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의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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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의 금요일 6 제이슨 살아있다 Jason Lives: Friday the 13th Part VI (1986)

13일의 금요일 6 제이슨 살아있다 Jason Lives: Friday the 13th Part VI (1986)

멧가비|2016년 7월 20일

제이슨의 시체를 확인하고 자기 손으로 확실하게 끝내버리길 결정한 토미는, 전편에서 꿈에 나왔던 청년들과 똑같이 제이슨의 무덤을 파헤치기에 이른다. 무덤이 열리자마자 낙뢰를 맞고 깨어난 제이슨. 토미는 제이슨을 불태우려 하지만 때마침 비가 쏟아진다. 이제 제이슨은 천기(天紀)가 굽어살피는 존재가 됐다. 부활 장면부터 비범하더니 총을 맞아도 차가 전복돼도 절대로 데미지를 입지 않는 금강불괴의 경지에 도달한다. 어찌어찌해서 부활했다 정도가 아니라 그냥 눈 앞에서 벌떡 일어나는 수준이니, 6편에 와서야 전설처럼 알려진 그 불사신 제이슨이 완성된 것이다. 심지어 물이라는 약점마저 극복해버렸다. 마지막 희생자인 개리스 보안관은, 전작들에서였다면 최종 생존자가 되기에 충분할 정도로 분투했지만 등장 타이밍이 나

13일의 금요일 5 새로운 시작 Friday The 13th: A New Beginning (1985)

13일의 금요일 5 새로운 시작 Friday The 13th: A New Beginning (1985)

멧가비|2016년 7월 12일

성인이 된 토미가 심리 치료를 위해 요양원에 입원한다. 전작의 생존자가 주요 인물, 또 한 번 생존자로서 재등장하는 첫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토미는 제이슨의 환영을 반복해서 보지만 사실 제이슨은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 것이 반전. 억울하다 못해 황당하게 죽은 소년의 아버지가 제이슨의 카피캣이 된다는 게 주요 줄거리인데, 아들의 죽음으로 살인마가 된 사람이 다른 살인마의 자료를 참고해 모방할 정신이 있다는 것도 좀 이상하다. 하지만 바꿔 생각해보면, 그 역시 잠재된 정신질환 살인마인데 아들의 죽음이 단지 방아쇠 역할을 했을 뿐이라고 생각하면 의미심장하다. 제이슨 부히스는 복수 살인마들에게 있어서 일종의 아이돌과 같은 상징적 존재로 승화한 것일까. 시리즈의 발단인 부히스 부인

13일의 금요일 4 Friday The 13th, The Final Chapter (1984)

13일의 금요일 4 Friday The 13th, The Final Chapter (1984)

멧가비|2016년 6월 28일

이쯤되면 무차별 학살을 넘어 그 무차별함이 일종의 패턴이 되고 형식이 된다. 영화는 드디어 살인의 전시를 관람하는 것에 주력하는 모양새로 탈바꿈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생각하는 것을 멈추게 만든다. 살해의 대상이 늘어나고 살해 방식이 조금 더 거칠어진다. 극 영화가 아닌, 팝콘을 집어 던지며 낄낄 거리고 볼 수 있는 영화를 찾는 관객에게라면 이 시리즈는 조금씩 업그레이드 되는 좋은 어트랙션일 것이다. 제이슨이 아무 설명 없이 그냥 척척 살아나는 점도 마찬가지. 이야기를 따라가는 시리즈물로서의 서사 구조를 사실상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제이슨은 죽고 또 죽어도 다시 살아나서 산 사람들을 죽이면 그 뿐. 어쩌면 제이슨은 원한의 화신인지도 모르겠다. 아들을 잃은 부히스 부인과 억울하게 죽은 추가 피해자들의

13일의 금요일 3 Friday The 13th Part III (1982)

13일의 금요일 3 Friday The 13th Part III (1982)

멧가비|2016년 6월 23일

무차별 학살의 시작. 아무 연관도 맥락도 없는 젊은이들을 끔찍하게 살해하기만 할 뿐인 패턴이 시작된다. 드디어 하키 마스크를 쓰고서. 햇볕과 호수를 즐기던 청춘들이 밤이 되어 하나 씩 죽어나가고, 누가 봐도 주인공인 여자 혼자 살아남아서 끝까지 저항해 살아남는다. 마지막 장면은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게 여운 처리. 같은 패턴을 조금 더 노련하게 조금 더 폭력적으로 다루는, 일종의 동 모델 상위 버전 쯤. 3D 효과를 노골적으로 의식한 듯한 컷이 많이 보이고 제이슨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신 또한 많아서, 관객의 입장에서 피해자들과 동질감을 느끼기 보다는 학살 당하는 피해자들을 구경하는 어트랙션을 체험하는 느낌에 가깝다. 영화가 완전히 상업화 되고 프랜차이즈로서의 틀을 확실하게 갖췄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