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er story

#9. 우기의 시작

By  | 2014년 4월 16일 | 
#9. 우기의 시작
며칠 전, 우기의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 비가 내렸다. 2월 중순, 호치민에 도착한 뒤로 가장 겁을 내어왔던 시기가 다가오고있다. 여름을 좋아하는 내가, '베트남은 항상 썸머네요' 라며 즐거워할 때마다 현지의 친구들은 '베트남도 계절이 두 개야' 라고 답해왔다. 건기와 우기. 알다시피 열대지방의 우기에는 매일 한 차례씩 스콜이 내린다. 스콜이라고 하면 고등학교 매점에서 여름만 되면 얼려서 파는 복숭아맛 음료수가 떠올라, 시원하다! 라고 느껴지기 마련이지만, 실제의 스콜은 그것 만큼 시원한 느낌은 아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후련한 느낌에 가까운. 스콜이 내리기 직전의 공기는 소름 끼칠 정도로 무겁다. 온 대지에 수분이 가득 차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과 짜증과 피곤이 다 함께

#6. 근황

By  | 2014년 3월 14일 | 
01.뭐든 혼자 하는 것이 익숙해지고 편해지는 순간이 왔다. 저녁을 먹으러 홀로 식당에 들어가 자연스레 앉아 미리 준비한 메모를 보여주며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옆 자리에 이모와 조카의 관계로 보이는 한국인이 먼저 와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3살~4살 가량 되어 보이는 아기는 한 시도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고 가게 안을돌아다녔고, 그 모습이 귀여워 '안녕 아가야' 하고 인사를 걸었다. 쑥쓰러운 듯 놀란 듯 묘한 표정을 보여주는 아기에게 그 이모는 '어? 한국분이신가봐요. OO아 한국이모다, 한국이모' 라며 인사를 시켰고 나는 웃으며 아직 이모까지는 아니지, 언니야 언니 라고 속으로만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 이모, 언젠가 다시 만나요- 다이남 쌀국수에서.

#10. 사소한 것들

By  | 2014년 4월 25일 | 
#10. 사소한 것들
뜬금없지만 여러분들에게 사이공의 늦은 밤을 선물하고 싶다. 아무래도 내게는 호치민보다는 사이공이라는 이름이 더 사랑스럽다. 한국으로 보낸 엽서에 찍힌 스템프가 사이공이라고 좋아하던 나무처럼 말이다. 어찌되었건 나의 밤 선물이 어느 날 문득, 친한 친구가 내게 제주도의 일출을 선물했을 때 만큼의 감동은 아닐 것이 분명하지만, 그래도 먼 이국 땅에서 느끼는 나의 어설픔 정도는 전해지지 않을까 생각하며. 나에겐 제주도의 일출을 머금은 녹차맛 초콜릿보다 몇 갑절 더 달았던 그 선물은 사라지지도 녹아 없어지지도 않는다. 얼마나 낭만적인가. 이 곳, 사이공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간 후 가장 그리워 할 것들은 역시 그렇게 사소한 것들이겠지. 이른 아침 아파트를 나오자 마자 '엠, 택시?' (

#8. 별이 뜨던 바다에서

By  | 2014년 3월 31일 | 
#8. 별이 뜨던 바다에서
처음 마주한 베트남의 바닷물은 덥고 짰다. 그리고 그 익숙한 짠 맛이 나를 안심하게 만들었다. 내가 떠나온 이 곳이 그리 얼토당토 않은 곳은 아니구나 하는 다행스러운 생각 말이다. 바닷물은 비슷한 농도로 짭짤했으며 백사장에 박힌 조개는 발바닥을 찔렀고, 밤이면 별이 들어와 박혔다. 그래, 별이 떴다. 세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별이 머리 위에서 속닥거리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다니는 회사의 워크샵으로 간 베트남 남부 해안에 위치한 호짬 비치 리조트(Ho Tram Beach Resort)는 기대보다 훌륭했고, 운이 좋은 나는 업그레이드 된 스위트 룸에서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창문을 열고 침대에 누워있다보면 바람이 들어와 코 끝을 건

#7. 한가로운 호치민의 야경 앞에서

By  | 2014년 3월 17일 | 
#7. 한가로운 호치민의 야경 앞에서
덥다. 얼마나 더운가 하면 후덥지근한 기운에 잠많은 내가 7시 전에 잠에서 깰 정도로 덥다. 눈도 뜨지 못한 채로 주섬주섬 에어컨을 틀어야 할 정도로 점점 더 덥다. 잔인하게도 더운 만큼 세상은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사진은 침대에 누워 바라본 3월 16일 아침의 하늘. 최근들어 다가오는 핫-썸머와 스콜이 내리는 우기가 점저 코끝서부터 느껴지고 있다. 그럴 수록 늘어지기 쉬운 나 자신을 여기저기 끌고 다니려 노력하는 중에 있다. 굳이 책을 읽으러 먼 장소까지 찾아가고, 사람을 만나러 늦은 밤거리를 헤메는 이유이다. 2014년 3월 16일 아침 눈 뜨자 마자 바라본 하늘 최근 비슷한 또래ㅡ그래봤자 내가 한참 어리지만ㅡ의 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