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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posts서촌 어디까지 가봤니? 서촌에서 만난 처음보는 서촌
산을 끼고 있는 동네는 기본적으로 아파트가 거의 없어요. 다만 요즘은 건축 기술이 좋아져서 산비탈에도 레고 블럭 같은 아파트 잘 박아 놓습니다. 그러나 여기는 아파트 지을 수가 없어요. 아마 경관지구라서 건축 허락이 안 나기도 하지만 애초에 재개발, 재건축을 하려는 분도 많지 않습니다. 다만 부분 개발, 개별적인 재건축은 하고 있습니다. 삼청동이 그렇고 여기 소개할 서촌도 그렇습니다. 삼청동이 지나다니는 길만 지나다니다가 호기심에 삼청동 한미미술관 뒤에도 꽤 많은 집들이 있어서 놀란 기억이 나네요. 서촌도 그렇까요? 서촌의 산 꼭대기 동네들 서촌은 행정명은 아니고 옥인동, 누하동, 누상동 등등 다양한 행정동이 뭉쳐 있는 공간입니다. 경복궁 서쪽에 있는 동네라서 서촌이라고 하죠. 요즘은 핫플레이스로 다양한 카페와 음식점이 많아졌고 데이트 코스로도 유명합니다. 그러나 서촌도 가는 곳만 가게 되죠. 저도 서촌에 간 것이 2012년 경으로 지금도 자주 찾습니다. 그러나 여기는 처음입니다. 친일파 첩의 가옥인 '옥인동 윤씨가옥'을 촬영하고 있는데 한 분이 쑥 지나갑니다. 응? 여기 길이 있나? 하고 쫄래쫄래 따라 올라갔더니 아~~~ 이런 골목이 나오네요. 빈집도 있고 저주하는 집도 있습니다. 필운대로 9가 길이라는 도로명 주소가 있네요. 도로명 주소는 정확한 위치를 직감적으로 알기 어려워서 짜증난데 이제는 이 도로명 주소로만 표기하네요. 이렇게 빈 공간도 있스빈다. 집 2~3채가 있던 곳인데 허물고 뭘 짓지는 않네요. 여기는 차량으로 접근하기 어려워서 집을 지으려고 해도 건축 자재를 사람이 지고 올려야 하는 등 건축 난이도가 클 듯합니다. 저 뒤에 집들도 다 그렇게 지었겠죠. 이런 동네는 좋은 점도 있지만 차를 주차할 공간이 근처에 없다 보니 차가 있는 분들은 좀 불편하죠. 그럼에도 저 같이 자연 풍광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좋아할 동네예요. 산기슭 동네이다 보니 계단은 필수입니다. 계단이 나이 들면 공포의 대상이 됩니다. 저도 적은 나이가 아니니 계단 보면 이제는 좀 꺼려지게 되네요. 게다가 눈까지 와서 조심조심 올랐어요. 폐 속에 습기 가득한 공기가 훅 들어오니 기분이 상쾌해지네요. 이렇게 빈집도 있습니다. 재건축 하기도 그렇고 이렇게 방치된 집들이 꽤 있더라고요. 가장 좋은 건 싹 밀고 도로 다시 만들고 해야 하는데 그게 쉽나요? 요즘 같은 불경기 특히 건축 불경기에는 더 어렵죠. 뭐든 올라가서 보면 더 보기 좋죠. 저 멀리 종로의 마천루가 보이네요. 갑자기 모던한 최근에 지어진 집이 나오네요. 2층 양옥인데 건물이 최근에 지어진 느낌이 가득하네요 마당도 있고요. 이런 산기슭의 집들은 옥상 뷰가 아주 죽이죠. 여름에는 맥주 파티 하겠네요. 작은 짜투리 공간에 들꽃이나 잡초가 아닌 사람이 심은 나무가 있네요. 양옥과 한옥 그것도 일제 강점기 시절 만들어진 한옥들이 공존하는 동네네요. 여기 행정동명은 옥인동으로 보입니다. 좀 걷다보니 거대한 돌덩이가 보입니다. 이런 돌산들이 한국은 참 많아요. 화강암의 나라죠. 그래서 굴착하기도 힘들고 터널 뚫기도 힘들어요. 대신 이 화강암들이 천연 정수기라서 산에서 내려오는 물든 아주 깨끗합니다. 그래서 물을 그냥 마셔도 되는 나라가 뉴질랜드, 일본, 한국, 등등 몇 나라가 안 된다고 하잖아요. 화강암이 천덕꾸러기라고 생각했는데 화강암이 천연 정류 필터더라고요. 그래서 계곡 물이 참 맑은 한국입니다. 거대한 바위 위에 한자가 적혀 있네요. 옥류동(玉流洞)??? 옥인동인데 옥류동이라고 적은 이유는 여기가 조선시대에는 옥류동이었습니다. 여기 하천이 흘렀다는 소리죠. 그런데 일제가 옥류동과 인왕동을 합쳐서 옥인동으로 만듭니다. 이 옥류동은 17~18세기 당시 조선 최고 권력가문인 '장동 김씨'의 집과 별장이 가득했고 문인들이 많이 모여서 시사를 했던 곳입니다. 경복궁 근처에 있는 계곡과 꽃이 피는 동네에서 술 마시면서 시조 짓기 배틀을 하고 그림을 그렸을 듯합니다. 그래서 진경 산수화로 유명한 '겸재 정선'의 그림 중 이 서촌을 배경으로 한 그림이 많아요. 수성동 계곡도 그의 그림에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하천은 복개 되어서 안 보이고 이렇게 계곡의 흔적은 여러 곳에서 발견됩니다. 좀 내려가니 타일 외장의 일제 강점기 시절의 한옥이 보입니다. 이런 건물은 적산 가옥 같기도 한데 50~60년 대 이전에 지어진 건물 외형입니다. 타일이 경도가 강해서 좋죠. 이렇게 새로운 건물 공사가 진행되는 곳도 참 많았습니다. 주택은 아니고 사무실로 사용할 듯한데 여기에 지을 이유가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여기가 또 정기가 좋은 동네라서 아트 관련 사무실이 많이 있을 듯하네요. 바로 옆집은 빈집입니다. 주차 공간이 부족하다 했는데 이렇게 빈집터에 주타 공간이 조금씩 있긴 하네요. 정말 뜬금없이 모던 그자체의 건물도 보입니다. 뭐 하는 건물인지 궁금할 정도네요. 고개를 돌리면 한옥 마을, 고개를 돌리면 부촌 느낌. 참 독특하네요. 내려오는 길에 본 북악산 설경입니다. 알맞게 높은 북악산 웅장하면서도 소담스러운 북악산으로 1년 내내 저 산 보는 재미로 가득한 동네입니다. 반대편에는 인왕산이 보입니다. 서촌을 지나서 청와대 가는 길입니다. 여기도 역사적인 공간이 참 많아요. 계단과 골목길의 동네 서촌. 난생처음 가는 공간을 구경하다가 내려왔네요. 서촌도 안 가본 곳이 참 많았습니다.

서촌 맛집 무교동 쪽갈비 오는정
서촌 맛집 무교동 쪽갈비 오는정 무교동 쪽갈비 오는정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1길 22 화~일 11:30~22:30(월요일 휴무) 02-735-5718 서울 종로구 서촌에는 전통적인 분위기와 현대적인 감각이 어우러진 다양한 맛집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쪽갈비 맛집으로 유명한 ‘오는정’은 특히 맛있는 쪽갈비를 제공하는 곳으로 입소문을 타고 많은 사람들이 찾는 맛집입니다. 서촌 맛집을 찾고 있는 분들에게 추천할 만한 이 식당은, 쪽갈비의 진한 맛과 특유의 소스, 그리고 정성스럽게 준비된 반찬들로 손님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서촌에 위치한 쪽갈비 맛집 ‘오는정’에 대해 자세히 소개 드릴게요. ‘오는정’은 서촌.......

서촌마을 가볼만한곳 맛집 카페 칵테일바 풀코스 골목산책 데이트
서촌마을 가볼만한곳 골목산책 데이트 오늘 하루만큼은 행복했음 좋겠다며 친구가 만들어준 서촌마을 풀코스 친정엄마 가족장으로 녀석이 함께하지 못함이 마음에 걸렸나보다. 오늘은 나에게 다 맡겨~ 일주일에 하루 쉬는 녀석이 쉬는날 나를 위해 온전하게 내어주고 풀코스로 준비한 고마운 친구. 남푠이랑 데이트를 해도 이렇게 알찬 하루 코스를 만들지 않았던것 같은데 말이지. 오전 11시에 만나서 오후 8시 30분까지 몇시간이야? 지루함도 없이 훌쩍 지난 시간 다음에는 서촌에 있는 한옥게스트 잡구 풀코스로 다시 만나자구. " 오랜만에 서촌에서 볼까?" 서촌마을에서 만나자던 녀석은 오늘 하루만큼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낼 생.......
친일파 윤덕영의 첩이 살던 한옥을 세금으로 복원하려는 서울시
요즘 역사에 푹 빠졌습니다. 왜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는가? 왜 친일파들이 아직도 떵떵거리고 살고 친일을 대놓고 외치는 사람이 갈수록 더 늘어나는가? 일본군 장교였던 박정희 정권 때 보다도 더 심한 친일 행동에 왜 우리는 이렇게 차분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는 친일파들을 제대로 단죄하지 못한 우리의 잘못이라는 생각으로 귀결되었습니다. 전두환, 노태우의 쿠데타를 성공한 쿠데타라고 판단한 검사들의 생각처럼 우리 안의 속물근성, 권력에 아부하는 근성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전두환 쿠데타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을 했어야 하는데 사면해 준 결과가 윤석열의 내란으로 이어진 것이죠. 서촌은 이완용과 더 악독한 친일파인 윤덕영 땅이 가득했던 곳 나름 역사를 잘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사람 이름은 최근에 크게 각인되었습니다. 우리는 친일파 하면 이완용만 생각하지만 이완용이 나대는 성격이라서 크게 부각되었지 악랄함으로 이완용을 가볍게 누른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윤덕영입니다. 순종의 황후의 삼촌인 인물로 순종황후의 권세를 얻고 큰 권력을 얻은 후에 일제에 나라를 팔아넘긴 사람입니다. 고종이 옥쇄를 찍으려고 하지 않자 강압을 했고 이에 순종황후가 옥쇄를 치마속으로 숨깁니다. 그러자 이 윤덕영이 치마 속을 뒤져서 옥쇄를 꺼내서 나라를 팔아먹는 문서에 찍은 인물이 이 윤덕영입니다. 해평 윤 씨 가문에 먹칠을 한 인물이죠.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고종 황제가 그럼 잘 했냐? 못난 왕이었죠. 일제가 외교권을 박탈하는 문서에 서명하라고 하자 조건을 거는데 자신의 왕의 자리는 지켜달라고 합니다. 나라는 일제에 넘어가는데 자기 자리 보존만 부탁하는 왕이 좋은 왕일리가 없습니다. 참 못난 왕입니다. 돌아보면 조선과 대한민국의 서열 1위인 왕이나 대통령이나 훌륭한 왕이나 대통령은 가끔 아주 가끔 나온 듯합니다. 이런 못난 왕 옆에는 간신배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런 간신배들을 끌어들이고 외척 세력으로 망한 나라가 조선입니다. 민비도 그래요. 세도정치를 막기 위해서 어리바리한 민 씨 집안사람을 왕비로 들였는데 오히려 막강한 세도정치를 했다가 나라 절단내고 말아먹게 됩니다. 여기에 고종 같은 무능한 왕 옆에 간신배들이 가득하니 나라를 일제에 팔아먹습니다. 그 선봉장에 이완용과 윤덕영이 있었고 일제는 이 둘에게 후한 대접을 해줍니다. 위 지도는 일제가 두 사람에게 은사 한 땅입니다. 서촌 지역으로 이완용 땅보다 2배나 더 큰 땅을 윤덕영이 차지합니다. 윤덕영 땅은 지금의 수성동 계곡 주변을 아우르는 땅입니다. 중간에 조선의 아방궁이라고 하는 벽수산장이라는 건물이 있었습니다. 윤덕영의 호가 벽수였습니다. 친일파 윤덕영의 아방궁 벽수산장 서촌을 가로지르는 필운대로입니다. 서촌은 제가 자주 찾아가는 동네로 한옥이 많고 골목이 아름다워서 사진 출사지로 자주 활용합니다. 사진만 찍으러 다닐 줄 알았지 역사에 대해서는 잘 몰랐습니다. 서촌 뒤에 있는 산은 북악산과 인왕산입니다.방향에 따라서 북악산 또는 인왕산이 보입니다. 이 건물은 현재 '서촌공간 서로'로 변했는데 수년 전에는 '갤러리 룩스'였던 곳입니다. 사진 갤러리가 변했네요. 이 건물 바로 옆 골목에 벽수산장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위치는 종로구 필운대로 7길 6-17입니다. 주택가에 뜬금없이 고풍스러운 돌이 서 있고 위 사진 왼쪽에 아치형의 벽돌도 보입니다. 이게 바로 벽수산장이라는 아방궁의 입구였던 대문입니다. 반대편에도 이런 돌이 있습니다. 여기가 벽수산장의 입구입니다. 1929년 배화여고 졸업앨범에 담긴 당시 사진 이 입구 문의 위치에서 차를 타고 쭉 올라가야 거대한 저택인 벽수산장이 나옵니다. 보시면 거대한 프랑스 대저택 느낌이죠. 실제로도 어마어마한 크기였습니다. 남산에서 내려다 본 사진인데 경복궁을 가렸던 조선총독부 건물인 중앙청과 함께 보일 정도로 규모가 아주 컸습니다. 인왕산 중턱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네요. 벽수산장은 1913년에 공사를 시작해서 내부 공사는 1930년대까지 이어질 정도로 오랫동안 공사를 했습니다. 외관은 1917년에 완성했습니다. 건물의 위세가 어마어마했죠. 민영찬이라는 사람이 설계도를 들고 와서 윤덕영에게 줬다고 하네요. 벽수산장은 지금 남아 있지 않습니다. 1966년 보수 공사를 하다가 불이 나서 전소되었고 1973년 도로 만든다면서 철거했습니다. 위치는 수성동계곡을 왼쪽으로 두고 옥인연립이 있는 뒤쪽이었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1956년 제작된 영화 '서울의 휴일' 그 웅장한 모습은 1956년 제작된 영화 에서 나옵니다. 여자들이 수다를 떠는 배경에 거대한 프랑스식 대저택이 보이는데 이게 바로 벽수산장입니다. 윤덕영은 1940년 사망했고 이후 가세가 급격하게 기울어서 이 건물을 팔게 됩니다. 다른 각도 영상을 보면 저 멀리 경복궁 근정전이 보이네요. 윤덕영의 친일 행적은 일본인들도 놀랄 정도로 냉혹했다고 할 정도로 극악의 친일파였습니다. 수성동 계곡 앞에는 한옥과 양옥, 중국식이 섞인 박노수 미술관이 있습니다. 서양화가 박노수 화가의 집으로 입장료를 내면 누구나 들어가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건물은 윤덕영의 사위인 김덕현과 딸을 위해서 만든 집입니다. 아이러니하죠. 친일파였던 사람들이 살던 건물은 근대 건물이라고 서울시가 보존하고 있습니다. 가회동 백인제 가옥도 실제로는 이완용의 외조카 한상룡이 살던 집입니다. 이런 집들을 보존한 이유는 친일파이건 뭐건 근대 건물이라는 이유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좋은 역사든 아픈 역사건 보존하고 알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저도 그런 흐름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아픈 역사도 잘 가르쳐야 하죠. 친일파가 지은 집에 대한 정보를 넣지 않는 서울시 비지트서울넷이라는 서울공식 관광정보 웹사이트가 있습니다. 여기 보시면 백인제 가옥에 대해서 이렇게 적어 놓고 있습니다. 백인제라는 의사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 나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분들이 보면 백인제 의사가 돈 벌어서 지은 집으로만 알죠. 그 어디에 친일파 이완용의 조카인 한상룡에 대해서 적지 않고 있습니다. 한상룡도 악덕한 친일파로 금융업으로 큰돈을 벌었던 인물입니다. 1935년 편찬한 조선공로자명감에 오른 친일파 353인 중 한 명입니다. 그런데 서울시는 이런 사실을 절대 알리지 않고 있습니다. 아는 사람만 알죠. 윤덕영의 첩이 살던 옥인동 윤씨 가옥을 복원하겠다는 서울시 이 서촌에는 윤덕영의 살았던 한옥도 있었습니다. 윤덕영도 조선 사람이라서 서양식 주택에만 살지 않고 온돌방이 있는 한옥집도 만들어서 번갈아가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이 한옥에는 첩이 살아서 더 자주 찾았을 듯합니다. 이 한옥의 이름은 옥인동 윤 씨 집이라고 하는데 지도앱에서도 나오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계단을 타고 오르면 옥인동 윤씨 가옥이 나옵니다. 그러나 너무 오래되고 방치되어서 무너지고 있습니다. 2천 년 대 초까지는 9 가구가 살았던 집입니다. 크지 않지만 무려 9 가구나 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방치되어서 무너지고 있습니다. 20세기 초 한옥 건축 양식을 그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지붕을 방수포로 덮을 걸 보면 알 수 있듯이 다 쓰러지고 있네요. 집이라는 곳이 사람이 안 살면 바로 망가집니다. 사람이 살면서 매일 청소하고 관리해야 하는데 수십 년째 방치하면 이렇게 되죠. 안을 들여다보니 오래 방치된 흔적이 가득하네요. 전통 한옥인데 현대의 삶을 살려면 수도, 인터넷선, 전기, 상하수도가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한옥이라는 건물 자체는 현대인이 살기 좋은 건축물은 아니에요. 그래서 개량을 좀 해야 하죠. 여기는 전통 한옥이라서 불편함이 큽니다. 그럼에도 9 가구가 살았다가 이제는 떠났습니다. 게다가 이렇게 덧대서 살았기에 9 가구가 살 수 있었네요. 그런데 이 건물을 서울시가 복원한다고 하네요. 그런데 이 옥인동 윤씨 가옥의 재현 가옥이 남산한옥마을에 있습니다. 남산한옥마을에는 여러 채의 한옥이 있는데 이 중 하나가 옥인동 윤 씨 가옥입니다. 제가 둘러본 남산한옥마을 한옥 중에 가장 아담하고 포근했습니다. 이 옥인동 윤씨 가옥에 대한 남산한옥마을의 설명을 보면 1910년대에 지어진 순종황후인 순정효황후의 큰아버지 윤덕영의 소유였던 건물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도 그 어디에도 친일파라는 소리가 없습니다. 이게 문제예요. 서울시가 친일파에 대한 설명이나 소개를 안 합니다. 이러니 친일파 후손들이 떵떵거리고 사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다크 한 역사도 알려야죠. 적극적으로 알려야죠. 이게 옥인동 윤씨 가옥을 재현한 집인데 이걸 서촌 옥인동에 또 복원을 하겠다고 하네요. 전 이런 서울시라면 친일파의 행적을 적극적으로 밝히지 않는 서울시 태도라면 저 옥인동 윤 씨 가옥 복원을 절대 반대합니다. 우리 서울시민 세금으로 친일파 첩이 사는 집을 왜 복원합니까? 건축학적 의미가 있다고 하지만 친일파 행적을 숨길 것이 뻔해서 전 절대 반대합니다. 이런 사실을 서울시가 정부가 알려야 하는데 숨기는 모습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제가 스스로 공부해서 겨우 알게 된 것이 옥인동 윤 씨 가옥이네요. 그나마 유튜브와 나무위키 등이 이런 역사적인 사실을 담아서 알게 되었네요. 정작 서자 출신들의 유생들이 신세한탄을 하면서 술을 마셨던 송석원이라는 초가 정자나 복원하지 친일파 첩이 살던 집을 왜 복원하는지 모르겠네요. 지금 복원 진행 중인데 서울시의 못난 행정이 또 하나 증가했네요. 오세훈 현 시장의 못난 행정력은 이로서 또 증가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