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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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감독이라고? 야이 축협 정신나간 색히들아.

[Let the bright Seraphim]|2013년 6월 19일

먼저 홍명보 감독의 능력이 부족해서 감독선임을 반대하는게 아니란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올림픽때도 공격력 때문에 욕 무쟈게 먹었지만 팀 스피릿 모아서 동메달을 쥔 지도력은 인정해야지. 경험부족을 이유로 부적합으로 보는것도 결코 옳지않다. 지금 홍명보 감독의 능력이 문제가 아니라 축협에서 선수를 친거라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정말 지금 기사 올라오는 타이밍이 너무 찰진게, 축협은 돈 써서 외국인 감독 모셔올 생각이 아예 없었나보다. 지금 대표팀의 융합과 조직력을 갖춘다는 목적에서는 홍명보만한 적임자가 없는건 사실이지만 문제는 감독 선임이 너무 빠르다는거... 난 사실 이번 월드컵은 외국인 감독 선임해서 어찌어찌 넘기고, 월드컵 끝나고 이제 모든 준비가 다 된 홍명보 감독으로 2018년까지 죽 달리는게 최고

황선홍명보의 절반의 성취

황선홍명보의 절반의 성취

초효의 비밀아지트|2012년 10월 22일

2002년 최고의 장면 중의 하나- 출처 : 연합뉴스 - 10년 전, 항상 까임의 최전방에 선 두 노장이 있었습니다. 90년대 한국 축구를 대들보였던 황선홍, 홍명보 이 두 사람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월드컵 첫번째 1승, 16강은 물론 4강이라는 성적을 일궈내며 험난하고 참혹했던 선수생활을 좋게 마무리 합니다.(실질적인 은퇴식은 월드컵 후에 열렸던 브라질과 평가전) 황선홍은 부상의 여파로 곧 현역 선수에서도 곧 은퇴를 했고, 홍명보 선수는 미국 메이저리그 사커 LA갤럭시에 진출해서 활동하다가 은퇴합니다. 이후 두 사람은 여느 유명 선수들이 그랬던 것 처럼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됩니다. 홍명보의 경우는 축구 행정가가 될 것 같았지만, 국가대표 코치직을 거치며 대표팀 지도자로 길을 걸었습니다. 이와

한국올림픽팀이 일본전승리에 안주해서는 안되는 이유

野球,baseball|2012년 8월 12일

홍명보감독은 일본과의 3,4위전을 승리로 이끈 후 경기후 기자회견에서 다년간의 대표생활동안 일본전의 경험을 통해 일본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으며, 이것을 선수들도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럼 홍명보감독이 말한 일본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란 무엇인가? 바로 심플한 롱볼축구다. 미드필드에서 세밀한 잔패스를 하기보단 최전방 공격수의 머리를 겨냥해 연결하여 흐른 볼을 제 2선의 선수들이 빠르게 접근하여 볼을 차지한 후 득점을 노리는 것이다. 이 방법은 한국이 일본을 상대할 때 매우 유효한 방법이었다. 전통적으로 라인을 올리고 패스회전을 통해 포제션사커를 구사하는 일본을 상대로 한국은 헌신적인 압박으로 공격의 빌드업의 질을 떨어트리고 미스를 유도한 후 롱볼에 의한 카운터를 통해 상

이제는 박주영을 격려해줘야 될때입니다.

이제는 박주영을 격려해줘야 될때입니다.

오래간만에 즐겁게 경기를 보았다. 11명의 선수가 열정을 다해서 올림픽 최초의 동메달을 숙적 일본과 경합하여 획득한 것도 기쁜 일이고 그동안 대표팀에 열정을 다했던 구자철과 박주영의 골이 있어서 감동은 더욱 더해졌다. 사실 대한민국에 국대 감독과 스트라이커는 일부 네티즌의 악플의 대상이었다. 차범근, 허정무, 조광래 등의 감독뿐만 아니라 황선홍, 이동국이 그런 것처럼 박주영도 그 대상의 중심에 있었다. 마치 누가 더 잔인하게 흠집을 내느냐를 경쟁이나 하는 것 같다. 문제는 악플의 근거가 Fact도 있지만 "카더라"통신도 많다는 사실인데 박주영의 경우 악플의 기초가 되는 것은 크게 세가지이다. 1) 포항 스틸러스를 배신하였다 박주영 선수는 대구의 축구 명문고인 청구고등학교 재학 시절, 포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