기념비 공사를 시작해서,
1932년에 높이 60피트의 이 기념탑(Memorial Tower)이 완성이 되었단다. 원래는 내부의 작은 전시실을 구경하고 탑의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도 있었는데, 지금은 특별한 날에만 개방을 하고 평소에는 문이 닫혀 있어서 아쉬웠다.
기념물의 가장자리에 서서 동쪽으로 대서양의 망망대해를 내려다 보시는 사모님의 뒷모습~
좌우에 세워진 두 형제의 흉상과 기념탑의 옆모습, 그리고 뒤쪽으로 내려다 보이는 벌판의 모습 등을 동영상으로 보실 수 있다.
비지터센터에서 격납고 판자집을 지나서 여기까지 우리가 걸어온 길이 가운데 일직선으로 보인다. 또 이 사진에는 안 보이지만 왼편으로는 실제로 경비행기가 이착륙을 할 수 있는 짧은 활주로가 있는 간이공항인 First Flight Airport도 공원 안에 만들어져 있다.
주차한 곳으로 돌아오니까, 막 가이드투어가 시작되어서 레인저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설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습할 때 봤던 실물크기의 사람과 비행기를 금속으로 만든 조각을 못 본 것 같아서, 공원지도를 다시 봤더니 기념탑 뒤쪽에 만들어져 있길래, 차를 몰고는 그리로 향했다.
2003년에 비행 100주년 기념식이 당시 부시 대통령과 달에 착륙했던 닐 암스트롱 등의 유명인사들을 포함해 12만명이 이 곳에 모여서 개최되었는데, 그 때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제작한 이 동상들이 새로 일반에 공개되었다고 한다. 그늘이 져서 잘 보이지 않지만 올라타서 조종하는 동생 오빌이 비행기의 가운데에 엎드려 있고,
그 옆에서 달리던 형 윌버가 이륙 순간에 앞으로 손을 뻗으며 극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을 아내가 따라하고 있다.
형제뿐만이 아니라 이륙 모습을 사진으로 찍은 John T. Daniels와 비행을 도운 인명구조대원 Willis Dough 및 동네 사람들도 현실감있게 조각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윌리스씨, 사람이 저런 하늘을 나는 기계를 타고 여행을 할 수 있는 날이 올거라고 생각하세요?"
여기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키티호크 마을의 한적한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처음 날아오른 저 라이트플라이어(Wright Flyer)에서, 지금 우리가 타고 다니는 여객기와 음속보다 훨씬 빠른 제트기는 물론이고, 우주왕복선과 로켓까지 인류의 모든 비행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것을 기리기 위해서 1969년에 아폴로 우주선이 라이트 형제가 사용했던 천과 나무조각을 싣고 달에 착륙했으며, 작년 2021년에 화성에서 비행에 성공한 헬리콥터 '인제뉴이티(Ingenuity)'도 라이트플라이어의 날개 천조각을 품고 날았고, 지구밖에서 인류가 최초로 동력비행에 성공했던 그 붉은 땅을 Wright Brothers Field라고 명명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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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잃어버린 식민지'와 남북전쟁 역사가 있는 로어노크 섬의 포트롤리(Fort Raleigh) 국립사적지
정확히 1년전에 버지니아(Virginia) 주로 이사를 온 후부터, 미동부를 돌아다닌 여행기를 쓰고 있으면... 본인이 미국사를 전공하는 역사학도가 된 착각을 하는 것 같다. 열심히 찾아보고 정리해서 재미있게 블로그에 올려봐야 알아주는 사람도 거의 없는데, "왜 계속 이 짓을 하고있을까?"라는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지난 9월에 집에서 남쪽으로 다녀온 1박2일 여행도 거의 '역사투어'에 가까웠는데, 지금의 미국땅에 영국인들이 최초로 식민지를 건설했던 두 곳이 목적지에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일단 본편은 자료조사와 정리를 다 마쳤으니 평소처럼 논문...이 아니라 여행기를 완성하고, 앞으로도 역사공부를 계속 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을 좀 해봐야겠다.
전편에서 소개한 미국에서 가장 높은 등대를 구경하고 (여행기를 보시려면 클릭), 노스캐롤라이나(North Carolina) 주의 해안을 따라 길게 만들어진 섬들을 이어주는 다리를 달려 북쪽으로 올라가고 있다. 사진 정면에 나지막히 건물들이 보이는 땅이 그 평행사도(Barrier Island) 안쪽에 있는 로어노크 섬(Roanoke Island)으로, 이제 찾아가는 유적지가 있는 곳이다.
Whalebone Junction 삼거리에서 시작되는 64번 국도로 좌회전 후에 또 다리를 건너면 로어노크 섬이다. 마땅히 점심을 먹을만한 곳이 없어서 만테오(Manteo) 마을의 맥도널드에서 투고를 해서 국립공원의 피크닉 장소에서 먹기로 했다.
섬의 제일 북쪽에 포트롤리 국립사적지(Fort Raleigh National Historic Site)가 있는데, 그 밑에 별도로 적혀있는 두 곳은 아래의 공원지도를 보며 설명을 드리기로 한다. 참고로 노스캐롤라이나 주도(state capital)도 같은 사람의 이름을 딴 롤리(Raleigh)인데, 실제 영어발음은 '랄리'에 가깝지만 대부분의 한글 사이트에서 '롤리'로 표기를 해서 그에 따르기로 한다.
먼저 다른 색으로 표시된 엘리자베스 가든(The Elizabethan Gardens)은 1950년대에 조성된 영국식 정원인데, 시간도 없었고 별도의 입장료가 있어서 들리지 않았다. 또 수변무대(Waterside Theatre)는 1937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여름마다, 이제 소개할 '잃어버린 식민지'를 소재로 한 로스트 콜로니(The Lost Colony) 야외공연을 하는 장소이다. 2차 세계대전 중인 1944년과 코로나 팬데믹이 정점이던 2020년의 두 시즌만 건너뛰고 지금까지 계속 같은 내용의 공연을 한 장소에서 하고 있는데, 이것은 오케스트라가 동원되는 공연으로는 미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이어지는 기록이라고 한다.
그 두 곳을 빼고나면 사실 여기서 남는 것은 거의 이 비지터센터 밖에는 없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여기 나무 그늘의 피크닉테이블에서 늦은 점심으로 '1+1버거'를 참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다.
비지터센터에 붙어있는 이름인 린제이 워런(Lindsay Warren)은 1941년에 이 곳이 국립사적지로 지정되는데 기여한 연방 하원의원이다.
안내영화 시작까지 시간이 좀 남아서, 먼저 제일 안쪽에 보이는 전시실을 구경했다. "그럼 역사공부를 또 시작해볼까?"
1584년에 영국인 월터 롤리 경(Sir Walter Raleigh)이 당시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후원으로 신대륙을 탐험해, 여기 로어노크 섬에 도착해서 최초로 잉글랜드 깃발을 꼽고 '처녀여왕'을 기리는 의미로 버지니아(Virginia)라 명명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탐험대 수준이라서 오래 머물 수 없었고, 다음 해에 병력을 끌고 다시 와서 주둔지를 만들기는 했지만 역시 또 포기하고 철수해야 했다.
마침내 1587년 여름에 친구인 존 화이트(John White)를 책임자로 여성과 어린이가 포함된 약 120명의 이주민이 도착해서 여기에 최초의 잉글랜드 식민지를 건설한다. 하지만 원주민과의 분쟁 및 식량부족 등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자, 연말에 존 화이트가 보급품과 추가인력을 데리고 다시 돌아오기로 하고 영국으로 떠나게 된다. 남아있는 사람들 중에는 존 화이트의 딸과 사위, 그리고 최초로 아메리카 대륙에서 태어난 영국계(English) 사람으로 기록된 그의 손녀인 버지니아 데어(Virginia Dare)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스페인과 전쟁 중이던 영국은 바로 구호선단을 보낼 여력이 없었고... 결국 화이트는 손녀의 3번째 생일인 1590년 8월 18일에야 로어노크 섬에 돌아왔지만, 마을은 전투가 벌어진 흔적도 없이 버려진 상태로 120명의 사람들도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고 한다. 유일한 단서는 울타리 기둥에 새겨진 '크로아토안(Croatoan)'이라는 남쪽 원주민 부족의 이름이었기 때문에, 화이트는 바로 40마일 떨어진 그 곳에 가서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폭풍우도 몰아치고 그의 선원들은 스페인 무역선의 해적질이 항해의 주목적이라서 탐사를 거부하는 바람에 사라진 사람들의 행방은 결국 미궁으로 남았다.
이상의 내용을 모두 보여주는 안내영화를 재미있게 보고 다른 전시실로 들어갔더니, 그 곳에는 왼쪽의 월터 롤리 경과 오른쪽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신대륙 탐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창문 너머 실루엣으로 보이는 두 명이 움직이면서 실제 대화를 하는 영상이 나오는데, 아내가 조종판 앞에서 꼼꼼히 내용을 읽어보고 있는 모습이다. 롤리는 영국의 정치인, 탐험가, 작가, 시인이자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의 총신으로, 진흙길 위에 자신의 값진 망토를 펼쳐 엘리자베스 1세를 지나가게 했다는 일화로 유명하며, 일설에는 그가 엘리자베스 1세의 숨겨진 애인이라는 주장도 있단다.
특히 그는 신대륙에서 들여온 담배를 영국에 최초로 전파한 인물로 유명한데, 그가 담배연기를 내뿜자 하인이 불이 붙은 줄 알고 롤리에게 물을 퍼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렇게 엘리자베스 시절에는 잘 나가던 그였지만... 1603년에 제임스 1세가 즉위하자 정쟁에 휘말려 런던탑에 갇혀 12년을 보내야 했으며, 65세에 특별사면을 받아서 다시 신대륙으로 탐험을 떠나지만, 항해중에 스페인과 싸우지 말라는 왕명을 어겼다는 이유로 다시 송환되어서, 결국 웨스트민스터에서 참수형으로 최후를 맞이한 한마디로 '풍운아'라 할 수 있다.
비지터센터 앞마당에 세워진 Freedmen's Colony Monument라는 까만 기념비에 우리 부부가 비친 모습이 살짝 보인다. 시간이 한참 흐르고 흘러 1860년대 미국 남북전쟁 때 북군이 로어노크 섬을 점령해서 롤리 요새(Fort Raligh)를 만들고, 남부 여러 주에서 탈출한 흑인 노예들을 여기에 받아들여 그들의 목숨을 살린 것을 기념하는 것이다. 볼거 다 본거 같았지만 그래도 국립공원에 왔으니 조금은 걸어주는 것이 예의일거 같아서, 비지터센터 옆으로 만들어진 길을 따라서 안쪽으로 들어가 보았다.
공원지도에 1896 Monument라 되어있는 비석인데, 이 장소의 역사적 가치를 최초로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협회에서 1896년에 만들어서 세운 것으로, 앞서 언급한 영국인들의 탐험 기록들과 함께 이 땅에서 태어난 Virginia Dare가 세례받은 이야기 등이 자세히 적혀있다.
20세기 들어서 여기 '로어노크의 잃어버린 식민지(Lost Colony of Roanoke)'의 고고학적 발굴이 진행되기는 했지만 대장간의 쇳덩이나 도자기 조각 등이 약간 나온 것 말고 큰 성과는 없는 것 같다. 아슬아슬하게 남아있는 무슨 건물의 흔적같이 보이는 이것도, 1585년에 영국 탐험대가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모습으로, 1950년대에 일부러 다시 만든 토성(Earthen Fort)의 잔해일 뿐이다.
전시실에 작게 붙어있던 삽화로, 존 화이트가 사람들은 사라지고 'CROATOAN' 글자만 남아있는 로어노크 식민지(Roanoke Colony)에 돌아온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여드린다. 이 잃어버린 식민지와 흔적없이 사라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양한 상상력이 더해져서 소설과 영화의 소재가 되었으며, 지금도 DNA 분석기법 등을 이용해서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추적을 하는 사람들도 있단다. 이렇게 월터 롤리(Walter Raleigh)가 주도했던 영국인들의 첫번째 아메리카 식민지는 실패로 끝났지만, 그 후 런던 주식회사(London Company)에서 다시 3척의 배로 100여명의 남성을 1607년에 북쪽의 체사피크 만 안쪽에 상륙을 시켜서 성공적으로 식민지를 건설하게 되는데... 그 곳도 다음날 오후에 직접 찾아갔으므로, 이어지는 1박2일 여행기에서 역사공부는 계속된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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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적인 희생의 들판으로 영원히 기억되는 플라이트93 내셔널메모리얼(Flight 93 National Memorial)
연초에 여기 버지니아 알링턴의 펜타곤에 만들어진 9·11 테러 추모물을 소개하면서, 마지막 4번째로 납치된 여객기는 펜실베이니아 주의 외딴 벌판에 추락했다고 알려드렸었다. 그 비행기의 이야기는 2006년에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영화 <플라이트93>으로도 제작되었는데, 추락한 지역은 사고 이듬해 플라이트93 내셔널메모리얼(Flight 93 National Memorial)로 지정이 되었고, 현재의 비지터센터와 추모광장 등은 2015년에야 완공되어서 일반에 공개되었다.
여기를 별볼일 없는 국립 공원이라 부르는 것은 좀 아닌 듯 하지만, 그 펜실베니아 시리즈의 4번째 목적지로 찾아왔다. 행정구역 상으로 국립기념관의 대부분은 스토니크릭(Stonycreek) 타운쉽에 속하지만, 가장 가까운 마을인 인구 200명의 섕크스빌(Shanksville) 들판에 추락한 것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2001년 9월 11일에 유나이티드 항공 93편의 비행경로와 타임라인을 보여주는 그림으로, 테러범들의 목적지였던 워싱턴DC까지 불과 18분을 남겨두고, 승객과 승무원들이 조종실을 다시 빼앗는 와중에 이 지점에 추락을 해서 승객 33명과 승무원 7명의 합계 40명이 모두 사망을 했다. (희생자에서 제외된 테러범 4명도 물론 사망)
입구에서 제법 운전해 들어오면 넓은 주차장과 엄숙한 외관의 건물이 만들어져 있는 비지터센터 컴플렉스(Visitor Center Complex)가 먼저 나온다.
비지터센터의 입구 사진만 또 올리는 이유는 이 곳의 내부는 추모 분위기를 헤치지 않기 위해서 사진촬영이 금지이기 때문이다. 뉴욕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에 처음 두 비행기가 충돌하는 영상부터, 납치 과정과 승객들의 통신 기록, 다시 탈취하는 순간의 실제 녹음, 추락한 잔해 수습 과정 등과 함께 마지막에는 희생자 40명의 사진으로 장식된 벽으로 끝났다. (전시의 대부분은 공원 홈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음)
비지터센터와 연결된 콘크리트 벽이 끊어진 사이로 검은 통로가 만들어져 있어서, 저 끝까지 걸어가 보면...
충돌지점(Impact Site) 옆으로 만들어진 추모광장(Memorial Plaza)이 멀리 내려다 보이고, 마지막 유리에는 홈페이지 첫화면에도 등장하는 문구인 "A common field one day. A field of honor forever."라 씌여있다. 이 여행기를 쓰기 전까지도 무심코 '공포의 들판(field of horror)'이라 읽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공원 브로셔에 인쇄된 지도를 추가로 보여드리는데, 허허벌판에 상당히 큰 규모로 만들어져서 추모광장까지는 40 Memorial Groves를 한바퀴 빙 돌아서 차로 이동을 하게 된다.
뒤돌아서 보이는 이 직선의 검은 통로가 그 날 플라이트93의 마지막 비행경로(Flight Path)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콘크리트 벽도 자세히 보면 모두 이렇게 나뭇결이나 오래된 목재와 같은 질감을 새겨 넣은 것이 특별했고, 멀리 검은색으로 툭 튀어나온 것은 비지터센터 전시관 마지막에 만들어져 있는 실내 전망대이다.
차를 타고 추모광장이 시작되는 Shelter가 있는 곳으로 왔다. 안내판의 사진은 추락 후 폭발의 검은 연기를 찍은 것이고, 테러범들이 충돌을 계획한 것으로 추정되는 의사당 모습도 보인다. (목표가 백악관이나 또는 DC 인근의 원자력 발전소였을 가능성도 있다고 함)
충돌 후 잔해가 수습된 지역인 Debris Field를 왼편에 두고 통로가 만들어져 있는데,
중간에 충돌지점이 정면에 보이는 난간에는 유가족 또는 방문객들이 두고 간 작은 기념물들이 놓여 있었다. 폭발 구덩이는 모두 메워져 평평한 초원으로 복원되었지만, 이 사진 왼편 1/4 지점에 살짝 보이는 큰 바위(Boulder)가 놓인 곳이 정확한 추락지점이란다.
그리고 그 통로의 끝에는 희생자 40명의 이름이 하얀 대리석에 하나씩 새겨진 Wall of Names가 나온다. 언덕 위에 보이는 비지터센터에서 바로 여기까지 걸어오는 산책로도 만들어져 있지만, 거리가 보기보다는 제법 되는 듯 했다.
FBI가 충돌 직후에 찍었던 사진 한 장을 홈페이지에서 가져와 보여드리는데, 시속 900 km의 속도로 거의 수직으로 땅에 부딪혔기 때문에, 띄엄띄엄 보이는 1~2미터 길이의 동체 파편 몇십 개를 제외하고는 남아있는게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래도 몇달간 보존 수색을 해서 작은 뼛조각 하나도 모두 DNA 검사를 통해 각 유족에게 전달되었고, 짧은 전선같은 잔해 하나도 모두 버리지 않고 비지터센터에 전시를 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공원 입구쪽에 2018년에 추가로 만들어진 '목소리의 탑(Tower of Voices)'을 구경하기 위해 잠시 들렀다.
편명에 맞춰서 높이가 93피트(28 m)로 제작된 콘크리트 타워의 내부에, 40명의 희생자를 상징하는 40개의 풍경(wind chime)을 설치해서, 바람이 불면 은은한 소리가 나도록 만들어졌다는데, 조금 전까지 거세던 바람이 갑자기 잦아들어서 직접 들을 수는 없었다.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위의 동영상을 재생하면 풍경의 추가 흔들리면서 각기 다른 음의 '목소리'들이 울리는 것을 직접 들으실 수 있다.
바로 아래에서 종탑을 올려다 보는데, 오후의 햇살이 마치 천사의 후광처럼 뒤쪽을 밝히고 있었다... 그 날 플라이트93편의 평범한 남자와 여자들이 항복을 거부하고, 테러범들에 의해 잠긴 조종실 문을 기내식 카트로 들이받아 부수고 들어가서 싸웠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희생으로 또 다른 끔찍한 피해는 막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여기 펜실베니아의 외딴 시골에 있는 '영광의 들판(field of honor)'에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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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보호에 기여한 대통령을 기리는 국가기념물인 시어도어루즈벨트 섬(Theodore Roosevelt Island)
지난 여름에 갑자기 이 동네를 떠나서 다른 곳으로 또 이사를 갈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워싱턴DC 지역에서 안 가본 국립 공원과 박물관 등을 일부러 부지런히 찾아 다녔었다. 그래서 7월 말부터 8월 중순까지 5일 동안 짬짬이 총 12곳의 국립공원청이 관리하는 공원과 다른 3곳의 박물관을 부지런히 방문했었는데, 그 '우리 동네 별볼일 없는 국립 공원과 박물관들' 시리즈 시즌1의 마지막 15번째 포스팅이다.
화강암 덩어리 하나가 거의 전부인 제36대 존슨 대통령 기념물이 있는 컬럼비아 섬을 구경한 후에, 포토맥 강의 바로 상류에 있는 시어도어 루즈벨트 섬(Theodore Roosevelt Island)을 찾아왔다. 공원 간판의 아래쪽이 특이하게 녹색으로 보이는게, 섬을 의미한다거나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잠깐 생각했었는데... 그냥 페인트 칠이 불량이라서 벗겨지고 있는 것이었다.^^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에 대해서는, 뉴욕 롱아일랜드에 있는 그의 저택을 방문했던 여행기에서 자세히 설명을 드렸었는데, 이제 사진의 다리로 건너가려고 하는 섬 전체가 워싱턴DC에 있는 그를 기리는 '살아있는 기념물(Living Memorial)'이다. 자연주의자(naturalist)였던 그는 1901년에 얼떨결에 대통령이 된 후에 많은 국립공원, 모뉴먼트, 국유림 등을 지정해서 미국의 자연을 보호하는데 크게 기여했으며, 특히 두번째 임기중인 1906년에 유물법(Antiquities Act)을 제정해서, 연방정부 소유의 땅을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국가기념물(National Monument)에 지정해서 보호될 수 있도록 한 것이 중요한 관련 업적으로 꼽힌다.
위기주부가 미국의 국립공원 시스템에 관심을 가지게 만든 이 흑백사진 한 장은 꼭 보여드리고 싶은데, 루즈벨트 대통령이 1903년에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방문해서 존 뮤어(John Muir)와 함께 글레이셔 포인트에 오른 사진이다. 그는 목장 생활을 한 경험으로 캠핑같은 야외 활동에 익숙했고, 특히 뛰어난 사냥꾼으로 유명했다. 봉제 곰인형을 테디베어(teddy bear)라고 부르는 이유도 그의 이름 Theodore의 애칭인 Teddy에서 유래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보행교를 건너다가 북쪽을 바라보면, 키브리지(Key Bridge)의 멋있는 아치와 조지타운(Georgetown) 대학교 건물의 첨탑이 어우러져서 마치 유럽 어디의 풍경을 보는 듯 한데, 여기를 클릭해서 저 동네를 돌아다닌 여행기를 보실 수 있다.
다리를 다 건너오면 이끼가 잔뜩 낀 낡은 지붕의 설명판과 나지막한 어린이용 안내판이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어서, 이 섬에 뭐 대단한게 있을까 싶지만... 섬의 가운데로 향하는 넓은 트레일을 조금만 걸어가면,
나무들 사이로 숲속 한가운데 누가 손을 흔들고 있는게 보인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남북전쟁 당시에 군부대가 주둔했다가 민간 소유로 바뀐 섬을, 루즈벨트 기념재단이 구입해 1932년에 연방정부에 기증하면서 서류상으로는 기념물이 만들어졌지만, 높이 17피트(5.2m)의 이 동상을 포함해 실제로 모든 공사가 끝나서 헌정식이 열린 것은 1967년 10월이란다.
부지런히 돌아다녔던 여름 시즌의 마지막을 기념하는 포스팅이고 하니, 그 동안 등장하지 않았던 셀카도 한 장 올려본다~
가까이서 바라보니까 KFC 할아버지를 좀 닮은 것 같기도 하고...ㅎㅎ 동상의 포즈가 누구 귀싸대기를 한 대 때릴 분위기처럼 보이지만, 연설을 할 때 항상 격정적으로 손을 휘저으며 했던 모습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런데, 동상만 있는게 아니라 중앙의 넓은 광장에 2개의 분수대를 비롯해서, 저 너머 사람들이 건너온 계단과 그 아래에는 인공 연못도 광장을 감싸며 좌우로 만들어져 있었다. 섬의 숲속에 만들어져 있다는 점에서 이전의 LBJ 기념물과 함께 리빙메모리얼(Living Memorial)로 불리기는 하지만, 의외로 인공적인 구조물이 크게 만들어져 있어서 좀 놀랐던 기억이다.
거기에다 동상의 좌우로 4개의 석판을 더 만들고 어록 등을 새겨놓아서, 비록 진입로가 대리석 계단이 아니라 비포장 흙길에 기둥과 지붕만 없다 뿐이지, 이 정도면 링컨이나 제퍼슨 기념관하고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약간 들었다. 이상으로 인공적인 Memorial Plaza 구경은 마치고, 계단을 넘어서 섬의 트레일을 한바퀴 둘러보기로 했다.
이런게 자연주의자의 길이지...! 먼저 섬의 북쪽 끝까지 올라가봤지만, 강가로 내려가는 트레일은 막아 놓아서, 뒤돌아 다시 Upland Trail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갔는데, 섬 전체가 대통령 기념물이다 보니 트레일 중간에도 안내판들이 가끔 등장한다.
이 섬은 작년 벚꽃구경 포스팅의 마지막에 잠깐 소개했던 조지 메이슨 가문이 대대로 소유해서 원래는 메이슨 섬(Mason's Island)으로 불렸는데, 남북전쟁 때 연방정부가 점령해서 군부대를 만들고 흑인 병사들 훈련장으로 사용했단다. 안내판의 큰 사진은 1898년 쿠바에서 벌어진 미국-스페인 전쟁에 "Rough Riders"라는 의용병을 끌고 참전한 루스벨트로 함께 싸운 흑인 부대를 칭찬한 그의 말이 왼편에 적혀있다.
그런데, 트레일에 뭔가 커다란게 천천히 움직이고 있어서 가까이 가보니 국그릇을 엎어놓은 듯한 크기의 거북이였다! 이미지 검색을 해보니까, 이스턴박스터틀(Eastern Box Tutle) '북미 상자거북'으로 미동부에서는 굉장히 넓은 지역에 서식하는 흔히 볼 수 있는 종으로, 한국에서는 애완용으로 키우시는 분들이 있단다.
섬의 남쪽 끝에는 집에서 내셔널몰 구경갈때 항상 지나는 다리인 시어도어루스벨트 기념다리(Theodore Roosevelt Memorial Bridge)의 교각이 섬에 세워져 있다. 여기서 트레일의 작은 다리를 건넌 후는 습지라서 길이 모두 보드워크로 만들어져 있고 이름도 Swamp Trail이다.
플로리다라면 딱 악어가 나오기 좋을 듯한 길이고, 중간에 벤치와 안내판을 만들어 놓았는데, 작은 안내판에는 여기서 관찰할 수 있는 새(bird)에 대해서 설명을 해놓았다.
동그란 흑백사진이 10살때의 루즈벨트로 뉴욕 맨하탄의 부잣집 도련님이었지만, 틈만 나면 자연에서 새와 동물들을 관찰하고 그림으로 그렸단다. 확대해서 보실 수 있는 작은 스케치가 두더지의 일종인 'shrew(뾰족뒤쥐)'를 그린 것인데, 이 단어가 성질 더러운 여자를 뜻하기도 한단다. (셰익스피어 5대 희극의 하나로 익숙한 제목인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원제가 The Taming of the Shrew라고 함)
섬 동쪽으로 오면 강 건너 케네디 센터(Kennedy Center)와 워터게이트 호텔(Watergate Hotel)이 잘 보일 줄 알았는데, 이렇게 둘 다 나무와 덤불에 가려서 깨끗이 보이지는 않았다. 계속 북쪽으로 섬을 한바퀴 돌 수도 있지만, 그럴 필요는 없을 듯 해서 뒤돌아 돌아가기로 했다.
루즈벨트 다리 아래로 보이는 작은 섬은 이름도 그냥 리틀 아일랜드(Little Island)로 여기와 떨어져 있고 아무 시설도 없다. (뉴욕의 '리틀아일랜드'는 여기를 클릭) 그런데, 저 작은 섬에 엄청나게 큰 빌딩이 세워지고 루즈벨트 섬 전체에도 건물이 만들어져, 두 섬이 완전히 하나로 연결된 모습이 영화로 만들어진 적이 있다.
2014년에 개봉했던 마블 영화 <Captain America: The Winter Soldier>에서 S.H.I.E.L.D. 본부인 The Triskelion 건물이 위치한 곳이 바로 이 섬들이다. 유튜브를 클릭해서 보시면 내셔널몰을 내려다 보는 쉴드 기지의 위용이 소개되는데, 영화에서는 기지 옆의 포토맥 강물이 갈라지며 그 아래에 숨겨져 있는 '날으는 항공모함'인 헬리캐리어(Helicarrier)가 이륙하다가 추락하는 장면도 나온다.
이 다리를 건너서 주차장으로 돌아가면, 아직까지 이사 안가고 계속 잘 살고 있는 버지니아(Virginia) 주이다.^^ 정면의 고층건물들은 알링턴 시의 다운타운인데, 저 중에 꼭대기 전망대가 무료로 개방되어서 DC쪽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 있던데 한 번 찾아봐야겠다. 이렇게 지난 여름의 우리 동네 국립 공원 도장깨기 시즌1은 막을 내렸지만... 가을/겨울의 시즌2가 벌써 시작되어서 그 첫번째 포스팅을 올린 지가 이미 오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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