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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공식블로그 | 2019년 5월 8일 |
불기 2563(2019)년 4월 27일 토요일 오후 6시. 서대전시민공원에서 ‘제11회 대전시민문화 연등축제’가 봉행되었습니다. 행사장 주변 부스에는 불화그리기, 연꽃등 만들기, 탁본하기, 인경체험, 풍물체험 등 다채로운 불교문화 체험이 있었습니다.
단주 만들기 부스에서 정성스레게 체험을 하는 아주머님 모습, 연꽃등 만들기 체험코너에서 종이컵에 연잎을 한장 한장 붙이는 어린이와 부모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학을 주제로 한 사진전과 붓으로 그린 한국화, 한문 글씨를 써주시는 연타스님의 모습도 있었습니다.
참여한 내빈들
계백로 인도 옆 도로에는 각 사암에서 만든 대형 연등이 차량에 설치됐는데요. 제등행렬을 위해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4명의 스님들이 바라춤을 췄습니다. 불교의식인 바라춤은 승려가 양손에 바라를 들고 추는 춤을 말합니다. 불교 의식무용인 작법무의 하나로 불법을 찬양하는 춤입니다.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의식이기도 한데, 참가자들의 내면을 정화한다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바라춤 공연 모습
연등문화축제 봉축법요식에는 석준 스님이신 연합회장을 비롯하여 지역스님과 내빈들이 참석했는데요. 자비와 평화의 염원을 담은 봉축법요식에는 헌화와 관불의식으로 진행됐습니다.
대전불교 연합합창단은 ‘연등 들어 밝히자’, ‘즐거운 날’, ‘부처님께 귀의합니다'’를 축가로 불렀습니다.
대전불교 연합합창단 공연
봉축집행위원장인 삼문사 주지 덕해스님의 개회사를 시작으로 ‘삼귀의’, ‘반야심경 봉독’, ‘찬불가’ 합창이 펼쳐졌습니다. 비구니 청렴회 일권스님이 ‘고불문’을, 불교총지종 만보사 주교 안성정사이 ‘기원문’을 낭독했습니다. 공동 봉축위원장이신 광수사 주지 무원스님의 ‘봉축사’와 전각종 대전교구청장 원명정사의 ‘봉행사’가 이어졌습니다.
허태정 대전시장은 축사에서 참석자들 모두에게 부처님의 자비가 깃들기를 기원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지 2563년째가 되는 오늘, 광명으로 가득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이신 불자님들 모구에게 부처님의 자비가 깃들길 기원합니다. ‘한 길의 담을 넘고자 하는 자는 한 길 반을 넘으려고 애써야 한.’는 ‘착수어전’의 경구처럼 눈앞에 산적한 일 뿐만 아니라, 시민 모두가 행복한 대전이 되도록 쉼 없이 용맹정진 할 것입니다.”
허태정 대전시장의 축사
다함께 ‘청벽가’를 부른 후, 설문스님의 ‘입정’과 대전불교총연합회 회장인 석준 스님의 ‘법어’가 진행됐습니다.
축하공연으로 대전불교 연합합창단의 축가와 임자은 난타공연이 펼쳐졌습니다.
타악 퍼포먼스 난타공연
특별가수 무대도 이어졌는데요. 가수 이해리 씨가 ‘아모르 파티’, ‘모르시나요’, ‘사랑하는 사람아’, ‘아이 좋아라’를 열창했습니다.
가수 이해리 공연하는 모습공연을 열광하는 불자들 모습
가수 설운도 씨가 무대에 오르자 환호성이 터졌습니다. 설운도 씨는 ‘갈매기 사랑’, ‘보고 싶다 내 사랑’, ‘보라빛 엽서’, ‘다함께 차차차’, ‘상하이 트위스트’를 불렀는데요. 남자 어린이가 무대에 올라 함께 춤을 추는 유쾌한 광경도 있었습니다.
가수 설운도 공연 모습
제등행렬이 있기 전에 화려한 축하 폭죽이 발사 되었습니다. 서대전시민공원에 모인 많은 불자들이 환호마며 불꽃놀이를 즐겼습니다.
화려한 불꽃놀이
오후 8시가 넘어서 제등행렬이 서대전시민공원을 출발하여 구 충남도청을 지나 중앙로사거리까지 이어졌습니다. 거리행진을 마치고 각 사암으로 향했습니다.
달리는 포교사 택시들 행렬
연등을 단 택시들이 선두에 서고 봉축위원회 현수막, 세계불교기, 불교만자기, 장엄 번 기수단, 운불련 장엄 등 차량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광수사, 연화사, 광제사, 삼문사, 진각종, 총지종, 태고종에서 참가한 전통 사찰도 제등행렬에 참여했습니다.
동참한 스님과 불자들은 연등을 밝히면서 대전시민의 행복을 기원했습니다.
하얀 코끼리를 탄 아기승, 무궁화 꽃으로 만든 대한민국 지도, 태극문양, 삼층 석탑, 용, 큰별 , 대형제등, 백호, 공작 등의 행렬도 장관을 이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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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공식블로그 | 2019년 4월 8일 |
'문충사 춘계 제향봉행' 행사가 3월 31일(일) 오전 10시 동구 용운동 문충사에서 열렸습니다.
<문충사 입구 홍살문과 충신 정려각><외삼문 >
문충사는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4호(1989년3월18일)로 지정됐는데요. 우암 송시열의 9대손이자 우국지사인 송병선·송병순 형제의 위패와 영정을 봉안한 한말의 사당입니다. 송병선·송병순 형제는 일제에 의해 강제로 체결된 을사조약과 한일합방을 통탄했습니다.
이곳에는 자결한 문충공 연재 송병선(1836∼1905)과 그의 아우로서 한일합병의 울분을 못 이겨 순절한 심석 송병순(1839∼1912) 형제의 위패와 영정이 있습니다.
<제례를 준비하시는 모습>
문충사 입구에는 홍살문과 충신 정려각이 있습니다. 철제로 된 홍살문이 세워져 있고 그 옆에 정면 1칸, 측면 1칸에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된 송병선의 충신 정려각이 있습니다.
전면 잔디광장 좌측에는 연재 송병선, 심석재 송변순 선생의 기념조형물이 있는데, 2014년 3월에 준공됐습니다.
외삼문을 통과하면 좌측에는 살림집, 우측에는 창고와 방, 화장실이 있는 건축물이 있습니다. '용동서원'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 평면으로 지어졌습니다.
강당 뒤쪽 사당 입구에는 '성인문'이라는 현판이 걸린 전면 3칸, 측면 1칸에 홑처마 맞배지붕 '내삼문'이 있습니다.
<연재 송병선 선생 영정>
송병선은 학문이 뛰어나 천거되었으나 관직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19세기말 외세가 물밀듯이 들어와 나라의 앞날이 어려워지자 ‘근사속록’을 간행하였습니다. 1905년 불법적인 을사조약이 체결되었을 때는 고종에게 조약 파기와 을사 5적을 처단할 것을 진언하기도 하였습니다. 다시 고종을 만나려다가 일본 헌병들에게 체포되었는데 상소문을 올리고 음독 자결하였습니다.
<송병순 선생 영정>
송병순은 고종 25년(1888) 의금부도사가 되었으나, 사퇴하고 학문 연구에만 몰두하다가 불법적인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일본을 성토하는 글을 지어 전국에 배포하였습니다. 1910년 한일합방의 슬픈 소식을 듣고 두문불출하다가 끝내 형과 같이 음독 자결하였습니다.
<춘계 제향 봉행 전경>
이 사당은 충북 영동군 학산면 범화리에 세워졌었으나, 1966년 송병선 선생의 추모 60주년을 맞아 선생이 태어나고 순국한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1970년 강당인 용동서원을 세워 서원 건축 양식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제례를 시작하는 모습>
송병선, 송병순 두 형제분의 위패와 영정이 모셔져 있는 사당에서 매년 봄과 가을에 제사를 올리고 있습니다. 춘계 제향봉행에는 유림과 후손 등 70여명이 참석하였습니다.
<분주히 준비하시는 접수대 전경>
초헌관은 황인호 동구청장, 아헌관과 종헌관 등은 유림들께서 하셨습니다.
춘계 제향봉행이 시행되기 전에 일찍 도착하여 홍살문과 충신 정려각, 연재 송병선, 심석재 송변순 선생의 기념조형물을 둘러보았습니다. 넓은 잔디에는 제법 푸른색으로 변해가고 있었으며, 후손 몇 분들은 기념 조형물을 둘러보고 계셨습니다.
<<연재 송병선선생과 심석재 송변순 선생 기념 조형물>
외삼문을 통과하니 접수처에는 막 준비를 하고 계셨을 때, 저번에 찾아뵙고 인사를 드린 분과 인사를 하였습니다.
때마침 마당에서는 점심때 식사를 위하여 천막을 설치 할 때 촬영을 잠시 미루고 함께 하였습니다. 설치를 마치고 강당으로 가보니 어르신 분들은 강당 내부 방에서 담소를 나누고 계셨으며, 강당에서는 행사 준비를 하고 계셨습니다.
<담소를 나누고 계시는 유림 어르신분들>
제향에 각자 맡은 내용을 파악하시고 제례 복을 입고 계셨습니다.
사당에서는 두 분이 제향봉행에 놓이는 음식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전면 중앙계단 아래에는 양쪽 천막아래에는 바닥에 돗자리 깔려 있었으며, 그 곳에는 자리를 표시하는 표지판을 있었습니다. 우측에는 세면대와 수건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돗자리에 서계실분의 위치표지판>
사당 안에는 목기제기와 술잔과 술잔받침이 있었으며, 송병선, 송병순 두 형제분의 위패와 영정이 모셔져 있는 곳에 제상위에 음식을 놓고 계셨습니다.
1열에는 양쪽에는 놋쇠 촛대, 2열에는 편대, 3열에는 작고 길게 썰어 묶은 무우, 미나리 줄기 묶음, 고기, 밤, 대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4열에는 조기, 마른 생선, 육포가 놓여 있었고, 그 뒤에 위패가 놓여 있었습니다.
<제상 전경>
제향봉행을 위해 강당 옆에는 행사준비를 위해 도열하고 있었으며, 그 외 유림과 후손들이 뒤에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행사는 법도에 의하여 장시간 진행이 되었습니다. 행사가 끝날 무렵 사당 옆에서 소각한 후 모든 행사가 종료가 되었습니다.
강당 앞에 설치된 천막에서 참석하신 모든 분들이 식사를 하면서 담소를 하셨습니다. 식사를 마칠 무렵 제사를 지내 포, 대추, 밤을 조금씩 나누워 담아 참석하신 모든 분들에게 나누워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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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공식블로그 | 2019년 3월 20일 |
3월 16일 오후2시 동구 인동 구 동화극장 앞 3·16만세운동거리.
3·1운동 100주년 및 3·16만세운동을 기념하는 ‘시와 음악의 콜라보 공연’이 열렸습니다.
유관순정신계승사업회가 주최하고 코리아시낭송작가협회가 주관한 이날 행사는 1부와 2부로 나뉘어 진행됐습니다.
무대가 있는 후면에는 3·1운동 흑백그림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 위 나무테크 난간에는 태극기가 일렬로 도열되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습니다. 대전천변에는 어린 버드나무 꽃인 버들강아지의 꽃이 피려고 하네요.
인동장터 3·16독립만세운동은 산내면 출신인 양사길이 동구 인동 쌀시장 앞에서 주도해 시작됐죠.
1부는 창립식에는 국민의례,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묵념, 독립선언문 낭독이 있었습니다. 곧이어 내빈소개, 내빈들 축사, 유관순정신계승사업회 목적과 이념 낭독, 유관순 노래, 만세삼창, 봉사상 시상이 이어졌습니다.
2부는 검정치마에 하얀 저고리를 입은 홍세미 씨의 사회와 함께 안해윤의 해금연주, 이윤진의 플롯연주, 정영선의 피아노연주로 꾸며졌습니다.
첫 번째는 유성구청청소년앙상블팀이 서현자 단장의 지휘로 ‘천개의 바람이 되어’를 연주했습니다.
두 번째는 안해윤의 해금 연주를 배경음악으로 시낭송 콜라보 공연이 펼쳐졌습니다. 김금국, 안창용, 남금자 씨가 박두진 시 ‘3월1일의 하늘’을 낭송하고, 장만옥, 최미자 씨는 이수인의 시 ‘유관순 열사’를 읊었습니다. 유영숙, 김근수, 김다현 씨는 김근수의 시 ‘삼월하늘 바라보며’를 낭송했습니다.
세 번째는 한울소리예술단원이 무대에 올랐는데요. 이웃음의 연주와 함께 ‘아~ 대한 태극기’와 ‘경복궁타령’ 첼로연주를 선보였습니다.
네 번째는 정영선의 피아노연주로 꾸며졌습니다. 백숙자, 오지영, 이임숙 씨가 김남주의 시 ‘독립의 붓’을 낭송하고, 안인순, 배진순 씨가 류정숙의 시 ‘우리의 대한민국이여’를 낭송했습니다.
다섯 번째는 미래사랑나눔협회교육이사인 탈북민 이효주 씨의 아코디언 연주가 펼쳐졌는데요. ‘독도아리랑’과 ‘고향의 봄’을 연주를 하자 관객들이 큰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습니다.
여섯 번째는 정영선의 피아노연주와 함께하는 시낭송 콜라보 공연이 열렸습니다. 배경 연주로 이현준, 민병희, 박병모 씨가 김종원의 시 ‘삼월이면 찾아오는 사랑’ 을, 김향미 씨가 한석산의 시 ‘나의 조국’을 각각 낭송했습니다.
일곱 번째는 김기열 테너가 무대에 올ㄹ ‘눈물 속에 핀꽃’을 불렀습니다.
여덟 번째는 꿈쟁이 어린이집 아이들이 검정 교복을 입고 나와 플래시몹 ‘독도는 우리땅’ 공연을 펼쳤는데요. 태극기를 흔들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매우 귀여웠습니다. 참석한 관람객과 부모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
아홉 번째는 이윤진의 플롯연주와 함께 이은희 씨가 성재경의 시 ‘마음’ 을 부르고, 이은겸 씨가 윤정근의 시 ‘눈삭이꽃 당신’를 낭독했습니다. 박영주, 차보건 씨는 김윤자의 시 ‘독립기념관’을 낭송했습니다.
열 번째는 허진주 가수가 합창단원과 함께 ‘아~ 대한민국’, ‘3.1절노래’를 태극기를 흔들며 합창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는 출연진 모두가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나서 태극기를 들고 계단에 올라왔습니다. 만세 삼창을 하면서 행진을 했습니다.
행진 행렬이 인도를 따라 멀리 사라지는 동안 앞쪽에 옛 동화극장 간판이 보였습니다. 그곳은 극장의 겉모양만 남아 있었고, 내부는 쌀가게로 변신했습니다. 주인에게 이야기를 하고 내부를 살펴봤습니다. 어릴 적에 자주 들린 추억의 장소였죠. 곳이다. 어렸을 때는 매우 크게 느꼈던 장소가 어른이 되니 좀 작아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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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공식블로그 | 2019년 3월 12일 |
용두동은 조선시대에 공주목 유등천면을 아우르는 곳이었습니다. 1914년 회덕군 유등천면 반심리 용두리, 평리와 천내면 탄평리, 산내며 중촌, 방축리가 일부 합쳐져 용두리가 됐습니다. 용두리는 대전군 유천면에 속했는데, ‘여지도서’와 ‘호구총수’에 그 명칭이 등장합니다.
야트막한 산세가 특징이고 용머리에 해당한다하여 용머리, 용두리로 불렸습니다. 1931년 대전읍으로 승격이 된 이후에 용두정이 됐습니다. 1931년 부제 실시로 대전부에 속했다가 1946년 '용두동'으로 개칭됐습니다. 용두동에는 약5천 세대 1만 명이 살고 있습니다.
용두마을은 용두정혈에 위치해있습니다. 산의 능선을 풍수지리에서는 용에 비유합니다. 용의 머리는 명당에 해당됩니다. 명당을 다른 말로 혈흑은 정혈이라고도 합니다. 주산인 보문산에서 이곳에 이르는 산의 능선이 용 모양을 띄고 있습니다. 그래서 용두마을이고, 이곳을 용두정혈이라고 합니다.
2월 24일 오전 중구 용두동 용머리공원에서 ‘제8회 용두동 용신제’가 열렸습니다.
용신제는 정월대보름날 전후에 용의 날을 제사날로 정해 진행됩니다. 용신제는 마을과 주민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입니다.
이날 매우 포근한 날씨였습니다. 용신제가 열리는 행사장 주변에는 동네 어르신 분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대화를 나눴습니다.
일찍 공원에 도착하니 천막 아래에서 마을 분들이 음식을 만들고 계셨습니다. 용머리공원 중앙에 위치한 용머리동상 앞에는 제상이 준비됐습니다.
식전행사로 동네 한바퀴를 도는 길놀이와 사물놀이가 한바탕 펼쳐졌습니다. 풍물단 일행은 용머리공원 북쪽으로 진입을 하여 용신형상 주변을 한 바퀴 돌고나서 용머리동상 좌우에 용의 깃발을 세웠습니다. 이어 청룡과 황룡의 용상을 뒤쪽에 설치했습니다.
용신형상 앞에는 대형 정수물이 놓였습니다. 제상에는 제물이, 제상 아래에는 향로, 향, 주전자, 술이 준비됐습니다. 제상 옆에는 소머리가 별도로 놓였습니다.
제상 1열에는 대추, 밤, 감, 배, 사과, 과자, 약과, 수박이, 2열에는 부침개, 3열에는 술잔과 바나나, 양측 촛불이 놓였습니다.
오달석 옹이 액운을 쫓는 액막이굿을 했습니다.
제례 집례자로 조성환 용신제보존위원회 의원장, 초헌관은 이상석 용신제보존회회장, 아헌관은 박용갑 중구청장, 종헌관은 안인원 주민자치위원장, 좌집사는 김분흥 남부경로당, 우집사는 주항림 남부경로당 회장, 축관 소지는 이영훈 용두아파트 경로당이 선정됐습니다.
집례자는 동쪽, 중앙, 서쪽으로 향하여 상읍례를 했습니다.
참례자는 용신형상 앞에서 큰절을 하고, 제물이 제대로 되어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좌우 집사들은 초에 불을 붙이고, 초헌관을 모시고 손을 씻었습니다.
용신제에 처음 참여했을 때는 용신제를 지내기 전에 왜 촛불을 켤까 하는 궁긍증이 있었는데요. 이날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초헌례, 축문낭독, 아헌례, 종헌례 순으로 용신제가 진행됐습니다.
용신제를 지낸 분들과 함께 기념 촬영을 했습니다. 용신제에 참여한 주요내빈과 주민들이 제례음식과 떡국을 나눠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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