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권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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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온기가 가득했던 노무현 시민센터

사진은 권력이다|2025년 1월 9일|사진

온실 속에 있을 때는 내가 온실에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온실에서 나와서 혹독한 추위를 경험하면 아! 그때 내가 있었던 곳이 온실이었구나를 깨닫게 되죠. 전 후회를 잘 안 합니다. 어차피 당시에는 그게 최선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딱 한 분에 대해서는 좀 후회를 합니다. 물론 저도 변명거리는 있습니다. 전 세상이 앞으로 전진하는 줄 알았습니다. 경제발전을 넘어서 민주주의까지 완성한 거의 유일한 나라인 한국이 미국이나 유럽의 국가처럼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가 될 줄 알았죠. 또한 당시는 남북통일 모드도 가동 중이라서 한민족은 앞으로 날아오르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좀 심하게 비판한 적도 있긴 합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그때가 대한민국 최고의 태평성대였구나를 깨닫게 되네요. 한 20대 청년이 물어봅니다. 언제가 가장 좋았었냐고. 바로 대답했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절이라고요. 경제적으로는 이명박 정권이 더 낫긴 했습니다. 사회 인프라의 대대적인 변화는 2010년 초반에 많이 실현되었고 저도 그때 나라가 부강 해졌구나를 느꼈으니까요. 그러나 경제라는 것은 이전 정권에서 심어 놓은 씨앗이 다음 정권에서 발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선진국 씨앗을 심은 분이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입니다. 창덕궁 돌담길 옆 노무현 시민센터 창덕궁 돌담길의 원서동에는 노무현 시민센터가 있습니다. 여기 원래 불교 박물관인가 미술관인가 있던 곳인데 여기를 매입하더니 이렇게 거대한 건물을 지은 것이 한 3년 전입니다. 언제 한번 간다 간다 하고 시간이 없어서 지나치기만 했네요. 그러다 시간이 나서 들어가 봤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상징색인 노란색의 바람개비가 가득 보이네요. 건물은 독특한 외형입니다. 입구에는 노무현 재단 정기 후원 가입 부스가 있네요. 많은 분들이 정기 후원을 하고 있어요. 전 노무현 정신을 경험해 봤잖아요. 시민들의 깨어 있는 파워가 세상을 바꾼다는 걸 직접 목격했고요. 물론 깨시민이라고 조롱하는 인간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살아보니 그런 나와 다른 정치적 지향점을 가진 사람들과 토론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걸 요즘 깨달았습니다. 그나마 나이 젊은 사람들은 대화를 통해서 서로 양보하고 생각을 수정할 이유도 여유도 있었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아무 생각이 없거나 젊은 꼰대들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내린 생각의 결론은 나와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과는 토론하지 않는다입니다.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닌데 세상이 그렇게 됐습니다. 이미 결론은 다 내리고 거기에 맞춰서 생각을 하는 인간들 투성이거든요. 따라서 그런 것에 에너지 쏟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생각이 고정되면 항상 썩기 마련입니다. 고인물이 달리 냄새가 나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전 진보 깊숙이 들어가지도 않습니다. 그냥 주변인으로 머물면서 진보도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그러나 노무현은 다릅니다. 노무현은 진보의 상징 인물이 되었지만 지금은 그냥 노무현은 노무현입니다. 한 할아버지가 복도 끝에 앉아 계셨습니다. 누구나 들어와서 몸을 녹이고 생각을 확장하고 나갈 수 있습니다. 노무현은 행동하는 시민 정신을 참 많이 강조했고 실제로 수많은 시민단체들이 만들어지고 자기 목소리를 냈던 시기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이 중진국의 함정에 빠졌을 때 빠르게 1인당 GDP를 증가시킨 정권이 노무현 정권으로 2003~2008년 사이에 1인당 GDP 증가율이 무려 10,297달러였습니다. 이전 정부보다 81%나 증가했죠. 경제대통령이라고 했던 이명박 정부가 7.2%인 1,673달러, 수요일마다 드라마 보려고 관저에서 안 나왔던 박근혜 정부가 오히려 2,837달러로 11,5% 성장을 했습니다. 제가 서두에 말했지만 한국이 성장하는 느낌을 확실하게 줬던 시기가 김대중, 노무현이라는 이유가 경제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김대중 정부가 1인당 GDP 증가액이 4,746달러로 59%, 이은 노무현 정부가 81%로 두 정부가 1인당 GDP를 무려 15,000달러 올려놓았습니다. 아직도 기억나요. 이런 노무현 정권에게 경제를 포기한 경포 대통령이라고 손가락질했던 정당이 당시 한나라당이었습니다. 지금은 내란 수괴 방탄을 자처하는 국민의 힘의 전신이죠. 제가 화가 나는 건 한나라당은 부끄러움을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박근혜 당 대표가 천막당사 쇼를 하고 무릎 사죄쇼도 했습니다. 그런데 국민의 힘은 쇼도 안 합니다. 제대로 된 사과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한남동 내란 수괴 관저 앞에서 성명문이나 44명이 모여서 낭독하고 있어요. 그러면 그런 신념이면 윤 수괴가 밥 먹고 가라고 했으면 밥을 먹죠. 그건 또 아니다 싶은지 안 먹고 나오더라고요. 내 인생 최고의 짜릿했던 대선인 2002년 대선 1층에는 대형 스크린에 영상이 틀어져 있는데 한참 봤습니다. 그리고 2002년 연말에 있었던 대선 내용이 나오네요. 지금은 박근혜 탄핵 때문에 대선이 봄에 개최되지만 원래는 겨울이었습니다. 12월 중순에 대선 투표를 했습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이 있던 그해는 정말 행복한 한 해였습니다. 2002년 연말에 김대중 정권 다음을 잡을 대선 후보로 이회창과 노무현이 나왔습니다. 여름만 해도 이회창의 압승이 예상되었습니다. 지금은 더 하지만 당시도 우익은 콘크리트 지지층이 30%는 깔고 가기에 조금만 잘하면 쉽게 대선을 장악할 수 있었습니다. 김영삼이라는 경제를 박살 낸 신한국당 출신 대통령이 나왔음에도 김대중 대통령이 김종필과 합당하고 별 쇼를 다 해서 겨우 겨우 당선이 됩니다. 아니 나라 경제 박살 낸 정권이 이름 바꾼다고 그걸 또 지지하는 국민들이 있는 나라입니다. 전 대한민국 국민 중에 아직도 조선시대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해요. 봉건주의 국가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기본 30%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국은 근본적으로 우익이 장악하는 시기가 길다고 느껴져요. 이는 갈수록 더 심해질 겁니다. 젊은 우익 세력이 커가고 있으니까요. 2002년 대선도 그랬습니다. 김대중 정부가 그렇게 심한 실정을 한 것도 아니지만 이회창 후보가 대쪽 이미지로 승승장구했습니다. 이에 민주당은 풀뿌리 대선 경선을 시작합니다. 전국을 돌면서 당원들의 투표를 통해서 노무현이라는 당시에는 가능성이 낮은 후보가 민주당 후보로 나옵니다. 그러나 힘에 부쳤고 이에 정몽준과 손을 잡으려고 했지만 정몽준이 대선 전날 손을 뿌리칩니다. 이때 망했다고 생각했죠. 그렇데 대선 투표 당일날은 위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아침나절은 노무현 후보가 밀렸습니다. 저 날 생각나요. 친구도 저도 주변 사람에게 투표하라고 네이트와 ms 메신저로 문자로 투표 독려 했던 것이 기억나네요. 그리고 점심 먹고 대역전이 일어납니다. 방송차량들이 이회창 후보 자택 앞에 모여 있다가 오후가 들어서 분위기가 바뀌자 서서히 노무현 후보 자택 앞으로 하나둘 모이기 시작합니다. 당선된 후에 대규모 호위 차량과 함께 이동하는 모습까지 생생하게 기억나네요. 1층에는 이렇게 쉬어갈 수 있는 휴게 공간이 있습니다. 지하로 가는 계단이 있어서 내려가 봤습니다. 지하층은 강연장과 세미나실이 있습니다. 다목적홀로 다양한 강의를 합니다. 노무현 시민센터가 뭐라고 정의하자고 하면 노무현 정신을 느낀다는 거창한 걸 지우면 그냥 인문학 공간이라고 느껴집니다. 우리가 정신적인 빈곤을 느끼는 이유가 우리 삶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시간이 없거나 그 기능이 저하되기 때문이 아닐까 해요. 그런 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강하게 나갈 때는 강하게 나가다가도 반성할 일이 있으면 반성을 합니다. 서민들과 시민들의 대통령이었죠. 우익들도 인정하는 것이 대통령이라는 권위를 허문 최초의 대통령이라고 하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에게 감화되었다고 하잖아요. 지하 2층인데 소원 트리가 있네요. 시설이 아주 아주 좋네요. 이번엔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 카페 공간에 올라가 봤습니다. 여기는 '커피 사는 세상'입니다. 잠시 들린 것이라서 커피는 주문을 안 했습니다. 커피도 팔지만 저같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따뜻한 물도 준비되어 있고 차도 마실 수 있습니다. 물론 무료입니다. 카페가 2층과 3층에 있는데 공부하는 분들도 많네요. 카메라로 촬영하다가 눈치가 보여서 좀 찍다가 스마트폰으로 전환했습니다. 3층 밖에는 발코니가 있는데 바람개비 마당이 보이네요. 노무현을 너무 신성시한다는 비판을 하는 분들도 있지만 전 큰 어른 같은 분이라서 좋아합니다. 그렇다고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역대 대통령 중에 가장 좋았습니다. 뭐든 가치는 상대적이죠. 이명박, 박근혜, 특히 윤석열을 겪어 보니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통령이기도 합니다. 당시는 왜 내가 화를 냈는지 왜 못마땅해했는지 지금은 좀 후회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전 이 나라가 앞으로 나아가는 줄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역사는 반복될 뿐입니다. 발코니에서 보니 창덕궁 담장과 그 너머도 보이고 허름한 집도 보이네요. 저 멀리 남산 타워도 보이네요. 이 원서동은 보고 갈 곳이 참 많습니다. 역사적인 공간도 많고요. 불편한 점도 있죠. 주차와 그 흔한 편의점도 약국도 저 인사동까지 내려가야 합니다. 그러나 풍광과 역사와 골목과 이런 공간이 있어서 바람 쐬고 싶을 때는 그냥 종로로 나옵니다. 서울에서 가장 서울 같지 않은 공간들이 가득합니다. 드라마 촬영 장소로도 많이 활용되는 동네이기도 하죠. 관광객들은 이런 곳을 보고 서울이 참 전통적인 공간이 많다고 느끼지만 여기만 이렇습니다. 그나저나 이 돌담 길의 주차장은 좀 없애면 안 될까요? 돌담길 걷는 재미가 없어요. 대형 지하 주차장 좀 만들어서 넣거나 주차 빌딩을 만들던가요. 그리고 여기는 영화 에서 정해인이 김고은이 탄 차를 따라가던 길의 마지막이 여기입니다. 영화 자체는 크게 잘 만든 영화는 아닌데 이상하게 제 모습이 투영되었는지 한동한 영화앓이를 했어요. 사람이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면 같은 것도 달리 보이게 되고 내 것으로 보이게 되잖아요. 그런데 정해인 같은 청춘이 지금도 참 많을 겁니다. 이 원서동은 한옥과 연립주택이 가득합니다. 고도제한이 있어서 아파트 못 지어요. 앞으로도 안 지었으면 해요. 거대한 북카페 같은 노무현 시민센터 한 나라의 지도자가 다독가이거나 애독가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책을 즐겨 읽는 사람치고 근원적으로 악한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책은 99%가 좋은 사람이 되라고 말하지 폭탄제조법, 사람 속이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은 없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다독가였죠. 반면 이명박, 박근혜, 특히 윤석열 수괴는 뭔 책을 읽었다는 소리를 못 들어 봤습니다. 노무현 재단에서 추천하는 책들이 가득 꽂혀 있네요. 책이 빈 걸 보면 누가 들고 가서 읽고 있나 봅니다. 계단을 내려가면 더 거대한 책장이 나옵니다. 책 꺼내서 읽을 수 있네요. 이 공간이 참 좋네요. 도서검색대에서 책을 검색하고 다 읽으면 여기에 놓을 수 있네요. 사람들의 흔적들이 참 많네요. 노무현을 기리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한국에 참 많습니다. 이분들이 참이다 옳다 선이다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세상 모든 것은 상대적이니까요. 다만 노무현을 기리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포용적입니다. 부끄러워할 줄 압니다.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모든 것들을 경멸합니다. 부끄러움이 사라진 세상이 전 참 견디기 힘드네요. 지금 보세요. 내란 일으키고 잘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보세요. 정말 경멸하고 혐오합니다.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이 책은 진보 진영에서 필독서가 되었죠. 이 현상은 전 아들 부시 대통령에게 가난한 켄터키 사람들이 지지하는 걸 보면서 의아해했던 부분이죠.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자 정당인 '국민의 힘'을 지지하는 사람들 다수가 가난한 노인 분들이 참 많아요. 부자들이야 이해가 가죠. 자기 이익에 부합하니까요. 이 책과 함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가 이 궁금증을 풀어줍니다. 다 프레임 전쟁이죠. 1층에는 굿즈 판매대가 있습니다. 시간 없어서 못 들렸는데 다음에는 저 노란 우산 하나 사야겠어요. 너무 예쁘네요. 요즘 노무현 정권에서 만든 2030 정책인가에 사람들이 놀라죠. 근미래의 한국에 대한 계획을 세운 것인데 앞날을 보는 뛰어난 보고서인가 해서 놀라워하고 있어요. 노무현 정권 때 저출산 계획을 만들었으니까요. 다양한 책 추천도 참 잘 받았습니다. 눈 오는 날이었는데 참 온기를 많이 느끼고 왔네요.

이제는 갈 수 없는 이념 없던 그 섬을 담은 영화 그 섬에 가고 싶다

사진은 권력이다|2025년 1월 8일|사진

보고 싶었지만 볼 수 없었던 영화들이 꽤 있습니다. 상영관이 적어서 청소년 관람불가라서 못 본 영화들이 있죠. 이 영화는 제목은 엄청 유명합니다. 검색하면 엄청나게 많은 콘텐츠 제목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이 제목의 영화를 안 봤을 겁니다. 저도 입에서만 맴돌던 영화를 최근 영상자료원이 4K로 복원한 후 유튜브 고전영화라는 채널에 공개했습니다. 1993년 박광수 감독의 영화 그 섬에 가고 싶다 1990년대 초는 노태우 정권 시절이었습니다. 전두환이라는 폭군의 시대를 지나서 물태우라고 하는 다소 느슨해진 사회분위기 속에서 사회 비판적인 영화들이 꽤 많이 나왔습니다. 물론 이 당시도 사전 검열의 시대라서 영화가 만들어져도 정부 당국의 가위질이 존재했습니다. 영화 사전검열이 언제 폐지되었는지 아세요? 놀랍게도 1996년입니다. 헌재가 잘 한 몇 개 안 되는 일중에 하나가 이 영화 사전검열 폐지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전검열 제도가 없던 시절에 나온 영화들이 더 사회비판적인 영화들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가위질을 당하기에 은유법으로 담은 영화들이 날카롭지 않고 묵직해서 지금도 사랑 받고 있습니다. 이 사회비판적인 영화를 잘 만든 감독이 박광수 감독입니다. 1988년 라는 두 야외 간판 페인트공의 사회 비판 이야기로 입봉 해서 1990년 이라는 운동권 영화를 지나서 1995년 까지 사회 비판 소재의 영화들을 잘 만들던 박광수 감독이 1993년 연출 개봉한 영화가 입니다. 이 영화를 왜 못 봤나 했는데 제가 군대에 갔던 시절에 개봉한 영화였네요. 이 는 당시 꽤 연기 잘하는 배우가 참 많이 등장합니다. 화자인 김철에 안성기와 핵심 인물인 재구 역할의 문성근, 섬의 광녀 옥님이의 심혜진과 벌떡녀의 안소영, 이용이 등등 쟁쟁한 배우들이 가득 나옵니다. 여기에 스텝도 화려합니다. 유영길 촬영감독에 조감독이 이창동, 허진호 감독에 시나리오도 이창동 감독이 참여합니다. 임철우 소설가의 동명의 소설이 원작인 문예영화입니다. 1950년 이념을 강요당했던 시절의 울분을 담은 영화 그 섬에 가고 싶다 시대 배경은 1980년대로 보입니다. 화자인 김철(안성기 분)은  어린시절 친구인 재구(문성근 분)와 함께 상여를 실은 배를 매달고 철과 재구의 고향 섬에 도착합니다. 그러나 섬사람들이 재구의 아버지인 덕배의 시신을 이 섬에 묻을 수 없다면서 결사반대를 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가 나옵니다. 영화는 1950년 6.25 동란이 일어난 시기로 넘어갑니다. 1950년 이 남해의 한 작은 섬에는 사람들이 오손도손 잘 살고 있었습니다. 법이 있지만 섬이라서 경찰과 군인이 없습니다. 따라서 법대로 하려면 육지로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지주이자 마을의 중심이 되는 어르신이 모든 일을 관장합니다. 그렇다고 못된 지주나 그런 건 아닙니다. 마을 사람이 분노하게 하는 비도덕적인 행동을 하면 망석말이를 하는 정도죠. 이 섬에는 마을 아이들이 가난과 부자를 떠나서 함께 어울립니다. 그리고 왜 미쳤는지 모르겠지만 너무나도 순박한 동네 광녀 옥님이(심혜진 분)도 있습니다. 이외에도 제주도에서 시집왔다가 남편이 3년 전에 사고로 죽어서 혼자 남은 제주댁(안소영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녀를 벌떡녀라고 수근 거립니다. 모든 사람들이 순박한 건 아닙니다. 매일 남편이 때려서 미쳐버릴 듯한 삶을 살다가 무당이 된 업순네(이용이 분)도 있고 재구의 아버지인 덕배의 아내 넙도댁(최형인 분)은 피가 말라갑니다. 넙도댁은 아들 둘을 낳았지만 딸이 곱추라서 덕배에게 구박을 받고 삽니다. 이 마을의 유일한 빌런은 덕배입니다. 어린 딸이 앓다고 죽어도 한 번 찾아오지 않았던 인물이고 배를 타고 나가서 바람을 피울 정도로 아주 악질 중의 악질입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이 덕배의 상여를 반대한 이유는 이 때문이 아닙니다. 이 마을에 몰아친 이념 전쟁 때문입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멍석말이를 당한 덕배가 마을에서 쫓겨나면서 덕배가 마을 사람들에게 행한 행동 때문입니다. 스포라서 말하지 않겠지만 보면서 또 흔한 뻔한 이념 전쟁 이야기인가 했네요. 지금은 더 먹히지 않겠지만 1993년 당시만 해도 6.25 전쟁이 먼 시절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교련 선생님이 6.25 참전 용사셨고 여러 집안에서 6.25 전쟁 피해를 그대로 간직한 채 사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그때는 전쟁 위험이 크지 않았습니다. 앞에서는 어쩌고 저쩌고 해도 뒤로는 남북이 화해하고 손을 잡는 화해무드가 꽤 활발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핵전쟁이 일어나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전 죽기 전에 남북통일이 되겠지 했는데 아닙니다. 이제는 남북한은 평생 영원히 통일이 될 수 없는 확고한 생각이 들 정도로 갈라졌습니다. 불가역적인 상태가 되었죠. 이런 상태에서 이 영화를 보니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50년대 인민재판과 양민학살은 북한군만 한 것이 아닙니다. 남한도 아주 열심히 했죠. 영화 는 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후반에 인민 재판 장면은 좀 충격적이었습니다. 예상과 다른 진행에 아~~~ 장탄식이 나옵니다. 1993년 영화를 2025년 1월에 보면서 현재를 돌아보게 되네요. 여전히 닥치고 빨갱이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참 많은 나라입니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영상미가 참 좋은 그 섬에 가고 싶다 배우들의 연기를 칭찬 안 할 수 없습니다. 어린 딸이 죽자 초가 지붕에 올라서 소리를 지르던 최형인 배우의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기이하면서도 아름답고 또는 서글픈 모습에 눈물이 주르륵 흐르네요. 평생 병으로 고생한 딸이 죽어서 하늘의 별이 되길 기원하는 모습 뒤로 붉고 아름다운 노을이 흐르는 장면은 아름답고 서러웠습니다. 역시 유영길 촬영감독입니다. 왜 유영길 촬영감독이 한국을 대표하는 촬영 감독인지 알게 하는 장면은 꽤 많습니다. 영화 초반 상여를 실은 배가 구슬픈 비를 맞으면서 마을 해안가 입구에 있는 장면은 촬영이 쉽지 않았을 겁니다. 배는 출렁거리지 카메라는 좀 큽니까. 당시는 필름 카메라였잖아요. 그래서 여러 번 촬영했어야 했고 보통 마을 해안가와 장면과 배를 따로 촬영하기도 하죠. 그런데 하늘의 싱크가 꽤 잘 맞습니다. 이외에도 벌떡녀와 땜쟁이가 그네를 타는 장면은 어떻게 촬영했는지 궁금할 정도로 같이 그네를 타면서 촬영을 합니다. 이런 것이 영화적인 마술이죠. 이건 어떻게 촬영했을까 궁금하게 만드는 장면도 많고 무엇보다 영화 촬영지인 보길도, 자개도, 완도라는 아름다운 섬의 풍경이 아주 아름답게 담깁니다. 그리고 다시 배우들을 칭송하자면 문성근 배우와 안성기 배우야 당대도 연기 잘하는 가장 인기 있는 배우였지만 안성기 배우는 정말 다양한 역할을 참 잘하는 배우라고 느껴질 정도였네요. 그리고 칭찬해야 할 배우가 심혜진입니다. 1992년 한국 최초의 기획 영화인 로 청춘스타가 되었는데도 이런 출연하기 껄끄러운 배역을 아주 잘 소화합니다. 심혜진 배우는 가장 먼저 섬에 녹아들기 위해서 옥님이가 입고 다니는 한복을 입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했다고 하죠. 이런 기본이 된 배우이니 이후에 잘 안 나갈 수가 없습니다. 안소영 배우도 애마부인 시리즈로 유명한 배우인데 이런 문예 영화에 출연한 것도 흥미롭고 연기 엄청 잘합니다. 배우들의 앙상블이 참 대단합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자극적인 장면이 많지 않고 오래된 이야기를 또 꺼내냐면서 지루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20,30대 들에게는 추천하지 않고 나이와 경험이 많은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돌아보면 20대 때 본 은 볼 때는 별 느낌 없이 봤다가 30대 후반이 되어서 봤을 때 엄청난 충격에 휩싸여서 봤거든요. 역사적 배경과 나이 들면서 몸에 쌓인 경험의 나이테가 영화를 발화하고 발아하게 합니다. 그래서 영화보기 딱 좋은 나이가 40,50대가 아닐까 합니다. 요즘 솔직히 볼만한 영화가 없고 개봉작도 거의 없습니다. 오늘도 개봉작들이 가득해야 할 1월 초인데 볼만한 영화가 없어서 안 볼 생각입니다. 이럴 때 추천하는 것이 영상자료원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영화 채널 '고전 영화'입니다. 고전영화라고 검색하면 수많은 명작 한국 영화들을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 1주일 전에 오픈했는데 꼭 보시길 추천합니다. 4K로 복원했는데 영화 중간에 오디오가 좀 끊기는 점은 아쉽지만 이 정도도 어딘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왜 라는 제목이냐면 그 섬은 우리가 닿지 못하는 이념의 반목이 없는 6.25 전쟁 이전의 섬을 말합니다. 이제는 과거의 섬이 되어 버렸네요. 한민족이 모두 멸망하지 않는 한 평생 빨갱이 외치면서 살 나라가 되었네요. 이런 건 안 지긋지긋하나 봅니다. 나이 든 분들이 돌아가시면 사라진다고요? 요즘 20,30대 보세요. 빨갱이 뜻도 모르면서 말끝마다 하는 사람들 얼마나 많은데요. 그런 걸 보면 그냥 이념전쟁이 나라의 기조가 된 나라가 되었네요. 그래서 이 영화가 더 빛이 나네요. 옥림이 말처럼 이념 없는 하늘나라에서 별이 되어서 어깨춤을 함께 출 겁니다. 별점 : ★ ★ ★☆ 40자 평 : 이제는 절대 갈 수 없는 이념 전쟁이 없던 그시절 순박하던 우리들의 섬 그 섬에 가고 싶다 문재구(문성근)는 아버지 문덕배가 자신을 고향 섬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자 상여를 배에 싣고 섬을 찾아온다. 그러나 상여가 섬에 다가올수록 섬 주민들의 반발은 거세지고 배를 섬에 대지도 못하게 한다. 재구의 친구 김철(안성기)은 혼자 섬에 도착해 지난 날을 회상한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던 해에 엄마가 없는 철이를 키운 것은 네 여인이었다. 딸이 죽자 정신을 잃어 남편에게 버림받은 친구 재구의 어머니 넙도댁과 색기가 넘쳐 동네 아낙들의 질시를 받았던 벌떡녀, 무녀가 된 업순네, 그리고 누구보다 혼수상태에 빠진 자신에게 젖을 물려준 바보 옥이(심혜진)가 그들이다. 어느날 동네에 무장한 인민군이 상주하여 반동분자를 색출해 나간다. 살아 남기 위해 이웃 사람들까지 서슴 없이 고발하던 동네 사람은 이 모든 일이 섬에서 쫓겨난 덕배의 소행이라고 생각하는데... 평점 7.7 (1993.12.24 개봉) 감독 박광수 출연 안성기, 심혜진, 문성근, 최형인, 안소영, 임일찬, 김용만, 이용이, 허준호, 김일우, 이경영, 윤동원, 최우혁, 강선숙

이제는 갈 수 없는 이념 없던 그 섬을 담은 영화 그 섬에 가고 싶다

사진은 권력이다|2025년 1월 8일|사진

보고 싶었지만 볼 수 없었던 영화들이 꽤 있습니다. 상영관이 적어서 청소년 관람불가라서 못 본 영화들이 있죠. 이 영화는 제목은 엄청 유명합니다. 검색하면 엄청나게 많은 콘텐츠 제목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이 제목의 영화를 안 봤을 겁니다. 저도 입에서만 맴돌던 영화를 최근 영상자료원이 4K로 복원한 후 유튜브 고전영화라는 채널에 공개했습니다. 1993년 박광수 감독의 영화 그 섬에 가고 싶다 1990년대 초는 노태우 정권 시절이었습니다. 전두환이라는 폭군의 시대를 지나서 물태우라고 하는 다소 느슨해진 사회분위기 속에서 사회 비판적인 영화들이 꽤 많이 나왔습니다. 물론 이 당시도 사전 검열의 시대라서 영화가 만들어져도 정부 당국의 가위질이 존재했습니다. 영화 사전검열이 언제 폐지되었는지 아세요? 놀랍게도 1996년입니다. 헌재가 잘 한 몇 개 안 되는 일중에 하나가 이 영화 사전검열 폐지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전검열 제도가 없던 시절에 나온 영화들이 더 사회비판적인 영화들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가위질을 당하기에 은유법으로 담은 영화들이 날카롭지 않고 묵직해서 지금도 사랑 받고 있습니다. 이 사회비판적인 영화를 잘 만든 감독이 박광수 감독입니다. 1988년 라는 두 야외 간판 페인트공의 사회 비판 이야기로 입봉 해서 1990년 이라는 운동권 영화를 지나서 1995년 까지 사회 비판 소재의 영화들을 잘 만들던 박광수 감독이 1993년 연출 개봉한 영화가 입니다. 이 영화를 왜 못 봤나 했는데 제가 군대에 갔던 시절에 개봉한 영화였네요. 이 는 당시 꽤 연기 잘하는 배우가 참 많이 등장합니다. 화자인 김철에 안성기와 핵심 인물인 재구 역할의 문성근, 섬의 광녀 옥님이의 심혜진과 벌떡녀의 안소영, 이용이 등등 쟁쟁한 배우들이 가득 나옵니다. 여기에 스텝도 화려합니다. 유영길 촬영감독에 조감독이 이창동, 허진호 감독에 시나리오도 이창동 감독이 참여합니다. 임철우 소설가의 동명의 소설이 원작인 문예영화입니다. 1950년 이념을 강요당했던 시절의 울분을 담은 영화 그 섬에 가고 싶다 시대 배경은 1980년대로 보입니다. 화자인 김철(안성기 분)은  어린시절 친구인 재구(문성근 분)와 함께 상여를 실은 배를 매달고 철과 재구의 고향 섬에 도착합니다. 그러나 섬사람들이 재구의 아버지인 덕배의 시신을 이 섬에 묻을 수 없다면서 결사반대를 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가 나옵니다. 영화는 1950년 6.25 동란이 일어난 시기로 넘어갑니다. 1950년 이 남해의 한 작은 섬에는 사람들이 오손도손 잘 살고 있었습니다. 법이 있지만 섬이라서 경찰과 군인이 없습니다. 따라서 법대로 하려면 육지로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지주이자 마을의 중심이 되는 어르신이 모든 일을 관장합니다. 그렇다고 못된 지주나 그런 건 아닙니다. 마을 사람이 분노하게 하는 비도덕적인 행동을 하면 망석말이를 하는 정도죠. 이 섬에는 마을 아이들이 가난과 부자를 떠나서 함께 어울립니다. 그리고 왜 미쳤는지 모르겠지만 너무나도 순박한 동네 광녀 옥님이(심혜진 분)도 있습니다. 이외에도 제주도에서 시집왔다가 남편이 3년 전에 사고로 죽어서 혼자 남은 제주댁(안소영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녀를 벌떡녀라고 수근 거립니다. 모든 사람들이 순박한 건 아닙니다. 매일 남편이 때려서 미쳐버릴 듯한 삶을 살다가 무당이 된 업순네(이용이 분)도 있고 재구의 아버지인 덕배의 아내 넙도댁(최형인 분)은 피가 말라갑니다. 넙도댁은 아들 둘을 낳았지만 딸이 곱추라서 덕배에게 구박을 받고 삽니다. 이 마을의 유일한 빌런은 덕배입니다. 어린 딸이 앓다고 죽어도 한 번 찾아오지 않았던 인물이고 배를 타고 나가서 바람을 피울 정도로 아주 악질 중의 악질입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이 덕배의 상여를 반대한 이유는 이 때문이 아닙니다. 이 마을에 몰아친 이념 전쟁 때문입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멍석말이를 당한 덕배가 마을에서 쫓겨나면서 덕배가 마을 사람들에게 행한 행동 때문입니다. 스포라서 말하지 않겠지만 보면서 또 흔한 뻔한 이념 전쟁 이야기인가 했네요. 지금은 더 먹히지 않겠지만 1993년 당시만 해도 6.25 전쟁이 먼 시절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교련 선생님이 6.25 참전 용사셨고 여러 집안에서 6.25 전쟁 피해를 그대로 간직한 채 사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그때는 전쟁 위험이 크지 않았습니다. 앞에서는 어쩌고 저쩌고 해도 뒤로는 남북이 화해하고 손을 잡는 화해무드가 꽤 활발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핵전쟁이 일어나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전 죽기 전에 남북통일이 되겠지 했는데 아닙니다. 이제는 남북한은 평생 영원히 통일이 될 수 없는 확고한 생각이 들 정도로 갈라졌습니다. 불가역적인 상태가 되었죠. 이런 상태에서 이 영화를 보니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50년대 인민재판과 양민학살은 북한군만 한 것이 아닙니다. 남한도 아주 열심히 했죠. 영화 는 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후반에 인민 재판 장면은 좀 충격적이었습니다. 예상과 다른 진행에 아~~~ 장탄식이 나옵니다. 1993년 영화를 2025년 1월에 보면서 현재를 돌아보게 되네요. 여전히 닥치고 빨갱이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참 많은 나라입니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영상미가 참 좋은 그 섬에 가고 싶다 배우들의 연기를 칭찬 안 할 수 없습니다. 어린 딸이 죽자 초가 지붕에 올라서 소리를 지르던 최형인 배우의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기이하면서도 아름답고 또는 서글픈 모습에 눈물이 주르륵 흐르네요. 평생 병으로 고생한 딸이 죽어서 하늘의 별이 되길 기원하는 모습 뒤로 붉고 아름다운 노을이 흐르는 장면은 아름답고 서러웠습니다. 역시 유영길 촬영감독입니다. 왜 유영길 촬영감독이 한국을 대표하는 촬영 감독인지 알게 하는 장면은 꽤 많습니다. 영화 초반 상여를 실은 배가 구슬픈 비를 맞으면서 마을 해안가 입구에 있는 장면은 촬영이 쉽지 않았을 겁니다. 배는 출렁거리지 카메라는 좀 큽니까. 당시는 필름 카메라였잖아요. 그래서 여러 번 촬영했어야 했고 보통 마을 해안가와 장면과 배를 따로 촬영하기도 하죠. 그런데 하늘의 싱크가 꽤 잘 맞습니다. 이외에도 벌떡녀와 땜쟁이가 그네를 타는 장면은 어떻게 촬영했는지 궁금할 정도로 같이 그네를 타면서 촬영을 합니다. 이런 것이 영화적인 마술이죠. 이건 어떻게 촬영했을까 궁금하게 만드는 장면도 많고 무엇보다 영화 촬영지인 보길도, 자개도, 완도라는 아름다운 섬의 풍경이 아주 아름답게 담깁니다. 그리고 다시 배우들을 칭송하자면 문성근 배우와 안성기 배우야 당대도 연기 잘하는 가장 인기 있는 배우였지만 안성기 배우는 정말 다양한 역할을 참 잘하는 배우라고 느껴질 정도였네요. 그리고 칭찬해야 할 배우가 심혜진입니다. 1992년 한국 최초의 기획 영화인 로 청춘스타가 되었는데도 이런 출연하기 껄끄러운 배역을 아주 잘 소화합니다. 심혜진 배우는 가장 먼저 섬에 녹아들기 위해서 옥님이가 입고 다니는 한복을 입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했다고 하죠. 이런 기본이 된 배우이니 이후에 잘 안 나갈 수가 없습니다. 안소영 배우도 애마부인 시리즈로 유명한 배우인데 이런 문예 영화에 출연한 것도 흥미롭고 연기 엄청 잘합니다. 배우들의 앙상블이 참 대단합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자극적인 장면이 많지 않고 오래된 이야기를 또 꺼내냐면서 지루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20,30대 들에게는 추천하지 않고 나이와 경험이 많은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돌아보면 20대 때 본 은 볼 때는 별 느낌 없이 봤다가 30대 후반이 되어서 봤을 때 엄청난 충격에 휩싸여서 봤거든요. 역사적 배경과 나이 들면서 몸에 쌓인 경험의 나이테가 영화를 발화하고 발아하게 합니다. 그래서 영화보기 딱 좋은 나이가 40,50대가 아닐까 합니다. 요즘 솔직히 볼만한 영화가 없고 개봉작도 거의 없습니다. 오늘도 개봉작들이 가득해야 할 1월 초인데 볼만한 영화가 없어서 안 볼 생각입니다. 이럴 때 추천하는 것이 영상자료원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영화 채널 '고전 영화'입니다. 고전영화라고 검색하면 수많은 명작 한국 영화들을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 1주일 전에 오픈했는데 꼭 보시길 추천합니다. 4K로 복원했는데 영화 중간에 오디오가 좀 끊기는 점은 아쉽지만 이 정도도 어딘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왜 라는 제목이냐면 그 섬은 우리가 닿지 못하는 이념의 반목이 없는 6.25 전쟁 이전의 섬을 말합니다. 이제는 과거의 섬이 되어 버렸네요. 한민족이 모두 멸망하지 않는 한 평생 빨갱이 외치면서 살 나라가 되었네요. 이런 건 안 지긋지긋하나 봅니다. 나이 든 분들이 돌아가시면 사라진다고요? 요즘 20,30대 보세요. 빨갱이 뜻도 모르면서 말끝마다 하는 사람들 얼마나 많은데요. 그런 걸 보면 그냥 이념전쟁이 나라의 기조가 된 나라가 되었네요. 그래서 이 영화가 더 빛이 나네요. 옥림이 말처럼 이념 없는 하늘나라에서 별이 되어서 어깨춤을 함께 출 겁니다. 별점 : ★ ★ ★☆ 40자 평 : 이제는 절대 갈 수 없는 이념 전쟁이 없던 그시절 순박하던 우리들의 섬 그 섬에 가고 싶다 문재구(문성근)는 아버지 문덕배가 자신을 고향 섬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자 상여를 배에 싣고 섬을 찾아온다. 그러나 상여가 섬에 다가올수록 섬 주민들의 반발은 거세지고 배를 섬에 대지도 못하게 한다. 재구의 친구 김철(안성기)은 혼자 섬에 도착해 지난 날을 회상한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던 해에 엄마가 없는 철이를 키운 것은 네 여인이었다. 딸이 죽자 정신을 잃어 남편에게 버림받은 친구 재구의 어머니 넙도댁과 색기가 넘쳐 동네 아낙들의 질시를 받았던 벌떡녀, 무녀가 된 업순네, 그리고 누구보다 혼수상태에 빠진 자신에게 젖을 물려준 바보 옥이(심혜진)가 그들이다. 어느날 동네에 무장한 인민군이 상주하여 반동분자를 색출해 나간다. 살아 남기 위해 이웃 사람들까지 서슴 없이 고발하던 동네 사람은 이 모든 일이 섬에서 쫓겨난 덕배의 소행이라고 생각하는데... 평점 7.7 (1993.12.24 개봉) 감독 박광수 출연 안성기, 심혜진, 문성근, 최형인, 안소영, 임일찬, 김용만, 이용이, 허준호, 김일우, 이경영, 윤동원, 최우혁, 강선숙

설경 맛집 덕수궁의 눈 내리는 풍경

사진은 권력이다|2025년 1월 7일|사진

눈 내리는 풍경은 도시에서는 그렇게 아름답다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튀기면 다 맛있고 모든 풍경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다 아름답습니다. 정동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덕수궁 설경입니다. 하얀 눈을 뒤집어쓴 고궁의 전각들이 참 아름답습니다. 이런 지붕이 있는 건물 중에 한옥 지붕이 참 예쁩니다. 반면 덕수궁 뒤에 있는 빌딩이나 현대 건축물은 볼품없습니다. 그리고 고궁이 예쁜 이유는 오래된 나무들이 참 많아요. 특히 소나무가 많아서 겨울에도 푸르게 빛이 납니다. 하얀 눈을 뒤집어쓴 전나무 소나무 참 보기 좋아요. 다만 너무 내리면 나무가 눈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집니다. 덕수궁은 입장료가 1천원으로 저렴합니다. 모바일 교통카드로도 입장 가능해서 아주 편리하게 입장이 가능합니다. 덕수궁 입장 후에 바로 오른쪽으로 가면 연못이 있어요. 둥근 호안의 연못인데 가운데 인공섬도 있습니다. 창경궁 춘당지도 그렇고 고궁에는 가운데 인공섬들이 참 많아요. 다 한국식 정원이죠. 눈이 많이 내린 날은 노출을 1스톱 올려놓고 촬영하는 게 좋아요. AI 시대에도 노출시스템은 평균값을 찾아가는 구닥다리 노출계라서 우리가 적응해야 해요. 하얀색이 많다 보니 그에 맞게 노출을 맞추면 얼마나 좋아요. 카메라는 멍청해서 그냥 평균적인 피사체겠지 하고 자기가 강제로 노출을 맞춰요. 그래서 검은색이 가득하거나 하얀색이 가득한 사진은 적정 노출로 찍으면 회색으로 담겨요. 뭐 저 같은 경우는 RAW 파일로 찍고 후보정에서 조절해요. 어차피 촬영한 사진 바로 SNS에 올리지 않으니까요. 그럴 거면 그냥 스마트폰으로 찍고 말죠. 중화전입니다. 2층 짜리인데 화재로 전소되고 다시 만들 때 1층으로 만듭니다. 여기 덕수궁은 고종이 애용하던 궁으로 예전 이름은 경운궁입니다. 외국인들이 경복궁을 많이 가는데 거긴 너무 커요. 다 돌아보기 쉽지 않죠. 여기 덕수궁은 많이 쪼개지고 사라져서 작아졌습니다. 작지만 볼 거리는 많아요. 처마 밑에서 내리는 눈을 바라보는 재미가 고궁의 재미죠. 눈 내릴 때는 고궁 가보세요. 아주 좋아요. 다른 계절에는 몰랐는데 정관헌 근처에 소나무가 엄청 많네요. 눈 내리는 사진 잘 찍는 방법 중 하나가 셔터스피드입니다. 위 사진은 셔터스피드가 1/60초로 눈이 찍찍 선으로 그은 것처럼 나옵니다. 눈이 멈춘듯한 사진은 최소 1/250초 이상으로 올려야 눈이 멈춘 사진으로 담겨요. 배경은 어두운 계열이어야 하얀 눈이 잘 보입니다. 그러나 함박눈이 아니면 눈송이가 크게 담기지 않아요. 이럴 때는 플래시를 팡하고 강제 발광 시키면 이렇게 카메라 앞을 지나는 눈송이가 플래시 빛을 맞고 크게 담깁니다. 풀프 미러리스는 내장 플래시가 없지만 크롭 미러리스는 대부분 내장 플래시가 있어요. 이걸 이용해 보세요. 2층 전각인 석어당은 조선 최고 못난 왕인 선조가 임진왜란 당시 빤스런을 했다가 돌아와보니 경복궁이 불타서 사라졌니다. 이에 덕수궁에서 머물렀는데 그 덕수궁 전각 중에 석어당에서 주로 머물렀습니다. 가장 눈여겨봐야 할 전각입니다. 2층 목조 건물이자 단청이 없습니다. 단청이 없는 전각은 사무 공간으로 보시면 됩니다. 여기서 선조가 죽은 건물이기도 합니다. 선조는 참 못난 왕으로 역사책을 읽다 보면 인조와 선조가 참 못나고 못난 왕으로 기록됩니다. 광해군이 인조반정이라는 쿠데타로 끌려 와서 인목대비 앞에 엎드렸던 곳이기도 합니다. 인목대비는 선조의 마지막 중전인데 이 인목대비의 아들인 영창대군을 광해군이 죽입니다. 직접적으로 제거한 건 아니고 아랫것들을 시켜서 죽입니다. 이유는 왕위 계승 때문이죠. 선조가 광해군을 그렇게 싫어 했습니다. 정실부인 사이에서 낳은 자식도 아니고 결정적으로 시기심과 질투심이 강했던 선조는 임진왜란 당시 자신 보다 광해군을 더 따르는 백성의 모습에 뻑이 쳤을 겁니다. 그러다 인목대비라는 젊은 중전을 들이고 영창대군이 태어나자 우쭈쭈하는 도를 넘어섰습니다. 세자 책봉하고 왕의 계승 서열 1위인 자신을 거들떠도 안 보고 영창대군만 애지중지하니 광해군이 화가 났습니다. 그러다 선조가 죽자 바로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폐위시킵니다. 선조가 죽은 전각인 석어당은 인목대비가 머무는 전각이 됩니다. 어떻게 보면 조선시대 가장 어두운 역사를 지닌 시기가 참 못난 왕이 연달아 나오면서 점점 국력이 쇠하게 됩니다. 정관헌입니다. 동서양의 건축 양식이 섞여 있는데 러시아 건축가 사비친이 만든 정자입니다. 여기서 차를 마시고 외부 손님과 차를 마셨다고 합니다. 고종은 커피를 좋아했다고 하죠. 그런데 여기서 커피를 마셨다는 소리가 많은데 확인된 바는 없다고 해요. 그럼에도 여기서 커피를 마시고 대한민국 최초의 커피숍이라고 알려집니다. 한 때 여기를 개방했었는데 요즘은 막아 놓았어요. 행사 기간에만 개방하는 듯 하네요. 정관헌 뒤에는 예쁜 흙길이 있습니다. 산새소리가 엄청 들리더라고요. 고궁이 이래서 좋아요. 도심 한 가운데서 자연을 가득 느낄 수 있어서요. 경복궁은 이런 게 없어요. 코로나 시국에 오픈한 돈덕정입니다. 이 건물도 사비친이 설계했다는 소리가 있네요. 덕수궁에서 각종 연회를 하던 공간으로 활용했는데 여기도 덕수궁 화재 때 사라졌던 곳입니다. 그러다 이걸 다시 복원해 놓았습니다. 지금 가보니 전시 휴게 공간으로 활용하던데 개방 초창기 때의 활력은 사라졌네요. 좋은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네요. 2층에는 휴게공간과 작은 도서실 같은 공간이 있는데 전체적으로 큰 계획을 가지고 만든 곳이 아니다 보니 부실한 콘텐츠가 좀 아쉽긴 합니다. 그래도 덕수궁의 위용을 살짝 느낄 수 있네요. 한 때 인스타그램 성지로 유명했는데 발코니로 못 나가게 다 막아 놓았습니다. 석조전도 덕수궁만의 매력이죠. 조선이 나름 개화를 하려고 노력한 흔적인데 이거 짓느라고 돈 엄청 썼어요. 덕수궁에서 한 시간 이상 머물렀는데 참 기분이 상쾌했습니다.

설경 맛집 덕수궁의 눈 내리는 풍경

사진은 권력이다|2025년 1월 7일|사진

눈 내리는 풍경은 도시에서는 그렇게 아름답다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튀기면 다 맛있고 모든 풍경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다 아름답습니다. 정동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덕수궁 설경입니다. 하얀 눈을 뒤집어쓴 고궁의 전각들이 참 아름답습니다. 이런 지붕이 있는 건물 중에 한옥 지붕이 참 예쁩니다. 반면 덕수궁 뒤에 있는 빌딩이나 현대 건축물은 볼품없습니다. 그리고 고궁이 예쁜 이유는 오래된 나무들이 참 많아요. 특히 소나무가 많아서 겨울에도 푸르게 빛이 납니다. 하얀 눈을 뒤집어쓴 전나무 소나무 참 보기 좋아요. 다만 너무 내리면 나무가 눈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집니다. 덕수궁은 입장료가 1천원으로 저렴합니다. 모바일 교통카드로도 입장 가능해서 아주 편리하게 입장이 가능합니다. 덕수궁 입장 후에 바로 오른쪽으로 가면 연못이 있어요. 둥근 호안의 연못인데 가운데 인공섬도 있습니다. 창경궁 춘당지도 그렇고 고궁에는 가운데 인공섬들이 참 많아요. 다 한국식 정원이죠. 눈이 많이 내린 날은 노출을 1스톱 올려놓고 촬영하는 게 좋아요. AI 시대에도 노출시스템은 평균값을 찾아가는 구닥다리 노출계라서 우리가 적응해야 해요. 하얀색이 많다 보니 그에 맞게 노출을 맞추면 얼마나 좋아요. 카메라는 멍청해서 그냥 평균적인 피사체겠지 하고 자기가 강제로 노출을 맞춰요. 그래서 검은색이 가득하거나 하얀색이 가득한 사진은 적정 노출로 찍으면 회색으로 담겨요. 뭐 저 같은 경우는 RAW 파일로 찍고 후보정에서 조절해요. 어차피 촬영한 사진 바로 SNS에 올리지 않으니까요. 그럴 거면 그냥 스마트폰으로 찍고 말죠. 중화전입니다. 2층 짜리인데 화재로 전소되고 다시 만들 때 1층으로 만듭니다. 여기 덕수궁은 고종이 애용하던 궁으로 예전 이름은 경운궁입니다. 외국인들이 경복궁을 많이 가는데 거긴 너무 커요. 다 돌아보기 쉽지 않죠. 여기 덕수궁은 많이 쪼개지고 사라져서 작아졌습니다. 작지만 볼 거리는 많아요. 처마 밑에서 내리는 눈을 바라보는 재미가 고궁의 재미죠. 눈 내릴 때는 고궁 가보세요. 아주 좋아요. 다른 계절에는 몰랐는데 정관헌 근처에 소나무가 엄청 많네요. 눈 내리는 사진 잘 찍는 방법 중 하나가 셔터스피드입니다. 위 사진은 셔터스피드가 1/60초로 눈이 찍찍 선으로 그은 것처럼 나옵니다. 눈이 멈춘듯한 사진은 최소 1/250초 이상으로 올려야 눈이 멈춘 사진으로 담겨요. 배경은 어두운 계열이어야 하얀 눈이 잘 보입니다. 그러나 함박눈이 아니면 눈송이가 크게 담기지 않아요. 이럴 때는 플래시를 팡하고 강제 발광 시키면 이렇게 카메라 앞을 지나는 눈송이가 플래시 빛을 맞고 크게 담깁니다. 풀프 미러리스는 내장 플래시가 없지만 크롭 미러리스는 대부분 내장 플래시가 있어요. 이걸 이용해 보세요. 2층 전각인 석어당은 조선 최고 못난 왕인 선조가 임진왜란 당시 빤스런을 했다가 돌아와보니 경복궁이 불타서 사라졌니다. 이에 덕수궁에서 머물렀는데 그 덕수궁 전각 중에 석어당에서 주로 머물렀습니다. 가장 눈여겨봐야 할 전각입니다. 2층 목조 건물이자 단청이 없습니다. 단청이 없는 전각은 사무 공간으로 보시면 됩니다. 여기서 선조가 죽은 건물이기도 합니다. 선조는 참 못난 왕으로 역사책을 읽다 보면 인조와 선조가 참 못나고 못난 왕으로 기록됩니다. 광해군이 인조반정이라는 쿠데타로 끌려 와서 인목대비 앞에 엎드렸던 곳이기도 합니다. 인목대비는 선조의 마지막 중전인데 이 인목대비의 아들인 영창대군을 광해군이 죽입니다. 직접적으로 제거한 건 아니고 아랫것들을 시켜서 죽입니다. 이유는 왕위 계승 때문이죠. 선조가 광해군을 그렇게 싫어 했습니다. 정실부인 사이에서 낳은 자식도 아니고 결정적으로 시기심과 질투심이 강했던 선조는 임진왜란 당시 자신 보다 광해군을 더 따르는 백성의 모습에 뻑이 쳤을 겁니다. 그러다 인목대비라는 젊은 중전을 들이고 영창대군이 태어나자 우쭈쭈하는 도를 넘어섰습니다. 세자 책봉하고 왕의 계승 서열 1위인 자신을 거들떠도 안 보고 영창대군만 애지중지하니 광해군이 화가 났습니다. 그러다 선조가 죽자 바로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폐위시킵니다. 선조가 죽은 전각인 석어당은 인목대비가 머무는 전각이 됩니다. 어떻게 보면 조선시대 가장 어두운 역사를 지닌 시기가 참 못난 왕이 연달아 나오면서 점점 국력이 쇠하게 됩니다. 정관헌입니다. 동서양의 건축 양식이 섞여 있는데 러시아 건축가 사비친이 만든 정자입니다. 여기서 차를 마시고 외부 손님과 차를 마셨다고 합니다. 고종은 커피를 좋아했다고 하죠. 그런데 여기서 커피를 마셨다는 소리가 많은데 확인된 바는 없다고 해요. 그럼에도 여기서 커피를 마시고 대한민국 최초의 커피숍이라고 알려집니다. 한 때 여기를 개방했었는데 요즘은 막아 놓았어요. 행사 기간에만 개방하는 듯 하네요. 정관헌 뒤에는 예쁜 흙길이 있습니다. 산새소리가 엄청 들리더라고요. 고궁이 이래서 좋아요. 도심 한 가운데서 자연을 가득 느낄 수 있어서요. 경복궁은 이런 게 없어요. 코로나 시국에 오픈한 돈덕정입니다. 이 건물도 사비친이 설계했다는 소리가 있네요. 덕수궁에서 각종 연회를 하던 공간으로 활용했는데 여기도 덕수궁 화재 때 사라졌던 곳입니다. 그러다 이걸 다시 복원해 놓았습니다. 지금 가보니 전시 휴게 공간으로 활용하던데 개방 초창기 때의 활력은 사라졌네요. 좋은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네요. 2층에는 휴게공간과 작은 도서실 같은 공간이 있는데 전체적으로 큰 계획을 가지고 만든 곳이 아니다 보니 부실한 콘텐츠가 좀 아쉽긴 합니다. 그래도 덕수궁의 위용을 살짝 느낄 수 있네요. 한 때 인스타그램 성지로 유명했는데 발코니로 못 나가게 다 막아 놓았습니다. 석조전도 덕수궁만의 매력이죠. 조선이 나름 개화를 하려고 노력한 흔적인데 이거 짓느라고 돈 엄청 썼어요. 덕수궁에서 한 시간 이상 머물렀는데 참 기분이 상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