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지의 중국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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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 수도(首都)박물관 3 ( 도자기)
차매(茶梅)가 그려진 접시, 경덕진 요. 시기는 청 옹정황제 때 전시실 가득히 도자기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저 역시 현장에서 보는 것으로 만족했기에 제가 직접 담은 사진만 올려 드립니다 그림과 도자기 등 모조품을 파는 매장도 있었습니다

북경, 수도(首都)박물관 2 (의상 전국~명,청)
명대의 옷 입니다. 명 13릉 중에서 정릉(定陵)에서 나온 효정황후의 백자의(百子衣) 입니다 로비 벽에 춘(春)자와 복(福)자가 걸려 있습니다. 중국 최대의 명절인 춘절(구정)이 가까와지면 이런 모습이 곳곳에 보입니다 명절을 맞이하여 복 많이 받으세요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전시실의 청동기 전시실을 관람 합니다 도자기와 토기 그리고 발굴된 씨앗도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청동기의 미니어춰 입니다 전국시대(전국시대)의 자수 제품 입니다 문양이나 칼러가 마치 현대의 것을 보는 것 같습니다 로마와의 교역도 활발했음직한 자수지 입니다. 용 무늬가 있는 것을 보니 황실에서 사용한 것 같습니다 학이 날고,늘어진 능수버들 그리고 활짝 핀 연꽃 사이로 배를 타고 가는 이 여인은 누구일까? 청대의 자수지 입니다 청대의 수를 놓은 담배 담는 주머니 입니다 중화인민공화국 北平(뻬이핑 북경의 옛 이름)시 군사관제위원회 포고 제1호인데 주임이 葉劍英(섭검영) 입니다 엽(葉)은 사람의 성일 때는 "섭"이라고 읽습니다. 중국 근대사를 이끌던 인물들 입니다. 채원배, 진독수, 호적(胡適 국민당을 따라 대만으로 갔음), 이대검(위 대련의 글씨를 쓴 이), 로신(루쉰)의 사진들이 걸려 있었습니다 중국 옷을 입은 서양 부인과 양장을 입은 중국 여인의 사진 입니다 회중 시계와 도자기에 그림을 그려 넣은 장식품 입니다 비연호(鼻煙壺)와 팔찌, 반지 등 여인들이 휴대하던 고급 장식품들 입니다 중국 그림에서 매화가 빠질 수 없지요 ~ 어느 것 하나 예사운 것이 아닙니다. 아래의 옥배(옥배)는 안이 투명할 정도로 다 보일 정도로 얇게 깎은 것 입니다 황금 장식품들 입니다, 위의 오른쪽에는 옥으로 만든 것과 보석을 박은 여의(如意 루이)가 보입니다

북경, 수도(首都)박물관 1
수도박물관의 외관 입니다. 언뜻보면 그냥 지나치고 가 버리기 쉬운 단순하게 보이는 외모 입니다 중국,북경의 관광 안내 책자에도 소개가 안되고 있어서 그냥 빠트린다면 아쉬운 곳이 이 수도박물관 입니다 수도박물관은 푸싱먼와이따지에(復興門外大街)에 위치하고 있는데 지하철 무시띠짠(木樨地站 (역)에서 내려 밖으로 나오면 푸싱의원(復興醫院)이 보입니다. 서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박물관 건물이 보입니다 지하철 무시띠짠(木樨地站 (역) 출입구 입니다 도로표지 판에 푸싱먼와이따지에(復興門外大街)가 보이며, 월단(月壇)도 보입니다 박물관 출입구에서 바라 본 이것은 수도박물관의 랜드마크가 될 것 같습니다 건물 안에 들어서면 경덕가(景德街)라는 패루가 세워져 있습니다 2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입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내려다 본 로비 입니다 고대북경 역사문화편 전시실을 갑니다 2층과 4층의 전시실 안내 입니다 유리창 벽이어서 바깥 풍광도 보입니다 먼저 2층 전시실 안을 관람하도록 합니다

대만인과 대륙인 그리고 원주민
대만의 인종을 크게 구분하면 말레이폴리네시안계의 원주민, 명말 청나라에 항거하다가 대만으로 정성공과 함께 건너와서 정착한 복건성 남부의 사람들(대만인) 그리고 1949년 국민당 정부군이 공산당군에 밀려 대만으로 건너와서 중화민국을 지켜 온 대륙인 세 종류 입니다 대만. 중국의 역사,문화 이해 대만. 중국의 역사,문화를 이해하는데는 타이뻬이 시내에 있는 3개의 박물관을 둘러보면 큰 도움이 되기에 3개 박물관의 특성을 여기에 먼저 소개 합니다 첫째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만의 고궁박물원 입니다. 1층 전시실에서 중국의 고대문화인 갑골문자,상형문자,청동기 등을 포함하여 도자기는 토기에서 당삼채(唐三彩), 송나라 시대의 푸른 녹색(쑥색)의 도자기, 원나라의 갈색 도자기, 명나라의 백자 그리고 청나라의 청자(불루 도자기)와 화려한 무늬와 칼러가 종합된 도자기를 시대별로 진열된 것을 천천히 감상하는 것이 있습나다 서화,글씨와 그림 등은 취향에 따라서 감삼합니다. 2층의 옥제품과 수공예품들은 인간의 재주가 저렇게 한계점까지 찾아내서 만들 수 있음에 감탄을 하게 됩니다 독립적으로 전시되고 있는 불교 전시실은 관심있는 분들이 즐겨 찾는 곳입니다 두 번 째 방문지는 역사박물관입니다. 고궁박물관이 역대 중국 왕조의 황실에서 보유해 온 보물들의 전시라면, 역사박물관은 시대별로 역사문화의 가치를 지닌 것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이곳에도 작은 상아 조각품들을 보면서 감탄을 하게 됩니다 가끔 3층에서 현대 서예와 동양화를 전시하곤 하는데 시간이 맞아서 보게 되면 덤으로 눈 호강을 하게 됩니다 세 번 째 방문지는 타이뻬이 역 맞은 편에 위차히고 있는 대만성(臺灣省)박물관을 찾아가는 것 입니다 대만 원주민들에 대한 지식을 좀 더 전문적으로 감상하는 곳 입니다. 성박물관을 나오면 마치 박물관의 정원 같은 신타이뻬이공원(新臺北公園)이 나오는데 아열대 식물들이 여유롭게 자라는 것을 보면서 산책하기에 아주 좋습니다. 옆에 보이는 붉은 벽돌의 건물은 대만대학의 의과대학병원 입니다 공원 안을 걷다보면 마치 인천 자유공원에 세워진 백아더 장군같이 보이는 미국인 동상을 만날 수 있는데, 이 사람은 중국 국민당 정부의 국부군과 공산당 내전에서 군수물자를 신속히 내륙으로 수송하기 위해서는 항공수송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장개석 총통으로 하여금 중국 공군을 창설토록 하는 계기를 제공한 사람입니다. 이 미국인은 중국 처녀와 사랑을 하여 결혼을 하는데 나중에 이 여인은 유명한 저널리스트로 한국,일본 및 아시아 국가원수들과도 만나는데 워싱톤,도꾜,서울,뻬이징.타이뻬이 등을 수시로 오가면서 정치적으로 가교 역할을 했습니다 이 여인의 이름은 첸시앙메이(陳香梅)였습니다 저는 이 여인이 쓴 “一千個春天”이란 책을 지금도 기념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대만인이란 오래 전부터 살아온 말레이계의 폴리네시안들이며 10족으로 더 분류하기도 하는데 원주민입니다 우리가 대만에서 평소에 늘 만나는 사람들은 명나라 말에서 청나라가 중국을 다스리기 시작한 때인데, 명을 지키고 청을 배척한다고 반기를 든 사람이 정성공(鄭成功)을 따라서 대만에 건너 온 사람들의 후손들 입니다 이 정성공은 한 때 상당히 커진 세력으로 청에 대항을 크게 하다가 나중에는 쫓기는 신세가 되어 남은 인원들과 함께 훗날을 기약하면서 대만으로 본거지를 옮겼습니다 즉 이 때 대만으로 함께 간 사람들의 후손들이 지금의 대만인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대부분이 복건성의 남부 출신들이어서 사용하는 말도 복건성의 남부에서 민남어(閩南語)로 알려진 지방 방언입니다. 동남아로 나가서 살고 있는 화교들도 복건성 출신이 많은데 이 민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복건성은 약칭 “민(閩)”으로 표기 합니다 장개석 군대가 대륙에서 철수 할 때 함께 대만으로 피난 온 군인들과 관리들과 가족들이 있습니다. 대만사람들은 스스로를 내성인 (內省人) 또는 본성인(本省人) 그리고 대륙에서 피난 온 이들을 외성인(外省人)이라고 부르면서 오랫동안 서로간에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지금은 고위 공무원들도 세대 교체가 많이 이루어졌고. 심지어는 총통도 대만인 출신으로 2대 째에 이르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만인을 크게 원주민과 대만인 그리고 대륙인으로 구분하여 보면 이해가 빠르겠습니다 대만의 정부기관이나 학교,공공기관에서는 반드시 표준 중국어를 사용토록 하고 있는데 국어(國語 꾸어위)라고 합니다 라디오 방송도 표준어와 대만 방언인 민남어가 사용되며, TV에서는 자막을 달아서 언어 장벽의 불편을 줄여주고 있습니다. 홍콩이나 싱가포르 TV에서는 방송 때 영어와 중국어자막을 같이 동시에 달아주곤 합니다 TV화면이 번역 자막으로 꽉 차 있는 것 같습니다 ~ 영어가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고는 있다고 하지만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 국민들은 말 전체를 영어로 하는 것이지 우리나라에서처럼 말 중간에 끼워넣기식은 아닙니다. 그리고 광고 문안 중에 우리 말을 한자로 한 개 또는 두,세 개를 바꿔 넣기식으로 하는 것이 무슨 큰 대세인양 즐겨서들 표현하고 있는데, 표현의 자유라고는 하지만 정도가 지나친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우리의 훌륭한 한글을 스스로 파괴하고 있는 사람들은 깊이 반성하고 제 정신으로 돌아오기를 촉구하는 바 입니다 그리고 국어학회 전문가들은 물밀듯이 들어 오는 외래어를 쉬운 우리말로 빨리 바꾸어주고, 신문언론,방송계에서도 우리 말 사용에 더 시대에 뒤떨어지는 일(전문용어의 우리 말 바른 번역 없이 원어 그대로 사용)은 하지 않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