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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공식블로그 | 2018년 8월 22일 |
누군가 어떤 사람을 만나 알고 싶어지는 과정, 그 숱한 과정을 무심히 지나지 못하고 면밀히 들여다 봅니다. 결국엔, 그 사람을 더 제대로 마주하기 위해 기록하고야 마는. 수많은 생명체 중 '사람'이 갖고 있는 무한한 이야기와 그 매력을 가장 사랑하는 기록주의자가 만난 대전청년. 고집있는 자신만의 분야를 가진 그들 삶의 기록을 인터뷰를 통해 자유로이 이어가고자 합니다. [권순지]
▲ 메이커 수향 ⓒ top secret
외롭지 않은 사람. 외로울 틈이 없다고 합니다. 홀로 보낼 수밖에 없는 작업시간을 채우는 건 외로움이 아니라 쉴 틈 없는 창작입니다. 떠오른 아이디어를 생각하다 멍 때리기도 하고, 왜 안 되는지 바꿔보고 부수는 과정이 메이커 수향의 일상. 그러다 기어코 멋진 작품을 만들어 내고야 마는 그 생산력 가득한 고집. 몸도 마음도 건강한 그녀는 메이커 세계에 입문한지 얼마 안 된 새내기입니다. 최근 서른 살 생일을 맞은 그녀, 요즘 가장 행복하다고.
학교 메이커 교육관련 교사 연수 프로그램에 강의를 맡았고, 최근엔 다른 창작자들과 협업전시를 진행했습니다. 방학이라 잠시 스톱이었던 학교 학생들 교육 프로그램은 9월부터 다시 시작. 그리고 틈틈이 마술도구를 만들며, 단짝이자 동료인 마술사 친구의 공연을 도와주기도합니다.
집중할 수 있는 시간에 온전히 빠져들어야 하고 싶은 작업을 마무리 할 수 있기에 일정엔 빈틈이 없는 편이죠. 정말로 숨 고를 새 없이 바쁜 그녀와 함께 있는 시공간 속에서의 대화엔 늘 꿈과 계획이 빠지지 않습니다.
매순간을 공회전 없이 알차게 돌고 돌아 지금,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찾은 것 같다는 메이커 수향. 해야 할 작업이 많아 며칠째 잠을 제대로 못 잔 걸로 알고 있는데 피곤한 기색은 그녀 곁에서 잘도 숨어 있었습니다.
무엇이든 만들고 고쳐 드립니다.
▲ 메이커 주수향은 대전사회적자본지원센터에서 진행했던 중동돋보기프로젝트의 핫아이템인 '중동부루-스' 수레를 직접 설계하여 만들기도 하였다.
“공부를 하라고 하면 밤을 못 샜는데, 뭐 만들라 하면 밤을 샜어요. 예를들어 옛날에 빼빼로 데이 있잖아요. 남들과 똑같은 것을 주는 게 싫었어요. 저는 포장을 어떻게 할까 생각을 해요. 매년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봤던 거죠. 지금 생각해보면 미련한 짓인데. 내가 혼자 좋은 거지... 그냥 애들한테 다 줬어요. 만들어서 주는 게 좋았던 거죠. 애들이 보고, 우와 이거 어떻게 했어? 궁금해 하고 물어보면 얘기도 해주고. 만드는 건 진짜 새벽까지 만들고 그랬어요. 지금도 그래요.”
뭐든 나누고, 함께하는 이들이 행복해 할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행복도 자신에게 온다고 말하는 그녀. 지금 마술도구를 만들지만 학창시절 한 때, 이은결 마술사 영향으로 마술동아리까지 들어가 마술도 배웠다고 하네요.
마술을 배운 이유는 호기심 때문이었지만, 작은 마술에 즐거워하는 친구들과 선생님을 보며, 자신이 어떨 때 행복한지 알게 된 흥미로운 계기. 지금은 공유 작업실에 마련된 자신의 해먹에 동료들이 누워 쉬는 모습만 봐도 행복하다는 이야기도. 정작 본인은 바빠 해먹 근처에도 잘 못 가면서 말이죠.
▲ 그녀의 손에서는 무엇이든 나온다 ⓒ 메이커 주수향
“분해도 많이 해 봤죠. 고치지는 못하고(웃음) 중학교 때 부터는 학교 갈 때 육각렌치를 가지고 다녔어요. 육각렌치라고 해서 드라이버랑 비슷한 거 에요. 책상 같은 것 몸에 맞춰 낮게도 높게도 할 수 있잖아요. 학년 바뀌는 시기에 가끔 선생님들이 책상 높이 안 맞는 사람 손들어 해서 기사 분들이 와서 고쳐줬는데, 그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거 에요. 한 달 길게는 두 달도 기다리고. 나는 그게 싫었던 거야. 바로 바로 해결하고 싶어서. 집에 마침 찾아보니까 있었어요. 사이즈가 딱 들어가요. 바로 나사를 풀고 조이고 할 수 있더라고요. 그 때부터 갖고 다니면서 제가 다 해줬어요.”
▲ 그녀의 손에서는 무엇이든 나온다 ⓒ 메이커 주수향
순응하기보단 독립적으로
그렇게 좋아하는 것이 명확했던 자신에 대해, 공부 잘 하길 바란 엄마의 기대. 자신은 엄마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딸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대학전공을 일문과로 택한 이유도 엄마의 영향이 컸습니다. 엄마를 만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그 뜻을 거스를 수 없었던 걸까. 일본어 시험점수가 잘 안 나와 점수 올리려고 다녔던 학원이 그렇다고 아예 재미없진 않아 시간을 들여 열심히 했었다고 말하는 그녀. 일본어 학원에 다니며 땄던 자격증덕분에 대학입시를 수월하게 치를 수 있었고, 그렇게 순응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다 별안간 닥친 불안감.
“내가 앞으로 한 길만 가야 할 것 같은 불안감이 온 거에요. 사회생활 하면… 예를 들어 우리 아빠가 공무원이니까… 그 것만 보고 자랐잖아요. 아빠가 공무원을 해서 지금 정년퇴직 할 때까지 한 길을 계속 살아온 사람이잖아요. 물론 그 삶이 잘못됐다는 건 아니고요. 존경스럽죠. 그런데 나도 대학을 졸업해서 어디 관련회사를 들어가면 그렇게 계속 정착해야 한다는 생각이 답답했어요. 졸업하기 전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봐야겠다고, 그래야 속이 풀릴 것 같더라고요. 하고 싶은 것 다 해봤죠. 대학교 때부터.”
▲ 그녀의 손에서는 무엇이든 나온다 ⓒ 메이커 주수향
도배, 용접 기술, 아두이노 등 배워보고 싶은 것들에 대한 자기 계발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해외여행도 가고 싶으면 알바를 하고 돈을 모아서 어떻게든 다녀왔습니다. 워킹홀리데이로 일본을, 베트남엔 취업을 하기도 했죠.
다른 나라에서 돈을 번다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서 가능한 것들은 다 해봤다는 그녀에게,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그간 호기심으로 꿈꿨던 일들을 다 해보는 것이었습니다. 순응하며 살 때의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칭찬’이었다면, 지금은 작품을 만들 듯이 독립적인 주체가 되어 삶을 꾸리는 ‘의지’만이 자신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좋아하고 잘하는 것으로 먹고 살 수 있을지 몰랐다
아직 엄마는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히 모른다며. 어쨌든 생활비 달라고 손 벌리지 않으니 궁금하지만 더 물어보지는 않는 것 같다며. 결국 돌고 돌아 자기가 어렸을 때부터 가장 좋아했고, 잘했던 일을 지금 하고 있고 있다며 쓴 웃음을 머금은 그녀 입가. 다시 순수해졌다고 말하고 싶은 순간이었습니다.
▲그녀의 손에서는 무엇이든 나온다 ⓒ 메이커 주수향
“만들고, 조립하는 것들. 김영만 아저씨 만들어 볼까요 책 시리즈가 나왔었어요. 초등학교 때 그걸 전부 사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만들어 봤었어요. 종이접기도 사람들 한 번 접을 때 전 양면으로 접었어요. 그러니까 색종이를 접으면 앞으로 접고 다시 펴서 뒤로 접어요. 앞뒤로 한 번 접고 뒤에서 앞으로 또 접으면 각이 딱 살면서 이게 딱 맞게 되는데(웃음) 좀 변태 같다고 볼 수 있는데 전 색종이 접었을 때 끝이 딱 맞고 그런 것에 되게 희열을…”
디테일은 김영만 아저씨 못지않았던 소녀. 종이접기 김영만 아저씨처럼 무언가 만드는 일을 하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백지상태의 그 때입니다. 그리고 다시 지금으로 이어진 평행선.
▲최초로 만든 마술도구, 비둘기 관련한 마술연출도구 ⓒ 메이커 주수향
“근데 이게 업이 될 줄은 몰랐죠.”
그 때의 순수함을 가져다 지금의 열정에 쏟아 붓는 그녀. 다행스럽게도 취향과 재능이 일치하여 내적갈등도 없다고 말하며 웃습니다. 돈을 많이 벌진 못해도, 좋아하는 일 하면서 먹고는 산다며.
▲아두이노를 이용하여 만든 시크릿 마술상자 ⓒ 메이커 주수향
메이커의 고민
마술오덕 친구는 새벽까지 연습했던 터라 수업시간에만 간신히 깨어 있었습니다. 궁금한 마술이 있어서 말 좀 걸려고 해도 좀처럼 기회가 오질 않았죠. 그렇게 떨어져 각자 살다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났습니다. 같이 재밌는 걸 해보자는 마음이 맞았을 때가 2014년. 본격적으로 마술사 단비와 함께 일을 하며 마술도구를 만들고, 메이커의 길로 접어든지 1년 남짓. 물론 완전체처럼 전부 죽이 잘 맞는 건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미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서 만들었는데, 얘(마술사단비)는 공연자니까 다른 디테일도 보면서 부족하다고 얘기하기도 하죠. 내가 보는 디테일과 단비가 보는 디테일이 다른 거 에요. 마술도구로 공연을 해야 하니까 만들어 놓고 그게 끝이 아니라 계속 다각도에서 보면서 사람들에게 보여질 것까지 생각을 하는 거죠. 쉽지 않죠. 아 다 만들었는데…허탈하기도 해요.”
▲해체 관련 마술 도구 ⓒ 메이커 주수향
▲해체 관련 마술 도구 ⓒ 메이커 주수향
자기들끼리만 아는 그 디테일을 서로 존중해주기로 합의점을 찾아나가는 중이라고. 함께 창작할 때 나오는 그 시너지를 더 믿고 가자고. 앞으로도 갈 길은 멀다고 말합니다.
“메이커로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가 거의 없어요. 최근엔 대전시민창작센터에서 주관한 마술도구 워크샵이나 CAD강연으로 수입이 있었죠. 그리고 학교에서 메이커교육이나 예술과학융합수업으로… 또 마술공연에 들어가는 도구들 때문에 공연수익으로도 조금 보탬을 얻구요.”
마술공연을 하고, 그 스토리에 맞는 마술도구를 만들지만, 서로 융합된 어떤 다른 것들도 만들어보자는 계획도 있습니다. 함께 놀 수 있는 플레이형 시크릿박스를 제작하여 교육이나 공연으로의 2차적 확산까지 구상하는 중이기도 합니다.
결국은 좋아하는 일을 해야만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요즘에서야 조금은 알 것 같다는 메이커 수향. 그녀의 손에 핸드크림을 듬뿍 발라주고 싶은 마음. 곱게 가꾼 손을 가진, 오래도록 만드는 사람으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말이죠.
주수향은 독립마술회사 Top Secret 소속 메이커로 활동중이다. 아이디어와 기술, 노력을 바탕으로 다양하게 창작한 마술도구를 공연에 선보인다. 오토마타관련 작품을 통한 전시. 대전문화재단 예술강사. 2D 디자인 설계 워크샵, 마술도구 제작 워크샵과 메이커 이해과정 워크샵을 진행하며 교육자로서의 경험도 다져나가는 중이다. 또한 청춘다락에 입주한 MAKIT의 대표 메이커 이기도 하다.
■블로그: blog.naver.com/maker_j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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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공식블로그 | 2018년 8월 14일 |
누군가 어떤 사람을 만나 알고 싶어지는 과정, 그 숱한 과정을 무심히 지나지 못하고 면밀히 들여다 봅니다. 결국엔, 그 사람을 더 제대로 마주하기 위해 기록하고야 마는. 수많은 생명체 중 '사람'이 갖고 있는 무한한 이야기와 그 매력을 가장 사랑하는 기록주의자가 만난 대전청년. 그들 삶의 기록을 인터뷰를 통해 자유로이 이어가고자 합니다. [권순지]
▲ 마술사 단비 ⓒ top secret
어디든 그 친구가 나서면 무대가 되는, 공연할 때 가장 눈부신 마술사 단비. 그녀는 오래도록 마술을 연기해 왔습니다.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현상들에 그녀 특유의 에너지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을까요. 공연 중간 아이들을 무대로 초대해 함께 하는 마술에서는 웃음과 긴장과 어떤 경이로움이 뒤섞인 순간을 연출합니다.
특히 무대에 서 있는 아이의 온 몸에서 동전이 툭 툭 튀어나오게 하는 마술은, 공연을 관람하는 아이들이 배꼽 빠져라 웃으며 뒤집어지게 만들기도 하죠. 관객이 즐거워할 때, 그 때가 마술공연의 정점이 됩니다.
▲ 마술하는 청년, 이단비
마술사 단비가 공연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실로 정신을 빼앗기는 순간을 경험합니다. 그녀의 몸짓과 손놀림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지 알고 싶어 눈이 빠지도록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순간에 빠져드는 거죠.
마술과 마법은 분명 그 차이가 있지만 마술사 단비의 공연은 마치 마법세계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현실의 공간에서 비현실적인 순간들을 목격하고 있는 기분. 물론 마법사가 아닌 마술사죠. 마법을 부릴 수 없는 인간이기에 엄청난 노력을 통해 그 마법을 연기합니다. 무려 17년간 마술에 빠져 있는 그녀.
나만 아는 비밀
▲ 마술하는 청년, 이단비
“원래 좀 어디에 푹 빠지는 경향이 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TV에서 뭐 마술 하는 걸 봤어요. 그 때는 다 책으로 배우는 줄 알고 서점 가서… 대훈서적 갔을 거야 아마. 마술 책 주세요 이렇게 말했더니 어린이 마술백과 라는 책을 줬어요. 그게 아직도 있는데. 그거 보고 그 때 학교 학예회에서 친구들이랑 공중부양마술도 따라하고 그랬었어요. 그걸 그대로 믿고 똑같이 따라 한 거죠. 천 같은 것도 있어야 했는데 천이 없잖아요. 어디서 사야 하는지도 잘 몰랐었고. 집에서 여름 이불 얇은 걸 가지고 와서 했었어요.(웃음) 그게 처음 사람들 앞에서 마술을 보여 준 거죠.”
처음 TV로 접한 마술이 그저 신기하고 궁금했던 아이는 마술을 하면 할수록 마술사가 품고 있는 비밀을 자신도 갖고 싶었습니다. 자신만 아는 비밀로 인해 벌어지는 신비로운 현상 앞에서 다양한 반응을 보이는 관객들을 마주할 때, 그 때 마술의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 아이가 지금 벌써 성인이 되어 아이들 앞에서 마술공연을 합니다. 자신이 갖고 있던 호기심 어린 그 눈빛을 똑같이 갖고 있는 아이들 앞에서 말이죠.
다른 마술사들이 했던 공연 영상을 보면서도 해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구현했을지 상상한다는 그녀. 계속 보고 상상하다 떠올랐을 때의 기막힌 감정을 그녀는 희열이라고 표현합니다. 나만 아는 비밀을 만들기까지 그 상상의 과정을 즐긴다는 그녀는 상상하는 것을 온몸으로 즐기는 아이들과 참 잘 어울리는 마술사라는 생각도 듭니다. 아이들도 마술사 단비처럼 비밀을 갖고 싶은 꿈을 꾸고 있을까요.
▲ 마술하는 청년, 이단비
주목은 좋지만 즉흥은 싫은
보통의 평범한 아이가 아니었을 것 같다는 추측 섞인 질문에 수줍게 웃는 그녀. 사실 과거에도 지금도 무대에 서는 것을 좋아하지만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가끔은 무대에 설 때 공포가 엄습하기도 한다는 대답이 이어졌습니다. 자신이 타고난 무대체질은 아닐 것이라며 마술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공연자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도. 공연할 때의 모습을 떠올리면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카드 마술 하는 것을 좋아해요. 옛날이나 지금이나. 무대에서 하는 카드 마술이 카드 매니플레이션이라는 건데 저는 그걸 되게 좋아했어요. 그 마술을 좋아해요. 마술 도구들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마술사가 그냥 만지기만 해도 현상이 일어나는 것들도 있고, 또 아주 노멀하고 트릭이 없는 도구인데 마술사의 손 기술로 인해서 나타나거나 사라지는 효과를 연출할 수 있는 도구들도 있어요. 카드가 그래요. 그게 매력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마술사의 노력으로 인해서 신기한 현상이 만들어질 수 있는 거니까. 노력해서 나만의 것을 만들 수 있을 것이란 생각, 자신감? 그래서 카드 매니플레이션을 좋아해요.”
▲ 마술하는 청년, 이단비
사라졌다가 돌연 나타나는 순간 변화된 카드나, 아무것도 없던 빈 손에서 갑작스레 쏟아져 나오는 카드 마술은 대단한 트릭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마술사의 기술입니다. 노력해서 얻어지는 것들을 사랑한다는 마술사 단비. 마술할 때 가장 마음에 안정이 온다고 이야기 합니다. 같은 무대에 오르더라도 무방비 상태가 아닌 준비된 마술과 함께라면 공포는 없다고 말이죠.
마술이 사람들에게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그 장점이 마술사에겐 간혹 엄청난 공포를 줄 수 있다는 것. 준비된 공연이 아닌 흥밋거리로 ‘마술 한 번 보여줘’라며 일상적으로 던지는 말이 어쩌면 폭력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아찔해집니다. 마술이 단순히 테크닉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예술이라는 것. 마술을 본다는 것은 마술사의 창작이 구현된 공연을 관람하는 것.
테크닉 연습은 기본이거니와 음향이나 적절한 조명까지 어떤 오차 없이 구성되어야 잘 만든 마술 공연을 관객에게 선보일 수 있습니다. 간단한 기술이라도 연출을 위한 유기적인 구성이 마련되어 있다면 휼륭한 마술쇼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그녀는 아직 배워할 것들이 많이 남아있다고 어깨를 축 늘어뜨렸습니다.
“예전에는 마술을 신기한 것 때문에 좋아했다면 지금은 제대로 된 공연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는 거죠. 하면 할수록, 파고 들수록 배워야 할 게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마술 이외에 무대에서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능력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요즘 계속 느껴요. 조명도 더 잘 쓰고 싶고, 연기 쪽도 배우고, 무대디자인도 더 잘 하고 싶은데 이 몸 하나로 그 모든 것을 다 하기가… 그래도 더 잘하고 싶어요.”
▲ 마술하는 청년, 이단비
텅장이 통장이 되기까지, 그리고 마술사 여기 있습니다
독립적으로 활동을 하다 보니 뒷받침해줄 인력도 장치도 부족한 상황. 대학에서 마술학과 졸업 후 회사에 소속되어 활동한 적도 있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합리했고, 자유롭게 창작을 하지 못하는 공연자였으며, 그래서 자신은 로봇이었다는 이야기.
“그렇게 공연을 하고 다녔어도 한 달에 30만원 정도 벌었었고, 아예 못 받은 적도 있었어요. 0원.”
분명 쉬지 않고 공연을 했음에도 수입이 없던 시절이라고 회상했습니다. 돈이 없어 제일 싼 콘플레이크를 구입해 불려 놓고 며칠을 먹으며 그렇게 버텼습니다. 공연경험을 통해 배우는 시간이라 생각하며 힘든 상황을 지나보냈고, 이후 그 당시 고생을 통해 얻은 것이 아예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라고.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려 하지만 지금까지 잘 되진 않는다며 하기 어려운 말들을 했습니다.
착취라고 말할 수도 있는 경험을 겪은 뒤 소속사를 나왔고, 독립마술사로 활동하며 돈을 많이 벌진 못했어도 행복했습니다. 밥 먹을 수 있고, 간식이라도 사 먹을 수 있는 것. 월세를 밀리지 않고 낼 수 있다는 것. 과거에 비하면 지금은 엄청난 부자가 된 것이라고, 지금은 그 것만으로도 만족한다고.
물론 금전적 고통이 마술사로 활동하며 겪은 한계의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마술공연을 하러 갔는데, 마술사는 어디 계시냐는 질문을 받기도 하였던 때가 여러 번. 그 기막힌 질문은 여태껏 마술업계가 지녀온 직업적 패러다임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 마술하는 청년, 이단비
“여자마술사 자체가 처음에는 남자마술사의 보조 역할로. 그러니까 처음에는 남자마술사 옆에 항상 미녀가 보조가 되어 등장해요. 남자는 주인공, 여자는 보조. 그렇게 미녀역할로만 등장하다가 마술을 조금씩 배우면서 마술사가 되는 분들도 많이 있어요. 실제로 공연하러 가면 어? 마술사 남자 분이신줄 알았는데? 그런 말을 듣기도 하거든요.”
대학에서 마술학과 전공으로 공부를 할 때도 학과 내에 여자는 극소수였으며, 여자라서 특혜를 받은 것은 전혀 없었지만 항상 듣기 싫은 말들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넌 여자니까 대회에서 무조건 뽑힐 거야’ ‘넌 그래도 여자잖아’라는 비아냥거림을 맞닥뜨릴 때마다 오기를 품고 실력을 닦았습니다. 평가의 결과가 어찌됐든 그 이유가 여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은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온전히 실력 있는 마술사로 받아들여지길 바란 것이죠.
▲ 마술하는 청년, 이단비
할머니가 될 때까지 마술사
오래도록 마술을 하고 싶다는 청년 마술사 그녀. 마술사 단비는 대한민국 마술 1세대 이흥선 마술사의 행적을 본받는다는 이야기를 이었습니다. 알렉산더리 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차력 중심의 서커스단 출신의 이흥선 마술사는 70세가 넘어서까지 마술공연을 했고 후진양성을 위해 마술 상설 공연장 ‘알렉산더 매직바’를 운영하기도 했죠.
“그 분을 기리는 대회도 생겼고요. 그 가족들이 대대로 마술을 하고 계세요. 아직도 그 대를 잇고 있는데. 제가 고3때는 대학교 안 가고 거기 문하생 하고 싶은 마음도 컸어요. 거기 들어가고 싶다. 그냥 내가 거기서 청소만 한다고 해도 거기서 마술을 보고 배워보고 싶다. 그랬었어요. 엄마가 대학은 가야한다고 설득하셔서 결국 가보진 못했지만요.”
이흥선 마술사가 그랬듯 마술을 평생 놓고 싶지 않다는 꿈.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매력으로 공연장에서 뛰어다니는 마술사 단비가 할머니가 된 상상을 아직은 하기 어렵지만, 그럴만한 집념이 있기도 한 사람. 세월에 괘념치 않고 활동하는 마술사가 될 것이라는 청년 마술사의 뚜렷한 상상은, 관객입장에서도 상상하게끔 만듭니다.
인간문화재가 되어있을지 모를 미래의 마술사단비를 말이죠. 사실 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요즘 덜 외롭고 더 든든한 이유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술사 단비만을 위한 마술도구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친구이자 메이커 수향.
마술사 단비와 한 몸처럼 붙어있는 메이커 수향의 이야기는 후속기사로 이어집니다■
이단비는 대전을 기반으로 하여 전국적으로 활동하는 마술사다. 대전 월평동에 'Top secret' 이라는 독립마술회사를 꾸리고 있으며, 또한 대전 청춘다락에 친구들과 함께 협업작업실을 마련하였다. 지역 버스킹을 비롯하여 공공기관, 학교, 어린이집, 유치원, 기업등에서 스토리가 있는 마술공연을 펼치는 중이다. 관객과 친구가 되어준다는 마음과 재기발랄한 따뜻함으로 전연령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마술 교육도 진행한다. 떠오르는 상상을 주체하지 못해 기획한 아이디어를 갈고 닦아, 올해 가을에는 개인마술쇼를 무대에 올릴 예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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