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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posts정유미 개인전 CURVE!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 9월 14일까지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 5기 입주작가인 정유미의 개인전이 9월 14일까지 열립니다. 전시 제목은 'CURVE'인데요. 제목대로 정말 모든 작품들이 curve 곡선으로 표현됐습니다. 저는 작품을 본격적으로 감상하기에 앞서 정유미 작가를 만나 전시회 컨셉과 작품의 의도 등을 들어보았습니다. 정유미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 5기 입주작가) 전시된 회화와 드로잉, 설치 작품들은 구체적인 형상을 나타내기보다, 추상적인 요소들이 부각됐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추상적인 그림에서 어떤 구체적인 사물이나 장소 같은 게 떠오르던데요. 보는 사람마다 각각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겠지요. 이게 추상미술 감상의 묘미가 아닌가 합니다. ▶ N-Drawing 시리즈 자그마한 액자 속에 24개의 시리즈로 담은 은 2016년 2달간 노르웨이 레지던시에 머무르며 제작했다고 하는데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웅장했던 그곳의 자연 속에서, 이전과는 많이 다른 작품이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 그동안은 무의식적으로 경계심 같은 막을 치고 살았고, 작품활동에 있어서도 '커튼, 막'과 같은 '눈에 보이는 가리는 것'을 많이 보려고 했다면, 웅장한 자연 속에서 지내면서 이 때부터는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네요. 내 안의 막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막을 허물려고 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들을 표현하고자 했다고요. N-Drawing (2016) 시리즈 그래서 그림 하나하나가 구체적인 사물이 아니라, 경험에서 나온 감정과 마음으로 느끼는 신비로움을 상상한 그림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막이 아니라, 막을 어떻게 허물 수 있을지에 집중했다고 합니다. 24개의 작품 중 베어내고 남은 나무밑둥, 그리고 모눈종이에 금색, 은색의 가느다란 와이어로 바느질을 한 작품, 노르웨이 잡지로 만든 콜라주가 특이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특히 콜라주는 정유미작가가 "읽을 수 없는 노르웨이의 잡지를 색종이로 활용했다"고 하는군요. N-160514. 종이에 콜라주 작품 하나하나가 작가의 어떤 마음, 어떤 상태를 나타내고 있을지 상상하면서, 그 그림을 볼 때 나는 어떤 마음인지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 Blue Drawing Blue Drawing 전시실 천정에 S자로 설치된 레일에서 바닥까지 찰랑찰랑 늘어진 설치작품은 Blue Drawing인데요. 이번 전시회에는 드로잉 뿐 아니라 다양한 내용을 담고 싶어 제작했다고 합니다. 정유미작가는 2014년까지 병풍이나 버티컬 작업을 많이 했었다고 해요. 작품에 사용한 재료는 푸른색 낚시줄이라고 하는데요. 무려 20,000 m의 감겨있는 낚싯줄을 일정한 길이로 자르고 일일이 펴서 늘어뜨리는 작업이 만만치 않았다고 합니다. 이 작품은 작가가 지속적으로 다루고 있는, 모호하게 가려진 듯 혹은 열린 듯한 반투명성에 대한 관심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해요. 전시장에서는 드로잉과 회화 작품 사이에 설치된 이 작품 사이를 젖히고 지나갈 수 있어요. 이쪽과 저쪽의 경계, 서로 다른 작품세계로 구분되지만 서로 보이기도 하고 자유롭게 오가기도 하는, 가느다란 줄들을 drawing이라고 했네요. 정유미 작가는 지난 3월 서울 '갤러리 밈'에서 전을 통해, 타인과의 관계 속에 존재하는 심리적 경계를, 어떤 사물을 떠올릴 수 있는 가시적인 하얀 덩어리들에 빗대어 표현했었는데요. 이번 전에서는 추상적으로 나타납니다. ▶ White Wind 작가가 'White Wind'라고 제목을 붙인 그림은 색깔도 모양도 없는 '바람'을 표현한 겁니다. 노르웨이에서 보냈던 길지 않은 시간이, 정유미 작가에게는 갖고 있던 많은 것을 허물어뜨렸던 시간이 되었는데요. 당시에 경험했던 바람의 느낌을 눈에 보이게 표현을 할 때 이렇게 하얗고 푸르른 곡선들로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구름이나 파도, 얼음 등을 떠올렸는데요. 눈에 보이는대로, 역시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만을 생각했던 거지요. 하지만 그것 또한 감상하는 자의 자유니까요. 정유미 작가 역시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의 마음에 맡기고 싶다고 하네요. White Wind 왼쪽부터 Slow Curve, Curve, White Wind 정유미 작가의 이번 작품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작가의 경향이랄까 기법의 변화를 볼 수 있어요. 초기에 비해 점점 갈수록 섬세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왼쪽부터) Cornerstone, Soft Stage, Slow Curve 정유미 작가는 회화 작품들은 먼저 어두운 색을 칠하고 그 위에 점점 밝은 색을 덧칠해주는 화법을 쓴다고 말합니다. 이런 방식은 작가가 동양화를 전공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알고보면 어떤 부분은 몇 켜의 물감이 덧칠해진 거지요. 한올한올 굉장히 섬세해서 물어보니 한올한올 그린 건 아니라고 해요.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섬세한지 감탄스럽습니다. ▶ Whispering Wind, Floating Wind, Recovered mind (왼쪽부터 ) Whispering Wind, Floating Wind, Recovered mind 물 위에 떠있는 부표를 빨간 원으로 나타낸 두 작품은, 노르웨이의 피요르드 해안 아주 조용한 공간에서 붉은 부표들이 가까워질 듯 멀어질 듯 서로간의 간격을 유지하는 모습이, 사람들이 서로의 관계에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왼쪽부터) Floating Wind, Recovered mind 저는 절벽 위로 떠오르는 풍선을 생각했는데요. 작가나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게 당연하지요. 제가 둥둥 떠오르고 싶은 마음이었나 봐요. 정유미 작가의 개인전은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 제5기 입주작가들의 릴레이 개인전 중 5번째로 열리는 것으로, 지난 프리뷰전과 박용화작가, 서혜순작가, 고재욱작가, 성정원작가에 이어 국내 작가들의 개인전으로는 마지막입니다. ☞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 5기 입주작가 프리뷰전 ☞ 박용화의 ☞ 서혜순의 ☞ 고재욱의 ☞ 성정원의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 크기가 큰 작품은 181.8㎝ x 227.3㎝나 되는데요. 아무래도 캔버스가 크면 작품제작에 힘이 많이 든다고 해요. 발받침대를 이용해 오르락내리락 하기도 하고, 멀리 떨어져서 확인하는 과정 등, 특히 올여름은 기나긴 폭염으로 더욱 어려웠을 것으로 짐작은 했지만요. 정유미작가는 테미예술창작센터가 작업을 하기에 환경이 정말 좋아서, 더위도 잊고 작품에만 몰두했다고 합니다. 어느덧 폭염은 물러가고 선선한 가을바람 부는 테미에서, 노르웨이에 온 듯 피요르드의 시원한 바람과 포말을 느껴 보세요. = 정유미 개인전 / CURVE = 일 시 : 2018년 9월 6일(목) - 14일(금) 10:00 - 18:00 (전시기간 중 휴관 없음) 장 소 :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 관 람 료 : 무 료 관람문의 : 042-253-9810∼13 2018 대전광역시 소셜미디어기자 조강숙
이응노, 낯선 귀향! 고암 이응노 도불 60주년 기념 국제전
고암 이응노가 프랑스로 건거잔지 60주년을 기념하는 국제전 이 오는 9월 30일까지 이응노미술관에서 열립니다. 개막식날 미술관을 찾았습니다. 대전 이응노미술관 2018.7.13~9.30 이응노 화백(1904~1989)은 60년 전, 50대의 나이에 유럽의 미술계에 도전했는데요. 파리동양미술학교를 세우고 다양한 작품활동을 펼치며 아시아를 대표하는 예술가로 우뚝 선 분입니다. 1960년대 말, 정치적인 문제로 대전교도소(1967~9)에 수감된 적도 있는데, 프랑스 정부의 탄원 등으로 특별 사면되어 프랑스로 돌아갔습니다. 이후 1977년에도 백건우, 윤정희 납치 미수의 배후로 몰려 곤욕을 치루다가 1983년에 프랑스로 귀화했습니다. 민주화 바람 이후 1989년 1월에 서울 호암미술관에서 열리는 회고전을 앞두고 파리에서 별세해, 결국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다시는 한국 땅을 밟지 못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일까요. 대전을 떠나고 거의 50년 만에 돌아오는 의미에서인지 반백년 세월이 훌쩍 흘러 그의 귀향은 낯선 귀향이 되었습니다. 문화강국으로 자부심이 상당한 프랑스 문화 당국은, 프랑스에서 공부하며 작품 활동을 하는 뛰어난 작가들에게 귀화를 권했다고 합니다. 고암 이응노와 문신 작가가 대표적입니다. 이응노는 불행하게도 한국전쟁 때 월북한 아들 문제와 관련해 수감된 후 고초를 치르고 결국 프랑스로 귀화했고요. 문신 작가는 1980년에 귀국해 고향인 창원에 문신미술관을 개관(1994)하고 1년 후 타계했습니다. 2전시실에서 3전시실로 지나가는 복도에 전시된 프랑스 전시 포스터에서 이응노와 함께 한 문신 작가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포스터도 한번 쯤 살펴보며 지나시기를 권합니다. 이번 이응노미술관 전시는 민선 7기가 들어서고 처음 열리는 국제 전시입니다. 프랑스 세르누쉬 미술관에서 이응노를 연구하는 학예사인 마엘 벨렉이 한국 관람객을 위해 직접 작품전을 기획했다고 합니다. 세르누쉬 미술관의 이응노 작품은 한번도 소장처를 벗어난 적이 없다고 하는데요. 이번 기회에 마엘 벨렉은 세르누쉬 미술관과 퐁피두 센터가 소장하고 있는 이응노 작품 중 29점을 대전의 이응노 미술관에 대여하도록 적극 협조했다고 합니다. 작품 설명을 하는 프랑스 세르누쉬 미술관의 마엘 벨렉 학예사 민선 7기 허태정 시장이 이지호 관장(이응노미술관)과 함께 학예사의 설명을 들으며 작품전을 관람하고 있다. <1전시실-영감의 원천> 변혁의 격랑기를 정면으로 맞선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겠지만, 이응노도 출생부터 타계할 때까지 참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1904년 대한제국 시대의 백성으로 태어나 일본 유학을 하는 등 일제강점기에 성장했고, 독립국가 대한민국의 국민이었다가 1983년에는 프랑스로 귀화인이 되어 타국에서 타계했습니다. 그 시절에 보기 드물게 시대를 앞서가며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 유럽 전역을 여행하며 작품을 전시했습니다. 위 사진 속 관람객이 보고있는 이 작품은 이응노가 일본에서 공부하던 시절인 1940년 대의 작품으로 '등나무(Wisteria)'입니다. 현재 고려대학교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2전시실-유럽 미술계로의 융합> 1950년대 남한의 예술가들이 프랑스와 미국의 추상주의를 수용하면서 이응노의 작품도 추상 표현기법을 가미해 새롭게 거듭납니다. 잡지에서 흑백으로만 보았던 서양 회화가 단순한 2차원 회화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물질성과 질감을 탐구하며 콜라주 작업을 합니다. 이능노는 1962년에 파리 파케티 화랑에서 콜라주 작품을 최초로 전시했습니다. 2전시실의 작품은 대부분 세르누쉬 미술관의 소장품입니다. <3전시실-동양화가로서의 이응노> 이응노는 고암이라는 호를 사용하기 전에 죽사라는 호를 썼습니다. 대나무를 좋아했다고 하는데, 이응노미술관을 지을 때 전시실을 잇는 회랑의 한 벽을 유리로 처리하고 밖에 대나무를 심은 것도 이응노가 대나무를 좋아했던 의미를 담은 것입니다. 그림의 대나무가 죽죽 뻗어있는 왼편 회랑의 창으로 푸르른 대나무가 보입니다. 유리 너머의 세상은 엑스포시민공원과 맞닿아 있습니다. 전혀 낯 설지 않고 푸르기만 합니다. 관람객들이 회랑에서 보고 있는 것이 위에서 언급한 바로 이 전시 알림 포스터입니다. 1973년 9월에 프랑스에서 열린 전시인데, 한국 작가가 두 명 있습니다. 왼쪽 아래 연두색 동그라미 속의 작가가 이응노, 노란색 동그라미 속의 작가가 문신입니다. 이응노미술관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엑스포시민공원 <4전시실-공인예술가 對 정치적 반체제 인사> 1967년, 이응노는 프랑스 국립제작소와 공동 작업을 하며 도불 7년 만에 일류 예술가로 인정을 받는 좋은 일도 있었고, 남한 정부로부터는 북한 간첩과 연관지어 체포되는 일도 일어났습니다. 일생의 전환기이자 작품의 전환기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대전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으면서 밥풀을 뭉쳐 조각 작품을 하는 등 독특한 예술 세계를 펼쳤고, 1969년에 프랑스로 돌아간 이후 모국에서는 작품을 전시하지도 못하고 오히려 타국인 프랑스에서 성공적인 이력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3전시실에서 관람객의 발길이 가장 많이 머무는 작품은 바로 위 사진속 작품으로, 파리의 3대 미술관 중의 하나인 퐁피두 센터에서 소장하고 있는 이응노 화백의 작품입니다. 현장에서 직접 보시면 왜 관람객이 오래 머무는지 이유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한글을 읽지 못하는 프랑스 사람들이 이 작품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 지 궁금합니다. 이 작품은 1978년 작품인데 이응노 화백은 당시 한국의 현실에 엄청난 분노와 함께 안타까움을 느낀 것 같습니다. 역사를 살펴보니 故 박정희 대통령이 통일주체국민회의의 체육관 간접 선거를 통해 9대 대통령에 선출된 해이고, 고려대생 3천명이 <1978민중선언>을 발표했고 경북대생 2백여 명이 을 발표하며 유신철폐 등을 주장한 해입니다. 이응노 화백은 고국에서 들려오는 안카까운 소식을 듣고 끓어오르는 분노를 이 그림에 담은 것으로 보입니다. 붉은 색의 굵은 라인이 굴곡져 흐르는데 그 안에 작가의 심경이 한글로 담겨 있는 모습은 뜨겁게 흐르는 혈관과 그의 마음 같습니다. (윗줄 오른쪽부터)".. 독재는 반민족, 반민주, 반인류주의다. 일.미 침약주의 축출하고 조국통일 민족경제 건설하자 (아랫줄 오른쪽부터)유신독재타도 민주민권 쟁치하자 외세배격 민족단결 평화통일 이룩하자" (그림에 있는 그대로) 퐁피두 소장품인 만큼 이 전시가 끝나면 프랑스로 돌아갈테니 다시 만나기 힘든 작품일지도 모릅니다. 이번 전시에서 충분히 감상해보세요. <5전시실-고국을 향한 마음> 이응노는 1980년 광주항쟁 소식을 듣고 군상 시리즈를 그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작품의 타이틀이 단순히 'People'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군상'과 '사람들'은 단어가 품는 뜻이 엄청 다르게 느껴지는데, 번역의 한계인지 좀 아쉽습니다. 군상 옆으로는 군상이 모여 만든 '反戰 平和' 글씨 그림도 있습니다. 개막식에는 이응노미술관 로비가 북적댈 정도로 많은 분들이 찾아와 '이응노, 낯선 귀향' 전시를 축하했습니다. 입장료는 어른 기준 500원이라는 것은 다들 알고 계시죠? 작품을 감상할 때에는 어디 소장품인지도 살펴 보시고 대전교도소에서 만든 작품도 찾아보세요. 도슨트 설명은 매일 3회(11:00, 14:30, 16:30) 있습니다. 월요일은 휴관이고 화요일부터 일요일, 10~19시까지 관람할 수 있습니다. 매주 수요일은 오후 9시까지 관람할 수 있는데요. 이응노 톡 프로그램에 신청하면 오후 8~9시까지 커피와 쿠키를 먹으며 학예사로부터 설명을 들을 수 있으니 특히 권해드립니다. 이응노, 낯선 귀향 2018.7.13~9.30 입장료 어른 기준 500원/ 10~19시 관람(월요일 휴관) 도슨트 설명 매일 3회 11:00, 14:30, 16:30 이응노 톡 매주 수요일 20-21시 커피, 쿠키 제공 / 학예사의 전시 설명 신청 문의 042-611-9800
1952년 대전, 그해 여름은 뜨거웠네! 대전시청 사진전
새로운 대전에 대한 희망을 갖게하는 2018년 7월. 1952년 대전에서 촬영된 특별한 사진과 함께하는 전시회가 개막했습니다. 기록 사진은 항상 중요한데요. 특히 과거의 필름 사진은 지금처럼 변조가 가능한 디지털 사진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담고있는 사진인데요. 그렇기 때문에 더욱 그 시절을 이해하기 좋죠. 지금도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는 대전 원도심인데요. 66년 전 6.25 한국전쟁 당시 대전의 사진을 보니, 그 시절 이곳에서 살았던 사람이 아니면 사진속 풍경이 대전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대전시로 요청이 왔다고 하지요. 어느 지역에서 촬영한 사진인지 검증해달라고요. <1952년, 그 여름의 대전> 개막공연과 개막식 [1952년, 그 여름의 대전] 사진전 개막공연, 아코디언 연주 서은덕 사진展<1952년, 그 여름의 대전> 개막식이 18일 오후 3시에 대전시청 2층 로비에서 열렸는데요. 이번 전시는 오는 8월15일까지 한달 간 계속됩니다. 이날 개막식 축하공연에서 복합문화공간 '구석으로부터'의 서은덕 대표가 아코디언 연주로 '비목', '대전블루스'를 연주했습니다. 비목은 전쟁 희생자를 급히 묻고 나무비석 하나 달랑 세울 수밖에 없었던 슬픈 전쟁의 시절을 담았고, 대전블루스 또한 1956년에 발표된 곡이니 그 시절을 이해하기에 딱 알맞는 선곡이었습니다. 대전광역시 문화체육관광국 정해교 국장 [1952년, 그 여름의 대전] 사진전 개막. 2018.7.18~8.15 정해교 대전시 문화체육관광국 국장의 개막 인사말에 이어 드디어 전시를 가리고 있던 흰 장막이 활짝 열렸습니다. [1952년, 그 여름의 대전] 사진전 2018.7.18~8.15 대전광역시청 2층 로비 전시장 100년도 안 된 역사인데 까마득하게 멀리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남아있는 자료가 없기 때문입니다. 전쟁 시기니 모두 정신이 없었겠지만, 그 때도 기록 담당관은 있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맡은 일을 했어야 하는데요. 이렇게 외국인이 촬영한 자료가 나와야 알 수 있으니 많이 아쉽습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사진은 모두 6.25 한국전쟁 당시 참전했던 미국인 토마스 휴튼 상사가 찍은 사진이라고 합니다. 위 사진에서 오른쪽 멀리 서있는 등신상 크기의 주인공이 사진을 남긴 휴튼 상사입니다. 휴튼 상사의 외손주인 뉴튼 대령이 지난 6월에 대한민국 육군에 사진을 기증했는데요. 뉴튼 대령은 현재 미8군 1지역대 사령관이라고 합니다. 뉴튼 대령은 외할아버지 유품에서 이 사진들을 찾았다고 하는데요. 뉴튼 대령의 근무지인 미8군도 한국이라서 더욱 관심을 가졌을 것 같습니다. 뉴튼 대령이 기증한 239장의 사진 중 많은 분량이 대전 지역에서 촬영한 것이라서 육군정보기록단은 대전광역시에 협조 요청을 했고, 원본 파일을 받아 철저한 고증절차를 거쳐 대전광역시 문화재 종무과와 대전시립박물관이 공동으로 전시를 준비했습니다. 전쟁과 도시, 대전 in 1952 이번에 전시되는 사진 중 50여 장은 역사적 가치가 높은 기록사진으로, 한국 전쟁 당시의 대전을 담은 최초의 칼라 사진이어서 더욱 특별하다고 합니다. 1950년 6월25일에 북한군의 남침으로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이승만 정부는 몰래 서울을 빠져나와 6월27일에 대전에 도착했습니다. 그 때부터 7월1일 대전을 떠나기 전까지 나흘동안 대전은 대한민국 임시수도였습니다. 7월20일엔 대전이 북한군에 함락됐다고 하는데, 위키백과에 떠르면 대전이 임시수도였던 것을 7월16일까지 본다고 합니다. 그럼 이승만이 7월1일에 대전을 떠났는데 정부는 16일까지는 남아있었다고 봐야하는지요. 임진왜란 때 선조가 생각납니다. 지도자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각성할 일입니다. 한국 전쟁 당시 나라의 지휘체계가 얼마나 황망했을지 불 보듯 뻔합니다. 토마스 휴튼 상사와 미8군 91중차량 정비 중대 이 전시의 사진이 촬영된 1952년, 휴튼 상사의 카메라에 담긴 사진은 폐허 속에서도 사람들의 표정이 어둡지만은 않습니다. 미군들의 표정도 한결 여유롭게 보입니다. '이곳부터 금연'이란 표지판 앞에서 시가를 물고 있는 여유와 유머를 보여주는 사진이 있어서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습니다. 1952년 7월의 전쟁 상황이 어떻길래 표정에 여유가 보이는지 궁금해서 책을 찾아 보았습니다. '6.25 전쟁 1129일'이란 책인데, 수년 전 부산의 한 박물관에 갔을 때 비매품으로 받아온 책입니다. 여행 중인데 책이 두껍고 무거워서 놓고 올까 고민하다가 받아왔는데, 이렇게 유용할 줄 몰랐습니다. 1952년 7월에는 이때부터 이미 휴전 협상을 진행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전선은 38도선을 두고 오르내리며 국군과 유엔군이 북한군 , 중공군과 치열하게 접전했으니, 대전은 후방이라 한결 숨을 돌릴 수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강과 임진강에 철도교랑도 복구가 완료됐다고 합니다. 영렬탑 지금은 이전했는데, 중구 선화동 언덕에 있던 영렬탑이 이 때도 우뚝 서있는 것이 보입니다. 설립 시기에 말이 분분했던 영렬탑은 이사진을 근거로 일제 강점기 설립에 무게가 실릴 것으로 보입니다. 혹시 어딘지 아시겠어요? 원래 있던 자리는 선화동 언덕이었는데 2016년에 양지근린공원이 만들어졌습니다. 영렬탑은 그보다 거의 10년 전인 2007년에 보문산의 보훈공원으로 옮겼습니다. 대전지방보훈청에 따르면 이 영렬탑은 1942년 일본신사로 건립됐다가, 6.25 전쟁이 휴전되고 몇년 후인 1957년에 보수해 전몰 장병 1712명의 위패를 봉안했다고 합니다. 대전시가와 사람들 이 다리는 목척교라고 설명을 들은 것 같습니다. 그해 여름도 뜨거웠는지 길을 지나는 아저씨도 노점상 아저씨도 모두 밀짚모자를 쓰고 있습니다. 국방색 바지와 가죽으로 보이는 신을 신은 노점상은 수염도 멋지게(?) 기르고 멋스러운데요. 그 옆으로 대통령 선거 포스터가 붙어있습니다. '기호는 같은 2번 대통령은 이승만 박사, 부통령은 함태영 선생으로'라고 적혀있네요. 전쟁 중에도 민주주의의 기본은 했지만 1952년 여름에 국민직접선거로 개헌하면서, 다른 후보들이 선거를 준비할 틈도 주지 않고 한달 만에 선거를 마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집권당이었으니 기호가 1번인데, 왜 2번으로 써있는지 의문입니다. 또한 1952년에는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하계 올림픽에 선수도 파견해 역도에서 동메달도 하나 받았습니다. 1952년 그해 여름은 진짜 뜨거웠죠! 사진 오른쪽 하천이 대전천이라고 합니다. 하천부지가 이렇게 넓게 펼쳐졌다니! 그 위로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판자집이 보이고 지류에서 빨래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입니다. 물도 맑고 대전천의 수량도 넉넉하게 보입니다. 북한에서 피난내려온 사람들이 많아서 그 때도 곳곳에 냉면집이 많았다는 것을 이 사진이 증명합니다. 불에 그을린 폐허 건물 1층에 대충 가게를 열어 냉면을 팔았군요. 무슨 돈으로 사먹을 수 있었을까요? 지붕은 날아가고 벽체만 남은 저 건물은 교회 건물인데 지금은 없어졌다고 합니다. 지붕은 날아갔지만 상당히 튼튼해보이는데, 만일 그대로 보존했다면 마카오의 상징인 성바오로성당(앞면만 남아있음)처럼 시대를 기억하게 할 수도 있었을까요? 수운교와 아이들과 변두리 풍경들 이번 사진전에서 대전 수운교의 옛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교주의 예언에 따라 광복을 전후해 수운교도들이 대거 남쪽으로 내려왔는데 그 일부가 지금의 유성구 금병산 기슭에 자신들의 신앙촌을 건설했습니다. 수운교 본부는 북한 인민군의 여단사령부로 사용되기도 했다니 인연이 상당하군요. 수운교 광덕문, 육모정이 그때도 있었다니 의미를 새기며 다시 가봐야 하겠습니다. 부산의 유명한 감천마을도 한국의 증산교 계통인 태극도 신도들이 1950년에 피난와서 생긴 마을이라고 하지요. 교통을 정리할 만큼 차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정표에는 신탄진은 SINTAN으로, 회덕을 HADOG이라고 써놨는데, 회덕까지 8.6 ㎞ 거리라고 표시했네요. 용남여객이 운영하는 영등포행 뻐-쓰 푯말도 보이고 대전X광선과 의원 나무간판도 보이는걸 보니, 1952년 7월의 대전은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많이 회복된 모습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진 속에 등장하는 10세 전후의 어린이들이 대부분 지금의 70대 어르신 들입니다. 먼 과거 같은데 그리 멀지도 않군요. 사진 속 대전 도심에서 보이는 둘레산들이 지금 느끼는 것보다 훨씬 높고 날카롭게 보이는 것이 새롭습니다. 어떤 산인지 궁금한데 안여종(대전문화유산 울림) 대표에게 문의해봐야 하겠습니다. 육군이 사진을 기증받고 내부에서만 전시를 한 번 연 이후에 국민에게 공개되는 것은 이번 대전 전시가 처음입니다. 사진은 이 전시를 마친 후 대전시립박물관에 보관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문의: 대전광역시 문화재종무과 042-270-4512 / 대전시립박물관 학예연구실 042-270-8611
대전무형문화재 제12호 김관식 악기장의 화양연화(花樣年華)는?
대전무형문화재 제12호 김관식악기장(북메우기) 의 작품전시회가 7월 20일부터 8월 19일끼지 대전전통나래관(동구 소제동)에서 열립니다. 전시회 제목은 인데요. 동명의 홍콩영화도 있지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만개하는 화려한 꽃에 비유한 말입니다. 김관식 악기장이 말하는 '인생의 가장 화려한 시간'은 언제였을가요? 올해는 2018 평창올림픽이 개최된 해로,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 이후 30년만의 국가적 행사가 치러졌습니다. 88서울올림픽은 김관식악기장에게 인생에서 가장 화려했던 기억으로 새겨져 있는데요. 19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 개회식에서 김관식 악기장이 기증한 이 등장해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에요. 88 서울올림픽 개막식 당시 등장했던 '평화통일의 북' (김관식 악기장 소장 사진) 이제 30주년을 기념해, 전통방식과 김관식 악기장만의 방식으로 시대를 메워낸 작품들을 선보이는 전시회를 갖게 된 것인데요. 김관식악기장의 전시작품 이번 전시는 서울올림픽 개회식의 ‘평화통일의 북’, 대전엑스포 개회식의 ‘평화우정의 북’ 등 5점의 재현본과 함께 관련 소장품과 기록, 사진, 동영상 등 약 40건 177점을 선보입니다. (왼쪽)청와대 춘추관 용고 (오른쪽) 대전엑스포 '평화우정의 북' 김관식 악기장은 대전 유성구에 북을 제작하는 공장을 운영하고 있고, 무형문화 놀이학교 등을 통해 대전시민과 어린이들에게 우리 북의 소중함을 알리고 있습니다. (겨울방학 신나는 무형문화 놀이학교 / 소고만들기) ☞ http://daejeonstory.com/8782 그런데 김관식 악기장은 30년 전에 어떤 인연으로 88서울올림픽에 대북 용고를 제작해 기증하게 됐을까요? 그 이야기는 인터뷰기사를 통해 자세히 소개하겠습니다. 88서울올림픽 당시 '평화통일의 북' 재현본 북 제작과정을 보여주는 전시물 = 대전전통나래관 기획전시 = 제 목 : 花樣年華(화양연화), 북으로 메워낸 순간들 일 시 : 2018년 7월 20일(금) - 8월 19일(일) 10:00-17:00 (월요일 휴관) 개막식 : 7월 20일(금) 15:00 장 소 : 대전전통나래관 3층 기획전시실 관람료 : 무료 관람문의 : 대전전통나래관 홈페이지 narae.djichc.or.kr:4445 ☏ 042-636-8008, 8061 2018 대전광역시 소셜미디어기자 조강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