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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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효고현 히메지 / 히메지 성 #12) 백색의 회벽이 발라진 백로의 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빛나는 일본 최고의 성 姫路城 Himeji Castle

(일본 효고현 히메지 / 히메지 성 #12) 백색의 회벽이 발라진 백로의 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빛나는 일본 최고의 성 姫路城 Himeji Castle

성벽의 표면이 마치 칼로 자른 케이크처럼 매끈합니다. 일본의 성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인데요.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일본식 성벽을 볼 수 있는 곳이 몇 곳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임진왜란 시기에 왜군들이 만든 왜성들이 있기 때문에 그곳은 여권이 없어도 여러분들이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습니다. 사진 왼쪽에 사람들이 유심히 쳐다보고 있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보고 있으니 저도 저게 뭔지 궁금해지는데요. 가까이 가서 정체를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고개를 숙여서 보고 있는 것을 보니 아마 물이 담긴 우물이 아닐까 싶어요. 역시 그렇군요. 우물입니다. 적들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 성이.......

[향토문화] 1940년대초 설치..창흥동 두레박물통(우물)

[향토문화] 1940년대초 설치..창흥동 두레박물통(우물)

[향토문화] 1940년대초 설치..창흥동 두레박물통(우물) https://www.newsje.com/news/articleView.html?idxno=296825 하도리에는 7개의 자연마을마다 우물이 있는데 모두 두레박물통이라 부른다. 하도리 창흥동 두레박물통(우물) 위치 ; 구좌읍 하도리 880-4번지(도로 및 공유지) 하도리 880-7번지의 동쪽 시대 ; 1940년대초 유형 ; 수리시설 하도리 창흥동에서는 해안에 있는 펄갯물윗물과 알물, 서느렁물, 탕탕물 등의 湧泉水를 식수와 생활용수로 이용하였지만, 1940년대초에 이 우물을 설치하였다. 두레박으로 퍼내는 물이라서 속칭 두레박물통이라 했다. 하도리에는 7개의 자연마을마다 우물이 있는데 모두 두레박물통이라 부른다. 현.......

서울 연희동 ”장희빈 우물터“

소인배(小人輩).com|2023년 7월 9일

서울 연희동 ”장희빈 우물터“ 서울 연희동에는 구전으로 전해지는 장희빈 우물터가 있다. 연희삼거리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이동하면 우물터를 찾을 수 있는데, 이곳이 바로 ”장희빈 우물터“로 전해지는 곳이다. ”구전으로 전해지는 장희빈 우물터“ 장희빈 우물터 일대는 예로부터 연희궁 앞이라 하여 궁뜰이라고 불렸고, 궁동, 궁말, 대궐재, 장희빈 우물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또한, 마을 앞의 느티나무가 정자와 같다고 하여 정자말, 정잣말, 정자동이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근처의 궁동 근린공원 아래에는 조선 후기 숙종의 총애를 받던 장희빈의 친정집으로 알려진 오래된 집이 있었고, 그 동쪽 아래에는 장희빈이 사용했다고 알려진 우물이 있었으며, 그 옆에는 500년가량 된 느티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는 우물터만 남아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장희빈 우물의 유래“ 장희빈 우물터 일대는 조선시대 초부터 이궁인 연희궁이 있어 예로부터 이곳은 공말, 궁들, 대결재와 양실 최초의 풍받을 얻어 서장실, 장희빈 우물이란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다. 최초의 이궁은 정종 3년(1400), 정중이 아우인 태종에게 왕위를 선위 후 이 곳을 피궁으로 사용하여 세종 7년(1425) 8월 연희궁이라 칭하게 되었으며, 이에 궁실관리들과 궁녀들의 사가가 있어 궁말 여러 곳에 우물들이 있었다고 하나 오늘날까지 그 명맥을 간직하고 있는 샘이 바로 "장희빈 우물"이다. 그 후 숙종(1674~1720) 때 폐비된 인현왕후를 뒤 이은 희빈장 씨가 폐서인의 몸으로 이곳 사가에 잠시 머물 때 마셨던 우물로 전해지고 있으나 기름의 고증이나 검증된 바는 없다. 그러나 연희동에서 오래전부터 구전으로 “이 우물은 장희빈이 마신 물"이라고 옛 어른들이 대대로 가꾸어 오고 있어 우리동 보물찾기 사업으로 선정하여 복원하게 되었다. “숙종의 빈, 경종의 어머니 장희빈“ 장희빈은 숙종의 빈이며, 경종의 어머니이다. 숙종보다는 2년 연상으로 본명은 장옥정으로 전해지며, 조선 왕조 역사상 유일하게 궁녀 출신으로 왕비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여인이다. 1688년 소의로 있을 때, 왕자 윤(뒤의 경종)을 낳았고, 다음 해 1월 윤이 원자로 봉해지면서 희빈에 오르게 되었다. 그 해 7월 인현왕후 민 씨가 폐위되고, 1690년 윤이 세자로 책봉되면서 왕비로 책립 되었다. 이후 1694년 4월 민비가 복위됨에 따라 다시 희빈으로 강등되었고 오빠 정희재와 함께 복위를 도모했으나 무산되었다. 1701년 민비가 병으로 죽자, 궁인, 무녀 등과 함께 민비를 무고했다는 서인의 탄핵을 받고 사사되었으며, 숙종은 이후 빈을 비로 승격하는 것을 법으로 금했다. ”연희동의 장희빈 우물터“ 연희동의 한적한 동네에서 찾을 수 있는 장희빈 우물터는 잘 복원되어 유지가 되어 오고 있다. 하지만, 방문했던 날에는 우물의 뚜껑이 닫혀 있어서 내부를 볼 수는 없었다. 세월이 흘러서, 이제는 연희궁을 근처에서 찾을 수는 없지만, 장희빈의 추억을 담고 있는 우물터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서울 연희동, 장희빈 우물“ 주소 : 서울 서대문고 연희로 15길 74

서울 연희동 ”장희빈 우물터“

소인배(小人輩).com|2023년 7월 9일

서울 연희동 ”장희빈 우물터“ 서울 연희동에는 구전으로 전해지는 장희빈 우물터가 있다. 연희삼거리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이동하면 우물터를 찾을 수 있는데, 이곳이 바로 ”장희빈 우물터“로 전해지는 곳이다. ”구전으로 전해지는 장희빈 우물터“ 장희빈 우물터 일대는 예로부터 연희궁 앞이라 하여 궁뜰이라고 불렸고, 궁동, 궁말, 대궐재, 장희빈 우물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또한, 마을 앞의 느티나무가 정자와 같다고 하여 정자말, 정잣말, 정자동이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근처의 궁동 근린공원 아래에는 조선 후기 숙종의 총애를 받던 장희빈의 친정집으로 알려진 오래된 집이 있었고, 그 동쪽 아래에는 장희빈이 사용했다고 알려진 우물이 있었으며, 그 옆에는 500년가량 된 느티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는 우물터만 남아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장희빈 우물의 유래“ 장희빈 우물터 일대는 조선시대 초부터 이궁인 연희궁이 있어 예로부터 이곳은 공말, 궁들, 대결재와 양실 최초의 풍받을 얻어 서장실, 장희빈 우물이란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다. 최초의 이궁은 정종 3년(1400), 정중이 아우인 태종에게 왕위를 선위 후 이 곳을 피궁으로 사용하여 세종 7년(1425) 8월 연희궁이라 칭하게 되었으며, 이에 궁실관리들과 궁녀들의 사가가 있어 궁말 여러 곳에 우물들이 있었다고 하나 오늘날까지 그 명맥을 간직하고 있는 샘이 바로 "장희빈 우물"이다. 그 후 숙종(1674~1720) 때 폐비된 인현왕후를 뒤 이은 희빈장 씨가 폐서인의 몸으로 이곳 사가에 잠시 머물 때 마셨던 우물로 전해지고 있으나 기름의 고증이나 검증된 바는 없다. 그러나 연희동에서 오래전부터 구전으로 “이 우물은 장희빈이 마신 물"이라고 옛 어른들이 대대로 가꾸어 오고 있어 우리동 보물찾기 사업으로 선정하여 복원하게 되었다. “숙종의 빈, 경종의 어머니 장희빈“ 장희빈은 숙종의 빈이며, 경종의 어머니이다. 숙종보다는 2년 연상으로 본명은 장옥정으로 전해지며, 조선 왕조 역사상 유일하게 궁녀 출신으로 왕비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여인이다. 1688년 소의로 있을 때, 왕자 윤(뒤의 경종)을 낳았고, 다음 해 1월 윤이 원자로 봉해지면서 희빈에 오르게 되었다. 그 해 7월 인현왕후 민 씨가 폐위되고, 1690년 윤이 세자로 책봉되면서 왕비로 책립 되었다. 이후 1694년 4월 민비가 복위됨에 따라 다시 희빈으로 강등되었고 오빠 정희재와 함께 복위를 도모했으나 무산되었다. 1701년 민비가 병으로 죽자, 궁인, 무녀 등과 함께 민비를 무고했다는 서인의 탄핵을 받고 사사되었으며, 숙종은 이후 빈을 비로 승격하는 것을 법으로 금했다. ”연희동의 장희빈 우물터“ 연희동의 한적한 동네에서 찾을 수 있는 장희빈 우물터는 잘 복원되어 유지가 되어 오고 있다. 하지만, 방문했던 날에는 우물의 뚜껑이 닫혀 있어서 내부를 볼 수는 없었다. 세월이 흘러서, 이제는 연희궁을 근처에서 찾을 수는 없지만, 장희빈의 추억을 담고 있는 우물터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서울 연희동, 장희빈 우물“ 주소 : 서울 서대문고 연희로 15길 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