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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posts대전 세동 농촌체험 휴양마을길 따라 사뿐사뿐 거닐다
계룡시로 넘어가기 전, 대전의 끝자락에 자리한 동네는 세동 농촌체험휴양마을입니다. 이곳에서 우리밀체험, 우리전통가양주체험, 자연생태체험, 농로자전거, 승마체험, 고유전통차예절체험, 황토찜질방농가숙박체험, 우리농산물수확체험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평소에는 그냥 스쳐 지나갔겠지만 이날은 이곳을 한 번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우측으로 들어갔습니다. 세동이라는 동네는 이번이 처음이거든요. 안쪽으로 조금더 들어오니 세동 상추마을이라고 쓰여져 있는 간판이 눈에 들어옵니다. 세동의 다양한 농촌체험은 주로 봄에 시작해서 가을까지 이어진다고 합니다. 체험을 하기 위해서는 인터넷 예약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합니다. 대전인데도 불구하고 대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곳입니다. 농촌의 풍경이 색다르게 느껴지는 여행지입니다. 걷다가 각종 채소를 재배하고 있는 비닐하우스도 한 번 들어가 봅니다. 체험을 할때 이곳에서도 할 수 있겠네요. 보통 대전에서 트레킹이라고 하면 대청호반길을 중심으로 걷는길이 많이 소개가 되고 있는데요. 대전 세동의 트레킹길도 걷기에 좋아서 저는 추천하고 싶습니다. 복잡하지도 않지만 소소한 볼거리와 농산물이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가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토마토가 자라고 있습니다. 아직 익기전이라서 새파란 모습이 아주 싱싱해 보이네요. 이렇게 싱싱한 토마토는 정말 오래간만에 봅니다. 맨날 시장이나 마트등에서 익은 것만 파는 것을 보았으니까요. 개울물이 졸졸 흘려내려가는 모습을 보며 천천히 걸어봅니다. 사람은 시간을 헤아릴 수 있지만 전자시계처럼 정확하게 측정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시간이라는 것은 우리의 의식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게 흐르도록 하는 마법(?)을 부립니다. 그냥 푸르른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지지 않나요? 어떤 사람은 시간을 아주 길게 느낄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그냥 짧게 지나가는 순간으로만 느낄 수도 있습니다. 적어도 이곳을 걷는 저에게는 시간이라는 것이 느껴지지가 않았습니다. 굳이 체험이 아니더라도 이곳은 걷기 좋은 곳입니다. 앞으로도 가끔씩 찾아와서 운동삼아 걸을 것 같습니다.
나홀로 여행 성북동산림욕장과 석조보살입상 부근에서
저도 다른 사람에 비해서는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대전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녀보는 것을 즐깁니다. 계룡시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는 성북동산림욕장은 조용한 곳이어서 혼자 생각할 때 찾아가곤 합니다. 여행은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데 활력을 줍니다. 방동저수지는 옛날에 데이트를 할 때 많이 왔던 기억이 납니다. 저수지 주변에도 맛집들이 많이 있어서 저수지를 돌아보고 지인들과 식사를 하면 하루가 즐겁습니다. 이제 성북동 산림욕장쪽으로 다시 올라가 봅니다. 방동저수지에서 더 안쪽으로 들어가야 성북동 산림욕장이 나옵니다. 유성구 성북동 일원을 산림휴양 명소로 조성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는데요. 대전숲체원, 성북동산림욕장, 방동정수지 등과 연계한 가칭 산림휴양관광특구로 지정받을 수 있도록 관련 절차를 밟고 있다고 합니다. 저도 이곳을 자주 와봐서 알지만 산림욕장으로서의 기능은 있어도 휴양림이라고 보기는 힘들었습니다. 앞으로 대전숲체원을 중심으로 숲속교실, 산림휴양관, 숲속의집, 숲속도서관 등이 갖춰서 휴양림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위쪽까지 올라가는 길에는 흙길과 벤치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치유의 숲은 오감을 만족시킵니다. 이곳이 만들어지게 되면 장동산림욕장과 장태산자연휴양림과 더불어 대전을 대표하는 숲 체험, 산림휴양 명소로 발돋움하게 됩니다. 숲속의 수목은 상쾌한 향기를 내는데, 이는 테르펜류라는 탄화수소 화합물때문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자율신경에 영향을 미쳐서 심신의 안정과 자기최면에 걸리기 쉽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도 이곳까지 올라오느라 땀을 흘렸으니 이 벤치에 앉아서 휴식을 취해봅니다. 문득 길가에서 만난 작은 보라색 꽃이 아름다워 보입니다. 스트레스가 쌓인 사람은 삼림욕을 즐기며 피로를 풀고요. 재활이 필요한 환자는 의학적으로 증명된 운동으로 삼림에서 몸을 치유합니다. 성북동산림욕장을 돌아보고 내려오는 길에 오래간만에 봉덕사로 향해봅니다. 봉덕사는 작은 사찰이지만 석조보살입상이 있어서 둘러볼만한 곳입니다. 봉덕사에 있는 이 석조보살입상은 두 번째 보는 것입니다. 소박한 모습의 석조보살입상의 입이 얼굴에 비해 상당히 작아 보입니다. 귀가 상당히 큰 것이 특징입니다. 전체적으로 조금 이색적인 느낌도 듭니다. 풍화의 흔적도 있지만 옷자락이 밑으로 내려오는 것을 잘 표현했습니다.그리고 오른손의 모양이 약간 독특합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대부분의 것들에 효용성을 부여한다고 합니다. 선물을 할 때도 그렇죠. 소중한 사람이나 비즈니스 차원에서 상대에게 선물을 할 때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지, 어느 정도 돈을 들이는 게 적당할지에 대한 정답이 없듯이 인생에도 딱 정해진 것도 없습니다. 몇년전부터 일과 삶, 둘 사이의 균형에 대해 고민하며 신조어들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일과 삶의 균형을 의미하는 워라벨(Work-Life Balance)이 그렇습니다. 바쁜 일상에서 삶을 돌아보려면 성북동 산림욕장과 소소한 볼거리인 석조보살입상을 만나보세요.
대전을 담다 '대전여지도' 대전창작센터 전시
아주 오래전은 물론 지금도 우리는 지도부터 찾아들고 어딜 갈지를 찾아봅니다. 대동여지도에서 들어간 ''여지도'라는 단어는 종합적이 내용을 담은 일반 지도를 일컫는다고 합니다. 지도가 없이도 해당 지역에서 어디든 갈 수 있다면 토박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대전하면 양반의 도시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과학의 도시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는 지역에 따라 대전에 대한 이미지는 또 달라집니다. 대전을 한 번에 모두 알기는 힘들겠지만 대전이라는 곳이 이런 곳이구나라고 엿볼 수 있는 전시전이 '대전여지도'였습니다. 여지도에서 여(輿)는 무언가를 하나로 묶는 느낌의 단어를 사용할 때 사용된다고 합니다. 대전을 한 마디로 말해서 이런 곳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대전여지도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지금 살고 있는 곳을 짚어보기도 합니다. 사람이 모여 살면서 도시가 되었습니다. 대전의 역사는 대전을 아는 사람의 수만큼 존재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대전은 다양한 사람들이 이사를 와서 정착하고 살아왔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뜨이는 작품은 테라코타 인물 초상조각인데요. 흙으로 제작한 무표정한 부동자세의 인물들과 그 인물들이 군집의 형태로 설치됐습니다. 마치 현대판 병마용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마저 줍니다. 이렇게 성냥종류도 많았군요. 지금은 성냥을 사용하는 사람은 없지만 예전에는 많이 사용했죠. 대전의 3대 하천이라고 하면 유등천, 대전천, 갑천입니다. 대전은 대전천을 중심으로 동구와 중구로 나뉘었으며 갑천은 제일 살만한 곳이라고 옛 기록에도 있습니다. 대전역에서 옛충남도청사로 쭉 이어지는 길은 일직선입니다. 그 길을 중심이라고 보고 일제강점기에는 '혼마치'로 불렸는데, 대전의 메인 스트리트였다고 합니다. 혼마치를 중심으로 목척교와 학교 등에 일본인들이 많이 살았습니다. 그리고 옛충남도청사에서 유성온천과 공주로 길이 이어졌으며 경부선, 호남선 철로 주변에 군주둔지가 자리하였는데 지금의 둔산지역은 육군항공대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이 그림은 대전풍경도입니다. 상당히 큰 화폭에 대전을 담았는데 박능생이라는 작가의 작품입니다. 작가 자신이 눈으로 보고 직접 두 발로 걸어 다니고 마음으로 느낀, 지금 우리 주변에 있는 구체적인 대상과 장소를 묘사하였다고 합니다. 전통기법의 한 장면 속에 현대 도시를 넣었다고 합니다. 지금 찍는 사진은 언젠가는 과거의 모습으로 느껴지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이곳에서 만나는 사진들은 변모하는 과거의 도시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작가 신건이는 공주에서 대전으로 거주지를 옮긴 후 대전의 여러 풍광을 담았다고 합니다. 방위를 보듯이 산의 위치를 기록해 두었습니다. 북쪽으로는 금병산, 동쪽으로는 계족산과 식장산, 서쪽으로는 우산봉, 금수봉, 남쪽으로는 보문산, 장태산, 구봉산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 대전입니다. 대전역은 일본이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어떤 곳보다도 빠르게 철도가 놓여야 되기에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만주 식민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속성 사업으로 진행되었으며 대전역은 1904년 6월에 준공되었고 1905년 1월에 개통되었습니다. 그리고 20여 년이 지난 1928년 부흥식 건축에 의해 새 대전역이 설치되었는데 역 주변에 한국인보다 일본인이 더 많이 거주하게 되었습니다. 어디에 사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인지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예상 밖의 풍경, 이 집과 저 집, 이 골목과 저 골목은 저마다 다 다른 개성을 지닐 수 있습니다. 대전의 도시건축은 도시규모에 비해 특별한 건축물은 적은 편이지만 근대문화유산이 적지 않습니다. 건축물로 조선 식산은행 대전지점, 충남도지사 공관, 대전 제일 공립 보통학교, 동양척식 주식회사 대전지점, 무덕전, 충남도청, 대흥동 성당, 뾰족집, 정동 장로교회 등이 있습니다. 대전여지도 전시대전창작센터 2019. 04.30 - 08.25
'별급문기' 조선시대 상속문서, 대전시립박물관 5월의 문화재
대전시립미술관이 5월 이달의 문화재 전시를 개최합니다. 가정의 달인 5월에는 '별급문기'라는 조선시대 재산상속의 문서를 전시하고 있어 찾아가봤습니다. 재산상속은 상당히 민감한 문제이기도 하여 사회의 이슈를 만들기도 하죠. 날이 좋아서 나들이의 시간이 좋은 하루입니다. 내일부터는 또 일상으로 돌아가봐야 하겠네요. 헌법과 현대에서의 법률이 만들어지고 나서는 법적인 것에 대해 사람들이 잘 알고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어떠했을까요. 조선시대의 재산상속은 바로 별급문기를 통해서 진행되었습니다. 특별한 사유로 재산(토지·노비)을 줄 때 작성되었다고 합니다. 과거에는 부동산으로 토지가 중요했지만 노비는 동산으로서 상당히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재산이다라는 의미는 어떻게 보면 말 그대로 객체로서의 재산이었습니다. 상설전시실은 여러 번 와보았기에 매우 익숙한 전시공간입니다. 별급 문서에서 표기된 별급 된 재산을 둘러싸고 자손 간에 분쟁이 생길 소지가 있으므로 재주와 증인·필집(筆執)의 착함(着銜)·수결(手決)을 갖추었다고 합니다. 명문가의 별급에는 고관·명사들이 증인으로 동원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별급 문서에서 명시된 별급 된 재산은 분깃(分衿)·화회 등 분재할 때 분집(分執) 이외에 별도의 재산으로 인정됐는데요. 내용을 보면 문기의 작성 연월일, 별급 대상자의 성명, 별급의 사유, 별급 재산(토지·노비)의 표시(토지소재·결수, 노비수), 당부의 말, 재주·증인·필집의 성명·수결 등이 기재됐습니다. 현대상속과 관련된 유언 문서도 같이 놓여 있어서 비교해볼 수 있습니다. 별급문기와 관련된 내용은 경국대전에서도 나와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상속과 관련된 내용은 민법에서 다뤄지고 있지만 대부분 재산상속만을 규율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조선시대에는 제사의 적장자 단독 승계의 규정부터 제자녀 윤회 봉사 및 집안의 다양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고 합니다. 여성의 활동이 제약이 따랐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대전시립박물관에는 대전에서 활동했던 여인들의 활동과 그 작품들도 볼 수 있습니다. 문화예술 도시 대전에는 다양한 시설이 자리하고 있고 이렇게 매월 새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날이 좋아서 좋은 것인지 좋은 분위기의 풍경이 좋아서 그런 것인지 몰라도 하루가 빠르게 지나가는 느낌이 듭니다. 대전시립박물관에서 전시되는 별급문기는 1705년(肅宗'숙종' 31) 3월 15일, 재주인 송병익이 여러 형과 부인을 잃고 슬픔 속에 있을 때, 둘째 아들인 송요좌(1678~1723)가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한 것을 축하하면서 노비와 전답을 준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사후 법률관계에 대한 조선시대와 현재의 문서를 한 공간에서 동시에 비교하며 살펴볼 수 있는 전시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