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Is A Song

기생충

By  | 2019년 6월 20일 | 
※ 결정적 스포일러 다량 함유 ※ 기택은 아들에게 "넌 계획이 다 있구나!"라며 감탄했지만, 사실 그의 마음속에는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패배주의가 이미 똬리를 틀고 있었을 것이다. 아들에게는 차마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단다."라고 냉정하게 말할 수 없고, 심정적으로는 아들의 계획을 믿고 응원해주고 싶기도 하지만, 머리로는 계속 회의적인 거다. 이제껏 여러 차례 경험한 실패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그는 동익의 집에 입성한 이후로 다른 가족들과는 조금 다른 행태를 보인다. 처음 계획을 세워서 실행한 아들 기우, 사전 조사도 철저히 하고 상대의 약점을 공략해서 구워삶는 딸 기정, 위기의 상황일수록 더 정신 차리고 집중해서 가족을 지키려는 아내 충숙과는 달리 기택은 운

님포매니악

By  | 2015년 3월 15일 | 
님포매니악
라스 폰 트리에 '우울 3부작' 중 마지막 작품. <안티크라이스트>, <멜랑콜리아>, 그리고 이 작품 <님포매니악>까지 세 작품 모두 우울증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그보다는 여성성과 남성성의 대립이 더욱 중요한 테마로 보였다. 우울증을 앓는 주체는 모두 극단적으로 예민하고, 예술적이고, 직관적인 여성이고, 그녀의 주변인인 남성은 모두 극단적으로 논리적이고, 과학적이고, 분석적이다. 왜 이런 이분법적인 젠더관을 계속해서 고집하는지 이젠 지겹다는 생각이 든다. 서양에서 동양을 자기들 멋대로 이미지화해서 신비롭게 그리는 오리엔탈리즘처럼 라스 폰 트리에가 숭배하면서 동시에 두려워하는 듯한 여성들의 이미지도 획일화되어 있다. 감독 본인이 우울증을 앓던 시기에 만든 작품들이라고 하는데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By  | 2018년 3월 10일 |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물에 잠긴 집안 풍경과 노스텔직한 음악, 나지막한 내래이션으로 아주 독특한 로맨티시즘을 풍기며 시작되는 이 영화에서 물은 무엇도 감쌀 수 있고 그 어떤 형태로도 정의 내릴 수 없는 '포용'의 힘을 갖고 있다. 영화 속에서 언어 장애가 있는 여자 주인공의 마스터베이션과 달걀 삶기가 정확히 같은 선상에 있는 일상적인 일로 그려지듯이 여주의 흑인 동료와 게이 동거인은 여주와 섹스하는 괴생명체를 친구의 남자 친구를 보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차별과 폭력이 난무하는 냉전 시대를 배경으로 그 차별의 대상이 되는 주인공과 친구들이 보여주는 이처럼 극단적인 포용력은 차별과 폭력에 저항하는 아름답고 우아한 방식의 투쟁으로까지 느껴진다. 인간과 괴생명체의 교감은 '킹콩', '늑대소년' 등 다양한 작품에서 활용되어 온

아메리칸 허슬

By  | 2015년 3월 25일 | 
아메리칸 허슬
가운데가 뻥 뚫린 대머리에 정성껏 가짜 머리를 붙이고 나오는, 언제나처럼 망가짐을 두려워하지 않는 크리스찬 베일과 거짓으로 포장된 삶을 살면서도 진정한 사랑을 갈구하며 "No more fake shit!"을 외치는 에이미 아담스, 어쩌다 보니 이 영화로 연기하는 걸 처음 봤는데 매력 있음을 인정하게 된 브래들리 쿠퍼, 그리고! 정신 나간 여자 같지만 진짜 진짜 매력 터지는 제니퍼 로렌스까지 네 배우가 미쳐 날뛰는 앙상블이 정말 볼만하다. 중간에서 적당히 무게감을 잡아주는 제레미 레너도 훌륭하고 말이다. 한 마디로 진짜가 되고 싶어하는 fake shit들의 소동 극이고, 배우들이 팔딱팔딱 뛰어놀 수 있는 무대라서 보는 재미가 있다. 그런데 보는 재미만 있는 게 아니라 듣는 재미마저 있다. OST가 정말

보이후드

By  | 2015년 7월 30일 | 
보이후드
드디어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12년 프로젝트 <보이후드>를 봤다. 사실 평론가들의 아주 좋은 평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기 전까지 이 영화에 대한 기대가 그렇게 크지 않았다. 영화 속에서 12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는데 굳이 같은 배우가 12년간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큰 수고를 들일 필요가 있었을까. 이런 다큐적인 요소가 영화에 어떤 도움이 될까. 뭐 이런 삐딱한 생각이었다. 등장인물도 적고, 배경도 한정되어 있고, 사건도 집약적인, 말하자면 가장 경제적인 영화야말로 가장 영화적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취향이 반영된 것이었다. 싱글맘 올리비아가 메이슨과 사만다라는 두 아이를 키우고, 아이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아빠를 만나고, 엄마는 몇 명의 새로운 남자를 만나고, 몇 번의 이사를 하고, 그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