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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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박물관 여행 / 광주 북구] 전라남도 지역의 고대 역사속으로 떠나는 여행. 전남대학교 광주캠퍼스 박물관 <5/5>

[블로그 박물관 여행 / 광주 북구] 전라남도 지역의 고대 역사속으로 떠나는 여행. 전남대학교 광주캠퍼스 박물관 <5/5>

조선시기에 전라남도 지역에서는 비중 있는 작가가 다수 배출되었습니다. 광주의 고운, 화순의 양팽손, 해남 윤문의 윤두서, 윤덕희, 윤용, 진도의 허련등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학포 양팽손은 문장과 서화에 뛰어났으며, 그가 그린 '산수도'는 조선 초기의 회화사에서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공재 윤두서는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과 함께 삼재로 일컬어질 정도로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선비화가 였습니다. 윤두서는 사실주의 기법의 탁월한 '자화상'을 비롯해서 18세기 남종문인화와 풍속화의 유행에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근현대 남도의 전통회화에서 진정한 의미의 종조는 소치 허련입니다. 그는 해.......

제주의 모든 것을 한 눈에,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방문 후기

제주의 모든 것을 한 눈에,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방문 후기

traveling boy|2025년 4월 8일|등산

제주 오름 투어 중 3일차에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다. 눈이라면 상관없는데 비가 오니 오름 투어는 물 건너갔다. 그래서 박물관 등 실내 관광 모드로 변신. 주차장에서 전시관까지는 약 150m 걸어가야 한다. 주차비 : 소형 1000원 입장료 : 성인 2000원 가는 길에 귀요미 장승이 있는데 표정이 너무 해맑다. 마을을 화재로부터 지키는 수호신이라고 하는데 손에는 방망이를 들고 있다고 한다. 저렇게 해맑은 표정으로 방망이를 손에 꼬옥 안고 '소듕해' 다시 봐도 표정 너무 귀엽다. 저렇게 귀여우면서 불을 끄겠냐고. 캐릭터 상품화해도 좋을 것 같은데 굿즈 같은 거 있으면 사고 싶다. 이곳은 화산섬인 제주도의 형성 과.......

[여주 강천섬] 바람이 눈에 보이는 포플러길

타누키의 MAGIC-BOX|2019년 11월 15일

은행나무 단풍길에 이어서~ 고갱과 고흐의 그림에서도 보이는 포플러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는데 실제로도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꽤나 마음에 들었네요. 나무가 바람에 사락사락 소리를 내는걸 원래도 좋아하는데 이건 큰 키에 비해 쉽게 바람이 보이는 느낌으로 이리저리 꼬리를 흔들듯이 전체가 움직이는게 식물임에도 살아있는 생동감이 바로 느껴져 묘하니 멜랑꼴리해지네요. 주로 강변을 따라 심어놔서 더욱더 바람을 잘 받아서 참 좋았네요. 쉽게 보지 못했던 가로수길이라 그런지 아주 마음에 듭니다. 가을 단풍도 드는데 은행보다 좀 더 늦나 보더군요. 메타세콰이어같이 크게 자란다는데 좁은 곳에 오솔길같이 조성하면 딱일 듯한~ 많이 쓰이면 좋겠네요. ㅎㅎ 곳곳에 테이블들도 있고 좋던

대청호변 비룡동 줄골 장승과 은진송씨 이야기

은진 송씨는 대전에 세거하던 대표성씨이면서 성리학의 대표학자인 송시열의 본관이기도 합니다. 대청호가 있던 지역은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던 지역으로 많은 향토적인 흔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래도 국도변을 돌아다니다가 보면 곳곳에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청호를 많이 돌아다녀보았지만 이런 석장승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었다는 것을 처음 보네요. 장승이 있는 지역에서 장승제를 지내는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지역의 경계를 알리고 있는데요. 금줄로 마을 입구에 해놓는 것은 잡귀가 더 이상 들어오지 말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덩치가 남달라 보이는 석장승인데 이 석장승 역시 마을을 지켜주는 주신이겠죠.   마을 장승제는 신성 구역을 선포하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일본의 오키나와에서는 신전 정화를 마을 경계로 쓰고, 몽골에서는 금줄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위 장승은 비룡동(줄골) 장승입니다. 천하대장군과 지하대장군의 석장승 2기가 마주 서 있는데 남장승은 북쪽을 향해 서 있고 여장승은 남동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원래 두 장승은 2.5m의 간격을 두고 서 있었는데요. 대전과 추동을 연결하는 도로를 확장하면서 여장승을 뒤로 물려 지금은 10m의 간격을 두고 있다고 합니다.   남 장승의 외형은 전형적인 문관석 형으로 높이가 2m 정도이고요. 여장승은 1.7m 정도에 사람이 얼굴을 새기었다고 합니다. 거리제를 지내고 난 후 짚으로 만든 주머니에 떡과 과일을 넣어 장승의 목에 걸어두기도 합니다.  장승의 옆으로는 은진송씨 상계당공재실로 들어가는 입구를 알리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습니다.   저도 잘 모르는 옛 지명들이 보입니다.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이 이름으로 부르며 살았겠죠.   은진송씨의 재실로 들어가는 공간에도 장승들이 세워져 있습니다.   은진 송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79명, 상신 2명, 대제학 1명을 배출하였던 성씨입니다, 특히 목사공파(牧使公派)와 정랑공파(正郞公派)에서 많은 인물이 나왔다고 합니다. 송춘당공원의 송준길은 영의정으로 추증되고 문묘에 종사되었으며, 송시열은 좌의정을 지내고 문묘와 종묘에 종사되었습니다.   은진(恩津)은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일대의 지명입니다. 백제의 가지내현(加知柰縣)이었는데, 757년(신라 경덕왕 16년) 시진(市津)으로 고치고 덕근군(德近郡)의 영현이 되었다가, 1018년(고려 현종 9년)에 공주(公州)의 임내(任內)가 된 곳입니다. 그러고보니 대청호라는 지역의 광할함을 다시금 보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