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살았던 남부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의 겨울은 가까운 언덕을 하이킹 하기에 딱 좋은 기온에다가, 마음먹고 1시간 거리의 높은 뒷산에 가면 의외로 겨우내내 눈구경도 할 수 있었던게 떠오른다~ 그에 비하면 지금 여기 북부 버지니아의 겨울은... 주변 강가는 쓸데없이 춥기만 하고, 제대로 눈 덮인 산을 걸으려면 내륙쪽으로 2시간 정도는 운전해서 가야한다. 그래서 12월이 하이킹을 하기에 썩 좋은 시기는 아니지만, 제대로 운동을 한지도 오래되었고 잡다한 생각들도 정리할 겸해서 집을 나섰다.
한국분들에게는 '버지니아 학군 좋은 곳'으로 유명한 페어팩스 카운티의 매클레인(Mclean)을 올해 7월 하이킹 포스팅에서 잠깐 소개했었는데, 여기 포토맥 강변의 터키런 공원(Turkey Run Park)도 그 지역에 속한다. 주차장에서 바로 강쪽으로 내려가는 길도 있지만, 공원의 이름인 '칠면조 개울'을 먼저 찾아가는 루프 트레일로 방향을 잡았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가이아GPS에 기록된 하늘색 선이 하이킹 코스로, 제일 왼쪽 TH에 주차하고 시계방향으로 약 1시간에 4.5km를 걸었다. 그런데 경로를 지도 위쪽에 작게 나오도록 한 이유는, 아래쪽에 넓은 주차장으로 둘러싸인 짙은 회색의 큰 건물이 위치하고 있는 것을 보여드리기 위해서다. 진출입을 위한 전용 인터체인지까지 만들어져 있는 그 곳은 바로... 이 동네의 이름인 '랭글리(Langley)'로 통하기도 하는,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미국 중앙정보국(Central Intelligence Agency, CIA) 본부이다.
CIA가 등장하는 수 많은 작품들 중에서 명작이라 평가 받는 맷 데이먼(Matt Damon)의 <제이슨 본> 시리즈 영화에 나오는 실제 CIA 본부의 모습으로 완전히 숲속에 고립된 요새처럼 보인다. 앞서 링크한 구글 지도의 위성사진이나 남북 출입구의 스트리트뷰 정도에 만족해야지, 당신이 <미션 임파서블>의 톰 크루즈(Tom Cruise)가 아니라면, 작전 중 사망한 비밀요원을 기리는 무명의 별들이 붙어있는 Memorial Wall이나 암호로 된 조각인 Kryptos 등을 직접 방문해서 보는 것은 불가하므로 꿈 깨시기를...^^
다시 재미없는 하이킹 이야기로 돌아와서, 위의 지도에 GWMP라 표시되어 있는 굵은 주황색의 조지워싱턴 기념도로(George Washington Memorial Parkway)가 고가로 지나가는 칠면조 개울(Turkey Run)까지 걸어왔다.
개울을 건너다 이 날 하이킹 중에 유일하게 마주친 분들로, 위기주부가 출발한 공원 주차장이 아니라 계속해서 남쪽 상류로 거슬러 올라갔다. "혹시 인적이 드문 숲을 가로질러 CIA 본부에 침투하려는 스파이...? ㅎㅎ"
하류쪽으로 조금 내려와서 사진 왼편의 나무 계단과 징검다리로 다시 개울을 건너야 강가로 연결된다. 참고로 표지판에 씌여진 서쪽 1마일 거리에 있다는 American Legion Bridge는 캐피탈 벨트웨이 495번 고속도로가 지나는 왕복 10차선의 콘크리트 교량을 말한다.
포토맥 강(Potomac River)이 DC로 흘러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강폭이 넓어지는 구간이지만, 바위가 많고 물살이 세기 때문에 옛날 뱃길은 강건너 메릴랜드 주에 따로 운하로 만들어져 있는데, 여기를 클릭해서 방문기를 보실 수 있다.
처음 주차장에서 여기 강가로 바로 내려오는 길은 경사가 급해서, 이렇게 긴 나무 계단으로 잘 만들어져 있었다. 물론 위기주부는 이리로 주차장에 바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강물이 흘러가는 방향과 나란한 포토맥 헤리티지 트레일(Potomac Heritage Trail)을 걷기로 했는데, 문제는 구글맵에 강을 따라가는 트레일은 없다고 되어 있는 것이었다!
예전에 LA에서 구글맵에는 표시가 없고, 가이아GPS에만 있는 트레일로 갔다가 고생을 했던 적이 있어서 처음에 살짝 긴장했지만, 다행히 이렇게 하늘색 직사각형의 PHT 표식과 함께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었다. 물론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아서 길이 좁고 강물과 가까운데다, 낙엽까지 수북히 쌓여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했고, 가끔 나무 뿌리와 바위로 길이 거의 끊기다시피한 곳도 몇 번 있었다. 그렇게 조심해서 강을 따라 25분 정도 걸으니까 앞쪽에서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몇일 전에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폭포라 불러도 될만한 급류를 또 건너야 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따로 이름은 없는 개울인 듯 하다.
그리고는 뜬금없이 높은 정사각형 기둥 구조물이 나와서 좀 의아했는데, 홍수때 포토맥 강의 수위를 측정하는 River Flood Gauge란다. 계속 저 PHT를 따라 7마일을 더 걸으면 얼마전에 소개한 루즈벨트 섬(Theodore Roosevelt Island)이 나오지만, 종주가 목적이 아니므로 이제 언덕으로 방향을 틀었다.
여기서 다시 그 이름없는 개울을 건너야 했는데, 의외로 얕은 이 곳이 신발을 안 적시고 건너기에 가장 힘들었다. 이렇게 전체 트레일이 4번이나 개울을 건너고 강물과도 딱 붙어있어서, 비가 많이 온 직후에 물이 불어났을 때는 피하는 것이 좋을 듯 했다.
터키런파크에서 마운트버넌(Mount Vernon)까지 약 40km의 국가공원도로가 조지워싱턴 메모리얼파크웨이(George Washington Memorial Parkway)인데, 주변으로 산재한 약 30곳의 공원과 기념물들을 도로교통과 함께 관리하는 국립공원청의 그룹 본부가 이 곳에 위치해 있다.
공식적으로는 비지터센터가 아니고 공무원들이 일을 하는 건물이기는 하지만, 입구에 많은 브로셔와 함께 이렇게 Passport Stamp를 찍을 수 있는 책상이 마련되어 있는데, 가운데 작은 박스 위에 놓여진 스탬프가 6개나 된다! 공원도로 자체를 포함해 총 6곳의 NPS Official Unit을 여기서 관리하기 때문에, 한번에 도장 6개를 찍을 수 있는 '일타육피(一打六皮)'의 명당이다~^^ 위기주부는 이 그룹의 오피셜 유닛 6개 중에서 중요한 1개를 아직 못 가봤는데, 미국 전체 428개 중에는 몇 개를 방문했는지 궁금하시면 여기를 클릭하면 된다.
그렇게 1시간여의 하이킹을 마치고 넓은 주차장으로 돌아왔는데, 네비게이션을 찍어보니 여기서 집으로 돌아가는 거리보다 워싱턴DC를 가는게 더 가까웠다. 그래서, 이왕 나온 김에 DC 남쪽의 외딴 곳에 있어서 아내와는 절대 함께 갈 일이 없을 듯한 '별볼일 없는' 국립사적지를 목적지에 입력하고 다시 출발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DC 안에 국립공원청이 관리하는 독립적인 기념물(Memorial)이 있는 역대 대통령은 현재 7명뿐인데, 그 동안 위기주부가 방문해서 소개한 곳은 재임 순서대로 워싱턴, 제퍼슨, 링컨, FDR, 아이젠하워 5명이었다. 사실 남은 두 곳을 '우리 동네 별볼일 없는 국립 공원들'에 포함시키기에는 두 대통령에게 미안하지만, 지난 8월에 그 시리즈를 진행하며 진짜 별볼일 없던 스미소니언 박물관을 먼저 구경한 후에, 포토맥 강을 건너서 찾아갔던 나머지 2곳의 대통령 기념물들 중에 하나를 이제 소개한다.
구글이 알려준 강변의 작은 주차장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바로 남쪽에 있는 펜타곤(The Pentagon), 즉 유명한 미국 국방부 청사이다. 펜타곤은 기회가 되면 다른 글에서 자세히 소개하도록 하고, 뒤를 돌아 산책로를 따라 강가쪽으로 계단을 내려가 보자~
돌담 위쪽이 주차장으로 거기 붙은 명판에 국립공원청의 로고와 함께 린든베인스존슨 메모리얼그로브 온더포토맥(Lyndon Baines Johnson Memorial Grove on the Potomac)이라 적혀있다. 굳이 번역하자면 "린든 B. 존슨을 추모하는 포토맥의 숲" 정도로, 공원 홈페이지에도 이름의 이니셜만 따서 'LBJ'로 줄여서 적혀있는 제36대 존슨 대통령을 기념하는 국립 공원이다.
입구에 두 개의 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특이하게 오른편은 영부인의 '업적'을 따로 소개하고 있다. '레이디버드(Lady Bird)'라는 애칭의 그녀는 이 블로그에도 남편보다 먼저 따로 등장하셨는데, 여기를 클릭해서 2년전 캘리포니아 레드우드 국립공원 여행기를 보시면 된다! 여기서 존슨 대통령이 언제 재임한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아래 흑백사진 하나를 가져와 설명드린다.
1963년 11월 22일 케네디 대통령이 텍사스에서 암살된 후에, 그의 시신을 싣고 워싱턴으로 돌아가는 에어포스원 안에서, 부통령이었던 린든 B. 존슨(Lyndon Baines Johnson)이 취임선서를 하는 모습이다. 오른쪽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있는 재클린 케네디의 옷에는 아직도 죽은 남편의 피가 묻어 있었고, 존슨의 아내가 왼편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존슨은 케네디의 남은 14개월 임기를 승계한 후에, 1964년 대선에서 압도적 득표로 이겨서 1969년 1월 20일까지 재임한다. (승계 임기가 2년 미만이라서 재출마가 가능했지만, 건강 문제 등으로 당내 경선중 포기)
안내판의 흑백사진은 1964년에 마틴루터킹과 백악관에 앉아있는 모습으로, 그 해 제정된 민권법(Civil Right Act)은 그의 최대 업적 중 하나이다. 또 '위대한 사회(The Great Society)'를 제창하며 가난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공교육 재정지원과 환경보호의 기틀을 다졌고, 노령층과 빈곤층을 위한 의료보험 제도를 시작했다. 지금 서있는 곳은 버지니아 주이고, 나무 다리를 건너서 포토맥 강에 떠있는 컬럼비아 섬(Columbia Island)부터 DC에 포함된다. 사진에 낮게 떠있는 여객기는 바로 남쪽의 레이건 국립공항(Ronald Reagan Washington National Airport)에 착륙하는 중으로, 그 공항 부지는 의외로 워싱턴DC가 아니라 버지니아 주에 속한다.
섬으로 들어오면 나무와 잔디 말고는 아무 것도 없는 그냥 숲이지만, 바닥에 자연석을 아주 잘 깔아놓은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평범한 공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 쯤에 나무들 사이로 눈에 띄는 바위가 하나 나타난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원래 이 곳은 도로 건설을 위해 포토맥 강을 준설한 흙을 쌓아서 만든 인공섬에 가까워 수풀만 가득한 뻘밭으로 방치되고 있었는데, 영부인이 주도한 도시미화 운동에 따라서 백만송이의 수선화와 3천그루의 나무를 심어서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되었단다. 그래서 퇴임 직전인 1968년 11월에 섬 전체가 레이디버드 존슨 공원(Lady Bird Johnson Park)으로 지정이 되었고, 1973년에 존슨 대통령이 사망하자 그의 기념물을 이 곳에 만들기로 한 것이다.
산책로와 이어진 원형 광장에 존슨의 고향인 텍사스에서 가져온 아무 글씨나 조각도 없는 화강암 덩어리가 서있고, 작은 잔디밭 주위로 그의 어록이 적힌 석판 몇 개가 전부인 제36대 미국 대통령의 국가 기념물이다.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텍사스 출신의 민주당 대통령!)
부부가 좋아했다는 여기서 보이는 수도의 풍경을 왼쪽부터 살펴보면... 이 섬을 거쳐서 국립묘지 정문과 연결되는 알링턴 추모교(Arlington Memorial Bridge), 링컨 기념관, 하얀색 Cintas 밴과 가로등(^^), 그리고 워싱턴 기념비로 아주 평평하고 단순하다~
거대한 인공적 건물이나 동상이 전혀 없는 대통령 기념물은 아마 이 곳이 유일할 듯도 싶은데, 아내 이름의 공원 안에 만들어진 작은 숲(grove)이 거의 전부인 이러한 살아있는 추모공간을 '리빙메모리얼(Living Memorial)'로 표현을 한다.
섬에 다른 볼거리가 하나 더 있어서 남쪽으로 걸어가니, 식당 건물과 요트 선착장이 있는 Columbia Island Marina가 나왔다. 생일 파티를 하는 듯한 사람들이 모여서 배구를 즐기고 있고, 그 뒤로 요트들이 떠있는 곳은 펜타곤 라군(Pentagon Lagoon)이라 불리는 오목한 만이다.
산책로는 강변도로인 조지워싱턴 기념도로(George Washington Memorial Parkway)의 아래로 만들어진 터널을 통과해 본류쪽으로 나간다. 참고로 앞서 소개한 LBJ 기념물은 국립공원청의 독립적인 Official Unit이기는 하지만, 이 도로 주변으로 산재한 다른 약 30곳과 함께 GWMP 그룹으로 관리가 되고 있다.
보행 터널을 빠져 나오니까 작은 언덕 위로 은색 조각과 빨간 꽃밭이 보였다. 빗방울이 좀 많이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만들어진 산책로를 따라 빙 돌아서 가까이 가보았다.
해군/상선 기념비(Navy - Merchant Marine Memorial)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돌아온 해군들이 주축으로 건립이 추진되어, 여러 난관 끝에 1939년에 이 자리에 완공되었다. 하지만 꼭 당시 전쟁에서 죽은 해군이나 해병대원들만을 기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나라를 위해 배를 타다가 폭풍우에 의한 조난이나 다른 모든 해양사고로 숨진 사람들도 모두 포함해서 추모하는 의미라고 한다.
거친 파도 위를 나는 갈매기들을 조각해서 "Waves and Gulls"라 불리기도 하는데, 도합 7마리의 갈매기는 7대양을 상징한단다. 무엇보다 동상이 은색으로 보이는 이유는 알루미늄으로 만들었기 때문인데, 야외에 설치된 대형 조각으로는 미국에서 최초라 한다.
대서양으로 흘러가는 포토맥 강을 따라서 유람선(수상버스?) 한 대가 지나가고, 앞서 전경 사진에서는 보여드리지 못한 오른편에 둥근 지붕은 제퍼슨 기념관이다. 이렇게 컬럼비아 섬에 있는 6번째 DC의 대통령 기념물과 다른 기념비를 둘러봤고, 바로 이어서 강의 상류쪽으로 이동해, 역시 또 섬에 만들어져 있는 마지막 7번째 프레지던트 메모리얼을 찾아간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