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스님 극락왕생

<룸 237>

By  | 2017년 7월 11일 | 
<룸 237>이란 다큐멘터리를 봤다.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의 세부를 음모론자의 시선으로 세밀하게 분석하는 다큐멘터리다. <샤이닝>이 무엇이든 의미하고 숨기고 있다는 가설을 전제하는데, 가장 유명한 서브텍스트인 인디언 학살로 출발한다. 식료품 창고에 진열된 통조림에 그려진 인디언 그림이 보이고 코멘터는 담배 브랜드 아이콘으로부터 인디언 학살을 의미화한다. 그 외에도 홀로코스트, 아폴로 11호 달 착륙 음모론(...) 역사가와 저널리스트, 영화감독 등 6명의 코멘터가 돌아가면서 <샤이닝>에 관한 제 생각을 털어놓는 형식은 재밌다. 샤이닝을 3일동안 봤다는 사람, 샤이닝이 삶을 바꿨다는 사람, 샤이닝은 스탠리 큐브릭이란 천재가 너무 심심한 나머지 만들

근황

By  | 2017년 7월 27일 | 
1. 오자와 마사치의 <전후 일본의 사상공간>을 읽었다. 하나 궁금한 게 있다. 일본 학자들은 '전후 일본'을 폐쇄된 시공으로 그려낸다. 이를테면 가라타니 고진은 쇼와+다이쇼 60년을 통째로 묶어서 단일한 시공으로 간주하고, 이 쇼와+다이쇼가 다시금 헤이세이(1989년 이후 일본) 시대에 반복된다는, 쇼와-헤이세이 60년 주기설을 이야기한다. 오자와 마사치는 이 논변을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헤이세이 시대의 당대(1998년)을 1930년대의 반복으로 위치시켜, 당대를 '전전'이라고 명명하는 기상천외한 주장을 펼친다. 즉 60년을 주기로, 폐쇄적인 시공이 역사적 사건을 동일하게 겪는다는, (아리기를 연상케하는) 주기론이다. 일본 현대 미술을 다루는 <일본.현대.미술>에서도 마찬가지로

본 영화

By  | 2017년 7월 18일 | 
<그 후><애니씽 엘스><매치 포인트><회로><가르시아><미국의 암흑가><선셋 대로><드라이브><춘천 춘천><밤섬 해적단><노후 대책 없다><죽인 것은 누구인가><위험한 일은 돈이 된다><타이페이 스토리><소나티네><바이올런트 캅><야수는 죽어야 한다><O 후작 부인>

<물질적 유령 2장 : 내러티브 시퀀스>

By  | 2017년 7월 3일 | 
2016.07.29. <물질적 유령 2장 : 내러티브 시퀀스> 리뷰 <물질적 유령>의 2장 <내러티브 시퀀스>에서 질베르토 페레즈는 영화적 내러티브의 자리를 드라마(drama)와 내러티브(narrative) 사이에 위치시킨다. 페레즈는 내러티브를 회화의 동시성(simultaneity)과 비교하면서, 내러티브의 성격을 순차적(sequential)이라고 설명한다. 동시성은 폐쇄적이고 자기-충족적인 반면에 시퀀스란 무한정의 덧셈을 허락하는 것이다. 이한범은 내러티브의 성격을 “임의적/인위적(arbitrary/artificial) 열려있으며(open-ended) 잠재적으로 지속되는(continuable), 혹은 불완전한(incomplete) 구조”로 정의하는데

밤섬해적단과 한국 영화 평론에 관한 생각

By  | 2017년 11월 17일 | 
어떤 영화를 비판하려면, 특히 그 영화가 다큐멘터리라면, 사려 깊고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편이 맞는 것 같다. 다큐멘터리가 다루는 사안과 그 사안에 관련된 당사자들을 감안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지난 8월 아트시네마에서 <밤섬해적단>을 본 후에 <밤섬해적단>을 비판하는 짧은 글을 썼다. 괜한 글을 썼다고 생각하다가 씨네21에 실린 김소희 영화평론가의 <밤섬해적단> 평문을 읽고 나서 생각을 고쳤다. <밤섬해적단>에 대한 본격적인 평문을 읽기 전에, 나는 <밤섬해적단>이 보여주는 과시적인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관련된 평문 대부분이 영화 자체보다는 밤섬해적단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상했던 대로 김소희 평론가는 그들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