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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 창경궁 #5)대비를 위해서 지었던 곳. 자유로운 구성이 돋보이는 궁궐. 창경궁 昌慶宮 <자경전 터, 성종태실, 춘당지>

(서울 종로구 / 창경궁 #5)대비를 위해서 지었던 곳. 자유로운 구성이 돋보이는 궁궐. 창경궁 昌慶宮 <자경전 터, 성종태실, 춘당지>

창덕궁과 창경궁은 내부에서 길이 연결됩니다. 그래서 저는 연결된 길을 따라 이렇게 이번 서울 궁궐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인 창경궁(昌慶宮)에 도착을 했습니다. 본래 창경궁 터에는 1418년에 세운 수강궁(壽康宮)이 있었습니다. 수강궁은 세종 때 상왕 태종을 위해 창덕궁 동편에 창건한 궁이었습니다. 1483년에 성종이 3명의 대비를 위해 이 터에 크게 궁궐을 다시 짓고 창경궁이라 불렀습니다. 창경궁은 창덕궁과 사실상 하나의 궁궐을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두 궁궐을 경복궁의 동쪽에 있는 궁궐이라 하여 둘을 합쳐 동궐(東闕)이라 불렀습니다. 두 궁궐은 후원의 정원도 공동으로 이용했습니다. 창경궁은 창덕궁의 부족한 생활공간을 보충.......

(서울 종로구 / 창덕궁 #14)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의 정궁 昌德宮 <석복헌, 성정각>

(서울 종로구 / 창덕궁 #14)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의 정궁 昌德宮 <석복헌, 성정각>

낙선재 동편에 자리한 석복헌(錫福軒)에 왔습니다. 낙선재의 안채 역할을 하는 건물이고 낙선재 본채보다 약 1년 늦은 1848년에 지었습니다. 헌종의 후궁이었던 경빈 김씨가 머물렀던 곳입니다. 하지만 이 석복헌이 완공된 후 1년 만에 헌종이 죽게 되자 경빈 김 씨는 바로 이곳을 떠나야 했습니다. 이후 석복헌은 주인이 없이 비게 되죠. 석복헌의 이름인 석복(錫福)은 복을 내려준다는 좋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헌종이 자신의 뒤를 이을 왕세자가 이곳에서 태어나기를 바라면서 지은 이름이지만 안타깝게도 헌종은 경빈 김씨를 맞은 후 2년도 살지 못하고 승하하고 말죠. 생전에 후사를 보지 못하고 요절해 버리면서 헌종은 정조의 마지막 남.......

(서울 종로구 / 창덕궁 #13)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의 정궁 昌德宮 <흥복헌, 낙선재>

(서울 종로구 / 창덕궁 #13)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의 정궁 昌德宮 <흥복헌, 낙선재>

이제 이번 궁궐 여행 중에 가장 마음이 무거워지는 시간이 됐습니다. 우리가 국권을 상실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된 그날의 역사가 담겨있는 공간을 방문합니다. 대한제국은 1910년 8월 22일에 이 사진 왼쪽에 살짝 보이는 흥복헌에서 체결된 조약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죠. 조약은 22일에 체결되었지만 백성들에게 발표된 것은 일주일 후인 8월 29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공식적으로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날은 8월 29일이 맞습니다. 사진 왼쪽의 모서리에 있는 작은 건물. 흥복헌(興福軒)은 내전의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임금이 신하들을 접견하는 장소로 자주 쓰였습니다. 이 대조전의 흥복헌이 살짝 안쪽에, 그리고 구석에 있는 것을 봐서는.......

(서울 종로구 / 창덕궁 #12)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의 정궁 昌德宮 <희정당, 대조전>

(서울 종로구 / 창덕궁 #12)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의 정궁 昌德宮 <희정당, 대조전>

이곳 창덕궁에 근현대 문물이라 할 수 있는 자동차와 관련된 장소가 있습니다. 바로 자동차를 쉽게 탑승하고 내릴 수 있도록 현관을 만들어 놓은 희정당(熙政堂)입니다. 희정당은 왕의 거처이며 집무실이었던 공간입니다. 원래의 이름은 숭문당이었지만 연산군 대에 희정당으로 바꿨습니다. 원래 왕의 집무실은 선정전이지만 종종 국장에 사용되면서 이곳을 제2의 집무실로 활용했고 왕의 침실로 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옛 희정당이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있는 것은 아니고 지난 1917년에 불에 타 없어진 희정당을 복구하면서 경복궁의 강녕전을 이전하여 건축한 것이어서 원래의 모습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아마 조선시대의 마지막 임금인 순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