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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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서도 살아남은 장수 향교, 그 시간의 흔적 속으로

전쟁에서도 살아남은 장수 향교, 그 시간의 흔적 속으로

traveling boy|2025년 9월 15일|등산

향교는 지방에 설치된 조선시대 교육기관이다. 비슷한 목적의 서원과 비교해 보면 서원은 지방 유학자들이 세운 사립인 반면 향교는 중앙 정부에서 세운 공립 교육기관으로 보면 된다. 교육의 목적에 제사 목적을 더하였으며 공자 또는 유교의 성현들을 모시는데 이 역시 서원과 목적을 같이 한다. 장수 향교는 조선 3대 왕 태종 7년(1407)에 세워졌고 숙종 12년(1686)에 이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대부분의 향교가 각종 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중건되었지만 장수 향교는 소실을 피한 덕분에 당시 건물을 지금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지정 보물로 등록되어 있다. 홍살문이 서 있는 입구다. 입구 아래에는 주차금지 안내판이 여러 개가.......

논개의 절개, 장수 의암사 (논개사당)

논개의 절개, 장수 의암사 (논개사당)

traveling boy|2025년 9월 8일|등산

주차 무료, 입장료 무료 변영로 시인의 시가 보인다. 교과서에서 많이 보던 시다. 요즘도 교과서에 나오려나. 논개가 누군지는 모두들 알 것 같다.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이 왜군들에게 함락이 되고 그를 기념하기 위해 왜장들은 촉석루에서 연회를 열었다. 당시 기생이었던 논개는 일본 장수를 접대하는 척하다가 그를 껴안고 강물에 투신하여 자결한 의인이다. 그가 뛰어내란 바위를 의암(義巖)으로 불렀고 그가 태어난 장수군에 그를 기리는 사당이 세워지고 이를 의암사라 이름 지었다. 논개에 대한 기록은 정사가 아닌 어우야담이란 야사로 전해진다. 논개가 진주의 관기였다는 썰이 있고 원래는 양반집 딸이었는데 거사를 위해 기생으로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