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z의 비공식 일기

마라도나 다큐멘터리 <디에고>의 흥미로운 디테일

By  | 2019년 12월 20일 | 
1. 빌바오의 도살자영화가 시작되면, 나폴리에 오기 전 마라도나의 행적이 오프닝 타이틀에 섞여 빠르게 흘러간다. 그중 빌바오와 바르셀로나의 난투극이 비중 있게 묘사돼 있는데, 바르셀로나를 떠난 이유 중 하나가 저 빌바오 선수 중 ‘도살자’ 고이코에체아 때문이었다. 마라도나는 유럽 진출 후 두 번째 시즌인 1983/1984시즌 초반 바르셀로나 소속으로서(이때 감독은 아르헨티나의 축구 순수주의자들을 대표하는 인물 세사르 루이스 메노티였다) 좋은 활약 중이었지만, 고이코에체아의 고의성 다분한 태클에 당해 발목에 큰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돌아온 마라도나는 코파델레이에서 바르셀로나를 결승에 올려놓았고, 빌바오와 재회하게 된다. 스페인 국왕이 직관하고 국민 절반 가량이 시청하는 이 경기에서 마라도나 대 고이코

동백꽃 필 무렵 단상들

By  | 2019년 11월 24일 | 
1980년대생부터 거의 쓰지 않는 충청도 말 중에서 ‘집이’가 있다. ‘네가’ 또는 ‘당신이’에 해당하는 표현인데, 그리 튀는 어휘가 아니라서 부모 세대가 쓰는 걸 듣고도 내 또래는 눈치 채지 못한 경우가 많다. 나도 이문구 선생의 소설을 읽은 뒤 부모님의 통화를 들었을 때 이 표현이 아직도 쓰인다는 걸 처음 알았다. ‘동백꽃 필 무렵’의 옹산에서는 이 단어가 쓰인다. 이 드라마가 충청도의 언어와 문화를 깊이 반영하고 있다는, 일종의 신호가 되는 어휘다. 임상춘 작가가 충청도 출신 젊은 작가인 걸로 알고 있는데, 아마 ‘집이’라는 말을 직접 뱉은 적은 없을 것이다. 스스로 겪은 충청도를 넘어 충청도의 역사가 품고 있는 정서를 잘 구현해 냈다는 느낌을 준다. 충청도 정서는 곧 지방 소도시 또는 읍내의 정서이

황홀한 우주적 경험 '스타트렉 : 디스커버리'

By  | 2019년 11월 11일 | 
처음 ‘스타트렉 : 디스커버리’를 보기 시작했을 때는 스타트렉의 공식 신작이긴 하지만 기존 작품들과의 연속성보다는 차별성이 더 크다고 생각했다. 미국 TV쇼가 거대해지고 화려해진 시대의 첫 스타트렉이니, 과거 시리즈처럼 느긋하게 진행되긴 힘들다. ‘디스커버리’의 첫 시즌은 유서 깊은 세계관 안에서 벌어지는 우주전쟁 스릴러인 동시에 다양한 모험이 몰아치는 블록버스터 TV쇼에 가깝다. 비록 작품의 배경은 커크와 스팍이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오리지널 시리즈(TOS)의 10년 전을 다루고 있지만, 프리퀄이라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 독자적인 이야기였다. 그런데 첫 시즌 마지막 장면에서 갑자기 엄청나게 감동적인 팬서비스를 통해 TOS와의 접점을 확 넓히더니, 두 번째 시즌을 통해 스타트렉만의 고유한 매력을 되살려

스포 없는 캡틴마블 후기

By  | 2019년 3월 14일 | 
- 원작의 캐릭터 탄생 과정을 여러모로 각색했는데,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려는 노력이 보인다. 캡틴마블에게 능력을 주는 존재가 원작의 남성(원조 캡틴마블)에서 크리 문명 자체로 바뀌었다. 원작의 주요 남성 캐릭터 중 하나를 주인공이 존경하는 여성 캐릭터로 바꿨다. 나중에는 약간의 반전을 통해 캡틴마블의 능력은 ‘남이 부여한 힘’이 아니라 ‘스스로 자각한 힘’이라는 걸 강조하는데, 이를 통해 캐릭터의 주체성을 높였다. - 원작의 캡틴마블이 그다지 막강한 캐릭터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에겐 ‘마블의 히든카드’ ‘타노스를 무찌를 유일한 희망’이라는 수식어가 의아했을 것이다. 영화를 보면 의문이 풀린다. 의문이 풀리는 순간(즉 파워업의 순간) 쾌감도 있다. - 영화를 보고나면 왜 페미니즘 대전

엔드게임 후기 - 이 프랜차이즈는 토니 스타크의 것이다

By  | 2019년 5월 3일 | 
‘엔드 게임’을 보고 나서 곧바로 ‘윈터 솔져’를 다시 봤고, 내친 김에 기존 마블 영화들을 정주행하는 중이다. 페이즈 1이 끝나고 나서 ‘아이언맨 3’까지 도착했는데, 이 영화는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도 더 좋았다. 나머지 영화들은 사실 ‘엔드 게임’에서 어떻게 셀프-오마주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봤다면 ‘아이언맨 3’는 오롯이 독립된 재미를 준다.이 영화가 MCU에서 독특한 건 슈퍼 히어로가 아닌 상태로 활약하는 분량이 매우 길기 때문이다. 아이언맨은 오리지널 어벤져스 중 유일하게 정체성이 두 개인 영웅(캡틴 아메리카나 토르는 그 능력을 몸에서 떼어놓을 수 없다)이다. 토니 스타크는 ‘아이언맨 3’에서 수트를 잃은 채 꽤 오랜 시간동안 활약한다. 그런데 그 분량이 오히려 수트를 입고 날뛸 때보다 더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