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 박정연의 건축 디자인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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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크로키 el croquis volumn 21~30

엘 크로키 el croquis volumn 21~30

엘 크로키 el croquis - 3번째 글 (volumn 21~30) 엘 크로키 전권을 수집한 후, 2020년 가을부터 한 권마다 하나의 스케치를 하고 이를 인스타그램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점점 숏폼 동영상이 익숙해져서 타임랩스 영상으로 촬영하며 스케치를 진행하기도 한다. 창간호~10권과 11권~20권은 아래 링크를 통해 소개했었으며, 이번에는 21권에서 30권까지를 소개한다. 엘 크로키 21호 El croquis - 21 엘크로키 21호는 이전에는 별권으로 만들어졌던 부록 PFC가 책 후반에 합본으로 포함되어있다. 표지는 목차에 해당하는 텍스트들이 몬드리안 작품 속 면 구성처럼 배열되어있다. 책 제목의 폰트도 바뀌었다. 스케치는 Banco de Espana en Badajoz이.......

공공건축의 발전을 막는 세 가지 벽 - 건축사 박정연의 글쓰기 - 046

공공건축의 발전을 막는 세 가지 벽 - 건축사 박정연의 글쓰기 - 046

공공건축의 발전을 막는 세 가지 벽 (건축사신문 2024.02.07 사설) 공공건축은 기획업무에서 시작된다. 용도와 규모, 대략의 배치를 통해 설계단계에 필요한 사항들을 결정한다. 또한 건축물이 완성되기 위해 필요한 용역비와 공사비를 산정하여 예산을 수립한다. 이 과정이 충실하지 않으면 건물의 기초가 튼튼하지 못한 것과 같게 된다. 간혹 기획업무 진행자가 규모와 용도 설정을 잘못하거나 예산을 충분하지 않게 수립한다면, 계획 및 실시설계 설계자의 업무 진행이 어려워진다. 여전히 설계자의 권한과 책임에 대해 잘못 규정하고 있는 등의 문구를 포함한 공모서와 지침서가 내용을 복사하여 재사용되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공사비 역시.......

제따와나 선원, 벽돌로 쌓은 수행공간 - 임형남 노은주 (가온건축)

제따와나 선원, 벽돌로 쌓은 수행공간 - 임형남 노은주 (가온건축)

오랫동안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수행 중심의 사찰을 전통 목조가 아닌, 수만장 혹은 수십만장의 벽돌로 만들어낸 독특한 곳이다. 필요한 공간을 단순하게, 몇가지 규칙을 가지고 구현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전통 사찰이 가지는 공간구성을 현대적으로 번안하여 표현하고 있다. 먼저 일주문도 벽돌 마감 구조물로 만들어져 있다. 일주문은 제따와나 선원 이라는 현판을 이마에 붙이고 있으며, 엄밀히 말하면 기둥으로만 서있는 것은 아니고 양쪽에는 좁은 폭의 벽체가 만들어져 있다. 사찰에서 일주문을 지나면 천왕문 금강문 등의 문을 몇 차례 지나며 속세에서 신성한 공간으로 전이되는 과정을 거치게 만드는데, 이곳에는 다른 문은 없지만, 종.......

모아이 카페, 풀빌라 펜션 Moai cafe & pension - 구승민 (꾸시노 스튜디오 Koossino Studio)

모아이 카페, 풀빌라 펜션 Moai cafe & pension - 구승민 (꾸시노 스튜디오 Koossino Studio)

가평에는 매우 많은 펜션들이 모여있다. 펜션 단지라고 불러도 될만큼 많은 펜션들이 주요한 도로를 따라 모여있다. 이 길을 지나다보면 단연 눈에 띄는 곳이 있는데, 마치 모아이 섬의 석상들처럼 노란색 독특한 형태의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모아이 풀빌라 펜션이다. 넓은 대지를 가지고 언덕 위에서 도로 쪽을 내려다보고 있어서 전망이 가장 좋은 펜션일 듯 하며, 반대로 도로에서 올려다볼 때는 매우 잘 보이는 위치가 되기도 한다. 그 앞쪽으로 길게 자리잡은 건물이 모아이 카페이다. 아마도 다른 펜션에서 숙박을 하신 분들이라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곳에 들러서 커피를 한잔 할 것 같다. 주차장의 경계에 관목을 위치시키고, MOAI라.......

가평 이천보 고가 - 멋진 향나무를 품은 한옥

가평 이천보 고가 - 멋진 향나무를 품은 한옥

이천보 선생은 1789년 (영조15) 문과에 급제한 이후 세자빈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공로가 있다고 하여 동부승지로 승진하였고, 황해도 관찰사, 형조참판, 영의정 등을 지냈습니다. 또한 사도세자의 스승으로 있으면서 사도세자를 보호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였습니다. 하지만 1761년 사도세자의 평양 원유사건(국왕의 허락 없이 석 달에 걸쳐 평안도를 여행한 사건)이 발생하고 영조의 조사를 받자 국왕에게 올리는 상소를 올린 후 음독 자결하였습니다. 선생은 생전에 허식을 차리지 않고 남과 즐겁게 농담하기를 즐겼으며 검은소를 타고 다녔다 하여 까막소 영감이란 별명으로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이천보 고가는 조선 영조 때 영의정을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