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군의 행복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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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카야마 / 오카야마 성 #4) 독특한 까만색 외관이 매력적인 성. 그래서 '까마귀 성' 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성. Okayama Castle 岡山城

(일본 오카야마 / 오카야마 성 #4) 독특한 까만색 외관이 매력적인 성. 그래서 '까마귀 성' 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성. Okayama Castle 岡山城

검은색, 실제로 보면 진한 회색에 가까운 색으로 외관을 장식한 오카야마성의 천수각입니다. 이 색 때문에 '까마귀성'이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고요. 오카야마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오카야마에서 히메지가 매우 가까운 편인데 히메지의 히메지성이 새하얀 외관으로 백로성이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는 것과 확실히 대비가 되죠. 아쉽게도 이 오카야마성은 히메지성처럼 인기가 있지는 않습니다. 일단 천수각의 규모가 히메지성에 비할 바가 아니고요. 히메지성은 옛 천수각이 그대로 남아있는 12곳 중 하나라는 메리트가 있는데 이곳은 최근에 복원한 것이기 때문에 이 메리트를 기대할 수 없죠. 만약 이 천수각이 옛 모습 그.......

[2024 마이 블로그 리포트] 데이터로 찾아보는 내 블로그 마을

[2024 마이 블로그 리포트] 데이터로 찾아보는 내 블로그 마을

금년에도 '오렌지군의 행복을 찾아서'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제 이름은 왜 많이들 검색하셨는지 궁금.. ㅋㅋㅋ

(서울 중구 / 덕수궁 #3) 전통과 근대를 함께 만날 수 있는 곳. 조선시대부터 대한제국,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파란만장한 역사를 쌓아온 궁궐 <준명당, 즉조당>

(서울 중구 / 덕수궁 #3) 전통과 근대를 함께 만날 수 있는 곳. 조선시대부터 대한제국,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파란만장한 역사를 쌓아온 궁궐 <준명당, 즉조당>

원래 월산대군(1454~1488)의 후손을 비롯한 왕족들과 고관들의 저택이 있었다가 행궁을 거쳐 궁궐이 된 곳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안으로 들어오면 다른 궁궐들과는 조금은 다른 느낌을 전해주는 덕수궁입니다. 이곳에서는 덕수궁을 전통 규범 속에 서양식 건축을 수용한 근대적 궁궐이며, 주변 상황의 공간적 맥락에 맞추어 조성한 도시적 궁궐이라고 이곳을 소개하더군요. 임진왜란으로 인해서 서울의 모든 궁궐이 불타 없어지자 선조는 이 집들을 수용하여 임시로 거처하는 행궁으로 사용했습니다. 이후 광해군이 1611년에 재건한 창덕궁으로 이전하면서 19세기 중엽까지는 궁궐로서 큰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1897년에 고종이 황제로.......

(영국 브라이튼 / 노스 레인 #1) 한 때 지역의 골치거리였던 슬럼 거리가 이제 브라이튼을 대표하는 문화 지구로 North Laine, Brighton

(영국 브라이튼 / 노스 레인 #1) 한 때 지역의 골치거리였던 슬럼 거리가 이제 브라이튼을 대표하는 문화 지구로 North Laine, Brighton

브라이튼에서 가장 핫한 젊음의 거리가 어디냐고 물으시냐면 저는 이곳이라고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바로 노스 레인(North Laine)인데요. 브라이튼 역에서 한 블록만 지나가면 만날 수 있는 이 노스 레인은 한때 빈민가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펍, 카페, 상점, 박물관 등이 자리하게 되면서 브라이튼을 대표하는 문화 지구가 되었습니다. 노스 레인의 레인은 Lane이 아닌 Laine입니다. 개방된 토지를 의미하는 이 지역의 방언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개방된 토지는 '공공 농경지'를 의미합니다. 원래 브라이튼에는 총 5개의 Laine이 있었으며 그중 북쪽에 있었던 레인이 바로 이곳 노스 레인이 되겠습니다. 현재는 보시다시피 농.......

[블로그 박물관 여행 / 대구 북구]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대구광역시의 근대사를 담은 박물관. 대구 근대 역사관 <2/2>

[블로그 박물관 여행 / 대구 북구]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대구광역시의 근대사를 담은 박물관. 대구 근대 역사관 <2/2>

대구의 근대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운동'이 있습니다. 바로 일본 제국이 대한제국에 제공한 차관을 국민들이 상환하자!라는 목표로 일어났던 '국채보상운동'입니다. 이 운동이 대구에서 시작되었고 그래서 대구 사람들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운동입니다. 이런 운동을 근대 역사를 다루는 대구 근대 역사관에서 다루지 않는 게 이상하겠죠?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될 무렵 대한제국의 나라 빚은 무려 1,300만 원에 달했습니다. '국채보상운동 아카이브'의 자료에 의하면 이 금액은 현재 물가로 환산하면 약 3,300억 원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습니다. 당시 대한제국의 1년 총 세입이 790만 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