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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북전쟁(Civil War)에서 가장 길었던 9달반의 군사작전인 피터스버그 포위전(Siege of Petersburg)
"움켜잡다/점령하다"라는 뜻의 영단어 'seize'와 스펠링과 발음, 그리고 의미까지 비슷해서 헷갈리는 다른 단어로 'siege'가 있다. 영어에 약했던 위기주부는 "가두다/포위하다"라는 뜻의 이 단어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던 때를 정확히 기억하는데, 바로 한국에 PC방 열풍을 일으켰던 컴퓨터 전략 게임인 스타크래프트(StarCraft)를 하면서, 테란 종족의 지상공격 무기에 시즈탱크(Siege Tank)가 있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본인의 주종족은 프로토스였는데... 정말 거의 30년전 이야기다! ㅎㅎ 말을 꺼낸 김에 찾아본 시즈탱크의 모습으로 애니메이션처럼 지지대로 땅에 고정되는 '시즈모드(siege mode)'를 개발하면, 엄청난 사거리의 포격으로 적의 기지와 방어선을 공성(攻城)하는 능력이 탁월한 무기였다. 옛날이라 비록 이런 탱크는 없었지만(^^) 북군이 무지막지한 크기의 대포를 만들면서까지, 남군의 전략적 요충지였던 피터스버그를 9개월 이상 둘러싸고 공격을 했던 것이 바로 피터스버그 포위전(Siege of Petersburg)이다. 1864년 남북전쟁 말기의 소위 '오버랜드 캠페인(Overland Campaign)'에서 양측의 이동경로를 보여주는 지도이다. 제일 위쪽의 The Wilderness와 Spotsylvania Court House 전투는 작년 여름에, 그랜트가 남군 수도 리치먼드를 점령하려다 막대한 피해를 입었던 Cold Harbor 전투는 시리즈 전편에서 잠깐씩 소개를 했었다. 그 후에 제일 아래의 여기 피터스버그를 점령하기 위해 9개월 이상 공성전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 부근의 많은 전투지역과 북군의 보급기지였던 제임스 강변의 시티포인트(City Point) 등이 국립 공원인 피터스버그 국립전쟁터(Petersburg National Battlefield)로 지정이 되어 있고, 여기는 그 중 가장 대표적인 동부전선 안내소(Eastern Front Visitor Center)인데, 시작부터 커다란 대포들이 즐비하게 놓여있다. 공성전의 의미를 살리려 했는지, 비지터센터 건물의 외관도 아주 튼튼한 성처럼 느껴졌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여기서 제임스 강을 따라서 하류로 내려가면, 재작년에 방문해서 잠깐 소개한 적이 있는 버지니아 식민지가 시작된 제임스타운(Jamestown)이 나오는데, 그 공원 안에 있던 역사적인 글래스하우스(Glasshouse)에서 만든 유리공예 제품을 전시판매하고 있는게 특이했다. 직원이 위기주부만을 위해서 안내영화 를 틀어주었는데, 재연배우들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피터스버그 포위전을 이해하는데 역시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화면의 좌우 아래쪽으로 많이 보이는 것들이 모두 스피커였나? 앞서 잠깐 언급했던 특별 제작한 대포인 'The Dictator'로 지름 13인치에 무게 100 kg이 넘는 포탄을 2.5마일 거리까지 발사할 수 있었단다. 하지만 대포 자체의 무게가 8톤이 넘어서, 철도로만 운반이 가능했기 때문에 활용도가 낮아서 자주 사용되지는 못했다고 한다. 원형의 극장을 전시장이 둘러싸고 있는데, 그 사이에는 참호를 연상시키도록 땅을 파놓은 이유도 나중에 아시게 된다. 그렇게 비지터센터 구경을 마치고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여기는 오토투어의 출발점 역할만 하기 때문에, 시간이 없기는 했지만 레인저가 추천해 준 장소 두 곳은 둘러보기로 하고, 아래와 같은 일방통행 도로를 따라서 출발을 했다. 넓은 지역을 모두 표시한 공원 지도에서 피터스버그 시내와 가장 가까웠던 동부전선 지역만 크게 확대한 것으로, 연한 붉은색으로 띄엄띄엄 그려진 굵은 선들이 남군의 방어선을 나타낸다. ③번 Siege Encampment Exhibit로 양측이 9개월 이상 대치할 때, 병사들이 임시로 만들어 지냈던 통나무집과 함께... 당시의 참호를 재현해 놓았다. 1900년대 초의 제1차 세계대전을 상징하는 장면인 참호전이, 실질적으로 처음 등장한 전투가 피터스버그 포위전이라 한다.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이 공원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인 ⑧번 The Crater이다. "여기에 무슨 분화구가 있다는 말이지?" 난간 안쪽으로 지금도 움푹 꺼져보이는 곳이 바로 그 '분화구'이다. 빨리 피터스버그를 함락시키고 리치먼드를 점령해 전쟁을 끝내고 싶었던 그랜트 장군의 지시로, 남군 방어선 아래로 몰래 땅굴을 파서, 1864년 7월 30일 새벽에 무려 8,000파운드의 화약을 폭발시켜서 지름 50 m에 깊이 9 m의 거대한 이 구덩이가 만들어졌다. 당연히 남군의 진지도 싹 다 날라가서, 그 무너진 틈으로 북군이 돌격을 했지만... 공원 브로셔 표지에 인쇄된 이 그림처럼 북군은 깊숙한 구덩이에 빠져서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고, 정신을 차린 주변의 남군이 반격을 해와서, 대부분 흑인으로 구성되었던 북군의 돌격부대는 거의 학살을 당하는 수준으로 무려 3,800명의 사상자를 내게 된다. 이 구덩이 전투(Battle of the Crater)의 실패로 그랜트는 전략을 바꿔서, 피터스버그를 포위하고 남군의 보급 철도망을 하나씩 끊어나가는 장기전에 돌입하게 된다. 확실히 여기는 남부 버지니아라서 그런지 구덩이 주변으로는 여기를 지키고 싸웠던 남군을 추모하는 기념물이 많이 보였는데, 앞쪽에 보이는 것은 노스캐롤라이나 부대를 기리는 것이고, 뒤로 보이는 탑은 그 날 반격을 주도한 남군의 마혼(Mahone) 장군 기념비이다. 그렇게 남군은 절대적인 열세 속에서 이듬해 3월말까지 무려 9개월반을 버텼지만... 결국 마지막 보급선까지 끊어지고 북군 총사령관 그랜트 장군이 총공세를 예고하자, 1865년 4월 2일 밤에 남군 총사령관 리(Lee) 장군은 피터스버그와 리치먼드를 동시에 포기하고 전병력을 유일한 탈출구인 서쪽으로 후퇴시키기로 결정한다. 그로부터 7일 후에 두 장군이 얼굴을 마주하게 되는 장소가 바로, 이 날 위기주부가 첫번째로 방문했던 곳으로 '남부 버지니아 별볼일 없는 국립 공원들' 시리즈의 마지막 편에 소개될 예정이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리치먼드(Richmond)의 침보라소(Chimborazo) 의료박물관과 매기 워커(Maggie Walker) 국립사적지
미국 남북전쟁 1861~65년 기간에 남부연합의 수도였던 리치먼드(Richmond)는 워싱턴 남쪽 자동차로 2시간 거리에 위치해서, 우리에게는 마치 '서울-평양'과 같은 느낌을 준다. 재작년에 그 도시에 있는 버지니아 주청사만 잠깐 방문해서 소개를 한 적이 있는데, 거기와 다른 남부 버지니아 지역의 국립 공원들 총 5곳을 묶어서 '1탄 펜실베니아'에 이은 3~4시간 거리의 별볼일 없는 곳들 찾아다니기 시리즈 2탄으로 또 다녀왔다. 지도에 표시된 5곳을 북쪽 집에서 출발해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서, 리치먼드 시내의 2곳은 마지막에 잠깐씩만 들렀기에 묶어서 제일 먼저 소개한다. 이 여행은 블로그 역사상 처음으로 경로의 역순(逆順)으로 글을 쓰는데, 그 이유는 이어질 시리즈 내용을 차례로 잘 읽어보시면 알게 된다. 리치먼드와 그 외곽의 남북전쟁 관련 장소들이 리치먼드 국립전장공원(Richmond National Battlefield Park)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여기는 시내 공원에 위치한 비지터센터로 간판 아래쪽에 의료박물관(Medical Museum)이라 씌여있다. 일단 '침보라소(Chimborazo)'는 여기 야트막한 언덕과 공원의 이름이기도 한데, 생뚱맞게도 중미 에콰도르(Ecuador)의 가장 높은 해발 6,310 m 성층화산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전체 공원 지도를 예의상 올려보는데, 도시 외곽에 1862년의 7일 전투(Seven Days' Battle)와 1864년 콜드하버 전투(Battle of Cold Harbor) 유적지들이 메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관계상 4곳의 비지터센터들 중에서 시내에 있는 여기 하나만 잠깐 들리는 것으로 위기주부의 국립 공원들 방문 리스트에 추가하기로...^^ 남북전쟁 기간 동안에 부상당한 남군 병사들의 치료를 위한 군사병원(military hospital)이 이 언덕에 만들어졌었는데, 목재로 만들었던 150동의 건물은 현재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비지터센터로 사용되는 이 건물은 1900년대 초에 연방정부가 기상관측용으로 지은 것이라 한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여기에 있던 병원에서 전쟁기간 동안에 76,000명 이상의 부상병을 치료하며 사망률은 10% 미만이라서, 당시로는 전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면서 치료수준도 높았던 병원이라 할 수 있단다. 목수(carpenter)의 연장 가방이 아니라, 19세기 중반 외과의사(surgeon)의 치료 가방이란다. 남군 군의관의 복장과 무기를 비롯해 그들의 활약상에 대한 소개 등도 전시되어 있었다. 위기주부는 의대 진학은 꿈도 꿔본 적이 없고, 피를 보면 약간의 경기도 일으키는 체질이라서, 당시의 의료상황 등을 소개하는 전시들이 눈에 잘 들어오지가 않았다.^^ 여기에는 또 활톱(hacksaw)이 전시된 것이 보이는데, 이런 도구들로... 당시 어떻게 부상당한 다리를 절단했는지 친절하게 그림으로 설명을 해놓았다. 이 정도로 리치먼드 국립전장공원에 속하는 침보라소 의료박물관(Chimborazo Medical Museum) 구경은 마치고, 밖으로 나가서 공원을 잠깐 둘러보았다. 사진 가운데 실루엣으로 보이는 동상이 여기서 유명하다고 해서 찾아가는 길인데, 그 동상은 바로 무엇인고 하니... 자유의 여신상이다~ㅎㅎ 1950년에 시작된 미국 보이스카웃 연맹의 'Strengthen the Arm of Liberty'라는 캠페인으로 미국 전역에 높이 2.5 m의 이런 동상이 약 200개나 세워졌는데, 현재 약 100개 정도가 남았다고 한다. 캠페인 제목에 따라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횃불을 들고 있는 팔이 약간 비정상적으로 길어 보였다. 전체적으로 심하게 때가 탄 것은 물론이고 왕관도 일부 부러져 있어서, 청소와 보수가 좀 필요해 보였다. 나무들 너머로 제임스 강(James River)이 살짝 내려다 보이는 언덕의 끝쪽으로 걸어가면, 여기에 앞서 설명한 침보라소 병원(Chimborazo Hospital)이 있었다는 동판을 볼 수 있다. 이제 북부 버지니아와는 뭔가 살짝 분위기가 다른 남부 리치먼드 시내를 운전해서 마지막 목적지를 급하게 찾아갔다. 구글 네비게이션이 알려주는데로 찾아왔는데, 공원 홈페이지에 나온 건물 모습과는 살짝 다른 여기는 매기워커 국립사적지(Maggie L Walker National Historic Site)이다. 입구가 어딘지 두리번거리다가 비지터센터는 건물 사이 통로를 이용해 안뜰로 들어가라는 표지판을 겨우 찾았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비지터센터가 5시가 아니라 4시반까지만 운영한다고 되어 있는데, 이 때는 이미 그 시간을 살짝 넘기고 있었지만 문이 잠기지는 않았었다. 그래서 열고 들어갔더니, 국립공원청 파크레인저 예닐곱명이 모여서 퇴근 준비를 하면서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누고 있다가, 갑자기 들어오는 동양남자 한 명을 보고는 상당히 놀라더라는...ㅎㅎ 매기 워커(Maggie Lena Walker)는 흑인 노예의 딸로 태어난 교육자 겸 사업가로, 1903년에 미국 최초의 여성 은행장이 되어서 흑인들의 자립을 도운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모든 여성과 장애인들의 인권신장에도 기여해서 그녀가 살았던 집이 1975년에 국립사적지로 지정되었는데, 여기는 옆건물에 만들어진 비지터센터고 다른 외관의 보존된 집은 주차한 곳 반대쪽인데 늦어서 들어가볼 수는 없었다. 이 날 하루 이미 계기판에 찍힌 누적 운전시간이 9시간이었지만, 또 2시간을 더 운전해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길 건너편 소방서 건물에 그려진 벽화를 감상했다. 다른 파크레인저 한 명이 또 모임에 참여하려고 비지터센터로 들어가는 모습인데, 참 팔자 좋은 연방 공무원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을 거슬러서 이 날 이전에 방문했던 다른 국립 공원들을 소개하며 남북전쟁과 흑인 지도자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진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리치먼드(Richmond)의 침보라소(Chimborazo) 의료박물관과 매기 워커(Maggie Walker) 국립사적지
미국 남북전쟁 1861~65년 기간에 남부연합의 수도였던 리치먼드(Richmond)는 워싱턴 남쪽 자동차로 2시간 거리에 위치해서, 우리에게는 마치 '서울-평양'과 같은 느낌을 준다. 재작년에 그 도시에 있는 버지니아 주청사만 잠깐 방문해서 소개를 한 적이 있는데, 거기와 다른 남부 버지니아 지역의 국립 공원들 총 5곳을 묶어서 '1탄 펜실베니아'에 이은 3~4시간 거리의 별볼일 없는 곳들 찾아다니기 시리즈 2탄으로 또 다녀왔다. 지도에 표시된 5곳을 북쪽 집에서 출발해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서, 리치먼드 시내의 2곳은 마지막에 잠깐씩만 들렀기에 묶어서 제일 먼저 소개한다. 이 여행은 블로그 역사상 처음으로 경로의 역순(逆順)으로 글을 쓰는데, 그 이유는 이어질 시리즈 내용을 차례로 잘 읽어보시면 알게 된다. 리치먼드와 그 외곽의 남북전쟁 관련 장소들이 리치먼드 국립전장공원(Richmond National Battlefield Park)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여기는 시내 공원에 위치한 비지터센터로 간판 아래쪽에 의료박물관(Medical Museum)이라 씌여있다. 일단 '침보라소(Chimborazo)'는 여기 야트막한 언덕과 공원의 이름이기도 한데, 생뚱맞게도 중미 에콰도르(Ecuador)의 가장 높은 해발 6,310 m 성층화산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전체 공원 지도를 예의상 올려보는데, 도시 외곽에 1862년의 7일 전투(Seven Days' Battle)와 1864년 콜드하버 전투(Battle of Cold Harbor) 유적지들이 메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관계상 4곳의 비지터센터들 중에서 시내에 있는 여기 하나만 잠깐 들리는 것으로 위기주부의 국립 공원들 방문 리스트에 추가하기로...^^ 남북전쟁 기간 동안에 부상당한 남군 병사들의 치료를 위한 군사병원(military hospital)이 이 언덕에 만들어졌었는데, 목재로 만들었던 150동의 건물은 현재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비지터센터로 사용되는 이 건물은 1900년대 초에 연방정부가 기상관측용으로 지은 것이라 한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여기에 있던 병원에서 전쟁기간 동안에 76,000명 이상의 부상병을 치료하며 사망률은 10% 미만이라서, 당시로는 전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면서 치료수준도 높았던 병원이라 할 수 있단다. 목수(carpenter)의 연장 가방이 아니라, 19세기 중반 외과의사(surgeon)의 치료 가방이란다. 남군 군의관의 복장과 무기를 비롯해 그들의 활약상에 대한 소개 등도 전시되어 있었다. 위기주부는 의대 진학은 꿈도 꿔본 적이 없고, 피를 보면 약간의 경기도 일으키는 체질이라서, 당시의 의료상황 등을 소개하는 전시들이 눈에 잘 들어오지가 않았다.^^ 여기에는 또 활톱(hacksaw)이 전시된 것이 보이는데, 이런 도구들로... 당시 어떻게 부상당한 다리를 절단했는지 친절하게 그림으로 설명을 해놓았다. 이 정도로 리치먼드 국립전장공원에 속하는 침보라소 의료박물관(Chimborazo Medical Museum) 구경은 마치고, 밖으로 나가서 공원을 잠깐 둘러보았다. 사진 가운데 실루엣으로 보이는 동상이 여기서 유명하다고 해서 찾아가는 길인데, 그 동상은 바로 무엇인고 하니... 자유의 여신상이다~ㅎㅎ 1950년에 시작된 미국 보이스카웃 연맹의 'Strengthen the Arm of Liberty'라는 캠페인으로 미국 전역에 높이 2.5 m의 이런 동상이 약 200개나 세워졌는데, 현재 약 100개 정도가 남았다고 한다. 캠페인 제목에 따라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횃불을 들고 있는 팔이 약간 비정상적으로 길어 보였다. 전체적으로 심하게 때가 탄 것은 물론이고 왕관도 일부 부러져 있어서, 청소와 보수가 좀 필요해 보였다. 나무들 너머로 제임스 강(James River)이 살짝 내려다 보이는 언덕의 끝쪽으로 걸어가면, 여기에 앞서 설명한 침보라소 병원(Chimborazo Hospital)이 있었다는 동판을 볼 수 있다. 이제 북부 버지니아와는 뭔가 살짝 분위기가 다른 남부 리치먼드 시내를 운전해서 마지막 목적지를 급하게 찾아갔다. 구글 네비게이션이 알려주는데로 찾아왔는데, 공원 홈페이지에 나온 건물 모습과는 살짝 다른 여기는 매기워커 국립사적지(Maggie L Walker National Historic Site)이다. 입구가 어딘지 두리번거리다가 비지터센터는 건물 사이 통로를 이용해 안뜰로 들어가라는 표지판을 겨우 찾았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비지터센터가 5시가 아니라 4시반까지만 운영한다고 되어 있는데, 이 때는 이미 그 시간을 살짝 넘기고 있었지만 문이 잠기지는 않았었다. 그래서 열고 들어갔더니, 국립공원청 파크레인저 예닐곱명이 모여서 퇴근 준비를 하면서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누고 있다가, 갑자기 들어오는 동양남자 한 명을 보고는 상당히 놀라더라는...ㅎㅎ 매기 워커(Maggie Lena Walker)는 흑인 노예의 딸로 태어난 교육자 겸 사업가로, 1903년에 미국 최초의 여성 은행장이 되어서 흑인들의 자립을 도운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모든 여성과 장애인들의 인권신장에도 기여해서 그녀가 살았던 집이 1975년에 국립사적지로 지정되었는데, 여기는 옆건물에 만들어진 비지터센터고 다른 외관의 보존된 집은 주차한 곳 반대쪽인데 늦어서 들어가볼 수는 없었다. 이 날 하루 이미 계기판에 찍힌 누적 운전시간이 9시간이었지만, 또 2시간을 더 운전해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길 건너편 소방서 건물에 그려진 벽화를 감상했다. 다른 파크레인저 한 명이 또 모임에 참여하려고 비지터센터로 들어가는 모습인데, 참 팔자 좋은 연방 공무원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을 거슬러서 이 날 이전에 방문했던 다른 국립 공원들을 소개하며 남북전쟁과 흑인 지도자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진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버지니아 쉐난도어밸리 윈체스터(Winchester)의 남북전쟁 공원과 국립 묘지, 그리고 한국전쟁 기념물
우리 동네를 지나는 버지니아 7번 주도(Virginia State Route 7)는 포토맥 강변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와 쉐난도어 계곡의 윈체스터(Winchester)를 동서로 잇는 약 73마일(117km)의 중요한 교통로이다. 지난 2월말에 그 도로가 블루리지 산맥을 넘어가는 고개에서 출발한 '까마귀 바위' 등산을 마치고 시간이 남아서, 고개를 넘어 내려가 7번 도로의 서쪽 끝인 윈체스터의 여기저기를 잠깐 구경했던 이야기이다. 시더크릭 벨그로브 국립역사공원 방문기를 쓸 때, 그 북쪽의 윈체스터가 남북전쟁의 뺏고 뺏기는 격전지라서 James R. Wilkins Winchester Battlefields Visitor Center가 위치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임시 휴관중이라 내부는 볼 수 없었지만, 이 부근에서 벌어진 6번의 전투에 대한 설명판이 앞마당에 세워져 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그 중에서 역시 눈에 띄는 것은 이 지역에서 두번째 충돌이었고, 남군의 슈퍼스타인 스톤월 잭슨(Stonewall Jackson) 장군이 활약한 1862년 5월의 제1차 윈체스터 전투이다. 하지만 2년여의 시간이 흐른 후에 이제 찾아가는 들판에서 벌어진 마지막 격돌에서는 다른 결과가 나온다. 1864년 9월의 제3차 윈체스터 전투의 대치도와 설명이 빼곡한 안내판이 보이는데, 제일 우측상단에 국립공원청 로고가 보이는 이유는 쉐난도어밸리 전체가 국가유산지역으로 지정되어서 유적지 보존에 NPS가 지원을 하기 때문이다. 그럼 지금도 소를 키우는 목장이 왼편에 있는 트레일을 따라서 기념물을 찾아가 보자~ 걸어가는 도중에 옛날 플로리다 키웨스트 여행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듀발의 공격(Duval's Attack)이란 제목의 안내판을 만났다. 오른쪽의 두발이 없는 듀발 대령보다는...^^ 그의 부하였던 가운데 아래 작은 사진의 훈남에 주목해야 하는데, 나중에 미국의 제25대 대통령이 되는 윌리엄 매킨리(William McKinley) 대위이다. 이 전투에 참가한 북군의 주력은 오하이오 주에서 온 부대였기 때문에, 남쪽을 내려다 보는 위치에 작년 2023년에 새로 만들어 반짝반짝한 오하이오 모뉴먼트(Ohio Monument)가 세워져 있다. 기념비의 뒷면에는 여기 전투에 참가했던 주요 인물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데, 북군 사령관이었던 필립 셰리든(Philip Sheridan), 나중에 인디언 전쟁에서 악명을 떨치다 전사한 조지 커스터(George Custer), 제19대 대통령이 되는 러더퍼드 헤이스(Rutherford B. Hayes), 그리고 제일 아래에 앞서 설명한 매킨리가 보인다. 즉 여기 들판에서 미래의 미국 대통령 2명이 함께 전투에 참가했다는 뜻인데, 참고로 오하이오 출신의 역대 대통령은 모두 7명으로, 버지니아 8명에 이어서 두번째로 많은 대통령을 배출한 주이다. 헤이스 대령이 앞장서 진흙탕인 개울을 건너 남군의 측면을 공격했던 위치에 세워진 안내판이다. 트레일을 따라 저 Redbud Run을 건너면 남군의 기념물들도 나온다고 하지만, 다른 구경할 곳들이 또 있어서 그만 왔던 길로 돌아가서 다시 차로 이동을 했다. 시내 한가운데 주택가에 자리잡은 윈체스터 국립묘지(Winchester National Cemetry)로, 오른쪽에서 펄럭이고 있는 까만 깃발은 3년전 코로나 예방주사를 맞으러 LA의 국립보훈병원을 방문했던 포스팅에서 자세히 설명드렸던 POW/MIA Flag 이다. 남북전쟁이 끝난 이듬해에 공식적으로 만들어져 부근에서 전사한 북군 병사들이 매장되었고, 최근까지도 이 지역 출신으로 여러 다른 전쟁에 참전했던 미군들이 추가로 여기에 안장되어서, 약 6천개의 묘비와 수 많은 기념물이 세워져 있다. 비석에 성조기와 조화가 놓여진 Richard M. Tunner 해병대원은 2차대전, 한국전, 베트남전에 참전했고, 2022년에 92세로 사망해서 여기에 묻혔다고 적혀있다. 잠깐 더 돌아보면 남북전쟁으로 쉐난도어 밸리에서 전사한 멀리 메사추세츠 출신의 병사들을 기리는 조각도 세워져 있고, 깃발을 들고 쓰러지는 아들을 껴안고 있는 어머니(?)를 함께 조각한 펜실베이니아 기념물도 있다. 이 정도 둘러보고 7번 주도를 동쪽으로 달려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바로 근처에 꼭 가봐야 할 것 같은 장소가 하나 더 있었다~ 2011년 10월에 두번째 대륙횡단 이사를 하면서 한반도 도로표지판을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석판에 새겨진 한반도 그림을 버지니아 시골에서 보게 되었다. 이 곳은 한국전 기념물(Korean War Memorial)로 여기 윈체스터 출신의 625전쟁 참전용사와 함께 그 후 한국에서 복무한 미군들을 기념하기 위해서 2013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미국에서 '잊혀진 전쟁(The Forgotten War)'이라고 하면 한국전을 말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런 기념물들이 더 눈에 들어오는 듯... 옆으로 태극기와 함께 설명판이 상세히 만들어져 있는데, 그러고 보니 한국전도 남북전쟁이다. 흔히 '시빌워(Civil War)'로 불리는 미국의 내전은 북군을 파란색으로 남군을 빨간색으로 표시하지만, 한국은 항상 정반대인 것이 차이첨이지만 말이다. 석벽에는 버지니아 쉐난도어 계곡과 이웃한 웨스트버지니아 출신으로 한국전에서 전사한 분들이, 바닥의 빨간 벽돌에는 참전했던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서, 잠시 서서 감사의 묵념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도로 건너편이 조명탑까지 세워진 여러 경기장이 있는 공원이었는데, 보수공사를 하던 사람들이 "쟤는 혼자 뭐야?"라며 의아하게 보셨을 듯...^^ 이상으로 다시 갈 일은 없을 것 같은 버지니아 윈체스터를 떠나 집으로 돌아가면서, 2024년의 두번째 '등산+역사' 여행을 마쳤다. 현재 세번째는 전혀 기약이 없지만, 작심삼일이라는 말도 있으니 계획이라도 한 번 세워봐야 겠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