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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시스텐즈 eXistenZ (1999)
영화는 일종의 가상현실 체험 게임을 소재로 하고 있다. 아닌듯 묘하게 인체의 어딘가를 닮은 역겨운 외형의 게임기 '포드'는 탯줄처럼 생긴 케이블을 이용해 인간의 중추신경에 직접 연결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마치 샌드박스 오픈월드 게임처럼 룰과 미션이 주어지지 않은 채, 유저의 자유의지와 창의력으로 할 일을 찾아 해결해야 하는 방식의 시뮬레이션 게임 속에서 가장 첨예한 대립은, 게임을 만드는 자와 게임을 악마의 것으로 간주해 반대하는 자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영화 자체도 그러하거니와, 특히 게임의 진행은 맥거핀과 모호한 상징성으로 가득하다. 마치 관객의 이해와 해석을 원천적으로 거부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물론 영화가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부분도 있는데, 이것이 바로 게임의 모호한 성질과 관련 있다.

VR 사운드를 만드는 회사, 가우디오랩
예전에 장애인 관련 기술을 연구하시는 분과 이야기를 하던 중에, 이런 말을 들었다. 청각 장애인분들이 시각 장애인보다, 더 위험해요 아니 그래도 두 눈 멀쩡히 뜨고 있는 분들과 앞이 보이지 않는 분들이 위험도가 같을까? 싶어서 보는데, 이야기가 이어진다. 먼저 시각 장애인 분들은 아예 위험한 곳에 잘 가지 않는다고 한다. 아하- 이해가 됐다. 그리고.... 청각 장애인 분들은, 뒤를 볼 수가 없어요. 아- ... 하고, 뒷통수를 맞은 것처럼 잠시 멍해졌다. 맞다. 우리는 눈으로만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귀로도 세상을 본다. 눈은 전방 120도만 보여준다지만, 우리를 둘러싼 '공간'은 귀로 듣고 느낀다. 눈으로 보이는 것만 있어선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 귀로 듣는 소리가 알

매트릭스 The Matrix (1999)
굳이 비교를 하자면 [터미네이터] 플롯을 확장한 개념이다. 인간에게 반기를 든 기계가 인간을 몰살시키기로 결정하면 터미네이터 세계관이 되는 거고, 매트릭스에 넣어 살아있는 건전지로 써먹기를 결정했다면 이 영화의 세계관이 되는 셈이다. 전자의 기계들이 분노했다면, 후자인 이 영화의 기계들은 조금 더 생산적으로 머리를 굴렸다고 볼 수 있겠지. "살아있다"는 건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을 탐구하는 과정의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 속 인간들에 국한해서 말하자면, 죽음보다 못한 삶임에도 실체를 직시하는 것이 중요한지(모피어스) 아니면 허상에 속더라도 삶을 누린다는 느낌과 만족감이 더 중요한지(사이퍼)에 대한 대비가 중요한 고민이다. 그러나 바꿔 생각하면 인간들을 사육하기로 결정한 기계들에게도 해당되는 동일한 고민

13층 The Thirteenth Floor (1999)
[트루먼 쇼]처럼 자신이 가짜 세상의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선 [버추오시티]의 SID처럼 세상으로 나오려는 인공지능, [로보캅]처럼 자아의 주체는 기억이라고 하지만 [블레이드 러너] 혹은 [매트릭스]처럼 그것은 전자 신호로 만들어진 가짜 기억. 즉, "자아"에 대해 철학적 냄새를 풍기는 SF 영화 속 아무개들의 집합체같은 영화다. 철학적이다 못해 추상적인 고민에 빠진 인물은 빈센트 도노프리오가 연기한 제리 애쉬튼. 그러나 이 남자, 아니 이 CG 퍼펫은 "나는 누구인가"라며 한가하게 처지를 비관하지 않는다. 뻔한 존재론적 고민에 빠지는 대신 그는 그래픽 세상과 그래픽 몸에서 벗어나 현실로 역류해 유저의 몸을 차지한다. 소 뒷걸음질로 쥐 잡듯 돌발적인 상황이었지만 어쨌든 그는 그렇게 자신이 태어난 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