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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왕 에디슨의 연구소와 자택을 둘러볼 수 있는 뉴저지 토머스에디슨(Thomas Edison) 국립역사공원

발명왕 에디슨의 연구소와 자택을 둘러볼 수 있는 뉴저지 토머스에디슨(Thomas Edison) 국립역사공원

예전에 작성했던 미동부의 유료도로를 설명하는 포스팅에서 뉴저지(New Jersey) 주의 고속도로는 한국처럼 진출입 구간별로 이용요금을 징수해서 한국 스타일의 휴게소(service area)도 잘 만들어져 있지만, 차이점은 휴게소의 이름이 지역명이 아니라 유명한 인물들의 이름을 사용한다고 알려드렸었다. 그 중에 맨하탄에서 남쪽으로 95번 고속도로를 한 시간 못미쳐 달리면 나오는 휴게소의 정문 유리에는, 작년 초에 위기주부가 직접 찍어 놓았던 아래의 사진처럼 유명한 글귀가 적혀있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여기 토머스에디슨 휴게소 부근의 멘로파크(Menro Park) 지역에 있던 그의 첫번째 연구소에서, 수 많은 발명품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전구와 축음기 등이 처음 만들어졌으며, 그 지역을 포함하는 인구 10만명 정도의 타운쉽(township)은 1954년에 도시명을 에디슨(Edison)으로 변경을 해서 그를 기리고 있다. 1887년에 40세의 에디슨은 뉴욕에 더 가까운 웨스트오렌지(West Orange) 마을로 자신의 발명품들을 대량 생산하는 공장과 연구소를 새로 지어서 이전해 여생을 거기서 보내게 된다. 그 웨스트오렌지 연구소의 이 외관 모습은 작년 봄에 보스턴을 다녀왔던 여행기 마지막에 똑같은 구도로 보여드린 적이 있는데, 그 때는 월요일이라 문을 닫아서 내부를 구경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이번 1박2일 뉴욕여행의 둘쨋날 일요일 오전에 꼭 여기를 다시 방문할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여기 연구소와 인근의 그의 저택은 1950년대부터 국립공원청이 각각 관리하다가 1962년에 국립사적지로 통합 지정이 되었고, 2009년에 토머스에디슨 국립역사공원(Thomas Edison National Historical Park)으로 격상이 되었다. 입구를 지나서 첫번째 나오는 옛날 실험실 건물 하나를 개조한 비지터센터로 들어가는 아내의 모습으로, 높은 급수탑이 하나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 보인다. 내부로 들어가기 전에 도로변에 있던 안내판의 사진을 먼저 보여드리며 설명하면, 1928년에 찍은 항공사진의 가운데 위쪽에 그 급수탑이 작게 보이는데, 그 왼편으로 모여있는 까만 지붕의 나지막한 벽돌 건물들이 지금 남아있는 연구소이다. 나머지 대부분을 차지하는 하얀색 6층의 콘크리트 건물들이 모두 축음기와 영사기 및 다른 제품들을 만들었던 공장이지만, 작은 한 동을 제외하고는 1970년대까지 모두 철거되었단다. 이 거대한 산업단지 전체가 에디슨의 회사였으며 일하는 직원의 수가 1만명에 달했다고 한다. 미동부에서는 드물게 이 국립역사공원은 입장료가 있어서, 그 동안 계속 미뤄왔던 위기주부의 13번째 연간회원권(Interagency Annual Pass)을 여기서 구입을 했는데, 처음으로 자연의 '내셔널파크(National Park)'가 아닌 인공의 역사공원에서 패스를 산 것이다. 예약제로 운영되는 에디슨 저택의 내부투어에 혹시 오늘 빈자리가 있는지 레인저에게 물어보았지만 모두 꽉 찼다고... "처음부터 여기 꼭 방문할 계획이었다면서, 왜 투어 예약은 까먹은 걸까?" 안쪽에서 안내영화를 보여주고 있었지만, 사모님께서 이 때까지는 별로 흥미가 없는 듯 해서 조금 보다가 그냥 일어섰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가서 도로변에서 보이던 3층 주연구소(Main Laboratory) 건물의 허름한 입구로 특별한 기대없이 들어섰는데... 꼭대기까지 탁 트인 공간 전체를 에디슨의 많은 사진과 발명품들로 가득 채워놓은 이 홀에 들어서며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특히 고풍스런 실내와 잘 어울리던 많은 조명에 눈길이 갔는데, 에디슨하면 전구가 제일 먼저 떠오르기에 그랬던 것 같다. 물론 저 조명들이 그의 탄소 필라멘트 전구가 아니라 최신 LED를 사용할 가능성이 높겠지만 말이다.^^ 벽난로 위에는 심각한 표정으로 축음기의 소리를 듣고 있는 에디슨의 초상화가 걸려있고, 그 앞 책상에는 골동품 전구도 하나 놓여있었다. 홀을 둘러싼 2층에는 설계실 등의 작은 방들이 많이 있고, 각각마다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지 잘 설명이 되어 있었다. '입장불가(No Admittance)'라 씌여진 것은 옛날 표지판이니, 이 쪽으로 셀프투어를 계속하라는 안내에 따라 넓은 작업공간으로 나가니까... 전구를 들고 서있는 에디슨을 만나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해도 우리와 떨어져서 뻘쭘하게 계속 서있는 사람은 바로 에디슨의 경쟁자였던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이다. 그런데 그가 양손에 들고 쳐다보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혹시 아시는 분...? 아래 1층에는 대형 가공선반 등의 중장비들이 가득했는데, 19세기말부터 이러한 정밀 기계들로 산업 제품들을 개발하고 양산했다는 사실이 정말 대단하다. 마지막에 소개할 링크에도 에디슨의 최대 업적은 몇몇 발명품이 아니라, 세계 최초의 민간연구소를 설립하고 잘 운영해서 현대 기업의 연구개발 과정의 기틀을 닦은 것이라고 한다. 다시 3층으로 올라오면 중앙 통로를 따라서 유리벽 안에 '발명왕'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에디슨은 평생에 적게는 1천개에서 많게는 2천개 이상의 발명품을 만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단다. 2년전에 DC의 스미소니언 국립 미국사박물관을 방문했을 때도 에디슨의 전구들이 별도의 전시실에 굉장히 많이 전시되어 있어서 놀랬던 기억이 있는데, 단순히 상용가능한 전구를 발명한 것에 그치지 않고, 전기 사용을 위한 발전기와 송전선 등의 전체 시스템을 개발해서 전기의 시대를 연 사람이다. 에디슨 회사의 로고가 박힌 초기 원통형 축음기들도 종류별로 많이 전시되어 있고, 작은 축음기가 내장된 '말하는 인형(talking doll)'의 실물도 있었다. 처음 알게된 사실로 에디슨이 탄광업과 시멘트 회사를 운영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오하이오 주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던 그는 정규교육도 거의 받지 못했지만, 엄청난 노력과 열정으로 자수성가한 기업인이라 할 수 있는데, 그가 설립했던 전기 회사가 지금의 세계적인 대기업인 GE, 제너럴일렉트릭(General Electric)의 전신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3층 끝에는 뮤직룸이 있어서 에디슨이 자신의 축음기로 녹음을 했던 피아노 등이 그대로 남아있다. 또 영사기 등도 발명을 해서 전세계 최초의 영화 스튜디로로 사용된 암실인 '블랙마리아(Black Maria)'가 비지터센터 뒤쪽에 남아 있으며, 결과적으로 음반과 영상의 대중예술 발전에도 큰 기여를 한 동시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다. 전구를 들고 서있는 에디슨의 동상으로 왼편에 검게 보이는 것이 영사기를 개발하고 테스트한 블랙마리아 건물이다. 이 외에도 별도로 지어진 단층 건물인 화학 실험실과 금속 실험실 등을 잠깐씩 둘러보고는, 가까이에 있는 그가 살던 집을 구경하러 자동차로 이동했다. 방이 29개나 되는 대저택인 에디슨의 집은 '글레몬트(Glenmont)'라는 이름으로 불렸단다. 에디슨은 첫번째 부인과 사별하고 2년 후에 18살 연하의 여성과 재혼하면서 이리로 이사와서 죽을 때까지 이 집에서 함께 살았다. 정문 옆으로는 국립사적지로 지정 당시에 붙혔던 현판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내부투어에서 사진촬영은 금지인 모양이다. 집을 한바퀴 돌아서 뒷마당에서 다시 바라본 모습이다. 내부를 구경할 수도 없지만, 일부러 여기까지 찾아 온 이유는... 뒷뜰에 만들어진 그의 묘지를 참배하기 위해서이다. 토머스 에디슨은 1931년에 84세로 사망했는데, 그의 장례식이 있던 날 저녁에는 미국의 모든 집이 1분 동안 전깃불을 끄는 것으로 그를 추모했다고 하며, 그의 사후에 계속 이 집에 살았던 아내도 1947년에 옆에 함께 묻혔다. 아주 어릴 때부터 익히 들어왔던 '발명왕 에디슨'의 여러 재미있는 이야기를 본 포스팅을 쓰면서 새롭게 알게 되었는데, 관심이 있으신 분은 위기주부가 참고한 나무위키의 내용을 클릭해서 직접 읽어보시기 바란다. 그 글의 기타 항목을 보면 '세계 최대의 에디슨 박물관'이 한국 강릉에 있다고 하지만 이 곳과 비교해서 소장품의 수는 적은 듯 하고, "필라델피아의 한 휴게소 이름이 토머스 에디슨이다."라 씌인 것은 명백한 오류이므로 혹시 나무위키 수정권한이 있으신 분이 고쳐주시면 좋겠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그레이스랜드 맨션(Graceland Mansion)의 엘비스 프레슬리 묘지를 참배하고 멤피스를 떠나 내슈빌로

그레이스랜드 맨션(Graceland Mansion)의 엘비스 프레슬리 묘지를 참배하고 멤피스를 떠나 내슈빌로

이삿짐을 싣고 LA에서 워싱턴DC로 떠났던 대륙횡단 여행의 5일째 아침을 맞은 곳은 미국남부 테네시 주의 멤피스(Memphis)였다. 전날 오후에 도착해서 엘비스 프레슬리가 1954년에 가수로 데뷔했던 녹음실과 마틴 루터 킹 목사가 1968년에 암살당한 장소 등을 구경하고도 이 도시를 떠나지 않은 이유는, 꼭 이른 아침에만 '공짜로' 방문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장소가 한 곳 더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엘비스프레슬리의 로큰롤 기타인지 아니면 비비킹의 블루스 기타인지는 모르겠지만, 숙박한 모텔이 가운데 수영장을 기타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것은 재미있었다. 아침도 거르고는 급하게 짐을 챙겨서 체크아웃을 한 후에 바로 도로 건너편의 그레이스랜드 맨션으로 향했다. 그레이스랜드(Graceland)는 지도와 같이 엘비스가 살았던 커다란 저택의 주변으로 호텔과 전시장 등을 만들어서 입장료를 받고 운영을 하는 멤피스 최고의 관광지이다. 하지만 가장 핵심인 맨션의 내부를 구경하는 투어의 입장료가 현재 성인 $77부터 시작해서, 우리 부부는 그냥 포기하고 전날 밤에 멤피스를 떠나려고 했었다. 그런데 홈페이지에도 안내가 전혀 없지만 매일 아침 7시반부터 8시반까지 1시간 동안은 맨션에 있는 엘비스의 묘지는 무료로 방문할 수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여기 그레이스랜드 바로 아래에 있는 모텔을 예약했던 것이다. 모텔에서 차를 몰고 나와서 Elvis Presley Blvd로 좌회전을 하자마자 도로 오른쪽에 잘 만들어진 주차공간에 차를 세웠다. 거의 정확히 7시반에 주차를 했는데, 이미 우리 앞쪽에 두 대의 차가 도착해 맨션의 정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바로 우리 뒤에도 한 대가 더 주차를 했다. 그런데 앞차의 번호판에 엘비스의 모습이 있어서 자세히 확대해서 봤더니... Elvis Presley Memorial Trauma Center를 후원하는 테네시 주의 공식적인 특별 디자인의 자동차 번호판이었다! 그레이스랜드 맨션의 빨간 벽돌 담장에는 칸칸마다 추모나 사랑의 글귀들이 가득했고, 열려있는 정문의 문짝에도 기타를 치는 엘비스의 모습이 들어가 있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잘 가꾸어진 잔디밭 사이로 난 도로를 따라서 조금 걸어 올라가면, 엘비스 프레슬리가 TV 출연으로 전국적인 대스타가 된 후인 1957년에 당시 약 10만불에 구입해서, 1977년에 욕조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져 죽을 때까지 살았던 그의 집이 나온다. 참, 아내 앞에서 쌀쌀한 아침 날씨에도 불구하고 반바지에 반팔 차림으로 걸어가시는 금발의 여성이 트라우마센터 번호판의 차를 몰고 오신 분이다. 당시 미국은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엘비스는 인기가 절정이던 1958년에 일반 사병으로 입대해서 서독의 미군부대에서 18개월간 복무했단다. (예전 한국의 가수 누군가가 떠오름^^) 군복무를 마치고 1960년에 대대적인 환영을 받으며 이 집으로 돌아왔지만 주로 영화 출연에 전념했고, 서독에서 처음 만났던 프리실라(Priscilla)와 1967년에 결혼해서 이듬해 외동딸인 리사 마리(Lisa Marie)를 낳았지만, 부인과는 결혼 5년만에 이혼을 했다. 공짜손님인 우리들은 당연히 맨션 내부를 구경할 수는 없고, 그 옆에 만들어진 여기 엘비스 가족의 묘지가 있는 메디테이션가든(Meditation Garden)만 둘러볼 수가 있었다. 원래 엘비스는 1977년 8월 사망 후에 어머니가 묻혀있던 공동묘지에 함께 매장되었지만, 수 많은 추모객들로 관리와 보안의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그의 아버지가 멤피스 시의 특별허가를 받아서 바로 10월에 아들과 아내의 묘를 집안의 이 명상정원으로 이장을 한 것이라고 한다. '로큰롤의 왕' 엘비스 프레슬리의 묘지 앞에 선 아내... 바닥에 파란 테이브로 화살표 표시를 붙여놓은 것으로 봐서, 맨션투어를 할 때는 한 방향으로만 지나가면서 잠깐 볼 수 있는 모양이지만, 이 날 아침에 우리는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마음껏 이 곳을 둘러볼 수 있었다. 가운데 곰인형과 꽃들이 많이 놓여진 것이 엘비스의 묘이고, 그 오른쪽에 차례로 2년 후인 1979년에 사망한 아버지, 엘비스가 군복부 중에 일찍 사망한 어머니의 묘이다. 그리고 이 사진에서 오른쪽 끝에 노란 꽃만 살짝 보이는 곳에 작은 명판이 하나 더 있는데, 사산한 엘비스의 쌍둥이 형을 추모하는 것이라 한다. 또한 엘비스의 왼쪽에도 묘지가 하나 더 만들어져 있는데, 1980년에 90세로 돌아가신 엘비스 프레슬리의 할머니의 묘지라고 한다. 꺼지지 않는 불꽃까지 만들어 놓은 것은 좀 오버가 아닌가 싶었지만, 20세기를 대표하는 슈퍼스타를 위한 그냥 하나의 장식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비문의 가장 아래쪽 가운데에 번개 모양과 함께 TCB라는 글자가 보이는데, 앞서 보여드렸던 트라우마센터 번호판의 자동차 뒷유리창에도 같은 문양의 스티커가 붙어있다. TCB는 "Taking Care of Business"라는 뜻으로 엘비스의 전속밴드를 포함해서 음악 활동을 가까이서 도운 사람들을 의미하는데, 대부분이 엘비스의 고등학교 친구들이나 군복무 동기 등으로 구성되어서 '친위대'같은 역할을 했단다. 그들은 엘비스가 가는 곳마다 검정색 양복에 선글라스를 끼고 주위에 나타나서 '멤피스 마피아'라고 불렸다고 한다. 위기주부의 18번이 트로트이고, 한국 트로트 계의 대부인 남진이 엘비스의 스타일을 한 때 차용했으니, 본인과도 음악적으로 연결이 된다 할 수 있다. 그래서 음악계 대선배님의 묘지를 바라보는 위기주부... ♪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 그렇게 참배를 마치고 나와서 다시 맨션을 가까이서 한 번 바라봤다. 현재 이 집과 대지는 딸인 리사 마리 프레슬리의 단독 소유지만, 주변의 전시장과 호텔을 포함한 전체 그레이스랜드는 전문적인 회사가 상업적으로 운영을 하기 때문에 그렇게 입장료가 비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간 약 65만명이 입장을 해서 화이트하우스 및 허스트캐슬 등과 함께 가장 방문객이 많은 개인소유 주택들 중의 하나라고 한다. 그런데, 백악관이 개인소유의 주택인가? 이른 아침의 산책을 겸한 관광을 잘 마치고 길가에 세워둔 차로 돌아간다. 미래에 다시 멤피스를 지나갈 기회가 또 올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그런다고 해도 우리 부부가 비싼 입장료를 내고 굳이 저 맨션의 내부를 구경할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Elvis Presley Blvd 도로 건너편으로는 엘비스가 타던 전용 비행기가 세워져서 관광객들을 받고 있는데, 비행기 이름이 딸인 Lisa Marie 이다. 리사마리는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과 결혼을 했으니까, 로큰롤 나라의 공주가 팝의 나라 황제와 왕족끼리 결혼을 한 셈인가? 리사에게 마이클 잭슨은 두번째 남편이었고, 세번째 남편은 영화배우 니콜라스 케이지였는데, 그 결혼 후에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아서 뒤늦게 가수로도 데뷔를 했다고 한다. 테네시 주에서 세워놓은 안내판 뒤로, 다시 손님들을 받기 위해서 정원의 낙엽을 치우는 직원의 모습이 보인다. 그레이스랜드(Graceland)는 연방정부에서 1991년에 국가사적지(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ces) 지정 후, 2006년에는 역사기념물(National Historic Landmark)로 등록되었는데, 대중음악과 관련된 곳으로는 모두 미국 역사상 최초라고 한다. 이상으로 거의 '엘비스 3부작'이었던 짧은 1박2일의 멤피스 여행은 모두 마쳤고, 우리는 점심 약속이 잡혀있는 테네시의 주도인 내슈빌(Nashville)을 향해서 40번 고속도로를 다시 달렸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도쿄 야나카 묘지 “야마우치야(山内屋)”

소인배(小人輩).com|2019년 2월 20일

도쿄 야나카 묘지 “야마우치야(山内屋)”이번 도쿄 여행에서는 “야네센”이라고 불리는 “야나카, 네즈, 센다기” 지역을 한 번 둘러보았습니다. 이렇게 세 지역을 합쳐서 “야네센”이라고 부르는데, 저번 여행에서는 시간이 촉박해서 가보지 못했던 지역이었지요.“도쿄 북쪽에 있는 야네센”야네센 지역은 도쿄역을 기준으로 북쪽에 있습니다. 우에노에서도 조금 더 올라가서 “닛포리역(日暮里)”에서 갈 수 있는 곳이랍니다.야네센 지역은 도쿄의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한데요. 과거 서민들이 살았던 지역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건물도 도쿄 도심에 비해서 낮은 건물들이 많고, 평화로운 작은 마을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지요.“고양이 마을로 유명한 야나카 긴자”닛포리역에서 내려서 야나카로 들어올 수 있는데요. 야나카 긴자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묘지”들이 몰려있는 묘원입니다.이 곳에서는 곳곳에서 여러 묘지들을 찾아볼 수 있고, 묘지들과 어우러진 공원이 있기도 합니다. 저는 이번에는 묘원으로는 가보지 않고, 지나가다 잠시 보였던 “야마우치야”라는 이름의 묘지에 한 번 들러보았습니다.“도쿄 야나카에 있는 작은 묘지, 야마우치야(山内屋)”야마우치야는 도쿄 야나카에 있는 작은 묘지인데, 묘지로 들어가는 문이 마치 절처럼 생겼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절인 줄 알고 들어갔다가 알고 보니 묘지인 것을 확인했던 곳이기도 하지요.해외까지 와서 이렇게 일본 묘지를 둘러보는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되기도 했습니다.여기까지, 야나카 긴자에서 우연히 들렀던 “야나카 묘지”, 야마우치야에 대해서 한 번 살펴보았습니다. 특별히 일부러 방문해 볼만한 여행지는 아닌 것 같지만, 나름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입니다.“일본 도쿄, 야나카 긴자, 묘지 야마우치야”주소 : 3 Chome-2-3 Nishinippori, Arakawa-ku, Tōkyō-to 116-0013, Japan전화번호 : +81 3-3821-4940홈페이지 : http://sake-yamauchiya.com/운영시간 : 10:00 - 20:00 (수요일 휴무)특징 : 야나카 묘지

남미여행 (47) 아르헨티나 :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도착하다

남미여행 (47) 아르헨티나 :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도착하다

Everyday we pray for you|2016년 2월 27일

1. 드디어 그 도시를 이야기 할 시간이다. 남미를 다녀온 후, 다른 곳은 그렇다치더라도 반드시 여기만큼은 다시 오겠다고 마음 먹은 도시, 여유가 된다면 1년 정도 살면서 스페인어를 배우고 싶은 도시, 아침의 빵 굽는 냄새에 일어나 창문을 활짝 열고 부에노스 디아스라고 외치고 싶은 도시. 부에노스 아이레스 Buenos Aires. 어쩜 이름조차도 이토록 부드럽고 낭만적인지!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아르헨티나의 수도이자,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밀집해 살고 있는 도시다. 대서양 연안에 자리잡은 항구도시인 탓에 바다 건너 유럽의 문화가 거침없이 들어왔고, 언젠가부터 남미의 파리라는 별명도 붙게 되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유럽을 모방할 줄만 안다며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문화적 정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