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퍼붓는 앙꼰을 떠나기 전, 달이 앙꼰 호텔에 잠시 가보자 한다. 아무래도 이곳을 그냥 떠나기가 쉽지 않은 모양. 나는 더하다. 바닷물에 발 한번 담궈보지 못했으니. 로비에 가서 방을 좀 보고 싶다고 하니 선뜻 키를 내어준다. 우리는 낡고 어두침침한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사층에 내리니 넓고 탁 트인 복도엔 비가 비껴들고 있었다. 어딜 봐도 우중충한 하늘. 조심스레 키를 넣고 문을 여니, 어딘가 음산하다. 발코니도 없는 방. 창 밖으로 비가 쏟아진다. 너울너울 야자수 잎이 흔들린다. 이건 뭐, <낡은 호텔의 비밀>과 같은 제목의 납량특집물을 보는 기분. 그냥 트리니다드로 돌아가자. 어차피 오늘은 까사에서 자야하니까. 그러나 그 바다를 포기하기란 쉽지 않다. 사면이 바다인 섬이건만, 흔히 상상