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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스테이트(First State) 국립역사공원에서 배우는 델라웨어 주의 역사와 뉴캐슬(New Castle) 법원
작년 2024년 4월과 12월에 각각 이틀씩, 모두 4회에 걸쳐서 위기주부 혼자 하루 10시간 내외로 운전을 하는 빡센 당일여행을 다녀왔었다. 차례로 대강 북서쪽, 남서쪽, 동쪽, 북동쪽 방향을 잡고 집에서 3시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여러 곳들을 묶어서 둘러봤는데, 사실 '여행'이라고 부르기도 좀 애매할 정도로 "별 볼일 없는" 또는 "듣도 보도 못한" 장소들을 아주 잠깐씩 찍으며 돌아다니는 일종의 과제수행에 가까웠다. 아래의 제목들을 클릭하시면 이동경로 지도로 시작하는 각 회차의 첫번째 여행기들을 보실 수 있다. 앨버트 갤러틴을 아시나요? 펜실베니아의 프렌드쉽힐 국립사적지(Friendship Hill National Historic Site) 리치먼드(Richmond)의 침보라소(Chimborazo) 의료박물관과 매기 워커(Maggie Walker) 국립사적지 미래 20달러 지폐의 모델? 해리엇터브먼 지하철도(Harriet Tubman Underground Railroad) 국립역사공원 미국 제34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대통령의 집과 농장이 보존된 국립사적지 네 개의 지도에 표시된 각각의 목적지에 머물렀던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복습하며 작성했던 여행기들은 총 4일간 모두 19편으로, 이제 마지막 4차 북동쪽 미션의 다섯번째, 즉 끝까지 별 볼일 없고 듣보잡인 장소를 다녀온 19화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장소는 델라웨어(Delaware)의 첫번째 주도였던 뉴캐슬(New Castle) 중심가에 있는 1732년에 지어져서 지금은 박물관으로 공개되는 옛날 법원(Court House) 건물로, 왼쪽 간판에는 국립공원청 로고와 함께 "A Partnership Site of First State National Monument"라 적혀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지금의 델라웨어 주 3개 카운티는 1682년부터 펜실베니아 식민지의 일부였는데, 1704년에 지리적으로 떨어진 3개 카운티가 모여 따로 독립 의회를 창설했지만, 식민지 총독의 행정권은 법적으로는 계속 유지가 되었다. 그러다가 미국 독립선언 약 20일 전인 1776년 6월 15일에 이 건물에 모인 대표들이 '영국과 펜실베니아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면서, 미국에서 두번째로 면적이 작은 주인 "State of Delaware"가 탄생하게 된다. 열린 정문으로 들어가니 1층 법원이 먼저 보였다. 퇴근하려던 직원이 내부는 가이드투어로 둘러보는 것이 원칙이지만, 원하면 독립을 결의했던 의회 회의실이 있는 2층에 그냥 올라가봐도 좋다고 했다. 그런데 왜 안 올라갔었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ㅎㅎ 법원 바로 뒤쪽의 예전 보안관 사무실(Sheriff's House)에 국립공원청에서 운영하는 웰컴센터(Welcome Center)가 만들어져 있어서, 아마도 여기가 볼게 훨씬 더 많을거라고 생각하며 빨리 나왔던 것 같기도 하다. 사진을 찍어도 되냐니까, 아주 공손하게 두 손을 모으고 포즈를 취해주시던 파크레인저...^^ 델라웨어 주의 여러 장소가 함께 묶여서 지정된 퍼스트스테이트 국립역사공원(First State National Historical Park)에 대한 설명은 3차 동쪽 미션의 4번째 방문지였던 현재의 주도인 도버(Dover) 여행기에서 이미 해드렸었다. 건너편으로 아주 모던한 디자인의 전시실이 만들어져 있는데, 벽에 붙은 작은 글씨의 안내판은 별 관심이 없으실테니, 다른 전시물 사진과 함께 델라웨어의 역사와 지리를 간단히 알려드리면, 강가에 사는 비버(Beaver)를 잡아서 털을 유럽에 팔기 위해서, 지금의 최대 도시인 윌밍턴(Wilmington) 지역에 1638년 포트 크리스티나(Fort Cristina)를 스웨덴 사람들이 처음 만들고, 핀란드인과 함께 정착지를 건설해서 "뉴스웨덴(New Sweden)"이라 불렀다. 하지만 뉴캐슬에 정착촌을 만든 네덜란드와의 싸움에서 져서 1655년부터는 네덜란드 식민지가 되었고, 그 후 1664년 영란전쟁의 결과로 영국의 뉴욕 식민지 일부가 되었다가, 1682년에 펜실베니아와 함께 떨어져 나온 것이다. 위기주부 블로그의 첫번째 델라웨어 여행기에서 소개를 해드렸듯이, 델라웨어와 펜실베니아의 주경계는 미국에서 유일하게 원호(arc)로, 바로 뉴캐슬 법원 건물의 종탑에서 12마일 거리로 만들어졌다. 그러다 보니까 지도의 메릴랜드와 함께 3개주가 만나는 부근에 'Delaware Wedge'라 불린 쐐기 모양 1제곱마일 면적의 땅이 소유권이 애매한 상태로 남았다가, 1921년에야 최종적으로 델라웨어에 속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비록 면적과 인구는 작지만 미국헌법을 최초로 비준해서 'The First State'가 된 날자가 적혀있는 델라웨어 주기(state flag) 아래로는 특이하게 미국의 상하원 양원제와 각 주별 대통령 선거인단 등에 대한 설명이 있다. (가운데 4개의 원 그래프는 총 득표율은 졌지만, 선거인단에서 승리한 역대 4번의 대통령 선거결과) 결론은 대륙회의 당시에 델라웨어 대표단의 노력으로 주의 면적과 인구수에 상관없이 각 주를 대표하는 2인들로 구성된 미국 상원(Senate)이 만들어지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그렇게 비버 털을 팔아 '이윤 추구(pursuit of profit)'를 목적으로 정착했던 유럽 여러 나라의 이민자들로 시작된 델라웨어가 미국을 '완벽한 연합(perfect union)'으로 만드는데 기여했다는게 전시의 주제였다. 안쪽에서 안내영화도 잠깐 봤는데, 문짝이 교도소 철문인 것으로 봐서 옛날에 보안관이 잡아온 사람을 가둬두는 곳에 극장을 만든 것이었다.^^ 종탑 꼭대기의 풍향계가 가리키는 방향의 반대쪽에서 차가운 강바람이 불어 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밖에도 좀 걸어줘야 할 듯 해서 옷깃을 싸매고 오른편 도로를 따라 델라웨어 강이 바다와 만나는 쪽으로 걸어갔다. 간판에 티켓오피스(ticket office)라 적힌 정말 작은 '단칸방' 건물 하나가 강가에 보존되어 있는데, 여기서 남서쪽의 메릴랜드 프렌치타운까지 약 15마일 길이로 1832년에 개통되었던 철도인 New Castle and Frenchtown Railroad의 매표소라 한다. 많은 오리들만 보이던 델라웨어 강가에는 정성스레 돌을 쌓아서 만든 커다란 부두(pier)의 흔적이 남아있는데, 옛날에는 제법 큰 항구가 여기 강어귀에 있었기 때문이란다. 뉴캐슬은 독립 직후에 주도가 도버(Dover)로 이전하고, 경제적으로도 윌밍턴과 필라델피아에 밀려서 점차 쇠퇴했지만, 그래도 상류의 필라델피아 항구가 얼어붙는 겨울철에는 여기가 안전한 항구로 활용되었단다. 그리고 1925년부터는 여기서 바로 강건너 뉴저지 펜스빌(Pennsville)까지 사람과 자동차를 실어 나르는 페리가 운행되어서 그나마 도시가 유지되었지만... 저 멀리 보이는 295번 고속도로가 지나는 델라웨어 기념다리(Delaware Memorial Bridge)가 1951년에 개통되면서, 하루아침에 페리도 운행을 중단하고는 그냥 별 볼일 없는 강가의 작은 마을로 완전히 전락했단다. 마지막 회의 마지막 사진으로 어울리는 땅거미 내리는 적막한 풍경을 끝으로 4차에 걸친 19편의 듣보잡 여행기들을 모두 마치는데, 도대체 어떤 '과제(Mission)'를 수행하기 위해서 그렇게 혼자 뽈뽈거리며 돌아다녔는지 궁금해 하시는 분이 혹시라도 계실까봐 아래의 지도를 추가로 보여드린다~ 지도 가운데 워싱턴DC를 중심으로 대강 동서 600 km, 남북 500 km 영역 안에 있는 NPS Official Unit 약 70개를 모두 방문하는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국립공원청 앱 지도에는 오피셜 유닛이 아닌 공원과 다른 유닛에 포함되는 장소들도 모두 나와서 훨씬 많이 표시됨) 그래서 이제 또 다음 과제는 뭐냐고 물으신다면... 당연히 이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고, 그것은 오하이오 1박2일 여행으로 이미 시작되었지만, 이제는 당일로는 다녀올 수 없는 거리라서 아주아주 느리게 수행될 것 같다. P.S. 지도의 상단 중앙에 표시된 Carlisle Federal Indian Boarding School은 미국이 19세기말 인디언 동화를 목적으로 만들었던 강제 기숙학교를 바이든이 작년 12월 9일에 새로운 National Monument로 지정한 오피셜유닛으로, 북동쪽 4차 경로상에 위치하지만 출발 몇 일전에 만들어진 곳이라 몰랐습니다.^^ 설령 알았더라고 해도 들릴 수는 없었던게, 현재 육군전쟁대학이 소재한 군부대 내에 있어서 일반인은 찾아갈 수가 없는 상태로, 방문자용 별도 통로와 비지터센터 등의 건설을 계획하는 단계랍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퍼스트스테이트(First State) 국립역사공원에서 배우는 델라웨어 주의 역사와 뉴캐슬(New Castle) 법원
작년 2024년 4월과 12월에 각각 이틀씩, 모두 4회에 걸쳐서 위기주부 혼자 하루 10시간 내외로 운전을 하는 빡센 당일여행을 다녀왔었다. 차례로 대강 북서쪽, 남서쪽, 동쪽, 북동쪽 방향을 잡고 집에서 3시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여러 곳들을 묶어서 둘러봤는데, 사실 '여행'이라고 부르기도 좀 애매할 정도로 "별 볼일 없는" 또는 "듣도 보도 못한" 장소들을 아주 잠깐씩 찍으며 돌아다니는 일종의 과제수행에 가까웠다. 아래의 제목들을 클릭하시면 이동경로 지도로 시작하는 각 회차의 첫번째 여행기들을 보실 수 있다. 앨버트 갤러틴을 아시나요? 펜실베니아의 프렌드쉽힐 국립사적지(Friendship Hill National Historic Site) 리치먼드(Richmond)의 침보라소(Chimborazo) 의료박물관과 매기 워커(Maggie Walker) 국립사적지 미래 20달러 지폐의 모델? 해리엇터브먼 지하철도(Harriet Tubman Underground Railroad) 국립역사공원 미국 제34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대통령의 집과 농장이 보존된 국립사적지 네 개의 지도에 표시된 각각의 목적지에 머물렀던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복습하며 작성했던 여행기들은 총 4일간 모두 19편으로, 이제 마지막 4차 북동쪽 미션의 다섯번째, 즉 끝까지 별 볼일 없고 듣보잡인 장소를 다녀온 19화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장소는 델라웨어(Delaware)의 첫번째 주도였던 뉴캐슬(New Castle) 중심가에 있는 1732년에 지어져서 지금은 박물관으로 공개되는 옛날 법원(Court House) 건물로, 왼쪽 간판에는 국립공원청 로고와 함께 "A Partnership Site of First State National Monument"라 적혀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지금의 델라웨어 주 3개 카운티는 1682년부터 펜실베니아 식민지의 일부였는데, 1704년에 지리적으로 떨어진 3개 카운티가 모여 따로 독립 의회를 창설했지만, 식민지 총독의 행정권은 법적으로는 계속 유지가 되었다. 그러다가 미국 독립선언 약 20일 전인 1776년 6월 15일에 이 건물에 모인 대표들이 '영국과 펜실베니아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면서, 미국에서 두번째로 면적이 작은 주인 "State of Delaware"가 탄생하게 된다. 열린 정문으로 들어가니 1층 법원이 먼저 보였다. 퇴근하려던 직원이 내부는 가이드투어로 둘러보는 것이 원칙이지만, 원하면 독립을 결의했던 의회 회의실이 있는 2층에 그냥 올라가봐도 좋다고 했다. 그런데 왜 안 올라갔었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ㅎㅎ 법원 바로 뒤쪽의 예전 보안관 사무실(Sheriff's House)에 국립공원청에서 운영하는 웰컴센터(Welcome Center)가 만들어져 있어서, 아마도 여기가 볼게 훨씬 더 많을거라고 생각하며 빨리 나왔던 것 같기도 하다. 사진을 찍어도 되냐니까, 아주 공손하게 두 손을 모으고 포즈를 취해주시던 파크레인저...^^ 델라웨어 주의 여러 장소가 함께 묶여서 지정된 퍼스트스테이트 국립역사공원(First State National Historical Park)에 대한 설명은 3차 동쪽 미션의 4번째 방문지였던 현재의 주도인 도버(Dover) 여행기에서 이미 해드렸었다. 건너편으로 아주 모던한 디자인의 전시실이 만들어져 있는데, 벽에 붙은 작은 글씨의 안내판은 별 관심이 없으실테니, 다른 전시물 사진과 함께 델라웨어의 역사와 지리를 간단히 알려드리면, 강가에 사는 비버(Beaver)를 잡아서 털을 유럽에 팔기 위해서, 지금의 최대 도시인 윌밍턴(Wilmington) 지역에 1638년 포트 크리스티나(Fort Cristina)를 스웨덴 사람들이 처음 만들고, 핀란드인과 함께 정착지를 건설해서 "뉴스웨덴(New Sweden)"이라 불렀다. 하지만 뉴캐슬에 정착촌을 만든 네덜란드와의 싸움에서 져서 1655년부터는 네덜란드 식민지가 되었고, 그 후 1664년 영란전쟁의 결과로 영국의 뉴욕 식민지 일부가 되었다가, 1682년에 펜실베니아와 함께 떨어져 나온 것이다. 위기주부 블로그의 첫번째 델라웨어 여행기에서 소개를 해드렸듯이, 델라웨어와 펜실베니아의 주경계는 미국에서 유일하게 원호(arc)로, 바로 뉴캐슬 법원 건물의 종탑에서 12마일 거리로 만들어졌다. 그러다 보니까 지도의 메릴랜드와 함께 3개주가 만나는 부근에 'Delaware Wedge'라 불린 쐐기 모양 1제곱마일 면적의 땅이 소유권이 애매한 상태로 남았다가, 1921년에야 최종적으로 델라웨어에 속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비록 면적과 인구는 작지만 미국헌법을 최초로 비준해서 'The First State'가 된 날자가 적혀있는 델라웨어 주기(state flag) 아래로는 특이하게 미국의 상하원 양원제와 각 주별 대통령 선거인단 등에 대한 설명이 있다. (가운데 4개의 원 그래프는 총 득표율은 졌지만, 선거인단에서 승리한 역대 4번의 대통령 선거결과) 결론은 대륙회의 당시에 델라웨어 대표단의 노력으로 주의 면적과 인구수에 상관없이 각 주를 대표하는 2인들로 구성된 미국 상원(Senate)이 만들어지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그렇게 비버 털을 팔아 '이윤 추구(pursuit of profit)'를 목적으로 정착했던 유럽 여러 나라의 이민자들로 시작된 델라웨어가 미국을 '완벽한 연합(perfect union)'으로 만드는데 기여했다는게 전시의 주제였다. 안쪽에서 안내영화도 잠깐 봤는데, 문짝이 교도소 철문인 것으로 봐서 옛날에 보안관이 잡아온 사람을 가둬두는 곳에 극장을 만든 것이었다.^^ 종탑 꼭대기의 풍향계가 가리키는 방향의 반대쪽에서 차가운 강바람이 불어 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밖에도 좀 걸어줘야 할 듯 해서 옷깃을 싸매고 오른편 도로를 따라 델라웨어 강이 바다와 만나는 쪽으로 걸어갔다. 간판에 티켓오피스(ticket office)라 적힌 정말 작은 '단칸방' 건물 하나가 강가에 보존되어 있는데, 여기서 남서쪽의 메릴랜드 프렌치타운까지 약 15마일 길이로 1832년에 개통되었던 철도인 New Castle and Frenchtown Railroad의 매표소라 한다. 많은 오리들만 보이던 델라웨어 강가에는 정성스레 돌을 쌓아서 만든 커다란 부두(pier)의 흔적이 남아있는데, 옛날에는 제법 큰 항구가 여기 강어귀에 있었기 때문이란다. 뉴캐슬은 독립 직후에 주도가 도버(Dover)로 이전하고, 경제적으로도 윌밍턴과 필라델피아에 밀려서 점차 쇠퇴했지만, 그래도 상류의 필라델피아 항구가 얼어붙는 겨울철에는 여기가 안전한 항구로 활용되었단다. 그리고 1925년부터는 여기서 바로 강건너 뉴저지 펜스빌(Pennsville)까지 사람과 자동차를 실어 나르는 페리가 운행되어서 그나마 도시가 유지되었지만... 저 멀리 보이는 295번 고속도로가 지나는 델라웨어 기념다리(Delaware Memorial Bridge)가 1951년에 개통되면서, 하루아침에 페리도 운행을 중단하고는 그냥 별 볼일 없는 강가의 작은 마을로 완전히 전락했단다. 마지막 회의 마지막 사진으로 어울리는 땅거미 내리는 적막한 풍경을 끝으로 4차에 걸친 19편의 듣보잡 여행기들을 모두 마치는데, 도대체 어떤 '과제(Mission)'를 수행하기 위해서 그렇게 혼자 뽈뽈거리며 돌아다녔는지 궁금해 하시는 분이 혹시라도 계실까봐 아래의 지도를 추가로 보여드린다~ 지도 가운데 워싱턴DC를 중심으로 대강 동서 600 km, 남북 500 km 영역 안에 있는 NPS Official Unit 약 70개를 모두 방문하는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국립공원청 앱 지도에는 오피셜 유닛이 아닌 공원과 다른 유닛에 포함되는 장소들도 모두 나와서 훨씬 많이 표시됨) 그래서 이제 또 다음 과제는 뭐냐고 물으신다면... 당연히 이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고, 그것은 오하이오 1박2일 여행으로 이미 시작되었지만, 이제는 당일로는 다녀올 수 없는 거리라서 아주아주 느리게 수행될 것 같다. P.S. 지도의 상단 중앙에 표시된 Carlisle Federal Indian Boarding School은 미국이 19세기말 인디언 동화를 목적으로 만들었던 강제 기숙학교를 바이든이 작년 12월 9일에 새로운 National Monument로 지정한 오피셜유닛으로, 북동쪽 4차 경로상에 위치하지만 출발 몇 일전에 만들어진 곳이라 몰랐습니다.^^ 설령 알았더라고 해도 들릴 수는 없었던게, 현재 육군전쟁대학이 소재한 군부대 내에 있어서 일반인은 찾아갈 수가 없는 상태로, 방문자용 별도 통로와 비지터센터 등의 건설을 계획하는 단계랍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1박2일 오하이오(Ohio) 여행에서 위기주부의 44번째 내셔널파크인 쿠야호가밸리 국립공원을 방문하다
마지막으로 위기주부가 혼자 숙박을 하며 여행을 했던 것이 5년전에 그랜드캐년의 비경인 하바수 폭포 트레킹을 3박4일로 다녀왔던 것이다. 이번에 또 기회가 생겨서 어디를 가볼까 연구를 해보니, 6시간 거리에 있는 오하이오(Ohio) 주의 내셔널파크가 1박2일로 적당했다. 3년전에 대륙횡단을 하면서도 오하이오는 전혀 지나지 않았었기 때문에, 아래 국립공원청의 지도를 보면서 다른 둘러볼 곳들을 정하고, 또 처음 방문하는 오하이오 주에 대해서도 공부를 했던 내용을 먼저 잠깐 소개한다. 밝게 표시된 동서의 폭이 약 220마일(355 km)인 오하이오에는 북부의 여러 주를 지나는 트레일인 North Country NST를 포함해서 모두 9개의 NPS Official Unit들이 있다. 그 중에 몇 곳을 찍었는지는 일단 시리즈 흥행을 위해 비밀로 하고, 첫날 두번째 목적지로 들렀던 쿠야호가 밸리 내셔널파크(Cuyahoga Valley National Park)의 이름이 우측상단에 보인다. (국립 공원들 외에는 박물관 하나만 둘쨋날 아침에 방문) 오하이오에 대해 알아보며 가장 놀란 것은 주깃발(state flag)로 미국 50개주 중에서 유일하게 직사각형이 아닌 깃발이다. 사진처럼 끝이 제비꼬리로 갈라져 있을 뿐더러, 그 꼬리쪽의 폭아 앞쪽보다 좁은 사다리꼴이다! 파란 삼각형 안의 17개의 별은 오하이오가 1803년에 미국의 17번째 주로 가입한 것을 상징하고, 중앙의 빨간색 원은 Ohio의 'O'를 의미하는데, 이름은 원주민 말의 "큰 강"이라는 뜻으로 바로 주의 남쪽 경계인 오하이오 강(Ohio River)을 부르는 것이란다. 그리고 지금까지 7명의 대통령이 오하이오 출생으로 "Mother of Presidents"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으며, 그래서 첫번째 지도에 표시된 국립 공원들 중의 3곳이 이들과 연관된 장소이다. (최다는 8명의 버지니아 주지만, 독립전쟁 세대가 1~5대에서 제2대만 제외한 4명에 그 다음 3명도 9/10/12대로 1850년 이전이고, 마지막 8번째가 제28대 우드로 윌슨) 나머지 다른 내용들은 오하이오 시리즈를 진행하며 차차 하기로 하고, 이제 쿠야호가 계곡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위기주부가 방문한 미국의 44번째 내셔널파크인 이 공원은 올해로 50주년이라고 하지만, 최초에 국립휴양지(National Recreation Area)로 설립되었던 1974년을 시작으로 본 것이다. 그리고 26년 후인 2000년에 국립공원(National Park)으로 재지정이 되었는데, 현재까지 미국에서 NRA에서 NP로 승격된 유일한 장소이다. 싸락눈이 내리는 12월말의 북부 오하이오 주의 강가 공원은 썰렁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국립공원청이 운영하는 3곳의 비지터센터들 중에서 유일하게 겨울에도 문을 여는 Boston Mill Visitor Center가 방문의 시작점이다. 1820년경 메사추세츠 보스턴 출신의 사람이 여기 쿠야호가 강가에 처음 정착해 방앗간을 지으며 마을이 들어서서 이런 이름이 붙었는데, 주의 북쪽에 면한 이리 호(Lake Erie)와 남쪽 경계인 오하이오 강(Ohio River)을 잇는 Ohio & Erie Canal 수로가 1827년에 완공되면서 마을은 급성장을 하게 되고, 1880년에는 계곡을 따라 Valley Railway 기찻길도 만들어져서, 클리블랜드 광역도시권에 포함되는 공업단지로 발전을 하게 된다. 실내로 들어가 보니 그래도 미국 63개 '내셔널파크' 중의 하나라고 위기주부 말고도 방문객들이 있기는 했다.^^ 안내 데스크와 기념품점이 가운데 위치하고 좌우로 전시실이 있는 구조였는데, 먼저 오른쪽에 있는 방으로 들어가 봤다. 공원 브로셔 전면을 채우는 그림이 벽면에 '리뉴(RENEW)'라는 단어와 함께 크게 그려져 있다. 쿠야호가 강(Cuyahoga River)은 철강과 석유산업으로 19세기말에 돈이 넘쳐나는 대도시였던 클리블랜드(Cleveland)에서 이리 호로 흘러드는데, 남쪽으로 40마일 떨어진 상류의 애크런(Akron)이란 다른 도시부터 클리블랜드 외곽까지의 계곡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즉, 대자연을 중심으로 한 국립공원들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으로, 대도시권 내의 하천(?) 주변이 국립휴양지를 거쳐서 국립공원이 된 것이다! 공식 지도를 봐도 수 많은 도로와 마을이 국유지 공원 내에 그대로 존재하고, 주 정부 소유의 메트로파크(Metropark)라 불리는 곳들도 공원의 일부로 표시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국립공원 전체를 포함해서 옛날 운하를 따라 더 남쪽으로 뉴필라델피아(New Philadelphia)까지는 오하이오-이리 운하 국가유산지역(Ohio & Erie Canalway National Heritage Area)으로 지정되어 있다. 건너편 전시실에는 그래서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지만, 기존의 내셔널파크와는 전혀 컨셉이 다른 곳이라 감이 잘 오지 않았다... 그래서 직원에게 물어보니 유명한 폭포 외에 다른 트레일 하나를 더 알려줘서 두 곳 모두 둘러보기로 하고, 밖으로 나와서 일단 역사 공부를 계속했다. 클리블랜드의 철강업이 번성하자 자동차 회사들이 몰려들었고, 덩달아 타이어 공장도 주변에 만들어졌는데, 1900년대 초까지 애크런에 미국 4대 타이어 회사의 본사가 들어섰고, 지금도 그 중 굿이어(Goodyear)의 본사가 남아있다. 이러한 공업화로 쿠야호가 강은 기름에 찌든 산업폐기물이 떠다니는 죽음의 강이 되었고, 가운데 작은 사진처럼 1969년에 강둑의 쓰레기에 불이 나서 전국적으로 오명을 떨친 후에, 연방정부의 힘을 빌려서라도 환경을 보존하려는 목표로 국립휴양지 입법이 추진된 것이다. 당시 국립공원청이 의회를 통과한 법안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을 건의할 정도였다고 하니 말 다했다. 옛날 보스턴 마을로 강을 건너는 다리에서 남쪽으로 바라본 모습으로 IS-271 양방향과 더 멀리 나뭇가지들 사이로 희미하게 IS-80 고속도로의 다리들이 공원 중심부에서 계곡을 가로지른다. 특히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작은 공장들이 많았던 보스턴 마을은 육군공병대에 의해 강제로 철거와 이주가 진행되었는데, 다른 안내판에는 스프레이로 "Now we know how the Indians felt!"라 벽면에 낙서한 사진이 있는 등 반발과 저항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보스턴밀 비지터센터 주변과 강 건너로 보이던 건물들은 현재 일부만 정비 후 보존된 것이고, 2016년에 철거가 완료되기 전까지는 마을의 모든 건물이 수십년 동안 낡은 상태의 빈집으로 남아있어 '헬타운(Helltown)'으로 불리기도 했단다. 운행을 중단했던 이 철로는 국립휴양지 지정을 전후해 관광용으로 재건해서, 현재 CVSR(Cuyahoga Valley Scenic Railroad) 이름으로 여름철에만 국립공원 내에서 유료 운행을 한단다. 주차장 바로 옆의 보스턴밀(Boston Mill) 기차역에는 운동을 나온 동네 청년 두 명이 안에서 진눈깨비를 피하고 있었고, 바로 위 271번 고속도로 남쪽 방향으로 아마존 트럭이 지나가는게 보인다. 지금까지 설명한 것처럼 역사와 환경 및 위치 등이 모두 '국립공원같지 않은 국립공원'이었던 쿠야호가밸리 내셔널파크에서 그나마 볼만한 두 곳의 자연환경을 찾아간 이야기는 별도의 포스팅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P.S. 전체 오하이오 여행기가 10편 가까지 될 지도 모르겠고 해서, 1박2일 여행에는 좀 어울리지 않지만, 오래간만에 시리즈 포스팅을 알리는 배너를 아래와 같이 만들었으니, 띄엄띄엄 올라오는 포스팅에 아래 배너가 있으면 2024년 12월말의 오하이오 주 여행기입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국립공원청이 직접 관리하는 우리 동네 포토맥(Potomac) 강변의 그레이트폴스 공원(Great Falls Park)
2021년말 기준으로 미국에는 '국립공원'인 내셔널파크(National Park)가 63곳이 있는데, 위기주부는 지금까지 그 중 42곳을 방문했다. (이번에 두 차례의 대륙횡단을 하면서 7곳을 새로 방문했음) 그 63곳 중에서 대다수가 서부에 모여있어서 LA에 살면서 많이 가볼 수 있었지만, 이사 온 동부에는 추가로 가볼 수 있는 국립공원은 별로 남지 않았다... 하지만, 범주를 '넓은 의미의 국립공원'인 National Park System에 속하는 423곳의 Official Units/Parks로 확장하면 이야기가 달라지는데, 서부에는 많이 없는 국가기념물(National Monument), 역사공원(Historical Park), 전쟁터(Battlefield) 등등이 동부, 특히 그것도 집 주변의 워싱턴DC와 버지니아, 메릴랜드에 집중적으로 모여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423곳의 오피셜유닛 리스트에는 없는 동네 공원도 국립공원청(National Park Service, NPS)에서 직접 관리를 한다는 사실은 여기 이사와서 처음 알았다! 이 곳은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인 그레이트폴스 공원(Great Falls Park)의 입구로 NPS 로고가 전광판 위로 보인다. 별도의 비싼 입장료가 있다고 알고 갔지만, NPS가 관리하는 곳이라서 국립공원 연간회원권(Annual Pass)으로도 무료입장이 가능해서 아주 기뻤다~^^ 추수감사절 연휴 토요일에 가족이 워싱턴DC 구경을 잠깐 하고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처음으로 들러봤다. 뒤로 보이는 비지터센터는 똑같은 2층 건물을 점대칭으로 두 개 만들어서 구름다리로 연결을 해놓았는데, 내부도 과연 똑같은 지는 닫혀있어서 확인을 할 수 없었다. (구글맵으로 공원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넓은 산책로에 개를 데리고 나온 사람들, 분리수거 쓰레기통과 피크닉 테이블 등을 보면 영락없는 '동네공원'의 모습이지만, 앞서 링크한 국립공원청 홈페이지에 별도 사이트도 있고 까만줄의 브로셔도 입구에서 제공을 하는 연방정부에서 관리하는 공원이 맞다. "그럼, 국립동네공원으로 불러야 하나?" 홈페이지의 공원지도로 포토맥 강(Potomac River)에 있는 폭포의 서쪽 강변이 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쪽 메릴랜드(Maryland) 주의 강변은 별도의 국립역사공원으로 또 지정되어 있는데, 기회가 되면 따로 방문한 후에 자세히 소개를 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폭포의 모습을 볼 수 있는 3개의 전망대가 차례로 나오는데, 가장 넓고 편하게 볼 수 있다는 2번 전망대로 제일 먼저 갔다. 잘 만들어진 안내판을 따라서 넓은 산책로를 따라 가니까,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널직한 전망대가 나왔다. 오호~ 예상보다 훨씬 멋진 풍경에 가족 3명이 모두 감탄을 했다. 동부에서는 약간의 낙차가 있는 급류도 모두 '폭포(falls)'라고 부르기 때문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폭포 아래쪽에는 카약을 타고있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저 위쪽에서부터 카약이 있는 곳까지의 전체 낙차는 47피트(14 m)나 되고, 좌우의 폭도 350피트(110 m)나 되므로 '그레이트폴스(Great Falls)'라고 부를만 하다는 생각이다. 전망대에 서있는 모녀의 사진이다. 참, 이 멋진 곳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버지니아에 사시는 루나님의 블로그를 통해서였는데,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3번 전망대 입구에는 나무기둥이 하나 세워져 있는데, 1936년의 대홍수 때는 제일 위의 표식까지 강물이 불었었다고 한다! 하지만, 1996년에 마지막으로 기둥 제일 아래까지 물이 찼던 이후로는 상류쪽에 둑과 댐들이 보강되어서 더 이상의 홍수는 지금까지 없다고 하니... "사모님,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기 3번 전망대에서는 조금 멀기는 하지만 폭포의 전체 모습을 정면으로 감상할 수가 있었다. 그래서, 가족사진 셀카도 한 장 찍고, 난간에 앉아서 다정한 부녀사진도 찍었다. 지혜는 염색을 해서 머리가 하얗고, 나는 염색을 안해서 머리가 하얗다... 폭포수가 떨어지는 모습과 소리를 들려드리기 위해서, 망원렌즈로 찍은 동영상을 클릭해서 보실 수 있다. 마지막에 사람들이 보이는 강가의 절벽이 앞서 들렀던 2번 전망대이다. 비디오 앞에도 잠깐 나왔는데 강가까지 내려간 사람들이 있었다. 지도에 Fishermans Eddy라는 표시는 있지만 트레일 표시는 없었는데, 몰래 저 아래까지 내려가는 길이 있는 모양이다. 그 사람들을 보다가 중요한 장면을 놓쳤는데, 상류에서부터 카약을 타고 오른편의 하얀 급류를 따라서 래프팅을 하면서 또 두 사람이 내려온 것이었다. 11월말이라 물도 엄청 차가울텐데 참으로 진정한 스포츠맨들이다~ 나머지 급류 구간을 헤치고 내려가는 모습을 아내가 연속해서 찍은 것으로 움짤을 만들어 봤다. 전망대 입구에 국립공원청의 홍보용 트럭이 세워져 있었는데, 위기주부에게는 비슷한 트럭을 봤던 LA 산타모니카 산맥에서의 마지막 하이킹 추억이 떠올랐다. 이 트럭 뒷면에 그려진 지도는 전편에서 소개했던 조지워싱턴 기념도로(George Washington Memorial Parkway)로 제일 위의 녹색 표시가 여기 그레이트폴스 공원이다. 그래서 다시 확인을 해보니 이 곳까지 기념도로가 연결은 되어있지 않지만, 공식적으로는 그 공원도로의 일부로 국립공원청에서 여기를 관리하는 것이었다.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지막으로 1번 전망대에 잠시 후다닥 들렀다. 폭포에서 제일 가까워 왼편의 급류는 바로 앞에서 볼 수 있지만, 전체의 모습은 바위에 가려서 잘 보이지가 않았다. 무엇보다 전망대가 난간은 있지만 울퉁불퉁한 바위라서 조심해서 올라와야 했다. 왼쪽 강건너편에 멀리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 희미하게 보이는데, 메릴랜드 주의 역사공원에 포함된 Olmsted Island Overlook이라고 한다. 이렇게 땡스기빙 연휴의 가족 나들이를 마무리한 후에 집 근처에 있는 스시 뷔페로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일요일 이른 아침에 보스턴으로 돌아가는 지혜를 배웅해주기 위해서 집에서 15분 걸리는 덜레스 국제공항(Dulles International Airport)에 왔다. 1962년에 오픈한 공항의 저 멋진 터미널 건물의 설계는 핀란드계 미국인 건축가인 에로 사리넨(Eero Saarinen)이 했는데, 이번 대륙횡단에서 아내가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라고 한 세인트루이스의 게이트웨이아치(Gateway Arch) 국립공원의 반짝이는 스테인레스 아치를 설계한 사람이기도 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