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워맨하탄에 있는 두 개의 준국립공원인 스톤월과 흑인매장지 및 다른 곳들도 둘러본 셀프 워킹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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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워맨하탄에 있는 두 개의 준국립공원인 스톤월과 흑인매장지 및 다른 곳들도 둘러본 셀프 워킹투어

로워맨하탄에 있는 두 개의 준국립공원인 스톤월과 흑인매장지 및 다른 곳들도 둘러본 셀프 워킹투어

작년 7월부터 딸이 맨하탄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후로 거의 매달 뉴욕시를 찾았었지만, 이번에는 정확히 무려 3개월만의 방문이었다. 대신에 그 전에는 대부분이 당일치기였다면, 이번에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루 숙박을 해서, 동부로 이사온 후부터 계속 가보고 싶었던 정원도 다음날 구경을 하고 다른 역사공원 한 곳도 잠시 들렀다. 또 첫날 맨하탄에서 잠시 위기주부 혼자 셀프 워킹투어를 하면서, 본 포스팅인 '별볼일 없는 국립 공원: 뉴욕 번외편'도 찍는 등 오래간만에 여러모로 알찬 1박2일 여행이었다. 그리니치 빌리지(Greenwich Village)의 'Sotto 13'이란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의 일요일 점심은, 뉴욕으로 프로포즈 여행을 온 아칸소 주에 살고 있는 조카와 약혼녀를 함께 만나서 특별히 더욱 뜻깊었고, 또 이 날은 미국의 마더스데이(Mother's Day)이기도 했다. 그러나 식사만 마치고 우리는 모두 뿔뿔이 흩어졌는데... 조카 커플은 맨하탄 관광을 위해 첼시로 향했고, 지혜는 급한 업무로 일을 하러 아파트로 돌아가고, 아내는 마침 뉴욕에 와있는 LA 친구를 만나러 갔다. 그래서 위기주부는 혼자 로워맨하탄(Lower Manhattan) 지역의 별볼일 없는 국립 공원들을 찾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아내를 근처 커피숍에 바래다 주고 6번가(6th Ave)를 따라 남쪽으로 조금 내려가니, 작년 8월에 점심을 먹었던 초록색 Olio e Più 식당이 나왔다. 여기서 오른편 크리스토퍼 길(Christopher St)로 들어가면 비교적 최근인 2016년에 오바마 대통령이 지정한 준국립공원이 하나 나온다. 도로 가운데 좁고 긴 삼각형의 녹지에 성조기와 함께 무지개 깃발이 걸려있고, 그 오른편으로 이제 찾아가는 '술집'이 나온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스톤월인(Stonewall Inn)이란 가게 이름 네온사인이 양복을 입은 두 남자에 살짝 가렸는데, 1969년 6월 28일 새벽 1시경에 뉴욕경찰이 주류 판매허가 없이 술을 판다고 단속을 나왔던 게이바(gay bar)로, 사건 후 오랫동안 폐업했다가 2007년부터 다시 운영하고 있다. (주점과 별도의 오른쪽 하얀 문을 입구로 하는 비지터센터가 올해 6월말에 오픈 예정) 맞은 편 공원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뜬금없이... 남북전쟁과 인디언전쟁에서 활약한 5성 장군 필립 셰리든(Philip Sheridan)의 동상인데, 그래서 여기 교차로는 셰리든 광장(Sheridan Square)으로 불린다. (여기를 클릭해서 셰리든 원수를 소개했던 여행기를 보실 수 있음) 그 공원의 입구쪽으로 돌아가니까 마침내 스톤월 내셔널모뉴먼트(Stonewall National Monument)라는 간판을 찾을 수 있었다. 여러 안내판들 외에 기념물이라 할 만한 것은 약간 어설프게 조각한 것 같았던 두 커플의 하얀 동상이다. 이 곳이 준국립공원으로 지정되던 그 해에, 위기주부가 방문했던 준국립공원들 리스트를 정리하는 포스팅을 작성하면서, 지정에 논란이 많은 장소라는 언급을 했었지만... 실제 방문을 하고 포스팅을 쓰면서 나무위키의 '스톤월 항쟁(Stonewall Uprising)' 문서 등을 읽어보니까, 그 이듬해인 1970년부터 시작되어 지금은 전세계에서 매년 6월에 열리는 프라이드 퍼레이드(Pride Parade)가 시작된 장소로서 충분히 국가적으로 기념할만 한 곳이라는 생각이다. 문제는 수집하는 까만 줄의 브로셔를 구해야 하는데... 밖의 공원에는 비치된 것이 없어, 지키고 있는 경찰에게 물어보니 아마 가게에 있을 거란다~ 그렇다고 저 까만 문을 열고 위기주부 혼자 안에 들어가기는 좀 거시기 해서... 그냥 생략하고 남쪽으로 워킹투어를 계속했다. 7번가(7th Ave)를 따라 제법 걸으니까, 맨하탄과 뉴저지를 연결하는 홀랜드 터널(Holland Tunnel)의 입구가 나왔다. 1927년에 개통되어 거의 백년이 다 되어가는데, 개통 당시로는 세계에서 가장 긴 해저 터널이었단다. (지나갈 때마다 물에 잠길까봐 조마조마^^) 그리고 뉴욕시에 처음 정착한 네덜란드 사람들을 기려서 이름을 붙였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터널의 설계 책임자였다가 완공을 보지 못하고 급사한 Clifford Holland의 성을 딴 것이란다. 그 남쪽 지역은 트리베카(Tribeca)라 불리는데 "Triangle Below Canal street"라는 뜻으로, 소방차 한 대 겨우 들어갈 것 같은 저 소방서 건물을 보러왔다. 어디서 보신 듯한 저 건물의 힌트는 빨간 차고문 위에 매달린 하얀 간판인데, 바로 1984년 Ghostbusters 영화에서 유령잡는 회사의 본부로 나왔던 건물로, 영화에서는 폐소방서라고 하지만 지금도 실제 소방서로 이용되고 있는 건물이다!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을 이미 소개한 적이 있는 젱가타워(Jenga Tower)인데 높이 250 m의 57층 콘도 빌딩으로 2017년에 완공되었다. 이제 워킹투어는 맨하탄을 동쪽으로 가로질러야 해서, 이왕 여기까지 온거 저 건물 바로 밑으로 지나가 보기로 했다. 거기에는 시카고의 클라우드게이트(Cloud Gate), 소위 "콩(The Bean)"과 비슷한 둥근 스테인레스 덩어리를 볼 수 있는데, 역시 시카고의 콩을 만든 인도계 영국인 Anish Kapoor 작품이라고 한다. 길 건너서 광각으로 찍어보면, 이렇게 젱가의 제일 아래쪽 모퉁이를 은색 조약돌로 받쳐놓은 것 같이 보였다. 또 이 건물은 2022년 게임스탑 주식과 함께 급등락을 하다가 파산했던 Bed Bath & Beyond 회사의 CFO가 18층 자택 발코니에서 투신자살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두번째 준국립공원은 사진 가운데 보이는 브로드웨이(Broadway) 대로변의 연방정부 건물 안에 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1990년대에 오래된 건물을 허물고 저 빌딩을 짓기 위해 땅을 파는 과정에서 400여구의 매장된 시신이 새로 발견되었다. 건물 왼편 뒤로 꼭대기가 살짝 보이는 뉴욕시청을 포함해 이 지역은 18세기말까지 아프리카 출신 흑인들만을 위한 묘지로 사용되어 15,000개 정도의 무덤이 있었지만, 19세기에는 아무런 보호도 없이 갈아엎고 건물들을 지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공사를 중단하고 지역을 모두 발굴해서 유해와 유물들을 수습한 후에, 건물 내부에 이 장소의 역사를 소개하는 비지터센터와 함께 외부에 별도의 추모공간을 만들어서 2006년에 흑인매장지 준국립공원(African Burial Ground National Monument)으로 지정을 하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일요일에는 연방 공무원들이 일을 안하기 때문에 비지터센터도 문을 닫는다는 사실... 흑흑~ 비지터센터를 통과해서 나오게 된다는 메모리얼 광장도 못 들어가게 막아 놓았다. 사진에는 안 보이지만 오른쪽 잔디밭으로 여러 개의 봉분들이 있는데, 발굴된 유해들의 분석을 마친 후에 아프리카 전통의 이장 의식을 행해서 다시 단체로 여기 매장을 했다고 한다. 그런 역사도 있는 맨하탄의 지금 모습을 제대로 느끼게 해주는 듯 해서...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노란 신호등과, 대피용 외부 계단이 붙어있는 붉은 벽돌 건물의 모습을 찍어 봤는데, 마지막으로 찾아가는 곳은 19세기 이후 맨하탄에서 살았던 평범한 소시민들의 모습을 보존하고 전시한 곳이다. 철조망 사이로 핸폰 렌즈를 넣고 찍은 사진인데, 허름한 '공동주택(tenement)'의 반지하에서 여러 사람들이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연말에 방문했던 맨하탄 차이나타운(Chinatown)과 가까이 있는 이 건물은, 전세계에서 뉴욕으로 온 이민자 가족들이 힘들게 살았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데, 너무 낡아서 수리도 못하고 50년 가까이 비워졌던 아파트를 통째로 1988년에 박물관으로 만든 것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거주박물관(Tenement Museum)은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National Historic Site로, 국립공원청의 협력을 받는 연계 장소(affiliated unit)에 포함된다. 1층 비지터센터의 유리벽에 여기에서 살았던 이민자 가족들의 흑백사진이 차례로 붙어있는데, 뮤지엄에 대한 상세한 소개는 공원 홈페이지에서 보실 수가 있다. 곧 유료투어가 시작된다는 방송에 사람들이 싹 이동해서 썰렁해 보이는 것이고, 조금 전까지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어찌보면 앞서 위기주부말고는 일부러 찾는 사람이 없던 두 곳의 준국립공원들보다도 훨씬 '장사'가 잘 되는 역사유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안쪽에 이 곳의 역사를 보여주는 영화를 공짜로 틀어줘서, 이게 왠 떡이냐 하며 워킹투어로 지친 발걸음을 쉬며 감상하려고 했는데, 아내로부터 친구와 헤어지고 이제 지혜 아파트로 돌아간다는 카톡이 와서 앉자마자 일어서여 했다... 이렇게 워킹투어를 정리해보니 1993년에 출간된 소설가 황석영의 방북기 제목인 가 떠오른다. 인권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선 성소수자들, 노예로 잡혀와 죽은 흑인들, 그리고 전세계에서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뉴욕으로 왔던 이민자들까지, 여기 맨하탄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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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맨하탄에도 개선문이 있다? 초대 대통령 취임 100주년을 기념하는 아치가 있는 워싱턴스퀘어 공원

제목에 '개선문'이라 써놓고 보니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대연회장을 짓겠다고 절차도 무시하고 백악관 이스트윙(East Wing)을 철거했고, 케네디센터에 마음대로 자기 이름을 넣었다 관객이 급감하니까 2년간 개보수를 한다며 올여름부터 폐쇄하겠다는 트럼프가, 이번에는 알링턴 국립묘지 입구에 올해 미국독립 250주년을 기념해 높이 250피트(76m)의 세계 최대 독립 개선문(Independent Arch)을 만들겠단다. 이러다가 수도 이름도 '트럼프DC'로 뺏길지 모르는 초대 대통령 워싱턴을 기리는 뉴욕 맨하탄에 있는 아치 방문기가 좀 엉뚱하게 시작됐다~ 지난 가을 북부 뉴욕주 2박3일 혼행의 마지막 날, 평소처럼 새벽에 눈이 떠져서 딸의 맨하탄 아파트를 나와 아침을 먹으러 왔다. 뉴욕 대학교(New York University, NYU)가 위치한 옆동네 노호(NoHo) 지역의 24시간 맥도널드였는데, 입구쪽 테이블에 홈리스 두 명이 엎드려 자고 있었지만 직원이 내쫓지는 않았고, 제일 안쪽 테이블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는데 뭐 큰 문제는 없었다. 거기서 서쪽으로 조금 걸으면 나오는 그리니치빌리지(Greenwich Village)의 한가운데 워싱턴스퀘어 공원(Washington Square Park)이 널직하게 자리잡고 있다. 뉴욕시 공원국의 로고가 동그란 원 안에 단풍잎 하나가 그려진 모양이라 자꾸 캐나다를 떠올리게 된다.^^ 공원에서 처음 만나는 동상은 이탈리아 통일의 영웅인 주세페 가리발디(Giuseppe Garibaldi)로 사후 6주년인 1888년에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이 성금을 모아 만들었는데, 그가 망명중이던 1850년대에 뉴욕시에 거주했던 인연이 있기 때문이란다. 자세히 보면 특이한 모자를 쓰고 판초를 입은 상태로 칼을 뽑는 순간을 묘사한 굉장히 특이한 복장과 자세의 동상이다. 공원 중앙에 분수대를 중심으로 넓은 원형 광장이 만들어져 있고, 그 북쪽에 '맨하탄의 개선문'이 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조지 워싱턴의 미국 초대 대통령 취임 100주년을 기념해 1889년에 나무와 석고로 임시 아치를 만든 것이 시민들의 인기를 얻자, 기금을 모금해 대리석으로 1892년에 완공한 높이 77피트(23.5m)의 워싱턴스퀘어 아치(Washington Square Arch) 뒷면 모습이다. 제일 상단에는 "현명하고 정직한 이들이 모일 수 있는 기준을 세우자. 결과는 신의 손에 달려 있다."라는 워싱턴의 말이 새겨져 있고, 이 아치를 시작점으로 북쪽으로 뻗은 도로가 미드타운의 명품거리로 유명한 5번가(5th Ave)이다. 정면에서 바라보면 로마의 원조 '개선문(Triumphal Arch)'인 티투스 아치와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 개선문과 똑같은 익숙한 디자인이다. 참고로 1836년에 완공된 세계적으로 유명한 파리 개선문의 높이는 50미터이고, 1982년에 더 높은 60미터로 평양에 개선문이 비슷한 모습으로 만들어졌는데, 이제 워싱턴DC에 76미터 짜리를 자기가 만들겠다고 하니, 어쩌면 하는 짓이 북한하고 이렇게 똑같은지... 좌우 기둥 정면의 조각은 1910년대에 따로 추가되었는데, 먼저 왼편(동쪽)은 '전쟁의 워싱턴(Washington at War)'으로 배경의 인물들은 명예(Fame)와 용기(Valor)를 각각 상징하고, 오른편(서쪽)은 '평화의 워싱턴(Washington at Peace)'으로 역시 지혜(Wisdom)와 정의(Justice)를 상징하는 인물들을 배경으로 세웠다. 이런 식으로 추상적인 덕목들을 표현한 것을 보니까, 예전에 '워싱턴DC 하이킹'에서 특별히 자세히 소개했던 미드 기념물이 떠오르는데... 여기서 '미드'가 미국 드라마를 말하는 것은 아니니까, 뭔지 궁금하신 분은 여기를 클릭해서 글의 끝부분을 보시면 된다.^^ 따님이 정식으로 취직하고 직장에서 받은 첫월급으로 엄빠에게 빨간 내복 대신에 저 빌딩 꼭대기에서 밥을 사준 것도 벌써 3년이 다 되어간다...ㅎㅎ 개선문 구경은 마쳤으니 이제 공원의 다른 곳들도 좀 둘러보자~ 일요일 아침을 맞아서 개를 산책시키는 뉴요커들이 많았는데, 어떤 여성분은 커다란 개와 함께 옐로캡을 타고 이 공원을 찾아오기도 했다. 왠지 빛이 바랜 듯이 나온 사진의 가운데 멀리 뒷모습이 보이는 흉상은 미국 '철강의 아버지'라는 알렉산더 홀리(Alexander Holley, 1832~1882)를 기념해 1890년에 만들어졌다. 그의 기술혁신으로 현대적인 제강법이 완성되어 철강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져 미국의 철도와 선박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기에, 관련 엔지니어들의 기부금으로 당시 진보적인 지식인들이 모이던 이 공원에 기념물을 세운 것이란다. 서쪽 끝에 서있는 '집행인 느릅나무(Hangman's Elm)'는 수령이 약 330년으로 맨하탄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로 여겨지며, 독립전쟁 시절부터 수 많은 교수형이 치러졌다는 전설이 있다. 그것은 지금의 공원 부지가 1797년부터 공식적으로 범죄자와 무연고자 및 전염병 사망자를 마구 매장했던 뉴욕시의 공동묘지로 운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군대에서 대충 밀어버리고 연병장으로 잠깐 사용한 이듬해인 1827년에 공원이 되어서, 지금도 20,000구 이상의 시신이 땅속에 그대로 있는 상태라 밤이면 유령들이 드글드글 한다고... 다행히 아침이라 귀신들 대신에 노숙자 서너명만 주변 벤치를 지키고 있었고, 그 아래쪽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사들도 거쳐간다는 체스 플라자(Chess Plaza)의 체스판이 각인된 테이블들도 잠깐 구경하고는 중앙 광장으로 돌아왔다. 낮이 되면 거리의 연주자들과 예술가들이 모여 들고, 또 많은 집회와 행사가 열리는 장소로도 유명한 이 공원이 지난 겨울 뉴스에 자주 나왔던 이유는 맨하탄에 눈이 내리면 대규모 집단 눈싸움이 여기서 항상 벌어지기 때문이다. 위 사진을 클릭하면 2월말에 올해 두번째 폭설이 내렸을 때의 짧은 영상을 인스타로 보실 수 있는데, 이 때 사고예방을 위해 출동한 경찰들에게 '적대적'으로 눈덩어리를 던진 몇 명이 체포되어서 잠깐 문제가 되기도 했었다. 모처럼 구경하는 DSLR 카메라를 든 사진사(친구?)를 대동하고 촬영을 하는 한국인 커플을 지나서 이제 돌아가는데, 바닥애 'Good Luck Spot'이라 표시된 작은 원이 그려져 있어서 살짝 발을 걸쳐봤다. 그리고 바로 옆에는 'Bad Luck Spot'이라고 훨씬 더 크게 동그라미를 그려놓는 바람에 빙 돌아 피해서 걸어갔다는...ㅎㅎ 작년 여름에 이미 대표사진으로 보여드린 적이 있는 '큐브'의 사진도 똑같은 구도로 직접 하나 찍어보고는 딸의 아파트 앞길에 주차해둔 차로 돌아가서 2박3일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로 출발했다. 그 곳은 몇 년전의 봄방학 가족여행에서 방문하려고 했다가, 날씨가 안 좋아서 건너뛰었던 장소로 여기를 클릭해서 보실 수 있는 여행기의 첫번째 경로지도와 댓글에 잠깐 이름만 등장했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50달러 지폐 모델인 제18대 율리시스 그랜트 대통령의 묘역인 제너럴그랜트(General Grant) 국립기념관

현재 미국에서 통용되는 지폐는 7종으로, 시중에서 쉽게 보기 어려워 따로 소개한 적도 있는 2달러 지폐를 제외하면, 유통량이 가장 적은게 10달러와 50달러이다. (원래 50달러가 훨씬 적었지만, 코로나 이후 인쇄를 많이 해서 비슷해졌음) 직전에 10달러의 모델인 해밀턴 기념관을 방문했었고, 거기서 불과 차로 5분 거리에 이제 보여드리는 장소가 있다. 율리시스 그랜트(Ulysses S. Grant)가 그려진 50달러 지폐의 모습과 함께 그에 대한 기본적인 소개는 워싱턴DC의 내셔널몰 동쪽 끝에 있는 그의 기념상을 방문했던 포스팅을 먼저 보시면 된다. 네비가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해서 고개를 들어보니 건물의 뒷편이 보여서 길가에 주차를 했는데, 맨하탄의 북쪽에서 허드슨 강변공원(Riverside Park)이 시작되는 위치에 Riverside Dr 도로의 중앙분리대에 해당하는 지역에 기념관을 만든 것이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그런데, 반듯한 화강암 건물의 둘레를 따라서 뭔가 울긋불긋하고 구불구불한 것이 보이는게 신기해서 뒤쪽 계단을 먼저 올라가 봤다. 모자이크 롤링벤치(Mosaic Rolling Bench)는 직접적으로 바르셀로나 구엘 공원에서 영감을 받은 공공예술 작품으로 1972년에 기념관 둘레를 따라 총 길이 약 400피트로 추가되었다. 그러나 묘역의 엄숙한 건축미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이 많아서 1990년대에 철거가 결정되었다가 지역 주민과 예술가들의 반발로 겨우 보존이 되었다고 하는데... "공원에 다른 널직한 곳도 많은데, 애초에 왜 굳이 기념관 위에 만들었을까?" (거기에도 다 이유가 있었지만, 혹시 물어보시면 알려드림^^) 국립공원청에서 모퉁이에 세워 놓은 작은 간판에 이 곳의 이름 위쪽에다가 'Manhattan Sites'라 복수형으로 더 커다랗게 써놓은게 의아해서 찾아본 내용은 아래에 별도 지도와 함께 설명을 드린다. 뉴욕시에 위치한 넓은 의미의 국립 공원들 11곳을 보여주는 지도로 ⑥과 ⑪을 제외한 9곳을 '맨하탄 사이트'로 묶어서 관리를 하는 것이었다. (⑥번 Tenement Museum은 사설 재단이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방문객이 압도적으로 많은 ⑪번 자유의 여신상과 엘리스 섬은 별도 관리) 이 날 ②와 ③을 차례로 찍었으니, 멀리 브롱스(Bronx)에 떨어져 있는 ①번 St. Paul's Church NHS 하나만 빼고는 모두 방문한 것이 되었다. 그리고 위 지도의 남쪽으로 뉴욕항을 감싸는 넓은 유닛이 하나 더 있어 총 12개인데, 그 곳은 바로 다음날에 역시 찾아가게 된다. 잠깐 시선을 돌리니 다른 듯 비슷한 느낌의 높은 건물 둘이 보였는데, 왼편은 41층의 현대식 콘도이고 오른편은 록펠러 가문의 기부금으로 1933년에 완공된 리버사이드 처치(Riverside Church)로 진보적 사회참여로 유명한 교회란다. 그리고 잘 보이지는 않지만 두 건물 너머로 10년전의 아이비리그(Ivy League) 탐방 여행에서 주차할 곳을 못 찾아 정문 사진만 찍고 지나쳤던 컬럼비아 대학교의 본관이 있으며, 그 캠퍼스를 포함한 맨하탄의 이 구역을 인접한 할렘과는 별도로 모닝사이드 하이츠(Morningside Heights)라 부른다. 그랜트는 당시까지는 최연소 기록인 만 46세로 대통령이 되었고, 퇴임 후에는 아내와 함께 2년간 세계일주를 하며 세계적인 영웅으로 환대를 받았다. 그 후 1880년 대선에서 3선에 도전하려 했으나 공화당 내 경선에서 제임스 가필드(James A. Garfield)에게 패했고, 사기 사건에 휘말려 전재산을 잃은 후 회고록을 집필하던 중에 후두암에 걸려서 1885년에 6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는 오하이오(Ohio) 출신 7명의 대통령들중의 하나지만, 퇴임 후 살았던 뉴욕시에 묻히기를 아내가 희망해서 여기 '그랜트의 묘(Grant's Tomb)'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시민들의 성금으로 5년간의 공사끝에 1897년에 성대하게 치러진 봉헌식과 그의 일생 등에 관해서 더 궁금하신 분은 위의 사진을 클릭해서, 국립공원청 홈페이지의 공식 영상을 자막과 함께 보시면 된다. 영묘(靈廟, Mausoleum)의 지붕을 둥근 돔이 아니라 계단식 원뿔 형태로 만든게 상당히 특이한 모습인데, 건축가가 고대의 기념비적 무덤들을 모델로 삼았기 때문이란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서 마침내 공원 간판을 찾았는데, 그랜트가 제7대 잭슨 이후로 무려 40년만에 8년 연임을 하며 남부 재건과 민권 보호 등의 업적이 상당한 대통령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는 북군 총사령관으로 남북전쟁을 끝낸 '장군'으로만 기억되어서 그런지... 이 곳의 공식 명칭도 제너럴그랜트 내셔널메모리얼(General Grant National Memorial)이다. 이제 정면을 향해서 다가가는데 드르륵 우당탕 소리가 들려서 뭔가 했더니... 정면 광장에는 'No Skateboarding' 표지판 아래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있는 형씨들이 모여 있었고, 셧다운으로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어서 더 가까이 가서 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대표사진도 당시 분위기를 잘 남기려고 일부러 스케이트보더가 지나가는 순간으로 잡았다.^^ 높이 45미터인 북미 최대 규모의 영묘로 지하층에 부부의 석관이 나란히 안치되어 있는 실내는 수~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만 자유롭게 개방이 되며, 겨울철에는 방문객이 적어서 시간 단위로 입장이 제한될 수 있단다. 입구 위에는 위기주부가 재작년에 직접 방문했던 애퍼매톡스 코트하우스(Appomattox Court House)에서 항복하는 남군의 리(Lee) 장군에게 그랜트가 했다는 유명한 말인 "Let Us Have Peace"가 새겨져 있는데, 이 문구는 그의 1868년 대선에서 캠페인 표어로도 사용되었다. 왼편의 두 명은 전문적인 장비까지 갖추고 스케이트보딩을 촬영하고 있었는데, 마지막으로 기념관을 돌아보는 척하며 형씨들을 찍는 위기주부를 모두 노려보는 느낌이 들어서 서둘러 자리를 떴다.ㅎㅎ 비지터센터가 강변도로 건너 만들어져 있었지만 당연히 굳게 잠겨 있어서 바로 차를 몰고 맨하탄 남쪽 딸의 아파트로 향했다. 신호대기를 받았을 때 왼편으로 허드슨 야드(Hudson Yard)의 고층 빌딩들이 보여서 사진을 찍었다. 2019년초에 화려하게 개장했으나 4건의 자살 사고로 무기한 폐쇄되었다가, 결국은 2024년말에 추락을 방지하는 가느다란 철망으로 완전히 둘러싸서 재개장을 한 '베슬(Vessel)'도 신호등 아래로 살짝 보인다. 딸과 만나서 집열쇠를 받고 한국에 가있던 아내에게 둘이 만난 사진을 찍어서 보냈는데, 토요일 밤의 외출을 앞둔 따님은 블링블링하고 이틀째 쓸데없는 곳들 돌아다니느라 강행군을 한 위기주부는 피곤한 모습이 역력하다~^^ 저녁이 되니까 북쪽 베란다 너머로 멀리 크라이슬러 빌딩 등의 미드타운 고층건물들에 조명이 들어온 것이 보여서 줌으로 당겨봤고, 히터를 켜는 것을 깜박하고 잠들어서 밤새 오들오들 떨었던, 그러면서도 일어나서 찾아보고 켜기는 귀찮았던 기억이 나는 밤이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알렉산더 해밀턴이 유일하게 소유했던 집인 맨하탄의 해밀턴 그레인지(Hamilton Grange) 국립기념관

"It's Quiet Uptown"은 뮤지컬 2막 18번째 곡명으로, 19세의 필립이 결투로 사망한 후에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과 그의 아내 일라이자가 맏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려 애쓰는 슬픔을 묘사한 노래이다. 위기주부는 지금 다시 들어도 눈물이 나는데, 바로 거기 뉴욕 맨하탄의 '고요한 업타운'에 있는 해밀턴의 집을 지난 가을에 마침내 찾아갈 수 있었다. 1962년에 케네디 대통령의 서명으로 국립기념관이 된 그 장소를 소개하기에 앞서서, 직전에 들린 FDR 국립사적지에서 맨하탄까지 운전해서 내려온 도로 이야기를 잠깐 해본다. 타코닉 스테이트 파크웨이(Taconic State Parkway, TSP)는 뉴욕주에서 가장 긴 104마일의 공원도로로 1925년에 FDR의 제안으로 건설이 시작되었는데, 허드슨 밸리의 동쪽 산악지대 풍광을 고려한 아름다운 설계 등의 이유로 옛날 휴게소같은 부속 건물을 포함해 도로 전체가 2005년에 국가사적지로 지정이 되었다. 위 사진과 거의 흡사했던 단풍길을 운전하면서 주변의 많은 주립공원을 알리는 갈색의 도로표지판을 볼 수 있었는데, 잠깐 눈을 의심했던 간판이 있었으나... 인터넷으로 사진을 찾아보니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1998년에 트럼프는 골프장을 만들 목적으로 맨하탄에서 30분 거리에 436에이커(1.8km²) 부지를 250만 달러에 사들였지만, 엄격한 환경규제와 교통체증 우려 등의 이유로 건설이 어렵게 되자 2006년에 뉴욕주에 기증해서 자신의 이름을 딴 주립공원을 가지게 된다. 기증식 당시에 트럼프는 1억 달러짜리 땅이라고 주장했으며, 실제로 매입가의 10배가 넘는 2천600만불로 세금 공제해택을 받은 기록이 있다. 그러나 예산 문제로 뉴욕주는 2010년에 공원 관리를 중단하고 주립공원 홈페이지에서도 삭제를 해버리자, 트럼프는 다시 반환 요청을 하기도 했단다. 현재는 지나다니며 표지판도 보기 싫다고 공원명을 바꾸자는 청원과 법안만 10여년 전부터 꾸준히 올라오고 있는 상태라 한다. 해밀턴 기념관은 맨하탄 북쪽의 할렘(Harlem) 지역 한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살짝 긴장을 하고 운전을 했던 기억이며, 맞은편 주택가의 도로변에 주차를 하고 나와보니 당시 할로윈을 앞두고 있어서 다닥다닥 붙은 건물에 장식을 한 집이 눈에 띄었는데, 이 길의 이름이 Hamilton Terrace였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그 길이 141st St를 만나는 삼거리 너머, 세인트니콜라스 공원(St. Nicholas Park)의 북쪽 끝에 보이는 노란색 집이 그가 살았던 해밀턴그레인지 내셔널메모리얼(Hamilton Grange National Memorial)이다. 누가 용감하게 인도 위에다 불법주차를 해놓았는지 궁금해하며 도로를 건너갔는데, 공원 간판 너머로 보이는 사복을 입은 국립공원청 직원이 자동차 주인으로, 당시 연방정부 셧다운에도 불구하고 마감 문단속을 하러 나온 듯 했다. 아직 철문이 잠겨있지는 않길래 걸쇠를 풀고 들어가려 했더니, 레인저가 걸어 나오면서 들어가면 안 된다고 말하고는 차에 앉아 나를 주시했다... 그래서 위기주부는 공원 철책 너머로 사진 한 장 담는 것 외에 방도가 없었다. 중요한 사실은 역사적인 이 저택을 보존하기 위해 주변을 공원으로 지정한 것이 아니라, 원래 이 집은 근처 다른 장소에 지어졌었는데, 두 번이나 통째로 움직여서 지금의 위치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러한 과정이 앞쪽 안내판에 잘 설명되어 있으나 가까이 갈 수 없었지만, 인터넷과 AI의 도움으로 내용이 잘 보이도록 아래 화면을 준비했다. 이 저택은 우측 세부지도에 표시된 넓은 대지를 가진 전원주택으로 현재의 143rd St 위치에 처음 지어졌는데, 스코틀랜드 귀족이었던 아버지 가문의 영지 이름인 '그랑제(The Grange)'로 해밀턴이 명명했다. 세월이 흘러 1889년에 현재와 같은 등간격의 격자형 도로가 만들어질 때 철거될 뻔 했지만, 당시 소유주가 저택을 150미터나 말들로 질질 끌어서 새로 지어진 세인트루크 성공회교회(St. Luke's Episcopal Church)의 옆으로 옮기게 된다. 그렇게 교회의 부속 예배당과 숙소 등으로 사용되다가 1962년에 국립 공원으로 지정된 직후의 모습으로, 석조 교회와 아파트 사이에 불쌍하게 끼여있는 모습이다. 특히 현재 보이는 정면은 실제로는 집의 옆쪽에 문을 만든 것으로, 이 상태로는 복원이나 수리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또 시간이 한 참 흐른 2008년에... 다시 건물을 통째로 들어 올려서 도로를 따라 지금의 공원 안으로 이동을 시킨 후에 3년간의 공사를 통해 옛날 그림과 설계도 등을 바탕으로 처음의 전원주택 모습 그대로 복원을 한 것이다. 실내 사진도 몇 장 가져와서 보여드릴까 하다가, 또 혼자서라도 다시 찾아와 내부투어를 할 일이 있을 것 같아 그 때를 기약하기로 했다~ 뉴욕시 맨하탄에 위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간 방문객은 2만명 정도에 불과했었는데, 2015년 여름에 뮤지컬 이 초대박을 터트리고 난 이듬해에는 10만명 가까이 방문하기도 했단다! 위기주부도 최근 해밀턴의 처가집과 그가 묻혀있는 묘지를 일부러 찾아갔었으니 팬이라 할 수 있겠다.^^ 뉴욕주에서 세워놓은 안내판에 씌인 것처럼 해밀턴 부부는 남은 7명의 자녀와 함께 1802년 여름에 업타운에 새로 지은 이 집으로 이사를 해왔지만, 알렉산더 해밀턴 본인이 여기 살았던 기간은 단 2년에 불과한데, 그 이유는 바로... 1804년 7월 11일에 자신도 아들처럼 권총 결투에서 총상을 입고 이튿날 사망했기 때문이다. 전직 재무장관이자 '워싱턴의 오른팔'로 불렸던 해밀턴과 당시 현직 부통령이었던 애런 버(Aaron Burr)의 결투는 허드슨 강 건너 위호켄(Weehawken)에서 벌어졌는데, 지도를 찾아보니 자동차로 자주 지나다닌 링컨터널의 뉴저지쪽 입구 부근이었다. 그 곳도 두 명의 동상과 함께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고, 맨하탄을 바라보는 전망도 좋다고 하니 언제 다시 차를 몰고 맨하탄을 방문할 기회에 또 들리게 될 지도 모르겠다. 주차해 둔 곳으로 가려고 돌아서니 보수 공사중인 루크 교회의 뒤쪽이 보였는데, 원래는 건너편에 공터로 남아있는 옛 부지에 아직도 서있는 역사적인 동상도 직접 볼 계획이었지만, 숙박할 딸의 집에 가기 전에 또 다른 기념관도 하나 더 들러야 했기 때문에 생략했고, 그래서 마지막으로 사진만 한 장 가져와서 보여드리며 글을 마친다. (이번 포스팅은 직접 찍은 사진이 딱 절반^^) 지금까지 해밀턴의 동상은 백악관 옆 재무부 빌딩, 의사당 내부 로툰다, 그리고 다시는 갈 일 없는 패터슨 등에서 많이 봤기 때문에 아쉬움은 없고,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을 다시 볼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별도로 미국내 순회 공연도 현재 시카고를 시작으로 많은 도시에서 차례로 열리므로, 미국에 계시는 분이라면 근처에 공연이 있으면 직접 한 번 관람하시기를 추천한다. 참, 디즈니플러스(Disney+)에서 오리지널 캐스트의 공연을 한글자막으로 제공하므로 한국에서도 TV로 보실 수 있다. 위기주부는 지금까지 아마 다섯 번도 더 본 듯...ㅎㅎ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