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햄프턴의 '자유의 요새'라 불리는 포트먼로 준국립공원(Fort Monroe National Monument)
2016년에 미국 국립공원청(National Park Service, NPS) 설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3부작 포스팅의 두번째로 준국립공원(準國立公園)이라 할 수 있는 당시 121개의 내셔널모뉴먼트(National Monument)에 대해 정리한 포스팅을 여기를 클릭해 보실 수 있다. 지난 10월에 바이든 대통령이 콜로라도의 육군 산악훈련소였던 곳을 Camp Hale - Continental Divide National Monument로 지정하면서 지금은 130개가 되었는데, 이처럼 최근에 추가된 곳들은 해제된 군부대나 연방정부가 새로 취득한 역사적인 건물 등이 많다. 지난 9월 남부 버지니아 1박2일 여행의 둘쨋날 아침에 잠깐 구경했던, 이제 소개하는 내셔널모뉴먼트도 한 때 미국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요새가 NPS 소관의 공원으로 지정된 경우이다.
숙박했던 버지니아비치(Virginia Beach)에서 30여분을 달려서 햄프턴(Hampton) 마을의 도서관에 도착을 했는데, 여기가 포트먼로 내셔널모뉴먼트(Fort Monroe National Monument)의 방문자 및 교육 센터로 사용되는 곳이지만... 우리가 방문한 월요일에는 문을 열지 않았다. 흑흑~
이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포트 먼로(Fort Monroe)는 2011년 9월까지 군대가 주둔하던 요새로 사용되다가 해제된 후에, 바로 11월에 당시 오바마의 대통령령에 의해 준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그래서 신호등까지 잘 만들어져 있는 오래된 요새의 정문으로 차를 몰고 안으로 들어가 보는데, 이 곳은 아래의 항공사진을 가져와서 보여드리지 않을 수 없는 곳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바닷가 모래톱에 인공적으로 땅을 파서 만든 해자(垓子, moat)로 둘러싸인 기하학적인 성벽의 모습이 한 눈에 보인다! 이 요새는 미영전쟁 이후인 1819년에 공사가 시작되어 1834년에야 완공되었고, 제5대 대통령인 제임스 먼로(James Monroe)의 이름을 따 명명되었다. 우리가 들어간 정문이 요새의 왼편에 보이는 해자를 건너는 가장 긴 다리인데, 이렇게 당시로는 난공불락의 대단한 요새를 여기에 만든 이유는 나중에 지도로 설명을 드릴 예정이다.
요새 안으로 들어와 차를 몰고 미리 예습해서 찾아놓은 케이스메이트 뮤지엄(Casemate Museum), 즉 '포대(砲臺) 박물관'을 찾아왔지만 매한가지로 문을 닫았다...
그래서 입구에 쌓아놓은 이 대포알 피라미드만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는데, 정작 이 잘 만들어 놓은 큰 요새에서 실제 전투가 벌어져서 대포를 쏜 일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성곽 모서리에 돌출되게 만들어 놓은 보루(堡壘)를 영어로 'bastion'이라 한다는데, 여기 워킹투어 4번은 제일 높은 깃대를 세워놓아서 Flagstaff Bastion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그나저나 이번 포스팅은 어려운 한자어가 많이 나오는 듯...^^
경사로를 따라 성곽 위로 올라오면 앞바다의 지도가 안내판에 그려져 있는데, 남쪽으로 바라보는 것이라서 지도도 위쪽이 남쪽이다. 요새가 있는 곳은 제임스 강(James River)이 체사피크 만(Chesapeake Bay)과 만나는 입구로, 여기서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물길은 햄프턴로드(Hampton Roads)라 불리며 식민지 시절부터 중요한 항해로였다. 안내판에 미국의 해군기지로 유명한 노퍽(Norfolk)이라는 지명도 보이는데, 그래서 아래 구글지도를 따로 준비했다.
작은 사진들은 모두 올해 초에 찍힌 구글어스 위성사진으로, CVN 일련번호로 알 수 있듯이 가장 최신의 미국 항공모함 3척이 여기 모여있다. 마지막 10번째 니미츠급 항공모함인 오른쪽 USS George H.W. Bush는 노퍽 해군기지에서 보수중에 있고, 올해부터 작전에 투입된 차세대 포드급(Ford class) 항공모함인 왼쪽 아래 USS Gerald R. Ford와, 그 위에 제작중인 같은 급의 USS John F. Kennedy의 두 척은 뉴포트뉴스(Newport News)의 해군 조선소에 나란히 정박해 있다. 이것만 봐도 빨간 마커로 표시된 Fort Monroe가 지키고 있는 입구가 식민지 시절부터 지금 21세기까지 미국에서 얼마나 중요한 요충지인지를 잘 설명해준다.
그렇기는 한데... 요새의 성벽 위에서 딱히 더 구경할 것은 없어서, 괜히 미안해 했던 가이드의 모습이다.
이 곳이 남부 버지니아에 속하니까,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여기 주둔하던 연방군은 적군에 포위된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남군은 감히 이 철통방어의 요새를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했고, 북군은 우수한 해군력의 지원을 받아 이 요새를 거점으로 노퍽 등에서 전투를 치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곳이 '자유의 요새(Freedom's Fortress)'라는 별명을 얻은 이유는 따로 있는데, 아래 비지터센터의 내부 사진을 한 장 가져와서 보여드리며 설명한다.
남북전쟁이 시작된 직후에 인근에 살던 흑인노예 3명이 이 요새로 목숨을 걸고 탈출을 했고, 당시 미국 연방법은 도망친 노예는 잡아서 주인에게 돌려주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변호사 출신의 군인이었던 Benjamin Butler 사령관이 판단하기를... 버지니아는 미연방에서 탈퇴를 했으니 이 3명을 연방법에 따라 주인에게 돌려줄 의무가 없고, 남부가 노예들을 연방과의 전쟁에 이용하고 있으니 이 3명은 적군에게서 빼앗은(제발로 걸어왔지만^^) '전리품(contraband)'이라 선언하고는 안전하게 요새에서 먹여주고 재워주게 된다. 이 소문이 퍼져 다른 노예들도 이리로 탈출을 해와서 '자유의 요새'로 불리게 되고, 버틀러 소장의 이러한 법해석이 나중에 링컨이 남부의 노예해방(Emancipation)을 선언하는데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여기처럼 1800년대에 벽돌로 지은 대규모 요새가 미국의 공원으로 관리되는 곳들이 이외에도 많이 있고, 그 중에 한 곳은 최고 등급(?)인 내셔널파크(National Park)로 지정되어 있는데 아직 못 가봤다! 여기를 클릭하면 그 국립공원에 가장 가까이 갔었던 여행기와 함께, 글의 제일 마지막에서 그 곳의 이름을 확인하실 수 있다. "언제 가볼 수 있을까?"
이 정도로 요새 안쪽의 구경은 마치고, 반대쪽 동문으로 나가기 위해서 파란불을 기다렸다.
모든 게이트가 차 한대만 지나갈 수 있는 폭이라서, 교차신호로 운영을 하기 때문에 중간에 절대 설 수는 없다.
요새의 바깥쪽도 저 건물을 포함해서 공원에 속하는 것으로 나와 있는데, 성조기 장식을 한 저 집은 뭘 하는 곳일까?
맞은편으로는 피싱피어(fishing pier)가 만들어져 있어서 아내가 끝까지 걸어가보고 있는데, 말 그대로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이 피어를 지나서 조금 더 걸어간 바닷가에 또 중요한 이정표가 하나 있는데, 거기까지 가보지를 않았기 때문에 관광청에서 가져온 사진으로 대신 보여드린다.
앞서 미국 남북전쟁과 노예해방에 관해 말씀 드렸는데, 사실 그 미국 흑인노예의 역사가 시작된 곳도 이 바닷가라고 한다. 식민지 시절이던 1619년에 영국 사략선(privateer)이 서인도 제도로 가던 포르투갈 노예선에서 뺏은 흑인노예 약 20명을 여기 포인트컴포트(Point Comfort)에서 식량과 교환했다는 기록에 따라서, 그들이 영국의 버지니아 식민지에 최초로 발을 디딘 아프리카 흑인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야전상의를 입고 낚시를 하시는 분 너머로 보이는 올드 포인트컴포트 등대(Old Point Comfort Lighthouse)는 1802년에 만들어져 지금도 불을 밝히고 있어서, 체사피크베이(Chesapeake Bay)에서 운영되고 있는 등대들 중에서는 가장 오래되었다 한다. 이렇게 오래간만에 준국립공원(National Monument) 한 곳을 간단히 둘러보았는데, 전날 국가기념물(National Memorial), 국립해안(National Seashore), 국립사적지(National Historic Site)의 3곳을 방문했으니, 1박2일 여행에서 벌써 4번째 NPS official unit인 셈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고 바로 이어지는 다음 방문지는 또 국립역사공원(National Historical Park)이었으니까, 1박2일만에 유형이 다른 총 5곳을 골고루 이 리스트(보시려면 클릭!)에 추가하는 기록을 세웠던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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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워맨하탄에 있는 두 개의 준국립공원인 스톤월과 흑인매장지 및 다른 곳들도 둘러본 셀프 워킹투어
작년 7월부터 딸이 맨하탄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후로 거의 매달 뉴욕시를 찾았었지만, 이번에는 정확히 무려 3개월만의 방문이었다. 대신에 그 전에는 대부분이 당일치기였다면, 이번에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루 숙박을 해서, 동부로 이사온 후부터 계속 가보고 싶었던 정원도 다음날 구경을 하고 다른 역사공원 한 곳도 잠시 들렀다. 또 첫날 맨하탄에서 잠시 위기주부 혼자 셀프 워킹투어를 하면서, 본 포스팅인 '별볼일 없는 국립 공원: 뉴욕 번외편'도 찍는 등 오래간만에 여러모로 알찬 1박2일 여행이었다.
그리니치 빌리지(Greenwich Village)의 'Sotto 13'이란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의 일요일 점심은, 뉴욕으로 프로포즈 여행을 온 아칸소 주에 살고 있는 조카와 약혼녀를 함께 만나서 특별히 더욱 뜻깊었고, 또 이 날은 미국의 마더스데이(Mother's Day)이기도 했다.
그러나 식사만 마치고 우리는 모두 뿔뿔이 흩어졌는데... 조카 커플은 맨하탄 관광을 위해 첼시로 향했고, 지혜는 급한 업무로 일을 하러 아파트로 돌아가고, 아내는 마침 뉴욕에 와있는 LA 친구를 만나러 갔다. 그래서 위기주부는 혼자 로워맨하탄(Lower Manhattan) 지역의 별볼일 없는 국립 공원들을 찾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아내를 근처 커피숍에 바래다 주고 6번가(6th Ave)를 따라 남쪽으로 조금 내려가니, 작년 8월에 점심을 먹었던 초록색 Olio e Più 식당이 나왔다. 여기서 오른편 크리스토퍼 길(Christopher St)로 들어가면 비교적 최근인 2016년에 오바마 대통령이 지정한 준국립공원이 하나 나온다.
도로 가운데 좁고 긴 삼각형의 녹지에 성조기와 함께 무지개 깃발이 걸려있고, 그 오른편으로 이제 찾아가는 '술집'이 나온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스톤월인(Stonewall Inn)이란 가게 이름 네온사인이 양복을 입은 두 남자에 살짝 가렸는데, 1969년 6월 28일 새벽 1시경에 뉴욕경찰이 주류 판매허가 없이 술을 판다고 단속을 나왔던 게이바(gay bar)로, 사건 후 오랫동안 폐업했다가 2007년부터 다시 운영하고 있다. (주점과 별도의 오른쪽 하얀 문을 입구로 하는 비지터센터가 올해 6월말에 오픈 예정)
맞은 편 공원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뜬금없이... 남북전쟁과 인디언전쟁에서 활약한 5성 장군 필립 셰리든(Philip Sheridan)의 동상인데, 그래서 여기 교차로는 셰리든 광장(Sheridan Square)으로 불린다. (여기를 클릭해서 셰리든 원수를 소개했던 여행기를 보실 수 있음)
그 공원의 입구쪽으로 돌아가니까 마침내 스톤월 내셔널모뉴먼트(Stonewall National Monument)라는 간판을 찾을 수 있었다.
여러 안내판들 외에 기념물이라 할 만한 것은 약간 어설프게 조각한 것 같았던 두 커플의 하얀 동상이다. 이 곳이 준국립공원으로 지정되던 그 해에, 위기주부가 방문했던 준국립공원들 리스트를 정리하는 포스팅을 작성하면서, 지정에 논란이 많은 장소라는 언급을 했었지만...
실제 방문을 하고 포스팅을 쓰면서 나무위키의 '스톤월 항쟁(Stonewall Uprising)' 문서 등을 읽어보니까, 그 이듬해인 1970년부터 시작되어 지금은 전세계에서 매년 6월에 열리는 프라이드 퍼레이드(Pride Parade)가 시작된 장소로서 충분히 국가적으로 기념할만 한 곳이라는 생각이다.
문제는 수집하는 까만 줄의 브로셔를 구해야 하는데... 밖의 공원에는 비치된 것이 없어, 지키고 있는 경찰에게 물어보니 아마 가게에 있을 거란다~ 그렇다고 저 까만 문을 열고 위기주부 혼자 안에 들어가기는 좀 거시기 해서... 그냥 생략하고 남쪽으로 워킹투어를 계속했다.
7번가(7th Ave)를 따라 제법 걸으니까, 맨하탄과 뉴저지를 연결하는 홀랜드 터널(Holland Tunnel)의 입구가 나왔다. 1927년에 개통되어 거의 백년이 다 되어가는데, 개통 당시로는 세계에서 가장 긴 해저 터널이었단다. (지나갈 때마다 물에 잠길까봐 조마조마^^) 그리고 뉴욕시에 처음 정착한 네덜란드 사람들을 기려서 이름을 붙였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터널의 설계 책임자였다가 완공을 보지 못하고 급사한 Clifford Holland의 성을 딴 것이란다.
그 남쪽 지역은 트리베카(Tribeca)라 불리는데 "Triangle Below Canal street"라는 뜻으로, 소방차 한 대 겨우 들어갈 것 같은 저 소방서 건물을 보러왔다. 어디서 보신 듯한 저 건물의 힌트는 빨간 차고문 위에 매달린 하얀 간판인데,
바로 1984년 <고스트버스터즈> Ghostbusters 영화에서 유령잡는 회사의 본부로 나왔던 건물로, 영화에서는 폐소방서라고 하지만 지금도 실제 소방서로 이용되고 있는 건물이다!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을 이미 소개한 적이 있는 젱가타워(Jenga Tower)인데 높이 250 m의 57층 콘도 빌딩으로 2017년에 완공되었다. 이제 워킹투어는 맨하탄을 동쪽으로 가로질러야 해서, 이왕 여기까지 온거 저 건물 바로 밑으로 지나가 보기로 했다.
거기에는 시카고의 클라우드게이트(Cloud Gate), 소위 "콩(The Bean)"과 비슷한 둥근 스테인레스 덩어리를 볼 수 있는데, 역시 시카고의 콩을 만든 인도계 영국인 Anish Kapoor 작품이라고 한다.
길 건너서 광각으로 찍어보면, 이렇게 젱가의 제일 아래쪽 모퉁이를 은색 조약돌로 받쳐놓은 것 같이 보였다. 또 이 건물은 2022년 게임스탑 주식과 함께 급등락을 하다가 파산했던 Bed Bath & Beyond 회사의 CFO가 18층 자택 발코니에서 투신자살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두번째 준국립공원은 사진 가운데 보이는 브로드웨이(Broadway) 대로변의 연방정부 건물 안에 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1990년대에 오래된 건물을 허물고 저 빌딩을 짓기 위해 땅을 파는 과정에서 400여구의 매장된 시신이 새로 발견되었다. 건물 왼편 뒤로 꼭대기가 살짝 보이는 뉴욕시청을 포함해 이 지역은 18세기말까지 아프리카 출신 흑인들만을 위한 묘지로 사용되어 15,000개 정도의 무덤이 있었지만, 19세기에는 아무런 보호도 없이 갈아엎고 건물들을 지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공사를 중단하고 지역을 모두 발굴해서 유해와 유물들을 수습한 후에, 건물 내부에 이 장소의 역사를 소개하는 비지터센터와 함께 외부에 별도의 추모공간을 만들어서 2006년에 흑인매장지 준국립공원(African Burial Ground National Monument)으로 지정을 하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일요일에는 연방 공무원들이 일을 안하기 때문에 비지터센터도 문을 닫는다는 사실... 흑흑~
비지터센터를 통과해서 나오게 된다는 메모리얼 광장도 못 들어가게 막아 놓았다. 사진에는 안 보이지만 오른쪽 잔디밭으로 여러 개의 봉분들이 있는데, 발굴된 유해들의 분석을 마친 후에 아프리카 전통의 이장 의식을 행해서 다시 단체로 여기 매장을 했다고 한다.
그런 역사도 있는 맨하탄의 지금 모습을 제대로 느끼게 해주는 듯 해서...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노란 신호등과, 대피용 외부 계단이 붙어있는 붉은 벽돌 건물의 모습을 찍어 봤는데, 마지막으로 찾아가는 곳은 19세기 이후 맨하탄에서 살았던 평범한 소시민들의 모습을 보존하고 전시한 곳이다.
철조망 사이로 핸폰 렌즈를 넣고 찍은 사진인데, 허름한 '공동주택(tenement)'의 반지하에서 여러 사람들이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연말에 방문했던 맨하탄 차이나타운(Chinatown)과 가까이 있는 이 건물은, 전세계에서 뉴욕으로 온 이민자 가족들이 힘들게 살았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데, 너무 낡아서 수리도 못하고 50년 가까이 비워졌던 아파트를 통째로 1988년에 박물관으로 만든 것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거주박물관(Tenement Museum)은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National Historic Site로, 국립공원청의 협력을 받는 연계 장소(affiliated unit)에 포함된다. 1층 비지터센터의 유리벽에 여기에서 살았던 이민자 가족들의 흑백사진이 차례로 붙어있는데, 뮤지엄에 대한 상세한 소개는 공원 홈페이지에서 보실 수가 있다.
곧 유료투어가 시작된다는 방송에 사람들이 싹 이동해서 썰렁해 보이는 것이고, 조금 전까지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어찌보면 앞서 위기주부말고는 일부러 찾는 사람이 없던 두 곳의 준국립공원들보다도 훨씬 '장사'가 잘 되는 역사유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안쪽에 이 곳의 역사를 보여주는 영화를 공짜로 틀어줘서, 이게 왠 떡이냐 하며 워킹투어로 지친 발걸음을 쉬며 감상하려고 했는데, 아내로부터 친구와 헤어지고 이제 지혜 아파트로 돌아간다는 카톡이 와서 앉자마자 일어서여 했다... 이렇게 워킹투어를 정리해보니 1993년에 출간된 소설가 황석영의 방북기 제목인 <사람이 살고 있었네>가 떠오른다. 인권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선 성소수자들, 노예로 잡혀와 죽은 흑인들, 그리고 전세계에서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뉴욕으로 왔던 이민자들까지, 여기 맨하탄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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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크래프트 - 항공모함 (조금 스압?)
미국 남북전쟁(Civil War)에서 가장 길었던 9달반의 군사작전인 피터스버그 포위전(Siege of Petersburg)
"움켜잡다/점령하다"라는 뜻의 영단어 'seize'와 스펠링과 발음, 그리고 의미까지 비슷해서 헷갈리는 다른 단어로 'siege'가 있다. 영어에 약했던 위기주부는 "가두다/포위하다"라는 뜻의 이 단어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던 때를 정확히 기억하는데, 바로 한국에 PC방 열풍을 일으켰던 컴퓨터 전략 게임인 스타크래프트(StarCraft)를 하면서, 테란 종족의 지상공격 무기에 시즈탱크(Siege Tank)가 있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본인의 주종족은 프로토스였는데... 정말 거의 30년전 이야기다! ㅎㅎ
말을 꺼낸 김에 찾아본 시즈탱크의 모습으로 애니메이션처럼 지지대로 땅에 고정되는 '시즈모드(siege mode)'를 개발하면, 엄청난 사거리의 포격으로 적의 기지와 방어선을 공성(攻城)하는 능력이 탁월한 무기였다. 옛날이라 비록 이런 탱크는 없었지만(^^) 북군이 무지막지한 크기의 대포를 만들면서까지, 남군의 전략적 요충지였던 피터스버그를 9개월 이상 둘러싸고 공격을 했던 것이 바로 피터스버그 포위전(Siege of Petersburg)이다.
1864년 남북전쟁 말기의 소위 '오버랜드 캠페인(Overland Campaign)'에서 양측의 이동경로를 보여주는 지도이다. 제일 위쪽의 The Wilderness와 Spotsylvania Court House 전투는 작년 여름에, 그랜트가 남군 수도 리치먼드를 점령하려다 막대한 피해를 입었던 Cold Harbor 전투는 시리즈 전편에서 잠깐씩 소개를 했었다. 그 후에 제일 아래의 여기 피터스버그를 점령하기 위해 9개월 이상 공성전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 부근의 많은 전투지역과 북군의 보급기지였던 제임스 강변의 시티포인트(City Point) 등이 국립 공원인 피터스버그 국립전쟁터(Petersburg National Battlefield)로 지정이 되어 있고, 여기는 그 중 가장 대표적인 동부전선 안내소(Eastern Front Visitor Center)인데, 시작부터 커다란 대포들이 즐비하게 놓여있다.
공성전의 의미를 살리려 했는지, 비지터센터 건물의 외관도 아주 튼튼한 성처럼 느껴졌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여기서 제임스 강을 따라서 하류로 내려가면, 재작년에 방문해서 잠깐 소개한 적이 있는 버지니아 식민지가 시작된 제임스타운(Jamestown)이 나오는데, 그 공원 안에 있던 역사적인 글래스하우스(Glasshouse)에서 만든 유리공예 제품을 전시판매하고 있는게 특이했다.
직원이 위기주부만을 위해서 안내영화 <Endurance Without Relief>를 틀어주었는데, 재연배우들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피터스버그 포위전을 이해하는데 역시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화면의 좌우 아래쪽으로 많이 보이는 것들이 모두 스피커였나?
앞서 잠깐 언급했던 특별 제작한 대포인 'The Dictator'로 지름 13인치에 무게 100 kg이 넘는 포탄을 2.5마일 거리까지 발사할 수 있었단다. 하지만 대포 자체의 무게가 8톤이 넘어서, 철도로만 운반이 가능했기 때문에 활용도가 낮아서 자주 사용되지는 못했다고 한다.
원형의 극장을 전시장이 둘러싸고 있는데, 그 사이에는 참호를 연상시키도록 땅을 파놓은 이유도 나중에 아시게 된다.
그렇게 비지터센터 구경을 마치고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여기는 오토투어의 출발점 역할만 하기 때문에, 시간이 없기는 했지만 레인저가 추천해 준 장소 두 곳은 둘러보기로 하고, 아래와 같은 일방통행 도로를 따라서 출발을 했다.
넓은 지역을 모두 표시한 공원 지도에서 피터스버그 시내와 가장 가까웠던 동부전선 지역만 크게 확대한 것으로, 연한 붉은색으로 띄엄띄엄 그려진 굵은 선들이 남군의 방어선을 나타낸다.
③번 Siege Encampment Exhibit로 양측이 9개월 이상 대치할 때, 병사들이 임시로 만들어 지냈던 통나무집과 함께...
당시의 참호를 재현해 놓았다. 1900년대 초의 제1차 세계대전을 상징하는 장면인 참호전이, 실질적으로 처음 등장한 전투가 피터스버그 포위전이라 한다.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이 공원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인 ⑧번 The Crater이다. "여기에 무슨 분화구가 있다는 말이지?"
난간 안쪽으로 지금도 움푹 꺼져보이는 곳이 바로 그 '분화구'이다. 빨리 피터스버그를 함락시키고 리치먼드를 점령해 전쟁을 끝내고 싶었던 그랜트 장군의 지시로, 남군 방어선 아래로 몰래 땅굴을 파서, 1864년 7월 30일 새벽에 무려 8,000파운드의 화약을 폭발시켜서 지름 50 m에 깊이 9 m의 거대한 이 구덩이가 만들어졌다. 당연히 남군의 진지도 싹 다 날라가서, 그 무너진 틈으로 북군이 돌격을 했지만...
공원 브로셔 표지에 인쇄된 이 그림처럼 북군은 깊숙한 구덩이에 빠져서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고, 정신을 차린 주변의 남군이 반격을 해와서, 대부분 흑인으로 구성되었던 북군의 돌격부대는 거의 학살을 당하는 수준으로 무려 3,800명의 사상자를 내게 된다. 이 구덩이 전투(Battle of the Crater)의 실패로 그랜트는 전략을 바꿔서, 피터스버그를 포위하고 남군의 보급 철도망을 하나씩 끊어나가는 장기전에 돌입하게 된다.
확실히 여기는 남부 버지니아라서 그런지 구덩이 주변으로는 여기를 지키고 싸웠던 남군을 추모하는 기념물이 많이 보였는데, 앞쪽에 보이는 것은 노스캐롤라이나 부대를 기리는 것이고, 뒤로 보이는 탑은 그 날 반격을 주도한 남군의 마혼(Mahone) 장군 기념비이다.
그렇게 남군은 절대적인 열세 속에서 이듬해 3월말까지 무려 9개월반을 버텼지만... 결국 마지막 보급선까지 끊어지고 북군 총사령관 그랜트 장군이 총공세를 예고하자, 1865년 4월 2일 밤에 남군 총사령관 리(Lee) 장군은 피터스버그와 리치먼드를 동시에 포기하고 전병력을 유일한 탈출구인 서쪽으로 후퇴시키기로 결정한다. 그로부터 7일 후에 두 장군이 얼굴을 마주하게 되는 장소가 바로, 이 날 위기주부가 첫번째로 방문했던 곳으로 '남부 버지니아 별볼일 없는 국립 공원들' 시리즈의 마지막 편에 소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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