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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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posts400번의 구타 Les 400 Coups (1959)
유년기의 비행이란 선천성과 후천적 환경이 모두 영향을 끼치는 것이지, 어느 한 쪽만이 작용할 것이라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앙투안은 그저 수업시간에 낄낄대고 낙서나 하면 그 뿐인 흔한 개구쟁이. 그러나 아이들에게 필요한 "애가 그럴 수도 있지"라며 너그럽게 넘어가 줄 어른의 부재는, 관용 없는 유압식 통제는, 결과적으로는 아이의 자존감을 깎고 비행(非行)을 부추겨 거리로 내몰 뿐이다. 아빠와 사이가 좋구나 싶을 때는 엄마로부터 사소한 학대를 받고, 엄마의 태도가 좋아진 순간에는 계부임이 밝혀진다. 부모 모두와 저대로 지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만하면 교사가 눈을 흘긴다. 앙투안에게는 어린 아이의 순수함을 맘 놓고 발산할 곳이 없다. 거듭되며 점점 커지는 비행은 앙투안을, 사회에서 완전히 낙
공포의 보수 Le Salaire De La Peur (1953)
제목을 윤색하면 '공포의 댓가' 쯤 될텐데, 나는 오히려 반대로 '댓가라는 것의 공포'가 이 영화에 가장 잘 드러나 있다고 주장하는 쪽이다. 이 영화는 대체로 물질과 그에 대한 맹목적인 탐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나는 그것에 "대체로" 동의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니트로글리세린을 싣고 두돈반을 질주하는 군상들은, 모두가 그럴만한 이유를 갖고 있다. 안 해도 될 일을 단지 황금만능주의에 입각해 굳이 발 벗고 나서서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차라리 댓가와 목숨을 등가교환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함정같은 구조가 자본주의의 부분적인 본질이지 않나 하는 의문이 먼저 떠오른다. 영화는 소리를 기가막히게 쓴다. 음악은 거의 없고 생활 소음들만이 복작복작한데, 자동차 엔진소리에 가축들
부당거래 (2010)
"워커홀릭 남자들의 느와르"라는 평을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다. 일견 타당하다. 그리고 보태자면, 내가 보기에 이 영화 속 악당들(이자 동시에 주인공들)이 대결하는 방식은 후기 [드래곤볼] 같은 엎치락 뒷치락 파워업 경연대회다. 상대를 꺾기 위해 회심의 기술을 날리면 그것을 맞은 상대는 더 강한 필살기를 가동하고, 상대가 뭔가 세 보이게 변신하면 나는 더 세지려고 합체하는 식인데, 그냥 이 영화에서의 필살기는 상대방의 비리를 캐 낸 자료의 형태를 하고 있을 뿐이다. 으악새 영화 키드인 류승완은 이 작품을 기점으로 종전에 선 보이던 본격 몸빵 액션 장르물에서 한 발 벗어난 듯 보이지만, 사실은 화법만 다른 같은 세계의 연장선상이라는 말이다. 주먹으로 명치를 쑤시고 킥으로 턱을 돌리는 대신, 법과 증거



![[Spoiler] '우주 형제' 완결. 매거진 신작 '천선 전기'.](https://img.zoomtrend.com/2026/06/10/1781142015-ECBD98ED8AB8EBA1A4EB9FACEBA5BCEB93A0EC9E90.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