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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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posts![[향토문화] 서청 출신 경찰 잔학상 극에 달해..외도2동 외도지서 터](https://img.zoomtrend.com/2025/03/13/36a93db4-1697-5e5d-8444-54511521961d.jpg)
[향토문화] 서청 출신 경찰 잔학상 극에 달해..외도2동 외도지서 터
[향토문화] 서청 출신 경찰 잔학상 극에 달해..외도2동 외도지서 터 https://www.newsj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0089 초토화작전 시기에는 제9연대가 외도국민학교에 주둔했다. 외도2동 외도지서 터 위치 ; 외도2동 284번지.(일주서로7369) 시대 ; 대한민국 유형 ; 경찰지서 터 외도동은 4·3 당시 외도리였다. 1구는 본동과 우렝이, 절물을 포함하여 200여호, 2구는 도그내와 연대마을을 포함하여 180여호로 구성된 마을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설치된 외도지서가 있었고, 초토화작전 시기에는 제9연대가 외도국민학교에 주둔했다. 외도리가 이렇게 군경토벌대의 주요 주둔지가 되면서 외도 주민은 물론 제주읍 해안리, 도평리, 애.......
![[향토문화] 광명의 부처..하원동 오백나한전 철조비로자나불좌상](https://img.zoomtrend.com/2023/11/20/6d06b3d0-66f9-589c-8aef-0991174fbf24.jpg)
[향토문화] 광명의 부처..하원동 오백나한전 철조비로자나불좌상
[향토문화] 광명의 부처..하원동 오백나한전 철조비로자나불좌상 http://www.newsj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0057 비로자나불을 봉안하고 있는 전각을 대적광전(大寂光殿) 또는 대광명전(大光明殿)이라 한다. 하원동 오백나한전 철조비로자나불좌상 위치 ; 하원동 산1-1번지(서귀포시 영실로 506). 영실 주차장 서북서쪽 오백나한전 內 시대 ; 미상(고려시대 추정) 유형 ; 불교유적(鐵造毗盧遮那佛坐像) 1978년 옛 사찰터에서 발굴된 철불상이다. 제주도에서는 철불상이 발굴된 예가 없으며 철불이 통일신라 시대 후기부터 고려시대에 크게 유행했던 양식이라 발굴의 의미가 매우 크다고 하겠으나 이 불상에 대해 전문가들의 연.......
![[향토문화] 건물 흔적 석렬 남아..하원동 오백나한전](https://img.zoomtrend.com/2025/03/12/eba08f63-42dc-592e-ae90-8dbfc7fe542f.jpg)
[향토문화] 건물 흔적 석렬 남아..하원동 오백나한전
[향토문화] 건물 흔적 석렬 남아..하원동 오백나한전 https://www.newsj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0043 이곳 바위가 수행하는 스님들로 보인다고 하여 수행동(修行洞)이라 불리게 됐다. 하원동 오백나한전 위치 ; 하원동 산1-1번지(서귀포시 영실로 506). 영실 주차장 서북서쪽 시대 ; 미상(고려시대 추정) 유형 ; 불교유적(사찰·사지) 이곳은 예전부터 사찰터가 있었으며 언제 창건되고 폐사되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전하는 말에 의하면 많을 때는 60여 스님들이 영실에서 수행하였다고 전하며 이곳에 있는 바위가 수행하는 스님들로 보인다고 하여 수행동(修行洞)이라고 불리게 됐다. 수행동이라는 곳에는 건물 흔적으로 보.......
![[향토문화] ‘경찰과 도둑’ 놀이..시흥리 마을성담](https://img.zoomtrend.com/2025/03/10/5bc78435-2911-555b-9380-dd0bd7031339.jpg)
[향토문화] ‘경찰과 도둑’ 놀이..시흥리 마을성담
[향토문화] ‘경찰과 도둑’ 놀이..시흥리 마을성담 https://www.newsje.com/news/articleView.html?idxno=299875 동쪽 시흥리 경계에는 성굽만 약 40m 정도 약간 흔적을 보이고 있다. 시흥리 마을성담 위치 ; 성산읍 시흥리 538번지와 499번지의 경계(시흥상동로53번길27-20의 남쪽 울타리) 시대 ; 대한민국 유형 ; 방어시설(城) 시흥리는 광복 후 지금의 시흥마을회관 자리에 있던 향사를 중심으로 마을이 운영됐다. 당시 향사는 학교로 이용되기도 했는데 상동 주민들은 이곳이 사람들을 잡아다 구타하는 장소로 기억하고 있다. 그 이유는 1948년 11월 이후 제주도 전역에 초토화작전이 실시되고 시흥리에도 향사 앞 민가에 경찰파견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