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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공식블로그 | 2019년 2월 13일 |
설날 연휴가 끝나고 원도심 대흥동 성심당 부근에 갔더니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있었어요.
성심당은 제과 계산대 앞에 줄이 10미터는 서있고, 2층의 테라스 키친도 번호표를 받아서 식사할 정도였어요.
1월 말에 대통령이 다녀가신 후 외지에서 온 분도 적지 않은 것 같은데, 성심당만 다녀가기 보다 바로 부근에 있는 대전창작센터에서 대전의 현대예술도 감상해보세요.
대전창작센터(옛 농산물 품질관리원)
대전창작센터로 향하는 도보 위에는 이런 동판 안내판이 박혀 있습니다.
지금은 대전창작센터 전시공간인데요. 이곳은 국립농산물 품질관리원으로 사용되었던 건물로, 대전근대문화탐방로의 일부입니다.
대전창작센터- 온-오프:웰컴 투 라이트
대전창작센터- 온-오프:웰컴 투 라이트
대전창작센터에서는 새해를 맞아 새 전시 온-오프:웰컴 투 라이트(Welcome to Light)를 시작했습니다.
[온-오프:웰컴 투 라이트(Welcome to Light)]
허수빈, 윤석희, 김태훈
2019.1.29~3.24 (월요일 휴관)
무료관람
대전창작센터는 대전 현대미술 전시공간으로 10년 간 활용되었던 곳으로, 근대의 역사가 흐르는 건물로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도시의 환영, 빛'이란 주제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도시를 어떻게하면 예술로 회복시킬 수 있을지를 고민한 작품을 선보입니다.
2층의 일부 공간에서 허수빈 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1층에서 계단까지 전시한 것은 도시관련 LED사진 작품인데, 2008년 강원도 원주역 앞의 풍물시장에서 본 골목풍경 작품과 2015년 서울 문래동 골목의 여인숙이라고 합니다. 금방 사라질 것처럼 수십 년 역사가 담긴 집에 빛을 담아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낙후된 동네도 불빛이 살아나면 집의 온기가 느껴지고 생명력을 얻는 것 같습니다.
계단참 공간을 활용해서 전시를 했는데요. 눈여겨 보지 않으면 오래된 건물이라 벽돌이 드러나고 밖에서 빛이 들어오나보다라고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는 LED사진 작품이죠.계단참 벽에 있는 것은 '뒷집'이란 작품이고 2층 계단 난간에 걸린 작품은 '앞집'입니다. 참 재미있는 구성입니다~!
계단참에서 보면 1층의 작품과 2층 난간벽의 작품이 보입니다.
2층으로 올라가 오른쪽방으로 들어가면 그곳에도 허수빈 작가의 작품이 있습니다.
어두운 방에 작은 창으로 빛이 새어 들어오고 '전시된건 아무것도 없네?'라고 착각하기 쉬운데 바로 그것이 빛을 이용한 작품입니다.
작품 제목은 '방범창문', '방범창문 햇살', '기둥, 처마', '문3', '햇살 한조각' 등의 작품입니다. 햇살 한조각! 참 재미있는 작품 이름이네요~!
2층 중앙 방에는 윤석희 작가의 작품 '궤도'가 있습니다.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현대인을 뜻하는 오브제를 중심에 세우고 주변의 스피커에선 웅성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립니다. 이 토르소 오브제가 웅성거리는 소리에 반응해 토르소의 LED가 빛납니다. 사람들 속에서 어울려 살아야 하지만 그 웅성거림이 정신적으로 공해가 되고 불쾌하고 불편한 요소가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 남은 방은 김태훈 작가의 LED사진작품으로, 어두움 속에 도깨비불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합니다.
작품의 제목은 '도깨비''반인반수' 등의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무서울 수도 있고 명멸하는 불빛의 도깨비를 재미있게 지켜볼 수도 있습니다.
사진은 1000년 도시인 경주에서 촬영한 것이라고 하는데, 그것도 다가올 시간 앞에서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라는 의미를 담은 것이라고 합니다.
회화, 조각, 미디어 등이 다양하게 결합된 현대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 작가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느낄 수 있어서 참 흥미롭습니다.
대전 원도심 대흥동에 가시거든 대전창작센터의 미디어 작품도 감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예술작품 전시공간은 도심 속 오아시스 같은 곳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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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공식블로그 | 2019년 1월 31일 |
뉴트로
최근의 우리 문화를 설명해주는 키워드 중 하나인데요.
새로움을 뜻하는 ‘New’와 복고를 뜻하는 ‘Retro’가 합쳐져 만들어진 뉴트로(New-tro)는 복고를 새롭게 즐기는 경향을 의미합니다.
뉴트로 열풍은 소비로도 이어져 옛날 것들을 쫓는 소비 유형이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낡고 오래된 빈티지 물건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는데요.
이렇게 빈티지를 지향하는 소비는 장난감, 의류, 인테리어 소품, 생필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어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빈티지!
옛날 감성과 생기가 어우러진 대전의 원도심에서 한 번 찾아볼까요?!
빈티지 in 패션
트렌드에 맞춰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는 분야가 바로 패션인데요.
패션 산업에서도 빈티지를 빼놓을 수 없겠죠?!
대전의 패션 메카! 대전 지하상가에도 빈티지 의류가게가 많더라고요.
특히 위 사진 속에 표시해둔 구역에 많은 빈티지 의류가게가 몰려 있었어요.
대전 지하상가의 마스코트 룰루와 랄라, 그리고 맛있는 떡볶이로 유명한 <바로그집>이 보이면 도착입니다!
빈티지 쇼핑의 매력은 뜻밖의 ‘득템’이 아닐까 싶어요.
특히 옛날에 만들어진 상품들인만큼 현재는 생산되지 않는 것들이 많은데요.
그런 희소성 높은 옷을 발견하게 된다면 열심히 발품 판 보람이 있겠죠? ㅎㅎ
(+ 지하상가 근처에 위치한 대전 중앙시장에도 많은 빈티지 의류가게가 있으니 꼭 한 번 방문해보세요!)
빈티지 in 소품
계속되는 빈티지를 찾아 떠나는 여행!
대전 지하상가를 떠나 두 번째로 방문한 곳은 어디일까요.ㅎㅎ
이번에는 좀 한적한 곳으로 가보았는데요.
테미오래를 지나서, 보문오거리에 닿기 전에 도착한 곳은?
<대흥판다>라는 레트로 소품샵입니다!
<대흥판다>라는 가게 이름은 동물 '판다'라는 뜻도 있지만 동시에 무언가를 판매한다는 의미의 '판다'도 있다고 해요.
내부로 들어가 보니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가득하더라고요!
한참을 눈을 못 떼고 구경했습니다. ٩( ᐛ )و
누군가의 손을 거쳐온 물건들도 있었지만 새제품들도 많았어요.
만든지 아주 오래되었음에도 새 것이 있다니 더 신기했답니다!
<대흥판다 사장님과 함께한 막간 인터뷰>
Q. 레트로 소품샵을 운영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원래부터 옛날 것, 오래된 것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수집도 많이 했었죠. 특히 옛날 물건들은 사용할 수 있는 게 있고 못 하는 게 있는데요. 저는 사용할 수 있는 물건에 매력을 느꼈고, 그 물건들을 가져와서 판매함으로써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 옛날 물건이 가진 매력은 무엇일까요?
개인적으로 제가 오래된 물건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해요. 옛날 물건들이 더 예쁘고 품질도 좋기 때문인데요. 예를 들어서 컵을 보면 옛날 컵들은 여러 가지 색상이나 무늬가 들어가서 되게 화려한 것들이 많아요. 이런 경우는 손이 많이 가는 섬세한 작업을 거쳐야 하거든요. 그렇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질도 좋아지는 거죠.
Q. 운영에 어려운 점은 없으신가요?
최근 레트로 열풍이 불면서 수요가 많아졌고 그만큼 물건을 두고 벌어지는 경쟁도 늘었어요. 가게를 시작했던 2016년까지만 해도 물건들을 쉽게 구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희소성이 높아져서 저희도 찾기가 어려울 때가 많거든요.
특별부록: 기자 PICK!
※중구청 맞은편에 위치해 있습니다.
빈티지 찻잔, 그릇 등은 물론이고 지금은 쉽게 볼 수 없는 타자기, 전화기, 카메라까지 다양한 빈티지 물품들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어요.
구경하고 마시고 이야기 나누기 딱 좋은 곳입니다!
흔적에 얽힌 아름다운 기억
빈티지가 사랑받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추억이라는 과거의 따듯했던 기억이 사람들을 사로잡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더불어 세월의 흔적에 담긴 정겨움도 매력 중 하나인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대전의 원도심 곳곳을 돌아본 이번 취재는 공간의 흔적에 얽혀있는 저와 대전의 지난날을 되새겨볼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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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공식블로그 | 2019년 1월 30일 |
대전 중구 부사동에 위치한 충무체육관과 매헌 윤봉길 의사의 동상.
충무체육관이 개장한 해는 1971년 2월 8일. 윤봉길 의사의 동상이 세워진 해는 1972년 5월 23일.
그로부터 50여년의 긴 세월이 지나자 이곳은 대전의 다채로운 시간들이 쌓인 공간으로 변모했습니다.
1967년 대전의 모습.
사진 아래 왼쪽에 한밭종합운동장이 보입니다.
(출처: 대전시 아카이브 서비스)
충무체육관이라는 이름의 유래
“(서울) 장충체육관을 능가하는 실내 체육관이
완공되었지. 거북선을 연상케 하는 디자인은
충무공의 호를 따서 충무체육관으로 명명했어.”
대전시장을 세 번이나 역임한
김보성 전 대전시장의 회고입니다.
충무체육관은 한때 전국에서 가장 큰 실내 체육관이라는 타이틀을 지녔습니다.
무엇보다 대전시민들에게 오래토록 기억될 순간들이 있어왔습니다.
1973년 4월 17일 제1회 전국경제인대회가 열린던 충무체육관 (출처 : 국가기록원)
2019년 1월 19일 배구 올스타전을 앞둔 현재의 충무체육관
환호와 열광… 장정구와 강호동의 화려한 시대
장정구. 15차 방어까지 성공한 전설의 WBC 라이트플라이급 프로권투챔피언이었습니다.
1983년 3월 26일, 체육관은 4000명이 넘는 대전의 관중으로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장정구가 챔피언 일라리오 사파타에게 두 번째 도전장을 낸 날입니다.
마침내 장정구는 3회 TKO승을 거두고 WBC 라이트플라이급 프로권투챔피언에 올라섰습니다.
1980년대 한국프로복싱의 화려한 전성기, 그 포문이 열리게 된 곳이 충무체육관입니다.
1980년대 한국씨름의 인기는 대단했습니다.그 인기의 중심인 이만기 장사는 무림의 절대지존이었습니다.
그런 이만기 앞에 겁 없는 아이돌 장사가 등장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강호동.
1989년 3월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제16회 천하장사대회가 그의 프로데뷔전이었습니다.
두 팔을 치켜들고 괴성을 내지르며 분투했으나 8강전으로 만족해야했습니다. 하지만 꽃가마를 탄 천하장사 강호동의 탄생을 예감하기에 충분했습니다.
1972년 7월 26일 대전경찰서에서 중요시설 관리 차원에서 찍은 충무체육관 전경(출처: 국가기록원)
그 때나 지금이나 충무체육관 지붕의 거북선 모양은 변함이 없습니다.
열정과 함성… 들국화와 서태지, 전설의 공연이 펼쳐지다
행진, 그것만이 내 인생, 매일 그대와…
명곡들을 남긴 록그룹 들국화는 암울한 1980년대 젊은이들의 영혼을 위로했습니다.
그러나 1989년 그룹 해체를 선언하고 전국을 돌며‘아듀 들국화’라는 마지막 콘서트를 시작합니다.
1989년 6월 24일,25일 이틀 동안 충무체육관에서는 그들의 고별공연이 열렸습니다.
20년 전 그날, 들국화의 노래가 아련히 들려오는 듯합니다.
1990년대 이후 한국대중가요의 판도를 뒤바꿔놓은 인물, 서태지.
2000년‘태지의 화 6집’앨범을 내고 전국투어를 합니다.
2001년 1월 9일, 충무체육관은 서태지를 연호하는 수많은 팬들의 함성으로 가득 울려 퍼졌습니다.
그리고 매헌 윤봉길 곁에서 장개석을 만나다
1968년부터 1972년까지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는 15기의 동상을 세웠습니다.
그중 하나가 충무체육관 앞 매헌 윤봉길 의사 동상입니다.
동상 좌대 뒷면에는“壯烈千秋 蔣中正 中華民國 六十年 十月”이라는 글씨가 음각되어 있습니다.
壯烈千秋(장렬춘추)의 뜻은,“먼 미래에도 기억될 굳은 기상과 위엄”으로,
대만의 국부 장개석 총통이 윤봉길 의사에게 전한 존경의 표시입니다.
새겨진 내용은 동상제막을 기념하여 1971년 10월(中華民國 六十年 十月)에 남긴 것입니다.
장개석 총통은 1966년 대만 건국일인 쌍십절에 윤봉길 의사의 동생을 국빈으로 초청하여
윤 의사에 대한 각별한 마음을 나타냈습니다.
충무체육관은 때로는 사각의 링이었고, 모래판이었고, 콘서트홀이었습니다.
그 안에서 대전시민들은 서로 웃고 울며 함께 추억을 쌓았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동상에서는 한국과 대만의 긴밀했던 역사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충무체육관과 윤봉길 의사의 동상은, 수십 년 역사가 켜켜이 쌓인 도시의 문화유산이자
대전의 삶을 촘촘하게 기록한 시간의 나이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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