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펑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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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시즈 Species (1995)
DNA 합성 생물을 만드는 청사진을 외계에서 보낸 이유를 알 수 없다. 실험으로 태어난 합성 생물 '실'의 정확한 습성과 '실'을 만든 과학자들의 목적 역시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는다. 영화는 그런 것들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실험실에서 탈출한 실은 빵조각을 흘리듯이 달아나고 과학자들은 추격한다. 느슨한 추격전의 형태를 한 것이 이 영화의 근본적인 구조. 게다가 그 과학자들이란 사람들은 총을 쏘질 않나, 무리 중엔 심지어 초능력자도 섞여 있다. 수상하지만 적당히 넘어갈 수 있는 설정들은 이 영화가 50년대 SF의 "쿨함" 역시 근원으로 삼고 있음을 암시한다. 실은 어린 아이의 모습인 채로 자라다가 고치를 깨고 나타샤 헨스트리지로 변태한다. 어째서 인간의 모습을 처음 갖추는 순간이 아닌, 성체가 될 때

리포 맨 Repo Men (2010)
영화에서 언급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 이론은 영화 속 시민들의 삶을 절묘하게 함축한다. 인공장기가 생필품처럼 소비되는 세상. 그러나 그 수요에도 불구하고 만만찮은 가격으로 인해 대금을 완납하지 못하면 강제로 회수되는, 즉 돈이 없으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세계관인 것이다. 인공장기를 달고 사는 시민들은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삶과 죽음이 중첩되어 있는 채로 살아간다. 그리고 고양이가 담긴 박스를 여는 것은 '리포 맨', 바로 회수업자들인 셈이다. 빌린 돈이 결국 내 돈이 아니듯, 고리로 대여한 인공장기의 삶은 결국 자신의 목숨이 아니다. 살고 죽음을 스스로 결정하거나 통제하지 못하는 삶이라는 부분에서는 미국 의료제도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을 읽을 수 있다. 목숨줄을 쥔 자들이 실세를 쥐는 디스토피아에

여섯번째 날 The 6th Day (2000)
사실 영화의 논쟁 자체는 해묵은 것이다. 과학 기술의 발전에 있어 "철학의 부재"가 불러올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한 것 말이다. 영화의 세계관은 복제 인간 기술이 이미 완성된 근미래. 마치 복사기 돌리듯이 클론을 뚝딱 찍어낼 수 있는 판타지의 영역에서 이야기는 진행된다. (이 부분은 마이클 키튼 주연의 [멀티플리시티]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 영화는 코미디인데!) 쟁점은 그것을 합법의 영역, 즉 양지로 끌어낼 수 있느냐에 대한 여부인데, 재미있는 점은 영화의 악당인 자본가나 과학자를 단순한 악인으로 묘사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세계관 자체에 이미 어느 정도는 생명에 대한 철학과 윤리의 수준이 바닥에 도달했음을 묘사하는 부분이다. 그것은 어린 아이들의 세상을 통해서 드러난다. 사람처럼 생긴 데다가 심

에일리언 4 Alien: Resurrection (1997)
리플리는 죽어서도 다시 돌아온다. 전편에서 인류 구원의 대의를 안고 용광로 속으로 거룩하게 다이빙 했던 리플리는 그를 착취하려는 세력들에 의해 복제된 신체라는 가짜 그릇에 안배되어 부활한다. 마치 왜곡된 도그마의 앞잡이로 내세워지는 현대 종교의 거짓 메시아처럼 말이다. 부제인 "재림(Resurrection)"은 아이러니하다. 리플리는 자신을 되살리기 위해 제작됐던 실패작들의 고통 또한 목도한다. 연민과 혐오로 복잡하게 뒤엉킨 감정을 드러내며 그들을 모두 불태운 리플리는 급기야 자신의 몸에서 자라 태어난 뉴본 에일리언을 만난다. 괴물을 닮은 인간 어미, 인간을 닮은 괴물 아이. 시리즈 2편에서의 불굴의 모성애는 이 영화에서 그렇게 괴물처럼 뒤틀린 형태로 반복된다. 영화의 중심이 되는 "관계성"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