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권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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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 렌즈를 니콘 카메라에 사용할 수 있는 빌트룩스 EZ 마운트 어댑터

사진은 권력이다|2025년 1월 11일|사진

카메라 사면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가는 것이 바디가 아닌 렌즈라는 걸 깨닫게 될 겁니다. 렌즈가 비싼 건 엄청 비싸거든요. 물론 비싼 만큼 좋은 성능을 보여줍니다. 다만 단렌즈 같은 경우 프로가 아니라면 f1.8이면 충분합니다. 그러나 굳이 비싼 f1.4 렌즈를 사는 분들이 많죠. 물론 f1.4 렌즈가 더 좋긴 하죠. 그런데 가격이 2배 이상 확 올라갑니다. 이렇게 렌즈 가격이 비싸기에 다양한 렌즈가 나와서 경쟁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가격이 내려가죠. DSLR 시절은 이게 가능했습니다. 캐논, 니콘 모두 삼양, 시그마, 토키나, 탐론 같은 렌즈만 제조하는 서드파티 렌즈 제조업체들이 캐논, 니콘 마운트 렌즈 만들어도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그냥 그게 생태계를 확장해 주는 역할을 하기에 방치했죠. 그래서 이렇게 니콘 크롭 DSLR에 삼양 수동 초점 렌즈를 장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니콘, 캐논 모두 미러리스 시장에서는 절대 허용을 안 했습니다. 렌즈도 바디도 모두 니콘이 만들고 캐논이 만들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서드파티 진출을 막음으러서 바디에서 돈 벌고 렌즈에서 돈을 버는 방식을 택했죠. 반면 소니는 애초부터 전면 개방을 했습니다. 소니는 렌즈 제조 구력이 오래되지 않고 빠르게 렌즈 라인업을 완성해야 해서 탐론, 삼양옵틱스, 시그마 등등에 소니 E 마운트 렌즈 제조를 허용했습니다. 이렇게 니콘과 캐논은 자신들의 직접 만든 렌즈만 허용하다 보니 니콘 카메라의 단점으로 부족한 렌즈 라인이 부각되었고 지금도 렌즈가 많지 않은 점이 니콘 카메라 선택을 주저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에 캐논도 니콘도 최근에 탐론과 시그마 같은 서드파티 렌즈 제조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제 단물 다 빨았다는 소리죠. 니콘 바디에 소니 렌즈를 낄 수 있는 빌트룩스 EZ 마운트 어댑터 니콘이 바디는 잘 만드는 편입니다. 특히 내구성이 좋아서 이번에 나사의 우주프로젝트의 카메라로 선정되기도 했죠. 그런데 렌즈가 많지 않아요. 반면 소니는 렌즈가 꽤 많고요. 그럼 소니 렌즈를 니콘에 사용할 수 없냐고 하는데 기본적으로 호환이 안 됩니다. 마운트가 다르면 렌즈 자체를 낄 수도 없고 통신 프로토콜이 달라서 작동도 안 합니다. 그러나 어댑터를 사용하면 사용 가능합니다. 빌트룩스가 소니 렌즈를 니콘 바디에 낄 수 있는 빌트룩스 EZ 마운트 어댑터를 선보였습니다. 소니 E마운트 렌즈를 니콘 Z마운트 바디에 사용할 수 있는 어댑터입니다. 니콘의 AF-S, AF-C, AF-A, AF-F, MF라는 니콘의 AF 초점 모드와 호환이 가능합니다. 또한 EXIF 데이터도 전송해서 사진에 저장도 가능합니다. 또한 손떨방이라는 이미지안정화 기능이 있는 렌즈도 호환 가능합니다. 크기는 아주 얇은 4mm이고 52.3g으로 가볍습니다. 또한 펌웨어 업데이트도 가능해서 혹시나 니콘이 펌웨어 업데이트를 해서 이런 어댑터 사용 못하게 하더라도 빌트룩스가 대처해서 펌웨어 업데이트를 하면 계속 사용이 가능합니다. 소니 E 마운트와 니콘 Z 마운트는 플랜지 거리가 매우 유사해서 이걸 만들기 쉽지 않은데 빌트룩스가 해냈네요. 그래서 어댑터가 아주 얇습니다. 이 E마운트를 Z마운트로 변환해 주는 어댑터는 이 제품이 처음은 아니지만 가격이 훨씬 저렴합니다. 가격이 99달러로 15만원 안쪽이네요. 그런데 소니 쓰던 사람이 니콘으로 넘어갈 일이 있을까 모르겠네요. 니콘은 사진 바디로는 좋은데 영상 바디로는 AF가 느려서 좀 아쉬워요. 다만 내구성이나 만듦새는 좋아요.

소니 렌즈를 니콘 카메라에 사용할 수 있는 빌트룩스 EZ 마운트 어댑터

사진은 권력이다|2025년 1월 11일|사진

카메라 사면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가는 것이 바디가 아닌 렌즈라는 걸 깨닫게 될 겁니다. 렌즈가 비싼 건 엄청 비싸거든요. 물론 비싼 만큼 좋은 성능을 보여줍니다. 다만 단렌즈 같은 경우 프로가 아니라면 f1.8이면 충분합니다. 그러나 굳이 비싼 f1.4 렌즈를 사는 분들이 많죠. 물론 f1.4 렌즈가 더 좋긴 하죠. 그런데 가격이 2배 이상 확 올라갑니다. 이렇게 렌즈 가격이 비싸기에 다양한 렌즈가 나와서 경쟁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가격이 내려가죠. DSLR 시절은 이게 가능했습니다. 캐논, 니콘 모두 삼양, 시그마, 토키나, 탐론 같은 렌즈만 제조하는 서드파티 렌즈 제조업체들이 캐논, 니콘 마운트 렌즈 만들어도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그냥 그게 생태계를 확장해 주는 역할을 하기에 방치했죠. 그래서 이렇게 니콘 크롭 DSLR에 삼양 수동 초점 렌즈를 장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니콘, 캐논 모두 미러리스 시장에서는 절대 허용을 안 했습니다. 렌즈도 바디도 모두 니콘이 만들고 캐논이 만들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서드파티 진출을 막음으러서 바디에서 돈 벌고 렌즈에서 돈을 버는 방식을 택했죠. 반면 소니는 애초부터 전면 개방을 했습니다. 소니는 렌즈 제조 구력이 오래되지 않고 빠르게 렌즈 라인업을 완성해야 해서 탐론, 삼양옵틱스, 시그마 등등에 소니 E 마운트 렌즈 제조를 허용했습니다. 이렇게 니콘과 캐논은 자신들의 직접 만든 렌즈만 허용하다 보니 니콘 카메라의 단점으로 부족한 렌즈 라인이 부각되었고 지금도 렌즈가 많지 않은 점이 니콘 카메라 선택을 주저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에 캐논도 니콘도 최근에 탐론과 시그마 같은 서드파티 렌즈 제조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제 단물 다 빨았다는 소리죠. 니콘 바디에 소니 렌즈를 낄 수 있는 빌트룩스 EZ 마운트 어댑터 니콘이 바디는 잘 만드는 편입니다. 특히 내구성이 좋아서 이번에 나사의 우주프로젝트의 카메라로 선정되기도 했죠. 그런데 렌즈가 많지 않아요. 반면 소니는 렌즈가 꽤 많고요. 그럼 소니 렌즈를 니콘에 사용할 수 없냐고 하는데 기본적으로 호환이 안 됩니다. 마운트가 다르면 렌즈 자체를 낄 수도 없고 통신 프로토콜이 달라서 작동도 안 합니다. 그러나 어댑터를 사용하면 사용 가능합니다. 빌트룩스가 소니 렌즈를 니콘 바디에 낄 수 있는 빌트룩스 EZ 마운트 어댑터를 선보였습니다. 소니 E마운트 렌즈를 니콘 Z마운트 바디에 사용할 수 있는 어댑터입니다. 니콘의 AF-S, AF-C, AF-A, AF-F, MF라는 니콘의 AF 초점 모드와 호환이 가능합니다. 또한 EXIF 데이터도 전송해서 사진에 저장도 가능합니다. 또한 손떨방이라는 이미지안정화 기능이 있는 렌즈도 호환 가능합니다. 크기는 아주 얇은 4mm이고 52.3g으로 가볍습니다. 또한 펌웨어 업데이트도 가능해서 혹시나 니콘이 펌웨어 업데이트를 해서 이런 어댑터 사용 못하게 하더라도 빌트룩스가 대처해서 펌웨어 업데이트를 하면 계속 사용이 가능합니다. 소니 E 마운트와 니콘 Z 마운트는 플랜지 거리가 매우 유사해서 이걸 만들기 쉽지 않은데 빌트룩스가 해냈네요. 그래서 어댑터가 아주 얇습니다. 이 E마운트를 Z마운트로 변환해 주는 어댑터는 이 제품이 처음은 아니지만 가격이 훨씬 저렴합니다. 가격이 99달러로 15만원 안쪽이네요. 그런데 소니 쓰던 사람이 니콘으로 넘어갈 일이 있을까 모르겠네요. 니콘은 사진 바디로는 좋은데 영상 바디로는 AF가 느려서 좀 아쉬워요. 다만 내구성이나 만듦새는 좋아요.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 TOP 10에 항상 들어가는 영화 오발탄 리뷰

사진은 권력이다|2025년 1월 11일|사진

한국영상자료원은 주기적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 TOP10을 선정 발표합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과 영화를 평론하는 평론가들의 의견을 추합 해서 10년 단위로 발표하는데 2014년에는 하녀, 바보들의 행진과 함께 1위, 2024년에 4위에 오른 영화가 바로 입니다. 오발탄을 이해하기 전에 알아야 하는 1950년대 후반의 분위기 영화 은 국정교과서에 소개될 정도로 뛰어난 이범선의 단편소설인 을 근간으로 하고 있습니다. 아무런 정보 없이 보면서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보실 것을 권합니다. 영화 의 시대 배경은 1959년이고 영화는 1961년에 상영됩니다. 먼저 해방촌입니다. 해방촌은 남산 밑 산기슭에 있는 동네 이름입니다. 행정명은 아니고 월남한 분들이 살던 곳이라서 해방촌이라고 합니다. 1945년 광복이 되자 북한은 유물론을 앞세워서 정신적인 것들을 분쇄합니다. 그렇게 북한 폭정 속에서 인민재판으로 사라지는 사람들이 지식인, 종교인, 지주였습니다. 이런 북한의 폭정에 견디지 못하고 북한에 있던 재산을 다 포기하고 짐 보따리만 들고 남한으로 내려온 월남인들이 주로 주거했던 곳 중 하나가 해방촌입니다. 지금은 연립주택이 가득한 동네로 변했지만 1950년대만 해도 판자촌이 가득했습니다. 움막집이라고 쌀 포대 같은 걸 뒤집어쓰고 토굴을 만들어서 살던 사람들이 미군 씨레이션 박스를 담던 판자들을 가지고 와서 얼기설기 만든 집이 판자촌입니다. 실제로 판자로 만들어서 판자촌이라고 했죠. 영화 초반 계리사에 출근하는 모습 옆으로 보이는 이 장면은 영호가 어떤 환경에서 지내는지 바로 알게 해 줍니다. 전 작은 건물 뭔지 알아요. 저 작은 판잣집은 공동변소입니다. 상하수도가 어디 있고 복지가 없던 시절입니다. 1962년 군사쿠데타가 일어나기 전인 이승만 정권의 폭정이 가득했던 시절의 풍경입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잘한 것도 분명 있습니다. 토지개혁을 통해서 경제적 기초를 닦은 것은 다들 인정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에 경제발전에 대한 기초의 틀도 마련 못했습니다. 보다 못한 미국이 이러다 굶어 죽겠다 싶어 했을 정도니까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도 사실은 박정희 정권이 만든 것이 아닌 그전 윤보선 민주당 정권 아래에서 만든 걸 박정희가 실현한 것입니다. 아무튼 1959년은 찢어지게 가난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여기서 가장 이해가 안 가는 인물이 나옵니다. 바로 상이군인 영호입니다. 한국전쟁에 참전해서 옆구리 관통상을 당한 영호(최무룡 분)는 전역한지 2년이 넘도록 매일 같이 전역한 동료 군인들과 술을 퍼마시고 삽니다. 보면 속이 뒤집어질 정도로 못나 보입니다. 실제로도 못났고요. 그런데 이때 시대 풍경이 그랬습니다. 1953년 한국전쟁이 휴전되고 3년이 지난 1956년부터 군대에서 전역한 군인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군대에서 배운 기술은 하나도 없고 취직을 하려고 해도 이미 일자리는 다른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이승만 정권이 스마트했으면 외국 차관이라도 빌려서 경제 발전의 초석을 다질 다양한 인프라 건설을 하면서 일자리를 만들었어야 하는데 그러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영화가 1961년에 촬영되었고 영화 후반 영호가 쫓길 때 보이는 수많은 콘크리트 전봇대 공장을 보면서 저런데라고 취직하면 되지 않냐는 한탄만 나오네요. 다만 영화는 영화고 소설의 배경이 된 1959년은 청년 일자리 일도 없던 시절입니다. 그런 것을 감안해도 술 먹을 돈은 있고 조카에게 사줄 신발 사줄 돈은 없는 영호의 지질한 모습은 편하게 볼 수 없게 하네요. 해방촌은 용산이자 서울역에서 가까운 동네라서 주인공인 철호(김진규 분)은 걸어서 서울역 인근의 계리사 그러니까 현재로는 회계사 사무실로 출근합니다. 그래서 영화는 서울역 일대와 서울시청 일대를 배경으로 촬영해서 한 편의 기록 영화가 되었습니다. 리얼리티 영화의 시조새 오발탄 영화 은 제작비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영화가 돈이 생길때마다 조금씩 촬영하다 보니 1년 이상 제작을 했습니다. 또한 최무룡 같은 배우는 거마비만 받고 출연할 정도로 영화 제작이 쉽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1961년 개봉했을 때는 큰 인기를 끌었으나 1962년 군사쿠데타가 일어나자 영화에서 노모가 "가자, 가자"를 외치는 모습에 북으로 가자는 소리냐며 영화가 1년 동안 상영금지가 되었다고 우여곡절 끝에 1963년 재개봉을 합니다. 은 리얼리티 영화의 시조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라는 것이 엔터테인먼트가 주이고 예술성은 을인 시스템은 현재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1950년대는 더했죠. 그럼에도 1961년 이 한해에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들이 꽤 나왔습니다. , , 같은 명작들이 쏟아지죠. 문화라는 것은 풀어줄 때 숙성이 되는데 이승만이나 박정희, 전두환 정권은 온갖 검열로 인해 좋은 영화들이 많이 나오지 못합니다. 이중 은 시대상을 그 시대에 만든 놀라운 영화입니다. 사실 이런 영화는 영화 제작자들이 좋아할 영화는 아니죠. 그래서 감독 스텝 그리고 배우들까지 힘을 합쳐서 돈이 생길 때마다 찍고 또 찍어서 기어코 만듭니다. 어떻게 보면 독립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소설의 내용을 각색해서 1950년대 후반의 암울한 한국 사회를 아주 잘 담았습니다. 주인공은 철호(김진규 분)입니다. 서울역 인근 계리사 사무실에서 직원으로 근무하는데 월급은 아주 박봉입니다. 이 철호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전역 군인이지만 2년 동안 놀고 있는 영호 그리고 임신한 아내와 여동생 명숙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밑에 신문을 돌리지만 큰돈을 못 버는 막내 남동생이 있습니다. 이중 영호와 명숙은 일자리가 없는 백수입니다. 혼자 7 식구를 먹여 살리는 것이 참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회계사 사무실에서 근무하면 꽤 인텔리이고 여섯 식구라도 해도 먹여 살릴만 하다고 느껴지지만 전혀 아닙니다. 당시 50년대 후반은 한국은 아프리카 수준의 후진국이었고 일자리가 없었습니다. 당시는 북한이 더 잘 살았죠. 다 이승만 정권의 무능한 경제정책 때문입니다. 차관 빌려서 사회 인프라 구축할 생각은 안 하고 미국 원조에만 기대는 저질 국가 경영을 합니다. 부정선거나 일삼는 나쁜 정권이었죠. 동생 명숙과 영호가 그냥 놀고 먹는 것만은 아닙니다. 나름 노력은 합니다만 기술 일도 없는 퇴역 군인과 나이만 먹은 명숙을 받아줄 곳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담배와 술 먹을 돈은 있다는 것이 보면서 화딱지가 납니다. 반면 철호는 점심을 보리차 한잔으로 때우면서 이 가장 노력을 꾸역꾸역 합니다. 그나마 명숙은 차라리 미쳐버리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수치심은 있습니다. 집에만 들어오면 "가자, 가자"라고만 외치는 늙은 노모가 전쟁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정말 이런 집에서 살고 싶어 할까요? 그래도 가장이라서 견뎌야 합니다. 이런 모습을 가장 직설적으로 말하는 인물은 철호의 딸입니다. 철호의 딸은 삼촌 영호가 신발 사준다는 말에 "거짓말"이라고 합니다. 한두 번 속은 게 아닙니다. 이러다 보니 영호의 말은 씨알도 안 먹힙니다. 그렇다고 영호가 무뢰한은 아닙니다. 영호는 근처 충무로에서 근무하는 애인과 함께 하면서 일자리를 살펴봅니다. 한 번은 주연을 시켜주겠다는 감독의 제안에 드디어 돈 벌 곳이 나왔구나 했는데 영호를 캐스팅한 것이 아닌 영호가 총알 관통상을 당한 그 모습을 탐했습니다. 이는 상이용사에 대한 조롱입니다. 이에 영호는 결심을 합니다. 1961년 당시 서울을 담고 있는 영화 모든 스튜디오 촬영을 제외한 영상과 사진은 기록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원하든 원치 않든 그 시대를 기록합니다. 그래서 어떤 영화는 영화 자체는 좋은 평가를 못 받았지만 당시 한국을 기록한 기록성을 인정받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한형모 감독의 1966년 이 요즘 큰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 기록이라는 것이 요즘은 돈 한 푼 안 들지만 당시는 엄청난 돈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그 시절을 담은 사진과 영상물은 높은 가치를 받고 있죠. 영화 은 1960년 서울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서울역 일대를 주로 담고 있습니다. 영호가 은행을 털던 상업은행 남대문지점은 현재 흥국생명 남대문빌딩입니다. 숭례문 바로 앞에 있는 건물이죠. 이외에도 지금은 사라진 반도호텔과 미도파도 나옵니다. 미도파는 현재 롯데 영플라자로 바뀌었죠. 명동 앞에 있습니다.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오리온 드로프스와 카라멜이 붙어 있는 철길 장면입니다. 영호는 군 시절 자신을 간호했던 설희를 만나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은 삼각지역 인근 철길입니다. 지금도 오리온 제과 건물이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당시 서울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조선호텔과 환구단도 담겨 있습니다. 다소 심심한 초반 그러나 몇몇 장면과 후반의 비극적 놀라움이 가득하다 왜 이 영화를 영화 평론가들이 극찬을 할까요? 영화 평론가들이 극찬하고 대중은 별로라고 하는 영화도 꽤 많지만 이 영화는 댓글을 보면 극찬 일색입니다. 저는 영화 초반은 이 영화가 왜 극찬을 받을까 했는데 후반의 영호가 은행을 털고 여러 장면이 나오면서 비극의 깊이가 한도를 초과합니다. 가장 쇼킹하고 놀란 장면은 청계천 복개 공사를 하던 시절 받침목을 하고 있는 청계천 지하를 지나는데 아기를 업은  어머니가 목을 매고 죽은 장면은 충격 그 자체입니다. 얼마나 살기 어려우면 스스로 그것도 아이를 안고 죽었을까요? 철호나 영호가 당시 20대였다고 치면 지금은 90대일 겁니다. 그래서 지금이 80,90대 분들은 엄청난 고통 속에서 청년기를 보냈을 겁니다. 이분들의 고통이 한 장면에 훅 들어오네요. 이 쇼킹함에 영호의 돈다발을 들고 튀는 것이 홍콩 누아르 영화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이외에도 양공주 짓을 하다가 경찰에 걸려서 오빠 철호가 여동생을 데리고 나오는 장면은 딮포커스로 담아서 철호와 여동생 명희가 멀찍이 떨어져서 걷는 장면을 옆으로 따라가면서 잡는 장면 등등 구도와 시퀀스가 꽤 흥미롭습니다. 이는 당시에 이런 과감한 구도와 역동적인 카메라 워크를 담았다는 것이 좀 놀랍네요. 소설에 있지만 영화에 없는 결정적 장면 영화의 핵심 이야기는 영호 입에서 나옵니다. 영호가 형처럼 바른생활 사나이로 사는 것이 정답은 아니라면서 사회에 대한 불만을 토로합니다. 양심은 손끝의 가시라서 그냥 따끔할 뿐이고 윤리는 나일론 빤스 같은 것이라서 티도 안 나는 것이고 관습은 리본 같은 것이라고 예쁘지만 없어도 되는 것이라는 명 문장을 말합니다. 이게 소설에는 있는데 영화에서는 대충 지나갑니다. 영화가 가위질당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너무 직설적으로 느껴지니까요. 또한 너무 노골적이고요. 이 장면이 없다 보니 아쉽더라고요. 아무튼 영화에서 영호는 형 철호에게 그렇게 살아봐야 거지꼴은 못 면한다면서 한탕을 외칩니다. 그렇게 영호는 은행을 텁니다. 소설에서는 강도짓이라고 나오지만 영화는 각색을 통해서 은행을 텁니다. 이후 비극은 계속됩니다. 철호는 남을 위해서 아니 가족을 위해서 아픈 이를 참아가면서 살다가 처음으로 자신을 위해서 삽니다. 아픈 이를 뺍니다. 그러나 이처럼 가족은 뽑아서 버릴 수가 없습니다. 치매 걸린 노모가 있는 해방촌, 아내가 죽은 병원 그리고 동생이 잡혀 들어간 경찰서를 나라시 택시에서 이리저리 외칩니다. 오발탄이라는 소리는 이 나라시 불법 택시에서 나온 대사입니다. 오늘 오발탄 같은 손님을 태웠어! 이 죽지 못하고 무거운 삶의 어깨에서 축 늘어진 철호의 모습이 참 애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에 대한 애증이 있습니다. 증오하지만 동시에 버릴 수 없는 가족. 반대로 사랑하지만 너무 기대는 건 부담스러운 가족. 철호에게 가족은 아픈 이 같은 존재입니다. 뽑아버릴 수 있지만 안고 가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참 답답한 영화이지만 당시 1950년대의 북한보다 못 살았던 시대의 비극을 너무 잘 그렸습니다. 엄청나다는 느낌은 없지만 그럼에도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가 말하는 시절을 목격하는 힘이 아주 강한 영화 오발탄입니다. 오발탄은 유튜브 한국고전영화 채널에 올라와 있습니다. HD로 복원해서 깔끔한 화질로 무료 감상이 가능합니다. 유튜브에서 '오발탄' 검색하면 1분 40분짜리 영상이 바로 복원된 '오발탄'입니다. 별점 : ★ ★ ★ ★ 40자 평 : 1950년 후반의 한국 사회를 그대로 박제한 놀라운 기록 예술 영화 오발탄 가난한 계리사로 한 집안의 가장 철호(김진규)는 정신착란증을 앓고 있는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그의 아내(문정숙)는 만삭의 몸으로 생활의 고단함에 찌들려 살고 잘먹지 못해 영양실조에 걸려있다. 남동생 영호(최무룡)는 한국전쟁으로 부상을 입고 제대한 청년으로, 상이 군인들과 어울려 다니며 울분을 참지 못하고 불안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의 여동생(서애자)은 밤이면 짙게 화장을 하고 식구들 몰래 양공주 일을 한다. 막내 아들은 빈곤을 견디지 못해 신문팔이로 나선다. 철호는 만성 치통으로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치과에 갈 수 없는 비참한 상황이다. 견디다 못한 동생 영호는 마침내 권총을 마련하여 은행을 털 결심을 한다. 병상에 누워있는 노모는 비행기의 폭음 환청에 시달릴 때마다 놀란 듯 벌떡 일어나서 "가자, 가자"를 외친다. 아내는 출산일이 되어 병원에 갔으나 난산 끝에 절명하고, 은행강도에 실패한 동생은 형사에 붙잡힌다. 치통을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치과에 간 철호는 앓던 이를 뽑고 택시에 몸을 싣지만 잘못 발사된 오발탄처럼 갈 곳이 없다. 평점 8.9 (1961.04.13 개봉) 감독 유현목 출연 김진규, 최무룡, 서애자, 문정숙, 노재신, 김혜정, 윤일봉, 유계선, 남춘역, 박경희, 고설봉, 지방열, 최명수, 이룡, 이대엽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 TOP 10에 항상 들어가는 영화 오발탄 리뷰

사진은 권력이다|2025년 1월 11일|사진

한국영상자료원은 주기적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 TOP10을 선정 발표합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과 영화를 평론하는 평론가들의 의견을 추합 해서 10년 단위로 발표하는데 2014년에는 하녀, 바보들의 행진과 함께 1위, 2024년에 4위에 오른 영화가 바로 입니다. 오발탄을 이해하기 전에 알아야 하는 1950년대 후반의 분위기 영화 은 국정교과서에 소개될 정도로 뛰어난 이범선의 단편소설인 을 근간으로 하고 있습니다. 아무런 정보 없이 보면서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보실 것을 권합니다. 영화 의 시대 배경은 1959년이고 영화는 1961년에 상영됩니다. 먼저 해방촌입니다. 해방촌은 남산 밑 산기슭에 있는 동네 이름입니다. 행정명은 아니고 월남한 분들이 살던 곳이라서 해방촌이라고 합니다. 1945년 광복이 되자 북한은 유물론을 앞세워서 정신적인 것들을 분쇄합니다. 그렇게 북한 폭정 속에서 인민재판으로 사라지는 사람들이 지식인, 종교인, 지주였습니다. 이런 북한의 폭정에 견디지 못하고 북한에 있던 재산을 다 포기하고 짐 보따리만 들고 남한으로 내려온 월남인들이 주로 주거했던 곳 중 하나가 해방촌입니다. 지금은 연립주택이 가득한 동네로 변했지만 1950년대만 해도 판자촌이 가득했습니다. 움막집이라고 쌀 포대 같은 걸 뒤집어쓰고 토굴을 만들어서 살던 사람들이 미군 씨레이션 박스를 담던 판자들을 가지고 와서 얼기설기 만든 집이 판자촌입니다. 실제로 판자로 만들어서 판자촌이라고 했죠. 영화 초반 계리사에 출근하는 모습 옆으로 보이는 이 장면은 영호가 어떤 환경에서 지내는지 바로 알게 해 줍니다. 전 작은 건물 뭔지 알아요. 저 작은 판잣집은 공동변소입니다. 상하수도가 어디 있고 복지가 없던 시절입니다. 1962년 군사쿠데타가 일어나기 전인 이승만 정권의 폭정이 가득했던 시절의 풍경입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잘한 것도 분명 있습니다. 토지개혁을 통해서 경제적 기초를 닦은 것은 다들 인정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에 경제발전에 대한 기초의 틀도 마련 못했습니다. 보다 못한 미국이 이러다 굶어 죽겠다 싶어 했을 정도니까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도 사실은 박정희 정권이 만든 것이 아닌 그전 윤보선 민주당 정권 아래에서 만든 걸 박정희가 실현한 것입니다. 아무튼 1959년은 찢어지게 가난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여기서 가장 이해가 안 가는 인물이 나옵니다. 바로 상이군인 영호입니다. 한국전쟁에 참전해서 옆구리 관통상을 당한 영호(최무룡 분)는 전역한지 2년이 넘도록 매일 같이 전역한 동료 군인들과 술을 퍼마시고 삽니다. 보면 속이 뒤집어질 정도로 못나 보입니다. 실제로도 못났고요. 그런데 이때 시대 풍경이 그랬습니다. 1953년 한국전쟁이 휴전되고 3년이 지난 1956년부터 군대에서 전역한 군인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군대에서 배운 기술은 하나도 없고 취직을 하려고 해도 이미 일자리는 다른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이승만 정권이 스마트했으면 외국 차관이라도 빌려서 경제 발전의 초석을 다질 다양한 인프라 건설을 하면서 일자리를 만들었어야 하는데 그러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영화가 1961년에 촬영되었고 영화 후반 영호가 쫓길 때 보이는 수많은 콘크리트 전봇대 공장을 보면서 저런데라고 취직하면 되지 않냐는 한탄만 나오네요. 다만 영화는 영화고 소설의 배경이 된 1959년은 청년 일자리 일도 없던 시절입니다. 그런 것을 감안해도 술 먹을 돈은 있고 조카에게 사줄 신발 사줄 돈은 없는 영호의 지질한 모습은 편하게 볼 수 없게 하네요. 해방촌은 용산이자 서울역에서 가까운 동네라서 주인공인 철호(김진규 분)은 걸어서 서울역 인근의 계리사 그러니까 현재로는 회계사 사무실로 출근합니다. 그래서 영화는 서울역 일대와 서울시청 일대를 배경으로 촬영해서 한 편의 기록 영화가 되었습니다. 리얼리티 영화의 시조새 오발탄 영화 은 제작비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영화가 돈이 생길때마다 조금씩 촬영하다 보니 1년 이상 제작을 했습니다. 또한 최무룡 같은 배우는 거마비만 받고 출연할 정도로 영화 제작이 쉽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1961년 개봉했을 때는 큰 인기를 끌었으나 1962년 군사쿠데타가 일어나자 영화에서 노모가 "가자, 가자"를 외치는 모습에 북으로 가자는 소리냐며 영화가 1년 동안 상영금지가 되었다고 우여곡절 끝에 1963년 재개봉을 합니다. 은 리얼리티 영화의 시조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라는 것이 엔터테인먼트가 주이고 예술성은 을인 시스템은 현재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1950년대는 더했죠. 그럼에도 1961년 이 한해에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들이 꽤 나왔습니다. , , 같은 명작들이 쏟아지죠. 문화라는 것은 풀어줄 때 숙성이 되는데 이승만이나 박정희, 전두환 정권은 온갖 검열로 인해 좋은 영화들이 많이 나오지 못합니다. 이중 은 시대상을 그 시대에 만든 놀라운 영화입니다. 사실 이런 영화는 영화 제작자들이 좋아할 영화는 아니죠. 그래서 감독 스텝 그리고 배우들까지 힘을 합쳐서 돈이 생길 때마다 찍고 또 찍어서 기어코 만듭니다. 어떻게 보면 독립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소설의 내용을 각색해서 1950년대 후반의 암울한 한국 사회를 아주 잘 담았습니다. 주인공은 철호(김진규 분)입니다. 서울역 인근 계리사 사무실에서 직원으로 근무하는데 월급은 아주 박봉입니다. 이 철호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전역 군인이지만 2년 동안 놀고 있는 영호 그리고 임신한 아내와 여동생 명숙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밑에 신문을 돌리지만 큰돈을 못 버는 막내 남동생이 있습니다. 이중 영호와 명숙은 일자리가 없는 백수입니다. 혼자 7 식구를 먹여 살리는 것이 참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회계사 사무실에서 근무하면 꽤 인텔리이고 여섯 식구라도 해도 먹여 살릴만 하다고 느껴지지만 전혀 아닙니다. 당시 50년대 후반은 한국은 아프리카 수준의 후진국이었고 일자리가 없었습니다. 당시는 북한이 더 잘 살았죠. 다 이승만 정권의 무능한 경제정책 때문입니다. 차관 빌려서 사회 인프라 구축할 생각은 안 하고 미국 원조에만 기대는 저질 국가 경영을 합니다. 부정선거나 일삼는 나쁜 정권이었죠. 동생 명숙과 영호가 그냥 놀고 먹는 것만은 아닙니다. 나름 노력은 합니다만 기술 일도 없는 퇴역 군인과 나이만 먹은 명숙을 받아줄 곳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담배와 술 먹을 돈은 있다는 것이 보면서 화딱지가 납니다. 반면 철호는 점심을 보리차 한잔으로 때우면서 이 가장 노력을 꾸역꾸역 합니다. 그나마 명숙은 차라리 미쳐버리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수치심은 있습니다. 집에만 들어오면 "가자, 가자"라고만 외치는 늙은 노모가 전쟁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정말 이런 집에서 살고 싶어 할까요? 그래도 가장이라서 견뎌야 합니다. 이런 모습을 가장 직설적으로 말하는 인물은 철호의 딸입니다. 철호의 딸은 삼촌 영호가 신발 사준다는 말에 "거짓말"이라고 합니다. 한두 번 속은 게 아닙니다. 이러다 보니 영호의 말은 씨알도 안 먹힙니다. 그렇다고 영호가 무뢰한은 아닙니다. 영호는 근처 충무로에서 근무하는 애인과 함께 하면서 일자리를 살펴봅니다. 한 번은 주연을 시켜주겠다는 감독의 제안에 드디어 돈 벌 곳이 나왔구나 했는데 영호를 캐스팅한 것이 아닌 영호가 총알 관통상을 당한 그 모습을 탐했습니다. 이는 상이용사에 대한 조롱입니다. 이에 영호는 결심을 합니다. 1961년 당시 서울을 담고 있는 영화 모든 스튜디오 촬영을 제외한 영상과 사진은 기록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원하든 원치 않든 그 시대를 기록합니다. 그래서 어떤 영화는 영화 자체는 좋은 평가를 못 받았지만 당시 한국을 기록한 기록성을 인정받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한형모 감독의 1966년 이 요즘 큰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 기록이라는 것이 요즘은 돈 한 푼 안 들지만 당시는 엄청난 돈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그 시절을 담은 사진과 영상물은 높은 가치를 받고 있죠. 영화 은 1960년 서울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서울역 일대를 주로 담고 있습니다. 영호가 은행을 털던 상업은행 남대문지점은 현재 흥국생명 남대문빌딩입니다. 숭례문 바로 앞에 있는 건물이죠. 이외에도 지금은 사라진 반도호텔과 미도파도 나옵니다. 미도파는 현재 롯데 영플라자로 바뀌었죠. 명동 앞에 있습니다.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오리온 드로프스와 카라멜이 붙어 있는 철길 장면입니다. 영호는 군 시절 자신을 간호했던 설희를 만나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은 삼각지역 인근 철길입니다. 지금도 오리온 제과 건물이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당시 서울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조선호텔과 환구단도 담겨 있습니다. 다소 심심한 초반 그러나 몇몇 장면과 후반의 비극적 놀라움이 가득하다 왜 이 영화를 영화 평론가들이 극찬을 할까요? 영화 평론가들이 극찬하고 대중은 별로라고 하는 영화도 꽤 많지만 이 영화는 댓글을 보면 극찬 일색입니다. 저는 영화 초반은 이 영화가 왜 극찬을 받을까 했는데 후반의 영호가 은행을 털고 여러 장면이 나오면서 비극의 깊이가 한도를 초과합니다. 가장 쇼킹하고 놀란 장면은 청계천 복개 공사를 하던 시절 받침목을 하고 있는 청계천 지하를 지나는데 아기를 업은  어머니가 목을 매고 죽은 장면은 충격 그 자체입니다. 얼마나 살기 어려우면 스스로 그것도 아이를 안고 죽었을까요? 철호나 영호가 당시 20대였다고 치면 지금은 90대일 겁니다. 그래서 지금이 80,90대 분들은 엄청난 고통 속에서 청년기를 보냈을 겁니다. 이분들의 고통이 한 장면에 훅 들어오네요. 이 쇼킹함에 영호의 돈다발을 들고 튀는 것이 홍콩 누아르 영화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이외에도 양공주 짓을 하다가 경찰에 걸려서 오빠 철호가 여동생을 데리고 나오는 장면은 딮포커스로 담아서 철호와 여동생 명희가 멀찍이 떨어져서 걷는 장면을 옆으로 따라가면서 잡는 장면 등등 구도와 시퀀스가 꽤 흥미롭습니다. 이는 당시에 이런 과감한 구도와 역동적인 카메라 워크를 담았다는 것이 좀 놀랍네요. 소설에 있지만 영화에 없는 결정적 장면 영화의 핵심 이야기는 영호 입에서 나옵니다. 영호가 형처럼 바른생활 사나이로 사는 것이 정답은 아니라면서 사회에 대한 불만을 토로합니다. 양심은 손끝의 가시라서 그냥 따끔할 뿐이고 윤리는 나일론 빤스 같은 것이라서 티도 안 나는 것이고 관습은 리본 같은 것이라고 예쁘지만 없어도 되는 것이라는 명 문장을 말합니다. 이게 소설에는 있는데 영화에서는 대충 지나갑니다. 영화가 가위질당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너무 직설적으로 느껴지니까요. 또한 너무 노골적이고요. 이 장면이 없다 보니 아쉽더라고요. 아무튼 영화에서 영호는 형 철호에게 그렇게 살아봐야 거지꼴은 못 면한다면서 한탕을 외칩니다. 그렇게 영호는 은행을 텁니다. 소설에서는 강도짓이라고 나오지만 영화는 각색을 통해서 은행을 텁니다. 이후 비극은 계속됩니다. 철호는 남을 위해서 아니 가족을 위해서 아픈 이를 참아가면서 살다가 처음으로 자신을 위해서 삽니다. 아픈 이를 뺍니다. 그러나 이처럼 가족은 뽑아서 버릴 수가 없습니다. 치매 걸린 노모가 있는 해방촌, 아내가 죽은 병원 그리고 동생이 잡혀 들어간 경찰서를 나라시 택시에서 이리저리 외칩니다. 오발탄이라는 소리는 이 나라시 불법 택시에서 나온 대사입니다. 오늘 오발탄 같은 손님을 태웠어! 이 죽지 못하고 무거운 삶의 어깨에서 축 늘어진 철호의 모습이 참 애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에 대한 애증이 있습니다. 증오하지만 동시에 버릴 수 없는 가족. 반대로 사랑하지만 너무 기대는 건 부담스러운 가족. 철호에게 가족은 아픈 이 같은 존재입니다. 뽑아버릴 수 있지만 안고 가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참 답답한 영화이지만 당시 1950년대의 북한보다 못 살았던 시대의 비극을 너무 잘 그렸습니다. 엄청나다는 느낌은 없지만 그럼에도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가 말하는 시절을 목격하는 힘이 아주 강한 영화 오발탄입니다. 오발탄은 유튜브 한국고전영화 채널에 올라와 있습니다. HD로 복원해서 깔끔한 화질로 무료 감상이 가능합니다. 유튜브에서 '오발탄' 검색하면 1분 40분짜리 영상이 바로 복원된 '오발탄'입니다. 별점 : ★ ★ ★ ★ 40자 평 : 1950년 후반의 한국 사회를 그대로 박제한 놀라운 기록 예술 영화 오발탄 가난한 계리사로 한 집안의 가장 철호(김진규)는 정신착란증을 앓고 있는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그의 아내(문정숙)는 만삭의 몸으로 생활의 고단함에 찌들려 살고 잘먹지 못해 영양실조에 걸려있다. 남동생 영호(최무룡)는 한국전쟁으로 부상을 입고 제대한 청년으로, 상이 군인들과 어울려 다니며 울분을 참지 못하고 불안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의 여동생(서애자)은 밤이면 짙게 화장을 하고 식구들 몰래 양공주 일을 한다. 막내 아들은 빈곤을 견디지 못해 신문팔이로 나선다. 철호는 만성 치통으로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치과에 갈 수 없는 비참한 상황이다. 견디다 못한 동생 영호는 마침내 권총을 마련하여 은행을 털 결심을 한다. 병상에 누워있는 노모는 비행기의 폭음 환청에 시달릴 때마다 놀란 듯 벌떡 일어나서 "가자, 가자"를 외친다. 아내는 출산일이 되어 병원에 갔으나 난산 끝에 절명하고, 은행강도에 실패한 동생은 형사에 붙잡힌다. 치통을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치과에 간 철호는 앓던 이를 뽑고 택시에 몸을 싣지만 잘못 발사된 오발탄처럼 갈 곳이 없다. 평점 8.9 (1961.04.13 개봉) 감독 유현목 출연 김진규, 최무룡, 서애자, 문정숙, 노재신, 김혜정, 윤일봉, 유계선, 남춘역, 박경희, 고설봉, 지방열, 최명수, 이룡, 이대엽

민주주의 온기가 가득했던 노무현 시민센터

사진은 권력이다|2025년 1월 9일|사진

온실 속에 있을 때는 내가 온실에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온실에서 나와서 혹독한 추위를 경험하면 아! 그때 내가 있었던 곳이 온실이었구나를 깨닫게 되죠. 전 후회를 잘 안 합니다. 어차피 당시에는 그게 최선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딱 한 분에 대해서는 좀 후회를 합니다. 물론 저도 변명거리는 있습니다. 전 세상이 앞으로 전진하는 줄 알았습니다. 경제발전을 넘어서 민주주의까지 완성한 거의 유일한 나라인 한국이 미국이나 유럽의 국가처럼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가 될 줄 알았죠. 또한 당시는 남북통일 모드도 가동 중이라서 한민족은 앞으로 날아오르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좀 심하게 비판한 적도 있긴 합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그때가 대한민국 최고의 태평성대였구나를 깨닫게 되네요. 한 20대 청년이 물어봅니다. 언제가 가장 좋았었냐고. 바로 대답했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절이라고요. 경제적으로는 이명박 정권이 더 낫긴 했습니다. 사회 인프라의 대대적인 변화는 2010년 초반에 많이 실현되었고 저도 그때 나라가 부강 해졌구나를 느꼈으니까요. 창덕궁 돌담길 옆 노무현 시민센터 창덕궁 돌담길의 원서동에는 노무현 시민센터가 있습니다. 여기 원래 불교 박물관인가 미술관인가 있던 곳인데 여기를 매입하더니 이렇게 거대한 건물을 지은 것이 한 3년 전입니다. 언제 한번 간다 간다 하고 시간이 없어서 지나치기만 했네요. 그러다 시간이 나서 들어가 봤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상징색인 노란색의 바람개비가 가득 보이네요. 건물은 독특한 외형입니다. 입구에는 노무현 재단 정기 후원 가입 부스가 있네요. 많은 분들이 정기 후원을 하고 있어요. 전 노무현 정신을 경험해 봤잖아요. 시민들의 깨어 있는 파워가 세상을 바꾼다는 걸 직접 목격했고요. 물론 깨시민이라고 조롱하는 인간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살아보니 그런 나와 다른 정치적 지향점을 가진 사람들과 토론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걸 요즘 깨달았습니다. 그나마 나이 젊은 사람들은 대화를 통해서 서로 양보하고 생각을 수정할 이유도 여유도 있었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아무 생각이 없거나 젊은 꼰대들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내린 생각의 결론은 나와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과는 토론하지 않는다입니다.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닌데 세상이 그렇게 됐습니다. 이미 결론은 다 내리고 거기에 맞춰서 생각을 하는 인간들 투성이거든요. 따라서 그런 것에 에너지 쏟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생각이 고정되면 항상 썩기 마련입니다. 고인물이 달리 냄새가 나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전 진보 깊숙이 들어가지도 않습니다. 그냥 주변인으로 머물면서 진보도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그러나 노무현은 다릅니다. 노무현은 진보의 상징 인물이 되었지만 지금은 그냥 노무현은 노무현입니다. 한 할아버지가 복도 끝에 앉아 계셨습니다. 누구나 들어와서 몸을 녹이고 생각을 확장하고 나갈 수 있습니다. 노무현은 행동하는 시민 정신을 참 많이 강조했고 실제로 수많은 시민단체들이 만들어지고 자기 목소리를 냈던 시기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이 중진국의 함정에 빠졌을 때 빠르게 1인당 GDP를 증가시킨 정권이 노무현 정권으로 2003~2008년 사이에 1인당 GDP 증가율이 무려 10,297달러였습니다. 이전 정부보다 81%나 증가했죠. 경제대통령이라고 했던 이명박 정부가 7.2%인 1,673달러, 수요일마다 드라마 보려고 관저에서 안 나왔던 박근혜 정부가 오히려 2,837달러로 11,5% 성장을 했습니다. 제가 서두에 말했지만 한국이 성장하는 느낌을 확실하게 줬던 시기가 김대중, 노무현이라는 이유가 경제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김대중 정부가 1인당 GDP 증가액이 4,746달러로 59%, 이은 노무현 정부가 81%로 두 정부가 1인당 GDP를 무려 15,000달러 올려놓았습니다. 아직도 기억나요. 이런 노무현 정권에게 경제를 포기한 경포 대통령이라고 손가락질했던 정당이 당시 한나라당이었습니다. 지금은 내란 수괴 방탄을 자처하는 국민의 힘의 전신이죠. 제가 화가 나는 건 한나라당은 부끄러움을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박근혜 당 대표가 천막당사 쇼를 하고 무릎 사죄쇼도 했습니다. 그런데 국민의 힘은 쇼도 안 합니다. 제대로 된 사과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한남동 내란 수괴 관저 앞에서 성명문이나 44명이 모여서 낭독하고 있어요. 그러면 그런 신념이면 윤 수괴가 밥 먹고 가라고 했으면 밥을 먹죠. 그건 또 아니다 싶은지 안 먹고 나오더라고요. 내 인생 최고의 짜릿했던 대선인 2002년 대선 1층에는 대형 스크린에 영상이 틀어져 있는데 한참 봤습니다. 그리고 2002년 연말에 있었던 대선 내용이 나오네요. 지금은 박근혜 탄핵 때문에 대선이 봄에 개최되지만 원래는 겨울이었습니다. 12월 중순에 대선 투표를 했습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이 있던 그해는 정말 행복한 한 해였습니다. 2002년 연말에 김대중 정권 다음을 잡을 대선 후보로 이회창과 노무현이 나왔습니다. 여름만 해도 이회창의 압승이 예상되었습니다. 지금은 더 하지만 당시도 우익은 콘크리트 지지층이 30%는 깔고 가기에 조금만 잘하면 쉽게 대선을 장악할 수 있었습니다. 김영삼이라는 경제를 박살 낸 신한국당 출신 대통령이 나왔음에도 김대중 대통령이 김종필과 합당하고 별 쇼를 다 해서 겨우 겨우 당선이 됩니다. 아니 나라 경제 박살 낸 정권이 이름 바꾼다고 그걸 또 지지하는 국민들이 있는 나라입니다. 전 대한민국 국민 중에 아직도 조선시대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해요. 봉건주의 국가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기본 30%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국은 근본적으로 우익이 장악하는 시기가 길다고 느껴져요. 이는 갈수록 더 심해질 겁니다. 젊은 우익 세력이 커가고 있으니까요. 2002년 대선도 그랬습니다. 김대중 정부가 그렇게 심한 실정을 한 것도 아니지만 이회창 후보가 대쪽 이미지로 승승장구했습니다. 이에 민주당은 풀뿌리 대선 경선을 시작합니다. 전국을 돌면서 당원들의 투표를 통해서 노무현이라는 당시에는 가능성이 낮은 후보가 민주당 후보로 나옵니다. 그러나 힘에 부쳤고 이에 정몽준과 손을 잡으려고 했지만 정몽준이 대선 전날 손을 뿌리칩니다. 이때 망했다고 생각했죠. 그렇데 대선 투표 당일날은 위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아침나절은 노무현 후보가 밀렸습니다. 저 날 생각나요. 친구도 저도 주변 사람에게 투표하라고 네이트와 ms 메신저로 문자로 투표 독려 했던 것이 기억나네요. 그리고 점심 먹고 대역전이 일어납니다. 방송차량들이 이회창 후보 자택 앞에 모여 있다가 오후가 들어서 분위기가 바뀌자 서서히 노무현 후보 자택 앞으로 하나둘 모이기 시작합니다. 당선된 후에 대규모 호위 차량과 함께 이동하는 모습까지 생생하게 기억나네요. 1층에는 이렇게 쉬어갈 수 있는 휴게 공간이 있습니다. 지하로 가는 계단이 있어서 내려가 봤습니다. 지하층은 강연장과 세미나실이 있습니다. 다목적홀로 다양한 강의를 합니다. 노무현 시민센터가 뭐라고 정의하자고 하면 노무현 정신을 느낀다는 거창한 걸 지우면 그냥 인문학 공간이라고 느껴집니다. 우리가 정신적인 빈곤을 느끼는 이유가 우리 삶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시간이 없거나 그 기능이 저하되기 때문이 아닐까 해요. 그런 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강하게 나갈 때는 강하게 나가다가도 반성할 일이 있으면 반성을 합니다. 서민들과 시민들의 대통령이었죠. 우익들도 인정하는 것이 대통령이라는 권위를 허문 최초의 대통령이라고 하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에게 감화되었다고 하잖아요. 지하 2층인데 소원 트리가 있네요. 시설이 아주 아주 좋네요. 이번엔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 카페 공간에 올라가 봤습니다. 여기는 '커피 사는 세상'입니다. 잠시 들린 것이라서 커피는 주문을 안 했습니다. 커피도 팔지만 저같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따뜻한 물도 준비되어 있고 차도 마실 수 있습니다. 물론 무료입니다. 카페가 2층과 3층에 있는데 공부하는 분들도 많네요. 카메라로 촬영하다가 눈치가 보여서 좀 찍다가 스마트폰으로 전환했습니다. 3층 밖에는 발코니가 있는데 바람개비 마당이 보이네요. 노무현을 너무 신성시한다는 비판을 하는 분들도 있지만 전 큰 어른 같은 분이라서 좋아합니다. 그렇다고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역대 대통령 중에 가장 좋았습니다. 뭐든 가치는 상대적이죠. 이명박, 박근혜, 특히 윤석열을 겪어 보니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통령이기도 합니다. 당시는 왜 내가 화를 냈는지 왜 못마땅해했는지 지금은 좀 후회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전 이 나라가 앞으로 나아가는 줄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역사는 반복될 뿐입니다. 발코니에서 보니 창덕궁 담장과 그 너머도 보이고 허름한 집도 보이네요. 저 멀리 남산 타워도 보이네요. 이 원서동은 보고 갈 곳이 참 많습니다. 역사적인 공간도 많고요. 불편한 점도 있죠. 주차와 그 흔한 편의점도 약국도 저 인사동까지 내려가야 합니다. 그러나 풍광과 역사와 골목과 이런 공간이 있어서 바람 쐬고 싶을 때는 그냥 종로로 나옵니다. 서울에서 가장 서울 같지 않은 공간들이 가득합니다. 드라마 촬영 장소로도 많이 활용되는 동네이기도 하죠. 관광객들은 이런 곳을 보고 서울이 참 전통적인 공간이 많다고 느끼지만 여기만 이렇습니다. 그나저나 이 돌담 길의 주차장은 좀 없애면 안 될까요? 돌담길 걷는 재미가 없어요. 대형 지하 주차장 좀 만들어서 넣거나 주차 빌딩을 만들던가요. 그리고 여기는 영화 에서 정해인이 김고은이 탄 차를 따라가던 길의 마지막이 여기입니다. 영화 자체는 크게 잘 만든 영화는 아닌데 이상하게 제 모습이 투영되었는지 한동한 영화앓이를 했어요. 사람이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면 같은 것도 달리 보이게 되고 내 것으로 보이게 되잖아요. 그런데 정해인 같은 청춘이 지금도 참 많을 겁니다. 이 원서동은 한옥과 연립주택이 가득합니다. 고도제한이 있어서 아파트 못 지어요. 앞으로도 안 지었으면 해요. 거대한 북카페 같은 노무현 시민센터 한 나라의 지도자가 다독가이거나 애독가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책을 즐겨 읽는 사람치고 근원적으로 악한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책은 99%가 좋은 사람이 되라고 말하지 폭탄제조법, 사람 속이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은 없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다독가였죠. 반면 이명박, 박근혜, 특히 윤석열 수괴는 뭔 책을 읽었다는 소리를 못 들어 봤습니다. 노무현 재단에서 추천하는 책들이 가득 꽂혀 있네요. 책이 빈 걸 보면 누가 들고 가서 읽고 있나 봅니다. 계단을 내려가면 더 거대한 책장이 나옵니다. 책 꺼내서 읽을 수 있네요. 이 공간이 참 좋네요. 도서검색대에서 책을 검색하고 다 읽으면 여기에 놓을 수 있네요. 사람들의 흔적들이 참 많네요. 노무현을 기리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한국에 참 많습니다. 이분들이 참이다 옳다 선이다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세상 모든 것은 상대적이니까요. 다만 노무현을 기리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포용적입니다. 부끄러워할 줄 압니다.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모든 것들을 경멸합니다. 부끄러움이 사라진 세상이 전 참 견디기 힘드네요. 지금 보세요. 내란 일으키고 잘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보세요. 정말 경멸하고 혐오합니다.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이 책은 진보 진영에서 필독서가 되었죠. 이 현상은 전 아들 부시 대통령에게 가난한 켄터키 사람들이 지지하는 걸 보면서 의아해했던 부분이죠.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자 정당인 '국민의 힘'을 지지하는 사람들 다수가 가난한 노인 분들이 참 많아요. 부자들이야 이해가 가죠. 자기 이익에 부합하니까요. 이 책과 함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가 이 궁금증을 풀어줍니다. 다 프레임 전쟁이죠. 1층에는 굿즈 판매대가 있습니다. 시간 없어서 못 들렸는데 다음에는 저 노란 우산 하나 사야겠어요. 너무 예쁘네요. 요즘 노무현 정권에서 만든 2030 정책인가에 사람들이 놀라죠. 근미래의 한국에 대한 계획을 세운 것인데 앞날을 보는 뛰어난 보고서인가 해서 놀라워하고 있어요. 노무현 정권 때 저출산 계획을 만들었으니까요. 다양한 책 추천도 참 잘 받았습니다. 눈 오는 날이었는데 참 온기를 많이 느끼고 왔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