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미국 국립공원청이 직접 독립적인 공원으로 관리하는 내셔널 메모리얼(National Memorial)은 31개인데, 대부분이 전직 대통령 등의 역사적인 위인을 기리는 곳이거나 또는 여러 전쟁을 기념하는 장소이다. 그 외에 재난이나 사고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곳이 딱 4개가 있는데, 특이하게 그 중 2개가 펜실베이니아 주에 있다. 시리즈 전편에 소개했던 '플라이트93'에 바로 이어서, 이번에는 전염병이나 허리케인 등을 제외하고는 미국에서 가장 인명피해가 컸던 사건들 중의 하나가 일어났던 곳으로 가보자.
펜실베니아 주의 별볼일 없는 국립 공원들 돌아보기 당일여행의 5번째 목적지에 도착하니까, 푸른 언덕 아래로 작고 예쁜 집이 하나 보이고, 저 멀리 밑에는 작은 개울이 흘러가는 한적한 풍경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잘 만들어진 경사로를 따라가면 커다란 헛간 건물이 처음 나오는데, 그 전에 보이는 안내판의 내용을 먼저 자세히 보자~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1889년 5월 31일, 오후 3시 15분에 여기 있던 사우스포크 댐(South Fork Dam)이 무너지면서, 콘마 호(Lake Conemaugh)의 물 2천만톤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20미터가 넘는 높이의 급류가 한시간만에 하류 22 km에 위치한 존스타운 마을까지 휩쓸었는데, 이 재해로 인한 총 사망자는 2,200명 이상이었다고 한다.
봄꽃에 살짝 가린 국립공원청 로고가 보이는 존스타운 홍수 국립기념지(Johnstown Flood National Memorial)의 비지터센터로 들어가면, 제일 먼저 눈길을 확 사로잡는 전시가 있다.
그것은 바로 벽을 뚫고 들어온 거대한 나무뿌리와 철도차량, 그리고 건물에 매달린 사람의 모습이다! 위기주부가 미국의 정말 많은 비지터센터를 다니며 멋진 전시들을 많이 봤지만, 이렇게 기발한 아이디어는 처음인 듯 했다.
여기 댐은 1853년 펜실베니아 주에서 운하에 안정적으로 물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었는데, 불과 4년만에 철도회사로 소유권이 넘어가서 잘 관리되지 않다가 1862년에 처음 누수가 발생해 보수가 시작된다. 애물단지가 된 댐과 호수 지역을 철강왕 카네기를 포함한 피츠버그의 재력가들이 인수해서 휴양지로 개발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도로를 넓힌다고 댐의 높이가 낮아지고 낚시를 위해 풀어놓은 물고기들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배수로에 그물을 쳐서 그 기능을 상실하게 만드는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결국 기록적인 폭우가 내린 후에 댐은 한순간에 완전히 붕괴되는데, 심각성을 인지한 관리자가 3시간 전부터 높은 곳으로 대피하라는 전보를 세 번이나 아랫 마을로 보냈지만, 그 전에도 가끔 있던 일이라서 전보를 받은 사람들이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한다...
난간에 부착된 스피커의 빨간 버튼을 누르면, 어릴 때 존스타운에 물이 들이닥치는 것을 실제 경험한 사람의 육성이 나오는데, 문제는 끄는 버튼이 없어서 조용한 비지터센터에서 계속 그 분의 목소리를 들으며 아랫층 계단으로 내려가야 했다.
당시 떠내려온 철도 차량을 포함해 피해 상황과 복구 과정 등이 소개되어 있는데, 미국 전역은 물론 유럽에서도 많은 구호품과 물자들이 쏟아졌단다. 또 작년에 소개했던 클라라 바튼(Clara Barton)이 사람들을 이끌며 5개월 동안 머물렀는데, 미국 적십자사가 재난현장에서 대규모 구호활동을 한 최초의 사례라고 한다.
그건 그렇고 기발한 전시는 밑에서 올려다 보면 더 대단한데, 저 만한 나무를 통째로 길게 벽에 박아놓은 것은 그냥 떠오른게 아니라...
홍수의 위력을 보여주는 모습으로 가장 유명했던 이 사진의 현장을 재현한 것이다. 얼핏 봐서는 4층 건물의 3층에 나무가 박힌 것처럼 보이지만, 그게 아니라 통째로 옆으로 쓰러진 2층 집의 제일 위쪽을 부수고 들어갔다가 물이 빠지며 떨어진 것이다.
매시 15분에 상영되는 영화를 꼭 봐야한다는데, 시간이 좀 남아서 아랫층 출구로 밖으로 나왔다. 댐과 호수를 소유했던 부자들의 사교모임인 South Fork Fishing and Hunting Club의 관리자가 살았던 집을 복원한게 왼쪽이고, 가운데로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건너편에 그들의 여름별장(cottage)들과 클럽하우스가 아직도 남아있다.
그리고 바로 아래로는 아직도 뻥 뚫린 구멍이 그대로 남아있는 댐의 잔해가 보인다. 남북의 양쪽으로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어서, 걸어서 끝까지 가볼 수도 있다지만, 영화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 조금 내려가다가 뒤로 돌아섰다.
그 옛날에는 호숫가의 집이었을 텐데, 모르고 보면 그냥 참으로 평화로운 풍경이다... 다시 헛간 비지터센터까지 올라가 윗층의 극장 입구로 향하는데,
맨발로 필사적으로 매달린 마네킹에 또 눈길이 갔다. 이 곳이 1964년에 국립 공원으로 지정되며 이 전시도 만들어졌다면 60년이나 됐다는 이야기인데 그럴 것 같지는 않고, 아마도 이제 들어갈 극장과 함께 중간에 리모델링을 하면서 제작된게 아닐까 생각된다.
아주 제대로 된 극장에 관객은 위기주부와 다른 부부해서 총 3명뿐이었다. 레인저가 들어와 이제 틀어줄 35분 길이의 <Black Friday>라는 영화에 대해 잠깐 설명을 하는데,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옛날에 흑백으로 만들어졌으나 지금까지 국립공원청이 제작한 영화들 중에서 아직도 가장 유명한(?) 작품이라고 했던 것 같다. 참고로 존스타운 마을의 기념관에서 상영하며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도 있는, 1990년 아카데미 단편 다큐멘터리 상을 받은 <The Johnstown Flood>와는 다른 영화이다.
존스타운에 1892년에 만들어진 이 공동묘지에 비가 내리는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되었는데, 앞부분은 마치 히치콕 감독의 공포영화를 보는 듯 했다. 그리고는 댐이 무너지는 장면과 철도와 다리가 부서지고, 사람들이 물에 휩쓸리는 모습들까지 아주 잘 찍은 재난영화로 이어지는 명작이었다.^^ 보통 비지터센터에서 틀어주는 영화는 공원 홈페이지를 통해 볼 수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Black Friday>는 인터넷에도 전혀 없고 오직 여기 비지터센터의 극장에 직접 와야만 관람이 가능하단다.
이 사건 직후에도 존스타운 생존자들이 댐 관리부실로 상기의 클럽을 고소했지만, 결국 아무도 법적 처벌은 받지 않았고 클럽 멤버들은 조용히 자신들의 별장을 모두 처분했다고 한다. 누군가는 책임을 질 소지가 있는 이러한 재해로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한 경우에, 이를 국가적으로 추모하고 기념하는 시설을 만들기 까지는 몇 세대가 흘러야만 가능한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존스타운 홍수 국립기념지를 떠나 이 날의 마지막 목적지를 찾아가며 떠올랐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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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미국 국립공원청이 직접 독립적인 공원으로 관리하는 내셔널 메모리얼(National Memorial)은 31개인데, 대부분이 전직 대통령 등의 역사적인 위인을 기리는 곳이거나 또는 여러 전쟁을 기념하는 장소이다. 그 외에 재난이나 사고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곳이 딱 4개가 있는데, 특이하게 그 중 2개가 펜실베이니아 주에 있다. 시리즈 전편에 소개했던 '플라이트93'에 바로 이어서, 이번에는 전염병이나 허리케인 등을 제외하고는 미국에서 가장 인명피해가 컸던 사건들 중의 하나가 일어났던 곳으로 가보자.
펜실베니아 주의 별볼일 없는 국립 공원들 돌아보기 당일여행의 5번째 목적지에 도착하니까, 푸른 언덕 아래로 작고 예쁜 집이 하나 보이고, 저 멀리 밑에는 작은 개울이 흘러가는 한적한 풍경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잘 만들어진 경사로를 따라가면 커다란 헛간 건물이 처음 나오는데, 그 전에 보이는 안내판의 내용을 먼저 자세히 보자~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1889년 5월 31일, 오후 3시 15분에 여기 있던 사우스포크 댐(South Fork Dam)이 무너지면서, 콘마 호(Lake Conemaugh)의 물 2천만톤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20미터가 넘는 높이의 급류가 한시간만에 하류 22 km에 위치한 존스타운 마을까지 휩쓸었는데, 이 재해로 인한 총 사망자는 2,200명 이상이었다고 한다.
봄꽃에 살짝 가린 국립공원청 로고가 보이는 존스타운 홍수 국립기념지(Johnstown Flood National Memorial)의 비지터센터로 들어가면, 제일 먼저 눈길을 확 사로잡는 전시가 있다.
그것은 바로 벽을 뚫고 들어온 거대한 나무뿌리와 철도차량, 그리고 건물에 매달린 사람의 모습이다! 위기주부가 미국의 정말 많은 비지터센터를 다니며 멋진 전시들을 많이 봤지만, 이렇게 기발한 아이디어는 처음인 듯 했다.
여기 댐은 1853년 펜실베니아 주에서 운하에 안정적으로 물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었는데, 불과 4년만에 철도회사로 소유권이 넘어가서 잘 관리되지 않다가 1862년에 처음 누수가 발생해 보수가 시작된다. 애물단지가 된 댐과 호수 지역을 철강왕 카네기를 포함한 피츠버그의 재력가들이 인수해서 휴양지로 개발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도로를 넓힌다고 댐의 높이가 낮아지고 낚시를 위해 풀어놓은 물고기들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배수로에 그물을 쳐서 그 기능을 상실하게 만드는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결국 기록적인 폭우가 내린 후에 댐은 한순간에 완전히 붕괴되는데, 심각성을 인지한 관리자가 3시간 전부터 높은 곳으로 대피하라는 전보를 세 번이나 아랫 마을로 보냈지만, 그 전에도 가끔 있던 일이라서 전보를 받은 사람들이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한다...
난간에 부착된 스피커의 빨간 버튼을 누르면, 어릴 때 존스타운에 물이 들이닥치는 것을 실제 경험한 사람의 육성이 나오는데, 문제는 끄는 버튼이 없어서 조용한 비지터센터에서 계속 그 분의 목소리를 들으며 아랫층 계단으로 내려가야 했다.
당시 떠내려온 철도 차량을 포함해 피해 상황과 복구 과정 등이 소개되어 있는데, 미국 전역은 물론 유럽에서도 많은 구호품과 물자들이 쏟아졌단다. 또 작년에 소개했던 클라라 바튼(Clara Barton)이 사람들을 이끌며 5개월 동안 머물렀는데, 미국 적십자사가 재난현장에서 대규모 구호활동을 한 최초의 사례라고 한다.
그건 그렇고 기발한 전시는 밑에서 올려다 보면 더 대단한데, 저 만한 나무를 통째로 길게 벽에 박아놓은 것은 그냥 떠오른게 아니라...
홍수의 위력을 보여주는 모습으로 가장 유명했던 이 사진의 현장을 재현한 것이다. 얼핏 봐서는 4층 건물의 3층에 나무가 박힌 것처럼 보이지만, 그게 아니라 통째로 옆으로 쓰러진 2층 집의 제일 위쪽을 부수고 들어갔다가 물이 빠지며 떨어진 것이다.
매시 15분에 상영되는 영화를 꼭 봐야한다는데, 시간이 좀 남아서 아랫층 출구로 밖으로 나왔다. 댐과 호수를 소유했던 부자들의 사교모임인 South Fork Fishing and Hunting Club의 관리자가 살았던 집을 복원한게 왼쪽이고, 가운데로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건너편에 그들의 여름별장(cottage)들과 클럽하우스가 아직도 남아있다.
그리고 바로 아래로는 아직도 뻥 뚫린 구멍이 그대로 남아있는 댐의 잔해가 보인다. 남북의 양쪽으로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어서, 걸어서 끝까지 가볼 수도 있다지만, 영화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 조금 내려가다가 뒤로 돌아섰다.
그 옛날에는 호숫가의 집이었을 텐데, 모르고 보면 그냥 참으로 평화로운 풍경이다... 다시 헛간 비지터센터까지 올라가 윗층의 극장 입구로 향하는데,
맨발로 필사적으로 매달린 마네킹에 또 눈길이 갔다. 이 곳이 1964년에 국립 공원으로 지정되며 이 전시도 만들어졌다면 60년이나 됐다는 이야기인데 그럴 것 같지는 않고, 아마도 이제 들어갈 극장과 함께 중간에 리모델링을 하면서 제작된게 아닐까 생각된다.
아주 제대로 된 극장에 관객은 위기주부와 다른 부부해서 총 3명뿐이었다. 레인저가 들어와 이제 틀어줄 35분 길이의 <Black Friday>라는 영화에 대해 잠깐 설명을 하는데,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옛날에 흑백으로 만들어졌으나 지금까지 국립공원청이 제작한 영화들 중에서 아직도 가장 유명한(?) 작품이라고 했던 것 같다. 참고로 존스타운 마을의 기념관에서 상영하며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도 있는, 1990년 아카데미 단편 다큐멘터리 상을 받은 <The Johnstown Flood>와는 다른 영화이다.
존스타운에 1892년에 만들어진 이 공동묘지에 비가 내리는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되었는데, 앞부분은 마치 히치콕 감독의 공포영화를 보는 듯 했다. 그리고는 댐이 무너지는 장면과 철도와 다리가 부서지고, 사람들이 물에 휩쓸리는 모습들까지 아주 잘 찍은 재난영화로 이어지는 명작이었다.^^ 보통 비지터센터에서 틀어주는 영화는 공원 홈페이지를 통해 볼 수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Black Friday>는 인터넷에도 전혀 없고 오직 여기 비지터센터의 극장에 직접 와야만 관람이 가능하단다.
이 사건 직후에도 존스타운 생존자들이 댐 관리부실로 상기의 클럽을 고소했지만, 결국 아무도 법적 처벌은 받지 않았고 클럽 멤버들은 조용히 자신들의 별장을 모두 처분했다고 한다. 누군가는 책임을 질 소지가 있는 이러한 재해로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한 경우에, 이를 국가적으로 추모하고 기념하는 시설을 만들기 까지는 몇 세대가 흘러야만 가능한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존스타운 홍수 국립기념지를 떠나 이 날의 마지막 목적지를 찾아가며 떠올랐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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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에 여기 버지니아 알링턴의 펜타곤에 만들어진 9·11 테러 추모물을 소개하면서, 마지막 4번째로 납치된 여객기는 펜실베이니아 주의 외딴 벌판에 추락했다고 알려드렸었다. 그 비행기의 이야기는 2006년에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영화 <플라이트93>으로도 제작되었는데, 추락한 지역은 사고 이듬해 플라이트93 내셔널메모리얼(Flight 93 National Memorial)로 지정이 되었고, 현재의 비지터센터와 추모광장 등은 2015년에야 완공되어서 일반에 공개되었다.
여기를 별볼일 없는 국립 공원이라 부르는 것은 좀 아닌 듯 하지만, 그 펜실베니아 시리즈의 4번째 목적지로 찾아왔다. 행정구역 상으로 국립기념관의 대부분은 스토니크릭(Stonycreek) 타운쉽에 속하지만, 가장 가까운 마을인 인구 200명의 섕크스빌(Shanksville) 들판에 추락한 것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2001년 9월 11일에 유나이티드 항공 93편의 비행경로와 타임라인을 보여주는 그림으로, 테러범들의 목적지였던 워싱턴DC까지 불과 18분을 남겨두고, 승객과 승무원들이 조종실을 다시 빼앗는 와중에 이 지점에 추락을 해서 승객 33명과 승무원 7명의 합계 40명이 모두 사망을 했다. (희생자에서 제외된 테러범 4명도 물론 사망)
입구에서 제법 운전해 들어오면 넓은 주차장과 엄숙한 외관의 건물이 만들어져 있는 비지터센터 컴플렉스(Visitor Center Complex)가 먼저 나온다.
비지터센터의 입구 사진만 또 올리는 이유는 이 곳의 내부는 추모 분위기를 헤치지 않기 위해서 사진촬영이 금지이기 때문이다. 뉴욕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에 처음 두 비행기가 충돌하는 영상부터, 납치 과정과 승객들의 통신 기록, 다시 탈취하는 순간의 실제 녹음, 추락한 잔해 수습 과정 등과 함께 마지막에는 희생자 40명의 사진으로 장식된 벽으로 끝났다. (전시의 대부분은 공원 홈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음)
비지터센터와 연결된 콘크리트 벽이 끊어진 사이로 검은 통로가 만들어져 있어서, 저 끝까지 걸어가 보면...
충돌지점(Impact Site) 옆으로 만들어진 추모광장(Memorial Plaza)이 멀리 내려다 보이고, 마지막 유리에는 홈페이지 첫화면에도 등장하는 문구인 "A common field one day. A field of honor forever."라 씌여있다. 이 여행기를 쓰기 전까지도 무심코 '공포의 들판(field of horror)'이라 읽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공원 브로셔에 인쇄된 지도를 추가로 보여드리는데, 허허벌판에 상당히 큰 규모로 만들어져서 추모광장까지는 40 Memorial Groves를 한바퀴 빙 돌아서 차로 이동을 하게 된다.
뒤돌아서 보이는 이 직선의 검은 통로가 그 날 플라이트93의 마지막 비행경로(Flight Path)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콘크리트 벽도 자세히 보면 모두 이렇게 나뭇결이나 오래된 목재와 같은 질감을 새겨 넣은 것이 특별했고, 멀리 검은색으로 툭 튀어나온 것은 비지터센터 전시관 마지막에 만들어져 있는 실내 전망대이다.
차를 타고 추모광장이 시작되는 Shelter가 있는 곳으로 왔다. 안내판의 사진은 추락 후 폭발의 검은 연기를 찍은 것이고, 테러범들이 충돌을 계획한 것으로 추정되는 의사당 모습도 보인다. (목표가 백악관이나 또는 DC 인근의 원자력 발전소였을 가능성도 있다고 함)
충돌 후 잔해가 수습된 지역인 Debris Field를 왼편에 두고 통로가 만들어져 있는데,
중간에 충돌지점이 정면에 보이는 난간에는 유가족 또는 방문객들이 두고 간 작은 기념물들이 놓여 있었다. 폭발 구덩이는 모두 메워져 평평한 초원으로 복원되었지만, 이 사진 왼편 1/4 지점에 살짝 보이는 큰 바위(Boulder)가 놓인 곳이 정확한 추락지점이란다.
그리고 그 통로의 끝에는 희생자 40명의 이름이 하얀 대리석에 하나씩 새겨진 Wall of Names가 나온다. 언덕 위에 보이는 비지터센터에서 바로 여기까지 걸어오는 산책로도 만들어져 있지만, 거리가 보기보다는 제법 되는 듯 했다.
FBI가 충돌 직후에 찍었던 사진 한 장을 홈페이지에서 가져와 보여드리는데, 시속 900 km의 속도로 거의 수직으로 땅에 부딪혔기 때문에, 띄엄띄엄 보이는 1~2미터 길이의 동체 파편 몇십 개를 제외하고는 남아있는게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래도 몇달간 보존 수색을 해서 작은 뼛조각 하나도 모두 DNA 검사를 통해 각 유족에게 전달되었고, 짧은 전선같은 잔해 하나도 모두 버리지 않고 비지터센터에 전시를 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공원 입구쪽에 2018년에 추가로 만들어진 '목소리의 탑(Tower of Voices)'을 구경하기 위해 잠시 들렀다.
편명에 맞춰서 높이가 93피트(28 m)로 제작된 콘크리트 타워의 내부에, 40명의 희생자를 상징하는 40개의 풍경(wind chime)을 설치해서, 바람이 불면 은은한 소리가 나도록 만들어졌다는데, 조금 전까지 거세던 바람이 갑자기 잦아들어서 직접 들을 수는 없었다.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위의 동영상을 재생하면 풍경의 추가 흔들리면서 각기 다른 음의 '목소리'들이 울리는 것을 직접 들으실 수 있다.
바로 아래에서 종탑을 올려다 보는데, 오후의 햇살이 마치 천사의 후광처럼 뒤쪽을 밝히고 있었다... 그 날 플라이트93편의 평범한 남자와 여자들이 항복을 거부하고, 테러범들에 의해 잠긴 조종실 문을 기내식 카트로 들이받아 부수고 들어가서 싸웠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희생으로 또 다른 끔찍한 피해는 막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여기 펜실베니아의 외딴 시골에 있는 '영광의 들판(field of honor)'에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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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에 여기 버지니아 알링턴의 펜타곤에 만들어진 9·11 테러 추모물을 소개하면서, 마지막 4번째로 납치된 여객기는 펜실베이니아 주의 외딴 벌판에 추락했다고 알려드렸었다. 그 비행기의 이야기는 2006년에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영화 <플라이트93>으로도 제작되었는데, 추락한 지역은 사고 이듬해 플라이트93 내셔널메모리얼(Flight 93 National Memorial)로 지정이 되었고, 현재의 비지터센터와 추모광장 등은 2015년에야 완공되어서 일반에 공개되었다.
여기를 별볼일 없는 국립 공원이라 부르는 것은 좀 아닌 듯 하지만, 그 펜실베니아 시리즈의 4번째 목적지로 찾아왔다. 행정구역 상으로 국립기념관의 대부분은 스토니크릭(Stonycreek) 타운쉽에 속하지만, 가장 가까운 마을인 인구 200명의 섕크스빌(Shanksville) 들판에 추락한 것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2001년 9월 11일에 유나이티드 항공 93편의 비행경로와 타임라인을 보여주는 그림으로, 테러범들의 목적지였던 워싱턴DC까지 불과 18분을 남겨두고, 승객과 승무원들이 조종실을 다시 빼앗는 와중에 이 지점에 추락을 해서 승객 33명과 승무원 7명의 합계 40명이 모두 사망을 했다. (희생자에서 제외된 테러범 4명도 물론 사망)
입구에서 제법 운전해 들어오면 넓은 주차장과 엄숙한 외관의 건물이 만들어져 있는 비지터센터 컴플렉스(Visitor Center Complex)가 먼저 나온다.
비지터센터의 입구 사진만 또 올리는 이유는 이 곳의 내부는 추모 분위기를 헤치지 않기 위해서 사진촬영이 금지이기 때문이다. 뉴욕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에 처음 두 비행기가 충돌하는 영상부터, 납치 과정과 승객들의 통신 기록, 다시 탈취하는 순간의 실제 녹음, 추락한 잔해 수습 과정 등과 함께 마지막에는 희생자 40명의 사진으로 장식된 벽으로 끝났다. (전시의 대부분은 공원 홈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음)
비지터센터와 연결된 콘크리트 벽이 끊어진 사이로 검은 통로가 만들어져 있어서, 저 끝까지 걸어가 보면...
충돌지점(Impact Site) 옆으로 만들어진 추모광장(Memorial Plaza)이 멀리 내려다 보이고, 마지막 유리에는 홈페이지 첫화면에도 등장하는 문구인 "A common field one day. A field of honor forever."라 씌여있다. 이 여행기를 쓰기 전까지도 무심코 '공포의 들판(field of horror)'이라 읽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공원 브로셔에 인쇄된 지도를 추가로 보여드리는데, 허허벌판에 상당히 큰 규모로 만들어져서 추모광장까지는 40 Memorial Groves를 한바퀴 빙 돌아서 차로 이동을 하게 된다.
뒤돌아서 보이는 이 직선의 검은 통로가 그 날 플라이트93의 마지막 비행경로(Flight Path)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콘크리트 벽도 자세히 보면 모두 이렇게 나뭇결이나 오래된 목재와 같은 질감을 새겨 넣은 것이 특별했고, 멀리 검은색으로 툭 튀어나온 것은 비지터센터 전시관 마지막에 만들어져 있는 실내 전망대이다.
차를 타고 추모광장이 시작되는 Shelter가 있는 곳으로 왔다. 안내판의 사진은 추락 후 폭발의 검은 연기를 찍은 것이고, 테러범들이 충돌을 계획한 것으로 추정되는 의사당 모습도 보인다. (목표가 백악관이나 또는 DC 인근의 원자력 발전소였을 가능성도 있다고 함)
충돌 후 잔해가 수습된 지역인 Debris Field를 왼편에 두고 통로가 만들어져 있는데,
중간에 충돌지점이 정면에 보이는 난간에는 유가족 또는 방문객들이 두고 간 작은 기념물들이 놓여 있었다. 폭발 구덩이는 모두 메워져 평평한 초원으로 복원되었지만, 이 사진 왼편 1/4 지점에 살짝 보이는 큰 바위(Boulder)가 놓인 곳이 정확한 추락지점이란다.
그리고 그 통로의 끝에는 희생자 40명의 이름이 하얀 대리석에 하나씩 새겨진 Wall of Names가 나온다. 언덕 위에 보이는 비지터센터에서 바로 여기까지 걸어오는 산책로도 만들어져 있지만, 거리가 보기보다는 제법 되는 듯 했다.
FBI가 충돌 직후에 찍었던 사진 한 장을 홈페이지에서 가져와 보여드리는데, 시속 900 km의 속도로 거의 수직으로 땅에 부딪혔기 때문에, 띄엄띄엄 보이는 1~2미터 길이의 동체 파편 몇십 개를 제외하고는 남아있는게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래도 몇달간 보존 수색을 해서 작은 뼛조각 하나도 모두 DNA 검사를 통해 각 유족에게 전달되었고, 짧은 전선같은 잔해 하나도 모두 버리지 않고 비지터센터에 전시를 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공원 입구쪽에 2018년에 추가로 만들어진 '목소리의 탑(Tower of Voices)'을 구경하기 위해 잠시 들렀다.
편명에 맞춰서 높이가 93피트(28 m)로 제작된 콘크리트 타워의 내부에, 40명의 희생자를 상징하는 40개의 풍경(wind chime)을 설치해서, 바람이 불면 은은한 소리가 나도록 만들어졌다는데, 조금 전까지 거세던 바람이 갑자기 잦아들어서 직접 들을 수는 없었다.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위의 동영상을 재생하면 풍경의 추가 흔들리면서 각기 다른 음의 '목소리'들이 울리는 것을 직접 들으실 수 있다.
바로 아래에서 종탑을 올려다 보는데, 오후의 햇살이 마치 천사의 후광처럼 뒤쪽을 밝히고 있었다... 그 날 플라이트93편의 평범한 남자와 여자들이 항복을 거부하고, 테러범들에 의해 잠긴 조종실 문을 기내식 카트로 들이받아 부수고 들어가서 싸웠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희생으로 또 다른 끔찍한 피해는 막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여기 펜실베니아의 외딴 시골에 있는 '영광의 들판(field of honor)'에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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