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오브프러시아

포스트: 3|아이템:킹오브프러시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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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실베니아 출신의 괴짜 고고학자, 유물 수집가, 타일 제작자가 살던 집인 폰트힐 캐슬(Fonthill Castle)

펜실베니아 출신의 괴짜 고고학자, 유물 수집가, 타일 제작자가 살던 집인 폰트힐 캐슬(Fonthill Castle)

이젠 당일로 맨하탄을 다녀오는게 쉽지 않아서, 조카 부부를 만나고 돌아오는 저녁에 뉴저지에서 숙박을 했다. 호텔비를 썼으니 다음날 뭔가 구경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할텐데... 필라델피아 시내는 주차가 힘들까봐 그렇게 끌리지 않았고, 유명한 정원들은 아직 겨울이라 본전을 못 뽑을 것 같았다. 그러다가 필라델피아 외곽 벅스카운티(Bucks County)의 도일스타운(Doylestown)이란 마을에 있는 이 독특한 '성(城)'을 아내가 찾았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이드 투어비 인당 15불이 전혀 아깝지 않았던 흥미있는 장소였다. 그 전에 승용차만 겨우 마주 지나갈 수 있는 좁은 철교의 사진을 보여드리는데, 뉴저지와 펜실베니아의 경계인 델라웨어 강에 놓여진 워싱턴크로싱 다리(Washington Crossing Bridge)로, 강 양쪽의 마을 이름도 동일하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그 이유는 1776년 크리스마스 저녁에 조지 워싱턴이 직접 2,400명의 대륙군을 이끌고, 바로 여기서 반쯤 얼어붙은 강을 배로 건넜기 때문인데, 미국사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한 번쯤은 보신 적이 있을 아래의 그림으로 유명한 역사적 장소이다. 가로 6.5미터의 대작으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인데, 다음에 MET를 다시 방문하면 미국관에 걸려있는 이 그림을 꼭 직접 봐야겠다~ 이렇게 강을 건너 뉴저지 트렌턴(Trenton)에 주둔한 영국이 고용한 독일용병 부대를 상대로 기적같은 승리를 거둬서, 꺼져가는 독립의 불씨를 극적으로 되살리게 된다. 이를 기념하는 펜실베니아 주립의 역사공원이 강가에 만들어져 있지만, 다음 기회에 들리기로 하고, 우리는 계속해서 원래의 목적지를 찾아갔다. 폰트힐 캐슬(Fonthill Castle)은 제목의 소개와 같은 헨리 머서(Henry Mercer)가 직접 설계해서 1908~1912년에 콘크리트로 건설한 자신의 집이다. 성에는 44개의 방과 200개의 창문 및 18개의 벽난로가 있는데, 1시간짜리 유료 투어에서는 중앙의 출입문을 기준으로 미로같은 왼쪽 절반만 겨우 둘러보게 된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입구를 통해 실내로 처음 들어섰을 때는 던전(Dungeon)같은 분위기의 좁은 공간에 기둥과 천장도 기괴해서, 집주인이 드라큘라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하지만 가이드 왼편의 닫혀진 문을 열고 첫번째 방으로 들어가면서부터 그 걱정은 감탄으로 바뀌게 된다~ 복층의 도서관으로 집주인 헨리 머서가 직접 만든 세라믹 타일(tile)로 장식되어 있다. 집의 모든 콘크리트 기둥과 천장이 원래는 파스텔 톤으로 칠해졌었다고 하지만, 100년이 훨씬 넘는 시간이 흘러서 그 색깔들이 모두 바래진 상태란다. 벽난로 위의 이 타일들은 아라비안나이트 이야기를 묘사한 것으로 그는 이와같이 특별한 디자인의 타일 제작자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데, 작년말에 위기주부가 직접 방문해 소개했던 펜실베니아 주의사당에 그의 최대 타일 모자이크 작품이 있으며, 모두가 들어본 LA 헐리우드 거리의 만스차이니즈(Mann's Chinese) 극장 로비의 바닥도 그의 공장에서 만들어진 타일이란다! 도서관 옆으로는 주 거실이 나오는데, 그가 전세계를 여행하며 수집한 많은 나라의 타일들이 일련번호와 함께 곳곳에 전시되어 있다. 벽난로 옆에 서있는 말년의 주인장 모습으로, 그는 1856년 도일스타운에서 태어나 하버드 대학교에서 인문학을 공부하고 유펜 로스쿨을 나와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지만, 한 번도 변호사로 활동을 하지는 않고 바로 유럽으로 떠나서 8년이나 여행을 했단다. 그리고 돌아와서 1890년에 펜실베니아 대학교 박물관의 고고학 큐레이터로 취직했지만 바로 그만두고, 독일 도예가로부터 전수를 받아서 1898년에 여기 자신의 땅에 나중에 보여드릴 타일 공장을 먼저 만들게 된다. 거실 중앙의 사각 기둥에는 색색의 타일에 둘러싸인 작은 점토 조각들이 있는데,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견된 바빌론 쐐기문자가 새겨진 점토판으로 기원전 2,3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그의 수집품들이란다! 거실에서 계단을 올라온 후에 뒤돌아 올려다 보면, 지나온 문 위로 그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직접 만들어서 붙인 타일들이 보인다. 여기서 건너편 주방과 식당 등을 포함해 사방으로 갈림길이 미로처럼 만들어져 있어서, 가이드를 잘 따라다니지 않으면 길을 잃기 쉽상이었다.^^ 많은 게스트룸들 중의 하나로 얼핏 열악해 보이지만, 지금 불을 밝히고 있는 전구의 전기배선은 물론 당시로는 최첨단의 인터폰 시설까지 그가 직접 설치를 했고, 욕조와 세면대 및 수세식 변기가 구비된 전용 화장실까지 딸려있는 마스터룸이었다! 2층 응접실에 해당하는 콜럼버스룸(Columbus Room)으로 이 집에서 가장 화려한 천장을 볼 수 있는 곳인데, 컬럼버스의 신대륙 발견과 다른 두 문명의 만남 등을 주제로 하나하나 직접 만든 타일들로 손수 장식을 했다고 한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 헨리 머서는 1930년에 73세로 이 방에서 사망했고, 유언에 따라 이 집과 그의 개인 박물관은 그가 회원이던 카운티 역사협회에 기증되었다. 하지만 그를 돌보고 집을 관리하던 하인 부부는 계속 여기서 거주할 수 있다는 조항을 달아서, 하녀였던 Laura Swain은 1975년까지 여기 살면서 가끔 직접 투어 가이드를 하기도 했단다. 이 시점에서 옛날에 네이버 메인화면에도 소개되었던 위기주부의 데스밸리 스코티캐슬(Scotty's Castle) 이야기가 떠오른다~ 복도 계단의 위쪽을 그가 중국에서 수집한 기와와 장식들을 전시하기 위해서, 아예 작은 기와 지붕을 만들어 놓기까지 했다. 공장에서 타일을 만들지 않을 때, 그는 이 서재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며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글을 쓰며 그림을 그리기도 했단다. 책상 위의 책장과 벽난로 사이에 놓여진 것은 진짜 사람의 해골인데, 1900년대 초에는 지식인들 사이에서 해골을 소유하고 전시하는 것이 이상한 행동이 아니었다고 하며, 이 해골도 선물을 받은 것이라고 가이드가 설명했던 것 같다. 서재 옆으로는 별도의 서고가 또 만들어져 있어서, 이 집에만 약 6천권의 책이 소장되어 있는데, 거의 모든 책에 헨리 머서가 단 주석이 달려있는 것으로 봐서 단순 전시용이 아니라 모두 직접 다 읽었다는 뜻이다. 노란색 톤으로 예쁘게 꾸며진 이 방은 여성 손님을 위해 마련한 방인데, 제일 오른쪽 빨간 벽에 붙여놓은 타일로 만들어진 그림들은 프랑스 설화 '푸른 수염(Bluebeard)'의 장면들이란다. 그 전래된 이야기의 여주인공은 푸른 수염의 귀족과 결혼을 하는데, 알고 보니 남편이 지금까지 6명의 아내를 차례로 모두 죽인 살인마라는 내용이다...ㅎㅎ 스페인 남부 그라나다 지역 '알함브라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지중해 스타일의 타일로 예쁘게 장식된 출입구 옆의 온실을 마지막으로 구경하고는 1시간이 후딱 지나간 흥미만점의 투어를 모두 마쳤다. 그리고는 앞서 언급한 이 성을 꾸미는데 사용된 타일들이 모두 제작된 그의 공장이 바로 옆에 있다고 해서 거기도 잠깐 둘러보기로 했다. 모라비아 도자기 및 타일 공장(Moravian Pottery & Tile Works)은 현재 카운티 소유의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도예 공방과 이벤트 장소 등으로 활용되며 역시 정해진 시간에 유료로 내부 가이드투어가 가능하다고 하지만, 우리는 오른편 입구 안에 있는 기념품 가게만 잠시 둘러보기로 했다. 폰트힐캐슬 등의 장식에 사용된 것들과 같은 틀을 이용해 찍어서 유약을 바르고 구운 타일들을 여기서 직접 구매할 수 있는데... 어른 손바닥만한 이 타일들이 하나에 무려 47불로 가격이 아주 비싸서, 그냥 가까이서 만져보고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헨리 머서는 자신의 많은 수집품들을 전시하기 위한 별도의 개인 박물관을 또 하나 더 지었는데, 여기서 1마일 떨어진 곳에 있다는 그 곳은 다음 기회에 구경하기로 하고, 우리는 밥도 먹고 눈요기도 할 목적으로 2022년 봄에 방문했던 밸리포지 국립역사공원이 위치한 마을인 킹오브프러시아(King of Prussia)애 있는 쇼핑몰로 향했다. 필리(Philly)들은 그냥 KOP라 부르는 킹오브프러시아 쇼핑센터는 약 450개의 점포가 입점해서, 2025년 현재 매장면적 기준으로 미국에서 4번째로 큰 쇼핑몰이란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사진은 가장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명품 브랜드들이 모두 모여있는 곳으로, 필라델피아 시내에서 1시간 가까이 떨어진 외곽에 위치한 이런 럭셔리 매장들이 장사가 되는게 신기했다.^^ 쇼핑몰이 너무 크고 복잡해서 잠시 길을 잃기도 한 후에, 3시간여를 쉬지 않고 운전해 버지니아 집에 도착하는 것으로 2025년의 첫번째 1박2일 뉴욕여행을 마쳤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펜실베니아 출신의 괴짜 고고학자, 유물 수집가, 타일 제작자가 살던 집인 폰트힐 캐슬(Fonthill Castle)

펜실베니아 출신의 괴짜 고고학자, 유물 수집가, 타일 제작자가 살던 집인 폰트힐 캐슬(Fonthill Castle)

이젠 당일로 맨하탄을 다녀오는게 쉽지 않아서, 조카 부부를 만나고 돌아오는 저녁에 뉴저지에서 숙박을 했다. 호텔비를 썼으니 다음날 뭔가 구경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할텐데... 필라델피아 시내는 주차가 힘들까봐 그렇게 끌리지 않았고, 유명한 정원들은 아직 겨울이라 본전을 못 뽑을 것 같았다. 그러다가 필라델피아 외곽 벅스카운티(Bucks County)의 도일스타운(Doylestown)이란 마을에 있는 이 독특한 '성(城)'을 아내가 찾았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이드 투어비 인당 15불이 전혀 아깝지 않았던 흥미있는 장소였다. 그 전에 승용차만 겨우 마주 지나갈 수 있는 좁은 철교의 사진을 보여드리는데, 뉴저지와 펜실베니아의 경계인 델라웨어 강에 놓여진 워싱턴크로싱 다리(Washington Crossing Bridge)로, 강 양쪽의 마을 이름도 동일하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그 이유는 1776년 크리스마스 저녁에 조지 워싱턴이 직접 2,400명의 대륙군을 이끌고, 바로 여기서 반쯤 얼어붙은 강을 배로 건넜기 때문인데, 미국사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한 번쯤은 보신 적이 있을 아래의 그림으로 유명한 역사적 장소이다. 가로 6.5미터의 대작으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인데, 다음에 MET를 다시 방문하면 미국관에 걸려있는 이 그림을 꼭 직접 봐야겠다~ 이렇게 강을 건너 뉴저지 트렌턴(Trenton)에 주둔한 영국이 고용한 독일용병 부대를 상대로 기적같은 승리를 거둬서, 꺼져가는 독립의 불씨를 극적으로 되살리게 된다. 이를 기념하는 펜실베니아 주립의 역사공원이 강가에 만들어져 있지만, 다음 기회에 들리기로 하고, 우리는 계속해서 원래의 목적지를 찾아갔다. 폰트힐 캐슬(Fonthill Castle)은 제목의 소개와 같은 헨리 머서(Henry Mercer)가 직접 설계해서 1908~1912년에 콘크리트로 건설한 자신의 집이다. 성에는 44개의 방과 200개의 창문 및 18개의 벽난로가 있는데, 1시간짜리 유료 투어에서는 중앙의 출입문을 기준으로 미로같은 왼쪽 절반만 겨우 둘러보게 된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입구를 통해 실내로 처음 들어섰을 때는 던전(Dungeon)같은 분위기의 좁은 공간에 기둥과 천장도 기괴해서, 집주인이 드라큘라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하지만 가이드 왼편의 닫혀진 문을 열고 첫번째 방으로 들어가면서부터 그 걱정은 감탄으로 바뀌게 된다~ 복층의 도서관으로 집주인 헨리 머서가 직접 만든 세라믹 타일(tile)로 장식되어 있다. 집의 모든 콘크리트 기둥과 천장이 원래는 파스텔 톤으로 칠해졌었다고 하지만, 100년이 훨씬 넘는 시간이 흘러서 그 색깔들이 모두 바래진 상태란다. 벽난로 위의 이 타일들은 아라비안나이트 이야기를 묘사한 것으로 그는 이와같이 특별한 디자인의 타일 제작자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데, 작년말에 위기주부가 직접 방문해 소개했던 펜실베니아 주의사당에 그의 최대 타일 모자이크 작품이 있으며, 모두가 들어본 LA 헐리우드 거리의 만스차이니즈(Mann's Chinese) 극장 로비의 바닥도 그의 공장에서 만들어진 타일이란다! 도서관 옆으로는 주 거실이 나오는데, 그가 전세계를 여행하며 수집한 많은 나라의 타일들이 일련번호와 함께 곳곳에 전시되어 있다. 벽난로 옆에 서있는 말년의 주인장 모습으로, 그는 1856년 도일스타운에서 태어나 하버드 대학교에서 인문학을 공부하고 유펜 로스쿨을 나와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지만, 한 번도 변호사로 활동을 하지는 않고 바로 유럽으로 떠나서 8년이나 여행을 했단다. 그리고 돌아와서 1890년에 펜실베니아 대학교 박물관의 고고학 큐레이터로 취직했지만 바로 그만두고, 독일 도예가로부터 전수를 받아서 1898년에 여기 자신의 땅에 나중에 보여드릴 타일 공장을 먼저 만들게 된다. 거실 중앙의 사각 기둥에는 색색의 타일에 둘러싸인 작은 점토 조각들이 있는데,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견된 바빌론 쐐기문자가 새겨진 점토판으로 기원전 2,3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그의 수집품들이란다! 거실에서 계단을 올라온 후에 뒤돌아 올려다 보면, 지나온 문 위로 그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직접 만들어서 붙인 타일들이 보인다. 여기서 건너편 주방과 식당 등을 포함해 사방으로 갈림길이 미로처럼 만들어져 있어서, 가이드를 잘 따라다니지 않으면 길을 잃기 쉽상이었다.^^ 많은 게스트룸들 중의 하나로 얼핏 열악해 보이지만, 지금 불을 밝히고 있는 전구의 전기배선은 물론 당시로는 최첨단의 인터폰 시설까지 그가 직접 설치를 했고, 욕조와 세면대 및 수세식 변기가 구비된 전용 화장실까지 딸려있는 마스터룸이었다! 2층 응접실에 해당하는 콜럼버스룸(Columbus Room)으로 이 집에서 가장 화려한 천장을 볼 수 있는 곳인데, 컬럼버스의 신대륙 발견과 다른 두 문명의 만남 등을 주제로 하나하나 직접 만든 타일들로 손수 장식을 했다고 한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 헨리 머서는 1930년에 73세로 이 방에서 사망했고, 유언에 따라 이 집과 그의 개인 박물관은 그가 회원이던 카운티 역사협회에 기증되었다. 하지만 그를 돌보고 집을 관리하던 하인 부부는 계속 여기서 거주할 수 있다는 조항을 달아서, 하녀였던 Laura Swain은 1975년까지 여기 살면서 가끔 직접 투어 가이드를 하기도 했단다. 이 시점에서 옛날에 네이버 메인화면에도 소개되었던 위기주부의 데스밸리 스코티캐슬(Scotty's Castle) 이야기가 떠오른다~ 복도 계단의 위쪽을 그가 중국에서 수집한 기와와 장식들을 전시하기 위해서, 아예 작은 기와 지붕을 만들어 놓기까지 했다. 공장에서 타일을 만들지 않을 때, 그는 이 서재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며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글을 쓰며 그림을 그리기도 했단다. 책상 위의 책장과 벽난로 사이에 놓여진 것은 진짜 사람의 해골인데, 1900년대 초에는 지식인들 사이에서 해골을 소유하고 전시하는 것이 이상한 행동이 아니었다고 하며, 이 해골도 선물을 받은 것이라고 가이드가 설명했던 것 같다. 서재 옆으로는 별도의 서고가 또 만들어져 있어서, 이 집에만 약 6천권의 책이 소장되어 있는데, 거의 모든 책에 헨리 머서가 단 주석이 달려있는 것으로 봐서 단순 전시용이 아니라 모두 직접 다 읽었다는 뜻이다. 노란색 톤으로 예쁘게 꾸며진 이 방은 여성 손님을 위해 마련한 방인데, 제일 오른쪽 빨간 벽에 붙여놓은 타일로 만들어진 그림들은 프랑스 설화 '푸른 수염(Bluebeard)'의 장면들이란다. 그 전래된 이야기의 여주인공은 푸른 수염의 귀족과 결혼을 하는데, 알고 보니 남편이 지금까지 6명의 아내를 차례로 모두 죽인 살인마라는 내용이다...ㅎㅎ 스페인 남부 그라나다 지역 '알함브라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지중해 스타일의 타일로 예쁘게 장식된 출입구 옆의 온실을 마지막으로 구경하고는 1시간이 후딱 지나간 흥미만점의 투어를 모두 마쳤다. 그리고는 앞서 언급한 이 성을 꾸미는데 사용된 타일들이 모두 제작된 그의 공장이 바로 옆에 있다고 해서 거기도 잠깐 둘러보기로 했다. 모라비아 도자기 및 타일 공장(Moravian Pottery & Tile Works)은 현재 카운티 소유의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도예 공방과 이벤트 장소 등으로 활용되며 역시 정해진 시간에 유료로 내부 가이드투어가 가능하다고 하지만, 우리는 오른편 입구 안에 있는 기념품 가게만 잠시 둘러보기로 했다. 폰트힐캐슬 등의 장식에 사용된 것들과 같은 틀을 이용해 찍어서 유약을 바르고 구운 타일들을 여기서 직접 구매할 수 있는데... 어른 손바닥만한 이 타일들이 하나에 무려 47불로 가격이 아주 비싸서, 그냥 가까이서 만져보고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헨리 머서는 자신의 많은 수집품들을 전시하기 위한 별도의 개인 박물관을 또 하나 더 지었는데, 여기서 1마일 떨어진 곳에 있다는 그 곳은 다음 기회에 구경하기로 하고, 우리는 밥도 먹고 눈요기도 할 목적으로 2022년 봄에 방문했던 밸리포지 국립역사공원이 위치한 마을인 킹오브프러시아(King of Prussia)애 있는 쇼핑몰로 향했다. 필리(Philly)들은 그냥 KOP라 부르는 킹오브프러시아 쇼핑센터는 약 450개의 점포가 입점해서, 2025년 현재 매장면적 기준으로 미국에서 4번째로 큰 쇼핑몰이란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사진은 가장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명품 브랜드들이 모두 모여있는 곳으로, 필라델피아 시내에서 1시간 가까이 떨어진 외곽에 위치한 이런 럭셔리 매장들이 장사가 되는게 신기했다.^^ 쇼핑몰이 너무 크고 복잡해서 잠시 길을 잃기도 한 후에, 3시간여를 쉬지 않고 운전해 버지니아 집에 도착하는 것으로 2025년의 첫번째 1박2일 뉴욕여행을 마쳤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펜실베니아(Pennsylvania) 주의 밸리포지(Valley Forge) 국립역사공원과 아미시빌리지(Amish Village)

반응형 지난 2015년에 미동부 아이비리그 대학투어 여행을 하면서 펜실베니아 주는 필라델피아만 구경을 했었는데, 동부로 이사온 후로 봄방학 여행 때 처음 다른 몇 곳을 둘러봤다. 펜실베니아는 영국 퀘이커 교도였던 윌리엄 펜(William Penn)의 '신성한 실험'으로 1681년에 건설된 식민지로, 당시 유럽에서 박해받던 모든 신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지상낙원을 만들고자 했단다. 그래서 특히 종교개혁의 중심지였던 독일로부터의 이민이 많았는데, 봄방학 여행에서 둘쨋날 숙박을 한 도시가 '프로이센의 왕'이라는 뜻인 킹오브프러시아(King of Prussia)라는 독특한 이름인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이 곳에 있는 밸리포지 국립역사공원(Valley Forge National Historical Park)의 비지터센터를 아침 일찍 찾았는데, 3월 중순에 밤사이 내린 눈으로 하얀 설경을 보여주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참고로 필라델피아의 위성도시인 킹오브프러시아에는 매장면적 기준으로 미국에서 3번째로 큰 쇼핑몰이라는 King of Prussia Mall이 있는데, 사모님께서 나중에 알고는 안 데리고 갔다고 가이드를 나무라셨다~ (4위는 LA지역에 있는 South Coast Plaza로 옛날에 가봤고, 1위는 미네소타 주라서 가망이 없지만, 2위는 뉴저지 주라서 앞으로 모시고 갈 수 있음^^) 거의 문 여는 시간에 맞춰 들어가서 다른 손님도 없고 모든 것이 반짝반짝했는데, 이 비지터센터와 박물관은 우리가 방문하기 바로 전달에 워싱턴의 생일이었던 2월 21일에 리노베이션을 마치고 새로 문을 열어서 그렇다. 그 생일의 주인공인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이 이렇게 '백마를 탄 왕자님'처럼 위풍당당하게 전시장 입구에 서있지만... 실상은 미국이 필라델피아에서 독립선언을 한 다음해인 1777년 12월 19일에 영국군에게 그 필라델피아를 내어주고 자신이 이끄는 패퇴한 대륙군(Continental Army) 약 12,000명을 이끌고 쫒겨온 곳이 여기 밸리포지(Valley Forge)이다. 패잔병과 함께 불을 쬐면서 돌을 데워서 굽는 빵이 익기를 기다리는 모녀인데, 벽화와 같이 실제로도 밖에 얇게 눈이 덮힌 상태라서 현실감 백배였다~ 당시 필라델피아를 점령한 영국군이 워싱턴을 여기까지 추격하지 않은 이유는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기 위해서였다는데, 만약에 그 때 영국군이 계속 여기까지 진격해서 대륙군을 완전히 섬멸하거나 워싱턴을 죽이기라도 했다면 전세계 역사가 어떻게 달라졌을지 아무도 모른다고... 추운 겨울 동안에 군대를 주둔(encampment)하기 위해서 나무들을 잘라서 임시 통나무집을 만드는 것을 우리가 도와주고 있다. "이런 조립해서 만드는 일은 내가 잘하지~" 왼쪽 투명상자에 들어있는 샘플과 똑같이 위기주부가 순식간에 한 채 만든 것이 앞쪽에 보이고, 지혜가 만들다가 포기한 통나무집은 아내가 이어받아서 계속 만들고 있다. 약 1,500채의 통나무집을 만들어서 그나마 추위는 피했지만, 식량부족에 전염병까지 돌아서 1778년 봄까지 약 2,000명이 캠프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가운데 벽에 독립전쟁 당시에 사용되었던 무기들을 전시해놓은 것을 지혜가 보고 있는데, 총기류 보다도 칼들이 더 많았고 제일 아래에는 아주 기다란 창도 보인다. 총이 있었다고는 해도 그 때는 서로 코 앞에서 한 발씩 쏘고는 그냥 달려가서 베고 찌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실제 큰 전투도 벌어지지 않았고, 단순히 워싱턴이 총사령관이었던 퇴각한 대륙군이 통나무집만 많이 지어서 겨울 동안 피신했던 장소라면 왜 국립역사공원으로 지정되었을까? 이 뒤쪽으로 그에 대한 전시가 있었지만, 소개영화를 볼 시간이 다 되어서 기념품 가게를 지나서 비지터센터 위쪽으로 나갔다. 비지터센터와 붙어있는 극장은 아직 재단장이 끝나지 않아서, 여기 별도의 건물에서 대형 TV로 봤는데, 이전 여행기에도 말씀드렸지만 정말 역사공원에서는 소개영화를 꼭 봐야된다. 얼떨결에 독립을 한 미국은 대륙군을 소집해서 워싱턴을 총사령관에 앉혔지만, 대부분이 전투경험이 없는 의용군이라서 당시 세계최강 영국군에 상대가 되지 않았었다. 하지만 여기 밸리포지에 주둔하는 동안에 군사고문으로 와있던 프러시아의 전직장교 Von Steuben이 체계적으로 전투하는 방법과 규율을 가르쳤는데, 이 기간의 훈련으로 오합지졸이던 대륙군이 진정한 군대로 거듭났기 때문에 이 곳을 '미군의 탄생지(Birthplace of the American Army)'라 부르며 기념하는 것이다. 진짜 잘 만들었던 소개영화를 보고나서는 차를 몰고 이 곳의 여러 유적지들을 한바퀴 둘러보면 된다. 첫번째로 조금 전에 우리가 만들었던 것과 같은 통나무집들을 재현해놓은 곳을 차로 지나쳤는데, 저기 걸어서 구경하시는 분들은 타주에서 단체로 관광버스를 타고 온 미국인들이었다. 첫번째로 차를 세우고 이 역사공원에서 가장 유명한 볼거리인 내셔널메모리얼아치(National Memorial Arch)를 보러 눈 내린 잔디밭을 걸어가는 중이다. "야~ 파리 개선문이다!" 여기서 겨울을 보내며 단련된 미군이 다음 해 이 밸리를 떠나서 영국군을 추격하기 시작한 6월 19일에 맞춰서, 연방정부의 예산으로 1917년에 워싱턴과 병사들을 위해서 헌정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정면 모양은 비슷하지만 높이는 약 18미터로 파리 개선문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조지 워싱턴이 프리메이슨(Freemason)의 회원이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인데, 그래서 이 아치가 1990년대에 전면적인 보수를 할 때 그 자금을 지원한 곳이 펜실베니아 주의 프리메이슨 조직이었다고 한다. 눈 내린 들판 위의 앙상한 나뭇가지... 불과 한 달 전에 펜실베니아는 이런 모습이었는데, 4월 중순인 지금은 들판의 잔디와 나무의 나뭇잎들이 여기 버지니아처럼 모두 무서운 속도로 파래지고 있겠지? 도로 옆으로 멋진 청동 기마상이 나와서 또 워싱턴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차를 세우고 자세히 보니 General Wayne Statue라 되어있다. 동상의 주인은 펜실베니아 출신의 Anthony Wayne으로 당시 워싱턴의 부관들 중의 한 명으로 지역연고를 이용해서 신병모집과 보급을 담당했단다. 조금 더 운전하니까 왼편으로 지붕이 있는 다리가 보이길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떠올랐다~ 동부의 옛날 나무다리는 사계절의 변화무쌍한 날씨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지붕을 만드는 것이 일반적으로, 아이오와(Iowa) 주의 매디슨 카운티에 있는 그 다리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다리를 지나가지 않고 계속해서 공원 순환도로를 조금 더 달려서, 강가를 따라 기찻길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차를 세웠다. 미군이 이 곳에 주둔하는 동안 워싱턴이 숙박했던 집인 Washington's Headquarters를 찾아왔는데, 가운데 보이는 것은 기차역이고 그 왼편으로 나무에 가려진 본부가 살짝 보인다. 경사로를 따라 내려가봐야 어차피 건물내부는 못 들어간다고 해서, 그냥 여기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다시 출발~ 마지막으로 차를 세운 곳은 Washington Memorial Chapel로 1921년에 만들어진 기념예배당이다. 가운데 본관은 문을 닫아서 들어가 볼 수 없었고, 오른쪽에 높이 서있는 종탑의 내부만 잠깐 둘러보았다. 1953년에 추가로 건설된 이 종탑의 이름은 National Patriots Bell Tower로 성조기를 이용한 천정의 장식 등 내부 전체가 애국적인 분위기가 팍팍 풍기는데, 특히 예배당과 함께 스테인드글래스 장식이 유명하다는데, 스테인드글래스 그림이 이렇게 워싱턴의 일생이나 독립전쟁 등을 묘사하고 있다. 이것으로 미국 독립군이 패퇴해서 주둔했던 장소를 미군의 탄생지로 기념하는 밸리포지 국립역사공원 구경은 마치고, 서쪽으로 1시간 정도 운전을 해서 인터코스(Intercourse)라는 좀 거시기한 이름의 마을을 찾아갔는데, 그 곳은 아래의 옛날 명작 영화가 촬영된 장소로 알려져 있다. 위기주부에게는 영원한 인디애나존스이자 한솔로인 해리슨 포드가 주연한 1985년 영화 는 이제 간단히 소개할 아미시(Amish) 사람들의 존재를 전세계에 가장 널리 알린 작품이다. 그 해 아카데미에서 주요 8개 부문 후보에 올라서 각본상과 편집상 2개를 수상해 작품성도 인정받아 옛날 KBS '주말의 명화'의 단골 방영작이었다. 제일 처음에 언급한 것처럼 초기 펜실베니아 주로 독일계 이민자가 많았는데, 그 중에는 네덜란드에서 시작되어 성서적 생활방식을 고수하는 메노나이트(Mennonite) 교인들이 있었다. 그들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으로 새로운 문명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아미쉬 공동체로 아직도 전기와 자동차를 사용하지 않는다. 인터코스 마을에서부터 '마차주의' 표지판이 도로에 등장해서 설마했더니, 이렇게 차도 옆으로 까만 마차(buggy)들이 많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그들은 이 지역에서 주로 농업을 생계로 조용히 살아가기 때문에, 관광지라 부르기는 좀 그렇고 투어를 통해서만 그들의 생활상을 볼 수가 있단다. 그냥 지나갈까 하다가 가장 널리 알려진 투어가 진행되는 곳인 아미시빌리지(Amish Village)라고 씌여진 곳에 잠깐 들러보기로 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옛날 모뉴먼트밸리 여행을 갔을 때도 나바호 부족의 생활상을 보는 투어를 할 기회가 있었지만, 아내와 나는 다른 사람들이 살고있는 모습을 유료투어로 구경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그냥 투어는 생략하고 아미시 사람들이 전통방법으로 만들었다는 살구잼만 기념으로 하나 사서 아미시빌리지를 나왔다. 그리고는 이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인 랭카스터(Lancaster)로 가서 점심을 먹었는데, 그 곳의 코스트코에는 이렇게 아미시 마차를 세워둘 수 있는 별도의 주차공간(?)까지 마련되어 있다고 한다. 이제 다시 30번 국도를 타고 서쪽으로 1시간여를 더 달려서, 2박3일 봄방학 자동차여행의 마지막 방문지이자 가장 중요한 목적지를 이제 찾아간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