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전형충원 무연고 독립투사 묘지 참배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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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전형충원 무연고 독립투사 묘지 참배를 다녀와서

1919년, 3·1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펼쳐진지 100주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대전에는 국립대전현충원이 있고 그곳의 애국지사 묘역에는 수많은 애국지사가 잠들어 있기 때문에 순국선열의 나라사랑과  자주독립을 향한 열망을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습니다.  24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무연고 독립투사 묘지 참배 행사가 열린다고 해서 찾아갔습니다.국립대전현충원 현충문 국립대전현충원 홍살문과 사이로 보이는 호국분수탑 홍살문과 현충문을 지나 더 올라가면 애국지사2묘역이 보이고 조금 더 가면 3묘역이 있습니다. 오늘 행사는 애국지사3묘역에서 있었습니다.  애국지사 2묘역과 3묘역 사이의 길은 선열길, 열사길이고 애국지사 2묘역과 3묘역 앞으로 쭉 뻗은 길은 현충길이라고 되어 있군요. 애국지사 2묘역에는 김구 선생의 어머니인 곽낙원 독립운동가의 묘소도 있습니다. 나라를 잃고 타민족의 가혹한 지배를 받았던 민족의 치욕적 역사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는가   필자의 부친도 애국지사묘역에서 조금 올라간 곳에 잠들어계시기 때문에 비교적 자주 가면서 석비의 글을 의미있게 읽어보곤 했는데, 오늘은 갑자기 의문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가 타민족의 직접적인 가혹한 지배를 받은 것은 침략자 일본에 의한 35년 밖에 없는데, 석비에는 일본을 굳이 언급하진 않았군요.  오늘 행사는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독립유공자 묘역에 울려 퍼지는 기미독립선언'이란 주제로 애국지사 3묘역에서 열렸습니다. 징검다리 음악봉사단 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여 현악연주 반주에 맞춰 애국가를 부르고 3.1절 노래와 아리랑을 연주했습니다. 학생 대표 두 명이 앞으로 나와서 현대판 독립선언서를 낭독했습니다.  원래 독립선언서는 '吾等은 玆에 我鮮朝의 獨立國임과 朝鮮人의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 此로써 世界萬邦에 告하야 人類平等의 大義를 克明하며 此로써 子孫萬代에 誥하야 民族自存의 正權을 永有케하노라.(중략)' 이렇게 한자문이 섞여있어 지금 읽기에는 조금 어렵긴합니다.  필자가 고등학생이던 시절에는 국어책에 독립선언서가 수록돼있었고 이걸 모두 외웠는데, 지금은 국어 교과서에 실려있기나 한지 모르겠네요. 중요한 국사 과목을 선택으로 만들어놓은 시대이니. 100년 전의 내용인데도 지금도 아직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대단한 평등과 평화주의 사상이 담겨있어서 놀라울 따름입니다. 빨갛게 표시한 것은 원래 조선이라고 활자를 넣어야 하는데 급히 서두르다가 실수로 '선조'로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만세 삼창을 한 다음에는 무연고 독립투사 승대언 순국선열의 묘에 헌화하고 묵념했습니다.  승대언 순국선열은 3.1운동에 참여한 후 중국으로 망명했습니다. 서간도에서 한족회를 결성하고 배달학교를 설립해 애국계몽 활동을 하던 중 1920년 11월3일에 일본군의 습격을 받아 순국하셨다고 합니다.  돌아가시고 71년이 지난 1991년에 이르러서야 건국훈장 애국장으로 추서됐고, 2005년 9월 30일에야 유해를 봉환해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습니다. 1919년에 쫓기듯 한반도를 떠나 86년이 지나서야 고국 땅에서 안식을 취하게 됐습니다.  독립투사 순국선열도 그렇고 6.25 전사자 순국선열도 그렇고 젊은 나이에 자손을 남기지 못하고 순국하신 경우에는 이처럼 무연고 묘지가 됩니다. 세월이 흘러 무연고가 된 순국선열의 묘지를 정확히 파악해서 국가와 시민들의 자발적인 봉사로 돌봐야 할 것입니다. 조국독립에 이 몸 기꺼이 바치려니  잔악한 일제 말발굽소리 동지들 피로 물들어 북만주 부강향 골짜기 잠들었다 꿈에도 그립던 조국 땅 동지들과 어울려 민족통일 기우하며 편히 쉬리라  어린 학생들이 독립투사 순국선열의 절절한 마음을 얼마나 느꼈을지는 모르지만, 이런 기회를 통해 한번 더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오늘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행사에서 연주를 하고 노래를 부른 학생들은 징검다리 음악봉사단인데요.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으로 구성된 대전지역의 음악 봉사단이라고 합니다. 행사를 마친 학생들은 태극기를 들고 애국지사 3구역 묘비사이로 행진을 했습니다.   학생들과 학부모가 모두 떠난 뒤에도 한 분이 남아 수십분이 흐르도록 한 묘지 앞에 서있었습니다. 순국선열의 자손으로 보였습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순국하신 분들의 자손이 모두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으며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면 좋겠습니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 나라다운 나라가 되는 것이겠지요.  순국선열의 묘지 사이로 다니면서 묘비를 읽어보면 하나하나가 모두 장편소설입니다. 혼자 묘비를 읽어보며 다니다가 눈물을 또르륵 흘리면서 3.1절 노래도 부르고, 장편 소설도 몇 편 읽고 왔답니다.  국립대전현충원 입구에는 하늘로 힘차게 솟아오르려는 천마상이 있습니다. 좌우로 세 마리씩 있는데, 좌우 각각 忠과 義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21세기 국운도 이렇게 힘차게 솟아오르겠죠? 우리는 반만년의 역사와 무한한 미래를 연결하는 오늘의 주역으로 살고 있다. 우리에게 굳센 의지와 줄기찬 노력이 있다면 우리 민족은 반드시 세계사의 주역으로 등장할 것이다. 지금부터가 바로 '그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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