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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 창경궁 #6) 대비를 위해서 지었던 곳. 자유로운 구성이 돋보이는 궁궐. 창경궁 昌慶宮 <대온실, 영춘헌, 집복헌>

(서울 종로구 / 창경궁 #6) 대비를 위해서 지었던 곳. 자유로운 구성이 돋보이는 궁궐. 창경궁 昌慶宮 <대온실, 영춘헌, 집복헌>

창경궁은 자연 지형을 따르면서도 생활의 편의를 추구하여 궁궐을 조성했기 때문에 아름다움과 친근함을 두루 갖춘 궁궐이었습니다. 하지만 창경궁만의 이 매력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많은 부분이 훼손됐습니다. 일제는 창경궁 안의 주요 건물들을 대부분 헐어내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하여 시민 공원으로 바꾸고 이름도 창경원(昌慶苑)으로 바꾸며 궁궐이었던 곳을 격하시켰습니다. 어르신들이 창경궁보다 창경원이라는 이름을 더 익숙하게 느끼는 이유죠. 창경원은 광복 이후에도 오랫동안 동물원 및 식물원으로 활용됐습니다. 그 증거가 바로 유리로 만들어진 '대온실(大溫室)' 입니다. 대온실은 1909년에 완공하여 식물원으.......

(서울 종로구 / 창경궁 #5)대비를 위해서 지었던 곳. 자유로운 구성이 돋보이는 궁궐. 창경궁 昌慶宮 <자경전 터, 성종태실, 춘당지>

(서울 종로구 / 창경궁 #5)대비를 위해서 지었던 곳. 자유로운 구성이 돋보이는 궁궐. 창경궁 昌慶宮 <자경전 터, 성종태실, 춘당지>

창덕궁과 창경궁은 내부에서 길이 연결됩니다. 그래서 저는 연결된 길을 따라 이렇게 이번 서울 궁궐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인 창경궁(昌慶宮)에 도착을 했습니다. 본래 창경궁 터에는 1418년에 세운 수강궁(壽康宮)이 있었습니다. 수강궁은 세종 때 상왕 태종을 위해 창덕궁 동편에 창건한 궁이었습니다. 1483년에 성종이 3명의 대비를 위해 이 터에 크게 궁궐을 다시 짓고 창경궁이라 불렀습니다. 창경궁은 창덕궁과 사실상 하나의 궁궐을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두 궁궐을 경복궁의 동쪽에 있는 궁궐이라 하여 둘을 합쳐 동궐(東闕)이라 불렀습니다. 두 궁궐은 후원의 정원도 공동으로 이용했습니다. 창경궁은 창덕궁의 부족한 생활공간을 보충.......

(서울 종로구 / 창덕궁 #14)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의 정궁 昌德宮 <석복헌, 성정각>

(서울 종로구 / 창덕궁 #14)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의 정궁 昌德宮 <석복헌, 성정각>

낙선재 동편에 자리한 석복헌(錫福軒)에 왔습니다. 낙선재의 안채 역할을 하는 건물이고 낙선재 본채보다 약 1년 늦은 1848년에 지었습니다. 헌종의 후궁이었던 경빈 김씨가 머물렀던 곳입니다. 하지만 이 석복헌이 완공된 후 1년 만에 헌종이 죽게 되자 경빈 김 씨는 바로 이곳을 떠나야 했습니다. 이후 석복헌은 주인이 없이 비게 되죠. 석복헌의 이름인 석복(錫福)은 복을 내려준다는 좋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헌종이 자신의 뒤를 이을 왕세자가 이곳에서 태어나기를 바라면서 지은 이름이지만 안타깝게도 헌종은 경빈 김씨를 맞은 후 2년도 살지 못하고 승하하고 말죠. 생전에 후사를 보지 못하고 요절해 버리면서 헌종은 정조의 마지막 남.......

(서울 종로구 / 창덕궁 #13)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의 정궁 昌德宮 <흥복헌, 낙선재>

(서울 종로구 / 창덕궁 #13)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의 정궁 昌德宮 <흥복헌, 낙선재>

이제 이번 궁궐 여행 중에 가장 마음이 무거워지는 시간이 됐습니다. 우리가 국권을 상실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된 그날의 역사가 담겨있는 공간을 방문합니다. 대한제국은 1910년 8월 22일에 이 사진 왼쪽에 살짝 보이는 흥복헌에서 체결된 조약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죠. 조약은 22일에 체결되었지만 백성들에게 발표된 것은 일주일 후인 8월 29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공식적으로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날은 8월 29일이 맞습니다. 사진 왼쪽의 모서리에 있는 작은 건물. 흥복헌(興福軒)은 내전의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임금이 신하들을 접견하는 장소로 자주 쓰였습니다. 이 대조전의 흥복헌이 살짝 안쪽에, 그리고 구석에 있는 것을 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