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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공식블로그 | 2019년 9월 25일 |
천주교 대전교구 주교좌 대흥동성당 백주년 기념전시가 9월 7일부터 10월31일까지 대전창작센터에서 열립니다.
이번 전시를 관람하기 전에 대흥동 성당을 한번 바라다보고 대전창작센터에 들어섰어요.
대전창작센터 1층 오른쪽 중앙에 흑백사진과 ‘영원한 기념’이란 돌기초석 사진, ‘언젠가 여러분의 교회는 그 도시의 중심이 될 것입니다’라는 뮈텔주교의 말씀이 적혀 있었습니다.
대흥동성당, 그 빛과 등대의 역사를 보다
1919년 대흥동 본당이 설정된 후 100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 세상에 기억이 아닌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서 있는 지금 여기도 곧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남겨집니다. 이번 전시는 100년의 시간이 갖는 의미를 어떻게 시각적으로 드러낼까 하는 물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100명의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들이 가진 ‘기억의 거울’을 통해 대흥동 성당이 품고 있는 장소와 역사의 다면성을 들여다봤습니다.
대흥동 성당이 간직해온 성당 미술의 아름다움과 본연의 의미를 재해석해보는 전시였습니다. 또한 대흥동 성당이 한 세기를 오롯이 지켜온 공동체의 역사를 보여주는 자리였습니다. 한 공동체가 100년을 쌓아온 선행이 흘러넘쳐 동네와 지역, 세상을 바꾸었습니다.
대흥동 성당은 등대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대흥동 성당 100주년의 정신이 시들지 않고 어둔 밤 등대의 빛처럼 살아있습니다.
전시는 1부-대흥동 성당의 역사, 2부-대흥동 성당의 예술, 3부-대흥동 성당의 사람 등 3개 주제로 구성됐습니다.
1층 전시실. 김경란(마리아) 작가는 12사도 상을 한지로 재해석한 설치미술을 선보입니다. 1963년에 최종태(요셉, 1932~)와 이남규(루카, 1931~1993)가 함께 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열두 사도를 여섯 명씩 나누어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최종태는 안드레아, 대야고보, 마티아, 타대오, 토마스, 요왕을, 이남규는 바오로, 필립보, 마태오, 시몬, 바르나바, 베드로를 조각했습니다.
특히 ‘대흥동성당 문화인모임’의 1인이기도 했던 이남규는 대흥동본당 신자들이 ‘장군 성모상’이라 부르는 <성모상>과 예수의 수난을 14개의 이미지로 형상화한 <십사처>도 남겼습니다. 1층 현관 캐노피 상단 외부벽면에 설치된 것을 한지에 눌러 그대로 재현 한 작품입니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에는 대전시민 100인에게 물어본 동영상을 상영되고 있었습니다.
‘붓으로 신앙을 전파하다’란 제목의 작품이 눈길을 끕니다. 대흥동성당 내부의 좌우 벽면에는 화가 신부 앙드레 부통의 작품이 남아 있습니다.
종을 치는 조정형 방지거 모습을 TV 화면에서 만나니 반가웠습니다. 대흥동본당 보좌신부로 머문 ‘두봉 주교’, 가장 낮은 곳에서 마음까지 보듬어주는 ‘식복사’, 대흥동성당 미래를 위해 기도하는 삶을 사는 신자 ‘유동균 미카엘’의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1919년도부터 연도별로 대흥동본당이 걸어온 길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1부-대흥동 성당의 역사
1914년 성탄 때 대전에 사는 천주교 신자 3인이 이종순 신부를 찾아오는 사건으로 시작합니다. 1919년 이종순 신부가 대전 지역의 신자들을 위해 대전군 남면 방축리에 10칸 내외의 한옥성당을 마련하는데, 이것이 대흥동 성당의 시작입니다.
1945년에는 마침내 대흥동으로 이전하여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1962년 12월 24일 성탄 전야 미사에서 지금의 대흥동 성당 봉헌식을 가졌습니다.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성당은 도시 한복판에 우뚝 선 건축물로서가 아니라, 이 도시의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대전 원도심을 지켜왔습니다.
2부-대흥동 성당의 예술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는 성경 말씀처럼 대흥동 성당이 지난 시간 동안 간직해온 아름다운 성 미술품을 관련 아카이브 자료와 함께 소개합니다.
특히 프랑스 위스크 생 폴 수도원(Abbaye Saint-Paul de Wisques)에 보관된 앙드레 부통(André Bouton, 1914~1980) 신부의 유품 속에서 찾아낸 벽화 사진 10점이 영상으로 처음 소개되었습니다. ‘붓을 통한 선교’로 유명한 부통 신부의 벽화는 지금도 성당 내벽에 그대로 간직되어 있어 더 특별한 감동을 줍니다.
이 외에도 성당 앞쪽에 설치되어 있는 12사도 상을 한지로 재해석한 설치미술과 1964년 한국 천주교 전래 180주년 기념으로 제작된 성모상의 미니어처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3부-대흥동 성당의 사람
대흥동 성당의 상징인 ‘성당 종소리’를 들으며 살아온 사람들 100인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들이 품고 있는 대흥동 성당의 의미와 상징을 되새기고, 성당과의 특별한 추억을 함께 기억하는 공간입니다.
그들 가운데 1955년~1965년에 대흥동 본당 보좌신부로 머문 두봉 주교와 50년 동안 매일 깊은 심해까지 울려 퍼지는 종을 치는 조정형 방지거가 있습니다.
드러나지 않는 낮은 곳에서 사제의 영혼과 육신을 위해 ‘한 끼’를 차렸던 대흥동 본당 식복사, 대흥동 성당의 미래를 꿈꾸며 오늘을 사는 유동균 미카엘까지 ‘특별한 4인’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전시관람은 화요일에서 일요일에서 오전 10시부터 오후6시까지 가능합니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입니다.
문의 : 대흥동성당(042-252-9611), 대전시립미술관(04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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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공식블로그 | 2019년 5월 23일 |
아주 오래전은 물론 지금도 우리는 지도부터 찾아들고 어딜 갈지를 찾아봅니다. 대동여지도에서 들어간 ''여지도'라는 단어는 종합적이 내용을 담은 일반 지도를 일컫는다고 합니다. 지도가 없이도 해당 지역에서 어디든 갈 수 있다면 토박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대전하면 양반의 도시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과학의 도시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는 지역에 따라 대전에 대한 이미지는 또 달라집니다.
대전을 한 번에 모두 알기는 힘들겠지만 대전이라는 곳이 이런 곳이구나라고 엿볼 수 있는 전시전이 '대전여지도'였습니다. 여지도에서 여(輿)는 무언가를 하나로 묶는 느낌의 단어를 사용할 때 사용된다고 합니다.
대전을 한 마디로 말해서 이런 곳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대전여지도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지금 살고 있는 곳을 짚어보기도 합니다.
사람이 모여 살면서 도시가 되었습니다. 대전의 역사는 대전을 아는 사람의 수만큼 존재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대전은 다양한 사람들이 이사를 와서 정착하고 살아왔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뜨이는 작품은 테라코타 인물 초상조각인데요. 흙으로 제작한 무표정한 부동자세의 인물들과 그 인물들이 군집의 형태로 설치됐습니다. 마치 현대판 병마용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마저 줍니다.
이렇게 성냥종류도 많았군요. 지금은 성냥을 사용하는 사람은 없지만 예전에는 많이 사용했죠.
대전의 3대 하천이라고 하면 유등천, 대전천, 갑천입니다. 대전은 대전천을 중심으로 동구와 중구로 나뉘었으며 갑천은 제일 살만한 곳이라고 옛 기록에도 있습니다.
대전역에서 옛충남도청사로 쭉 이어지는 길은 일직선입니다. 그 길을 중심이라고 보고 일제강점기에는 '혼마치'로 불렸는데, 대전의 메인 스트리트였다고 합니다. 혼마치를 중심으로 목척교와 학교 등에 일본인들이 많이 살았습니다. 그리고 옛충남도청사에서 유성온천과 공주로 길이 이어졌으며 경부선, 호남선 철로 주변에 군주둔지가 자리하였는데 지금의 둔산지역은 육군항공대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이 그림은 대전풍경도입니다. 상당히 큰 화폭에 대전을 담았는데 박능생이라는 작가의 작품입니다. 작가 자신이 눈으로 보고 직접 두 발로 걸어 다니고 마음으로 느낀, 지금 우리 주변에 있는 구체적인 대상과 장소를 묘사하였다고 합니다. 전통기법의 한 장면 속에 현대 도시를 넣었다고 합니다.
지금 찍는 사진은 언젠가는 과거의 모습으로 느껴지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이곳에서 만나는 사진들은 변모하는 과거의 도시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작가 신건이는 공주에서 대전으로 거주지를 옮긴 후 대전의 여러 풍광을 담았다고 합니다.
방위를 보듯이 산의 위치를 기록해 두었습니다. 북쪽으로는 금병산, 동쪽으로는 계족산과 식장산, 서쪽으로는 우산봉, 금수봉, 남쪽으로는 보문산, 장태산, 구봉산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 대전입니다.
대전역은 일본이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어떤 곳보다도 빠르게 철도가 놓여야 되기에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만주 식민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속성 사업으로 진행되었으며 대전역은 1904년 6월에 준공되었고 1905년 1월에 개통되었습니다. 그리고 20여 년이 지난 1928년 부흥식 건축에 의해 새 대전역이 설치되었는데 역 주변에 한국인보다 일본인이 더 많이 거주하게 되었습니다.
어디에 사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인지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예상 밖의 풍경, 이 집과 저 집, 이 골목과 저 골목은 저마다 다 다른 개성을 지닐 수 있습니다. 대전의 도시건축은 도시규모에 비해 특별한 건축물은 적은 편이지만 근대문화유산이 적지 않습니다. 건축물로 조선 식산은행 대전지점, 충남도지사 공관, 대전 제일 공립 보통학교, 동양척식 주식회사 대전지점, 무덕전, 충남도청, 대흥동 성당, 뾰족집, 정동 장로교회 등이 있습니다.
대전여지도 전시대전창작센터 2019. 04.30 -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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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공식블로그 | 2019년 5월 3일 |
안녕하세요? 올해는 대전시 출범 70주년과 광역시 승격 30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이를 기념하여 크고 작은 대전방문의 해 기념 행사가 대전 곳곳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중의 하나, 대전방문의 해 특별전 <대전여지도>를 소개해 드릴게요.
대전방문의 해 특별전 <대전여지도>
특별전 <대전여지도>는 지난 4월 30일부터 대전창작센터(등록문화재 제100호)에서 절찬 전시 중입니다. 대전창작센터, 좀 낯설다고요? 이곳은 문화예술의 거리이자 젊음의 거리인 중구 은행동에 자리한 미술관입니다. 두 손을 포개고 기도하는 손을 형상화한 대흥동 성당(등록문화재 제643호)과 마주하고 있지요.
색다른 미술관, 대전창작센터 전경
이곳은 1958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충청지원으로 건립되었습니다. 그 쓰임이 다한 지금은, 국내 최초로 근대건축물을 활용한 복합문화공간 대전창작센터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원도심의 중심에 위치한데다 다양하고 실험적인 기획전시가 열리는 만큼, 조금 더 가깝게 조금 더 쉽게 발걸음할 수 있는 미술관입니다.
대전창작센터의 전신인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충청지원 소개
대전방문의 해 특별전 <대전여지도>는 미술과 사진, 문학, 건축, 인물 등 대전에 대한 다양한 자료가 모여, 대전 사람들(인물), 대전 화려강산(자연·지리적 특성), 철도, 대전출발(철도와 대전역). 대전 도시건축(근대건축물)이라는 네 가지 주제가 퍼즐처럼 구성돼 있습니다.
특히나 원도심은 대전 100년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고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인 만큼, 뜻깊은 전시랍니다. 그럼, 대전창작센터 안으로 들어가 보시겠어요?
1층 첫번째 - 대전여지도
사통발달의 도시 대전을 한눈에, 특별전 <대전여지도>
1층에 들어서면 <대전여지도>에 대한 소개와 함께 커다란 지도가 눈에 들어옵니다. 벽면 하나를 채울만큼 확대된 '대전여지도'입니다. 대전은 중구, 서구, 동구 등 5개 구로 나눠졌지만 구석구석 굽이치는 물줄기는 서로 넘나들고 나눠지고 만나기도 합니다.
지도를 훑다보니 색색이 작은 깃발이 꽃혀있습니다. 문화공간 주차와 도시여행자, 문화유산 울림, 월간 토마토, 구석으로부터 등 대전의 문화와 예술, 자연환경, 인물, 골목을 사랑하는 이들과 이들의 일터입니다. 이들 덕분에 특별전 역시 더욱 풍성하게 준비되었습니다. '대전여지도' 맞은편에는 그간의 노력이 책으로 지도로 동영상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대전여지도와 대전 구석구석을 담은 자료들
1층 두번째 - 대전 사람들
과거와 오늘의 대전 그리고 대전사람들
2층 전시실에 오르기 전, 돌계단 옆 전시실에는 '대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박성순 작가의 <군상>은 흙으로 빚어서 구운 테라코타 작품입니다. 일시정지한 듯한 인물들을 살펴보다 보면, 방금 길에서 스쳤을 법한 이웃 혹은 바쁘게 출근한 우리 가족의 모습입니다.
송진세 작가의 <서정>은 당시 벽을 만들던 합판을 떼어내 그 위에 거칠고 두텁게 색을 더해가며 3년에 걸쳐 제작한 작품입니다. 천장의 작은 전등과 막걸리 주전자 등 1930년대 대전에 실제 존재했던 허름한 음식점의 풍경을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2층 첫번째 - 철도, 대전출발
근대도시 대전의 시작, 철도와 대전역
근대도시 대전의 출발점에는 철도가 있습니다. 일제가 대륙침략을 위해 경부선 철도공사를 시작하면서 대전에도 일본인 철도공사 관계자들이 대거 들어오고 본격적인 발전이 이루어집니다. 당시 대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일본인이었을 만큼, 군청과 학교, 공장 등 이들을 위한 시설 역시 들어섭니다.
1905년 1월 1일에 개통된 대전역은 목조간이역이었지만 1928년 6월 20일에 세워진 새 대전역은 중세풍의 2층 역사로 지어집니다. 역사 중심부에는 큰 원형시계가 있었고 2층에는 고급 레스토랑까지 운영됐다지만, 한국전쟁 때 대파되고 흑백사진 속에서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암 송시열 선생이 말년을 보냈다는 소제호 풍경과 1959년에 발표된 음반 <대전블루스>, 영화 <대전발0시50분>
철도공사 관계자들이 모여살았다는 소제동은 원래 우암 송시열 선생의 고택이 있던 호수였답니다. 여름이면 그 넓은 소제호가 색색이 연꽃으로 뒤덮여 궁남지 못지 않았다는데, 이 역시 흑백사진으로만 더듬어 볼 수 있습니다.
대전역하면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로 시작하는 '대전블루스'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대전발 영시 오십분(0시 50분)"이라는 가사가 가장 많이 알려져서, 당대 스타들이 출연하는 영화로도 제작됐다고 합니다.
2층 두번째 - 대전 화려강산
대전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과 그 이름의 유래
"'골짜기 물이 온 들판 가운데를 가로지르며 흘러가는데 이 냇물 이름이 갑천이다. 갑천 동쪽은 회덕현이고, 서쪽은 유성촌과 진잠현이다. 사방을 산으로 막아 들판 가운데를 둘러쌌는데, 평평한 둔덕이 뱀처럼 뻗었고 아름다운 산기슭이 맑고도 빼어났다. 강경이 멀지 않고 앞에 큰 시장이 있어 해협의 이로운 점도 있으니, 대를 이어 영원히 살 만한 곳이다. - 이중환의 「택리지」 중"
갑천과 유등천, 대전천 등 3대 하천이 흐르고 사이좋게 어깨를 잇는 산들에 둘러싸인 우리 대전. 우리나라에서 제일 살기 좋은 곳이라니, 대전의 가치는 옛 선비의 글에서도 살아납니다.
박능생 작가의 <대전 풍경도>
박능생 작가는 먹과 한지라는 전통회화 재료와 기법만으로 현대도시 대전을 그려냅니다. 2006년의 대전을 포착한 <대전 풍경도>는 압도하는 크기에 한번, 세심한 표현에 또 한번 놀라게 합니다.
임양수 작가의 <목척교 설경>, 안다성 가수의 노래 <못 잊을 대전의 밤>, 홍희표 시인의 <목척교>
1912년에 세워졌다는 예전의 목척교는 그림으로 노래로 시로 살아있습니다. 선화동에서 역전으로 향하는 목척교는 원래 징검다리였는데, 새우젓 장수가 띄엄 돌에 지게를 받쳐놓고 쉬는 모양이 나무자(木尺) 같다해서 목척다리라 불렸다네요. 대전시 최초의 근대다리지만 일본 수비대의 병기를 수송하기 위해 놓아졌다니, 역사의 아픔도 함께 합니다.
2층 세번째 - 대전 도시건축
중앙로를 중심으로 따라걷는 근대건축물
대전역에서 옛 충남도청(등록문화재 제18호)에 이르는 중앙로는 지금도 원도심에서 가장 활기 넘치는 곳입니다. 한데 그 역사가 장장 100년에 이른다는 사실~
이 거리는 일제시대에는 혼마치(본정 本町)라 불리던 핵심 중심가였습니다. 이곳을 중심으로 조선식산은행 대전지점(등록문화재 제19호, 현 다비치안경원)과 동양척식주식회사 대전지점(등록문화재 제98호, 현 장수타일전문점), 대전제일공립 보통학교(등록문화재 제50호, 한밭교육박물) 등이 들어섰답니다. 늘 지나치던 건물인데, 여기에 담긴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보면 새롭습니다.
대전방문의 해 특별전 <대전여지도>
이번 주말, 원도심 나들이를 계획하신다면 잠시 들러보세요. 옛 골목길을 걷듯 천천히 <대전여지도>를 감상하다보면 대전의 어제와 오늘을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대전방문의 해 특별전 <대전여지도>
1. 전시기간 : 2019. 4. 30. ~ 8. 25.
2. 전시장소 : 대전창작센터
3. 관람시간 : 오전 10시 ~ 오후 6시
4. 휴관일 : 매주 월요일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그 다음날)
5. 관람료 : 무료
6. 전시안내 : 대전시립미술관 ☎ 042)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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