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실베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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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에서 만난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en Poe)와 타데우시 코시치우슈코(Thaddeus Kosciuszko)

필라델피아에서 만난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en Poe)와 타데우시 코시치우슈코(Thaddeus Kosciuszko)

정확히 10년전 여름에 하이스쿨 입학을 앞두고 있던 딸을 위해 다녀왔던 아이비 리그(Ivy League) 대학투어 8박9일 미동부 여행의 시작과 끝을 장식했던 도시가 필라델피아(Philadelphia)였다. 하지만 3년전에 미동부로 이사와서는 인근의 유명한 정원을 구경하기 위해 스쳐지나간 적만 있을 뿐, 시내로는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는 대도시였다. 참, 그래서 딸 자식은 투어를 다녀온 4년 후에, 아이비리그 8개 중 6개에 합격을 해서 그 중 한 곳을 졸업했고, 벌써 직장인 2년차로 맨하탄에서 혼자 살고 있다... 시간 참 겁나게 빠르다! 76번 고속도로가 스퀼킬 강(Schuylkill River)을 만나서부터 정체가 시작되어서, 앞차와의 거리를 충분히 두고 10년만에 다시 만난 필라델피아 빌딩숲의 사진을 한 장 찍었다. 하지만 이제 찾아가는 곳은 저 시내가 아니라, 대부분의 여행객은 듣도 보도 못한 장소인데, 이 때가 위기주부 홀로 작년 12월초에 떠났던 '4차 듣보잡 여행'의 오후였기 때문이다. 고속도로에서 빠지자마자 표지판이 역시 필라델피아의 가장 유명한 관광지인 인디펜던스 홀(Independence Hall)의 방향을 알려주는데, 아이비리그 대학투어 가족여행의 마지막 날에 방문했던 그 곳의 여행기를 클릭해 보실 수 있다. 그러면 위기주부는 도대체 어디를 찾아가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신 분을 위해 아래 지도를 준비했다. 최근 업데이트 된 국립공원청 앱의 지도로 필라델피아를 확대하면 위와 같이 4개의 장소가 표시된다. 그러나 제일 아래쪽 Gloria Dei Church는 제휴된(affiliated) 장소라서 현재 433개의 NPS official unit들에 포함되지 않고, 가운데 인디펜던스 국립역사공원은 10년전에 다녀왔으니, 나머지 2개의 장소를 이제 방문하려는 것이다. 첫번째는 에드거앨런포 국립사적지(Edgar Allen Poe National Historic Site)로 그가 필라델피아에서 약 6년간 시인, 비평가, 편집자로 살며 거의 매년 옯겨다닌 거주지들 중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건물이란다. 다른 오래된 집들처럼 철거될 예정이었지만 열혈팬이 1933년에 구입해서 박물관으로 개장했고, 유언으로 필라델피아 시에 기증한 것을 다시 연방정부가 인수해서 1980년에 국립사적지로 재개장을 했다. 하지만 작은 "Closed for construction" 표시가 비지터센터 문앞에 예상대로 붙어 있었다. 몇 달 전에 확인했을 때는 겨울에 다시 오픈할 예정이라고 했었지만, 미국 공무원들 일하는 스타일로 봐서 언제 재단장이 끝날지 기약이 없는 것을 알기에... 겉모습이라도 구경하려고 찾아왔던 것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안내판에 따르면 그는 뒤쪽의 작은 건물에서 어리고 병약한 아내 Virginia Clemm Poe와 고모인 동시에 장모였던 Maria Poe Clemm과 함께 1843-44년 기간에 살았고, 현재 비지터센터로 사용되고 있는 앞쪽의 큰 건물은 1848년에 추가된 것이다. 그런데 앞쪽 건물의 붉은 벽에 석양의 햇살을 받아 살벌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던 동상이 있었으니... 그가 1845년애 발표한 시(詩)의 제목이기도 한 까마귀(The Raven, 갈가마귀)이다.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en Poe)는 한국에서는 등의 공포/추리 소설의 작가로 많이 알려졌지만, 영문학에서는 를 쓴 시인으로 더 유명해서 그 시에서 까마귀가 읊조리는 말로 처음 등장했던 "Nevermore"라는 단어는 유치원생들도 출처를 알 정도라고 한다. 또한 그가 본격적인 전업작가 생활을 시작했고 또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던 도시인 볼티모어를 연고로 하는 미식축구 팀의 이름이 '레이븐스(Ravens)'인 것도 그 시에서 유래했다. 건물 내부에서 가장 인기있는 장소는 바로 안내판에서도 대표사진으로 보여주고 있는 지하실인데, 그 이유는 바로 그의 다른 대표작인 에서 벽 속의 시체와 함께 한쪽 눈이 없는 검은 고양이가 나타나는 지하실이 바로 이 곳을 모티브로 했기 때문이란다. 약간은 허전한 느낌을 가지고 다음 장소로 이동을 하려다 잠시 옆건물로 눈을 돌렸는데, 특유의 애매한 눈빛으로 위기주부를 바라보는 포(Poe)가 거기에 있었다! 이 포스팅을 쓰면서 그의 일생에 대한 나무위키의 설명을 참 재미있게 읽어서, 언젠가는 여러 작품들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볼티모어에는 그의 묘지와 함께 그가 살았던 집이 사설 박물관으로 운영이 되고 있다는데, 여기를 클릭하시면 블로그 이웃이신 짱남님이 방문했던 여행기를 보실 수 있다. 남쪽으로 10분 정도 차를 달려서 두번째 목적지인 타데우시 코시치우슈코 국립기념관(Thaddeus Kosciuszko National Memorial)을 찾아왔는데, 다닥다닥 붙은 오래된 아파트들 중에서 눈에 띄는 삼각형 지붕의 건물이다. 예전에 백악관과 그 주변을 소개한 글에서 미국독립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외국인 4명을 모아 놓은 라파예트 공원에 있는 그의 동상을 간단한 소개와 함께 사진으로 보여드린 적이 있다. 폴란드 군사학교를 졸업한 코슈추슈코(Kosciuszko)는 1776년에 30세의 나이로 아무 연고도 없는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와, 미국독립 전쟁에 자원해 6년간 공병장교로 활약해서 준장 계급을 받는다. 그 후 유럽으로 돌아가 고국 폴란드의 독립을 위해 또 싸우다가 러시아에 붙잡혀 징역을 살고 석방되는데, 이 곳은 그 후에 그가 다시 미국을 방문한 1797년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지냈던 숙소이다. 이 곳은 이유도 없이 그냥 "Closed"가 붙어 있는데, 그 이유는 방문했던 겨울철에는 아예 문을 열지 않고, 여름철에도 주말 오후에만 잠깐 오픈할 정도로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기 때문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그래도 안내판 정도는 하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모퉁이를 돌아보니, 예상대로 국립공원청에서 세워 놓은 설명판이 눈에 띄었다. 무작정 신생 독립국의 수도였던 필라델피아로 와서는 대륙군에 들어가기 위해서, 벤자민 프랭클린을 찾아가 수학 실력을 보여주고는 공병장교로 추천을 받아서 입대를 할 수 있었단다. 특히 미국 독립전쟁 초기의 가장 중요한 승리로 기록되는 새러토가 전투(Battles of Saratoga)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 후 허드슨 강변의 웨스트포인트(West Point)를 요새화 하는 것을 지휘했다. 전쟁이 끝나고 그 곳에 미국 육군사관학교가 들어설 때, 제일 먼저 세워진 동상의 주인공이 코시치우슈코라고 한다. 안내판의 초상은 좀 영웅적이고 근엄한 모습이지만, 브로셔의 표지로 사용된 아래의 그림은 아주 앳된 얼굴이다. 참고로 그는 폴란드의 국민영웅이기도 해서 공원 브로셔의 뒷면은 특이하게 폴란드어로 만들어져 있었다. 미국 화가 Benjamin West가 런던에서 우연히 만나 그린 그림이라는데, 이 때의 코시치우슈코 나이가 45세라고 하니 굉장히 동안인 것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전혀 무골(武骨)이 아닌 공학도의 순수함(?)이 느껴지는 얼굴인데, 그가 처음 대서양을 건넜던 이유는 첫사랑의 실패로 지구 반대편에 가서 죽을 작정으로 미국 독립전쟁에 가담했다는 설도 있단다.^^ 이상과 같이 두 위인의 체취가 남았을 지도 모르는 잠겨진 두 문짝만 구경을 하고는 짧은 필라델피아 방문을 마치고 떠나며, 신호를 기다리다가 운전석 차창 밖으로 기념관의 전체 모습을 담아봤다. 정확히 건평이 81제곱미터인 저 건물만 1972년에 국가기념물(National Memorial)로 지정이 되었는데, 현재 국립공원청이 직접 관리하는 넓은 의미의 국립 공원들 433개 중에서 면적이 가장 작은 곳이라고 한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유명했던 펜실베니아 주 철강업의 초기 역사를 보여주는 호프웰퍼니스(Hopewell Furnace) 국립사적지

유명했던 펜실베니아 주 철강업의 초기 역사를 보여주는 호프웰퍼니스(Hopewell Furnace) 국립사적지

딸이 보스턴에서 대학교를 다니던 2021년, 여름 방학이 끝나서 다시 기숙사에 들어가는 이사를 도와주기 위해 LA에서 날라가, 근교를 하루 여행하며 랍스터를 먹고 돌아오는 길에, 17세기 식민지 시대에 만들어진 북미대륙 최초의 제철소 유적지를 방문했던 적이 있다. 작년말 펜실베이니아 주를 중심으로 돌아본 '4차 듣보잡 여행'에서는 그로부터 1백여년이 지난 18세기 후반의 미국독립 시기에 형성된 소규모 '철강농장(Iron Plantation)'이 국가유적으로 보존된 곳을 또 잠시 들릴 수 있었다. 주도 해리스버그(Harrisburg)에서 최대도시 필라델피아(Philadelphia)로 향하는 76번 고속도로를 절반 넘게 달리다 빠져서, 주립공원으로 지정된 산속을 제법 운전해야 나오는 이 곳은 호프웰퍼니스 국립사적지(Hopewell Furnace National Historic Site)이다. 비지터센터에 붙어있는 돌화살촉 모양의 커다란 국립공원청 로고... 언젠가는 저걸 하나 뜯어서 집으로 가져오거나, 직접 나무를 깍아 만드는 날이 올지도? ㅎㅎ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손님이라고는 없는 실내에서 화기애애한 담소를 나누던 파크레인저와 자원봉사자들... 직원이 쓰고 있는 로고가 박힌 털모자도 마음에 든다~^^ 연세 많은 자원봉사자에게 안내영화가 있냐고 물어봤더니, 위기주부 혼자만을 위해 영상을 틀어주셨다. 호프웰퍼니스(Hopewell Furnace)는 1771년경 '철광석 장인(Ironmaster)'이었던 Mark Bird에 의해 설립되어, 1883년까지 철강을 생산했던 마을인데, 18세기말에 연간 생산량이 700톤으로 펜실베니아의 14개 제철공장들 중에 두번째로 큰 규모였단다. 제철소를 짓고 그 주변에 직원들이 거주하는 마을과 아이들의 학교까지 들어선 형태로 이러한 산업단지를 Iron Plantation이라 불렀는데, 철강 생산이 중단된 후 완전히 버려진 곳을 연방정부가 사들여서, 1938년에 미국의 두번째 국립사적지(National Historic Site)로 지정해 대대적인 복원과정을 거쳤다. (공교롭게 첫번째 NHS는 서두에 언급한 보스턴 부근 제철소를 방문한 날의 오전에 먼저 들렀던 곳임^^) 언덕을 내려가는 트레일을 따라 차례대로 둘러보면, 여기는 재료들 중의 하나인 숯을 가져와 보관하는 곳으로 용광로 시설과는 지붕이 있는 통로로 연결이 되어 있다. 야외에도 각 위치마다 설명판이 있었지만, 먼지를 뒤집어 써서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비지터센터 전시실에서 찍었던 아래 사진을 먼저 보여드리며 기본 설명을 드린다. 그림처럼 돌로 3~4층 높이의 고로(高爐, Shaft Furnace)를 만들고 위쪽에서 철광석(iron ore), 석회(limestone), 숯(charcoal)을 계속 넣어서 불로 녹인 후에, 아래쪽에서 일정 시간마다 플러그(plug)를 열어서 쇳물을 받는 형태이다. 현대적인 제철소도 기본적으로 같은 방식인데, 불이 꺼져서 고로가 식어서 내부가 그대로 굳어지면 못 쓰게 되므로, 당시에는 작업자들이 교대로 밤이나 낮이나 재료를 끝없이 계속 넣어야 했다. 가운데 조명으로 밝혀진 곳이 고로의 제일 위쪽으로 재료를 부어 넣던 구멍은 쇠판으로 막아 놓았다. 재료와 함께 고로의 안으로 지속적으로 공급되어야 하는 것이 불을 유지하기 위한 산소인데, 건물 옆에 만들어진 커다란 물레방아를 이용해서 공기를 압축하고 파이프로 고로에 산소를 공급하는 구조이다. 이제 다시 밖으로 나가서 트레일을 따라 건물의 아래쪽으로 내려가 보자~ 그 전에 공장 옆의 사무실 건물에 잠깐 들어와 봤다. 여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돈이 아니라 이 마을에서만 쓸 수 있는 '크레딧'으로 대부분의 임금을 받았는데, 여기 사무실 겸 상점에서 그 크레딧으로 생필품을 구입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식으로 노동자가 일터를 떠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탄광촌 등에서 20세기 중반까지 이어졌다. 고로 건물의 아랫층으로 흙바닥으로 흘러나오는 쇳물을 막대기 모양 홈을 따라 흐르게 해서 판매용 선철(pig iron)을 만든 모습이 보인다. 물레방아도 아래쪽에서 보면 나무로 만든 원기둥 형태의 압축기와 고로까지 연결된 공기 파이프를 잘 확인할 수 있었다. 공장을 나와서 개울을 건너면 직원들이 살던 마을로 학교와 집이 복원되어 있지만 멀리 가지는 않았고, 바로 앞에 있는 대장간 건물의 내부만 잠깐 들어가 봤다. 화로에서 선철을 다시 녹여서 불순물을 제거한 후에 여러가지 작은 철제 도구들을 만들었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제철소 건물의 전체 모습으로 아랫층이 필요 이상으로 넓게 보이는 이유는, 고로에서 나온 쇳물을 바로 틀에 부어서 소비자용 제품을 만드는 주물 공장이 함께 있기 때문인데, 여기서 만들어진 대표적인 제품은 마지막에 보여드리기로 한다. 사실상 이 마을 전체를 소유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의 집인 Ironmaster's Mansion으로 그냥 '빅하우스(Big House)'로 불렸단다. 당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장식이 걸려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서 내부도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었다. 벽난로 위의 초상화는 이 마을의 전성기였던 1830년대 소유주인 Clement Brooke로 그의 집안이 1800년에 이 곳을 인수해서 문을 닫을 때까지 계속 운영했고, 후손이 땅을 연방정부에 팔았던 것이다. 겨울이라 방문객도 별로 없는데, 신선한 야채가 올라간 식사 테이블까지 참 잘 꾸며놓았다는 생각을 하며 비지터센터로 돌아가서 전시관을 후다닥 둘러보는 것으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여기와 같은 소규모 제철소들이 많았던 펜실베니아와 그 주변 미동부 식민지들이 대영제국 철 생산량의 15%를 담당하다가, 미국독립 전쟁에서는 대륙군에 대포와 포탄 등을 만들어 공급했다는 설명판이다. 19세기말에 숯 대신에 석탄을 이용하는 대규모의 현대식 제철소들이 우리가 다 아는 '철강도시' 피츠버그 등에 들어서며 이러한 작은 곳들은 모두 문을 닫았지만, 미국의 초기 산업화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곳이기에 일찌감치 국립사적지로 지정되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HOPEWELL FURNACE 글자가 선명만 이 무쇠 스토브(stove)가 이 곳의 최고 히트 상품으로, 주물판 10개와 다른 작은 부품들로 스토브 하나를 조립했는데, 기록에 따르면 1839년에만 5,152개나 생산이 되었단다! 아랫칸에 불을 피우고 윗칸에 무쇠 그릇에 담긴 재료를 넣어두면 조리되는 방식은 여성이 주방을 지키고 있어야 하는 시간을 줄여줘서, 주부들이 사회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늘렸고 여성참정권 운동으로도 이어졌다는 약간은 비약적인 설명판도 있었다.^^ 이제 다음은 필라델피아 시내로 간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유명했던 펜실베니아 주 철강업의 초기 역사를 보여주는 호프웰퍼니스(Hopewell Furnace) 국립사적지

유명했던 펜실베니아 주 철강업의 초기 역사를 보여주는 호프웰퍼니스(Hopewell Furnace) 국립사적지

딸이 보스턴에서 대학교를 다니던 2021년, 여름 방학이 끝나서 다시 기숙사에 들어가는 이사를 도와주기 위해 LA에서 날라가, 근교를 하루 여행하며 랍스터를 먹고 돌아오는 길에, 17세기 식민지 시대에 만들어진 북미대륙 최초의 제철소 유적지를 방문했던 적이 있다. 작년말 펜실베이니아 주를 중심으로 돌아본 '4차 듣보잡 여행'에서는 그로부터 1백여년이 지난 18세기 후반의 미국독립 시기에 형성된 소규모 '철강농장(Iron Plantation)'이 국가유적으로 보존된 곳을 또 잠시 들릴 수 있었다. 주도 해리스버그(Harrisburg)에서 최대도시 필라델피아(Philadelphia)로 향하는 76번 고속도로를 절반 넘게 달리다 빠져서, 주립공원으로 지정된 산속을 제법 운전해야 나오는 이 곳은 호프웰퍼니스 국립사적지(Hopewell Furnace National Historic Site)이다. 비지터센터에 붙어있는 돌화살촉 모양의 커다란 국립공원청 로고... 언젠가는 저걸 하나 뜯어서 집으로 가져오거나, 직접 나무를 깍아 만드는 날이 올지도? ㅎㅎ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손님이라고는 없는 실내에서 화기애애한 담소를 나누던 파크레인저와 자원봉사자들... 직원이 쓰고 있는 로고가 박힌 털모자도 마음에 든다~^^ 연세 많은 자원봉사자에게 안내영화가 있냐고 물어봤더니, 위기주부 혼자만을 위해 영상을 틀어주셨다. 호프웰퍼니스(Hopewell Furnace)는 1771년경 '철광석 장인(Ironmaster)'이었던 Mark Bird에 의해 설립되어, 1883년까지 철강을 생산했던 마을인데, 18세기말에 연간 생산량이 700톤으로 펜실베니아의 14개 제철공장들 중에 두번째로 큰 규모였단다. 제철소를 짓고 그 주변에 직원들이 거주하는 마을과 아이들의 학교까지 들어선 형태로 이러한 산업단지를 Iron Plantation이라 불렀는데, 철강 생산이 중단된 후 완전히 버려진 곳을 연방정부가 사들여서, 1938년에 미국의 두번째 국립사적지(National Historic Site)로 지정해 대대적인 복원과정을 거쳤다. (공교롭게 첫번째 NHS는 서두에 언급한 보스턴 부근 제철소를 방문한 날의 오전에 먼저 들렀던 곳임^^) 언덕을 내려가는 트레일을 따라 차례대로 둘러보면, 여기는 재료들 중의 하나인 숯을 가져와 보관하는 곳으로 용광로 시설과는 지붕이 있는 통로로 연결이 되어 있다. 야외에도 각 위치마다 설명판이 있었지만, 먼지를 뒤집어 써서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비지터센터 전시실에서 찍었던 아래 사진을 먼저 보여드리며 기본 설명을 드린다. 그림처럼 돌로 3~4층 높이의 고로(高爐, Shaft Furnace)를 만들고 위쪽에서 철광석(iron ore), 석회(limestone), 숯(charcoal)을 계속 넣어서 불로 녹인 후에, 아래쪽에서 일정 시간마다 플러그(plug)를 열어서 쇳물을 받는 형태이다. 현대적인 제철소도 기본적으로 같은 방식인데, 불이 꺼져서 고로가 식어서 내부가 그대로 굳어지면 못 쓰게 되므로, 당시에는 작업자들이 교대로 밤이나 낮이나 재료를 끝없이 계속 넣어야 했다. 가운데 조명으로 밝혀진 곳이 고로의 제일 위쪽으로 재료를 부어 넣던 구멍은 쇠판으로 막아 놓았다. 재료와 함께 고로의 안으로 지속적으로 공급되어야 하는 것이 불을 유지하기 위한 산소인데, 건물 옆에 만들어진 커다란 물레방아를 이용해서 공기를 압축하고 파이프로 고로에 산소를 공급하는 구조이다. 이제 다시 밖으로 나가서 트레일을 따라 건물의 아래쪽으로 내려가 보자~ 그 전에 공장 옆의 사무실 건물에 잠깐 들어와 봤다. 여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돈이 아니라 이 마을에서만 쓸 수 있는 '크레딧'으로 대부분의 임금을 받았는데, 여기 사무실 겸 상점에서 그 크레딧으로 생필품을 구입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식으로 노동자가 일터를 떠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탄광촌 등에서 20세기 중반까지 이어졌다. 고로 건물의 아랫층으로 흙바닥으로 흘러나오는 쇳물을 막대기 모양 홈을 따라 흐르게 해서 판매용 선철(pig iron)을 만든 모습이 보인다. 물레방아도 아래쪽에서 보면 나무로 만든 원기둥 형태의 압축기와 고로까지 연결된 공기 파이프를 잘 확인할 수 있었다. 공장을 나와서 개울을 건너면 직원들이 살던 마을로 학교와 집이 복원되어 있지만 멀리 가지는 않았고, 바로 앞에 있는 대장간 건물의 내부만 잠깐 들어가 봤다. 화로에서 선철을 다시 녹여서 불순물을 제거한 후에 여러가지 작은 철제 도구들을 만들었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제철소 건물의 전체 모습으로 아랫층이 필요 이상으로 넓게 보이는 이유는, 고로에서 나온 쇳물을 바로 틀에 부어서 소비자용 제품을 만드는 주물 공장이 함께 있기 때문인데, 여기서 만들어진 대표적인 제품은 마지막에 보여드리기로 한다. 사실상 이 마을 전체를 소유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의 집인 Ironmaster's Mansion으로 그냥 '빅하우스(Big House)'로 불렸단다. 당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장식이 걸려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서 내부도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었다. 벽난로 위의 초상화는 이 마을의 전성기였던 1830년대 소유주인 Clement Brooke로 그의 집안이 1800년에 이 곳을 인수해서 문을 닫을 때까지 계속 운영했고, 후손이 땅을 연방정부에 팔았던 것이다. 겨울이라 방문객도 별로 없는데, 신선한 야채가 올라간 식사 테이블까지 참 잘 꾸며놓았다는 생각을 하며 비지터센터로 돌아가서 전시관을 후다닥 둘러보는 것으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여기와 같은 소규모 제철소들이 많았던 펜실베니아와 그 주변 미동부 식민지들이 대영제국 철 생산량의 15%를 담당하다가, 미국독립 전쟁에서는 대륙군에 대포와 포탄 등을 만들어 공급했다는 설명판이다. 19세기말에 숯 대신에 석탄을 이용하는 대규모의 현대식 제철소들이 우리가 다 아는 '철강도시' 피츠버그 등에 들어서며 이러한 작은 곳들은 모두 문을 닫았지만, 미국의 초기 산업화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곳이기에 일찌감치 국립사적지로 지정되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HOPEWELL FURNACE 글자가 선명만 이 무쇠 스토브(stove)가 이 곳의 최고 히트 상품으로, 주물판 10개와 다른 작은 부품들로 스토브 하나를 조립했는데, 기록에 따르면 1839년에만 5,152개나 생산이 되었단다! 아랫칸에 불을 피우고 윗칸에 무쇠 그릇에 담긴 재료를 넣어두면 조리되는 방식은 여성이 주방을 지키고 있어야 하는 시간을 줄여줘서, 주부들이 사회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늘렸고 여성참정권 운동으로도 이어졌다는 약간은 비약적인 설명판도 있었다.^^ 이제 다음은 필라델피아 시내로 간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해리스버그(Harrisburg)에 있는 '예술궁전'이란 별명의 펜실베니아 주의사당(Pennsylvania State Capitol)

해리스버그(Harrisburg)에 있는 '예술궁전'이란 별명의 펜실베니아 주의사당(Pennsylvania State Capitol)

펜실베니아의 주도는 처음에는 누구나 다 아는 필라델피아였지만, 1799년에 아미시 마을 부근의 랭카스터(Lancaster)로 옮겼다가, 1812년에 현재의 해리스버그(Harrisburg)가 되었다. 처음 붉은 벽돌로 소박하게 지었던 의사당은 1897년에 화재로 완전히 파괴되었고, 두번째는 자금 부족으로 완공이 미뤄지다가, 공모를 통해 당선된 건축가 조셉 휴스턴(Joseph Huston)의 새로운 설계에 따라 1902년에 400만불의 예산으로 미완의 건물을 증축해서 1906년에 완공된 세번째 건물이 지금의 펜실베니아 주의사당(Pennsylvania State Capitol)이다. 의사당 지붕만 멀리서 보며 해리스버그를 지나간게 10번도 넘을텐데, 마침내 '4차 듣보잡 여행'의 두번째 목적지로 정면에서 마주할 수 있었다. 사진에 다 들어오지 않는 건물의 좌우 길이는 160 m이고, 중앙부의 최고 높이는 83 m나 된다. 당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있어서 계단 가운데 트리가 만들어져 있고, 잔디밭 언덕에도 장식들이 놓여있기는 했는데, 하얀 판자를 끼워서 만든 장식들이 쓰러진 것도 많아 상당히 부실해 보였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연두색 타일로 덮은 중앙돔은 바티칸 성베드로 성당을 참고한 것이라 하며, 그 위에 Commonwealth를 의인화한 높이 4 m의 조각상이 금박으로 덮여있다. 중앙의 기둥들이 쌍으로 만들어져 있는 보자르(Beaux-Arts) 건축양식인데, 그 아래쪽의 좌우로 하얀 대리석 조각 작품이 눈에 띈다. 건물 완공 후 5년이 지나서 입구 좌우로 설치된 이 조각작품들은 모두 약 30명의 남녀가 대부분 나체로 만들어져서 논란이 되었다고 하는데, 북쪽 그룹은 Love and Labor: The Unbroken Law 제목으로 벽면의 농부 남녀를 중심으로 사랑, 교육, 자녀, 종교, 미래 등의 긍정적인 감정을 나타내고, 남쪽 그룹은 The Burden of Life: The Broken Law 제목으로 벽면의 남녀는 아담과 이브이고 그 앞으로 죽음, 노동, 슬픔, 절망과 함께 위로와 희망을 나타낸다는데, 혹시라도 더 궁금하신 분은 여기를 클릭해서 영문 위키피디아 내용을 직접 읽어보시기 바란다. 그리고 사진이 잘 안 나와서 그렇지 최고급 이탈리아 카라라(Carrara) 대리석을 깍아서 만든 작품이다. 의사당 내부는 일반에 매일 개방되고, 정해진 시간에 진행되는 무료 투어에도 참여할 수 있다는 안내판이다. 정문으로 들어가 간단한 보안검색을 거치면 바로 중앙 로툰다(Rotunda)가 나오는데...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가 중앙에서 불을 밝히고 있었다. 트리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지만, 정면으로 넓은 대리석 계단이 중간층에서 좌우로 갈라져 2층으로 올라가는데, 파리의 오페라 하우스를 역시 따라한 것이란다. 1906년 개관식에 참석했던 루스벨트 대통령이 "가장 멋진 의사당"이라 칭찬했고, 곳곳의 화려한 장식 및 많은 조각과 벽화, 스테인드글래스 등으로 '예술의 궁전(Palace of Art)'이라 불리기도 한단다. 로툰다 주변으로 작은 전시공간들이 만들어져 있는데, 중앙돔 꼭대기에 세워진 커먼웰스 동상의 복제품 등을 보여주고 있다. 견학을 온 초등학생들 틈에 끼어서 설명을 들으며 따라 다녀볼까 하다가... 그냥 브로셔를 들고 혼자 돌아다니기로 했다. ㅎㅎ 사방의 반원형 벽화는 "현대 문명에 대한 펜실베이니아의 영적 및 산업적 기여"를 상징한다고 하며, 그 사이의 원형에 그려진 인물들은 각각 예술, 정의, 과학, 종교를 설명한다. 그리고 위아래로 보이는 글귀는 펜실베니아 식민지를 만든 윌리엄 펜(William Penn)의 소위 '거룩한 실험(Holy Experiment)' 선언문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2층의 주지사 사무실(Governor's Office)을 들어가 볼 수 있다고 해서 찾아와 봤다. 나무로 마감된 벽과 그 위의 벽화가 크리스마스 장식과 어울려서 아늑한 느낌을 줬는데, 사진애는 안 보이지만 비서와 경비원(?) 두 명이 실제로 근무하는 책상이 놓여있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옛날 집무실이었던 이 방은 현재는 리셉션룸으로 불리며, 저 책상에서 중요발표나 조약체결 등의 행사를 진행하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단다. 미국 의사당에 오면 꼭 찾아봐야 하는게 상하원 회의실인데, 이 때는 관람석 입구를 찾지 못해서 헤매다가 건물을 관통해 반대편 출구로 나갔다. 신관이라 할 수 있는 이스트윙(East Wing)은 1987년에 추가로 만들어졌고, 분수대 너머의 공원과 기념탑은 펜실베니아 출신의 군인들을 기리는 것이라 한다. 뒤돌아 보면 이렇게 생겼는데, 원래의 건물과 같은 버몬트 화강암을 외장으로 써서 아주 조화롭게 연결된 느낌이다. 밖으로 빙 돌아서 주차한 곳으로 그냥 돌아갈까 하다가, 상하원 회의실을 다시 찾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다시 보안검색을 거쳐 안으로 들어갔다. 해답은 처음 들어왔던 입구의 바로 옆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야만 관람석과 연결된 4층 중앙부로 올라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상원 회의실(Senate Chamber)은 조명을 켜놓지 않아서 어두웠는데, 특히 벽의 몰딩 등은 아일랜드에서만 나오는 특별한 녹색의 코네마라(Connemara) 대리석을 수입해와 장식한 것이라 하며, 전면을 가득 채운 벽화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반대편의 하원 회의실(House Chamber)은 방금 견학생들이 다녀가서 그런지 불을 환하게 켜놓은데다, 전체가 금빛으로 번쩍여서 유럽 황실의 궁전이나 오페라 극장을 보는 듯 했으며, 여기 벽면 아래쪽을 덮은 것은 또 프랑스에서 수입한 피레네(Pyrenees) 대리석이란다. 이외에도 대법원(Supreme Court)을 또 관람이 가능하다고 되어 있지만, 주차 시간이 다 되어 가는 듯 해서 1층으로 바로 내려갔다. 중앙 계단의 좌우를 밝히던 전기 조명과 결합된 조각은 비슷한 시기에 같은 양식으로 지어진 미의회 도서관인 제퍼슨 빌딩을 떠올리게 했다. 이렇게 화려한 건물 뒤에는 흑역사도 있는데, 최종 공사비가 원래 계획의 3배가 넘는 1,300만불이나 들어서 비난 여론과 함께 조사가 진행되었고, 결국 건축가 휴스턴과 다른 관료 4명이 비용을 부풀려 뇌물을 받은 혐의로 유죄가 확정되어 2년간 옥살이를 했단다~ 이렇게 그 날의 두번째 목적지 방문을 마치고, 이제 필라델피아 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다시 고속도로를 달렸다. P.S. 이 글이 2024년의 마지막 포스팅이네요~ 올해도 위기주부의 블로그를 방문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즐겁고 안전하고 건강한 연말 보내시고, 을사년(乙巳年) 2025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