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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 플레이어 원: '꿈의 공장'으로서의 영화에 대한 존재증명

monad as nomad|2018년 3월 29일

어제 영화를 봐놓고 오늘 후기를 남긴다. 내가 대체 뭘 본건지, 머리속에 가득한 이 벅참과 흥분의 정체는 무엇인지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 하지만 지금까지도 정리는 하지 못했고 따라서 일목요연한 리뷰글을 쓰지는 못하겠다. 파편적인 감상의 조각이나마 더듬어보자면 '왜 영화가 꿈의 공장인지를, 영화라는 매체가 다른 부가적인 기능을 모두 떼어놓고 스스로에게 가장 충실할 때 어떤 작품이 나올 수 있고 관객에게 어떤 충만함을 선사할 수 있는지를, 이 작품이 증명했다.'고 거칠게 정리하는 정도가 고작이다. 왜 우리는 영화를 보는가, TV, 뮤지컬, 연극, 책 등의 다른 매체가 줄 수 없는 영화 고유의 오락은 무엇인가에 대한 하나의 대답을 이 작품은 제시했고 끝까지 밀어부쳤다. 작품을 보는 내내 나는 오래

시카리오: 수호자들의 타락은 필연인가

monad as nomad|2016년 12월 10일

예외를 정당화하는 고전적인 방식 | 영화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http://www.huffingtonpost.kr/junga-hwang/story_b_8976272.html 링크 글의 작품에 대한 관점 그리고 영화를 해부하는 방식이 작품을 보고 들었던 생각과 닮았다. 하지만 결론에 대해서는 조금 견해가 다르다. 권력이 편의적 동기에 위해 '예외상태'를 선포함으로써 법질서의 영역을 점점 침해해오는걸 경계해야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과 그 바깥, 다시 말해 정상상태와 예외상태의 구도와 관계는 권력의 단순 일탈이라기보다 애초에 그렇게 존재할 수밖에 없는, 좀 더 본질적이고 항구적인 것으로 보아야하지 않을까.법과 바깥의 경계-영화에서 '국경'신이 반복해 상기시키는-는 근원적인 딜레마와

뿌리 깊은 나무 6화- 하지 않은 일에 책임지는 왕

monad as nomad|2014년 4월 25일

"이 조선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내 책임이다. 꽃이 지고 홍수가 나고 벼락이 떨어져도 내 책임이다. 그게 임금이다. 모든 책임을 지고 그 어떤 변명도 필요 없는 자리 그게 바로 조선의 임금이란 자리다."온라인에서 회자가 되길래 찾아봤다. 여전히 명장면 명대사구나. 원래 이 드라마는 '죽이는 왕과 살리는 왕'에 관한 이야기이다. 도저히 양립 불가능한 가치들간의 정치적 갈등 속에서 저와 다른 길을 가는 이들과 그 가치를 죽이고 제 가치를 구현하느냐, 아니면 갈등이 주는 상처들을 제 한몸에 지고 인내하며 서로 모순되는 가치와 인간들간의 불가능한 공존을 모색하느냐에 관한 정치철학적 서사가 작품 전반을 아우른다. 죽이는 왕으로 살았던 아버지 태종 앞에서 아들 이도가 '살리는 왕'이 되겠다고 발악하듯 다짐하는

범죄와의 전쟁, 아버지라는 이름의 망령

monad as nomad|2013년 11월 19일

"너희가 이렇게 먹고 사는게 다 누구 덕분인데."하는 꼰대들의 진상은 절반쯤 맞다. 식민통치와 전쟁으로 공동체의 연속성이 단절된 '합의부재'의 공간에서 아버지들은 욕망과 동물적 생존본능을 동력 삼아 저와 식구들의 입을 건사했고 새끼를 쳤고 짐승처럼 살아 지금의 세상을 만들어 냈다.그러므로 대한민국의 현대사란 곧 탐욕과 기회주의, 배반과 협잡, 야만과 폭력의 수컷성이 공동체의 새로운 질서로 자리매김 해 온 과정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아버지들의 자식으로서 우리 세대는 현대사가 낳은 총체적 결과물이다. 우리는 아버지들의 더럽혀진 손의 수혜자이자 공범이자 피해자이고 이 모든 역사의 함축이다. 범죄와의 전쟁이 갱스터 영화로만 마음 편히 읽히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화는 80년대 부산 건달들의 이야기에 집중하

광해, 단언컨대 완벽한 정치포르노

monad as nomad|2013년 9월 22일

수많은 이해관계와 각기 다른 욕망 그리고 각자의 정의가 교차하고 얽히는 정치공간을 거칠게 뭉뚱그려, 탐욕스럽고 무능한 기득권과 억압받는 백성의 이분법으로 퉁치고는, "내가 너희들을 대변해주리라"가슴만 뜨거운 이상적 왕을 소환해 대중의 리비도를 자극하는 전형적 정치판타지 혹은 포르노. 왜 노빠들이 이 영화에서 노무현을 이끌어내는지 이유를 알겠다. 그들의 상상 속에서 노무현은, 힘없는 절대선인 백성들의 편에서 거대악 기득권에 맞서다 꿈을 이루지 못하고 스러져간 비운의 군주일테니.현실의 입체적 전모를 파악할 지적 능력이 부족한 이들일수록 거칠고 단순하고 흑백이 분명한 그래서 더 매력적인 상상속 세계로 도피하고 싶은 법이다. 그 속에서 분노하고 자위하며 백마타고 온 초인이나 기다리는거겠지. 현실 정치인에 제 멋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