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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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염전도 개인 소유였다. .시흥리 소금밭 터

[향토문화] 염전도 개인 소유였다. .시흥리 소금밭 터

[향토문화] 염전도 개인 소유였다. .시흥리 소금밭 터 https://www.newsj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5851 시흥리는 뭍이 유난히 낮기 때문에 간만의 차가 심한 웨살 때에는 해상촌(海上村)을 이루어왔다. 시흥리 소금밭 터 위치 ; 성산읍 시흥리 1256, 980번지 일대. 논지대, 저지대가 소금밭이었다. 시대 ; 조선시대 유형 ; 산업시설 시흥리는 예로부터 인근 종달리와 함께 빼어난 천일 소금밭을 가지고 있었다. 시흥리는 뭍이 유난히 낮기 때문에 간만의 차가 심한 웨살 때에는 해상촌(海上村)을 이루어왔다. 지금은 해수가 밀려드는 길목을 막아 보(洑)를 쌓고 곳곳에 매립공사를 했기 때문에 바닷물이 마을 안으로 들어오지 않.......

[향토문화] ‘경찰과 도둑’ 놀이..시흥리 마을성담

[향토문화] ‘경찰과 도둑’ 놀이..시흥리 마을성담

[향토문화] ‘경찰과 도둑’ 놀이..시흥리 마을성담 https://www.newsje.com/news/articleView.html?idxno=299875 동쪽 시흥리 경계에는 성굽만 약 40m 정도 약간 흔적을 보이고 있다. 시흥리 마을성담 위치 ; 성산읍 시흥리 538번지와 499번지의 경계(시흥상동로53번길27-20의 남쪽 울타리) 시대 ; 대한민국 유형 ; 방어시설(城) 시흥리는 광복 후 지금의 시흥마을회관 자리에 있던 향사를 중심으로 마을이 운영됐다. 당시 향사는 학교로 이용되기도 했는데 상동 주민들은 이곳이 사람들을 잡아다 구타하는 장소로 기억하고 있다. 그 이유는 1948년 11월 이후 제주도 전역에 초토화작전이 실시되고 시흥리에도 향사 앞 민가에 경찰파견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