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한밤의 연예가 섹션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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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이 되지 못한 최강희...<추리의 여왕>에는 추리가 없다

권상우와 최강희가 주연을 맡은 은 추리라는 소재에 여성 탐정을 내세웠다. 보통 추리물이나 수사물에서는 여성의 역할이 크지 않다. 끔직한 범죄의 현장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주체는 주로 남성이다. 주로 여성은 이를 보조하거나 주변인으로만 등장한다. 은 그러나 타이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추리의 주체가 여성이 되는 드라마다. 단순히 여성을 넘어 '흙수저'에 가까운 캐릭터다. 엘리트나 전문적인 트레이닝을 받은 여성이 아닌, 뛰어난 추리력을 갖고 있으나 아무 ‘스펙’이 없는 아줌마다. 평범한 아줌마가 사건을 해결한다는 지점은 분명 수사물의 전형성을 뒤집는 설정이다. 그러나 과연 은 추리의 과정에서 여주인공을 ‘여왕’으로 만들었을까. 시즌2 염두해 둔 마지막 회...적절했나? 은 마지막회까지 통쾌한 사건의 해결을 보여주지 않는다. 여자 주인공 유설옥(최강희 분)은 부모님의 죽음, 남자 주인공 하완승(권상우)는 여자친구 서현수의 죽음의 진실이라는 해결과제가 있으나 마지막회에서도 그 사건들의 해결은 확실한 종결점을 맞지 않는다. 특히 마지막에 달해서야 신현수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건은 애매모호한 지점에서 끝이 난다. 이는 열린 결말과는 궤를 달리한다. 열린 결말에서도 마지막 회에서 이야기의 흐름은 마무리가 되어야 한다. 마무리 된 지점에서 주인공의 선택을 애매모호하게 남겨 놓거나 이야기가 앞으로도 계속 진행될 거라는 뉘앙스를 주는 것은 열린 결말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해결하려던 사건이나 던져놓은 상황들이 종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끝이 나는 것은 중간에 끊긴 느낌을 줄 뿐이다. 의 결말은 시즌 2를 장담할 수 없는 한국 드라마 환경에서는 적절한 선택이라고 할 수 없다. 추리의 여왕 cp는 이에대해 “애초에 시즌2를 염두해 두고 제작했다. 여건되면 제작 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건이 되면’이라는 단어다. 한국에서는 드라마가 잘돼도 성적이 좋지 않아도 시즌 2제작이 쉽지 않다. 성적이 좋으면 드라마로 이름값이 올라간 주연 배우들을 다시 한데 모으는 것이 쉽지 않고, 성적이 나쁘면 제작 자체가 추진되지 않는다. 시즌제는 한국 드라마 환경에서 정착되기 힘든 시스템이다. 여왕을 만들지 못한 빈약한 추리의 과정 아쉬운 마무리도 마무리지만, 과연 이 드라마가 이라는 타이틀을 설득시키는 스토리를 선보였는가 하는 지점역시 생각해 볼 문제다. 주인공 유설옥은 뛰어난 추리력을 가지고 사건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지만, 추리의 과정에서 그가 가진 능력에 탄복을 하게 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추리의 흐름이 기승전결을 갖추고 유려하게 전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초반부터 오히려 뛰어난 추리력 보다는 민폐가 되는 상황을 보여주는 여자 주인공은 추리의 ‘여왕’이라기 보다는 ‘시녀’ 쯤으로 묘사된다. 각종 어려움을 딛고 뛰어난 추리력을 선보이며 사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는 시청자의 기대는 무참히 짓밟히고, 단순한 사실이나 작은 증거들만을 바라보는 유설옥은 추리의 ‘여왕’이라고 부르기엔 한참 모자르다. 제작진은 이를 ‘생활 밀착형 추리’라고 포장하지만, 시청자들은 추리의 과정에 대한 스토리의 빈약함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추리물에 필수적인 사건의 발생과 해결, 그리고 반전이라는 요소는 이 드라마 속에서 그다지 큰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결국 주인공의 활약도 따라서 약해질 수밖에 없다. 마지막에 이르러서까지 범인에게 납치당하거나 총을 맞는 여주인공을 구해주는 것은 결국 남자 주인공이다. 여자 주인공의 주체적인 활약이나 스스로의 능력 발휘는 이 드라마에서 확실한 포인트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마지막까지 결국 ‘여성은 남성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편견을 전혀 극복하지 못한 모양새다. 이는 드라마의 흐름이 ‘추리’에 초점을 맞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는 드라마에 소위 ‘떡밥’이라고 부르는 수많은 해결과제를 던진다. 그러나 그런 떡밥을 던지고 시청자들을 낚시 하는 스킬은 지나치게 안일하다. 사건의 발생과 흐름, 그리고 해결의 과정에 있어서 시청자들이 예상치 못한 흐름을 전개시키지 못하고, 사건을 확장시키는데도 실패한다. 결국 마지막까지 회수되지 않는 수많은 ‘미끼’들은 드라마의 유기적인 구성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는 의도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작가의 역량 부족처럼 느껴진다. 이런 상황속에서 이 드라마는 추리물의 장점을 잃어버린다. 시청자들이 열심히 사건을 분석하고 사건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는 모습은 이 드라마를 통해서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려거든 사건의 해결점이라도 명확해야 하는데, 던져놓은 상황들을 스스로 수습하지도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유설옥이 ‘여왕’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은 새로운 한국형 추리물의 탄생을 성공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여성 캐릭터 활용의 한계를 다시한 번 보여주고야 말았다. 남성을 뛰어넘는 뛰어난 능력을 지닌 진정한 수사물의 ‘여왕’의 탄생은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게 되었다.

<웃찾사> 종영....웃음을 찾는 사람들이 아닌, 웃음을 구걸하는 사람들

대중의 선택을 받지 못한 엔터테이너의 끝은 비참하다. 연예인을 꿈꾸는 수많은 사람 중 스타가 될 수 있는 사람은 단 1%. 나머지 99%는 대중의 뇌리에서 사라져간다. 스타의 자리는 바늘 구멍을 뚫는 것과도 같이 좁은 문이다. 특히나 요즘처럼 스타를 꿈꾸는 사람이 늘어만 가는 상황 속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같은 맥락으로 대중의 선택을 받지 못한 프로그램의 종영역시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하 )의 종영 역시 대중의 선택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결정된 일이다. 그러나 유독 의 종영을 안타까워 하는 코미디언들의 목소리가 높다. 그 이유는 코미디언이 설 자리가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SBS는 지난해 16기 공채 개그맨을 뽑은 상태였다. 현재 에 출연하는 신인 코미디언들은 결국 1년도 채 채우지 못하고 방송에서 '잘릴' 위기에 처했다. 코미디언의 설자리, 가 만들어 주나 코미디언들은 이를 두고 '개그 의지를 꺾는 무자비한 상황'이라고 일컫는다. 방송사의 책임론도 불거졌다. 물론 SBS측이 공채를 뽑고도 제대로 활용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가 끊기면 가 유일한 프로그램인 신인 코미디언들의 수입도 끊긴다. SBS측은 아나운서와는 달리 공채 코미디언에 대한 월급은 지급하지 않고 있다. 방송에 출연해야만 출연료를 받을 수 잇는 것이다. 코미디언들의 절박한 상황은 분명 안타깝다. 그러나 안타까움과는 의 존속은 별개다. 신인 코미디언들을 뽑고도 활용하지 못하는 방송사의 안일한 행동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의 존속으로 해결할 문제는 아니다. 는 2003년 공개 방청 코미디의 열풍을 타고 시작되었다. 2017년에 이르기까지 는 무려 14년에 걸쳐 방영되었다. 초반에는 어느정도의 관심을 얻는데 성공했지만, 근 10년 동안 를 대표하는 코너는 단 하나도 탄생하지 않았다. 시청자들의 관심은 멀어졌고, 시청률은 2%대로 떨어졌다.  TVN의 (이하)와 비슷한 수준이거나 더 낮다. 채널의 이점을 생각하면 더블 스코어 정도는 시청률의 차이가 나는 셈이다. 시청률이 곤두박질 친 상황 속에서 화제성을 잡는데도 실패했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마이너스 프로그램이다. 14년동안 가 지속될 수 있었던 것 역시 '코미디언들의 설자리'라는 명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마저 없었으면 14년간 지속될 수 있을지조차 의문인 성적이었다. 이미 공개 방청코미디는 트렌드가 아니다. 한때 시청률 30%를 넘기고, 꾸준히 두자리수 시청률을 유지해 왔던 조차 시청률은 한자릿 수로 곤두박질 쳤다. 공개 방청 코미디가 대세였던 시대는 이미 한참 지났다. 슬프지만, 트렌드는 변한다. 그 트렌드를 따라잡지 못하면 도태되는 것은 당연하다. 는 포맷부터 트렌드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은 포맷을 변화시키거나 트렌드를 다시 찾아 오는 일이다. 그러나 의 개그를 보자. 10년 전의 코미디에 비해 전해 발전하지 못했다. 분장이나 유치한 말장난, 외모 비하, 성대모사 등 이미 수차례 목격한 코미디만이 반복되고 있을 뿐이다. 는 이에 의 대결 구도를 빌려와 '레전드 매치'라는 이름을 사용해 토너먼트를 진행했다. 만의 아이디어로 한계를 돌파해 보려 하는 것이 아닌, 타 프로그램의 아이디어를 도용한 셈이다. 그 안에서도 나름의 재미를 주는 코너를 개발한다면 모르지만, 포맷을 변경하고도 는 이전의 매너리즘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했다. 매너리즘에 빠진 코미디, 냉정하게 말하자면 코미디언들의 직무유기다. '콩닥콩닥 민기쌤'같은 코너를 예를 들어보자. 실제 커플이 등장하는 것으로 신선함을 만들어 보려 했지만, 그 안에서 보여주는 코미디는 전혀 신선하지 않다. 웃음 포인트는 이상한 포즈를 짓거나 우스운 표정이나 굴욕적인 소품을 착용하는 몸개그에 지나지 않는다. 의표를 찌르는 재미는 처음부터 찾을 수가 없다. '콩닥콩닥 민기쌤'을 예로 들었으나, 의 모든 코너가 이런 식이다. 단순히 행동을 과장하고 개인기를 펼쳐보인다고 하여 웃음이 창출되지는 않는다. 시청자들이 공감을 할 수 있는 이야기나 스토리, 그 안에 반전 요소가 적절하게 버무려진 아이디어가 있어야 하지만 그런 기지는 에서 찾아 볼 수 없다. 대놓고 말하자면 이는 코미디언들의 직무유기다. 대중에게 웃음을 제공할 수 없는 코미디언은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물론 정형돈이나 김영철 처럼 '안웃기는 캐릭터'를 설득시키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그러려면 공개 코미디로는 불가능 하다. 리얼 버라이어티처럼 사람 자체의 캐릭터를 공감가게 만들고, 호감형으로 전환 시키는 캐릭터 쇼가 아닌 공개 코미디에서는 방청객을 무조건 웃겨야한다. 문제는 는 채널을 고정할만큼 우습지 않다는 것이다. 우습지 않으니 화제성이 없다. 화제성이 일때는 '흑인 비하'같은 부끄러운 논란이 일 때 뿐이다. 웃음이 없는 코미디 프로그램이 활력을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느새 시청자들이 시청해야 할 이유가 없는 프로그램이 된 는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연예인 뿐 아니라 회사에서도 일처리를 제대로 못하는 직원들은 해고 당한다. 말하자면 웃기지 못하는 코미디언들은 일을 제대로 못한 셈이다. 냉정하지만, 그게 진실이다. 의 폐지는 직원들의 일처리가 원할하지 않은 상황이 길게 지속되었기 때문에 회사 자체가 문을 닫은 상황이다. 억울하지만 어떡하겠는가. 부도가 난 회사는 이미 회생 불가다. 가 아닌, 현재의 트렌드에서 코미디언들의 활용을 고민할 때 의 폐지를 마냥 슬퍼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코미디언들이 존재감을 보일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느냐 하는 지점을 고민해야 한다. 코미디언들이 재능을 뽐내고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기회'를 얻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다. 단순히 의 폐지를 '반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미 는 신인 코미디언 발굴의 장이 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로 존재감을 드러낸 코미디언들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차라리 같은 프로그램에서 한 번 큰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 훨씬 더 파급력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 에서 '밥줄' 이상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가. 이정도면 로 '코미디언의 설자리'를 운운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코미디가 없는 코미디 프로그램의 존속은 '억지 웃음의 강요'밖에 되지 않는다. 시청자들이 외면하는 프로그램을 코미디에 대한 자긍심이 아닌, 자신의 '밥줄'이라는 이유로 존속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코미디언으로서 '웃기지 못한 책임'에 대한 성찰이 없는 행동이다. 이제부터 그들이 고민해야 할 것은, 공개 방청 코미디의 존속이 아니라 현재의 예능 트렌드에서 어떻게 살아남을까 하는 것이다. 차라리 현재의 예능 트렌드에서 코미디언들을 활용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일이다. 그들이 해야 하는 일은 의 존속이 아닌, 기회를 만드는 일이다. 물론 이익을 우선시 해야 하는 방송사에서는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처럼 공채를 뽑은 책임 역시 방송사에는 존재한다. 를 폐지하지 말라고 할 것이 아니라 가 아닌 프로그램에서 코미디언들이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할때다.

<귓속말> 종영...왜 이보영과 이상윤의 존재감은 보이지 않았을까.

언제나 작품 속에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으면서 권력에 저항하는 주인공들의 위기를 그리며시청자들의 뒷통수를 치는 반전으로 호평을 받던 박경수 작가의 신작 은 이보영과 이상윤이 주인공으로 캐스팅 되면서 방영 전부터 화제를 모을 수 있었다. 역시 박경수 작가의 특징이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정의로운 판사였던 이동준(이상윤 분)은 정의롭다고 여겼던 판결 때문에 법정에 서지 못할 위기를 맞고 이 때문에 양심에 거스르는 판결을 내리는 조건으로 대기업 회장인 최일환(김갑수 분)이 내민 손을 잡을 수밖에 없게 된다.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해 지는 지점에서 생겨난 피해자 신영주(이보영 분)는 아버지에 대한 불합리한 판결을 인정할 수 없고 복수의 칼날을 들이댄다. 선과 악, 그리고 권력에 대한 작가의 메시지가 강렬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강약조절에 실패한 스토리..주인공들의 매력도 반감 초반부 스토리는 이동준이 받는 압박으로 흘러간다. 이동준은 신념을 버렸다는 양심에 가책을 받는 것은 물론, 신영주, 최일환의 딸 최수연(박세영 분), 최수연의 연인 강정일(권율 분)등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여 있다.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삶이지만 그 삶은 지옥이다. 여기에서 의 첫 번째 오류가 생겨난다. 남자 주인공이 사방에서 받는 압박을 드라마를 시청하는 내내 숨이 막힐 정도로 몰아붙이고, 숨 쉴틈이 없는 상황 속에서 드라마는 오히려 피곤하게 느껴진다. 여기에 ‘섹스비디오’로 협박을 하는 여주인공 신영주는 초반부터 매력발산에 실패한다.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부당한 판결을 한 것에 대한 분노는 이해할 수 있지만, 신영주의 ‘막무가내 식’ 몰아붙이기는 캐릭터의 매력을 반감시키는 요소다. 상황과 현실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 만들어진 계획이 아니라 상대방의 약점을 잡고 무조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라며 떼를 쓰는 모습은 여주인공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을 방해한다. 초반부의 답답한 전개를 딛고 이동준과 신영주는 서로 같은 편에 서게 되고 두 사람의 멜로는 진행되지만 드라마의 서사는 이들에게 감정이입을 하도록 만들지 못한다. 매회 일어나는 사건들과 반전들은 시청자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기 보다는 지치게 만든다. 일이 해결될 때 쯤에 터지는 위기나 반전은 놀라움이 아닌 ‘반전을 위한 반전’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이는 사건의 강약조절에 실패한 스토리라인의 탓이 가장 크다. 적절한 순간에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반전은 찬사를 받지만, 마치 패턴처럼 반복되는 반전에 대한 호기심은 일지 않는다. 시청자들은 반전에 대한 긴장감이 사라지고 의례히 이쯤에서 다른 상황이 터져나올 것이라는 예상을 하게되고야만다. 주인공보다 악역에 집중되는 이야기 구조...시청포인트가 애매모호해지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을 연기하는 이보영과 이상윤의 연기마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해 보인다. 형사 출신이라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이보영의 말투나 액션은 캐릭터를 돋보이게 만들기 보다는 이전의 지적이고 깔끔한 이보영의 이미지에 갇혀있고, 이상윤의 심각한 표정과 낮게 깔린 목소리는 지나치다 싶을만큼 기계적으로 느껴진다. 오히려 이야기의 흐름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은 악역을 소화한 권율이다. 권율이 소화한 강정일이라는 캐릭터는 주인공보다 훨씬 더 자연스러운 감정의 흐름을 보여준다. 애인의 배신이나 아버지의 죽음등을 계기로 복잡해지는 감정의 진폭을 표현하는 권율의 연기는 ‘재발견’이라는 평가가 나올만큼 상당히 인상적이다. 주인공들에 대한 매력이 반감되고 악역에 대한 지지도가 올라가자 드라마의 중심축이 흔들린다. 악인을 처단하는 통쾌함에 초점을 맞출 수도 없고, 주인공들의 처절한 고군분투에 공감이 가지도 않는다. 이야기의 흐름이 애매모호해지면서 드라마는 어딘지 모르게 어색해진다.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했으나 과연 작가와 배우의 역량을 최대한 이끌어 낸 드라마인지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주인공들에 대한 힘이 떨어지자 멜로라인에 대한 관심 역시 줄어든다. ‘성인의 멜로’를 보여주겠다는 포부가 무색할 정도로 두 사람이 서로에게 빠지는 상황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고, 두 사람의 멜로에도 감정이입을 하기 힘들다. 결국 드라마는 주인공들에 대한 매력을 설명하는 데 실패하고 만다. 은 그동안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으로 시청자들의 호평을 이끌어 냈던 박경수 작가의 작품 중, 가장 그 구성이 열악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다소의 억지와 개연성 부족을 드라마의 휘몰아치는 메시지와 구성력으로 극복하던 박경수 작가의 필력이 이번만큼은 제대로 발휘되지 못한 것이다. 결국 은 주인공을 위한 드라마가 되지 못했다. 명작이라고 부르기엔 배우들의 매력과 작가의 역량이 아쉽게 느껴진다.

<섬총사>...김희선은 <삼시세끼>를 뛰어넘을 새로운 뮤즈가 될까.

외딴 곳에 떨어진 연예인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을 담은 예능의 설정은 상당히 흔하다. 바로 얼마 전 히트한 이 그랬고 그 이전에 가 있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1박 2일>이나 역시 그런 뉘앙스를 품고 있다.  olive tv와 tvN에서 방송을 시작한 는 그런 트렌드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는 예능이다. 침체기를 넘고 케이블에서 다시 전성기를 맞은 강호동과 가수겸 배우 정용화, 배우 김희선까지. 도무지 예측이 안가는 조합의 인물들을 섬으로 끌고 들어간다. 대체 무슨 이야기가 나올까 싶지만 첫 회에서 생각보다 큰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힐링' 여행 예능, 뛰어넘을까 는 같은 여행 예능이지만 <1박 2일>이나 처럼 비교적 빠른 템포로 극적인 연출로 진행되는 예능과는 달리, 나영석pd의 트레이드 마크인 ‘힐링’을 표방한 느낌이 강하다. 바다에 둘러싸인 섬이라는 공간은 의 어촌편을 떠올리게 만든다. 물론 에서는 밥을 지어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미션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도심과 멀리 떨어진 낯선 곳에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자신의 취향대로 살아야 한다는 미션이 주어진다. 어떤 상황 설정이나 해야 하는 일이 없다는 것은 오히려 더욱 출연자들을 난감하게 만든다. 그저 취향대로 살기만 하면 되지만, 그들의 취향은 사실 ‘섬’이라는 공간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산이 좋냐, 바다가 좋냐”는 질문에 “둘 다 싫다. 호텔이 좋다.”고 말하는 김희선은 이 예능의 키 포인트를 보여주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세 걸음 걸으면 차를 타야 한다는 뜻의 ‘삼보승차’가 자신의 별명이라 밝힌 김희선은 섬에서 일을 하고 뒹굴기엔 지나치게 곱고 화려하다. 인터뷰에서도 김희선은 "생선의 눈을 보지 못한다"고 말하거나 "섬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면서도 "회는 먹는다"고 말하는 김희선은 어쩐지 재미있는 캐릭터다. 전혀 섬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그가 섬 생활을 받아들이는 장면에는 묘한 쾌감이 있다. 는 도시화가 되지 않아 비교적 오염이 되지 않은 섬의 아름다운 풍광을 그들의 섬 생활을 천천히 보여주는 배경으로 삼는다. 이는 가 굳이 시골로 가 음식을 만들게 한 이유와도 비슷하다. 복잡하지 않고 단조로운 삶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삼시세끼만 걱정하게 만든 포맷은 단순했지만, 보고 있으면 묘하게 빠져드는 부분이 있다. 복잡하고 시끄러운 삶 속에서 삼시 세끼만 걱정하면 되는 단조로움은 시청자들에게 ‘힐링’으로 다가온 것이다. 역시 그런 부분을 놓치지 않는다. 는 삼시세끼처럼 함께 생활하며 가족이라는 테두리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각자 살게 되는 집도 다르고, 서로 협력해야 하는 미션도 없다. 는 출연자들이 익숙한 공간이 아니라 주변에 아무 것도 없어 개성을 전혀 살릴 수 없을 것 같은 공간에서 그들이 자신의 역할을 스스로 찾아내고 그들의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내게 만들며 캐릭터를 쌓아 나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그 공간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는다는 바로 그 지점이다. 그런 그들이 섬에 정을 붙이고 그 섬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일종의 ‘힐링’이라고 할 수 있다. 의 포맷, 독보적인 캐릭터의 탄생을 기대해 보아도 좋을까 첫 회의 이야기는 세 사람의 인터뷰로 시작된다. 그들은 섬 생활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하면서도 불편할 수밖에 없는 섬의 환경에 불안함을 드러낸다. 섬으로 향하는 그들은 아직 서로와 가까워진 상태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친해지는 과정에서 주고받는 이야기들은 그들의 캐릭터를 드러낸다. 김희선의 ‘오빠’라는 단어에 얼굴이 붉어지며 민망해하는 강호동이나, 허당같은 매력을 드러내는 정용화, 그리고 큰 트렁크 하나에 술을 가득 채워온 김희선까지 그들의 조합은 어울리지 않는 듯 하면서도 절묘하게 케미스트리를 만들어 내는 부분이 있다. ‘스타’를 버려야 하고 열악한 환경을 감당해야 하는 섬 생활을 그들이 받아들이면서 보여주는 소박함은 에서 보여주는 힐링의 메시지와 닮아 있다. 문제는 앞으로 그들의 캐릭터를 어디까지 다변적으로 활용하고, 어디까지 대중에게 설득시킬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단순히 섬에 그들을 내려 놓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들이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만들면서도 그들에게 지나친 개입이나 강요를 하지 않고, 그들의 캐릭터를 시청자들에게 설득시켜야 하는 작업이 성공해야 역시 성공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같은 예능과는 다른 궤도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 이 예능이 가진 숙제다. 첫 방송의 캐릭터는 생각보다 매력적으로 그려졌다. 특히나 리얼 예능에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톱스타 김희선은 예능에서의 새로운 캐릭터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캐릭터에 시청자들이 열광하게 만드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아주 작은 포인트로도 예능 캐릭터의 성패는 갈릴 수 있다. 그 종이 한 장의 차이를 를 통해 발견해 낼 수 있을까. 김희선이 의 뮤즈로 거듭나는 기적을 보이며 가 단순히 비슷한 ‘힐링’ 예능이 아닌 또 다른 히트작이 될 수 있을지가 궁금해 지는 첫회가 아닐 수 없었다.

- 또 타임슬립에 반복되는 수사물,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널>을 볼 수밖에 없었다.

OCN 은 시작부터 tvN의 히트작 의 그림자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형사들의 수사물이라는 점, 과거와 현재가 소통하며 사건이 해결된다는 판타지적인 설정. 에서는 과거로부터 무전이 오는 무전기가 존재했다면, 에는 아예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 수 있는 ‘터널’이 존재한다. 단순히 전파를 주고받았던 과는 달리, 아예 물리적인 시공간을 초월하는 은 분명 똑같은 설정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은 제작 발표회에서부터 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배우들과 PD는 을 보지 않았다고 밝혔으며, 과는 다른 작품임을 분명히 하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이 화두가 된 것 자체가 과의 비교는 피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재확인이었다. 설정은 변화했지만 ‘진화’했다고 볼 수는 없었고, 이야기는 완전히 새로울 수 없었다. 로맨스 드라마에 지친 시청자들이 새로운 것을 찾게 되자 특별한 소재로 호평을 얻을 수 있는 수사물은 제작 붐이 일었다. 타임 슬립 역시 다수의 드라마에 사용된 설정으로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소재가 아니었다. 설정을 어떻게 바꾸든, 이전에 반복된 형태를 피해가기는 힘들었다. 특히나 은 타임슬립과 수사물이라는 장르가 합쳐져 얼마 전 히트했던 을 떠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반복되어 온 소재, 이 을 극복하는 법 은 수사물의 흐름을 굳이 거스르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연쇄살인’이라는 사건을 30년의 세월에 녹이면서 이야기를 긴밀하게 구성하여 긴장감을 증폭시킴으로서 이야기 구조를 촘촘하게 만드는데 주력한다. 과거와 현재의 흐름 속에서 연쇄 살인 사건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과 살인범의 정체에 대한 반전등은 꽤 유려한 흐름으로 짜여있고, 의 그림자를 벗어던지게 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이 의 이야기 만으로 가치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이 유기적인 구성과 흐름이다. 기존의 수사물과 완전히 흐름을 달리 하는 구성은 아니지만, 이 가진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드는 힘은 강력하다. 여기에 만의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는 것은 피해자들에 대한 시선이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분리되어 있는 상황 속에서 사건 발생으로 인해 피해자의 입장에 서게 되고, 그로인해 피해자에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 여타 수사물의 주인공들과는 달리 의 주인공들은 사건과 아주 긴밀한 접점에 놓여 있다. 이를테면 김선재(윤현민 분)는 연쇄 살인사건 피해자의 가족이고 신재이(이유영 분)는 연쇄 살인마의 위협을 직접적으로 받는 존재가 되는 식이다. 피해자가 겪어야 하는 아픔들은 주인공들을 통해 보다 직접적으로 전달된다. 사건이 일어난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건이 잊혀질 때 조차, 피해자의 가족들은 여전히 고통받고 있고, 힘겨운 싸움을 계속 해 나가야 한다는 것. 그들의 아픔을 가벼이 여길 수 없다는 메시지가 이 드라마를 관통하고 있다. 사건은 피해자와 가해자로 단순히 나뉘는 것이 아니라, 그 주변에 나비효과를 일으키고 또 다른 분노와 아픔을 만들어 낸다는 메시지 만으로도 의 장점은 유효하다. 초반부의 완성도에 비해 힘이 달리는 후반부는 다소 아쉽다. 그러나 의 후반부는 초반부의 긴장감에 비해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의 이야기는 대부분 과거가 아닌 미래에서 진행이 된다. 과거로부터 30년을 타임슬립한 형사 박광호(최진혁 분)은 이 드라마의 핵심요소지만,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존재로서 활용되었었을 뿐, 타임슬립이라는 판타지의 본질에 다가서는 역할을 수행하지는 못한다. 작가는 30년의 터울이 있지만, 미래와 과거의 시간이 같이 흐르는 것으로 설정을 해놓는다. 이를테면 30년 후에서 5개월이 흐르면, 30년 전에서도 5개월이 흘러있는 것이다. 이 설정은 두 세계를 긴밀하게 연결하기 위한 것이다. 과거에서 무언가를 바꾸면 미래에서도 바뀌게 된다는 설정은 그동안 타임슬립 물에서 수차례 이용되어왔던 설정이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가장 주요한 설정 중 하나인 이런 설정이 마지막회에서도 전혀 활용되지 못하고 끝을 맺어버린다. 과거에서 연쇄살인범 목진우(김민상 분)을 검거하면 수많은 살인을 막을 수 있음에도 그런 뉘앙스조차 풍기지 않고 드라마는 마무리 된다. 또한 신비로운 터널에 대한 이야기 역시 너무나 빈약했다. 어떻게 해야 과거로 돌아오고 어떻게 해야 현재로 타임슬립을 할 수 있는지에 관한 조건조차 제대로 설명되지 않았다. 사건이 해결되자 당연히 과거로 돌아가는 박광호의 뒷모습은 그동안 과거로 돌아가고자 해도 돌아갈 수 없었던 터널의 비밀을 다 풀어 낸 모습이었지만, 그런 이야기는 드라마 안에서 제대로 설명된 적이 없었다. 또한 박광호가 과거로 돌아가면서 2017년의 사람들이 어떻게 변했고, 어떻게 다른 삶을 살아가는지에 대한 이야기의 마무리도 없었다. 해피엔딩이라고 넘어가기엔 여러 가지로 아쉬움이 남았다. 또다시 성공한 웰메이드 수사물, 시청자들은 을 인정했다. 그러나 연쇄 살인 사건이라는 무거운 이야기를 하면서도, 우정과 가족,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따듯한 시선을 견지한 은 타임슬립과 수사물이라는 클리셰를 사용하고도 만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비슷한 이야기지만 그 이야기를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또 다른 웰메이드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 보여준 것이다. 5%가 넘는 높은 시청률은 이 드라마의 재미를 가늠하게 하는 부분이다. 비록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마지막까지 만의 다운 이야기를 풀어낸 드라마. 또 수사물에, 또 타임슬립이라는 핸디캡을 딛고도 시청자들을 tv앞으로 모이게 했다는 점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 작품임엔 틀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