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지의 중국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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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5 posts북경의 팔달령(八達嶺) 만리장성
만리장성 발해만[渤海灣]에서 감숙성의 가욕관(嘉峪關)까지 약 6,400km(중간에 갈라져 나온 가지를 모두 합한 것임)에 걸쳐 동서로 뻗어 있습니다. 현존하는 만리장성은 명대에 와서 보수 증축된 것입니다, 동쪽은 발해만 바다의 산해관(山海關) 용머리(老龍頭)에서 감숙성의 고비사막 한 가운데의 가욕관까지 수많은 험준한 산을 넘고 구문구 장성(九門口長城,요령성과 하북성의 경계지역 부근에 있음) 처럼 강을 건너서도 갑니다. 팔달령장성(八達嶺長城)은 이 길고 긴 만리장성의 한 부분에 불과하며 명나라 때 축조된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만리장성이라면 진시황제 시대에 다 쌓은 것으로 알지만 실은 기원전 2500년의 주(周)나라 때부터 전국시대에 적국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서 쌓기 시작했던 것이며,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고 나서는 흉노족 같은 북방 유목민족들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보완하고 상호 연결을 하면서 10년 동안 수많은 병사와 민초들을 동원하여 쌓은 것입니다. 수 많은 인명이 만리장성과 함께 묻혀 있을 것입니다 세계의 역사를 보면 만리장성 쌓기나 피라미드 쌓기 등에서 엄청나게 백성들을 희생을 초래하면서 맹강녀(孟姜女)의 전설까지 만들어진 대역사는 지금에 와서는 중국의 관광수입을 올리는데 큰 몫을 하고 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해야 할런지요? 북경에서 북쪽으로는 모전욕장성,사마대장성,금산령장성 등등 여러 곳이 보수되고 복원되어 있으므로 역시 가 볼만한 곳들입니다. 팔달령장성으로 가는 도중에 거용관(居庸關)장성도 지나가게 되고 수관(水關)장성도 지나게 됩니다. 시간이 있다면 잠시 들려서 거용관에 새겨진 문자(티벹,위그르,몽골.산크리스트 서하(西夏)의 문자)들을 들여다보며, 전설의 가루다 새가 새겨진 것도 보면서 이 거용관을 통해 다양한 문화의 흐름이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팔달(八達)이란 한자로는 사통팔달(四通八達)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원래의 팔달(빠따)은 몽골의 험준산령(險峻山嶺)의 뜻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 팔달장성고속도로를 이용해서 북쪽으로 400여 km 더 달리면 내몽고의 수도 호호트(呼和浩特 후허하오터)까지 갈 수 있습니다 날씨는 스모그 현상까지 있어서 더욱 흐린 가운데 오늘(12일)은 팔달령 장성과 용경협을 보기 위해서 오전에 출발을 했습니다 고맙게도 지인이 차를 하루 내 주었기에 편하게 갈 수 있었습니다 시내에서 팔달령장성까지는 약 70km 입니다. 지금의 사진 찍은 지점에서는 53km가 남았습니다 이 지점에서 내몽고의 수도 호호트(후허하오터 呼和浩특) 까지는 422km 거리입니다 적군의 침입으로 팔달령이 무너질 경우에 북경을 사수하기 위해서 요충지에 죽조한 거용관이 1km 거리가 남았습니다 거용관과 팔달령 장성은 13km 거리 떨어져 있습니다 거용관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거용관의 장성은 1990년대 후반에 대대적인 복원작업을 오랜 시일을 걸려 완성했습니다 거용관장성에 오르기는 팔달령장성보다 경사가 급한 편입니다 우리나라 여행사 중에는 패키지 북경투어에서 교통이 혼잡할 경우 팔달령장성 구경 대신에 거용관장성을 보는 것으로 일정을 짜기도 합니다 거용관이란 한자 글씨를 차를 타고 가면서도 볼 수 있습니다 두 시간은 잡아야 거용관 장성을 다소 여유있게 돌아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도 열심히 위로 오릅니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오를리 없다면서 ~ 수관장성(水關長城)은 이곳에서 옆으로 빠집니다 이곳도 수관 장성 오르기도 거용관처럼 가파른 편에 듭니다 거용관이나 수관 장성에는 리프트가 없으므로 걸어서 올라가야 합니다 거용관장성,수관장성은 다 팔달령장성과 이어집니다 북경에 공장을 지은 현대자동차의 광고 문구가 반갑습니다 (손잡은지 10년, 북경현대는 여러분과 한 길을 동행합니다) 이곳에서 팔달령장성까지는 5km 거리가 남았습니다 팔달령장성의 톨게이트입니다 패키지여행인 경우도 대부분 여기서 1.5km 더 안으로 들어갑니다. 리프트를 타기위해서입니다 옛날 처럼 걸어서 오르려면 이곳 가까이에 주차장이 있습니다 연새운관(燕塞雄關)이란 글씨가 멋을 냈습니다 이 지역은 북경의 연경구(燕慶區)입니다 제가 북경에서 살 때는 연경현(縣)이었다가 나중에 북경시의 한 구(區)로 행정구획이 변경되었습니다 가로수들이 붉게 물들고 있습니다 리프트를 타고 오릅니다 걸어서 오를 때는 동쪽과 서쪽을 하나 택해서 올라가야 하지만 리프트는 동쪽으로만 올라갑니다 서쪽은 동쪽보다 경사가 좀 더 가파르지만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면 아래에서부터 서쪽으로 걸어서 오르면 석양으로도 역광없이 동편의 장성을 잘 담을 수 있습니다 솔직하게 말한다면 팔달령에서 리프트를 타고 오르는 것은 무의미하며 바람직하지는 않습니다 볼거리도 없고 시간도 짧기 때문입니다. 걷는 것이 불편한 분에게는 도움이 되겠습니다만 ~! 사람에 떠밀려서 앞사람 머리꼭지만 바라보고 오르는 격입니다 ㅋㅋㅋ 연후가 끝났음에도 사람들이 엄청 많이 장성을 오르고 있습니다 장성에 오르는 것인지 앞 사람의 뒤만 보러 온 것인지 ~ 왼쪽이 팔달령 동편의 정상입니다. 더 나아갈 길은 없습니다 올라가다가 뒤를 내려다 봅니다 바위를 사이에 두고 장성이 끊겼습니다 드디어 팔달령 장성 동쪽의 정상입니다. (서쪽으로는 리프트가 없으니 아래에서 걸어서 올라가야합니다) 주위를 좀 더 둘러보고는 하산 준비를 합니다 주차장이 보입니다 모바일폰이 있기에 차를 미리 대기시킬 수 있습니다 용경협으로 가기 위해서 팔달령장성을 떠납니다 자유여행을 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거용관장성과 수관장성 가는 길을 소개했습니다 패키지로 북경을 갈 경우에는 제 포스팅의 북경편 팔달령장성 편에서 찾아 더 보실 수 있습니다 팁 다행스럽게도 사진들을 정리하다가 제가 직접 찍은 팔달령 만리장성의 사진을 찾았기에 여기여 올려 드립니다

북경 교외의 만리장성 무티엔위(慕田峪 모전욕)
무티엔위(慕田峪 모전욕) 장성의 표지석 입니다 무티엔위의 입구 입니다. 제가 1989년 7월에 찾았을 때는 케이블카가 처음 설치되어 편하게 위로 올라갈 수 있었는데 입구에는 이런 모습은 없었습니다 무티엔위 장성의 전경은 팔달령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 줍니다 팔달령 장성에 비해 관광객들이 훨씬 적어서 장성을 둘러 보기에도 편합니다 주변 가파른 능선을 따라 가는 장성의 모습은 지금에와서 보면 장성을 기원전 진시황제 때 축조할 당시와 비교하면 아름답다고 말 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의 북경 주변 장성들은 명나라 때 보수 개축한 것 입니다 가파른 산 등성이를 타고 가는 장성은 사마대(司馬臺)와 금산령(金山嶺) 장성과도 연결이 됩니다 더 멀리는 팔달령 장성과도 연결이 되어 있을텐데 걸어서 답사를 하기엔 어려운 코스 입니다 봉화대 입니다 장성에 만들어진 병사들이 머물던 곳 입니다 사마대와 금산령을 방문시기가 잘 맞으면 열리고 있는 놀이마당도 구경할 수 있습니다 무티엔위 장성은 가을 단풍이 든 풍광도 아름답고, 눈이 내린 후의 설광도 아름답습니다 겨울 장성을 오를 때는 살얼음의 바람을 견딜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1996년 12월에 무티엔위 장성을 찾아 갔다가 얼굴을 때리는 매서운 얼음바람에 질려서 저는 장성 입구까지만 올라갔다가 그대로 발길을 돌려 내려 온 적이 있습니다 장성 아래엔 동네가 있습니다 장성을 찾는 사람들을 환영하는 장식과 등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한 겨울에 찾는 사람은 많지는 않고 한적한 풍광을 보여 줍니다 경극(京劇)을 공연하는 무대 입니다 무티엔위의 연화촌(蓮花村) 정북루(正北樓)의 설경 풍광 입니다

북경의 만리장성
제가 중국의 만리장성을 처음 올랐던 것은 1988년6월, 팔달령장성(八達嶺長城)이었습니다 만리장성(萬里長城)은 요령성의 산해관 (山海關)바다 물 속에서 시작하여 감숙성의 사막 한 가운데에 세워진 가욕관(嘉峪關)까지 쌓아 놓은 성을 말 하는데 그 길이가 6천km이니 1만5천 리에 해당 합니다 북경 여행을 할 경우 가장 먼저 찾는 곳은 천안문 광장과 지금성 즉 고궁박물원입니다. 물론 일정에 따라 이화원, 천단, 명13릉 등이 있지만 가장 관심있는 곳은 아무래도 만리장성을 구경하러 가는 것일 겁니다 만리장성 하면 진시황제가 제일 먼저 생각이 나겠지만, 진시황제 이전에도 북방의 흉노족,몽골족,여진족 등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서 춘추전국 시대부터 부분적으로 성을 쌓아 놓았는데 기원전 3세기 경의 진시황제 때 전국을 통일하고 나서 만리장성 또한 전국적으로 통일을 한 것입니다. 그런대 여러분이 찾은 팔달령장성은 진시황제 때 쌓은 것(지금의 자리에서 좀 더 북쪽에 위치 했음)이 아니라 명나라 때 새로 쌓은 것입니다 교통의 요충지를 방어하기 위해 쌓은 팔달령은 교통이 사방으로 확 뚫린 곳을 의미하므로 여기서 사통팔달(四通八達)이란 말도 생겨 난 것입니다 제가 처음 팔달령장성을 처음 오른 것은 1988년 6월이었는데, 당시엔 가는 길이 2차선의 좁았습니다. 오고 가는 도중에 요령성의 대동시에서 석탄을 가득 실은 추럭 대열이라도 만나게 되면 80km의 거리를 차로 가는데 두 시간은 기본이고 3시간이 더 걸리기도 했었습니다 지금은 1990년대 후반에 팔달령 고속도로가 완공이 되어 편도로 한 시간 정도면 충분 합니다 모전욕장성(慕田峪長城 무티엔위 창청)은 두 번째로 제가 1989년7월에 올랐는데, 그 해가 바로 모전욕장성에 케블카가 개통된 해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회유현(懷유縣)은 명승지가 많아서 자주 갔던 곳이고, 좀 더 북쪽으로 가면 금산령과 사마대 장성도 갈 수 있습니다 (유자는 揉가 아닌 (心+柔)자). 더 북쪽으로 차를 몰면 피서산장으로 유명한 승덕시(承德市)에 이릅니다 일반인들은 케블카를 이용해야 장성에 쉽게 오를 수 있습니다 TV에서는 장성의 정확한 명칭을 달지 않고 막연히 만리장성으로만 소개했습니다 제 기억으로 보면 주변 산세와 케블카의 급경사 등을 감안하면 모전욕장성으로 생각 되는데, 이런 좋은 곳을 소개하면서 정확하게 이름을 표기해 주면 친절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요? 오른 쪽에 보이는 인공 호수는 북경 시민의 상수원이기도 한 밀운수고(密雲水庫 미윈수이쿠)인 것 같습니다 담력이 작은 사람들은 유리 판 위를 밟기 보다는 가장 자리를 밟으면서 걷습니다 중국은 무엇을 만들어도 크게 만드는 것을 좋아 합니다. 최초란 단어에 가까이 가려하고 세계 최대란 말 듣기를 좋아 합니다 아이들이 겁이 없다는 것은 아이들이 겁이 무엇인지를 아직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 합니다 이런 철 구조물들은 당연히 바람이 불면 흔들림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으면 철 구졸물은 부러지기 때문 입니다 서울의 한강 다리를 군인들이 박자에 맞추어 행군하면 위험합니다~ 팔달령과 다른 장성들은 사진들을 잘 정리하고 찾아내서 올려 놓겠습니다 ~

북경의 소계림 용경협(龍慶峽 롱칭시아)
용경협의 입구에 오면 7번이나 갈아 타는 용의 머리를 한 긴 에스컬레이터를 만납니다 제가 갔을 때만 해도 아시아에서 가장 길다고 했습니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서도 동굴 속을 잠시 걸어야 밖으로 나갑니다 밖으로 나와서는 유람선을 타고 용경협을 둘러보게 됩니다 협곡과 호수를 둘러 싸고 있는 바위 산들이 기세등등 합니다 유람선에 타면 가이드가 작은 확성기로 설명을 하기 시작 합니다. 관광객들은 사진 담기에 바빠집니다 멀리에 번지 점프대가 보입니다 위를 쳐다보면 와이어 로프가 협곡을 이어놓고 있는데 이것은 이 줄 위에서 사람이 오토바이를 타고 건너가는 묘기를 보여주려고 만들어 놓은 것 입니다 공연 시간에 알맞게 도착하면 오토바이의 앞 바퀴에 줄을 매달고 한 여인이 양산을 쓰고 춤을 추는 묘기도 보여 줍니다 호수의 끝자락에서 뱃머리를 돌려 되돌아 갑니다 북경 사람들은 이곳을 북경의 소계림(小桂林)이라고 부릅니다 바위에 강택민이란 붉은 글씨가 새겨져 있습니다. 강택민 국가주석은 유명한 곳에는 곧 잘 자기의 이름을 새겨 놓았습니다. 종착지에 내리면 동굴을 통해서 밖으로 나가게 됩니다 주차장까지 다시 걸어가면 용경협의 오늘 유람은 막을 내립니다 ~ 팁 용경협은 팔달령장성으로 가다가 갈림 길에서 오른 편으로 차를 40분 정도 더 몰면 도착 합니다

북경,팔달령 만리장성 가는 길에서
화모(華貿 화마오)아파트에서 팔달령 만리장성을 가면서 주변의 건물들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건물 중에는 낯 익은 것도 있고 새로 등장한 것도 있었습니다 낯 익은 건물을 보면 지난 북경 주재할 때의 추억이 생각나기도 했습니다이 GPS의 사진은 시내의 고가도로를 달리면서 담은 것 입니다 서울에 새로운 고층 빌딩이 하늘로 향해서 올라가듯이 북경에서도 새로운 고층 건물이 속속 지어지고 있습니다 이 길은 북경과 승덕(承德)의 경승고속도로 진입의 갈림길로 향하고 있습니다 북진교(北辰橋) 가까이에는 한국 주재원들이 많이 살았던 아시아선수촌이 있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인 타운이라 불러도 될 왕징(望京)아파트 대단지로 많이 이전들을 했습니다 지하철로도 연결이 되어 교통도 편리한 곳 입니다 올림픽공원 옆을 지나 갑니다 팔달령 고속도로 진입하게 되면 옛날 제가 자주 다니던 길이어서 여기서 더 올리지 않았습니다 중간에서 쉬면서 점심을 훠꿔(화과)를 먹고, 자전거 경주의 자전거들이 다 지나가도록 길에서 기다리기도 했는데, 팔달령(八達嶺) 만리장성의 사진과 함께 담긴 메모리 카드가 갑자기 보이질 않아서 이번에는 용경협을 바로 소개 하겠습니다
![[일상] Eave 65와 목새 택타일 | 토프레 무접점 느낌 | 타건 영상 있음](https://img.zoomtrend.com/2026/06/07/1780838085-SE-77297eb3-90bf-43a7-9629-75fd8530e370.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