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실베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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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스버그(Harrisburg)에 있는 '예술궁전'이란 별명의 펜실베니아 주의사당(Pennsylvania State Capitol)
펜실베니아의 주도는 처음에는 누구나 다 아는 필라델피아였지만, 1799년에 아미시 마을 부근의 랭카스터(Lancaster)로 옮겼다가, 1812년에 현재의 해리스버그(Harrisburg)가 되었다. 처음 붉은 벽돌로 소박하게 지었던 의사당은 1897년에 화재로 완전히 파괴되었고, 두번째는 자금 부족으로 완공이 미뤄지다가, 공모를 통해 당선된 건축가 조셉 휴스턴(Joseph Huston)의 새로운 설계에 따라 1902년에 400만불의 예산으로 미완의 건물을 증축해서 1906년에 완공된 세번째 건물이 지금의 펜실베니아 주의사당(Pennsylvania State Capitol)이다. 의사당 지붕만 멀리서 보며 해리스버그를 지나간게 10번도 넘을텐데, 마침내 '4차 듣보잡 여행'의 두번째 목적지로 정면에서 마주할 수 있었다. 사진에 다 들어오지 않는 건물의 좌우 길이는 160 m이고, 중앙부의 최고 높이는 83 m나 된다. 당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있어서 계단 가운데 트리가 만들어져 있고, 잔디밭 언덕에도 장식들이 놓여있기는 했는데, 하얀 판자를 끼워서 만든 장식들이 쓰러진 것도 많아 상당히 부실해 보였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연두색 타일로 덮은 중앙돔은 바티칸 성베드로 성당을 참고한 것이라 하며, 그 위에 Commonwealth를 의인화한 높이 4 m의 조각상이 금박으로 덮여있다. 중앙의 기둥들이 쌍으로 만들어져 있는 보자르(Beaux-Arts) 건축양식인데, 그 아래쪽의 좌우로 하얀 대리석 조각 작품이 눈에 띈다. 건물 완공 후 5년이 지나서 입구 좌우로 설치된 이 조각작품들은 모두 약 30명의 남녀가 대부분 나체로 만들어져서 논란이 되었다고 하는데, 북쪽 그룹은 Love and Labor: The Unbroken Law 제목으로 벽면의 농부 남녀를 중심으로 사랑, 교육, 자녀, 종교, 미래 등의 긍정적인 감정을 나타내고, 남쪽 그룹은 The Burden of Life: The Broken Law 제목으로 벽면의 남녀는 아담과 이브이고 그 앞으로 죽음, 노동, 슬픔, 절망과 함께 위로와 희망을 나타낸다는데, 혹시라도 더 궁금하신 분은 여기를 클릭해서 영문 위키피디아 내용을 직접 읽어보시기 바란다. 그리고 사진이 잘 안 나와서 그렇지 최고급 이탈리아 카라라(Carrara) 대리석을 깍아서 만든 작품이다. 의사당 내부는 일반에 매일 개방되고, 정해진 시간에 진행되는 무료 투어에도 참여할 수 있다는 안내판이다. 정문으로 들어가 간단한 보안검색을 거치면 바로 중앙 로툰다(Rotunda)가 나오는데...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가 중앙에서 불을 밝히고 있었다. 트리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지만, 정면으로 넓은 대리석 계단이 중간층에서 좌우로 갈라져 2층으로 올라가는데, 파리의 오페라 하우스를 역시 따라한 것이란다. 1906년 개관식에 참석했던 루스벨트 대통령이 "가장 멋진 의사당"이라 칭찬했고, 곳곳의 화려한 장식 및 많은 조각과 벽화, 스테인드글래스 등으로 '예술의 궁전(Palace of Art)'이라 불리기도 한단다. 로툰다 주변으로 작은 전시공간들이 만들어져 있는데, 중앙돔 꼭대기에 세워진 커먼웰스 동상의 복제품 등을 보여주고 있다. 견학을 온 초등학생들 틈에 끼어서 설명을 들으며 따라 다녀볼까 하다가... 그냥 브로셔를 들고 혼자 돌아다니기로 했다. ㅎㅎ 사방의 반원형 벽화는 "현대 문명에 대한 펜실베이니아의 영적 및 산업적 기여"를 상징한다고 하며, 그 사이의 원형에 그려진 인물들은 각각 예술, 정의, 과학, 종교를 설명한다. 그리고 위아래로 보이는 글귀는 펜실베니아 식민지를 만든 윌리엄 펜(William Penn)의 소위 '거룩한 실험(Holy Experiment)' 선언문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2층의 주지사 사무실(Governor's Office)을 들어가 볼 수 있다고 해서 찾아와 봤다. 나무로 마감된 벽과 그 위의 벽화가 크리스마스 장식과 어울려서 아늑한 느낌을 줬는데, 사진애는 안 보이지만 비서와 경비원(?) 두 명이 실제로 근무하는 책상이 놓여있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옛날 집무실이었던 이 방은 현재는 리셉션룸으로 불리며, 저 책상에서 중요발표나 조약체결 등의 행사를 진행하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단다. 미국 의사당에 오면 꼭 찾아봐야 하는게 상하원 회의실인데, 이 때는 관람석 입구를 찾지 못해서 헤매다가 건물을 관통해 반대편 출구로 나갔다. 신관이라 할 수 있는 이스트윙(East Wing)은 1987년에 추가로 만들어졌고, 분수대 너머의 공원과 기념탑은 펜실베니아 출신의 군인들을 기리는 것이라 한다. 뒤돌아 보면 이렇게 생겼는데, 원래의 건물과 같은 버몬트 화강암을 외장으로 써서 아주 조화롭게 연결된 느낌이다. 밖으로 빙 돌아서 주차한 곳으로 그냥 돌아갈까 하다가, 상하원 회의실을 다시 찾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다시 보안검색을 거쳐 안으로 들어갔다. 해답은 처음 들어왔던 입구의 바로 옆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야만 관람석과 연결된 4층 중앙부로 올라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상원 회의실(Senate Chamber)은 조명을 켜놓지 않아서 어두웠는데, 특히 벽의 몰딩 등은 아일랜드에서만 나오는 특별한 녹색의 코네마라(Connemara) 대리석을 수입해와 장식한 것이라 하며, 전면을 가득 채운 벽화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반대편의 하원 회의실(House Chamber)은 방금 견학생들이 다녀가서 그런지 불을 환하게 켜놓은데다, 전체가 금빛으로 번쩍여서 유럽 황실의 궁전이나 오페라 극장을 보는 듯 했으며, 여기 벽면 아래쪽을 덮은 것은 또 프랑스에서 수입한 피레네(Pyrenees) 대리석이란다. 이외에도 대법원(Supreme Court)을 또 관람이 가능하다고 되어 있지만, 주차 시간이 다 되어 가는 듯 해서 1층으로 바로 내려갔다. 중앙 계단의 좌우를 밝히던 전기 조명과 결합된 조각은 비슷한 시기에 같은 양식으로 지어진 미의회 도서관인 제퍼슨 빌딩을 떠올리게 했다. 이렇게 화려한 건물 뒤에는 흑역사도 있는데, 최종 공사비가 원래 계획의 3배가 넘는 1,300만불이나 들어서 비난 여론과 함께 조사가 진행되었고, 결국 건축가 휴스턴과 다른 관료 4명이 비용을 부풀려 뇌물을 받은 혐의로 유죄가 확정되어 2년간 옥살이를 했단다~ 이렇게 그 날의 두번째 목적지 방문을 마치고, 이제 필라델피아 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다시 고속도로를 달렸다. P.S. 이 글이 2024년의 마지막 포스팅이네요~ 올해도 위기주부의 블로그를 방문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즐겁고 안전하고 건강한 연말 보내시고, 을사년(乙巳年) 2025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미국 제34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대통령의 집과 농장이 보존된 국립사적지
3탄 동쪽 듣보잡 여행지 드라이브를 다녀온 지 일주일만에 다시 4탄을 또 다녀왔다. 아래와 같이 집에서 북동쪽으로 크게 시계방향으로 한바퀴를 돌았는데, 지도에는 7시간반 정도 소요된다고 표시되어 있지만, 마지막에 집으로 돌아오는 고속도로에서 심한 금요일 밤의 주말정체를 겪는 바람에 결국은 또 9시간 이상 운전대를 잡고 있어야 했다. 위기주부는 쉬는 날에 서울-부산 왕복에 해당하는 9시간짜리 드라이브 정도는 해줘야 피로가 풀리는 듯해서, 이건 취미를 넘어서 약간의 중독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ㅎㅎ 첫번째로 방문한 국립사적지의 이름이 제일 왼편에 씌여있는데, 이 곳의 이야기는 아래의 영화장면으로 시작한다. 2008년에 개봉했던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4탄 은 동서냉전이 최고조에 달했던 1957년이 배경으로, 영화 초반부에 소련 KGB에 납치되어 51구역에 끌려온 존스 박사의 "I like Ike"라는 대사가 한국 개봉관에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자막으로 번역되었다. (여기나 사진을 클릭해서 영상으로 보실 수 있음) '아이크(Ike)'는 바로 1953-61년에 재직한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애칭으로, 냉전시대에 반공을 기치로 당선되었던 그의 대통령 선거 구호가 바로 'I Like Ike'였다. 그의 간단한 이력은 워싱턴DC에 있는 아이젠하워 기념물(Dwight D. Eisenhower Memorial) 방문기에서 소개했으므로 넘어가고, 이제 펜실베니아에 있는 그가 평생에 유일하게 소유했던 전원주택(?)을 방문해보자~ 아이젠하워 국립사적지(Eisenhower National Historic Site)는 게티스버그 국립군사공원과 붙어있어서 함께 관리되는데, 위기주부가 게티스버그를 방문했던 2022년 봄까지는 비지터센터에서 셔틀버스를 타야만 방문이 가능했다. 하지만 최근에 큰 주차장을 만들고 여기 60년대 경비초소가 남아있는 후문쪽과 연결해서 이제는 차를 몰고 직접 들어갈 수 있다. 비포장의 일방통행로가 지금도 소를 키우고 있는 Farm 2 구역을 지나는데, 옛날에 농장 책임자 가족이 살던 '목동의 집(Herdsman's Home)'이 현재 공원본부로 이용되고 있다. 안내판 그림에 노란 별로 표시된 일반 주차장에 역시 1등으로 주차를 하고, 왼편의 아이젠하워 농장(Eisenhower Farm)이라 표시된 구역을 걸어서 차례로 둘러본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5성 장군으로 연합군을 지휘했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아이젠하워는 평생 군대에서 제공되는 숙소에서 살았기 때문에, 1948년 컬럼비아 대학교 총장이 된 후에야 집을 물색하기 시작해서 1950년에 구입한 이 집과 농장이 그들 부부가 소유한 처음이자 마지막 부동산이란다. 현재로 약 50만불에 해당하는 당시 4만불의 구입가에는 1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낡아빠진 건물들과 함께 닭 600마리 및 소 25마리도 포함되었다고...^^ 정해진 시간의 무료 내부 가이드투어에 참가할 수도 있는데, 위기주부는 바쁜 드라이브 일정상 그냥 아침 일찍 외부만 둘러보는 것으로 처음부터 계획을 세웠다. 아이젠하워가 1951년에 NATO 총사령관이 되어 유럽으로 다시 떠나서 방치되다가, 1953년에 공화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된 후부터 리노베이션이 시작되어서 1955년에 대부분의 건물이 새로 완공되었는데, 그 비용이 당시로 25만불에 달했다고 한다. 집앞 잔디밭에 헬기 착륙장(Helicopter Landing Pad)이 있었는데, 안내판의 사진은 1960년에 프랑스의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 대통령과 10분 거리인 캠프 데이비드(Camp David)에서 정상회담을 한 후에 보다 친밀한 대화를 위해 자신의 집으로 함께 헬기를 타고 온 모습이다. 옛날 차고를 개조했다는 이 건물은 이름이 게스트하우스인데, 그렇다고 드골 대통령같은 '손님'을 여기 재운 것은 아니고... 캠프 데이비드 이름의 바로 그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손자 데이비드가 개인 숙소로 주로 이용을 했단다. 농장의 정문쪽에 공원 간판이 세워져 있고 커다란 헛간(Barn)이 먼저 나오는데, 그 앞으로 돌출된 작은 건물이 대통령 경호요원들의 사무실로 이용된 곳이라고 한다. 그 내부에는 60년대 통신설비와 CCTV 등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어서 오픈 시간에는 볼 수 있단다. 저 쪽으로는 아이젠하워가 좋아한 스키트(Skeet) 사격 연습장이 만들어져 있다지만 끝까지 걸어가보지는 않았고, 부근에 높은 지대가 전혀 없는 특성상, 주변 감시를 위해 높은 망루가 입구쪽에 만들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아이젠하워는 대통령 퇴임 후에 계속 여기 살다가 생전인 1967년에 국립공원청에 기증을 했고, 2년 후에 그가 사망하자 바로 국립사적지로 지정이 되었다. 하지만 아내 Mamie Eisenhower가 계속 여기서 살기를 원했기에, 1979년에 그녀가 죽은 이듬해인 1980년부터 일반에 공개되었다. 이제 헛간에서 집쪽으로 돌출된 부분에 만들어진 차고(Garage)로 가보자. 차고 역시 이른 시간이라 문이 닫혀 있었지만, 다행히 유리창이 있어서 내부를 들여다 보고 겨우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이 크라이슬러에서 특별 제작 후 개조된 1955 Crown Imperial Limousine은 아이젠하워가 공식적인 이동에 가장 많이 이용한 차량이라 한다. 그 옆의 가운데는 퇴임 후 직접 몰고 동네를 다녔다는 뷰익 승용차가 있었고, 지금은 사라진 자동차 회사인 크로슬리(Crosley) 차량을 개조한 이 오픈카는 집에 오는 손님들을 태우고 농장을 천천히 돌아보는 용도로 쓰였다는데, 흑백 사진 속 뒷자리에 아이젠하워와 나란히 앉아서 하얀 모자에 시가를 물고 있는 사람은 윈스턴 처칠이다. 대통령 아이젠하워가 집에 있을 때는 성조기가 게양되었고, 퇴임 후에는 다시 5성 장군 깃발이 펄럭였다는 깃대의 옆으로는 퍼팅그린이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하얀 펜스 너머로 멀리 점점이 보이는 까만 것들은 이 농장에서 개량된 블랙 앵거스 품종의 소들로, 캔사스 시골에서 목장일을 하며 자란 아이젠하워는 여기서 소를 키우는 것에 진심이었다고 한다. 대통령 문양이 새겨진 종이 뒷마당으로 내려오는 양쪽 계단에 하나씩 설치가 되어 있었는데, 저 손잡이를 잡아 흔들어 종소리를 들어보고 싶은 것을 참느라 고생했었다는...ㅎㅎ 마지막으로 온실과 그 옆으로 정원이 있는데, 겨울철이라 그런지 거의 관리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대통령 재임시에도 여기서 부부가 함께 키운 꽃으로 집을 장식하고 채소를 식탁에 올렸는데, 가끔은 꽃과 채소를 백악관까지 헬기로 공수해서 자랑을 하기도 했단다. 저 파란색 차는 아침부터 계속 세워져 있으니까 직원이 안에 있다는 말인데, 똑똑 문 두드려서 안에 좀 보여달라 할걸 그랬나? 나중에 계절이 좋을 때 아내와 다시 방문해서 소련 서기장 흐루쇼프(Khrushchev , 흐루시초프)와 앉아서 담소를 나눴다는 거실 등도 둘러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차를 몰고 출구로 나갔다. 아이젠하워 국립사적지를 나가서 다시 15번 국도를 타는 길은 게티스버그 국립군사공원을 관통하기 때문에 도로 옆으로 이런 동상과 대포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2022년 봄에 위기주부가 자동차로 게티스버그를 둘러볼 때 빠트린 구역들을 한 번 찾아가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계획대로 움직여도 빠듯한 드라이브라는 것을 알기에 바로 1시간 거리의 다음 목적지로 이동을 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미국 제34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대통령의 집과 농장이 보존된 국립사적지
3탄 동쪽 듣보잡 여행지 드라이브를 다녀온 지 일주일만에 다시 4탄을 또 다녀왔다. 아래와 같이 집에서 북동쪽으로 크게 시계방향으로 한바퀴를 돌았는데, 지도에는 7시간반 정도 소요된다고 표시되어 있지만, 마지막에 집으로 돌아오는 고속도로에서 심한 금요일 밤의 주말정체를 겪는 바람에 결국은 또 9시간 이상 운전대를 잡고 있어야 했다. 위기주부는 쉬는 날에 서울-부산 왕복에 해당하는 9시간짜리 드라이브 정도는 해줘야 피로가 풀리는 듯해서, 이건 취미를 넘어서 약간의 중독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ㅎㅎ 첫번째로 방문한 국립사적지의 이름이 제일 왼편에 씌여있는데, 이 곳의 이야기는 아래의 영화장면으로 시작한다. 2008년에 개봉했던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4탄 은 동서냉전이 최고조에 달했던 1957년이 배경으로, 영화 초반부에 소련 KGB에 납치되어 51구역에 끌려온 존스 박사의 "I like Ike"라는 대사가 한국 개봉관에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자막으로 번역되었다. (여기나 사진을 클릭해서 영상으로 보실 수 있음) '아이크(Ike)'는 바로 1953-61년에 재직한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애칭으로, 냉전시대에 반공을 기치로 당선되었던 그의 대통령 선거 구호가 바로 'I Like Ike'였다. 그의 간단한 이력은 워싱턴DC에 있는 아이젠하워 기념물(Dwight D. Eisenhower Memorial) 방문기에서 소개했으므로 넘어가고, 이제 펜실베니아에 있는 그가 평생에 유일하게 소유했던 전원주택(?)을 방문해보자~ 아이젠하워 국립사적지(Eisenhower National Historic Site)는 게티스버그 국립군사공원과 붙어있어서 함께 관리되는데, 위기주부가 게티스버그를 방문했던 2022년 봄까지는 비지터센터에서 셔틀버스를 타야만 방문이 가능했다. 하지만 최근에 큰 주차장을 만들고 여기 60년대 경비초소가 남아있는 후문쪽과 연결해서 이제는 차를 몰고 직접 들어갈 수 있다. 비포장의 일방통행로가 지금도 소를 키우고 있는 Farm 2 구역을 지나는데, 옛날에 농장 책임자 가족이 살던 '목동의 집(Herdsman's Home)'이 현재 공원본부로 이용되고 있다. 안내판 그림에 노란 별로 표시된 일반 주차장에 역시 1등으로 주차를 하고, 왼편의 아이젠하워 농장(Eisenhower Farm)이라 표시된 구역을 걸어서 차례로 둘러본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5성 장군으로 연합군을 지휘했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아이젠하워는 평생 군대에서 제공되는 숙소에서 살았기 때문에, 1948년 컬럼비아 대학교 총장이 된 후에야 집을 물색하기 시작해서 1950년에 구입한 이 집과 농장이 그들 부부가 소유한 처음이자 마지막 부동산이란다. 현재로 약 50만불에 해당하는 당시 4만불의 구입가에는 1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낡아빠진 건물들과 함께 닭 600마리 및 소 25마리도 포함되었다고...^^ 정해진 시간의 무료 내부 가이드투어에 참가할 수도 있는데, 위기주부는 바쁜 드라이브 일정상 그냥 아침 일찍 외부만 둘러보는 것으로 처음부터 계획을 세웠다. 아이젠하워가 1951년에 NATO 총사령관이 되어 유럽으로 다시 떠나서 방치되다가, 1953년에 공화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된 후부터 리노베이션이 시작되어서 1955년에 대부분의 건물이 새로 완공되었는데, 그 비용이 당시로 25만불에 달했다고 한다. 집앞 잔디밭에 헬기 착륙장(Helicopter Landing Pad)이 있었는데, 안내판의 사진은 1960년에 프랑스의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 대통령과 10분 거리인 캠프 데이비드(Camp David)에서 정상회담을 한 후에 보다 친밀한 대화를 위해 자신의 집으로 함께 헬기를 타고 온 모습이다. 옛날 차고를 개조했다는 이 건물은 이름이 게스트하우스인데, 그렇다고 드골 대통령같은 '손님'을 여기 재운 것은 아니고... 캠프 데이비드 이름의 바로 그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손자 데이비드가 개인 숙소로 주로 이용을 했단다. 농장의 정문쪽에 공원 간판이 세워져 있고 커다란 헛간(Barn)이 먼저 나오는데, 그 앞으로 돌출된 작은 건물이 대통령 경호요원들의 사무실로 이용된 곳이라고 한다. 그 내부에는 60년대 통신설비와 CCTV 등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어서 오픈 시간에는 볼 수 있단다. 저 쪽으로는 아이젠하워가 좋아한 스키트(Skeet) 사격 연습장이 만들어져 있다지만 끝까지 걸어가보지는 않았고, 부근에 높은 지대가 전혀 없는 특성상, 주변 감시를 위해 높은 망루가 입구쪽에 만들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아이젠하워는 대통령 퇴임 후에 계속 여기 살다가 생전인 1967년에 국립공원청에 기증을 했고, 2년 후에 그가 사망하자 바로 국립사적지로 지정이 되었다. 하지만 아내 Mamie Eisenhower가 계속 여기서 살기를 원했기에, 1979년에 그녀가 죽은 이듬해인 1980년부터 일반에 공개되었다. 이제 헛간에서 집쪽으로 돌출된 부분에 만들어진 차고(Garage)로 가보자. 차고 역시 이른 시간이라 문이 닫혀 있었지만, 다행히 유리창이 있어서 내부를 들여다 보고 겨우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이 크라이슬러에서 특별 제작 후 개조된 1955 Crown Imperial Limousine은 아이젠하워가 공식적인 이동에 가장 많이 이용한 차량이라 한다. 그 옆의 가운데는 퇴임 후 직접 몰고 동네를 다녔다는 뷰익 승용차가 있었고, 지금은 사라진 자동차 회사인 크로슬리(Crosley) 차량을 개조한 이 오픈카는 집에 오는 손님들을 태우고 농장을 천천히 돌아보는 용도로 쓰였다는데, 흑백 사진 속 뒷자리에 아이젠하워와 나란히 앉아서 하얀 모자에 시가를 물고 있는 사람은 윈스턴 처칠이다. 대통령 아이젠하워가 집에 있을 때는 성조기가 게양되었고, 퇴임 후에는 다시 5성 장군 깃발이 펄럭였다는 깃대의 옆으로는 퍼팅그린이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하얀 펜스 너머로 멀리 점점이 보이는 까만 것들은 이 농장에서 개량된 블랙 앵거스 품종의 소들로, 캔사스 시골에서 목장일을 하며 자란 아이젠하워는 여기서 소를 키우는 것에 진심이었다고 한다. 대통령 문양이 새겨진 종이 뒷마당으로 내려오는 양쪽 계단에 하나씩 설치가 되어 있었는데, 저 손잡이를 잡아 흔들어 종소리를 들어보고 싶은 것을 참느라 고생했었다는...ㅎㅎ 마지막으로 온실과 그 옆으로 정원이 있는데, 겨울철이라 그런지 거의 관리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대통령 재임시에도 여기서 부부가 함께 키운 꽃으로 집을 장식하고 채소를 식탁에 올렸는데, 가끔은 꽃과 채소를 백악관까지 헬기로 공수해서 자랑을 하기도 했단다. 저 파란색 차는 아침부터 계속 세워져 있으니까 직원이 안에 있다는 말인데, 똑똑 문 두드려서 안에 좀 보여달라 할걸 그랬나? 나중에 계절이 좋을 때 아내와 다시 방문해서 소련 서기장 흐루쇼프(Khrushchev , 흐루시초프)와 앉아서 담소를 나눴다는 거실 등도 둘러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차를 몰고 출구로 나갔다. 아이젠하워 국립사적지를 나가서 다시 15번 국도를 타는 길은 게티스버그 국립군사공원을 관통하기 때문에 도로 옆으로 이런 동상과 대포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2022년 봄에 위기주부가 자동차로 게티스버그를 둘러볼 때 빠트린 구역들을 한 번 찾아가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계획대로 움직여도 빠듯한 드라이브라는 것을 알기에 바로 1시간 거리의 다음 목적지로 이동을 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펜실베니아-뉴저지 경계의 델라웨어워터갭(Delaware Water Gap) 국립휴양지의 딩맨스(Dingmans) 폭포
직사각형 모양의 펜실베니아 주 동쪽 경계선은 전체가 델라웨어 강(Delaware River)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에 뉴욕과의 경계가 끝나고 뉴저지와 만나는 곳부터 남쪽으로 약 40마일(64 km)의 강 주변이 1965년에 델라웨어워터갭 국립휴양지(Delaware Water Gap National Recreation Area)로 지정되었다. 주로 뉴욕 대도시권에서 연간 400만명 이상이 찾아와 많은 폭포와 유적지를 방문하거나 강에서 수상 레포츠를 즐기고, 또 뉴저지 쪽의 키타티니 산맥(Kittatinny Mountains)을 따라 이어지는 애팔래치안 트레일을 포함한 전체 150마일 이상의 하이킹 코스도 유명하다. '뉴욕 주의 절경'을 구경하고 다시 펜실베니아로 돌아와 숙박한 시골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아침 풍경으로, 이번 여행에서 펜실베니아를 운전하며 지날 때마다 이 주의 투표결과가 미국 대통령을 결정할거라는 생각만 계속 들었다. 각설하고... 딸을 만날 맨하탄까지는 여기서 3시간 정도의 거리인데, 그 경로에 넓은 의미의 국립 공원이 3개나 있다. 하지만 앞뒤로 있는 사적지야 사모님이 반대할게 뻔하고 해서, 약간 우회해서 가운데 국립휴양지의 폭포만 잠깐 구경하는 것으로 처음부터 계획을 세웠다. 그렇게 어렵게 찾아온 델라웨어워터갭 국립휴양지의 딩맨스폴 비지터센터(Dingmans Falls Visitor Center)로 커다란 건물의 외부를 숲과 잘 구분이 되지 않는 보호색으로 칠해 놓은 듯 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그러나 내기를 하면서까지 가까이 다가가 확인했지만 토요일 오전인데도 모든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9월말에 벌써 시즌이 끝났다는 바람에 새로 방문한 국립 공원의 까만줄 브로셔 수집도 실패하고, 위기주부가 내기를 져서 아내에게 100불 또 빚졌다~^^ 그래도 돌화살촉 로고가 박힌 안내판들과 심지어 그 옆에 국립공원청 특유의 기울어진 철제 쓰레기통까지 반가웠던 것으로 위안을 삼고, 오른쪽 끝에 보이는 트레일을 따라 숲속으로 산책을 시작했다. 그 전에 안내판에 있던 국립휴양지의 전체 지도를 보여드리면 대각선으로 표시된 강을 경계로 좌상단이 펜실베니아, 우하단이 뉴저지 주이다. 그리고 북쪽은 인터스테이트 84번, 남쪽은 80번 고속도로가 강을 가로지르며 그 사이가 공원으로 지정된 것을 볼 수 있는데, 2년전에 보스턴에서 돌아오며 허드슨 밸리의 밴더빌트 맨션을 구경하고는 84번 고속도로를 타고 강을 서쪽으로 건너 집으로 갔었다. 노랗게 단풍이 들기 시작한 숲속으로 잘 만들어진 보드워크를 보더니, 시키지도 않았는데 앞쪽으로 걸어가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신다. 가이드의 경유지 선정이 마음에 들었는지, 아니면 내기에서 이겨 돈을 따서 기뻤는지 짧은 산책 내내 아주 기분이 좋으셨다~ ㅎㅎ 조금 걸어가면 계곡으로 흘러드는 지류에 만들어진 작은 폭포가 맛보기로 먼저 나오는데, 이름이 실버스레드(Silver Thread) 즉 '은실'이다. 쓰러져 걸쳐진 나무들이 좀 거슬리기는 했지만, 정면에서 보는 순간에 이름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딱 들었다. 물줄기는 가늘지만 2단으로 된 전체 높이는 24 m가 넘는데, 수량이 많을 때와 겨울철에 얼어 붙어서 전체가 하얗게 변했을 때의 사진은 제법 장관이었다. 계속해서 계단 하나 나오지 않고 휠체어도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진 숲속 보드워크를 끝까지 5분만 더 걸어가면, 주인공인 딩맨스 폭포(Dingmans Falls)가 예상보다 훨씬 거대한 모습으로 등장을 해주신다. 경사가 완만한 아랫부분 때문에 폭포의 낙차가 시작되는 곳이 멀리 있어서 얼핏 높이가 낮아 보이지만, 전체 낙차가 거의 40 m에 가까운 아주 큰 폭포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여기 폭포와 마을의 이름은 1735년에 뉴욕에서 이리로 이주해 온 네덜란드계 Andrew Dingman의 성에서 유래한 것이란다. 블로그 사진에 참 오래간만에 등장하는 등산복이다. 왕년에는 저걸 입고 높은 산에 좀 다녔었는데, 이제는 머리카락이 폭포수처럼 하얗게 은색으로 변해서 이렇게 'wheelchair accessible' 산책 포스팅에 겨우 등장을 했다... 그래서 백패킹을 하면서 해발 4,421m의 휘트니산(Mount Whitney) 정상에 올랐던 시절을 잊지 않으려고, 해당 등산기의 링크를 모처럼 따로 한 번 올려본다~ "벌써 이렇게 추억을 먹고사는 나이가 되었나? 그러면 안 되는데..." 전망대에서 시작되는 계단과 우회하는 좁은 등산로를 통해서 저기 폭포의 낙차가 시작되는 곳까지도 올라갈 볼 수 있다지만, 계단은 전날 하도 많이 올라서 그냥 주차장으로 돌아갔다. 옛날 나루터였던 딩맨스페리(Dingmans Ferry)에서 델라웨어 강을 건너 뉴저지로 들어가는 도로는 유료라고 해서, 당연히 그냥 차를 몰고 통과하면 이지패스(E-ZPass)로 자동결제가 되겠거니 생각했지만... 구글 스트리트뷰를 캡쳐한 이 모습처럼 직원이 가운데 서서 양방향 통행차량으로부터 2달러의 통행료(toll)를 현금으로 받는 것이었다! 앞서 언급한 딩맨(Dingman)이 여기서 나룻배 사업을 처음 했고, 후손들이 1836년에 첫번째 다리를 만들어서 장사를 시작했다. 부실한 다리는 홍수와 폭풍 등으로 계속 무너져 새로 민들었고, 우리가 차를 몰고 건넌 지금의 다리는 1900년에 4번째로 만든 것으로 지금도 상판이 덜컹거리는 나무로 되어 있다. 이렇게 19세기에 정부로부터 사설교량 운영권을 취득해서 지금도 유지되고 있는 경우는 미국에서도 매우 드문 케이스라고 한다. 이 곳 이름에 '워터갭(Water Gap)'이 들어있는 이유는 공원지도의 제일 아래 'THE GAP'이라 표시된 곳에서 델라웨어 강이 키타티니 산맥을 끊으며 흘러서, 옛날부터 중요한 고개(gap) 통행로가 물로 만들어져서 그렇다. 그 갭을 애팔래치안 트레일에서 내려다 봤다는 위 사진에서도 강의 오른편에 옛날 도로와 철도가, 왼편에 넓은 80번 고속도로가 나란히 만들어져 지금도 중요한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특이하게 국립휴양지 내의 강은 별도의 법안에 따라 1978년에 미들델라웨어 국가경관광(Middle Delaware National Scenic River)으로 또 지정이 되었기 때문에 NPS Official Unit 방문 리스트에 2개가 추가되는 '일타이피'의 여행지였다. 위의 동영상을 만들어 소개했던 웨스트버지니아 주의 뉴리버고지(New River Gorge)가 1978년에 여기와 함께 내셔널리버(National River)로 지정되었다가 2020년에 미국의 63번째 내셔널파크(National Park)로 승격이 되었던 곳인데, 2022년부터 펜실베니아와 뉴저지의 여러 단체들이 델라웨어워터갭 국립휴양지를 내셔널파크로 재지정하려는 노력이 진행중이다. 현재까지 두 주에는 국립공원이 없어서 조만간에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으며, 그렇게 되면 두 유닛이 하나로 합쳐지는 것이라 위기주부의 전체 방문 리스트 갯수는 하나 줄어들게 된다.^^ 비 내리는 맨하탄에 도착해서 만난 딸이 점심을 사준 곳은 라는 정통 한식집으로,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위 사진의 갈비찜과 추가로 감자탕을 시켜서 아주 배불리 먹었다. 당시 허리케인 헐린(Helene)의 영향으로 날씨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메이시 백화점을 잠깐 산책하고 빙수 디저트 가게에 들렀다가, 바로 집으로 출발해 밤 11시에 도착하는 것으로 1박2일만에 1,300 km를 달린 여행을 마쳤다. 요리 사진을 보니까 를 봤던게 떠올라서, 주요 참가자들의 식당 중 유일하게 예약없이 바로 먹을 수 있는 곳이 우리집 근처에 있다니까 언제 한 번 가봐야겠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