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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영천 수도사 괘불탱화, 성보박물관

[통도사] 영천 수도사 괘불탱화, 성보박물관

타누키의 MAGIC-BOX|2016년 3월 23일

성보박물관의 괘불탱화를 보러~ 반년에 한번정도 계속 바꿔가며 전시를 하는걸로 보이는데 쉽게 보기 힘든 괘불들인지라 한번 들리시길 추천드립니다. 영천 수도사 괘불탱화 수도사 괘불은 1704년에 조성 되었으며, 삼베에 채색되었고 현재 보물 제1271호로 지정되어 있다. 수도사 괘불의 주존은 연꽃을 들고 보관과 각종 영락 등으로 장엄된 형상이다. 화면 최상단에 ‘圓滿報身盧舍那佛’ 이라는 한자가 한자씩 둥근 원안에 적혀있어 존명이 ‘원만보신노사나불’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괘불의 화기에 ‘世尊掛佛影像’ 이란 화명이 기록되어져 있다. 연꽃을 들고 보관 등으로 장엄한 보살형의 도상은 화엄경의 화신으로 출현한 석가모니불의 도상과 拈花示衆으로 상징되는 선종의 석가모니불

[통도사] 서유기가 그려진 용화전

[통도사] 서유기가 그려진 용화전

타누키의 MAGIC-BOX|2016년 3월 21일

용화전 통도사약지에 따르면 1369년(공민왕 18)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건물은 1725년(영조 1) 청성대사가 고쳐 지은 후 1899년(고종 3)에 수리한 것이다. 내부에는 석조미륵불상이 모셔져 있는데 미륵불은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미래에 부처님이 될 것인가라는 수기를 받은 부처님이다. 이는 스승이 제자에게 불법을 전하는 의미의 상징물인 건물 앞에 세워진 봉발탑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용화전 내부의 측벽에는 7세기 당나라의 승려였던 현장법사의 서유기 내용이 벽화로 그려져 있어 주목되는데 이는 현존하는 유일한 사례이다. -안내문에서 발췌- 빛이 워낙 좋아 안까지 잘 찍힌~ 신도분들이 안계실 때 살짝 둘러 볼 수 있었네요. 사실 설명은 그렇게

[통도사] 봉발탑과 풍경

[통도사] 봉발탑과 풍경

타누키의 MAGIC-BOX|2016년 3월 19일

작년에는 행락객들이 여기서 사진을 많이 찍어서인지 사진을 찍지 말라는 간판이 있었던걸로 기억하는데 올해는 일찍 가서인지 못봤던~ 대웅전 옆에 있는 구룡지 오래전에도 포스팅했었지만 전설이 있는~ 봉발탑 보물 제471호 석가모니의 옷과 그릇을 받들어 둔 곳이라 하여 일명 의발탑이라고 한다. 의발은 스승이 제자에게 불법을 전하는 상징물로 미륵보살이 석가여래의 의발을 전해 받아 성불하여 불법을 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봉발탑이 용화전 앞에 세워진 것은 미륵불이 석가여래를 이어 중생을 제도할 미래불임을 상징하는 것이다. 전체적인 구조는 하대석과 간석, 상대석과 그 위의 뚜껑있는 밥그릇 형상의 구조물로 이루어져 있다. 연꽃 조각과 간석의 형태로 보아 고려

[진주] 문산성당의 한옥 구성당

[진주] 문산성당의 한옥 구성당

타누키의 MAGIC-BOX|2016년 3월 14일

서양식 성당을 나와 내려다 보이는 한옥구조인 구성당 소촌역 터 역참은 나라의 명령과 공문서의 전달, 사신의 왕래 관리의 공무 출장에 따른 영접과 환송 및 접대 등을 담당하던 기관으로 종6품 찰방 또는 역승을 두어 관리하였다. 문산읍 소문리는 조선시대에 소촌역이 있었던 곳이다. 소촌찰방은 진주를 비롯해 거제, 진해, 고성, 사천, 남해 하동 등 주변 15개역을 관리하였다. 이곳은 찰방관사를 중심으로 그 앞에 역리들의 관사와 그 가족들이 살았던 집 등 역촌이 형성되어 교통의 요지를 이루었다. 찰방관사는 1885년 찰방제도가 폐지된 이후 문산성당이 되었다. 당시 프랑스 권 마리오 줄리엥 신부가 1907년 찰방관사와 역리관사 10여 채 및 대지 2400여 평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