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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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게이트 시계(Colgate Clock)와 여러 기념물이 있는 뉴저지 저지시티(Jersey City)의 허드슨 강변 산책

콜게이트 시계(Colgate Clock)와 여러 기념물이 있는 뉴저지 저지시티(Jersey City)의 허드슨 강변 산책

버지니아와 메릴랜드 주의 사이에 있는 워싱턴DC를 중심으로 하는 광역도시권을 여기 사람들이 'DMV(D.C.-Maryland-Virginia)'라 부르는 것을, 미동부로 이사를 온 직후의 아랫동네 나들이 포스팅에서 지도와 함께 설명한 적이 있다. 마찬가지로 뉴욕 주가 대서양과 접하는 남쪽 끝인 뉴욕시(New York City)도 좌우로 인접한 다른 주들인 뉴저지와 코네티컷의 일부를 광역도시권에 포함하는데, 그래서 아래에 지도로 보여드리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지역(New York metropolitan area)은 3개의 주가 모여있다고 보통 '트라이 스테이트(Tri-State)'라는 별명으로 더 알려져 있다. 가운데 뉴욕시를 중심으로 차로 2시간 이내 거리의 3개 주 카운티들이 거기에 포함되는데, 색칠된 지역의 총 인구는 2천만명 이상으로 미국에서 가장 큰 도시권이다. 뜬금없는 지리 공부로 아침산책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유는... 강 건너 맨하탄을 바라보며 걸은 땅은 뉴욕이 아니라 뉴저지(New Jersey) 주에 속하기는 하지만, 상기와 같은 이유로 블로그의 '다른 도시관광기>뉴욕' 카테고리에 넣는 것을 합리화하기 위해서이다.^^ 늦잠꾸러기 아내가 깰까봐 조용히 방을 나와서 호텔 밖으로 나오니, 제일 먼저 맨하탄의 마천루를 배경으로 전날 밤 포스팅의 마지막 사진으로 보여드렸던 동상의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카틴 기념물(Katyn Memorial)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소련이 폴란드의 군장교와 지식인들을 수용소에 가둔 후에, 소련에 비협조적인 22,000명 이상을 1940년에 무참히 학살한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1991년에 세워졌단다. 기단의 뒷면에는 1939년 소련이 점령한 후부터 시베리아로 강제 이주된 폴란드인들의 슬픈 역사도 기록되어 있다. 문제는 여기가 저지시티(Jersey City)의 가장 중심가인 익스체인지 플레이스(Exchange Place) 공원의 한가운데라는 것인데, 동상이 좀 끔찍한 형상이고 미국과 직접적인 관련도 없는 학살을 추모하는 것이라서 다른 곳으로 이전하자는 주장이 2018년에 있었으나, 폴란드 대통령까지 일부러 방문하는 등의 우여곡절 끝에 현재의 자리를 지키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제 허드슨 강변을 따라 남쪽으로 걸어보는데, 지역출신 미술가들의 여러 조각 작품이 산책로를 따라 놓여 있었다. 2018년까지는 뉴저지 주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고, 지금도 2위를 기록하고 있는 238미터(42층)의 골드만삭스 타워(Goldman Sachs Tower)를 배경으로, 한 가족이 보고있는 까만 석판과 구부러진 녹슨 철근 및 하얀 헬멧을 쓰고 난간에 걸터앉은 인물의 조각상이 보인다. 서류가방과 헬멧 및 그 옆에 놓여진 소방호스 등이 어울리지 않고, 성조기와 다른 소품들까지 섞여 있어서, 어디까지가 최초 작품의 모습인지 알기가 어렵다. 키스하는 수병과 치마가 날리는 마릴린 먼로의 동상을 거대하게 만든 것으로 유명한 조각가 Seward Johnson의 로워맨하탄 벤치에 앉아 서류를 재확인하는 비지니스맨을 조각한 라는 작품이 9/11테러 직후 폐허 속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살아남아서, 사람들의 임시 추모물(Makeshift Memorial)이 되었던 모습을 작가가 2004년에 재현해놓은 것이란다. (원본 작품은 수리 후 맨하탄 추모공원에 원래 모습으로 다시 설치가 되었음) 무너진 세계무역센터 빌딩의 녹슨 철골이 놓여있는데, 저렇게 두꺼운 H빔이 어떻게 휘어지고 부러질 수 있었는지... 그리고 사고 1년 후에 만들어진 까만 석벽의 앞면에는 여기서 바라보이던 쌍둥이 빌딩의 모습이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당시 사망한 저지시티 주민 38명의 이름이 적혀있단다. 바로 근처에 작년 초 겨울에 우리 가족이 배를 타고 건너편 맨하탄으로 갔었던 파울러스훅 선착장(Paulus Hook Pier)이 나오고, 좀 더 걸어가면 오늘의 주인공이 등장을 해주신다~ 그것은 바로 커다란 콜게이트 시계(Colgate Clock)로 우리집에서 사용하는 바로 그 치약의 이름이 맞다. 일단 수로 건너편 제일 왼쪽에 보이는 큰 건물은 옛날 기차역인데, 여기를 클릭하면 13년전에 우리 가족이 저기서 페리를 타고 엘리스 섬(Ellis Island)의 이민 박물관을 구경했던 여행기를 보실 수 있다. 또 건물 조금 오른쪽을 자세히 보시면 횃불을 들고 서있는 녹색 자유의 여신상 윗부분도 살짝 보인다. 조금 전 지나왔던 골드만삭스 빌딩이 있던 자리에 생활용품 회사인 콜게이트-팜올리브(Colgate-Palmolive)의 공장단지가 있었는데, 그 중 본사 건물 옥상에 1906년에 최초로 커다란 시계가 만들어지고, 1924년에 지금의 시계로 바뀌어서 광고판 역할을 했단다. 그러나 1980년대에 재개발이 되면서 건물은 모두 철거되고 시계는 공터에 그냥 보관이 되다가, 2000년대에 들어서 다시 작동 가능하도록 수리가 되었고 2013년에 LED 조명 등으로 완전히 업그레이드를 해서 현재의 위치에 설치가 되었단다. 지름이 50피트(15 m)로 제작 당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시계였고, 지금도 전세계에서 7번째로 크다고 한다. 테두리가 팔각형인 이유도 재미있는데, 시계가 만들어질 당시에 콜게이트 회사의 가장 인기상품이 팔각형의 빨랫비누인 '옥타곤'이었기 때문이란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철골 지지대로 받혀놓은 뒷면 모습으로, 왠지 시계가 멈추면 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건전지를 바꿔줘야 할 듯한 느낌이다. ㅎㅎ 다음 볼거리를 찾아서 보드워크를 따라 걸어가는데, 일요일 아침에 산책을 나온 주민들이 좀 있었다. 여기 보이는 건물들은 대부분이 소위 '맨해튼 뷰'를 자랑하는 고가의 뉴저지 콘도와 아파트들이다. 이리로 걸어올 때 왼편으로 보이던 녹지는 리버티 주립공원(Liberty State Park)의 일부로 관리되는데, 먼저 오른쪽 도로의 끝에 있는 다른 기념물을 찾아간다. 태극기가 펄럭이는 허드슨 카운티(Hudson County)의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물은 2002년에 이 자리에 만들어졌는데, 이 지역 출신으로 한국전에서 사망한 126명과 다른 많은 부상자들을 기리는 공간이다. 지난 3월에도 여기처럼 지자체에서 만든 집 근처의 작은 한국전 기념관을 짧게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이러한 장소들을 방문하면 참 고마운 느낌이 들어서 짧게나마 감사의 시간을 혼자 가진다. 동상을 둘러싼 까만 반원의 뒤쪽 절반은 전쟁 당시의 옛날 모습을 새겨 놓았고, 나머지 앞쪽 절반은 발전한 현재의 한국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사진에는 고향 부산의 해운대 누리마루과 광안대교 및 울산의 자동차 공장이 보이고, 맞은편에는 서울 명동과 남산의 모습 등이 있었다. 개를 데리고 나온 사람들이 많았던 주립공원의 끝에서, 거친 강가의 바위들 너머로 보이는 맨하탄의 풍경도 이채로웠다. 그 사이에 해가 더 높이 떠올랐고 이제 호텔로 돌아가야 하는데, 지도를 보니까 시내를 관통해서 지나가면 다른 볼거리가 더 있는 것으로 나와서 아침산책도 순환코스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미국에서 이런 오벨리스크(Obelisk)가 세워져 있으면 대부분 조지 워싱턴과 관련된 장소라고 보면 되는데, 1776년에 뉴욕시를 점령한 영국군에 맞서서 워싱턴의 대륙군이 잠시 주둔했다가 후퇴한 장소라는 설명이 있었다. 여기 파울러스훅(Paulus Hook) 요새는 1779년에 미국이 다시 빼앗는데, 당시 전투를 이끈 Henry Lee III 지휘관이 바로 남북전쟁의 로버트 E 리 장군의 아버지이다. 마지막 볼거리는 1913년에 보자르 양식으로 화려하게 건축되었다는 우체국으로, 놀랍게도 지금도 저지시티의 중앙우체국으로 계속 사용되고 있다! 당연히 가장 도심에 위치하고 건물에 지하 주차장같은 것도 없으니, 오래된 석조 건물을 빙 둘러싸고 최신의 하얀 우편 배달트럭들이 줄지어 주차되어 있는 모습이 아주 흥미로웠다.^^ 그렇게 완전히 사각형 코스로 저지시티를 한바퀴 돌았던 혼자만의 아침산책을 마치고, 오른편에 지붕이 만들어진 입구가 보이는 호텔 건물로 돌아가서 아직 주무시고 있는 아내를 깨웠다. 건물 꼭대기 층에 호텔 로비와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레스토랑이 있어서, 탁 트인 맨하탄 뷰를 즐기며 일요일의 늦은 아침식사를 한 후에, 한국의 어린이를 위한 전세계 위인전에도 단골로 등장하는 유명한 사람을 기념하는 인근의 국립역사공원을 향해서 출발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뉴욕 자유 여행 뉴욕 패스 이용 911 메모리얼 뮤지엄 원월드 전망대

뉴욕 자유 여행 뉴욕 패스 이용 911 메모리얼 뮤지엄 원월드 전망대

뉴욕 자유여행 중 꼭 한 번 다녀와야 할 곳이 있습니다. 그곳은 바로 911 메모리얼 뮤지엄 입니다. 911 메모리얼 뮤지엄은 2001년 9월 11일에 일어난 911 테러를 기억하고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지어진 박물관 인데요. 뉴욕 패스 (빅애플패스)를 통해 미리 예약을 하고 다녀왔어요. 메모리얼 뮤지엄을 돌아보는 동안 알쓸신잡 뉴욕편과 꼬꼬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911테러 편이 떠올랐어요. 이날은 하루종일 가슴 한쪽이 먹먹 하더라고요. 1. 위치 및 찾아가는 길 911 메모리얼 뮤지엄은 PATH 세계무역센터역, WTC코트랜드역, 코트랜드 스트리트역, 파크플레이스 스테이션 등에서 도보로 갈 수 있어요. 타임즈스퀘어에서 출발하.......

영웅적인 희생의 들판으로 영원히 기억되는 플라이트93 내셔널메모리얼(Flight 93 National Memorial)

영웅적인 희생의 들판으로 영원히 기억되는 플라이트93 내셔널메모리얼(Flight 93 National Memorial)

연초에 여기 버지니아 알링턴의 펜타곤에 만들어진 9·11 테러 추모물을 소개하면서, 마지막 4번째로 납치된 여객기는 펜실베이니아 주의 외딴 벌판에 추락했다고 알려드렸었다. 그 비행기의 이야기는 2006년에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영화 으로도 제작되었는데, 추락한 지역은 사고 이듬해 플라이트93 내셔널메모리얼(Flight 93 National Memorial)로 지정이 되었고, 현재의 비지터센터와 추모광장 등은 2015년에야 완공되어서 일반에 공개되었다. 여기를 별볼일 없는 국립 공원이라 부르는 것은 좀 아닌 듯 하지만, 그 펜실베니아 시리즈의 4번째 목적지로 찾아왔다. 행정구역 상으로 국립기념관의 대부분은 스토니크릭(Stonycreek) 타운쉽에 속하지만, 가장 가까운 마을인 인구 200명의 섕크스빌(Shanksville) 들판에 추락한 것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2001년 9월 11일에 유나이티드 항공 93편의 비행경로와 타임라인을 보여주는 그림으로, 테러범들의 목적지였던 워싱턴DC까지 불과 18분을 남겨두고, 승객과 승무원들이 조종실을 다시 빼앗는 와중에 이 지점에 추락을 해서 승객 33명과 승무원 7명의 합계 40명이 모두 사망을 했다. (희생자에서 제외된 테러범 4명도 물론 사망) 입구에서 제법 운전해 들어오면 넓은 주차장과 엄숙한 외관의 건물이 만들어져 있는 비지터센터 컴플렉스(Visitor Center Complex)가 먼저 나온다. 비지터센터의 입구 사진만 또 올리는 이유는 이 곳의 내부는 추모 분위기를 헤치지 않기 위해서 사진촬영이 금지이기 때문이다. 뉴욕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에 처음 두 비행기가 충돌하는 영상부터, 납치 과정과 승객들의 통신 기록, 다시 탈취하는 순간의 실제 녹음, 추락한 잔해 수습 과정 등과 함께 마지막에는 희생자 40명의 사진으로 장식된 벽으로 끝났다. (전시의 대부분은 공원 홈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음) 비지터센터와 연결된 콘크리트 벽이 끊어진 사이로 검은 통로가 만들어져 있어서, 저 끝까지 걸어가 보면... 충돌지점(Impact Site) 옆으로 만들어진 추모광장(Memorial Plaza)이 멀리 내려다 보이고, 마지막 유리에는 홈페이지 첫화면에도 등장하는 문구인 "A common field one day. A field of honor forever."라 씌여있다. 이 여행기를 쓰기 전까지도 무심코 '공포의 들판(field of horror)'이라 읽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공원 브로셔에 인쇄된 지도를 추가로 보여드리는데, 허허벌판에 상당히 큰 규모로 만들어져서 추모광장까지는 40 Memorial Groves를 한바퀴 빙 돌아서 차로 이동을 하게 된다. 뒤돌아서 보이는 이 직선의 검은 통로가 그 날 플라이트93의 마지막 비행경로(Flight Path)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콘크리트 벽도 자세히 보면 모두 이렇게 나뭇결이나 오래된 목재와 같은 질감을 새겨 넣은 것이 특별했고, 멀리 검은색으로 툭 튀어나온 것은 비지터센터 전시관 마지막에 만들어져 있는 실내 전망대이다. 차를 타고 추모광장이 시작되는 Shelter가 있는 곳으로 왔다. 안내판의 사진은 추락 후 폭발의 검은 연기를 찍은 것이고, 테러범들이 충돌을 계획한 것으로 추정되는 의사당 모습도 보인다. (목표가 백악관이나 또는 DC 인근의 원자력 발전소였을 가능성도 있다고 함) 충돌 후 잔해가 수습된 지역인 Debris Field를 왼편에 두고 통로가 만들어져 있는데, 중간에 충돌지점이 정면에 보이는 난간에는 유가족 또는 방문객들이 두고 간 작은 기념물들이 놓여 있었다. 폭발 구덩이는 모두 메워져 평평한 초원으로 복원되었지만, 이 사진 왼편 1/4 지점에 살짝 보이는 큰 바위(Boulder)가 놓인 곳이 정확한 추락지점이란다. 그리고 그 통로의 끝에는 희생자 40명의 이름이 하얀 대리석에 하나씩 새겨진 Wall of Names가 나온다. 언덕 위에 보이는 비지터센터에서 바로 여기까지 걸어오는 산책로도 만들어져 있지만, 거리가 보기보다는 제법 되는 듯 했다. FBI가 충돌 직후에 찍었던 사진 한 장을 홈페이지에서 가져와 보여드리는데, 시속 900 km의 속도로 거의 수직으로 땅에 부딪혔기 때문에, 띄엄띄엄 보이는 1~2미터 길이의 동체 파편 몇십 개를 제외하고는 남아있는게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래도 몇달간 보존 수색을 해서 작은 뼛조각 하나도 모두 DNA 검사를 통해 각 유족에게 전달되었고, 짧은 전선같은 잔해 하나도 모두 버리지 않고 비지터센터에 전시를 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공원 입구쪽에 2018년에 추가로 만들어진 '목소리의 탑(Tower of Voices)'을 구경하기 위해 잠시 들렀다. 편명에 맞춰서 높이가 93피트(28 m)로 제작된 콘크리트 타워의 내부에, 40명의 희생자를 상징하는 40개의 풍경(wind chime)을 설치해서, 바람이 불면 은은한 소리가 나도록 만들어졌다는데, 조금 전까지 거세던 바람이 갑자기 잦아들어서 직접 들을 수는 없었다.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위의 동영상을 재생하면 풍경의 추가 흔들리면서 각기 다른 음의 '목소리'들이 울리는 것을 직접 들으실 수 있다. 바로 아래에서 종탑을 올려다 보는데, 오후의 햇살이 마치 천사의 후광처럼 뒤쪽을 밝히고 있었다... 그 날 플라이트93편의 평범한 남자와 여자들이 항복을 거부하고, 테러범들에 의해 잠긴 조종실 문을 기내식 카트로 들이받아 부수고 들어가서 싸웠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희생으로 또 다른 끔찍한 피해는 막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여기 펜실베니아의 외딴 시골에 있는 '영광의 들판(field of honor)'에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영웅적인 희생의 들판으로 영원히 기억되는 플라이트93 내셔널메모리얼(Flight 93 National Memorial)

영웅적인 희생의 들판으로 영원히 기억되는 플라이트93 내셔널메모리얼(Flight 93 National Memorial)

연초에 여기 버지니아 알링턴의 펜타곤에 만들어진 9·11 테러 추모물을 소개하면서, 마지막 4번째로 납치된 여객기는 펜실베이니아 주의 외딴 벌판에 추락했다고 알려드렸었다. 그 비행기의 이야기는 2006년에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영화 으로도 제작되었는데, 추락한 지역은 사고 이듬해 플라이트93 내셔널메모리얼(Flight 93 National Memorial)로 지정이 되었고, 현재의 비지터센터와 추모광장 등은 2015년에야 완공되어서 일반에 공개되었다. 여기를 별볼일 없는 국립 공원이라 부르는 것은 좀 아닌 듯 하지만, 그 펜실베니아 시리즈의 4번째 목적지로 찾아왔다. 행정구역 상으로 국립기념관의 대부분은 스토니크릭(Stonycreek) 타운쉽에 속하지만, 가장 가까운 마을인 인구 200명의 섕크스빌(Shanksville) 들판에 추락한 것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2001년 9월 11일에 유나이티드 항공 93편의 비행경로와 타임라인을 보여주는 그림으로, 테러범들의 목적지였던 워싱턴DC까지 불과 18분을 남겨두고, 승객과 승무원들이 조종실을 다시 빼앗는 와중에 이 지점에 추락을 해서 승객 33명과 승무원 7명의 합계 40명이 모두 사망을 했다. (희생자에서 제외된 테러범 4명도 물론 사망) 입구에서 제법 운전해 들어오면 넓은 주차장과 엄숙한 외관의 건물이 만들어져 있는 비지터센터 컴플렉스(Visitor Center Complex)가 먼저 나온다. 비지터센터의 입구 사진만 또 올리는 이유는 이 곳의 내부는 추모 분위기를 헤치지 않기 위해서 사진촬영이 금지이기 때문이다. 뉴욕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에 처음 두 비행기가 충돌하는 영상부터, 납치 과정과 승객들의 통신 기록, 다시 탈취하는 순간의 실제 녹음, 추락한 잔해 수습 과정 등과 함께 마지막에는 희생자 40명의 사진으로 장식된 벽으로 끝났다. (전시의 대부분은 공원 홈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음) 비지터센터와 연결된 콘크리트 벽이 끊어진 사이로 검은 통로가 만들어져 있어서, 저 끝까지 걸어가 보면... 충돌지점(Impact Site) 옆으로 만들어진 추모광장(Memorial Plaza)이 멀리 내려다 보이고, 마지막 유리에는 홈페이지 첫화면에도 등장하는 문구인 "A common field one day. A field of honor forever."라 씌여있다. 이 여행기를 쓰기 전까지도 무심코 '공포의 들판(field of horror)'이라 읽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공원 브로셔에 인쇄된 지도를 추가로 보여드리는데, 허허벌판에 상당히 큰 규모로 만들어져서 추모광장까지는 40 Memorial Groves를 한바퀴 빙 돌아서 차로 이동을 하게 된다. 뒤돌아서 보이는 이 직선의 검은 통로가 그 날 플라이트93의 마지막 비행경로(Flight Path)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콘크리트 벽도 자세히 보면 모두 이렇게 나뭇결이나 오래된 목재와 같은 질감을 새겨 넣은 것이 특별했고, 멀리 검은색으로 툭 튀어나온 것은 비지터센터 전시관 마지막에 만들어져 있는 실내 전망대이다. 차를 타고 추모광장이 시작되는 Shelter가 있는 곳으로 왔다. 안내판의 사진은 추락 후 폭발의 검은 연기를 찍은 것이고, 테러범들이 충돌을 계획한 것으로 추정되는 의사당 모습도 보인다. (목표가 백악관이나 또는 DC 인근의 원자력 발전소였을 가능성도 있다고 함) 충돌 후 잔해가 수습된 지역인 Debris Field를 왼편에 두고 통로가 만들어져 있는데, 중간에 충돌지점이 정면에 보이는 난간에는 유가족 또는 방문객들이 두고 간 작은 기념물들이 놓여 있었다. 폭발 구덩이는 모두 메워져 평평한 초원으로 복원되었지만, 이 사진 왼편 1/4 지점에 살짝 보이는 큰 바위(Boulder)가 놓인 곳이 정확한 추락지점이란다. 그리고 그 통로의 끝에는 희생자 40명의 이름이 하얀 대리석에 하나씩 새겨진 Wall of Names가 나온다. 언덕 위에 보이는 비지터센터에서 바로 여기까지 걸어오는 산책로도 만들어져 있지만, 거리가 보기보다는 제법 되는 듯 했다. FBI가 충돌 직후에 찍었던 사진 한 장을 홈페이지에서 가져와 보여드리는데, 시속 900 km의 속도로 거의 수직으로 땅에 부딪혔기 때문에, 띄엄띄엄 보이는 1~2미터 길이의 동체 파편 몇십 개를 제외하고는 남아있는게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래도 몇달간 보존 수색을 해서 작은 뼛조각 하나도 모두 DNA 검사를 통해 각 유족에게 전달되었고, 짧은 전선같은 잔해 하나도 모두 버리지 않고 비지터센터에 전시를 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공원 입구쪽에 2018년에 추가로 만들어진 '목소리의 탑(Tower of Voices)'을 구경하기 위해 잠시 들렀다. 편명에 맞춰서 높이가 93피트(28 m)로 제작된 콘크리트 타워의 내부에, 40명의 희생자를 상징하는 40개의 풍경(wind chime)을 설치해서, 바람이 불면 은은한 소리가 나도록 만들어졌다는데, 조금 전까지 거세던 바람이 갑자기 잦아들어서 직접 들을 수는 없었다.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위의 동영상을 재생하면 풍경의 추가 흔들리면서 각기 다른 음의 '목소리'들이 울리는 것을 직접 들으실 수 있다. 바로 아래에서 종탑을 올려다 보는데, 오후의 햇살이 마치 천사의 후광처럼 뒤쪽을 밝히고 있었다... 그 날 플라이트93편의 평범한 남자와 여자들이 항복을 거부하고, 테러범들에 의해 잠긴 조종실 문을 기내식 카트로 들이받아 부수고 들어가서 싸웠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희생으로 또 다른 끔찍한 피해는 막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여기 펜실베니아의 외딴 시골에 있는 '영광의 들판(field of honor)'에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