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더빌트
- 포스트 갯수: 3
- 조회수:
- ORGANIZATION
미동부에서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관광지를 알리는 갈색 도로표지판에 무슨 'National Heritage Area' 또는 'National Heritage Corridor'라고 적힌 것을 가끔 보게 된다. 현재 미국에 55개가 있는 이러한 "국가유산지역"은 의회가 통과시킨 법률에 대통령이 서명해서 지정되는데, 역사와 문화적으로 가치가 있는 특정 지역을 국립공원청의 자문과 협력을 받아서 여러 기관이나 개인의 보존 및 개발을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11월말에 추수감사절 연휴를 집에서 함께 조용히 보낸 딸을 다시 학교에 차로 데려다주고 내려오면서 잠깐 구경한 곳이, 이러한 국가유산지역에 포함되는 뉴욕주의 국립 공원이었다.
허드슨리버밸리 내셔널헤리티지에리어(Hudson River Valley National Heritage Area)는 위의 지도와 같이, 뉴욕시(New York City) 북쪽에서 주도인 올버니(Albany)까지 이어지는 허드슨 강의 계곡 지역으로, 그 안에 약 100개에 달하는 역사/문화/자연 관광지가 모여있다고 한다. 그 중에서 글자 배경을 노란색으로 칠한 6곳이 국립공원청이 직접 관리하는 장소인데, 지도를 확대하면 가운데 쯤에 위치한 하이드파크(Hyde Park) 마을에 3곳이 모여있는 것을 보실 수 있다. (지도에 Val-Kill로만 표시된 곳도 NPS의 독립적인 유닛인 Eleanor Roosevelt National Historic Site임)
밴더빌트맨션 국가유적지(Vanderbilt Mansion National Historic Site)의 주차장에서 조금 걸어가면 나오는 이 건물은 본채가 아니고, 미혼 남성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로 지어져서 지금은 비지터센터로 사용되는 곳이다.
맨션투어는 목~월요일 하루 4번 정해진 시간에 선착순으로 진행되는데, 1인당 $10의 유료라고 되어있지만... 국립공원 연간회원권을 소지한 경우에는 4명까지는 무료이다. 그래서 우리 부부 2명은 FREE~ ㅎㅎ
작은 전시실 왼편에는 여기서 조금 아래쪽에 살았던 루즈벨트 대통령 부부의 이야기와 함께 하이드파크 동네의 역사 등이 소개되어 있다. 제일 오른쪽에 보이는 이 맨션의 역사는 나중에 소개하기로 하고, 그 옆으로 여성분이 보고 계시는 밴더빌트 패밀리(Vanderbilt Family)의 가계도를 확대해서 보도록 하자.
제일 위 흑백사진의 Commodore Cornelius Vanderbilt와 그의 맏손자가 지은 제일 왼쪽 사진에 보이는 집인 '브레이커스(Breakers)'에 대해서는 얼마 전 여행기에서 설명을 드렸다. (CNN의 간판 앵커인 앤더슨 쿠퍼의 어머니로 유명인이었던 Gloria Vanderbilt가 브레이커스를 지은 코넬리우스 2세의 손녀딸) 할아버지에 이이서 미국 최고의 부자였던 아버지의 유산을 골고루 나눠받은 장성한 8명의 자녀들은 미동부에 도합 40채가 넘는 대저택들을 새로 지었는데, 이 곳은 여섯째인 Frederick William Vanderbilt가 1899년에 완공한 곳으로 유일하게 현재 연방정부가 소유해서 국립 공원으로 개방이 된다.
투어시간이 되어 실내에서 이상과 같은 설명을 레인저로부터 들은 후에, 비지터센터의 옆문을 나서서 맨션쪽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월요일 아침 10시의 첫번째 투어에 참가한 사람들은 우리 부부를 포함해 총 7명이었다.
자기 집은 아니지만 이런 대저택의 열쇠를 들고 다니며 정문을 열어주는 레인저의 기분도 괜찮을 듯...^^ 건물의 전체 모습은 내부투어를 마치고 나와서 보여드리기로 하고, 일단 사람들과 함께 안으로 들어가보자~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2층까지 천정이 뚫려있는 Entrance Hall에서 레인저가 기본적인 설명을 한 후에, 사방의 방들을 자유롭게 둘러보는 식으로 투어가 진행되었다. 앞서 가계도를 자세히 다시 보시면 유산을 나눠받은 8명의 형제자매들 중에서 이 부부만 유일하게 자녀가 없었고, 그래서 아내와 사별하고 혼자 살던 Frederick은 아내의 조카 Margaret Louise Van Alen에게 이 집을 유산으로 남겨주고 1938년에 죽었다. 원래 왠만큼 부자였던 그녀는 바로 이 집을 시장에 내놓았지만 가격을 낮춰도 팔리지 않았고, 결국 이웃에 살던 루즈벨트 대통령의 권유에 따라 국립공원청에 그냥 기증을 했던 것이다.
입구 왼편부터 차례로 돌아보면, 제일 작은 이 방은 프레더릭이 업무를 보는 서재(Office)였다고 한다.
그 옆으로 덴(Den)이라고 된 이 방은 남자 손님들을 맞는 용도로 주로 사용된 곳 답게, 동물 머리의 박제와 그 아래에 엽총 등이 전시가 되어 있다.
주 응접실인 리빙룸(Living Room)에는 예쁜 크리스마스 트리가 불을 밝히고 있는데, 여기서 가장 놀라운 사실을 알려드리면... 이 맨션은 부부가 함께 봄과 가을철에만 짧게 머물렀던 별장이기 때문에, 실제로 사람이 이 집에 거주할 때는 한 번도 크리스마스 장식을 한 적이 없고, 늦가을에 주인이 뉴욕 맨하탄 5번가의 저택으로 돌아가면 겨울내내 굳게 잠겨있었다고 한다!
당시의 화려한 길디드에이지(Gilded Age), 즉 '도금시대(鍍金時代)'라는 이름에 걸맞게 벽과 천장에 진짜 금박을 입혀서 사치스럽게 장식한 리셉션룸(Reception Room)의 모습이다.
홀을 건너서 다이닝룸(Dining Room)의 식탁 위에는 "Vanderbilt Holiday"라는 이름으로, 실제 밴더빌트 가문이 맨하탄에서 연말파티를 할 때 준비했던 뷔페 음식의 모형이 차려져 있었다.
Grand Staircase의 레드카펫을 밟으며 아내가 1등으로 올라가는데, 저 계단을 두 바퀴를 돌아야 2층이 나왔다.
안주인의 침실인 Mrs. Vanderbilt's Room으로 침대 주위를 대리석 난간과 기둥으로 둘러싼 이유는, 프랑스 왕실의 궁전에서 여왕의 침실을 저런 식으로 만든다고 해서 그대로 따라한 것이라고 한다. 모든 방은 이렇게 입구에서만 볼 수 있고, 안으로 들어가서 구경할 수는 없는 것이 조금 아쉬웠다.
침실과 연결된 옷을 갈아입는 용도로 사용하는 방인 듯 한데, 이런 내실을 부드와(Boudoir)라 부르는 모양이다. 그리고 남편의 침실은 당연히 별도로 있는데, 내부 보수중이라 가구를 다 빼놓아서 따로 사진은 찍지 않았다.
맞은편에 있는 가장 넓은 손님방인 블루룸(Blue Room)의 모습 등을 구경하고는 하인들이 이용하는 별도로 만들어진 좁은 나무계단을 이용해서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에는 물품을 보관하는 곳과 함께 하인들의 방이 만들어져 있는데, 주인 부부 두 명이 여기에 머물 때 보통 약 20명의 하인이 함께 살면서 시중을 들었다고 한다.
지하와 연결된 주방을 잠깐 구경하고는 하인들이 다니던 반지하의 옆문을 통해서 밖으로 나갔다.
밴더빌트 맨션(Vanderbilt Mansion)의 전체 모습인데, 올라가보지 않은 3층까지 포함해서 54개의 방과 21개의 벽난로가 있고, 당시로는 최신의 전기 시설과 중앙 난방장치를 갖추었단다. 특히 철도회사를 운영했던 가문답게 이 곳에 맨션을 지으면서, 하이드파크 마을에 철로와 기차역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는 허드슨 강을 따라 좀 걸어서 이 저택의 정원인 Formal Gardens를 찾아 와봤다. 입구에 세워진 4개의 흉상은 19세기 미국의 풍경을 묘사한 Hudson River School 운동의 대표적 화가들인 Thomas Cole, Thomas Moran, Albert Bierstadt, 그리고 Sanford Gifford로 최근에 만들어 세운 것이다.
스미소니언 미국 미술관의 까만 커튼이 쳐진 독실에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 걸려있는 Albert Bierstadt (그림을 보시려면 클릭!) 흉상 뒤로 보이는 이층집은 정원사의 오두막이란다.
꽃이 다 떨어진 늦가을이라서 그런지 투어를 한 사람들 중에서도 정원까지 걸어 온 것은 우리 부부 뿐이었다. 저 아래쪽으로도 다른 정원과 함께 조각이 있는 연못도 만들어져 있다고 하지만, 더 걸어가볼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우리도 그만 돌아섰다.
나중에 꽃 피는 봄이나 단풍이 든 가을에, 우리도 밴더빌트 부부처럼 뉴욕에서 출발해 이 곳을 다시 찾아오기로 하고, 처음 달려보는 고속도로로 펜실베니아 주를 가로질러 버지니아의 집으로 돌아갔었다. 미래의 그 때에는 허드슨 강변을 따라 계속 걸어서 루즈벨트 대통령 부부의 생가와 도서관도 방문해보고, 또 하이드파크(Hyde Park)에 본교가 있는 세계적인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 요리학교의 학생들이 직접 음식을 만들어 내놓는다는 카페에서 식사도 꼭 해보기로 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미국의 남북전쟁과 재건시대가 끝나고 1877년부터 약 20여년간 북부의 도시들을 중심으로 공업화에 따른 자본주의가 급속도로 발전한 시기를 길디드에이지(Gilded Age), 즉 '도금시대(鍍金時代)'라고 부르는데, 이 말은 소설가 마크 트웨인과 찰스 워너가 함께 1873년에 발표한 풍자소설 <The Gilded Age: A Tale of Today>의 제목에서 유래했단다. 당시 부패한 정경유착과 기업 담합을 통한 독점으로 엄청난 부를 모은 미국의 대자본가들은 말 그대로 진짜 금박을 입힌 으리으리한 저택에서 살았는데, 지난 여름 3박4일 뉴잉글랜드 지역 여행에서 마지막으로 들린 여행지가 바로 그런 집이었다. 집구경을 하기 전에 먼저 오래간만에 블로그에 소개되는 로드아일랜드(Rhode Islands) 주에 대해서 잠깐 알아보도록 한다.
1636년에 신앙과 정치적인 문제로 메사추세츠에서 분리된 로드아일랜드는 미국의 독립 당시 13개 식민지에 마지막으로 포함된다. 지도처럼 코네티켓과 메사추세츠 사이에 위치한 미국에서 가장 면적이 작은 주로 충청북도의 절반이 조금 넘는 크기에 인구도 약 1백만명에 불과하다. 주도인 프로비던스(Providence)에 위치한 브라운 대학교(Brown University)를 2015년에 아이비리그 투어로 방문했던 것이 지금까지 유일한 여행기로 여기를 클릭해서 보실 수 있다. 지도에서 가장 큰 애퀴드넥 섬(Aquidneck Island)을 처음 발견한 서양인이 그리스의 로도스 섬과 모양이 비슷하다고 한데서 주의 이름이 유래했고, 이제 소개하는 관광지가 그 섬의 뉴포트(Newport)라는 마을인데, 섬들이 육지와는 다리로 모두 연결이 되어있어서 차로 쉽게 찾아갈 수 있다.
부자들의 여름 휴가지였다는 뉴포트에 있는 더브레이커스(The Breakers)의 주차장에 도착을 했는데, 안내판에 씌여진 입장료 등의 내용은 약 10곳의 이러한 저택들을 함께 관리하는 뉴포트맨션(Newport Mansions)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다. 개장하는 오전 10시까지는 시간이 좀 남아서 동네 드라이브를 좀 하다가 문이 열려있는 다른 '집'에 무심코 잠깐 들어갔다.
모자를 쓴 낙타 두 마리가 정원에 서있는 이 집도 러프포인트(Rough Point)라는 유료투어가 진행되는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는 곳이었는데, 이처럼 바닷가와 접한 쪽은 대부분이 이런 '울트라 대저택'들이 띄엄띄엄 들어서 있었다.
우리가 구경할 브레이커스 저택의 주차장으로 돌아왔더니, 벌써 입구에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줄이 만들어져 있었다. 일단 문을 통과해서 들어가면 바로 웰컴센터로 안내가 되어서, 입장권을 구매한 후에 다시 밖으로 나가게 되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1895년에 완공된 70개의 방이 있는 르네상스 스타일의 이 '브레이커스(The Breakers)'라 불리는 대저택은, 작년의 대륙횡단에서 들린 내슈빌 밴더빌트 대학교 여행기에서 설명한 그 밴더빌트의 손자인 Cornelius Vanderbilt II가 지은 것이다. 참고로 그의 할아버지가 미국의 선박과 철도를 장악한 1850년대부터 그의 아버지가 사망한 1885년까지, 30년 이상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차례로 미국에서 최고의 부자였다. (그 후 미국 최고의 부자 자리는 록펠러, 카네기, 포드 등등을 차례로 거쳐... 빌 게이츠, 제프 베조스, 엘론 머스크)
입구로 들어와 그레이트홀(Great Hall)을 딱 보는 순간에 "아무리 도금시대라고 하지만, 저 금색이 진짜 금일까?" 이런 생각을 잠깐 했었는데... 중앙홀 구석에 친절하게 비치된 한글 안내서에 다음과 같이 씌여 있었다. "천장은 바람에 날리는 듯한 하늘을 묘사하도록 그려졌습니다. 도금된 천장은 도토리와 오크 나무 잎과 네 개의 청록색 메달들로 이루어져있으며 이는 힘과 장수를 상징합니다."
"Dining Room 장미 색깔의 12 돌기둥들은 견고한 설화 석고 이루어졌습니다. 이 거대한 샹들리에와 열두 개의 기둥 촛대들은 최고의 프랑스 Baccarat 크리스털로 만들어졌으며 가스와 전기를 위해 감아졌습니다. 여러분의 50 피트 위 도배된 천장은 Aurora 여신이 새벽을 예고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식탁은 34 개 의자를 수용할 만큼 만들어졌습니다."
"모자이크식 천장은 이태리 르네상스 스타일의 청색 돌고래와 나뭇잎 디자인의 수천 조각의 대리석 세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Morning Room 은 과일, 꽃, 고전적인 모형들의 화환 조각으로 르네상스 말기 스타일을 반영합니다. 벽난로는 세련된 마노(보석의 일종)와 청색/회색 Campan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금으로 씌운 청동 판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모서리 벽면들은 백금의 잎과 그리스 신화 뮤즈의 여덟 여신들의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Music Room 은 가족 결혼식이나 사교 파티의 장소였습니다. 금은 잎, 청색/회색의 Campan 대리석, 거울, 그리고 크리스털 조명 기구 등이 조화를 이루어 저녁 콘서트나 연회를 더욱 빛나게 하였습니다. 이 방과 르네상스 스타일의 가구들은 프랑스에서 Richard van der Boyen 에 의해 디자인되었으며 파리의 Allard and Sons 라는 회사가 만들었고 바로 Newport 로 운반되었습니다. 음악의 영감과 유명한 작곡가들이 천장에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상과 같이 적혀있는 분홍색의 한글 안내서가 다른 언어와 함께 놓여있는 것이 사진 왼쪽 아래에 보인다. 아래 1층에는 이외에도 Breakfast Room, Billiard Room, Library 등이 더 있었지만 다 보여드릴 필요도 없을 것 같아 생략했고, 앞서 사진들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안내서 내용을 그대로 적었다... 2층으로 올라오면 주인 내외 각각의 침실과 옷방, 화장실 등을 지나는데, 사진도 제대로 안 찍었던 것으로 봐서 뭔가 체질에 안 맞거나 취재를 포기한 느낌이었던 것 같다~^^
넷째 딸인 Gertrude Vanderbilt의 침실로 작은 침대 위의 초상화가 그녀의 5살때 모습이라고 한다. 그녀는 조각을 공부하고 1896년에 Harry Payne Whitney와 결혼하는데, 지금 뉴욕의 휘트니 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이 1930년대에 그녀의 주도로 설립된 것이란다.
2층 로지아(loggia)의 아치 너머로 보이는 대서양을 사진에 담고있는 아내의 모습이다. 난간에 가려진 뒷뜰 잔디밭은 높이 30피트의 절벽으로 바다와 만나는데, 그래서 파도가 부서지는 곳이라고 The Breakers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중앙홀로 내려가는 계단참에 이 모든 극단의 사치를 가능하게 해준 할아버지 Cornelius Vanderbilt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집주인이 맏손자라서 할아버지의 이름을 그대로 썼음) 우리 손님들은 레드카펫이 딸린 중앙 계단을 이용하지는 못하고, 그 옆으로 만들어진 하인들이 다니던 좁은 나무계단과 통로를 통해서 다시 아래로 내려가게 된다.
본 저택에서 떨어져 지어진 부엌으로, 밴더빌트 집안이 여름철에 여기서 지낼 때 약 40명의 하인을 거느렸다고 한다. 여기는 조리실이고 옆으로 팬트리(pantry)와 하인들이 대기하는 방이 따로 있는데, 거기에는 나중에 추가된 전기식 호출기도 벽면에 설치가 되어 있었다.
마지막 방에는 당시 이 집에서 사용하던 그릇과 찻잔 등의 모조품을 살 수 있는 기념품 가게가 위치하고 있고, 계산대 옆으로 작게 만들어져 있는 쪽문을 통해서 내부투어를 마치고 이제 밖으로 나가게 된다.
옆문을 나와 조금 떨어진 곳에 작은 집이 한 채 있어서, 문지기의 집인가 했더니... 아이들 '놀이방'으로 만든거란다!
저택의 북동쪽 면을 바라보며 다시 다가간 후에, 왼쪽 돌계단을 올라서 발코니로 올라가본다.
당시 밴더빌트가는 뉴욕 5번가에 여러 채의 저택을 가지고 있어서, 여름철에만 이 곳에 와서 잠시 지내다가 돌아갔는데, 이러한 여름별장을 '작은 오두막'이라는 뜻의 영단어인 '코티지(cottage)'라 불렀다 한다. "이번 여름은 시골의 작은 오두막에서 지낼까 합니다... 참, 겸손도 하셔라~"
잔디밭을 따라 조금 걷다가 뒤돌아 보니, 집주인께서 나와 손을 흔들고 계셨다.^^ 가로질러 절벽까지 걸어가보고 싶었지만, 잔디밭이 너무 넒어서 걷다가 포기하고 뒤돌아 와야했다.
건물의 남서쪽 면은 특이하게 넝쿨이 올라간 원형의 테라스가 만들어져 있고, 그 앞으로는 꽃으로 잔디밭에 문양이 만들어져 있었다.
어떤 포즈로 찍어야 뒷배경의 집과 좀 어울리게 보일까 고민을 많이 한 사진이다...ㅎㅎ
그렇게 1시간 정도만에 셀프투어를 모두 마치고 정문으로 나가다가 마지막으로 뒤돌아 본 모습이다. 참고로 저 집을 지은 사람의 막내 동생인 George Washington Vanderbilt II가 노스캐롤라이나 애쉬빌(Asheville)에, 방이 250개나 되는 진짜 성같은 맨션과 함께 주변으로 포도밭과 사냥터까지 만들어 놓은 곳이, 바로 작년 대륙횡단 때 잠깐 비지터센터만 방문을 했던 빌트모어 에스테이트(Biltmore Estate)로 여기를 클릭해서 여행기의 뒷부분을 보시면 된다.
세계 테니스 명예의 전당(International Tennis Hall of Fame)이 있다는 뉴포트 시내도 럭셔리하고, 애퀴드넥 섬의 서쪽끝에 있는 캐슬힐 등대(Castle Hill Lighthouse)도 유명하다지만, 갈 길이 먼 우리는 다리를 건너 육지로 돌아가 95번 고속도로를 타고 저녁에 집에 도착해서 전체 3박4일 여행을 마쳤다. 글을 맺기 전에 길디드에이지(Gilded Age) 역사의 '알쓸미잡' 하나만 마지막으로 알려드리면, 도금시대의 이런 벼락부자들을 '강도 귀족(Robber Baron, 도적 남작)'이라고 비꼬아 부르는 표현이 있다. 그들 중에서 대표적 4인방이 바로 밴더빌트, 록펠러, 카네기, 그리고 JP모건인데... 지금은 모두 우수한 대학교와 기업의 이름으로, 존경받는 자선사업가와 재단의 이름으로만 기억되는 것을 보면, 역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내슈빌(Nashville, 내쉬빌)은 미국 남부 테네시(Tennessee) 주의 최대 도시이자 주도로, 미시시피 강의 지류인 컴벌랜드 강(Cumberland River) 유역에 1700년대부터 백인들이 정착해서 만들어진 도시이다. 1800년대 중반부터 20개가 넘는 많은 대학들이 생겨서 일찌기 '남부의 아테네(Athens of the South)'라고 불렸으며, 바이블벨트(Bible Belt)의 중심도시로 남침례회 및 연합감리회 등의 본부가 있어서 '개신교의 바티칸(The Protestant Vatican)'으로 통한다. 무엇보다도 미국 백인들 고유의 음악이라 할 수 있는 컨트리 음악(County Music)의 본고장이라서 '미국의 음악도시(Music City, USA)'라는 별명으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LA에서 DC로 떠난 대륙횡단 여행 겸 이사의 5일째, 그 많은 별명을 가진 내슈빌에 도착해서 첫번째로 찾아간 곳은 파란 잔디밭이 펼쳐진 밴더빌트 대학교의 교정이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밴더빌트 대학교(Vanderbilt University)는 1873년에 처음 세워졌는데, 당시 미국의 선박왕 및 철도왕으로 최대 부호였던 Cornelius Vanderbilt가 1백만불을 기증해서 1877년에 그의 이름으로 대학명이 바뀌었다.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듀크(Duke), 텍사스 주의 라이스(Rice)와 함께 남부를 대표하는 명문 대학이며, 전국적으로도 북동부의 아이비리그에 버금가는 최상위권의 사립대학교이다. 밴더빌트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가문중의 하나인데, 교정을 바라보고 있는 동상은 코닐리우스의 4대손인 Harold Stirling Vanderbilt이고, CNN의 앵커로 유명한 앤더슨 쿠퍼(Anderson Cooper)의 어머니가 밴더빌트 가문의 5대손이다.
대학교 안의 숲이 굉장히 자연스럽고 울창했는데, 캠퍼스 전체가 수목원으로 지정이 되어있다고 한다.
군데군데 보이는 미술작품들 중의 하나로, 왠지 뫼비우스의 띠같이 꼬여버린 인생을 표현한 작품이 아닐까 하는...^^
자전거를 타는(훔치려는?) 학생에게 대학 정문이 어느쪽인지 물어봤다. "저 여기 학생 아닌데요~ 관광객인데..."
정문 옆에 세워져 있는 타워의 모습인데, 빨간 벽돌과 주황색 돌을 불규칙하게 섞어서 외벽을 장식한 모습이 특이했다.
명문 사립대학교답게 방학도 아닌 학기중 평일이었는데도, 많은 관광객들과 견학생들이 찾아오는지 재학생이 진행하는 학교 투어가 정문앞 잔디밭에서 막 시작되고 있었다. 우리도 따라다녀볼까 잠시 생각을 했지만 점심 약속이 있어서 다시 왔던 길로 돌아서야 했다.
10월이었지만 다양한 색깔의 꽃들이 핀 덤불 너머로 대학교에 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건물이 보였다. 그리고 그 뒤로 살짝 보이는 도로 건너편의 식당에서 우리가 1차 대륙횡단 도중에 내슈빌을 지날 때에 꼭 만나기로 한 사람이 있었으니,
딸의 오랜 친구이자 본인 친구의 딸이기도 한, 현재 밴더빌트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유진이었다.^^ 연초에 잠시 그 집을 방문해서 얼굴을 보기도 했었지만, 이렇게 여행중에 보니까 정말 친딸을 만난 것 만큼 반가웠었다. 멕시칸 식당에서 즐겁게 점심을 함께 먹고는 오후 수업이 있다고 해서 기숙사 앞까지 함께 바래다주고는 헤어졌다.
내슈빌에서 두번째로 찾은 곳은 밴더빌트 대학교 근처에 있는 센테니얼 공원(Centennial Park)이다. 테네시 주의 연방 가입 백주년을 축하하는 엑스포가 1897년에 열렸던 장소인데, 동상 뒤로 멀리 보이는 저 노란색 건물을 보러 온 것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당시 '남부의 아테네'라는 별명에 걸맞게, 엑스포 행사의 중심 건물로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을 실물 크기로 만들었는데, 행사가 끝난 후에 다른 임시건물들은 모두 철거가 되었지만 인기있는 볼거리였던 신전은 계속 남았다. 하지만 신전도 역시 임시로 외관만 만들었기 때문에 붕괴 위험이 있어서, 1920년대에 지금 보이는 파르테논(Parthenon) 신전을 철근과 콘크리트로 다시 만들었다고 한다.
저기 '가짜'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 아래에서 손을 흔드는 아내는, 옛날에 진짜 파르테논 신전에도 가보신 적이 있단다.
신전의 입구 옆에서 색소폰을 연주하던 분인데, 클릭해서 소리와 함께 파르테논 신전의 앞모습을 유튜브에서 보실 수 있다.
파르테논 신전 콘크리트 기둥에 기대서서...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여기는 진짜 그리스 아테네처럼 대리석을 깍아서 기둥과 건물을 만든 것이 아니라, 철근에 콘크리트를 부어서 기둥을 만든 것으로 표면을 자세히 보면,
이렇게 굵은 노란 돌들이 콘크리트 모래에 박혀있어서 질감과 색깔이 상당히 특이한 느낌이었다.
공원 잔디밭 너머로 조금 전에 대학교 정문 옆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외관의 빌딩이 높이 솟아있었다. 무슨 건물인지 궁금해서 찾아보니까 밴더빌트 대학교에서 오래된 아파트 스타일의 기숙사 건물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최신 기숙사를 새로 만들면서 저 고딕양식 20층 건물인 West End Tower를 새로 건설한 것이었다.
현재 이 짝퉁 파르테논 신전의 내부는 19~20세기의 미국회화를 전시하는 미술관으로 이용되고 있지만, 그림들보다도 건물 중앙에 서있는 13 m 높이의 '전쟁의 여신' 아테나(Athena)의 동상으로 유명한데, 아래 위키피디아에서 가져온 사진과 같이 3.6 kg의 금박이 입혀져 있단다.
철저한 고증을 거쳐서 만들었다고 하지만, 얼굴이 약간 좀... 참, 동상 아래에 서있는 사람은 위기주부가 아니니까 오해 없으시기를 바란다. 우리는 시간도 없고 입장료도 $10 있다고 해서 들어가서 직접 보지는 않았다.
주차한 곳으로 돌아가는 길에 테네시 주에서 세워놓은 역사 안내판이 보였는데, 이 공원이 있는 언덕에 연방정부 차원의 요새가 있었다는 내용이다. 다시 차에 올라서는 일단 시내 중심가쪽으로 운전을 해서 가보기로 했다.
좌우로 통기타가 그려진 네온사인이 가득한 내슈빌 브로드웨이의 모습이다. 여기서 바로 오른쪽에 컨트리뮤직 명예의 전당 및 박물관(Country Music Hall of Fame and Museum)이 있고, 왼편으로는 테네시 주청사(Tennessee State Capitol)가 있다. 컨트리 음악 가수는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와 컨츄리꼬꼬 밖에는 모르지만, 그래도 모두 그냥 지나친 것이 지금 생각해보니 약간 아쉽기도 하다~
브로드웨이가 끝나는 곳에 높은음자리를 형상화한 듯한 조형물과 깃발들이 서있는 아래로, 오크통이 놓여진 노란 차에 사람들이 가득 앉아있는 것이 작게 보인다. 내슈빌의 명물이라는 페달태번(Pedal Tavern)으로 여러명이 함께 페달을 돌려서 시내를 돌아다니며 술을 마시는 '이동식 술집'이란다! 이제 우리는 여기서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불에 그을린 오크통에서 숙성하는 것으로 유명한 '테네시 위스키'의 고향을 찾아간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